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갈렙: 기다림의 삶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2과 갈렙: 기다림의 삶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목사 작성일10-09-30 22:51 조회6,950회 댓글0건

본문

10월 9일 일몰:오후 6시 4분 02

기억절: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시 130:6~7).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민 13~14장, 수 14장, 삿 1:12~15.

갈렙은 가장 좋은 시절과 가장 좋지 않은 시절을 모두 경험하였다. 그는 노예생활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었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셨을 때에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바다가 갈라지고 애굽의 병거와 군대가 물에 잠기는 것을 보았으며,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내려오는 모습도 보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장본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를 방황하는 일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야 했다. 광야에 있는 동안 그의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 마침내 그가 가나안 땅을 밟게 된 것은 노년이 된 이후였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과 대담함은 여전하였다.

갈렙은 앞에서보다는 뒤에서 활동하는 지도자였던 것 같다. 이번 주 우리는 그의 부드러운 지도력에 대하여 배우면서 그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모본을 보이며, 너그럽게 베풀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위대한 지도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갈렙의 여러 긍정적인 성격을 뛰어넘어 마지막 시대를 살면서 하늘 가나안에 이르기를 소망하는 우리에게 그의 이야기를 접목시켜볼 필요가 있다.

학습 도우미
| 핵심 본문 | 시 90:12~17
| 학습 목표 |

⊙ 깨닫기 :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갈렙의 행동양식을 살펴본다.
⊙ 느끼기 : 다수의 선택과 상관없이 신실하게 믿음을 지켰던 갈렙과 같은 삶을 갈망한다.
⊙ 행하기 : 종의 지도력으로 결과를 생각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에 집중한다.

교과 개요
01. 깨닫기: 전사의 지도력
A. 다른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갈렙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의 말과 행동 속에 어떤 믿음의 증거가 나타났는가?
B. 그가 광야에 있었을 때, 또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을 달라고 구할 때, 갈렙의 믿음은 그의 지도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02. 느끼기: 외로운 길
A. 아무 반성의 기미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어쩌면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운 길일 수 있다. 갈렙은 백성들의 불평과 반역적인 행동에 직면하였을 때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B. 갈렙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게 될 징벌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03. 행하기: 일편단심, 종의 지도력
A. 갈렙은 연로하였지만 약속의 땅 가운데 정복하기 가장 어려운 지역을 선택하였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고자 결심한 갈렙의 용기 있는 행동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B. 우리를 뒤따르는 자들에게 어떻게 신실한 믿음의 모본을 보일 수 있는가?

요 점: 갈렙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소수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었고, 끝까지 믿음과 순종의 모본을 보여주었다.

일요일(10월 3일) 눈에 보이는 사실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지 약 15개월이 지났다. 가나안 접경의 바란 광야에는 장막들로 가득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이 살게 될 땅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나님의 지도하에 12정탐꾼이 선택되었다. 그들은 가나안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임무를 부여받았고, 그 가운데는 유다 지파를 대표한 갈렙이 포함되어 있었다. 40일간의 수색을 마치고 정탐꾼들이 귀환하였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하였을까?

1. 민 13:26~14:2을 읽으십시오. 이 기사를 통하여 우리는 보이는 사실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배우게 됩니까?
[민13:26~14:2]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답: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그들이 안고 있는 장애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이 훨씬 강력하고 중요한 결정 요인이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다른 이들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그들의 눈에는 가능하게 보였던 것이다.

정탐꾼들은 시각, 후각, 미각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가지고 왔다. 각자의 보고 내용은 거의 동일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내린 결론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10명의 정탐꾼들에게 비옥한 땅과 큰 도시들은 절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도주한 오합지졸의 노예들이 그 땅을 차지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애굽에 내렸던 열 재앙, 홍해를 건넜던 기적, 반석에서 물이 솟았던 일, 그때까지 1년 이상 매일 먹었던 만나의 기적 없이는 약속의 땅 접경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대신 그들이 본 것에 치우침으로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얼마나 쉽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무엇을 보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사실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매일의 결정과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좋아서 믿을 뿐이지 그것이 우리의 인격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배제된 채 보이는 사실에 매달리면 하나님과 그분께 대한 신실함에서 벗어난 해석으로 이끌린다. 반면 하나님과 함께 현실을 보면 그분께 대한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증거를 얻게 된다.

목소리가 아니라 안목을 키움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이 마지막 때에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교회들을 활기 있게 만들고 그들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떠들썩한 사업이 아니고, 조용하고 겸손한 사업이며, 과시하고 과장된 활동이 아니고 인내하고, 경건하고, 오래 참는 활동이다.”(교회증언 5권, 130)

<부가설명> 갈렙은 그나스 사람이라고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민32:12, 수14:14) 그나스는 에서의 손자이다. 에서의 맏아들 엘리바스의 아들이며 에서 자손의 한 족속을 이루었다.(창36:11,15) 엘리바스는 욥기에 나오는 데만 사람인데, 데만은 엘리바스의 맏아들로서 에돔(에서) 후손 중에 한 족속이다. 이런 기록들을 보아서 갈렙은 야곱의 직계 자손이 아니라 애굽에서 따라나온 허단한 잡족 중에 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에 귀화하여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견해이다. 그렇다면 갈렙은 애굽에서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뼈 속까지 체험적 신앙으로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믿음으로 광야를 걸었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귀화인으로서 주류에 속하고 지도자의 자리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사람을 부각시킨 것은 이방인이라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참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을 증거하는 예를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느 랍비가 말했다. 유대인은 혈통이 아니라 종교와 신앙이라고. 우리도 참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면 참 유대인 곧 이면적 유대인으로 예수께 속하게 해 주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갈렙은 모든 사건을 믿음의 눈으로 관찰하고 해석하였다.

교훈: 사실을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하는 것과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아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한다.

월요일(10월 4일) 반대에 직면하여 굳게

변함없이 굳게 서기란 쉽지 않다. 집단 압박(group pressure)을 당하면 견디기 힘들다. 운동장에서 홈팀을 응원하는 수천 명의 함성은 상대팀을 주눅 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다고 상대팀 응원단 속에서 다른 색 티셔츠를 입고 상대팀에게 야유를 보내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축구 경기를 할 때, 양팀의 응원단들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함께 하는 것은 시비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 아니라 미래와 생존이 달려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스라엘의 미래와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모두 통곡했다. 이렇게 함께 울고 있는 관중을 보면 누구나 휩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 보통 뒤에 서 있는 갈렙이 앞으로 나아왔다.

1. 민 13:30을 주의 깊게 살펴 보십시오. 갈렙은 뭐라고 증거했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갈렙에게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민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답: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사태를 파악하는 능력이 달라지며 사건을 표현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같은 정보라 할지라도 여러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다. 말하는 방식은 말의 내용만큼 중요하다. 갈렙은 누구와 논쟁하거나 다른 정탐꾼의 불신을 비난하지도, 백성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지도 않았다. 대신 희망적으로 말하며, 믿음과 행동을 촉구하였다. 그의 태도는 그의 품성이 어떠한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을 닫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돌을 던지려하였다.

2. 민 14:1~10, 20~24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가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사실에 대한 바람직하지 않은 해석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민14:1~10, 20~24]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 그러나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답: 이스라엘 백성의 계속된 불신이 결국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갈렙은 크게 실망할 수 있었다. 그는 좋은 땅을 보았고, 그곳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 때문에 그는 40년간 광야를 방황해야 했다. 그러나 갈렙은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모본을 보이며 백성들을 이끌고 격려하였다. 갈렙은 민족과 분리되어 다른 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갈등이나 믿음의 부족을 탓하며 무리에게서 떠나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그런 태도는 성경의 정신이 아니다. 갈렙은 남을 비난하기보다 고난의 세월을 백성들과 함께 보내는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태도가 운명을 가른다.
“갈렙에게 용기를 준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이었다. 그것이 그를 사람의 위협, 곧 심지어 힘센 거인, 아낙 자손들의 위협에서 그를 지켜주고, 정의를 옹호하는 일에 담대하고 단호하게 설 수 있게 해주었다. 똑같이 고상한 근원, 하늘 군대의 강한 장군으로부터,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병사는 때때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장애들을 극복하기 위한 힘과 용기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효력을 잃고 있다. 그러므로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말을 증거하고자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지, 의심과 낙담과 실망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교회증언 5권, 378)

<부가설명> 갈렙의 태도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를 보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실수로 그들과 함께 불이익을 당해도 묵묵히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았다. 그가 개인적으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었어도 함께 걸었다. 아마도 그렇게 38년을 더 광야에서 보내는 동안도 그는 결코 순종의 삶에 실패하지 않았다. 38년 후에 가나안 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하나님은 갈렙을 온전히 순종한 자라고 증언하셨다.(민32:12) 우리는 교회가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교회를 비난하고 교회를 떠나서 따로 집단을 만들어서 유사 교회를 만드는 일은 성경에 나타난 갈렙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다. 모세나 바울의 정신도 같은 정신이었다.

교훈: 하나님의 사람은 다수의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자이다.

화요일(10월 5일)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함

40년이 흘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발을 디뎠다. 아름다운 음식들로 가득 찬 식탁을 바라보고 있는 굶주린 자들처럼 그들은 약속의 땅을 응시하였다. 대화는 지역 분배에 집중되었다. 약속의 땅에 이르기 오래 전, 모세는 갈등이 있을 것을 내다보고, 분배 방식을 지시해 놓았다(수 14장).

1. 수 14장을 읽으십시오. 갈렙은 무엇을 구했습니까? 그는 왜 그 땅을 구했을까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와 그의 믿음에 대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수14:1~15]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취한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 이 아래와 같으니라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3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4 요셉 자손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오직 거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물을 둘 들만 줄 뿐으로 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6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답: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함을 믿고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했던 도성을 직접 정복함으로써 40년 전 하나님의 약속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2세대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기 원했다.

땅을 분배하고 있을 때에 갈렙이 나타나 자신의 몫을 요구하였다. 그는 지파의 땅이 아닌, 자기 개인의 땅을 구했다. 언뜻 보기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원로의 만남은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갈렙은 여전히 강하며, 싸울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주장하기를 원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데 결코 주저함이 없었다. 그의 동기는 이기적이지 않았다. “주기 위해 얻음”이란 원칙이 노장의 마음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갈렙은 가장 훌륭하고 인기 있는 땅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낙(거인)의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을 선택하였다. 그가 구했던 땅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 지역에 사는 거인들은 바로 4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렵게 만드는 장본인들이었다(민 13:33).
아마도 갈렙은 현재의 세대가 이전 세대의 실수를 재현하지 않기를 열망했을지도 모른다. 갈렙은 정복하기 가장 쉬운 지역 대신, 가장 어려운 곳을 선택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다시 한 번 갈렙은 모본을 통해 백성들을 지도하였다. 정복 과정 내내 그는 살아있는 실물교훈이 되었다. 그는 행동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늙은이를 사용하여 거인들을 내쫓으실 수 있다면, 젊은 너희들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수 15:13~14은 갈렙이 아낙 자손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 민족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대상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 한 노인에 의해 정복되었다.

조용하나 강함
“갈렙은 성실하고 확고부동했다. 그는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공로와 선행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감화는 언제나 정당한 편에 있었다. 그러면 그의 보상은 무엇이었던가? 주님께서 그분의 음성을 듣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심판을 선고하셨을 때, 그분은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 14:24)고 말씀하셨다. 비겁한 자들과 불평하는 자들은 광야에서 죽었지만 성실한 갈렙은 약속된 가나안에 정착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여”(삼상 2:30)긴다고 말씀하신다.”(교회증언 5권, 303)

<부가설명> 이 기록이 우리들에게 주는 가장 중심 되는 교훈은 하나님의 약속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이거나 언제나 유효하다는 것이다. 갈렙에게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약속한 그것을 갈렙은 정당하게 주장하였다. 더구나 본분에 기록한 대로 갈렙이 차지한 땅은 38년 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부족들이 사는 곳이다. 그때 갈렙이 주장했던 대로 믿음으로 그들을 정복함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명하였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을 앞에 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엄청난 용기와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격려하는 것이 되었다.

교훈: 갈렙은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믿고 직접 아낙의 땅을 정복함으로써 출애굽 2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수요일(10월 6일) 믿음의 유산을 물려 줌

어떤 문화권에서는 노인들이 크게 존경을 받고 있다. 그들은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지혜와 조언을 베푸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노인들이 비생산적인 인구 취급을 당하며,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곳도 많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갈렙은 노인 인구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갈렙은 흔히 노인들에게 나타나는 것들을 피했다. 그는 나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공동체의 의무에서 면제되기 위해 나이를 핑계 삼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리에 연연하거나 젊은이들의 시도를 도전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1. 시 92:12~15은 노인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시92:12~15]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13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14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15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답: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갈렙은 모든 세대가 하나님에 대하여 그들만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출애굽 2세대들은 그들의 부모들처럼 출애굽이나 광야의 경험을 겪을 수 없었다. 갈렙은 젊은 세대가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2. 삿 1:12~13에서 갈렙은 어떤 종류의 경험을 의도하고 있습니까?
[삿1:12,13]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한 고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답: 갈렙은 이스라엘을 짊어질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믿음으로 승리하는 경험을 새로운 세대에게 전수해야 했다.

유다 족속들은 그들의 땅을 정복해 나아가고 있었다. 유다와 시므온 족속은 믿음으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고자 했다. 그런데 요새화 되어 있는 기럇세벨에 이르러 그들은 큰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나 갈렙은 그 벽에 집중하기보다, 그런 난관을 또 다른 성장의 기회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자가 승리를 얻을 것이었다. 조금 어색하게 들리지만, 갈렙은 일종의 성과급(incentive)를 제안했다. 도성을 정복하는 자가 자기의 사위가 될 것이라고 약속한 것이다. 갈렙의 조카 옷니엘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를 주셨다. 갈렙의 양육방식이 새로운 영웅을 만들었다. 그의 투자는 훗날 큰 이익이 되어서 돌아왔다. 하나님은 이 젊은이를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요 구원자로 세우셨다(삿 3:7 ~11).

영원한 청년
“여호와의 군대와 더불어 애굽을 떠날 때에 가졌던 것과 같은 용감한 마음을 가지고, 갈렙은 거인들의 요새를 그의 분깃으로 달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냈다. 그의 발로 걸어 다녔던 포도원과 감람나무 숲은 그의 소유가 되었다. 겁장이와 반역자들은 광야에서 멸망했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에스골의 포도를 먹었다.”(교육, 149)

<부가설명> 시편은 노인을 지혜 있는 자로 표현한다.(시119:100) 생애의 경험을 통하여 쌓은 지혜에 대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명상하는 자들은 노인의 지혜를 능가한다고 말한다. 갈렙은 그 세대의 노인이었다. 그는 출애굽부터 40년 광야생활을 경험하면 많은 사건을 보고 겪었다. 게다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지혜도 있었다. 그가 후세대의 지도자를 기르기 위하여 적절한 방법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가족관계를 형성한 중에 올바르게 지도한다면 아마도 효과가 더 있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확실히 그랬을 수 있다. 아무튼 노인들이 하나님의 일에 담당할 몫을 올바르게 담당하는 교회는 복이 있다.

교훈: 갈렙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는 후세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목요일(10월 7일) 거저 줌

1. 삿 1:14~15을 읽으십시오. 이 본문은 갈렙의 품성에 대하여 무엇을 더 말해주고 있습니까?
[삿1:14,15]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15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답: 갈렙은 당시의 풍습과 상관없이 딸에게 땅과 샘을 나눠주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유업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소유하고 있는 땅을 상속자에게 물려주는 것은 자신의 유업이 사라지지 않음을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율법까지 주어졌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녀 없이 죽을 경우, 그의 이름으로 유업을 이어갈 사람이 필요했다(신 25:5~ 10 참조).
노년의 갈렙은 유산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후대의 족보를 보면 갈렙에게는 아들들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가능한 많은 유업을 주기를 원했다. 악사는 딸이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땅은 갈렙의 직계 가족의 손에서 떠나, 그녀의 남편의 재산 소유가 되었다. 우리는 악사가 무슨 이유로 땅을 요구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다고 해도 그것은 유업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법이 정하고 있는 정당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갈렙은 딸에게 땅뿐 아니라, 샘까지 주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윗샘, 아랫샘 모두를 주었다.
관대함은 한꺼번에 두 가지의 일을 한다. 잠 11:25을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였다. 만약 우리가 거저 줄 준비가 돼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거저 주는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2.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용서에 대하여 어떤 영적인 교훈을 얻게 됩니까? 마 6:15, 18:21~35을 읽어보십시오.
[마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18:21~35]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 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답: 갈렙의 관대함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용서의 은혜를 풍족하게 받은 사람이라면 능히 누구든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관용의 부족이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용서를 아직 구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갈렙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복을 받았기 때문에 나누기를 기뻐하였다. 그는 당시 사회적 규범을 초월하여 관대함을 나타내었다.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낸 갈렙
“악사의 요구는 적절하고 타당한 것으로 보이며, 갈렙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허락했다. 우리의 기업을 배분하는 하늘 아버지는 정녕 육신의 부모만큼이나 분별 있고 자애로운 분이다. 우리도 악사처럼 지혜를 행사하여, 우리의 삶의 기업에 그처럼 적절하고 타당한 개선을 허락하시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바짝 마른 삶의 경험을 촉촉하게 적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샘물을 기꺼이 주실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요청하기만 하면 그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엡 3:20) 주실 것이다.”(재림교회 성경주석 3권, 335)

<부가설명> 하나님은 넉넉히 주신다. 그분은 섬기는 자로 계신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행17:24,25) 갈렙은 딸에게 넉넉히 주었다. 우리도 줄 수 있는 대로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말세에 사는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나타내라고 권고를 받고 있다.(빌4:5) 갈렙의 행동에서 우리는 관용을 배워야 할 것이고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타낼 생활 모범을 보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교훈: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해진 것 이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셀 수 없는 복을 받기 때문이다.

금요일(10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갈렙의 신앙은 여전히 그가 다른 정탐꾼들의 악한 보고를 반박하는 증언을 하던 그때의 신앙과 똑같았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을 점령하게 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오랜 방랑 생활을 견디었으며 범죄한 형제들로 인하여 실망과 고통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에 대하여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오히려 광야에서 그의 형제들이 죽임을 당했을 때에 자기를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였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때의 모든 난관과 위험과 재앙 중에서는 물론이고 가나안에 들어와 전쟁하는 여러 해 동안에도 여호와께서 그를 보호하셨으며 이제 그는 80세가 지났으나 그의 기력은 쇠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이미 정복된 땅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정탐꾼들이 정복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그곳을 요청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신앙심을 동요시켰던 큰 세력을 가진 바로 그 거인들에게서 그들의 요새를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탈취하고자 하였다. 갈렙의 요구는 그가 명예나 세력을 얻으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용감한 노전사(老戰士)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모본을 보이고 각 지파를 격려하여 저희 조상들이 정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땅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자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12~51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는 믿음과 배치(背馳)되는 해석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석’이란 말이 중요합니다. 이런 도전에 직면하여 우매하게 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성경의 해석은 성경의 저자인 하나님이 해석할 때 가장 확실하고 바른 해석을 하신다. 그것은 성경에서 성경을 해석한 짝을 찾는 것이다. 기도로 성령의 인도를 구하여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 것을 찾을 것이다. 그러면 말씀에 인도받는 바른 믿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성경을 급히 또는 부주의하게 읽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큰 진리 체계가 깨우쳐지지 않는다. 진리의 보화는 대부분 표면 아래 깊이 파묻혀져 있으므로, 꾸준한 탐구와 끊임없는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진리들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사 28:10)씩 찾아 모아서 하나로 크게 만들어야 한다.”(교육, 123)

2. ‘사실들 ’을 해석하는 방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예를 들면 우리는 땅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닫힌 방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방안은 온갖 소리를 전하고 있는 라디오 전파로 가득합니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 물리적으로도 보이는 현상만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아는 일이다. 하물며 영적 사실에 대하여서는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우리는 모세처럼 보이지 않는 자를 보이는 것 같이 하여 살아야하고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고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 어떻게 새 신자를 양육하고, 젊은이와 어린이들에게 교회의 책임과 지도자의 지위를 맡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갈렙의 생애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 양보와 관용과 자애로운 지도로 생활에서 원칙을 배우도록 지도하고 말씀을 재미있고 흥미 있게 가르치도록 해야 할 것이며, 교회생활의 실질적인 경험을 맛보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4. 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많은 죄와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갈렙의 마음은 자기 백성에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재림 신도인 우리에게 오늘날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 우리도 교회 안에 여러 문제가 있고 난관이 있어도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떠나지 않는 삶을 배울 필요가 있다. 기도하며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경지에 이르도록 협력하여 일해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