제1과 - 이야기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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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9-30 23:13 조회5,234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10년10월02일(안) 제1과 (이야기와 역사).hwp (26.5K) 69회 다운로드 DATE : 2010-09-30 23:13:57
본문
2010년 10월02일(안식일) 일몰 : 오후 6시 15분
제1과
<이야기와 역사(歷史)>
◎ 記憶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글로 나타내시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계시의 기록인데 그 기록은 사람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 기록한 사람들의 직업을 보면 왕(王), 왕자, 시인, 철학자, 농부, 목자 및 선지자 정치인등 으로 이들 중에는 시대의 온갖 문예(文藝)에 능통한 유식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중에는 무식한 어부(漁夫)들도 있었다.
그 처럼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다양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안목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감(靈感)을 그들의 지각(知覺)을 통하여 그들의 이야기로 기록한 것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역사(歷史)를 움직이는 것은 그 역사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행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오, 그들에 대한 기록은 개인들 생애의 변화는 물론 시대적인 큰 변혁을 일으키는 동기기가 되는 일이 종종 있으며 그 뿐 아니라 이런 말도 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다.
여기 이번 제4기에는 구약성경(舊約聖經)의 역사이야기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 要點
성경 인물이 삶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거룩한 원칙을 적용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일요일(9월 26일)
<인물과 줄거리>
▣ 사람이 태어나서 그가 호흡을 멈추고 죽을 때 까지는 모두가 그에 일생이 있을 것이다. 즉 삶에 줄거리가 있을 것이다.
똑 같은 시간을 전능자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아 다음의 세 부류의 삶을 살다간다는 것입니다.
<첫째> 그 인간이 있으면 안 될 사람과 (Trouble Make)
<둘째> 그 인간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 (Nominal Make)
<셋째> 그 분은 꼭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Peace Make)
이 세 부류 중에 첫째와 둘째부류는 이 땅에서의 목표로 사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델이며,
셋째 부류의 사람은 하늘에서의 영적(靈的)삶을 지향(志向)하며 살 때 가능한 것이다.
한 인생의 삶의 줄거리를 이 땅 지상(地上)에서의 목표로 사는 사람과,
또한 부류는 하늘의 영적(靈的)인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의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우리는 역사(歷史)에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느끼는데,
과거(過去)에 생존하였고 현재에는 보지 못한 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인물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 중에서도 성경의 기록의 핵심이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이 대역(代役)을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매 시대마다
우리 인간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모두가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까지의 기록들이다.
그 성경의 매 장(章)마다 신구약(新舊約) 성경의 66권에 사람의 사역(使役)이 빠진 곳은 아무 곳도 없다.
그 주인공들의 전개(展開)되는 이야기며,
영적(靈的)인 측면에서 보면 하늘의 소망을 가진 삶의 줄거리와,
땅에서의 삶에 줄거리가 한 인물을 통하여 전개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줄거리란 결론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인생 전체를 보면 이것이 삶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인생은 갈등과 긴장 속에서 전개되는 수많은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하나의 줄거리를 본다는 것은 이야기와 관련된 모든 부분들을 연결시킴으로써 큰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욥기에는 2개의 줄거리가 존재한다.
<예(例)>
욥기에서 전개되는 2가지 줄거리는 욥기에서는
⑴ 지상(地上)의 이야기와
⑵ 천상(天上)의 이야기가 교차(交差)되고 있다.
◯ <이야기의 힘>
“각 사람이 단순한 말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하라. 이것은 교회 안으로 가져올 수 있는 유쾌한 모든 음악의 악기들보다 영혼에게 더 큰 위로와 기쁨을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들의 마음속에 오실 것이다. 그대들이 그대들의 성실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수단을 통해서이다.”(교회증언 7권, 195)
◎ 인생은 수많은 줄거리들이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며, 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늘의 줄거리와 땅의 줄거리가 동시에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월요일(9월 27일)
<어디에서? 어떻게?>
▣ 기자(記者)가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이를 일컬어 육하원칙(六何原則)이라 한다.
육하원칙(六何原則)은 기사문(記事文)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여섯 가지 요소를 말한다.
여섯 가지 요소는 누가(who), 무엇을(what), 언제(when), 어디서(where), 왜(why), 어떻게(how)이다.
▣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경과와 결과가 있듯이
이를 언어와 문서로 기록할 때 정확한 사건을 전달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육하원칙을 기자가 배경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본 사건의 결론에 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어느 잘못에 대한 실수를 결론만 간단하게 기록하면 아주 나쁜 사람으로 죽일 사람이 되지만,
기자(記者)가 그 잘못을 어떠한 배경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배경 설명을 잘하면 독자들은
그 잘못한 사람을 관용하게 보아주기 때문이다.
이 처럼 배경은 이야기에 현실성을 불어넣고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룻기 4장1~2절에서
보아스는 자신의 법률적인 문제를 집이나 베들레헴 성주의 집이 아닌 성문으로 가져갔다. 왜일까?
그 이유는 고대(古代)에 특히 근동지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공장소가 바로 성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는 하나의 중요한 법적인 요소를 덧붙이고 있다.
배경은 줄거리가 전개되는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이야기의 배경이 차량 안이나 공항이라면,
배경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행동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예(例)>
⑴ 다윗과 사울과 사울의 이야기에서
배경은 다윗이라는 뛰어난 인물을 부각시킨다.
그는 자신이 사울에 의해 제거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사울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한다.
이런 사실은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⑵ 요셉 이야기에서
배경 역시 하나의 기회를 그리고 있다.
요셉은 용모가 뛰어나고 힘 있는 위치에 있다.
주인의 아내는 그에게 빠져 있었고 그들은 단둘이 집안에 있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이 요셉도 이런 기회를 거부함으로써 순결한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다.
⑶ 그러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배경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화자(話者)의 관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는 화자의 관점을 통해 전개되는데,
그것은 보통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지만 간혹 정보를 누락시키기도 한다.
특히 세속적인 이야기에서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성경 기사에도 관점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성령에 의한 영감의 기록이며, 하나님의 진리임을 믿어야 한다.
◯ <이야기의 맥>
“누구나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단 한 절을 읽을지라도 거기서 유익한 사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따금 하는 연구나 단편적인 연구로서는 성경의 가장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가 없다. 성경을 급히 또는 부주의하게 읽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큰 진리 체계가 깨우쳐지지 않는다. 진리의 보화는 대부분 표면 아래 깊이 파묻혀져 있으므로, 꾸준한 탐구와 끊임없는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진리들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사 28:10)씩 찾아 모아서 하나로 크게 만들어야 한다.”(교육, 123)
◎ 현실과 역사(歷史)를 잘 묘사(描寫)하거나 기록 할 때는 배경 설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성경 이야기의 배경을 통해서 인물들의 행동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화요일(9월 28일)
<승리(勝利)에서 “암흑기(暗黑期)”로>
▣ 과거(過去)를 지나 현재에서 과거를 보면 참으로 답답함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과거를 본 다음 과거의 전철(前轍)을 더 이상 밟지 말라야 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과거가 반복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순환(循環)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哀惜)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 된 일들에서 교훈을 삼고 반복하는 누(累)를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그 한사람이 씨족과, 부족(部族)에서 민족(民族)과 국가(國家)로
축복을 약속하셨고 보호하셨고 함께하시므로 의식주(衣食住)는 물론 건강과 질병과 외부의 어떠한 공격에서도
보호(保護)해주시고 도와주셔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셨다.
즉 전능하신 능력의 그늘아래에 있을 때는 평안하고 승리를 보장 받고 살았다.
그러나 전능자인 주인을 망각(忘却)하고 자신의 능력과 이방인들의 행습(行習)에 눈을 돌려 동화(同化)하고,
개인의 편의에 융화되고, 주변문화와 타협해갔을 때 즉 영적(靈的)인 쇠태(衰態)의 결과는
선택받은 선민(選民)들이 식민지의 지배생활로 전락(轉落)되어 암흑기의 삶을 살게 된 것을 보면서
이는 하나님의 벌(罰)주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이라는 것을 성경과 역사를 통하여 볼 수가 있다.
▣ 컵 속에 깨끗한 물이 가득 차 있을 때에는 깨끗한 물로 가득차이는 그 자체이지만,
물이 없는 빈 컵에는 공기(空氣)가 물대신 가득 찰 수밖에 없듯이,
우리 인간의 마음에도 나의 주인의 생각이 가득차 있지 않는 마음에는
그 공간에 세속(世俗)의 사단의 미끼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선민(選民)들에게 그토록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버리고 이방인들의 행습을 하나둘씩
받아들이다가 차츰 통혼(通婚)을 하고 더 나아가 우상숭배까지로 전락되어 하나님을 버리는 결과로 인하여
스스로의 불행(不幸)의 길을 선택하여 식민지로의 지배와 뼈아픈 고난의 삶을 자초한 것을 알 수가 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출애굽과 광야의 순례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경계에 두 번째 이르게 되었다.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그들은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기 직전이었다(수 3:16~17).
그 기적(奇蹟)은 출애굽 때에 홍해를 건넜던 역사의 재현이었다(출 14장).
“이 기적(奇蹟)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계속적인 임재와 보호에 대한 보증이요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일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통하여 그들을 위하여 일하시리라는 증거였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와 같이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인근 민족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공포심을 증가시켜 이스라엘로 하여금 쉽고도 완전하게 승리할 길을 준비해 주시고자 하심이었다.”
(부조와 선지자, 484)
◯ 가나안 정복은 여호수아의 군사 전략이나 이스라엘의 각고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가나안 도시 국가 거주민들에 대한 승리는 단지 하나님의 권능의 개입에 의해 성취되었다.
이스라엘이 순종하면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고, 이스라엘이 자신의 힘에 의지하면 그들은 영락없이 실패하였다.
여호수아와 원로들이 죽은 이후에 약속의 땅의 일부는 여전히 가나안 인들의 지배하에 있었다(삿 1:27~28).
그러나 이스라엘의 비전이 위축되자 그들의 믿음도 축소됐던 것처럼 보인다.
약속의 땅 전체를 그들의 소유로 바라보는 대신에 그들은 생계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품고 있는 큰 비전과 이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그 이후의 몇 백 년을 이스라엘의 “암흑기”라고 부르고 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염두에 두고 계신 큰 그림을 잃을 경우 작은 것이 큰 것을 대신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국가로서의 관점을 잃고 부족주의로 전락해 버렸다.
사사기를 보면 부족과 씨족들이 심심치 않게 대립한다.
종교적 행위들은 개인의 편의에 융화되고, 주변 문화와 타협해 갔다.
사사기의 저자에 따르면 이런 현상의 원인은 그 땅에 사는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 때문이었다(삿 3:3~7).
이런 영적 쇠퇴의 결과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의 식민지배 → 해방 → 우상숭배 그리고 다시 식민지배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교과 14)
◯ <이야기의 틀>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은 성경 구절을 그 전체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는 동시에 그 부분적인 관계를 알아내도록 배워야 한다. 그는 성경의 중심 주제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 목적, 대쟁투의 시작과 구속 사업의 기원에 대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 그는 주권을 다투고 있는 두 가지 원칙의 성질을 이해하고, 역사와 예언의 기록을 통하여 그 큰 종국에 이르기까지 그 원칙들의 활동을 연구해 보아야 한다. 이 투쟁이 인류 역사의 갈피마다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이 어떻게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정신 중의 하나를 나타내게 되는지, 그리고 자기가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이 대 쟁투의 어느 한 편에 스스로 참여하는 자로 결정되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교육, 190)
◎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의 비전을 바라볼 때는 승리(勝利)하지만,
비전(Vision)을 놓치고 자신의 힘에 의지할 때는 실패(失敗)할 수밖에 없다.
수요일(9월 29일)
<왕(王)들에 대하여>
▣ 왕들의 호칭(呼稱)을 살펴보자.
황제(皇帝), 대왕(大王), 왕(王)등의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구분이 되어있다.
국력이나 힘의 상징으로 호칭이 다르게 불리 운다.
일본의 천황(天皇)이란 어떤 의미 인지 알고들 호칭을 하고 있는지?
일본의 천화호칭이 왜 지금도 스스럼없이 불리워지고 있을까?
중국에서의 황제호칭과 유래를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천황이나 황제란 호칭을 왜 사용하지 못했을까?
▣ 이 세상에서 아무리 거창한 호칭을 사용한다 해도
하늘 보좌위에 계시는 만왕(萬王)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위에 있을 인간들이 있을까?
온 우주만물(宇宙萬物)을 창조 하시고 운행하시며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보다
능력이 있는 인간들이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참란(僭亂)된 죄를 범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 다,
저희는 부패(腐敗)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1)
▣ 하나님께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고, 계속 순종하면 더 많은 것이 약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의 문화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매우 낯선 통치 체제를 보았다. 모든 나라에 왕이 있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행위와 지도력을 계승하지 못하고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삼상 8:3)한 사실과 결부시켜,
이스라엘의 부족장들은 한 왕을 세울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4~5절).
사무엘은 이런 결정을 기뻐할 수 없었지만 여호와께서 그 일을 승인하라고 말씀하셨다(7절).
◯ 사무엘은 베냐민 사람 사울을 왕으로 기름을 부었다(삼상 10:1).
사울은 기브아에서 통치를 시작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예견하신대로 왕의 일이 순탄치는 않았다.
부족 간의 긴장은 계속되었고,
주변 국가들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존재마저 위협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게다가 새로운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삼상 15:3, 8~9).
그 결과 하나님은 마침내 사울을 포기하셨다.
◯ 그 뒤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예상대로 사울은 전쟁 영웅 다윗에게 권력을 순순히 넘겨주지 않았다.
이후 20년 동안 다윗은 언제나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망했을 때, 이스라엘 역사는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삼상 31:1~6). 다윗은 우선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고, 7년 후에 전체 이스라엘의 왕에 올랐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했다.
그의 군사 정책은 성공을 거두어서 영토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린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생을 마감했다(삼하 5:4, 왕상 2:10~ 11).
다윗의 통치는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게 큰 승리와 잘못된 선택,
그리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뒤섞여 있는 역사였다.
다윗의 왕위는 솔로몬이 이어받았으며 그 역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왕상 11:42).
솔로몬은 용사나 정복자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왕상 3:3~13).
그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였고, 효율적인 행정 구조로 이스라엘을 조직하고 다스렸다.
하지만 말년에 여호와를 배반하고 후궁들의 이교적인 관습을 좇았다(왕상 11:1 ~8).
◯ <이스라엘의 실패>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영에 대한 희망을 갖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인도되어야 했다. 죄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국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 당신의 사업을 옹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심을 상실하였다. 그들은 참 평화를 찾기 전에 그들이 범한 바로 그 죄를 알고 자복해야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614)
◎ 이스라엘은 왕이 통치하는 이방 국가들을 부러워했다.
왕 중에 왕이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에 실패함으로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목요일(9월 30일)
<르호보암의 어리석음>
▣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이며 세자이다.
기원전 975년에 그에게서 열 지파가 반역하고 떠났다.
솔로몬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의 시대에 있었던 완력에 가까운 행정적 접근, 강제노역, 실험적인 종교다원주의는
아들 르호보암의 통치 초기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 주었다.
▣ <르호보암의 배경과 인격>
“솔로몬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예언한 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택한 후계자 곧 르호보암의 마음을 준비시키고자 갈망하였으나 그의 초기 교육을 너무나 등한히 했기 때문에 아들의 마음을 선하게 꼴 지울 수 있는 감화를 전혀 끼칠 수 없었다. 르호보암은 암몬 사람인 그의 어머니로부터 우유부단한 성격의 특징을 물려받았다. 때때로 그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하였고 상당한 번영을 누리도록 허락되었으나 확고부동하지 못함으로 인해 마침내 어려서 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던 악한 감화에 굴복하고 말았다.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들과의 결합으로 인해 빚어진 무서운 결과가 르호보암의 잘못된 생애와 그의 최후의 배도 가운데 나타났다.”(선지, 88)
▣ <두 그룹의 권고>
“만족을 얻지 못한 르호보암은 자기가 청년시절과 장년의 초기에 교제하던 젊은이들을 향하여 묻기를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왕상 12:9). 젊은이들은 그가 자기 신하들을 엄격히 다루어야 하며 처음부터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간섭할 경우에는 참지 않겠다는 것을 그들에게 분명하게 밝히도록 제의하였다.”(선지자와 왕, 89)
▣ <왕국의 분열>
“르호보암의 경솔한 말로 인해 야기된 불화는 회복할 수 없는 것임이 판명되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분열되어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하부 혹은 남방 유다 왕국을 이루어 르호보암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고 북방의 열 지파는 이스라엘 왕국으로 알려진 독립 정부를 구성하여 유지하게 되었는데 여로보암을 그들의 통치자로 삼았다. 그리하여 그 나라의 분열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 일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왕상 12:15).”(선지, 91)
▣ <르호보암의 종말(終末)>
“백성들은 아직 하나님의 형벌을 멸시할 만큼 그런 배도의 지경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시삭의 침략으로 입은 손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고 한동안 스스로 겸비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고 고백하였다.”(선지, 95)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였고 유다에 선한 일도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노를 돌이키사 다 멸하지 아니하셨더라.”(대하 12:6-12).”(선지, 95)
“그러나 압제의 손길이 물러가고 나라가 다시 번영하게 되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다시 우상숭배로 되돌아갔다. 그들 중에는 르호보암왕 자신도 끼어 있었다. 그에게 내린 재난으로 겸비하기는 하였으나 이 경험을 그의 생애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치고자 노력하신 교훈을 잊어버리고 르호보암은 자기 나라에 형벌을 초래한 죄악에 다시 빠져 들어갔다. 왕이 “마음을 오로지하여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함으로 악을 행하였”던 불명예스러운 세월을 보낸 후에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비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하 12:14, 16).”(선지, 95-96)
◯ <르호보암의 실패>
“만일 르호보암과 그의 경험 없는 모사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더라면 행정부의 단호한 개혁을 바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겜의 회집 중에 그들에게 이르러 온 호기에 그들은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생각하기에 실패함으로 대다수의 백성에게 끼칠 수 있었던 그들의 감화를 영원히 약화시키고 말았다.”(선지자와 왕, 90)
◯ 솔로몬의 조세정책과 강제노역제도로 인해 불만이 극에 달해 있던 백성의 지도자들은 르호보암의 태도를 보고 앞으로 다윗 왕가에 충성할 것인지 아니면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독립할 것인지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흩어지고 있는 민심을 하나로 묶기 위해 유화책을 쓸 것인가 아니면 강경책을 쓸 것인가의 기로에서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소장파의 의견만 따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 단일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열된 이후에 각자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예배와 희생과 찬송의 중심이 유다에 있음을 보고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1세는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고 벧엘과 단에 각각 하나씩 제단을 세워 예배의 장소로 삼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갔다. 이후 2백 년 간 이스라엘은 극도로 불안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온전한 심령은 아니었을지라도 일부 왕들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왕들은 완고하게 선지자의 음성을 거절하였다. 왕조가 수시로 바뀌고, 정치적 암살이 자행되었다. 정국이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여로보암 1세로부터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마지막으로 다스렸던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20명의 왕이 교체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722년 사마리아는 앗시리아 군대에 포위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나 국경 아래의 사정이 더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윗 왕조는 유지되었지만, 그의 후손들이 모두 조상의 믿음을 계승한 것은 아니었다.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아와 같은 왕들은 여호와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유다 전체에 회개가 이르러왔다. 왕들의 노력에는 유다의 특별한 사회적 영적 필요와 정황에 따라 권면하는 선지자들의 지원이 있었다.
◯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다. 지도자들과 수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군주제 “실험”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 이스라엘이 원했던 왕조는 몇 백 년을 못 버티고 모두 멸망하였다.
이런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나라와 메시야를 소망하게 되었다.
◯ “여호와께서는 성령의 영감으로 모세에 의해 기록된 거룩한 역사의 철학을 연구하도록 우리 모두를 부르신다. 지상에 세워진 첫 번째 가족은 말세에 이르기까지 존재할 모든 가족들의 모본이다. 역사 속에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위해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 계획은 쉽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성화된 영혼은 지구 역사의 시작과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생각과 의도를 배우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며, 모든 과정을 이끄는 동인(動因)이시고, 인류의 모든 정결과 향상의 기원이 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원고, 184)
◯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여기까지 전진한 모든 발자국을 따라 여행해 온 우리의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볼 때에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보면서 놀라움과 인도자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로 가득 찬다. 우리는 주님이 과거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방법과 그분의 가르침을 잊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신뢰를 주님께 둔다면 우리는 지금 강한 백성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강력한 진리를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162)
<초점(焦點)>
성경은 인간을 통하여 인간의 삶에 필요한 이야기들로 기록하였다
한 인물을 통하여 주어진 상황과 배경을 통하여 행동하고 반응한 역사의 이야기를
인물과 구성과 관점과 역사적 배경들을 우리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기록함으로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게 되는 어려환경과 여건에서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할 때 감춰진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이다.
제1과
<이야기와 역사(歷史)>
◎ 記憶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글로 나타내시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계시의 기록인데 그 기록은 사람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 기록한 사람들의 직업을 보면 왕(王), 왕자, 시인, 철학자, 농부, 목자 및 선지자 정치인등 으로 이들 중에는 시대의 온갖 문예(文藝)에 능통한 유식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중에는 무식한 어부(漁夫)들도 있었다.
그 처럼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다양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안목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감(靈感)을 그들의 지각(知覺)을 통하여 그들의 이야기로 기록한 것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역사(歷史)를 움직이는 것은 그 역사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행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오, 그들에 대한 기록은 개인들 생애의 변화는 물론 시대적인 큰 변혁을 일으키는 동기기가 되는 일이 종종 있으며 그 뿐 아니라 이런 말도 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다.
여기 이번 제4기에는 구약성경(舊約聖經)의 역사이야기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 要點
성경 인물이 삶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거룩한 원칙을 적용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일요일(9월 26일)
<인물과 줄거리>
▣ 사람이 태어나서 그가 호흡을 멈추고 죽을 때 까지는 모두가 그에 일생이 있을 것이다. 즉 삶에 줄거리가 있을 것이다.
똑 같은 시간을 전능자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아 다음의 세 부류의 삶을 살다간다는 것입니다.
<첫째> 그 인간이 있으면 안 될 사람과 (Trouble Make)
<둘째> 그 인간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 (Nominal Make)
<셋째> 그 분은 꼭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Peace Make)
이 세 부류 중에 첫째와 둘째부류는 이 땅에서의 목표로 사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델이며,
셋째 부류의 사람은 하늘에서의 영적(靈的)삶을 지향(志向)하며 살 때 가능한 것이다.
한 인생의 삶의 줄거리를 이 땅 지상(地上)에서의 목표로 사는 사람과,
또한 부류는 하늘의 영적(靈的)인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의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우리는 역사(歷史)에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느끼는데,
과거(過去)에 생존하였고 현재에는 보지 못한 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인물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 중에서도 성경의 기록의 핵심이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이 대역(代役)을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매 시대마다
우리 인간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모두가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까지의 기록들이다.
그 성경의 매 장(章)마다 신구약(新舊約) 성경의 66권에 사람의 사역(使役)이 빠진 곳은 아무 곳도 없다.
그 주인공들의 전개(展開)되는 이야기며,
영적(靈的)인 측면에서 보면 하늘의 소망을 가진 삶의 줄거리와,
땅에서의 삶에 줄거리가 한 인물을 통하여 전개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줄거리란 결론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인생 전체를 보면 이것이 삶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인생은 갈등과 긴장 속에서 전개되는 수많은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하나의 줄거리를 본다는 것은 이야기와 관련된 모든 부분들을 연결시킴으로써 큰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욥기에는 2개의 줄거리가 존재한다.
<예(例)>
욥기에서 전개되는 2가지 줄거리는 욥기에서는
⑴ 지상(地上)의 이야기와
⑵ 천상(天上)의 이야기가 교차(交差)되고 있다.
◯ <이야기의 힘>
“각 사람이 단순한 말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하라. 이것은 교회 안으로 가져올 수 있는 유쾌한 모든 음악의 악기들보다 영혼에게 더 큰 위로와 기쁨을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들의 마음속에 오실 것이다. 그대들이 그대들의 성실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수단을 통해서이다.”(교회증언 7권, 195)
◎ 인생은 수많은 줄거리들이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며, 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늘의 줄거리와 땅의 줄거리가 동시에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월요일(9월 27일)
<어디에서? 어떻게?>
▣ 기자(記者)가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이를 일컬어 육하원칙(六何原則)이라 한다.
육하원칙(六何原則)은 기사문(記事文)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여섯 가지 요소를 말한다.
여섯 가지 요소는 누가(who), 무엇을(what), 언제(when), 어디서(where), 왜(why), 어떻게(how)이다.
▣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경과와 결과가 있듯이
이를 언어와 문서로 기록할 때 정확한 사건을 전달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육하원칙을 기자가 배경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본 사건의 결론에 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어느 잘못에 대한 실수를 결론만 간단하게 기록하면 아주 나쁜 사람으로 죽일 사람이 되지만,
기자(記者)가 그 잘못을 어떠한 배경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배경 설명을 잘하면 독자들은
그 잘못한 사람을 관용하게 보아주기 때문이다.
이 처럼 배경은 이야기에 현실성을 불어넣고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룻기 4장1~2절에서
보아스는 자신의 법률적인 문제를 집이나 베들레헴 성주의 집이 아닌 성문으로 가져갔다. 왜일까?
그 이유는 고대(古代)에 특히 근동지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공장소가 바로 성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는 하나의 중요한 법적인 요소를 덧붙이고 있다.
배경은 줄거리가 전개되는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이야기의 배경이 차량 안이나 공항이라면,
배경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행동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예(例)>
⑴ 다윗과 사울과 사울의 이야기에서
배경은 다윗이라는 뛰어난 인물을 부각시킨다.
그는 자신이 사울에 의해 제거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사울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한다.
이런 사실은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⑵ 요셉 이야기에서
배경 역시 하나의 기회를 그리고 있다.
요셉은 용모가 뛰어나고 힘 있는 위치에 있다.
주인의 아내는 그에게 빠져 있었고 그들은 단둘이 집안에 있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이 요셉도 이런 기회를 거부함으로써 순결한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다.
⑶ 그러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배경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화자(話者)의 관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는 화자의 관점을 통해 전개되는데,
그것은 보통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지만 간혹 정보를 누락시키기도 한다.
특히 세속적인 이야기에서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성경 기사에도 관점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성령에 의한 영감의 기록이며, 하나님의 진리임을 믿어야 한다.
◯ <이야기의 맥>
“누구나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단 한 절을 읽을지라도 거기서 유익한 사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따금 하는 연구나 단편적인 연구로서는 성경의 가장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가 없다. 성경을 급히 또는 부주의하게 읽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큰 진리 체계가 깨우쳐지지 않는다. 진리의 보화는 대부분 표면 아래 깊이 파묻혀져 있으므로, 꾸준한 탐구와 끊임없는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진리들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사 28:10)씩 찾아 모아서 하나로 크게 만들어야 한다.”(교육, 123)
◎ 현실과 역사(歷史)를 잘 묘사(描寫)하거나 기록 할 때는 배경 설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성경 이야기의 배경을 통해서 인물들의 행동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화요일(9월 28일)
<승리(勝利)에서 “암흑기(暗黑期)”로>
▣ 과거(過去)를 지나 현재에서 과거를 보면 참으로 답답함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과거를 본 다음 과거의 전철(前轍)을 더 이상 밟지 말라야 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과거가 반복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순환(循環)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哀惜)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 된 일들에서 교훈을 삼고 반복하는 누(累)를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그 한사람이 씨족과, 부족(部族)에서 민족(民族)과 국가(國家)로
축복을 약속하셨고 보호하셨고 함께하시므로 의식주(衣食住)는 물론 건강과 질병과 외부의 어떠한 공격에서도
보호(保護)해주시고 도와주셔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셨다.
즉 전능하신 능력의 그늘아래에 있을 때는 평안하고 승리를 보장 받고 살았다.
그러나 전능자인 주인을 망각(忘却)하고 자신의 능력과 이방인들의 행습(行習)에 눈을 돌려 동화(同化)하고,
개인의 편의에 융화되고, 주변문화와 타협해갔을 때 즉 영적(靈的)인 쇠태(衰態)의 결과는
선택받은 선민(選民)들이 식민지의 지배생활로 전락(轉落)되어 암흑기의 삶을 살게 된 것을 보면서
이는 하나님의 벌(罰)주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이라는 것을 성경과 역사를 통하여 볼 수가 있다.
▣ 컵 속에 깨끗한 물이 가득 차 있을 때에는 깨끗한 물로 가득차이는 그 자체이지만,
물이 없는 빈 컵에는 공기(空氣)가 물대신 가득 찰 수밖에 없듯이,
우리 인간의 마음에도 나의 주인의 생각이 가득차 있지 않는 마음에는
그 공간에 세속(世俗)의 사단의 미끼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선민(選民)들에게 그토록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버리고 이방인들의 행습을 하나둘씩
받아들이다가 차츰 통혼(通婚)을 하고 더 나아가 우상숭배까지로 전락되어 하나님을 버리는 결과로 인하여
스스로의 불행(不幸)의 길을 선택하여 식민지로의 지배와 뼈아픈 고난의 삶을 자초한 것을 알 수가 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출애굽과 광야의 순례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경계에 두 번째 이르게 되었다.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그들은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기 직전이었다(수 3:16~17).
그 기적(奇蹟)은 출애굽 때에 홍해를 건넜던 역사의 재현이었다(출 14장).
“이 기적(奇蹟)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계속적인 임재와 보호에 대한 보증이요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일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통하여 그들을 위하여 일하시리라는 증거였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와 같이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인근 민족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공포심을 증가시켜 이스라엘로 하여금 쉽고도 완전하게 승리할 길을 준비해 주시고자 하심이었다.”
(부조와 선지자, 484)
◯ 가나안 정복은 여호수아의 군사 전략이나 이스라엘의 각고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가나안 도시 국가 거주민들에 대한 승리는 단지 하나님의 권능의 개입에 의해 성취되었다.
이스라엘이 순종하면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고, 이스라엘이 자신의 힘에 의지하면 그들은 영락없이 실패하였다.
여호수아와 원로들이 죽은 이후에 약속의 땅의 일부는 여전히 가나안 인들의 지배하에 있었다(삿 1:27~28).
그러나 이스라엘의 비전이 위축되자 그들의 믿음도 축소됐던 것처럼 보인다.
약속의 땅 전체를 그들의 소유로 바라보는 대신에 그들은 생계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품고 있는 큰 비전과 이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그 이후의 몇 백 년을 이스라엘의 “암흑기”라고 부르고 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염두에 두고 계신 큰 그림을 잃을 경우 작은 것이 큰 것을 대신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국가로서의 관점을 잃고 부족주의로 전락해 버렸다.
사사기를 보면 부족과 씨족들이 심심치 않게 대립한다.
종교적 행위들은 개인의 편의에 융화되고, 주변 문화와 타협해 갔다.
사사기의 저자에 따르면 이런 현상의 원인은 그 땅에 사는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 때문이었다(삿 3:3~7).
이런 영적 쇠퇴의 결과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의 식민지배 → 해방 → 우상숭배 그리고 다시 식민지배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교과 14)
◯ <이야기의 틀>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은 성경 구절을 그 전체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는 동시에 그 부분적인 관계를 알아내도록 배워야 한다. 그는 성경의 중심 주제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 목적, 대쟁투의 시작과 구속 사업의 기원에 대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 그는 주권을 다투고 있는 두 가지 원칙의 성질을 이해하고, 역사와 예언의 기록을 통하여 그 큰 종국에 이르기까지 그 원칙들의 활동을 연구해 보아야 한다. 이 투쟁이 인류 역사의 갈피마다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이 어떻게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정신 중의 하나를 나타내게 되는지, 그리고 자기가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이 대 쟁투의 어느 한 편에 스스로 참여하는 자로 결정되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교육, 190)
◎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의 비전을 바라볼 때는 승리(勝利)하지만,
비전(Vision)을 놓치고 자신의 힘에 의지할 때는 실패(失敗)할 수밖에 없다.
수요일(9월 29일)
<왕(王)들에 대하여>
▣ 왕들의 호칭(呼稱)을 살펴보자.
황제(皇帝), 대왕(大王), 왕(王)등의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구분이 되어있다.
국력이나 힘의 상징으로 호칭이 다르게 불리 운다.
일본의 천황(天皇)이란 어떤 의미 인지 알고들 호칭을 하고 있는지?
일본의 천화호칭이 왜 지금도 스스럼없이 불리워지고 있을까?
중국에서의 황제호칭과 유래를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천황이나 황제란 호칭을 왜 사용하지 못했을까?
▣ 이 세상에서 아무리 거창한 호칭을 사용한다 해도
하늘 보좌위에 계시는 만왕(萬王)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위에 있을 인간들이 있을까?
온 우주만물(宇宙萬物)을 창조 하시고 운행하시며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보다
능력이 있는 인간들이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참란(僭亂)된 죄를 범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 다,
저희는 부패(腐敗)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1)
▣ 하나님께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고, 계속 순종하면 더 많은 것이 약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의 문화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매우 낯선 통치 체제를 보았다. 모든 나라에 왕이 있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행위와 지도력을 계승하지 못하고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삼상 8:3)한 사실과 결부시켜,
이스라엘의 부족장들은 한 왕을 세울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4~5절).
사무엘은 이런 결정을 기뻐할 수 없었지만 여호와께서 그 일을 승인하라고 말씀하셨다(7절).
◯ 사무엘은 베냐민 사람 사울을 왕으로 기름을 부었다(삼상 10:1).
사울은 기브아에서 통치를 시작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예견하신대로 왕의 일이 순탄치는 않았다.
부족 간의 긴장은 계속되었고,
주변 국가들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존재마저 위협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게다가 새로운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삼상 15:3, 8~9).
그 결과 하나님은 마침내 사울을 포기하셨다.
◯ 그 뒤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예상대로 사울은 전쟁 영웅 다윗에게 권력을 순순히 넘겨주지 않았다.
이후 20년 동안 다윗은 언제나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망했을 때, 이스라엘 역사는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삼상 31:1~6). 다윗은 우선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고, 7년 후에 전체 이스라엘의 왕에 올랐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했다.
그의 군사 정책은 성공을 거두어서 영토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린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생을 마감했다(삼하 5:4, 왕상 2:10~ 11).
다윗의 통치는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게 큰 승리와 잘못된 선택,
그리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뒤섞여 있는 역사였다.
다윗의 왕위는 솔로몬이 이어받았으며 그 역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왕상 11:42).
솔로몬은 용사나 정복자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왕상 3:3~13).
그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였고, 효율적인 행정 구조로 이스라엘을 조직하고 다스렸다.
하지만 말년에 여호와를 배반하고 후궁들의 이교적인 관습을 좇았다(왕상 11:1 ~8).
◯ <이스라엘의 실패>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영에 대한 희망을 갖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인도되어야 했다. 죄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국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 당신의 사업을 옹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심을 상실하였다. 그들은 참 평화를 찾기 전에 그들이 범한 바로 그 죄를 알고 자복해야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614)
◎ 이스라엘은 왕이 통치하는 이방 국가들을 부러워했다.
왕 중에 왕이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에 실패함으로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목요일(9월 30일)
<르호보암의 어리석음>
▣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이며 세자이다.
기원전 975년에 그에게서 열 지파가 반역하고 떠났다.
솔로몬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의 시대에 있었던 완력에 가까운 행정적 접근, 강제노역, 실험적인 종교다원주의는
아들 르호보암의 통치 초기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 주었다.
▣ <르호보암의 배경과 인격>
“솔로몬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예언한 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택한 후계자 곧 르호보암의 마음을 준비시키고자 갈망하였으나 그의 초기 교육을 너무나 등한히 했기 때문에 아들의 마음을 선하게 꼴 지울 수 있는 감화를 전혀 끼칠 수 없었다. 르호보암은 암몬 사람인 그의 어머니로부터 우유부단한 성격의 특징을 물려받았다. 때때로 그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하였고 상당한 번영을 누리도록 허락되었으나 확고부동하지 못함으로 인해 마침내 어려서 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던 악한 감화에 굴복하고 말았다.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들과의 결합으로 인해 빚어진 무서운 결과가 르호보암의 잘못된 생애와 그의 최후의 배도 가운데 나타났다.”(선지, 88)
▣ <두 그룹의 권고>
“만족을 얻지 못한 르호보암은 자기가 청년시절과 장년의 초기에 교제하던 젊은이들을 향하여 묻기를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왕상 12:9). 젊은이들은 그가 자기 신하들을 엄격히 다루어야 하며 처음부터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간섭할 경우에는 참지 않겠다는 것을 그들에게 분명하게 밝히도록 제의하였다.”(선지자와 왕, 89)
▣ <왕국의 분열>
“르호보암의 경솔한 말로 인해 야기된 불화는 회복할 수 없는 것임이 판명되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분열되어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하부 혹은 남방 유다 왕국을 이루어 르호보암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고 북방의 열 지파는 이스라엘 왕국으로 알려진 독립 정부를 구성하여 유지하게 되었는데 여로보암을 그들의 통치자로 삼았다. 그리하여 그 나라의 분열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 일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왕상 12:15).”(선지, 91)
▣ <르호보암의 종말(終末)>
“백성들은 아직 하나님의 형벌을 멸시할 만큼 그런 배도의 지경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시삭의 침략으로 입은 손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고 한동안 스스로 겸비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고 고백하였다.”(선지, 95)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였고 유다에 선한 일도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노를 돌이키사 다 멸하지 아니하셨더라.”(대하 12:6-12).”(선지, 95)
“그러나 압제의 손길이 물러가고 나라가 다시 번영하게 되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다시 우상숭배로 되돌아갔다. 그들 중에는 르호보암왕 자신도 끼어 있었다. 그에게 내린 재난으로 겸비하기는 하였으나 이 경험을 그의 생애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치고자 노력하신 교훈을 잊어버리고 르호보암은 자기 나라에 형벌을 초래한 죄악에 다시 빠져 들어갔다. 왕이 “마음을 오로지하여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함으로 악을 행하였”던 불명예스러운 세월을 보낸 후에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비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하 12:14, 16).”(선지, 95-96)
◯ <르호보암의 실패>
“만일 르호보암과 그의 경험 없는 모사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더라면 행정부의 단호한 개혁을 바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겜의 회집 중에 그들에게 이르러 온 호기에 그들은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생각하기에 실패함으로 대다수의 백성에게 끼칠 수 있었던 그들의 감화를 영원히 약화시키고 말았다.”(선지자와 왕, 90)
◯ 솔로몬의 조세정책과 강제노역제도로 인해 불만이 극에 달해 있던 백성의 지도자들은 르호보암의 태도를 보고 앞으로 다윗 왕가에 충성할 것인지 아니면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독립할 것인지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흩어지고 있는 민심을 하나로 묶기 위해 유화책을 쓸 것인가 아니면 강경책을 쓸 것인가의 기로에서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소장파의 의견만 따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 단일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열된 이후에 각자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예배와 희생과 찬송의 중심이 유다에 있음을 보고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1세는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고 벧엘과 단에 각각 하나씩 제단을 세워 예배의 장소로 삼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갔다. 이후 2백 년 간 이스라엘은 극도로 불안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온전한 심령은 아니었을지라도 일부 왕들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왕들은 완고하게 선지자의 음성을 거절하였다. 왕조가 수시로 바뀌고, 정치적 암살이 자행되었다. 정국이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여로보암 1세로부터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마지막으로 다스렸던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20명의 왕이 교체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722년 사마리아는 앗시리아 군대에 포위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나 국경 아래의 사정이 더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윗 왕조는 유지되었지만, 그의 후손들이 모두 조상의 믿음을 계승한 것은 아니었다.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아와 같은 왕들은 여호와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유다 전체에 회개가 이르러왔다. 왕들의 노력에는 유다의 특별한 사회적 영적 필요와 정황에 따라 권면하는 선지자들의 지원이 있었다.
◯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다. 지도자들과 수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군주제 “실험”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 이스라엘이 원했던 왕조는 몇 백 년을 못 버티고 모두 멸망하였다.
이런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나라와 메시야를 소망하게 되었다.
◯ “여호와께서는 성령의 영감으로 모세에 의해 기록된 거룩한 역사의 철학을 연구하도록 우리 모두를 부르신다. 지상에 세워진 첫 번째 가족은 말세에 이르기까지 존재할 모든 가족들의 모본이다. 역사 속에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위해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 계획은 쉽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성화된 영혼은 지구 역사의 시작과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생각과 의도를 배우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며, 모든 과정을 이끄는 동인(動因)이시고, 인류의 모든 정결과 향상의 기원이 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원고, 184)
◯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여기까지 전진한 모든 발자국을 따라 여행해 온 우리의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볼 때에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보면서 놀라움과 인도자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로 가득 찬다. 우리는 주님이 과거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방법과 그분의 가르침을 잊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신뢰를 주님께 둔다면 우리는 지금 강한 백성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강력한 진리를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162)
<초점(焦點)>
성경은 인간을 통하여 인간의 삶에 필요한 이야기들로 기록하였다
한 인물을 통하여 주어진 상황과 배경을 통하여 행동하고 반응한 역사의 이야기를
인물과 구성과 관점과 역사적 배경들을 우리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기록함으로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게 되는 어려환경과 여건에서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할 때 감춰진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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