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화평을 이루라 - (핵심 Q&A)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13과-화평을 이루라 - (핵심 Q&A)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9-19 13:53 조회1,932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제13과 - 화평(和平)을 이루라

                          (9월 2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29분)


<기억절(記憶節)>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6~17).


<서언(緖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防牌)를 가지고 구원(救援)의 투구와 성령(聖靈)의 검(劍)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의 참뜻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全身甲冑)를 화평(和平)을 이루기 위해서 실제적(實際的)으로 잘 활용(活用)하여 영적(靈的)인 대쟁투(大爭鬪)의 승리(勝利)와 화평(和平)을 이루기 위하여 함께 기도(祈禱)하고 협력하여야 함을 에베소서 6장의 마지막의 마무리 글로써 권면(勸勉)하고 있다.


(9월 17일) (日) 교회(敎會): 하나 된 군대(軍隊)


(Q)~ 바울은 교회(敎會)를 군대(軍隊)가 벌이는 전쟁(戰爭)의 은유적(隱喩的)으로 비유(譬喩)하면서 전투(戰鬪)에서 승리(勝利)하는 필수조건(必須條件)을 무엇이 이루어져야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强調)하고 있습니까? (엡 6:10~20) 


(A)~바울은 교회(敎會)를 하나로 연합된 군대(軍隊)로 비유(譬喩)하여 전투(戰鬪)(영적전쟁(靈的戰爭)을 벌이는 비유로 말씀하면서 군인(軍人)은 전투(戰鬪)하기 위하여 조직(組織)된 단체이다. 군대라는 단체는 반드시 연합(聯合)하여 협력(協力)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개인주의(個人主義)는 반드시 패배(敗北)로 연결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교회는 함께하는 전투(戰鬪)임을 인지(認知)하여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협력(協力)할 것을 요구(要求)한다.


(9월 18일) (月) 허리띠와 흉배(胸背)


(Q)~바울은 신자(信者)들이 악(惡)과 싸움을 준비(準備)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어떻게 나타내며, 진리(眞理)로 띠를 띤다는 것은 삶에 진리(眞理)를 어떻게 하는 것을 뜻합니까? (엡 6:14, 벧전 4:1, 벧전 5:8, 롬 8:37~39)


(A)~바울은 격렬(激烈)한 전투(戰鬪)에 대한 경고(警告)를 통해서 신자(信者)들로 하여금 “서”도록 준비하게 하고(엡 6:11, 13), 면밀하게 무장(武裝)하라고(엡 6:14~17) 요구한다. 바울은 "허리띠를 띠"는 것을 묘사(描寫)한다(사 11:5). 즉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는 누리고 활용해야 하고 그것을 입고 또 하나님의 의(義)가 제공(提供)하는 영적보호(靈的保護)를 경험(經驗)하는 것은 신자(信者)의 특권(特權)임을 알아야 한다. 


(9월 19일) (火) 평화(平和)의 복음(福音)을 전(傳)하는 신 


(Q)~바울은 평화(平和)를 말하면서도 왜 구체적(具體的)인 군사적(軍事的) 은유(隱喩)를 사용했는가? (엡 1:2, 엡 2:14, 15, 17, 엡 4:3, 엡 6:15, 23)


(A)~바울이 무장(武裝)하라는 요청은 무기(武器)를 휘두르라는 뜻으로 오해(誤解)하면 안 된다. 바울이 전(傳)하고자 하는 기별은 하나님께서 주신 무장(武裝)은 평화를 전(傳)하는 도구(道具)로 “평화의 복음”을 선포(宣布)하는 사자(使者)이며 평화를 이루는 자를 말씀하는 것이다.


(9월 20일) (水) 방패(防牌), 투구, 검(劍)


(Q)~신자(信者)들은 대쟁투(大爭鬪)의 군사(軍士)로서 언제 어떻게 방패(防牌)와 투구와 검(劍)(칼)을 사용(使用)해야 하는가? (엡 6:16, 17)


(A)~믿음은 유혹(誘惑)의 화살을 가로막아 영혼(靈魂) 속에서 죄가 되지 못하도록 한다. 유혹과 원수의 모든 공격(攻擊)이 신령한 몸의 취약(脆弱)한 부분에 다다르기 전에 맞서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와 영적전투(靈的戰鬪)를 함에 있어서 방패(防牌)는 ‘믿음’이다. 즉 방패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상징(象徵)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모든 역경(逆境)을 헤치며 낸 길은 바로 성령(聖靈)의 검(劍),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전신 갑주(全身甲冑) 중에서 유일한 무기(武器)는 ‘성령의 검(劍)’이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는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다. (엡 3:5, 딤후 3:16, 히 3:7, 9:8, 10:15, 벧전 1:11, 벧후 1:21).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검(劍)은 “복음(福音)의 광범위(廣範圍)한 약속(約束)”을 의미(意味)한다..


‘투구’는 (살전 5:8)에서 ‘구원(救援)의 소망(所望)’으로 나타나나. 즉 투구는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能力)”을 말하며, (엡 6:17 절)에서의 ‘투구’는 이미 실현된 구원(救援)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에베소 교인들이 이미 구원(救援)을 얻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엡 2:5).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救援)은 악(惡)한 세력과의 전투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보호(保護)하는 전신 갑주(全身甲冑) 중 하나이다. 한편 ‘악(惡)한 자의 모든 화전(火箭)’은 (엡 6:11 절)에서 언급된 ‘마귀의 궤계(詭計)’를 가리키는 것으로 마귀에 의한 모든 공격 즉 핍박(逼迫), 의심(疑心), 절망(絕望) 등을 의미한다. 믿음은 이런 공격을 저지하고 승리(勝利)하는 힘이다. (엡 6:16~17, 재림교주석)


(9월 21일) (木) 전쟁(戰爭)의 승리(勝利)를 위(爲)하여 기도(祈禱)하라 


(Q)~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서신을 마무리 인사로 당부하기를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한 특별한 이유는 왜일까요? (엡 6:18)


(A)~역경(逆境)과 시련(試鍊)이 우리를 둘러쌀 때 우리들은 하나님께 피(避)해야 하며 힘있게 건져내시며 강(强)하게 구원(救援)하시는 주님께 확신(確信)하고 도움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할진대 그 축복(祝福)을 간구(懇求)해야 한다. 기도(祈禱)는 하나의 의무(義務)이며 필수적(必須的)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呼吸)과 같은 것이므로 악(惡)의 세력들과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祈禱)를 통하여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신자(信者)들에게 간절(懇切)하고 끈기 있게 기도에 참여하라고 촉구(促求)하며 열열한 기도는 거룩한 천사들을 명령(命令)하여 악(惡)의 세력에서 붙들어 주시고 보호하시며 건져내어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말미부록(末尾附錄)>*******

 

(엡 6:15) 평안의 복음. (사 52:7과 롬 10:15 절)에서 

“발”과 “평안의 복음” 선포가 밀접히 연결돼 있는데, 그것은 활동 곧 복된 소식의 기별을 전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절에서는 그 개념이 그리스도인의 전투에서 취할 불굴의 정신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여기에 등장한 복음은 선포해야 할 복음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심령에 진지를 구축한 복음이다.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전사가 평화롭고 굳게 설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답고 고무적인 사상이다. 그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롬 5:1). 특별히 복음은 사람이 죽을 필요가 없다는 복된 소식이기에, 잔인한 원수와 대치 중인 전사에게는 반가운 말이다. 그는 복음의 핵심이자 평안의 요인, 곧 성육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 위에 굳게 서 있다. (엡 6:15, 재림교주석)


바울은 서신을 마무리 짓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연합에 대한 신학적, 영적 기초를 언급했고,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서 이 연합을 실제적으로 성취하는 것에 관한 지침을 주었다. 이제 그는 그런 언명(言明)의 실천 가능성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 

 (엡 6:10~20, 재림교주석)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나(Kelly)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고난에 동참한 ‘그리스도인들’을 일컫는다(Calvin, Bigg, Selwyn, Michaels, Blum). 침례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죽음에 동참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의 유혹과 권세가 이기지 못하여 죄가 끊어지게 되며(롬 6:8, 11) 깨끗한 삶을 영위하는 성화의 한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Selwyn, Cranfield, Stibbs).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의 동참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무장함으로 죄의 권세가 지배할 수 없는 성화의 삶을 영위하도록 권면한다. (벧전 4:1, 만나주석)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기도에 힘쓰는 목적은 마치 보채는 아이가 내켜 하지 않는 부모에게서 원하는 것을 결국 얻어내는 것처럼 고집을 부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도에 힘쓴다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간구자를 위해 하실 수 없는 일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 기회를 드리는 간구자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엡 6:10~20, 재림교주석).


우리는 모두 다 전신 갑주(全身甲冑)를 입고 서 있어야 한다. 주는 우리를 그의 군병(軍兵)들로 택함으로써 우리를 높이신다. 그분을 위해서 용감하게 싸우고, 모든 거래 관계에서 의롭게 행하자. 영혼의 싸움에는 모든 일에 정직한 것이 필수적이다. 그대가 자신의 성향을 누르고 이기려고 애쓸 때 성령께서 그대를 도우시사 모든 행동을 용의주도하게 하실 것이며, 그대로 하여금 원수에게 진리를 헐뜯을 기회를 주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힘으로 의를 보호하는 그대의 흉배를 붙이라. 그것을 착용하는 것은 큰 특권이다. 이것이 그대의 영적 생명을 지켜줄 것이다. (청년 지도자 1901. 9. 12).


기도를 통해 우리는 자주 어설픈 판단력과 숨겨진 편견 그리고 우리가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해 완전히 무지함을 드러낸다. 뒤를 돌아보아 성령이 기도를 교정해 주신 것, 말하자면 기도의 의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 있는 형태로 기도를 그분에게 올리신 것에 대해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기도 중 일부가 매우 어리석은 것으로 판명됐던 적이 얼마나 흔하며, 우리가 구한 것을 절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인해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는가! (엡 6:10~24, 재림교주석)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서로 싸우고 있는 두 세력이 있다. 이 양편은 계속해서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하늘 천사들의 감화를 받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흑암의 권세들의 교묘한 공작들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대리자들과 조화를 이루기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행하여야 한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에게는 아무 틈도 주지 말아야 한다. (엡 6:10~24, 재림교주석)


그러나 만약 우리들이 계속 깨어 경계하지 않으면 원수가 우리를 정복할 것이다.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게시되었다 할지라도 그분의 뜻을 안다고 해서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는 열렬한 기도의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니며, 기도가 응답하도록 부지런히 그분과 협력할 필요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는 인간이라고 하는 그의 도구를 통하여 그의 뜻을 이루신다. (원고 95, 1903).


사단의 목표는 인간의 마음에다 그의 품성을 재현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창조되자마자 곧 사단은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말살시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장이 찍혀야 하는 곳에 그의 인을 찍기로 하였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다 선망과 증오와 야망을 주입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는 이 세상에 흑암의 왕국을 세운 자요, 그 왕국의 지도자요, 왕이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기를 원하였다. 그것이 실패했을 때 어두움 가운데서 부정과 속임수로 일을 해 내려오면서 사람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해 왔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다 그의 보좌를 세워놓고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할 경배를 그가 가로챈다. (원고 33, 1911).


우리는 영혼의 원수를 저항하기 위하여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야 한다. 

인간의 유한한 능력으로 흑암의 권세를 대항하여 싸우게 하지 않고 그 싸움을 인간의 충동이나 그의 능력에 맡겨두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것은 모두 준비되어 있다. 만약 인간을 제 홀로 버려두면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고 1, 1890).


경계 근무 중인 신실한 파수꾼들(시 34:7)

선한 천사도 있고 악한 천사도 있다. 사단은 속이고 그릇된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항상 대기하고 있다. 그는 사람을 미혹하여 불순종의 넓은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온갖 종류의 매혹적인 것을 다 사용하고 있다. 그는 그릇된 감정으로 분별력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께서 정로를 가리켜 보이시려고 설치해 놓으신 길 표지판에 그의 거짓 표식을 설치함으로써 지게 표를 제거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다. 하늘의 천사들이 임명되어 봉사의 일을 하게 하시고, 구원 얻을 후사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다스리는 것은 이들 악의 대리자들이 모든 빛줄기를 가려서 영혼들을 어둡게 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사람도 타고난 악의 성향 때문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죄를 깨닫게 할 때 악을 행하던 사람은 회개하고, 자복하며, 죄를 버려야 한다. 충실한 파수꾼들이 영혼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지키고 있다. (원고 8, 1900).


계속 교전 상태에 있는 천사들

만약 휘장이 걷히고 각 사람이, 사단의 매혹적인 관계로부터 땅의 거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부주의한 태도로 인해서 사단의 전략에 말려들어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늘의 가족들이 계속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면 그들은 자만심이나 자기 과시의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군대가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과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승리를 쟁취하려고 사단의 대리자들과 계속 교전 중임을 볼 것이다. (원고 32, 1900).


기도(祈禱)는 가정, 교회, 선교 생활에 필요하다. 열렬한 기도(祈禱)의 능력에 대하여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 만일 교회가 기도(祈禱)하는 일에 성실하면 그처럼 많은 일에 무기력함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성실하게 간구하는 생애는 풍성한 보상을 가져올 것이다. (1 SM 116) 


누가 과연 참된 회개 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허락을 믿고 구하면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기도(祈禱)하고 싶은 성실한 욕구가 사람들에게 생길 때에 저들의 기도(祈禱)는 헛된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실 것이며 성령께서 하나님께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향한 믿음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깨어 기도(祈禱)할 것이며 자신의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열렬히 나타냄으로 그는 믿음이 섞인 기도(祈禱)를 올릴 것이며 믿을 뿐만 아니라 율법의 교훈들을 순종할 것이다. 그는 당면 문제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편에 있음을 밝힐 것이다. 또한, 그는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습관과 교제를 포기할 것이다. (1 SM 393)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그 심정을 펴 놓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내려오시게 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그에게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 (SC 93.2) 


(16)-

정로의 계단 (1)

마귀는 기도를 게을리하는 자들을 어둠으로 가두어 놓는다. 이 원수의 속삭이는 시험은 저들을 죄에 빠뜨리려고 유혹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저희가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청하실 때 그 주신 바 특권을 사용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기도는 전능하신 자의 무한한 자원(資源—富, 力, 智 등)을 쌓아 둔 하늘 창고를 여는 믿는 자의 수중에 있는 열쇠이건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찌하여 기도하기를 싫어하는지?

 끊임없는 기도와 늘 깨어 있음이 없이는 우리는 부주의하게 되고 정도에서 탈선할 위험성이 있게 된다. 

대적 마귀는 우리가 열성 있는 간구와 믿음으로 시험을 이길만한 은혜와 능력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SC 94.2)


(17)-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악행이 증가하는 것을 슬퍼하고 그들의 불신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존경을 감소시키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에녹은 그들과의 지속적 교제를 피하고 많은 시간을 한적한 곳에서 보내며 묵상과 기도에 전심하였다. 이처럼 그는 주의 뜻을 실행하려고 그것을 더 분명히 알고자 주의 앞에서 기다렸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었으며 그는 바로 하늘의 분위기 가운데서 살았다. (부조, 85)


(18)-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이 의무에 충실하면 이교국(異敎國)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현재 한 사람 있는 곳에 수천 명이 있게 될 것이다. 이 사업에 자기가 친히 종사할 수 없는 모든 사람은 저희의 재물과 저희의 동정과 저희의 기도(祈禱)로 이 사업을 지지(支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 도교 국에게서 영혼 구원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SC 81.2)


(19)-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祈禱)하시되 그가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그와 하나가 되기를 구하셨다. 이 연합이야말로 얼마나 귀한 연합인가! 구주께서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아들이….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요 5:19).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면 그는 우리 속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빌 2:13)실 것이다. 우리는 그가 행하신 것같이 행하게 될 것이요 또한 같은 정신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사랑하며 그의 안에 거함으로써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SC 75.2)


(20)-

남을 위하여 사욕이 없는 수고를 하는 정신은 그의 품성을 침착하게 하고 견고하게 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훌륭해지게 하여 그에게 화평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포부는 고상하여진다. 태만과 이기심은 있을 여지가 없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미덕을 수련하는 자들은 자라나게 되고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기에 강하여진다. 저들은 명철한 영적 식별력과 확고히 자라나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기도(祈禱)함으로 더욱 많은 능력을 얻을 것이다. 저희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하나님의 신은 신성한 감촉에 응해서 심령의 거룩한 융화를 일으킨다. 이처럼 남을 위하여 사욕이 없는 노력에 몸을 바치는 자들은 확실히 저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고 있다. (SC 80.2) 


(21)-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하고 기도(祈禱)한 가련한 세리는 자신을 심히 큰 죄인으로 보았고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보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필요를 느끼고 그의 죄와 수치의 무거운 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였다. 그의 마음 문은 열려서 하나님의 신이 그 은혜로우신 역사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를 죄의 권세에게 벗어나게 하실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바리 새 교인의 교만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기도(祈禱)는 그의 마음이 성신의 감화를 막았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는 하나님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완전함과 비교하여 그 자신이 더러운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는 도움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으매 아무것도 받지 못하였다. (SC 30.2) 


(22)-

그분에게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향유와 모든 약한 것들을 고쳐주는 능력이 있다. 오늘날의 그분의 제자들은 옛날의 제자들이 기도(祈禱)한 것과 마찬가지로 병자들을 위하여 기도(祈禱)해야 한다. 그러면 회복이 따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기도(祈禱)는 병든 자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 조용한 믿음의 보증이 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8)는 주님의 약속은 사도 시대와 꼭 같이 오늘날도 신뢰할 만한 약속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녀들의 특권을 나타내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것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께서 역사하시는 통로이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치료하는 능력을 나타내시고자 원하신다. 병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우리의 믿음의 팔로 안아서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위대한 치료자를 믿도록 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YHH 223)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