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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과 퀴즈로 푸는 즐거운 교과공부 (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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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사는이 작성일10-01-13 02:00 조회3,8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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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8분)

기억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연구범위: 시 139편, 눅 15:4~24, 요 15:10~11, 히 11:16.

생각해봅시다
1. 무엇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기쁨을 줄 수 있을까요?
2. 우리는 낙심될 때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안식일오후>

1. 다음 우리교재 안식일오후 란에 게재되어 있는 ‘행복’과 ‘기쁨’의 차이에 대한 내용을 읽고 다음 중 그 차이가 올바로 기술된 내용을 고르시오. (정답 3개)
① 기쁨(희락)과 행복은 본질이 같은 동의어이다.
② 행복과 기쁨은 반드시 어떤 좋은 상황이 발생해야만 얻게 된다.
③ 시편 4:7에는 행복이 기쁨보다 크다고 했다.
④ “더 큰 기쁨”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신뢰할 때 이르러 오지만 행복은 풍성한 추수와 같은 유쾌한 상황의 결과로 이르러 온다.
⑤ 행복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한 계속되지만 희락은 곡식의 수확량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⑥ 행복은 실망을 이겨내지만 내적인 기쁨은 실망감에 압도되어 버린다.
⑦ 행복은 영속적이지만 내적인 기쁨은 일시적이다.
⑧ 행복은 고통이나 쾌락보다 더 깊이까지 파고드는 삶의 즐거움이다.
⑨ 내적인 기쁨은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임하신다는 자각에서 오며 상황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기로 자신을 허락할 때 맛볼 수 있다.
⑩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활동하신다는 확신에서 생겨난다.
(답) ④, ⑨, ⑩
(해설) 행복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얻는 일반적인 즐거운 상태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 희락은 이 상황보다 한 차원 넘어선 것이다. 즉 우리의 주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시고 (시115:3) 관리자이시며(시100:3), 우리를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며(요13:1), 우리의 모든 희노애락을 아시고 계시며(요일3:20), 우리를 위한 보다 큰 계획이 있음 (창22:17; 32:12)을 깨닫는 것이다. 위 문제 중 답이 아닌 것은 출제자가 우리 교재에서 (인간적인) 행복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희락)의 순서를 서로 바꿔 놓은 것이다. 우리 교재를 잘 비교해보시기 바란다.
(시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2. (토의) 성경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졌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토의사례1) “역시 다윗이 가장 기쁨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가 지은 많은 시들에는 ‘기쁨’, ‘감사’에 대한 내용이 대단히 많다.
(시9: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시5:11)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시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시31: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그 외에도 시32:11; 시34:2; 시37:4; 시68:3; 시69:32; 시70:4; 시71:23; 시89:16 등이 있다.
(토의사례2) “저는 스데반과 다른 여러 제자들처럼 기쁘게 순교를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성령의 특별한 기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데반은 죽기 직전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경험은 그리스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이라 볼 수 있습니다.”
(행7:55-56)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구주께서는 스데반을 통하여 사울에게 말씀하셨고 그의 명료한 논리를 논박할 수가 없었다. 그 유식한 유대인은 순교자의 얼굴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반사되어 마치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행 6:15)은 것을 보았다. 사울은 원수들에 대한 스데반의 관용과 용서의 정신을 목격하였다. 그는 또한 그가 고문하고 고통을 준 많은 사람들이 보여 준 꿋꿋함과 그 모든 고통을 기쁘게 감내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어떤 이들이 그들의 신앙 때문에 기쁨으로 그들의 생명까지도 버리는 것을 보았다. 이 모든 일들로 사울은 크게 감명을 받았으며,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라는 거의 부인할 수 없는 확신이 그의 마음에 밀려왔다.“ (행적 115)

3. 여러분의 일상생활 중 어느 경우에 기쁨을 크게 느끼시나요? 경험을 이야기해봅시다.
(토의사례1) “얼마 전에 침례받은 자매가 침례 후에 눈물 흘리며 감격에 겨워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가 침례직후 느꼈던 행복은 일반 사람이 느끼는 행복과는 다른 것이다. 그 간의 모든 죄가 물 밑에서 다 사해졌고, 물밖에 나오면서 새 사람이 되과 동시에 또 이제는 하늘아버지의 합법적인 자녀가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았겠는가. 신앙이란 이러한 감격스런 기쁨으로 매일매일 살아가야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토의사례2) “우리가 천국에 가면 어떤 일을 할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낮잠 자는 것을 좋아하는 한 집사님은 ‘천국에서는 잠을 안 잔다는데 어떤 재미가 있을까요?’라고 하기도 하고, ‘천국에서는 모두가 천국처럼 중성이 되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데 이 또한 재미가 없지 않겠냐는’ 한번쯤은 토론할만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인’일이 천국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예수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로 인해, 온 우주에 걸친 그 분의 깊고 깊은 은혜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공부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로 인해 천국은 지상에서는 누리지 못한 기쁨으로 충만한 하루하루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에는 “밤이 없”다. 아무도 휴식을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데 피곤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신선하고 유쾌한 아침의 기분을 언제나 느낄 것이다.“ (쟁투 676)

일요일(1월 10일) 기뻐하라는 명령(빌 4:4)

1.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은 후 많은 낙심을 하였다.
(답) X
(해설) "바울은 비록 죄수였지만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로마에서 교회들에게 써 보낸 편지들을 꿰뚫고 승리의 곡조가 울린다.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도행적 484)

2. 바울선생님은 기뻐하라고 하는 것을 하나의 명령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답) O
(해설) “많은 신자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로 인해 쓴 감정을 느끼고 화를 낸다. 그 결과로 그들은 영적 생애에 기복(起伏)을 경험한다. 그들에게는 기뻐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성경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 4:4)고 명령하는 것이다.“ (우리교재 일요일 소지 상단)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안에서 얻는 기쁨이 (빌립보서) 편지 전체에 깔려 있다. 빌립보인들은 주안에 근원을 둔, 그와의 교제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기쁨으로 기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본교성경주석 13권 151)

3. 불리한 상황 속에서 기뻐하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하다.
(답) X
(해설1) “사도는 오히려 ‘내가 다시 말하노니’ (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서) 불리한 상황중에 기뻐하는 것이 실행 불가능하다고 하는 모든 이의 제기를 앞질러 제압하려는 듯이 그의 권유를 반복한다...그 어느 것이라도 하나님이 돌보실 수 없을만큼 너무 큰 것(염려)가 없다. 마찬가지로 너무 작아 하나님이 주목하기에 불가능한 것도 없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그에게 내려놓을 수도 있는 근심에 짓눌려 있어야 하는가?” (본교성경주석 13권, 165)

4. 일요일 소지에 나타난 주님을 기뻐하고 영적인 안정을 가질 수 있는 방법 중 올바르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요?
① 우리의 영적인 안정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헌신과 직접 관계가 있다.
②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는 항상 기뻐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부정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③ 그러나 우리가 주 안에서는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그분은 선하시고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④ 그분을 아는 것은 환경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안정감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시의 형식과 운율을 가진 노래의 형태로 기록된 시편들을 암송하고 노래함으로써 하나님에 관한 더 심오한 지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⑤ 그분을 알게 되면 다른 모든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인다.
(답) 답이 없습니다. 모두 옳은 내용입니다.

5. (토의1) 사도바울이 기뻐하고 있는 정신적인 상황을 이야기해봅시다. 사도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들이 사도바울을 기쁘게 하고 있을까요?
(토의사례) “사도바울선생님은 빌립보서 전체에서 성도로서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이 정도의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운 세상일이 있어도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속에 임재하심을 체험함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긴다는 뜻인데 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삶이 아니면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참고)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이 기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곁에 계셨으며, 그분의 임재의 빛은 하늘 궁정의 영광으로 어둠을 밝혔다. 로마에서, 바울은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차꼬를 차고 있다는 것도 잊고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립보서 1장 18절). 그리스도께서 산상에서 하신 바로 그 말씀이, 핍박을 받고 있는 빌립보 교회에 보낸 바울의 기별 가운데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장 4절)는 말로 울려 퍼지고 있다.“ (산상보훈 34)

6. (토의2) 여러분의 경험을 이야기해봅시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도저히 기쁠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요?
(토의사례1) “저는 위기에 처했을 때 엘리사와 그의 수종드는 자 게하시의 대조적인 태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람 왕이 엘리사를 제거하기 위해 엘리사의 성인 도단을 둘러쌌을 때 종이었던 게하시는 어찌할 줄 모르고 난리를 쳤지만 엘리사는 그 성을 두르고 있었던 하나님의 군대의 모습을 이미 보고 있었기에 그는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엘리사같은 영적인 시력이 있다면 기쁜 생활을 매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왕하6:15-17)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토의사례2)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아이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엄마만 있으면 되지요. 그 엄마 안에 모든 아이의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목마른 것도, 배그러나 어린아이에게는 세상에 좋은 것을 다 주어도 엄마 없이는 기쁨이 안됩니다. "엄마는 어린아이의 목자이니 아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로서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도가 행복한 이유는 우리 육신의 어머니같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갈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시37:4)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참고) “우리 자신에게 시련이 되는 그림자로 우리 자신이 걷는 길이나 다른 사람의 길을 어둡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에게는 우리 자신이 찾아갈 수 있는 구세주가 계시고 모든 불평을 토로할 수 있는 동정의 귀를 가지신 분이 계시다. 우리들의 모든 염려와 부담을 주님께 맡겨 버릴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수고가 힘들게 보이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시련이 어렵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권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성품이 어떻든지 간에 온화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으로 형성시킬 수 있다. 산 믿음을 활용함으로 그대들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에서 자신을 구별하여 이 지상 생애에 천국의 분위기를 이룰 수 있다. 이렇게 할 때에 전진하는 매 발자국마다 밝은 햇빛이 비쳐질 것이다. 원수가 흑암으로 영혼을 에워싸려고 노력할 때 믿음을 말하고 믿음을 노래하라. 그렇게 할 때에 그대들은 스스로 빛 가운데서 노래하고 말한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모 233)

7. (토의3) 일요일 소지의 첫 번째 문제 참조 성경절 중 시편 139편은 다윗이 생활속에서 직접 체험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 시편을 읽어보신 여러분은 어떤 절에 감명을 받으셨나요? 이유는 무엇입니까?
(토의사례1) “14절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에 늘 감명을 받습니다. 기계를 만드는 한 기계회사의 간부에게 복음을 전한 바가 있습니다. 불교신자였는데 평생을 기계를 만든 분 답게, ‘인체는 초 정밀기계’라는 극찬을 했습니다. 저는 이 분에게 말했습니다. ‘간단한 기계도 설계를 하고 목형을 만들고 주물을 붓고 가공하고 부품만들어 조립하여야 제품이 나오는데 이러한 초정밀기계가 어떻게 저절로 만들어졌겠습니까? 분명히 우리 신체는 설계자가 있고 관리자가 있습니다‘라고 반문했습니다. 하루빨리 그 분이 주님을 발견하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토의사례2) “한번은 안교반생을 대상으로, ‘우리 신체 중에 어느 기관이 가장 신비스럽냐’고 물어본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안과에 여러번 방문해야 했던 어느 장로님은 ‘눈이 가장 신비스럽다’고 했고 (사람이 눈으로 보는 상이 맺히는 망막주위에 수 많은 혈관이 분포되어 있어 산소를 공급하고 있는 신비를 말하면서), 어떤 분은 500가지 역할을 한다는 알뜰한 만능 화학공장인 간장을, 어떤 분은 신장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신체 중 어느 부위도 신기롭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췌장 같은 것은 작은 장기지만 무시할 수 없는 꼭 필요한 장기입니다. 이것을 두고 바울 선생님은 ‘(고전12:22)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께서 우리 몸의 살아 있는 기관들을 배열하셨다. 모든 기능은 놀랍고도 지혜롭게 지음을 받았다. 인간이 그분의 법칙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협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인간 기계를 건강하게 활동하도록 지켜주겠다고 친히 서약하셨다. 인간 기계를 다스리는 모든 법칙은 그 기원과 성질과 또한 중요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꼭같이 참으로 거룩하게 여겨져야 한다.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지정하신 그분의 법칙들을 무시함으로, 주님의 놀라운 기계에 가하는 모든 부주의와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행동과 어떠한 혹사도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천연계에서 하나님의 솜씨를 보고 감탄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거처인 몸은 가장 놀랍다.” (음식 17)
(토의사례3) “저는 오래 전에 켄터키 주에서 탄광 매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매몰된 탄광 갱도에 갇힌 채 9일 만에 실로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들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들은 "놀라워라. 주 은혜로 날 구원했으니, 내 잃어버린 생명을 이제야 찾았네."라는 찬미를 부르면서 그 춥고 배고픈 공포와 캄캄한 암흑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 깊은 장소에도 친히 와주셔서 위로를 해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8절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를 생각하였습니다.”

8. (토의 4)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유명한 성경구절 중 하나입니다. 우리 눈에는 불리하게 보였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유익하게 쓰시는 하나님에 대해 각자의 경험이나 성경상의 이야기를 이야기해봅시다.
(토의사례1) 요셉의 사례. 노예로 팔려 보디발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나 이것은 애굽총리가 되는 하나의 축복의 전주곡이었다. 인간의 눈에 불리한 것 처럼 보였지만 결국 축복으로 밝혀지는 것이 오히려 많다.
(토의사례2) 다니엘의 사례. 음식물에 대한 거부사건, 느부갓네살왕의 꿈 해석, 금신상의 숭배, 사자굴 사건 등은 대표적인 다니엘과 세친구에게 닥친 어려움이었지만 이 사건을 주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겪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그들의 입지가 높아져 총리가 되고 또 세 친구들은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였다. (단2:49) 문제가 있은 다음에 축복이 있게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법칙이다.
“바울이 겪은 이 경험 가운데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다. 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나타내는 까닭이다. 주께서는 우리 눈에는 실패와 패배로 보이는 것들 가운데서도 승리를 이끌어 내실 수 있으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사물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보이는 사물을 바라볼 위험이 있다. 불행과 재난이 올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태만하시거나 잔인하시다고 비난하려 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야에서 우리의 유용한 봉사가 중단되는 것이 더 좋다고 여기실 때, 우리는 멈추어 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된 유익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슬퍼한다. 우리는 징계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의 일부분이며 그리스도인은 때때로 활동적 봉사에 종사할 때보다 고통의 징계하에서 주님을 위하여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행적 481)
“하나님을 신뢰하자.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사무쳐 있지마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을 아신다. 모든 것이 어둡고 이해할 수 없을 때에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 13:7)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라.“ (치료 487)
(예화) “무디 목사님 하면 보스톤 뒷골목의 구두 세일즈맨으로 시작하여 세계적인 부흥사가 된 분이 십니다. 1871년 어느 날 시카고에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하루 동안 계속된 화재로 시카고의 온 시가지가 불바다가 되었고 상업지역은 완전히 소실되었고 300명의 사망자를 내었습니다. 이 화재로 무디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도 완전히 불타버렸습니다. 이것은 신문기자 들에게 좋은 뉴스꺼리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기자가 빈정거리며 무디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주신다고 설교하셨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을 보시고 도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이 말을 듣던 무디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랬더니만 이제 하나님의 응답이 이렇게 온 것입니다. 큰 교회를 짓기 위해서는 이 교회를 헐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화재로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기 때문에 교회를 허는 비용을 덜어주신 것이지요. 앞으로 얼마나 큰 교회가 생길 것인지 잘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기자들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무디 목사는 화재가 나자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와 겨우 목숨을 건졌기 때문에 빈주먹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이 심술궂게 물었습니다. "그럼 돈은 갖고 계십니까?" 무디 목사님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성경책을 꺼내 보이면서,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지만 여기 아무리 사용하여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이 성경책을 갖고 나왔지요! 기자 여러분들은 머지않아 새롭게 세워진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의 말대로 무디 목사는 몇 년 후에 정말 크고 훌륭한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의 믿음이란 불탄 교회의 잿더미에서 절망만을 보지 않고 믿음의 눈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의 눈으로 보았던 일이 현실로 다가 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전혀 불가능한 것 같은 일이 일어나지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월요일(1월 11일) 그리스도의 기쁨(히 12:2~3)

1. 누가복음에 나오는 3가지 비유를 다음 (A)~(C)의 관련있는 내용과 서로 연결하시오.
(1) 잃은 양의 비유(눅 15:4~7)
(2) 잃은 은전의 비유(눅 15:8~10)
(3) 탕자의 비유(눅 15:11~24)

(보기)-------------------------------------
(A) 잃은바 된 것도 알고 돌아올 줄도 아는 죄인들에 대한 비유이다.
(B) 잃은바 되었으나 돌아올 길을 모르는 죄인들을 찾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C) 잃은바 되었으나 잃은바 된 것도 모르는 죄인들을 찾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답) (1) - (B) (2) - (C) (3) - (A)
(해설) “잃어버린 양은 자기가 잃어버림이 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 양은 목자와 양 무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 길을 잃었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는 돌아올 수 없다. 잃어버린 양은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고 고민하고 부끄러워하는 자들로써 심한 시험에 싸여 있는 자들을 대표한다. 잃어버린 은전은 허물과 죄로 잃어버림을 당했으나 저희가 잃어버린 상태에 놓여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표상한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한다. 저희의 영혼이 위태한 가운데 있으나 저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이 비유로써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요구에 무관심한 태도를 가진 자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찾아야 할 대상들이다.” (실물 191)

<잃은 양에 대한 퀴즈 (눅15:4~7)>

2. 우리를 벗어난 양은 가련한 양이며, 목자가 나서 찾기 전에는 스스로 돌아올 수가 없다.
(답) O
(해설) 양은 방향감각이 없어 목자가 안내하지 못하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지 못하는 존재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기 스스로 똑똑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앞 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가련한 존재이다. 목자이신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방향을 잃고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우리에서 벗어난 양은 모든 양들 가운데서 가장 가련한 양이다. 이 양은 목자가 찾아오지 아니하면 혼자서는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사람도 이러한 양과 같다. 그는 마치 길 잃은 양처럼 가련하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구하러 가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결코 찾을 수 없다.” (실물 186)

3. 양 우리 속에 한 마리의 어린 양이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 목자는 밖이 어두우므로 그 다음날 찾기로 결심했다.
(답) X
(해설) “한 마리의 양이 길을 잃어버리자마자 목자의 마음은 슬픔과 근심으로 가득 찼다. 그는 양을 세어보고 또 세어 본다. 한 마리의 양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우리 안에 있는 아흔아흡마리를 버려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간다. 밤이 어두워질수록 비바람이 심해질수록 목자의 염려는 더욱 커져 더 열심히 찾는다. 그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한다.” (전게서 186)

4. 성경에 의하면 잃은 양을 찾으러 나간 목자는 양을 결국 찾지 못했다고 기록되고 있다.
(답) X
(해설) “감사하게도 이 비유에는 목자가 양을 찾지 못하고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없다. 이 비유에는 실패했다는 말이 없고 오직 성공했다는 말과 그 양을 찾아 몹시 기뻐했다는 말만 있다. 이 비유 속에는 하나님의 우리에서 벗어난 양이 비록 한 마리일지라도 못 본 체하여 버려 두거나 방임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보증이 있다. 누구든지 구속함을 받기 위하여 주께 마음을 바치는 자를 그리스도께서는 타락의 구렁텅이와 죄의 가시밭 속에서 건져내실 것이다. 낙심하는 자들아, 비록 그대가 아무리 악한 일을 했을지라도 용기를 잃지 말라. 혹시 하나님께서 내 죄를 사유하여 주시고 나를 당신의 앞에 나오도록 용납하실까 하는 생각을 갖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나서셨다. 그대가 그분을 배반하고 있는 동안도 그분은 그대를 찾으러 나가셨다. 그분은 목자와 같은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아흔 아홉마리를 뒤에 남겨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하여 들로 나가셨다. 그분은 당신의 사랑의 팔로, 터지고 상하여 거의 죽게 된 영혼을 안아 몹시 즐거워하며 안전한 우리로 가신다.

5. 하나님은 이미 다른 주인을 선택하여 떠나 정착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으시다.
(답) X
(해설) “예수께서는 너희가 멸시하는 이 사람들은 곧 하나님의 소유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창조와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이 되었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귀한 것들이었다. 목자가 자기 양을 사랑하고 한 마리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한 무한히 큰 사랑으로써 세상에서 버림받은 모든 영혼들을 사랑하신다. 사람은 비록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릴 수도 있고 그에게서 멀리 떠나갈 수도 있고 또 다른 주인을 택하여 섬길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것을 찾고자 열망하신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겔 34:12). 비유에 나타난 목자는 한 마리의 양, 곧 가장 적은 숫자의 양을 찾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러므로 비록 잃어버린 영혼이 단 한 사람뿐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 한 영혼을 위하여 죽으셨을 것이다.“ (전게서 187)

6. 죄인이 하나님께로 오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여야 한다.
(답) X
(해설1; 필자의 간증) 필자가 1988년 11월 자카르타를 홍콩-싱가포르 경유하여 간 적이 있다. 비행기 요금을 아끼려고 이들 도시를 경유하여 갔다. 당시 해외여행의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짐을 부칠 때 모든 서류를 그냥 옷 가방에 넣어 부쳐버렸다. (지금 같으면 옷 가방과 서류가방을 엄밀하게 분리하여 서류는 기내에 가져갈 것이다. 옷 가방은 잊어버리더라도 다시 사면되니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서류가 없으면 당장 해당 도시에서 상담을 할 수가 없다.) 자카르타에 도착했으나 짐이 나오지 않았다. 여러 도시를 거쳐 오다보니 짐이 다른 곳으로 간 것이었다. 결국 그날 늦은 시간동안 짐이 오길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호텔방에 돌아가서 필사적으로 기도를 했다. 짐이 돌아오지 않으면 국제적인 창피에다 낭패인 것이다. 다행히도 다음 날 오후 늦게서야 짐이 돌아왔다. 너무나 기뻐 공항에 즉시 달려갔다. 돌아온 가방의 몰골은 - 가방 끈이 떨어지고 - 처참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기쁜 일이었다. 필자는 이 일후 아주 귀중한 것을 깨달았다. 가방이 그냥 나에게 돌아와 주는 것이 나에게 최대의 선물이었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께는 선물인 것이다. 회개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해설2)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에게 베풀어지기 전에 먼저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회개는 사람이 하늘의 은총을 얻는 하나의 행위이다. 바리새인들이 놀라서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 한다고 부르짖은 것도 이러한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의 의견에 따른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당신에게 가까이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은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감으로 얻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심으로써 얻는 것이라는 점이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고 다 곁길로 나갔”(롬 3:11, 12(구역))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 (전게서 187)

7. 지구는 거대한 우주에 비해보면 지극히 작은 존재이나 99마리보다 이 작은 양 하나를 소중히 여기시고 이것을 구원하시러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오셨다.
(답) O
(해설) “ 이 비유(잃은 양의 비유)는 더욱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잃은 양은 한 사람의 죄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배도하여 죄로 멸망하게 된 한 세계(世界)를 대표한다. 이 지구는 하나님이 주관 하시는 광대한 우주에 비해 지극히 작은 한 개의 원자(原子)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타락한 작은 세계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으로써 우리에서 벗어나지 아니한 아흔아흡보다 더욱 귀중한 것이다. 하늘 조정에서 사랑받는 사령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잃어버린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가 아버지와 함께 가지고 계시던 그 영광을 버리시고 그 높은 자리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다. 그는 이 세상을 위하여 하늘에 있는 죄 없는 세계들, 즉 당신을 사랑하는 아흔아홉을 뒤에 두시고 “우리의 허물을 인”(사 53:5)하여 “찔림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함을 받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당신을 주신것은 잃어버린 양을 도로 찾는 기쁨을 얻으려 하심이었다.“ (전게서 189)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 (눅15:8~9)에 대한 퀴즈>

1. 여인이 잃어버린 은전은 그녀가 가장 아끼는 소유물 중 하나였다.
(답) O
(해설) “신부의 결혼지참금은 대개 돈(硬貨)이었는 데 그는 그 돈을 자기의 가장 아끼는 소유물로 여기고 잘 보존했다가 자기 딸에게 다시 물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돈 중의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큰 재난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며 그것을 다시 찾게 될 때에는 이웃 부인들까지도 다 같이 기뻐할 만큼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또 찾은 즉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2. 방바닥 어느 구석인가 들어가 먼지에 묻혀 있는 은전은 더 이상 값진 은전이 아니다.
(답) X
(해설) “먼지와 쓰레기 속에 묻혀 있는 은전도 역시 은전이다. 그 소유자가 그것을 애써 찾는 것은 그것이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사람이 죄로 인하여 몹시 타락했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이 매우 귀한 존재들이다. 돈에 통치자의 화상과 글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창조되던 당시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죄의 영향으로 인하여 그러한 흔적이 손상되고 희미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각 영혼에게는 그것이 남아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영혼을 회복시켜 그들에게 의롭고 거룩한 당신의 형상을 재생시키고자 하신다.” (전게서 192)

3. 잃어버린 은전이 뜻하는 또 하나의 상징은 가정 안에서 잃어버린 영혼이다.
(답) O
(해설) “비유 가운데 여인은 잃어버린 돈을 열심히 찾았다. 그는 촛불을 켜고 방을 쓸었다. 그 여인은 찾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다 걷어 치웠다. 비록 하나만 잃었을지라도 그 여인은 그 하나를 찾을 때까지 쉬지 않고 찾았다. 그와 같이 가정에서 만일 한 가족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그를 찾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생활 습관을 살피고 잃어버린 자로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무슨 잘못이나 가정 처리법에 어떤 결점은 없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4. 외방선교 때문에 바쁜 부모는 자녀들의 영적인 교육을 타인에게 맡기면 된다.
(답) X
(해설1) “외방 선교지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있다. 저희 자녀들은 구주와 그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있는 데도 부모들은 가정 밖에서 그리스도인의 사업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매우 많다. 많은 부모들이 저희 자녀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을 목사나 안식일학교 교사에게 맡겨 버린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귀한 책임을 등한히 한다. 저희 자녀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은 부모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봉사이다. 이 일은 참을성 있게 하는 수고와, 일생 동안 부지런하고 끈기 있는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에게 위탁된 이 일을 등한히 하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 불성실한 청지기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같은 게으름에 대한 어떤 구실도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신다.” (전게서 192)
(해설2) “만일 가족 중에 자기의 죄된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자녀가 있으면 부모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촛불을 켜라.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그 성경 빛으로써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부지런히 살펴서 그 자녀가 왜 잃어버린바 되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부모들은 저희 자신을 살피고 저희 습관과 버릇을 검토해 보도록 해야 한다. 자녀들은 주의 유업이며 우리는 주의 재산을 처리한 일에 대하여 주님께 대하여 책임이 있다.” (전게서)

<탕자의 비유 (눅15:11~32)에 대한 문제>

1. 탕자가 가련한 처지에 있었으나 아버지께 돌아가면 결코 아버지가 그를 쫒아내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답) O
(해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께 가면 그분은 우리를 결코 쫒아내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직도 하나님을 떠나 살기로 선택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며 그는 아직도 그러한 사람을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감화를 끼치고 계시다. 가련한 형편에 빠진 탕자는 “스스로 돌이”켰다. 사단이 그에게 행사한 기만적 세력은 깨어졌다. 그는 자기의 고생은 자기의 어리석음의 결과임을 깨닫고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고 말한다. 탕자는 비록 가련한 처지에 있었으나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확신하고 소망을 갖게 된다. 그를 집으로 이끌리게 한 것은 곧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이와같이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강권하는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보증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롬 2:4)신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긍휼은 금 쇠사슬이 되어 위기에 처해있는 모든 영혼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주께서는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렘 31:3)고 말씀하셨다.“ (실물 200)

2. 집에 돌아오는 탕자는 너무나 모습이 초췌하여 다른 사람은 몰라보았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답) O
(해설1) “놀기만 좋아하고 생각이 모자랐던 그 젊은이는 부친의 집을 떠날 때 부친의 마음속에 남겨 놓은 고통과 자식에 대한 연민을 조금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그의 방탕한 동무들과 춤추고 먹고 마시고 있을 때는 그의 고향집에 드리운 우울함에 대하여 거의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피곤하고 무거운 발을 끌면서 고향으로 뻗어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에도 한 분이 자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직 “상거가 먼데”도 그의 부친은 아들의 모습을 분간했다. 사랑은 눈을 밝게한다. 여러 해 동안의 죄된 생애로 초췌해졌을지라도 그것이 아버지의 눈으로 하여금 그 아들을 몰라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측은히 여겨 달려가” 사랑의 팔로 그의 “목을” 오랫 동안 꼭 “안”고 있었다.“ (전게서 201)
(해설2) “일어나서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라. 그리하면 그는 멀리까지 나와서 그대를 영접하실 것이다. 만일 그대가 회개하고 그분을 향해 한 걸음만 내디딘다해도 그분은 재빨리 무한하신 사랑의 팔로 그대를 안아 영접하실 것이다. 그분의 귀는 통회하는 자의 부르짖음을 듣기 위해 열려 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생각이 싹트는 그 순간에 그분은 그것을 아신다. 기도가 아무리 더듬거리고 눈물을 아무리 은밀하게 흘릴지라도 그분은 아시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이 마중 나가지 아니하시는 때는 없다. 기도가 입술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마음의 소원이 알려지기도 전에 그리스도께로부터 온 은혜가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는 은혜를 만나기 위하여 나온다.” (전게서 205)

3. 아버지는 아들이 품꾼의 하나로 받아 달라는 요청을 받아 들여 아들이 ‘정신차릴 때까지’ 일을 시켰다.
(답) X
(해설1) “부친은 자기 아들의 비참한 모습과 누더기 옷을 경멸의 눈초리로 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자기 어깨에 걸쳤던 넓고 좋은 외투로 아들의 남루한 꼴을 덮어 주자 그 아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아들이 품꾼의 하나로 받아 달라는 요청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그의 가정에서 가장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할 아들이요 수종하는 남녀 종들의 존경과 섬김을 받아야 할 아들이었다. 부친은 종들에게 명하여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고 하였다.“ (전게서 201)
(해설2) “그대의 천부께서는 죄로 더럽혀진 옷을 그대에게서 벗기실 것이다. 스가랴서의 아름다운 비유적 예언 속에서 여호와의 천사 곁에 선 누추한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죄인을 대표한다. 주께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슥 3:4, 5)히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똑같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옷“ (사 61:10)으로 그대를 입히실 것이고, 의의 겉옷으로 입히실 것이다. “너희가 양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시 68:13).“ (전게서 205)

4. 사단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혹하고 무자비한 분으로 비추려고 노력한다.
(답) O
(해설) “침착성이 없던 청년 시절에 탕자는 자기 부친을 엄격하고 가혹한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제 자기 부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얼마나 다른가? 이와같이 사단에게 속임을 당한 자들은 하나님을 가혹하고 각박한 분으로 본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치 저희를 비난하고 정죄하려고 어떤 꼬투리를 잡으려는 분으로 보며 저희를 도와주실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죄인을 받아 주려 하지 않는 분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사람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그것을 벗어던지면 좋을 무거운 멍에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눈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을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분은 그에게 전제적이고 무자비한 분으로 보이지 아니하고 회개하는 당신의 자녀를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아버지로 보인다. 죄인은 시편 기자와 같이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 (시 103:13)도다라고 부르짖게 될 것이다. (전게서 202)

5.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답) X
(해설) “그대는 자기 자신을 개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도 될 만큼 충분히 선한사람이 될 때까지 그리스도께 나갈 수 없다고 속삭이는 원수(마귀)의 말을 듣지 말라. 만일 그대가 그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대는 결코 그리스도께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사단이 그대의 더러운 옷(품성)을 가리키며 그런 말을 할 때에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하는 예수의 약속을 암송하라. 원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릴 수 있다고 말하라. 다음의 다윗의 기도가 그대의 기도가 되게 하라.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전게서 204)

6. 나중에 탕자의 아버지는 조용한 곳에 가서 탕자의 잘못을 알아듣게 견책하였다.
(답) X
(해설) “비유에는 탕자의 잘못을 견책하거나 조소하는 장면이 전혀 없다. 그 아들은 자기의 과거가 용서함을 받고 잊어버린 바 되었으며 영원히 그의 죄가 도말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도 죄인에게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사 44:22),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니”(렘 50:20)라고 하신다.“ (전게서 204)

7. 우리는 교회로 돌아온 잃은 양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지 않는다면 돌아온 동생을 시기했던 형과 다를 바 없는 자가 되고 만다.
(답) O
(해설)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죽었다가 살았으며 … 잃었다가 얻”은 자가 “네 동생”이 되어야 한다. 그는 가장 밀접한 끈으로 그대에게 붙들어 매어져야 하는 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아들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대가 만일 그러한 아들과의 관계를 부인한다면 그대는 하나님의 가정에 속한 자녀가 아니고 품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비록 그대가 잃어버린 자를 환영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기쁨은 계속될 것이며 도로 찾는 자는 하늘 아버지의 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이 용서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대는 바깥 어두운데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대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전게서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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