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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救贖(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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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9-02 16:30 조회5,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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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9월 4일(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8분

제10과
<유대인과 이방인(異邦人)을 위한 구속(救贖)>

<기억절(記憶節)>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로마서 9:18).

▣ <로마서 9장(章) 요약>
Ⅰ.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면에서 특권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은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로마서 9:1-5)
Ⅱ.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폐(廢)하여진 것은 아니다.
그 특권은 약속으로 난 자를 따라 양도(讓渡)되었다. (로마서 9:6-13)
Ⅲ. 혈통을 따라 양도하지 않았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겠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당신 마음대로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다.
진흙이 좋으면 귀히 쓸 그릇을 만드신다. (로마서 9:14-23)
Ⅳ. 그리고 이 원리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니 약속을 따라 남은 씨가 되도록 믿음으로 자기를 지켜야 한다. (로마서 9:24-29)
Ⅴ. 행위를 쫓아간 이스라엘 사람은 실패했고,
약속을 따라 믿음을 좇아간 이방인은 도리어 의(義)를 얻었다. (로마서 9:30-33)

<요점(要點)>
우리가 약속의 자녀라면 우리는 우리의 공로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마련하신 하나님의 대비책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분의 계획에 협력해야 한다.

일요일(8월 29일)
<바울의 짐>

▣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 유대인이 왜 그렇게 전반적으로 복음을 거절했을까?
복음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에게 분명한 구원(救援)을 가져 오는 것이라면,
이 구원의 후사(後嗣)들 가운데서 왜 그분의 택함을 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을 찾아 볼 수가 없는가?
구원의 좋은 소식이 이스라엘에게 한 약속들의 성취라면,
그 소식은 특별히 그것을 받을 자들의 호응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그들 중 대부분이 복음을 혹독하게 반대했다.
바울은 비록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우선적으로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로마서 1:16; 2장10절)을 강조함으로써,
이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위한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 분이며 (로마서 2:11),
특별히 유대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강조 했다. (로마서 9:17-24)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이 구약의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입증하는데
로마서의 한 장(章)을 모두 할애하였다. (로마서 4장)

바울은 먼저 동족(同族)에 대한 사랑과 슬픔을 확인한 (로마서 9:1-3)후에
그들이 거절당한 이유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천명(闡明)한다. (로마서 9:6-13)
또한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님편의 어떠한 불공정함도 없다(로마서 9;14-29)
잘못은 그들이 스스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거절한데 있다. (로마서 9장30절-10장21절)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상태가 가망이 없는 것으로 묘사 하지 않는다.
그는 계속하여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의 구원에 대하여 (로마서 11장1-10절),
또한 이방인을 받으심에 대하여 (로마서 9장11-22절)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영광에 대한 증거라고 말한다. (로마서 9:33-36)
<본교 성경주석(한)11권 703-704p>

▣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어떠한 고난도 자기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담대하게 외친 그가 로마서 9:1-2절에서 어찌 자기 속에 큰 근심과 고통이 있다고 고백을 하면서 적극적이던 사람이 갑자기 소극적인 고민의 말을 하고 있을까를 유의해서 살펴볼 때 로마서 8장에서는 “믿음의 의(義)의 내적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의 특징과 활동을 말하고 있으며, 로마서 9장에서는 “믿음의 외적(外的) 상태”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역사(歷史)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바울은 개인적인 요소가 아닌 민족적, 사회적인 요소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즉 로마서8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할 때였고”, 로마서 9장에서의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고백 할 때는 “동족 이스라엘의 모습을 바라볼 때 엿 던 것이다.”
로마서 9:4-5절에서 볼 때 이스라엘은 분명히 여러 가지 특권을 가졌다.
(① 양자(養子)됨. ② 영광(榮光), ③ 언약(言約)들, ④ 율법을 세우심, ⑤ 예배(禮拜), ⑥ 약속(約束)들, ⑦ 조상들도 그들의 것, ⑧ 육신(肉身)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태어나심, ⑨ 만물위에 계셔서 세세토록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이 되심.)등등
그러나 그들이 특권을 가진 만큼 축복을 받지는 못했다.
바울은 로마서 9:3에서 동족에 대한 구원받지 못할 안타까움에서 동족의 구원이 자기의 구원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의 제한 이 없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피력 하는 것이다.

◎ 바울은 복음을 거절한 동족에 대한 마음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과 이스라엘의 실패 속에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음이 분명했다.

바울의 논리에 따르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이 완전히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위해 일하게 하실 남은 무리들을 여전히 갖고 계셨다.
남은 무리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남은 자들을 선택해 오셨던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었다.

(1)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의 후손 모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이삭의 자손만을 선택하셨다.
(2) 하나님은 이삭의 후손을 모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야곱의 자손만을 선택하셨다.
중요한 것은 유업과 조상이 구원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가 적자(嫡子) 이고, 적통(嫡統)이며, 남은 교회의 신자일 수도 있지만, 언약 밖에서 멸망할 수도 있다. 누가 “약속의 자녀”인지는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로마서 9:8).

◉ <제한(制限)이 없는 구원(救援)>
“그리스도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영혼에게 미치기에 풍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큰 선물이신 분을 받아들일 사람의 수효를 초과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제한이 있을 수 없다.”(시대의 소망, 565)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세상을 구원하는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월요일(8월 30일)
<택(擇)함을 입음>

▣ <미리 정(定)하셨으니>
헬라어 “프로오리조(proorizō).” “사전에 구분하다”
이 단어는 사도행전 4장28절에서 “예정하신”으로 번역되었고,
고린도전서 2:7에서는 “미리 정하신”이라고 번역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미리 안자들을 미리 정한 것이다.
인간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歷史)의 무대에 오를 각 세대의 사람들을 미리보고
알았을 때 ,즉시 하나님의 예지와 구원받을 모든 사람을 미리 정하실 결정을 결부시켜 생각했다.
하나님은 인간 가족의 모든 구성원을 구원하는 목적(目的)외에 다른 목적을 가진 적이 결코 없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딤전 2:4)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한다.” (벧후 3:9)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에스겔 33:11)
예수그리스도는 친히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계시록 22;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그러나 모두가 복음의 초청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 22절14절, 20장16절 참조)
구원은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반대하고 그에 저항하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예지(豫知))과 미리 정하심(예정(豫定))은 결코 인간의 자유를 배제하지 않는다.
바울이나 다른 어떤 성경 기록자도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구원받도록,
다른 사람은 버림 받도록 예정했다고 주장 하지 않는다.
이 구절의 목적은 실제적인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고난당하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구원이 하나님의 수중에 놓여 있고,
그들을 위한 그 분의 영원하고 변치 않는 목적에 따라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있음을 확신 시키고
위로하고자 한다.
물론 구원은 그들의 견인불발(堅忍不拔)에 달려있지만 (히브리 3:14절 참조 고린도 전서 9:27절),
그러나 이것이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아니다. <본교 성경주석(한)11권 694p>

▣ 하나님은 존엄하신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그가 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신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제쳐 놓여지므로 그들이 왕이나 지도자도 없이 온 세상 방방곡곡으로
흩어지게 된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경고(警告)를 준다. (로마서 9장-11장)
하나님께서는 그렇게도 유대인을 위해 간곡히 말씀 하셨지만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義)를
구(求)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셨다. (로마서 9:32).
인간은 스스로의 의(義)를 세워 보려고 하나 그것은 헛수고이다.
인간은 다만 하나님의 의(義)를 받을 따름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도 그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옆으로 밀어 놓으셨는데
하물며 우리들이 그의 뜻을 순종치 않을 때 우리를 그냥 두시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항로(人生航路)의 길잡이이가 되어 주시도록 간구(懇求)하여,
우리의 일생에 암초(暗礁)에 걸리지 않도록 하자. 유대인은 우리에게 다시없는 큰 교훈을 준다.

▣ <예정론(豫定論)과 믿음의 의(義)>
바울이 동족(同族)의 죄악을 들먹일 때면 언제나 애매한 표현을 썼다.
로마서 9:6절에서도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廢)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문장 전체를 보면 이방인(異邦人)이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특권들을 폐(廢)한 것인가? “그러나”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혈통을 따라 양도(讓渡)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받아 들여 약속(約束)이 성사됨으로 양도(讓渡)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6절),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7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 니라. (8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7:6-7에서 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들을 내세워 자기 민족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9장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그 축복을 무조건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라야 약속의 자손이라는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역사에서 이스마엘이 혈통적 장자(長子)라도 사람의 계획(행위의 의(義))에 태어났음으로 후사(後嗣)가 되지 못했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내년 이때에 태어나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에 태어났음으로 후사(後嗣)가 되었다. 또 이삭의 자녀도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약속이 있었으므로(창세기 25:23) 그 약속 때문에 작은 자가 영적(靈的) 후사(後嗣)가 되었다.
또 다시 야곱도 그 많은 자녀 중에서 유다가 약속을 따라 후사가 되었으므로 그들을 유대인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니 그들이 혈통의 무조건적인 특권을 주장할 수가 없다.
로마서 9:9절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믿는 것이 혈통보다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바로 성경 말씀인데, 성경 말씀이 이렇게 중요한 약속인 것이다.
이 말씀을 미리 하셨다는 것이 바로 예정이요, 이 예정들을 받아들임으로 후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 사회의 상속제도에서도 볼 수 있는데 혈연(血緣)의 특권이 중요하지만 유언(遺言)에 합당한 조건이 더 효력이 있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 되는 축복은 약속의 효력을 통해서 상속된다.

◉ <하나님은 편애(偏愛)하지 않으심>
“만일 에서가 장자로서의 축복을 그 아버지에게서 받았다하더라도 그의 번영은 하나님께 로부터만 오는 것이어서 에서의 행동거지에 따라 형통이나 혹은 불행을 주셨을 것이다. 만일 그가 의인 아벨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한다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가인과 같이 하나님과 그의 명령을 존중하지 않고 그 자신의 타락의 길을 따른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가인처럼 버림받을 것이다.”(살아남는 이들, 15)

◉ 어떤 역할을 맡기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분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이 구원받도록 선택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화요일(8월 31일)
<신비(神秘)>

▣ 사도 바울의 주장을 보자.
피조물에게 창조자는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다.
로마서 9:14-18절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한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의 운명을 마음대로 예정하시더라도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4절)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시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긍휼히 여기시거나 완악하게 하시거나, 택하시거나 버리시거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렇다고 “혹 네가(듣는 자) 내게(말 하는 자)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19절)라고 반문하겠느냐?
당신이 다 주장하시고는 자율권도 없는 우리를 죄짓는다고 허물하십니까? 하고 하의하겠느냐?

그러나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20절),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1절) 라고,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강조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에 눌려 인간의 인격과 의지는 아무 역할을 못한다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예정론도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의 원리에서 이해(理解)되어야 한다. 먼저
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진흙덩어리처럼 토기장이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래서 3차원의 믿음(4:3 참조),
3단계의 신앙(6:3 참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의지(예정)에 전적으로 순복한다.

⑵ 사람 자체가 근본적으로 속절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3:23)
스스로 선택해 달라고 요구할 자격은 원래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⑶ 한사람이라도 택함을 받는다면 그것은 전적인 은혜이다.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두지 아니하셨다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라
함과 같으리라.” (29절)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특별한 은혜로 남은 씨를 지정하지 않으셨다면
모두가 소돔과 고모라 같이 완전히 멸망(滅亡)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들을

⑷ 하나님께서 예정하시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절대로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겠다고 예정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여

⑸ 사람이 구원 받을 기회를 얻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순복하는 대신에,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버리느냐고 항의한다. 이때 바울은
“ 이 사람이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움을 받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0),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 (21절) 라고 반문한다.

◉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있음>
“바로의 경우에 있어서 그 일은 어떠했던가?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의 현현 가운데서 빛이 반복해서 주어질 때마다 그 말은 되풀이된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기로 거절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고 하나님의 영에 의한 감동을 덜 받게 되었다.”(교회증언 5 권, 119)

◉ 우리는 여전히 자연의 신비에 둘러 싸여 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일은 어떻겠는가? 그분이 하시는 일과 펼치시는 계획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고 높다.

수요일(9월 1일)
<암미 : 내 백성>

▣ ⅰ<로 암미>
히브리어로 “로 암미(Loʹ aʹmmi)”는 “내 백성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이 이름이 고멜의 간음(姦淫)에 대한 호세아의 최종적인 인정,
곧 선지자가 이 아이는 자기 가족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경우이든 그 아이에게 주어진 이름은 북방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상징했다.
<본교 성경주석(한) 8권565p>

ⅱ<암미>
“암미”는 문자적으로 “나의 백성” 이라는 뜻이다.

▣ 바울은 롬 9:25에서 호 2:23을, 26절에서 호 1:10을 인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결혼을 통해 다른 신을 좇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셨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의 이름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와 심판을
상징하였다.
로암미라는 셋째 자녀의 이름은 문자적으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호 1:9).
그러나 이 와중에서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신 후에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거짓 신들을 제하시며,
그들과 언약을 맺을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호 2:11~19 참조).
그 때 로 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이 암미, 즉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의 시대에 암미는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었다(롬 9:24).
얼마나 분명하고 강력한 증거인가! 복음은 처음부터 온 세상을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가 이 부르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 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 14:6).
바울의 시대나 고대 이스라엘의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구원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
<교과 142p>

▣ 인간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은혜로운 예정에 감사할 뿐이다.
이러한 섭리(攝理)하에 오래 참으심으로 만든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중 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4절),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로암미, 호세아 1:9)를 내 백성이라 (암미, 호세아 2:1), 사랑치 아니한 자를 (로루하마, 호세아 1:8), 사랑한 자라 (루하마, 호세아 2:1) 부르리라. (25절), 너희는 내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함과 같으니라. (호세아 1:10절 2:23절). (26절)

유대인도 구원 받을 그 예정 속에 들어 있지만 이방인 중에도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이 예정의 특권 속에 들어 있다. 그것이 호세아 예언에 이미 언급되어 있는데, 이름들의 뜻이 그것을 나타낸다.

로마서 9:27-29절과 이사야 1:9절(참조) 이 구원의 예정은 이스라엘에게 해당될지라도 민족적으로가 아니고 그 중에서도 남은 자에게서 성취되어, 결국은 방법적 예정에 부합하는 자만 구원을 이루시고 필하게 될 것이다.
이 방법적 예정에 합당한 자가 없다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소돔과 고모라 같이 완전히 멸망당하고 만다는 말이다. 소돔에는 예정에 맞는 자격자(남은 자)가 10명도 없어서 그렇게 망하게 된 것이다. (창세기 18:32).
여기에 [남은 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성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말이다.

◯ <이야기를 요약 한다면.>
우리가 진흙 덩어리 일진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기 부인(否認)이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예정이 믿는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므로, 감사하고 순복해야 하고, 자만하거나 반대로 낙망 하지 말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하는 것이다. (빌 2:12)

하나님께서 단체나 개인을 미리 택정하시는 경우가 혹 있지만, 이런 경우는 복음의 관리자로서,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 되게 하려 함이” (17절) (사도행전 9:15 참조)며, 개인적인 구원은 그 분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여부에 따라 결정하기로 예정하셨다. 발람은 선택 받은 선지자 였으나 세속적 부귀를 뿌리치지 못하여 멸망당했고, 사울왕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으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버림을 받았고, 예수님과 바울의 제자 중에도 구원에 들어 왔다가 떠나간 자 들이 여럿 있었다. 그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14)고 한다.

○ 에스겔 33:13-16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다만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죄악을 좋아하는(1장 후반 “좋아서가기를 싫은 천국” 참조) 가망 없는 악인들은 가능성이 있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 “완악하게”도 하시고 또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내가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로마서 9:13; 말라기 1:2-3)고도 말씀하신다.(예지 예정). 그러나 개인의 구원에 관해서만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도록 예정하셔서 각자의 의지의 능력을 활용하도록 호소하신다.

○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이스라엘은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실패 속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희망의 씨를 남겨두셨다.

◉ <단 한 가지 조건(條件)>
“구원에 필요한 큰 진리는 백주(白晝)와 같이 명백히 드러났나니 누구든지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뜻 대신에 자기 자신의 판단을 따라 행하는 자들 외에는 아무라도 잘못되거나 저희의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정로의 계단, 89)

◉ “로 암미”였던 우리가 “암미”가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리라는 그분의 약속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목요일(9월 2일)
<걸려 넘어짐>

▣ (로마서 9:30-33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로마서 9:30~32).
그런즉 아브라함의 혈통이라고 자랑만 하겠느냐? 아니다.
보라! 이방인은 의(義)를 얻고 이스라엘은 의(義)를 못 얻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된 혈통만 알았지, 약속의 맥을 따라 메시야가 왔고, 예정하신 대로 그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라는 돌에 부딪힌 것이다.
이런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의(義)에 이르고 이런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돌에 걸려 넘어지듯 하는데,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 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9:33)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에게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지만, 혈통이나 행위의 의(義)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부딪히는 돌이 된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반석 되시는 예수님에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는 말에도 유의를 해야 한다.
로마서 10장11절에도 같은 말이 나오는데 “믿는 자”와 “부끄러움”을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잇다.

▣ 믿는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여러 관점에서 설명 할 수 있겠지만
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⑵.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⑶. 자기를 부인하고,
⑷. 예수님의 속죄 공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①. 자신에 대하여 겸허하고,
②. 다른 사람에 대하여 자비로우며,
③. 하는 일에 대하여 성실하고,
④. 생활에 대하여는 경건한 것이 아닌가?

▣ 즉 구세주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사람이 남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겠는가?
다투고 얼굴 붉힐 일이 있겠으며, 거짓을 행하고 궁색하게 변명하는 일이 있겠으며,
욕먹고 얼굴 숨길일이 있겠는가?
핍박을 받고 모함을 당하는 일은 있을지언정 부끄러움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주변의 교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서로들 흉보느라고 얼굴도 붉히고, 이것저것 거짓말 하면서 말들도 둘러대며,
욕심 많다고 이웃들로부터 욕을 먹는다.
많은 교인들이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만 다닐 뿐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믿음을 가짜 믿음, 유사(類似) 믿음, 불구 믿음이라 할 수 있다. (로마서 10:1-15)
이런 일들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義)를 모르고
자기 의(義)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義)에 복종하지 아니 하였기” (로마서 10:2-3)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가 깨어지지 않는 믿음, 즉 가짜 믿음을 가진 자는 시온의 바위에 가루가 되어
가장 부끄러운 일,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마태 21:44)

◎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구원의 중대한 요소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생각과 행위를 중요시 여김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원의 반석으로 인정한 이방인들은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
이 교훈은 각 개인의 신앙과 일상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 <믿는 자의 반석이신 그리스도>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견고한 기초 돌이 되신다. 그들은 반석에 떨어져서 깨어진다. 그리스도께 대한 복종과 그분께 대한 믿음이 이곳에 나타나 있다. 반석에 떨어져 깨어지는 것은 우리의 독선(獨善)을 버리고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하게 그리스도께 나아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그분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기초이신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는 일은 역시 믿음과 순종으로 말미암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599)

◉ 우리가 예수님을 인정하면 구원의 반석에 굳건히 서게 되지만, 예수님을 무시하고 지나치려 하면 걸려 넘어지게 된다.

◉ “개인과 한 백성에 대한 택함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택함인데,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 택함을 입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천국의 축복을 누리도록 분명히 택함을 입었다고 생각하면서 종말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계시하는 택함이 아니다. 인간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갑옷을 입도록,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사단이 그의 영혼을 앞잡이로 삼으려고 하는 동안에 모든 거룩하지 못한 정욕을 거스려 싸울 수 있도록 그의 수중에 놓아두신 하나님의 방법들을 사용하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깨어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시험에 들어가는 것을 피해 가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함으로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도록 택함을 입었다. 이것이 성경의 택함이다.”(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453~454)

◉ “인간의 유한한 정신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품성이나 그 사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연구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가장 우둔하고 무지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열심 있고 교양 있는 사람에게도 거룩하신 하나님은 오묘로 가리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지만,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우리는 한없는 자비가 무한한 능력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큼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전능하신 손과 사랑으로 충만한 그분의 마음에 의뢰할 뿐이다.”(교육, 169)

<초점(焦點)>
바울이 유대인들로 인하여 근심을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모두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토기장이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진흙을 빚을 수 있듯이 유대인들의 잘못된 생각들로 인하여 근심을 하게 되며, 이방인들은 부름을 받고 , 유대인들은 거절을 당할 것을 예언 하면서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얻지 못하게 된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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