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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성령의 열매인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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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10-02-10 23:23 조회6,0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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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6분)

기억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연구범위: 마 25:1~13, 눅 16:10, 살전 5:23~24, 딤후 3:1~5, 히 11장

안식일 오후
‘충성’이라는 성령의 열매는 ‘신실함’으로도 불릴 수 있다. 그것은 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목적한 바에 대해 흔들림 없이 굳게 서는 것을 말한다.
충성은 변함없이 믿음을 고수(固守)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동의어로는 흐트러짐이 없이 신의를 지키는 ‘충절’, 믿는 바를 확신하고 정로에 머무르는 ‘지조’, 변경할 수 없는 원칙이나 목적에 대해 충실하는 ‘정절’, 결정한 것에 대해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아가는 ‘결의’(決意) 등이 포함된다.
‘믿음’(faith)과 ‘충성’(faithfulness)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를 믿을 수 있게 해 주는 말할 수 없는 능력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히 11:1) 충성은 이와 반대로 내적인 믿음의 체계 밖에서 활동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의 방식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의 믿음은 충성이라는 행위로 나타난다. 그러한 행위는 우리의 믿음과 행동의 체계를 함께 묶어주는 밧줄과 같다.

핵심본문: 히 11:6

학습 목표
깨닫기: 충성은 '행동하는 믿음'이기 때문에 충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
느끼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을 표현한다.
행하기: 우리 삶의 신실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증거하기로 한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생생한 선물
A.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초하여 우리는 그분의 뜻을 믿고 따른다.
1. 우리의 충성스런 행동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는가?
2. 우리의 불충성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가?
3. 성경에서나 개인의 경험에서 충성스런 행동의 사례를 찾아보라.
a)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어떻게 나타내실 수 있는가?
b) 하나님 백성의 반역으로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언제인가?

II. 느끼기: 신실함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정서적 효과
A. 신실한 행위는 긍정적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면 불신실한 행동의 부정적 효과는 무엇인가?
B. 자기중심적 생각은 충성심을 저해한다. 그러한 생각에 집중할 때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어떻게 위태롭게 되는가?

III. 행하기: 믿음의 시험
A. 충성은 실천함으로 자라나든지 소홀함으로 사라지게 된다.
1. 안식일 준수와 신실한 십일조는 어떻게 충성을 증진시키는가?
2. 시간과 재정의 지혜로운 사용은 어떻게 품성의 계발을 돕는가?

요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충성의 기초이다. 그분을 신뢰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말과 믿음에 있어서 충성을 다한다.

일요일(2월 14일) 하나님은 신실하심(시 89:9)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시 89:8)

다른 성령의 열매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연구할 신실함의 모본도 하나님 자신이시다.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하시기 수억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신실하시다. 그분은 과거에 그러하셨듯이 수억만 년 후에도 변함없이 신실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주목해 보라.
*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멀리까지 미친다. -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시 36:5)
*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확실하다. -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시 89:33)
*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크다. -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 3:23)
*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하늘에 기초를 두고 있다. -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시 89:2)

1.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결과로 우리에게 어떤 축복이 이르러옵니까?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시험을 능히 감당하게 하심
살전 5:23,24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재림의 날까지 흠 없게 보전하심
살후 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우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심
히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신 소망의 약속을 지키실 것임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한 느헤미야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 믿음으로 느헤미야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발아래 꿇어 엎드려 간구하였다. ‘하나님이여, 당신의 회개하는 백성들의 사업을 도와주시고 다시 한 번 힘을 주셔서 황폐한 우리들의 처소들을 재건케 하옵소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에게서 떠나갔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경고의 말씀에 신실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말씀대로 그들을 열국 중에 흩으셨다. 느헤미야가 바로 이 사실에서 발견해 낸 하나의 확신은 그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을 지키는 데에도 꼭 같이 신실하신 분이리라는 것이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3권, 1136)

<부가설명>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당신을 거스를 수 없으시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2:13) 미쁘다는 말이 신실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의하여 성경의 모든 말씀은 확실한 보증을 얻는다. 하나님은 창조로 그의 자녀가 된 이 지구상의 사람들을 당신의 사랑과 신실하심으로 구원하신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이 신실하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봉사와 희생으로 증명되었고, 우리는 마음 놓고 그분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 말한 충성이라고 번역된 말은 헬라어로 "피스티스"인데 믿음, 신앙이라고 번역된 말과 같다. "피스티스"는 성령의 열매이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 아멘.

교훈: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함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고, 거룩함을 입으며, 악한 자에게서 지키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굳게 잡자.

월요일(2월 15일) 불신실함: 말세의 징조(눅 18:8)

1. 누가복음 18:8을 읽으십시오. 여기 예수님의 질문에는 무엇이 암시되어 있습니까?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답: 예수님의 이 질문에서 ‘믿음’이란 말은 곧 신실함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당신께서 재림하실 마지막 때에 신실한 자들이 많지 않을 것을 암시하셨다.

사도 바울은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 3:13)라고 기록하였다. 오늘날 사람들도 모세가 모세오경을 기록할 때나 바울이 그의 서신들을 기록할 때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죄를 짓기가 더 쉬울 뿐 아니라 죄 짓기를 권장하기까지 한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처한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합법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타락한 인간 본성은 자연히 그것을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끊임없이 조장된다. 광고는 우리 자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끈질기게 우리의 시선을 끈다. 자기를 부인하거나 희생할 필요가 무엇이며,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망설일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재촉한다. 우리가 계속 듣게 되는 말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라.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지 않은가?”이다.

2. 디모데후서 3:1~5에서 말세에 있을 특징 중 맨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이러한 성향은 얼마나 공공연하게 표출되고 있습니까?
딤후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답: 바울은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할 것이라(딤후 3:2)고 예언하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점점 더 자아 사랑에 빠져들고 있다.

사람들이 이기적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오늘날의 세대는 사실상 이기심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일등을 추구하라.” “자신을 먼저 챙기라.”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부르짖음이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은 무책임이라는 또 다른 현상을 낳는다. 이 세대는 다음의 성경 구절로 잘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잠 30:11~12)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데, 대체로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의 믿음을 허물려는 사단의 계획
“하나님의 백성이 말세의 위기에 접근할수록 사단은 이들의 믿음을 깨뜨려버릴 가장 효과적인 계획에 대하여 그 부하들과 열렬히 협의한다. 그는 일반 교회들이 그의 기만적인 힘에 의하여 이미 잠들어 버렸음을 본다. 즐겁게 하는 궤변과 거짓 기적들을 통해서 그는 그들을 자신의 지배하에 계속 잡아둘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올무를 놓으라고 그의 부하들에게 지시한다.”(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472)

<부가설명> 예수께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을 때 그 "믿음"이라는 단어는 "피스티스"이다. 갈5:23의 충성과 꼭 같은 단어이다. 오늘날은 지나치게 이기적인 시대이다. 예수를 믿는 신앙도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정신이 지배하는 것 같다. 표적들을 찾아 이리저리 몰리는 것도 결국 이기심이 기초가 된 신앙생활의 행태이다. 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신앙생활을 하기보다는 자기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정신을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고, 목회자들은 이런 민심을 자기의 입지를 위하여 잘 이용하는 것 같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신앙정신은 성경적으로 순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위하시는 길이 가장 자기를 위하는 길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성실한 준행자로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한결같이 말씀 안에서 일상생활이 신앙정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훈: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자기중심적이 된다. 우리는 세속의 물결에 휩쓸리지 말고 이타적이고 책임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자.

화요일(2월 16일) 충성의 모본들(히 11장)

1. 충성의 모본을 보여준 인물들이 대거 나오는 히브리서 11장을 읽으십시오. 이 가운데 세 사람을 뽑아 그들이 시련과 고난과 유혹 중에도 어떻게 충성하였는지 적어보십시오. 즉 그들이 겪은 시련과 고난과 유혹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은 충성을 다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하였습니까? 비록 환경은 다르지만, 히브리서의 인물들처럼 오늘날 우리도 마음에 간직해야 할 원칙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 노아는 비가 오지 않는 시대에 비가 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온갖 조롱과 멸시 중에도 신실하게 방주를 예비하였다.

(2) 아브라함,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약속과 그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나아갔다.

(3) 모세는 택한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맡긴 일을 수행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어떤 시련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하기 쉬웠을지 생각해보라. 감옥에 던져졌던 요셉을 생각해 보라. 약속의 아들을 낳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사라를 생각해 보라. 애굽의 부귀영화에 유혹을 받았으나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택하였던 모세(히 11:25)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때때로 이 사람들을 초인적인 존재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도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죄에 대해 취약하고 의심을 품거나 두려워하거나 타락하기 쉬운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충성을 나타냈으며 그들이 공언한 믿음에 따라 행동했고, 하나님에 의해 쓰임을 받아 놀라운 일들을 행하였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
“아브라함은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졌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순종하’여 그의 고향을 떠나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여행하였다고 드러낸다(히 11:8~10, 창 12:4, 13:18 참조).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산 믿음을 소유했었다는 사실은 그의 순종에 의하여 입증되었다. 그가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이 역동적 믿음의 기초 위에서였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167)

<부가설명>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을 만나본 사람은 하나님께 자기를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신실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충성이라는 말이 "피스티스"인데, 신실하다는 말은 "피스토스"이다. 그리고 맡긴다는 말은 "피스튜오"이다. 같은 무리의 단어이다. "피스티스"는 명사, "피스토스"는 형용사, "피스튜오"는 동사이다. 그래서 "피스튜오"는 믿는다는 말로 많이 번역되었다. 그런데 맡긴다는 말도 같은 단어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맡겨버리는 것이다. 신앙의 선조들의 삶이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버린 삶이었다. 우리는 아직도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자기가 붙들고 불안해하고 있다. 주님 우리에게 완전히 맡겨버리는 믿음을 주십시오.

교훈: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나 끝까지 충성을 다함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다.

수요일(2월 17일) 일상의 삶에서의 충성(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1. 위의 구절에 언급된 원리가 자신의 삶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았습니까? 결국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 것에도 충성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답: 큰 일에 충성하기를 바라고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자들은 큰 일에도 소홀히 하기가 쉽다. 그러나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들은 큰 일에도 충성하기가 쉽다.

“인류의 가장 큰 결핍은 인물의 부족이다. 그 인물이란 매매되지 않는 사람, 심령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죄를 그대로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양심이 그 의무에 충실한 사람, 비록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옳은 일을 위하여 굳게 서는 그런 사람들이다.”(교육, 57)
다음의 용어들은 충성의 구성요소들이다.
믿음직함 - 믿음직함이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 누군가 나를 저버린 적이 있는가? 그때 기분이 어떠했는가? 나에게 신뢰감이 부족했다면 그것은 나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정직 - 정직은 신뢰할만함을 뜻한다. 그것은 내가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훔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정직은 강인한 성품의 중요한 성분이요 매일의 삶에서 실천되어야할 요소이다.
성실 - 성실은 명예를 얻는 규칙과 같다. 만일 내가 성실하다면 나에게는 삶의 가치관이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또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존중해 주는 것도 포함된다. 성실은 품성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이다.
충절 - 충절은 신의(信義)이다. 그것은 누군가 힘겨운 시기를 보낼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을 말한다. 충절이란 우정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충절이 지나쳐 친구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는가? 충절에도 적정선이 있는가? 충절이 지나치면 어떻게 되는가?

작은 일에 충실히 할 때
“생활의 사소한 일이 품성 계발에 끼치는 영향을 바로 아는 사람은 심히 적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에 참으로 하찮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날마다 직면하는 여러 가지 환경은 우리의 충성을 시험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한다. … 작은 일에 충실히 행함으로 큰 일에 충실할 힘을 얻는다.”(부조와 선지자, 222)

<부가설명>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큰일에 충성한다는 말은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그리고 계속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눅16:11)고 하셨다. 여기 "맡기겠느냐?"가 바로 피스튜오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들은 우리 것이 아니다. 세상 재물이나 세상의 것들은 다 의롭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성실하게 잘 취급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영원한 것을 맡길 것이다. 세상 것이기 때문에 소홀히 여겨도 되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주님을 위하여 신실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충성이다.

교훈: 만일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언제나 양심에 충실하고 정직하게 행한다면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충성스런 사람이 될 것이다.

목요일(2월 18일) 끝까지 충성함(마 25:1~13)

우리는 또 다른 대실망(Great Disappointment)으로 고통당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께서 오실 또 다른 날짜를 정함으로써가 아니라, 재림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무 등한히 함으로써 과거에 못지않은 실망을 경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1. 마태복음 25:1~13을 읽으십시오. 신랑을 기다리던 모든 이들이 잠에 빠졌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십시오. 마침내 신랑이 왔을 때 모두 깨어났지만, 이들 중 다섯은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면에서 그와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까?
마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답: 마지막 시대에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를 대표하는 열 처녀들 가운데 다섯은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함으로 낭패를 당했다. 우리는 기름으로 상징된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 열렬한 갈망과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2. 마태복음 24:44~50을 읽으십시오. 주인이 기대했던 것보다 늦게 오리라고 확신한 악한 종은 어떻게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꾸었습니까? 예수님의 오심이 지체되고 있다고 느끼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 줍니까?
마24:44-50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답: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진심으로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갈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물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 날이 더디 오기를 바랄 것이다.

기대했던 일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속히 일어나지 않았으나 갈라디아서 6:9에 기록된 약속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21세기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직면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실 것인가?”가 아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지키실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중요한 문제는 “과연 우리가 끝까지 신실할 것인가?”이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
“악한 종은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견해를 비웃지도 않았다. 그러나 행동과 말로써 또는 마음속으로 주의 오심이 지체되리라고 선언한다. 그는 주께서 빨리 오시리라는 확신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게 한다.”(시대의 소망, 634)

<부가설명> 재림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역사적 사건에서 찾으려는 사상이 아주 강하다. 그것이 결코 잘못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은 역사적 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나는 그 역사적 신간의 현장에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역사의 진행과 함께 일어난다.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것이 예언된 대로 성취될 것은 확실하다. 과거에 성취된 예언으로 우리는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역사적 시간에 나 자신이 영광중에 주님을 맞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종말에 대하여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정말 속히 오신다. 내가 이 세상에서 호흡이 멈추고 잠드는 그날, 그 이튿날 나는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잠을 자는 자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죽는 그 이튿날 재림을 맞을 것이다. 악인은 둘째 부활을 할 것이고 진정한 신도는 첫째 부활을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개인마다 종말이 있고, 그것은 속이 이른다. 그러므로 역사적 종말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 나의 종말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른다. 우리에게 허락된 날은 사실 오늘이라 일컫는 하루 뿐이다. 하루를 성실하게 살면 내일 예수님의 재림을 영광중에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브라함이나 바울이나 베드로나 다 그가 잠든 그 이튿날 예수님을 맞을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에 대해 신실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약속대로 때 맞춰 오실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충성스럽게 기다려야 한다.

금요일(2월 1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별들이 정해진 길을 따라 광활한 궤도를 운행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경륜은 조급하거나 지체되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빽빽한 흑암과 연기 나는 풀무의 표상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노릇할 것을 보여 주셨으며 그들이 4백 년간 거기서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 밝히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4)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맞서서 바로의 거만스런 제국이 총력을 기울여 싸웠지만 헛수고였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다(출 12:41). 이와 같이 하늘의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강림의 시간이 작정되었던 것이다. 때를 알리는 대시계(大時計)가 그 시각을 가리켰을 때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다.”(시대의 소망, 3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가 속한 문화에서 예수님께 충성하려 할 때에 도전이 되는 일들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러한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일로 고투하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 이 문제는 나라와 민족과 지역을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난관이 있어도 말씀에 신실한 삶을 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맡기고 충성할 것이다. 고난이 있을지라도 인내로 극복하면서 회개하면서 주님의 긍휼을 바라고 생활할 것이다.

2. 지난 24시간 동안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은 나의 믿음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습니까, 아니면 믿음을 저해하는 것들이었습니까? 나의 대답 속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까?
* 각 사람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모두가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는 불충성이 되는 경우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되는 것들에 충성을 요구할 때이다.

4. 우리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재림의 긴박성을 인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재림에 대해 잊어버리고 그릇된 습관과 사상의 방식으로 빠져들기가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교회를 다닌 지 오래 된 이들이 어떻게 하면 열정적으로 재림의 약속을 붙잡을 수 있을까요?
* 목요일 부가설명이 대답이다.

5.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충성이 믿음이라는 말과 동일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고, 사람 자신이 종말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으며, 사람에게 허락된 날은 오직 오늘이라는 말 뿐임도 깊이 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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