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구속(救贖)- (요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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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9-02 22:04 조회5,969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10년9월4일(안) 제10과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구속(救贖)) 요점정리).hwp (32.0K) 113회 다운로드 DATE : 2010-09-02 22: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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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09월04일(안식일)
제10과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구속(救贖)>
▣ <교과 토의>
교사 : ① 환영인사
② 한 주간 영혼 구원활동(교과 책 5쪽) 확인.
③ 오늘 일몰시간 확인.= (일몰: 오후 6시58분)
④ 기억절암기자 확인
⑤ 지난주 제9과 요점 복습
▣ <로마서 9장(章) 요약>
Ⅰ.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면에서 특권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은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로마서 9:1-5)
Ⅱ.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폐(廢)하여진 것은 아니다.
그 특권은 약속으로 난 자를 따라 양도(讓渡)되었다. (로마서 9:6-13)
Ⅲ. 혈통을 따라 양도하지 않았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겠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당신 마음대로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다.
진흙이 좋으면 귀히 쓸 그릇을 만드신다. (로마서 9:14-23)
Ⅳ. 그리고 이 원리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니 약속을 따라 남은 씨가 되도록 믿음으로 자기를 지켜야 한다. (로마서 9:24-29)
Ⅴ. 행위를 쫓아간 이스라엘 사람은 실패했고,
약속을 따라 믿음을 좇아간 이방인은 도리어 의(義)를 얻었다. (로마서 9:30-33)
▣ <요일별 핵심 주제 정리>
(日) : <바울의 짐> → <특권을 버린 동족(同族)에 대한 아픔>
(月) : <택(澤)함을 입음> → <혈통적(血統的) 후사(後嗣)와 영적(靈的)인 후사(後嗣)>
(火) : <신비(神秘)> → <예정론(豫定論)도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의 원리>
(水) : <암미 : 내 백성> → <“로 암미”(이방인)에서 “암미”(내 백성)로>
(木) : <걸려 넘어짐> → <걸려 넘어짐이 되는 육신의 혈통>
▣ <요일별 주제별 요약>
[Ⅰ]. (日) : (8월29일)
<바울의 짐> → <특권을 버린 동족(同族)에 대한 아픔>
○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개인적인 요소가 아닌 민족적(民族的), 사회적(社會的)인 요소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즉
로마서8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할 때였고”,
로마서 9장에서의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고백 할 때는 “동족 이스라엘의 모습을 바라볼 때 엿 던 것이다.”
○ 바울은 복음(福音)을 거절한 동족(同族)에 대한 마음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과 이스라엘의 실패 속에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 바울의 논리에 따르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이 완전히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위해 일하게 하실 남은 무리들을 여전히 갖고 계셨다.
남은 무리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남은 자들을 선택해 오셨던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었다.
(1)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의 후손 모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이삭의 자손만을 선택하셨다.
(2) 하나님은 이삭의 후손을 모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야곱의 자손만을 선택하셨다.
중요한 것은 유업(遺業)과 조상(祖上)이 구원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가 적자(嫡子)이고, 적통(嫡統)이며, 남은 교회의 신자일 수도 있지만, 언약 밖에서 멸망할 수도 있다.
누가 “약속의 자녀”인지는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로마서 9:8).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세상을 구원(救援)하는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이 확실하다.
[Ⅱ]. (月) : (8월30일)
<택(澤)함을 입음> → <혈통적(血統的) 후사(後嗣)와 영적(靈的)인 후사(後嗣)>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7:6-7절)에서 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들을 내세워 자기 민족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9장)에서 아브라함의 후손(後孫)이라고 그 축복을 무조건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者)라야 약속(約束)의 자손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실제 역사(歷史)에서 이스마엘이 혈통적(血統的) 장자(長子)이지만,
사람의 계획(행위(行爲)의 의(義))에 태어났음으로 후사(後嗣)가 되지 못했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내년 이때에 태어나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에 태어났음으로
후사(後嗣)가 되었다.
또 이삭의 자녀도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약속이 있었으므로(창세기 25:23)
그 약속 때문에 작은 자가 영적(靈的) 후사(後嗣)가 되었다.
또 다시 야곱도 그 많은 자녀 중에서 유다가 약속을 따라 후사(後嗣)가 되었으므로
그들을 유대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혈통(血統)으로 무조건적인 특권을 주장할 수가 없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믿는 것이 혈통(血統)보다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바로 성경 말씀인데, 성경 말씀이 이렇게 중요한 약속인 것이다.
이 말씀을 미리 하셨다는 것이 바로 예정(豫定)이요, 이 예정들을 받아들임으로 후사(後嗣)가 되는 것이다.
[Ⅲ]. (火) : (8월 31일)
<신비(神秘)> → <예정론(豫定論)도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의 원리>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로써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신비(神秘) 그 자체이시다.
그 비유가 긍휼히 여기시거나 완악하게 하시거나, 택하시거나 버리시거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며,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로 반문을 하면서
감히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고 반문을 한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강조하면서 행하시는 것 자체가 신비일 수밖에 없다.
예정론(豫定論)도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의 원리에서 이해(理解)되어야 한다. 먼저
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진흙덩어리처럼 토기장이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래서 3차원의 믿음이며
3단계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의지(예정)에 전적으로 순복한다.
⑵ 사람 자체가 근본적으로 속절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선택해 달라고 요구할 자격은 원래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⑶ 한사람이라도 택함을 받는다면 그것은 전적인 은혜이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특별한 은혜로 남은 씨를 지정하지 않으셨다면
모두가 소돔과 고모라 같이 완전히 멸망(滅亡)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⑷ 하나님께서 예정(豫定)하시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절대로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겠다고 예정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여
⑸ 사람이 구원 받을 기회를 얻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순복하는 대신에,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버리느냐고 항의 한다.
[Ⅳ]. (水) : (9월1일)
<암미 : 내 백성> → <“로 암미”(이방인)에서 “암미”(내 백성)로>
▣ <로 암미>
히브리어로 “로 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주어진 이름은 북방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상징했다. <본교 성경주석(한) 8권565p>
<암미>
“암미”는 문자적으로 “나의 백성” 이라는 뜻이다.
▣ 바울은 롬 9:25에서 호 2:23을, 26절에서 호 1:10을 인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결혼을 통해 다른 신을 좇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셨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의 이름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와 심판을
상징하였다.
“로 암미”라는 셋째 자녀의 이름은 문자적으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호 1:9).
그러나 이 와중에서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신 후에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거짓 신들을 제하시며,
그들과 언약을 맺을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호 2:11~19 참조).
그 때 “로 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이 “암미”, 즉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의 시대에 “암미”는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었다.
얼마나 분명하고 강력한 증거인가! 복음은 처음부터 온 세상을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오늘날의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가 이 부르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세천사의 기별자 들이다.
바울의 시대나 고대 이스라엘의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구원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
○ “로 암미”였던 우리가 “암미”가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모든 사람을 구원(救援)하리라는 그분의 약속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Ⅴ]. (木) : (9월2일)
<걸려 넘어짐> → <걸려 넘어짐이 되는 육신의 혈통>
▣ (로마서 9:30~32)에서 아브라함의 혈통이라고 자랑만 하겠느냐? 아니다.
보라! 이방인은 의(義)를 얻고 이스라엘은 의(義)를 못 얻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된 혈통만 알았지,
약속의 맥을 따라 메시야가 왔고, 예정하신 대로 그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라는 돌에 부딪힌 것이다.
이런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의(義)에 이르고 이런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돌에 걸려 넘어지듯 하는데,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에게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지만,
혈통이나 행위의 의(義)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부딪히는 돌이 된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반석 되시는 예수님에게 부딪히고 말았다.
▣ 믿는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여러 관점에서 설명 할 수 있겠지만
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⑵.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⑶. 자기를 부인하고,
⑷. 예수님의 속죄 공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①. 자신에 대하여 겸허하고,
②. 다른 사람에 대하여 자비로우며,
③. 하는 일에 대하여 성실하고,
④. 생활에 대하여는 경건한 것이 아닌가?
◎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구원(救援)의 중대한 요소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생각과 행위를 중요시 여김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원의 반석으로 인정한 이방인들은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
이 교훈은 각 개인의 신앙과 일상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결어(結語)>
바울이 유대인들로 인하여 근심을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모두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토기장이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진흙을 빚을 수 있듯이 유대인들의 잘못된 생각들로 인하여 근심을 하게 되며, 이방인들은 부름을 받고 , 유대인들은 거절을 당할 것을 예언 하면서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얻지 못하게 된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제10과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구속(救贖)>
▣ <교과 토의>
교사 : ① 환영인사
② 한 주간 영혼 구원활동(교과 책 5쪽) 확인.
③ 오늘 일몰시간 확인.= (일몰: 오후 6시58분)
④ 기억절암기자 확인
⑤ 지난주 제9과 요점 복습
▣ <로마서 9장(章) 요약>
Ⅰ.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면에서 특권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은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로마서 9:1-5)
Ⅱ.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폐(廢)하여진 것은 아니다.
그 특권은 약속으로 난 자를 따라 양도(讓渡)되었다. (로마서 9:6-13)
Ⅲ. 혈통을 따라 양도하지 않았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겠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당신 마음대로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다.
진흙이 좋으면 귀히 쓸 그릇을 만드신다. (로마서 9:14-23)
Ⅳ. 그리고 이 원리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니 약속을 따라 남은 씨가 되도록 믿음으로 자기를 지켜야 한다. (로마서 9:24-29)
Ⅴ. 행위를 쫓아간 이스라엘 사람은 실패했고,
약속을 따라 믿음을 좇아간 이방인은 도리어 의(義)를 얻었다. (로마서 9:30-33)
▣ <요일별 핵심 주제 정리>
(日) : <바울의 짐> → <특권을 버린 동족(同族)에 대한 아픔>
(月) : <택(澤)함을 입음> → <혈통적(血統的) 후사(後嗣)와 영적(靈的)인 후사(後嗣)>
(火) : <신비(神秘)> → <예정론(豫定論)도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의 원리>
(水) : <암미 : 내 백성> → <“로 암미”(이방인)에서 “암미”(내 백성)로>
(木) : <걸려 넘어짐> → <걸려 넘어짐이 되는 육신의 혈통>
▣ <요일별 주제별 요약>
[Ⅰ]. (日) : (8월29일)
<바울의 짐> → <특권을 버린 동족(同族)에 대한 아픔>
○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개인적인 요소가 아닌 민족적(民族的), 사회적(社會的)인 요소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즉
로마서8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할 때였고”,
로마서 9장에서의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고백 할 때는 “동족 이스라엘의 모습을 바라볼 때 엿 던 것이다.”
○ 바울은 복음(福音)을 거절한 동족(同族)에 대한 마음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과 이스라엘의 실패 속에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 바울의 논리에 따르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이 완전히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위해 일하게 하실 남은 무리들을 여전히 갖고 계셨다.
남은 무리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남은 자들을 선택해 오셨던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었다.
(1)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의 후손 모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이삭의 자손만을 선택하셨다.
(2) 하나님은 이삭의 후손을 모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야곱의 자손만을 선택하셨다.
중요한 것은 유업(遺業)과 조상(祖上)이 구원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가 적자(嫡子)이고, 적통(嫡統)이며, 남은 교회의 신자일 수도 있지만, 언약 밖에서 멸망할 수도 있다.
누가 “약속의 자녀”인지는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로마서 9:8).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세상을 구원(救援)하는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이 확실하다.
[Ⅱ]. (月) : (8월30일)
<택(澤)함을 입음> → <혈통적(血統的) 후사(後嗣)와 영적(靈的)인 후사(後嗣)>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7:6-7절)에서 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들을 내세워 자기 민족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9장)에서 아브라함의 후손(後孫)이라고 그 축복을 무조건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者)라야 약속(約束)의 자손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실제 역사(歷史)에서 이스마엘이 혈통적(血統的) 장자(長子)이지만,
사람의 계획(행위(行爲)의 의(義))에 태어났음으로 후사(後嗣)가 되지 못했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내년 이때에 태어나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에 태어났음으로
후사(後嗣)가 되었다.
또 이삭의 자녀도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약속이 있었으므로(창세기 25:23)
그 약속 때문에 작은 자가 영적(靈的) 후사(後嗣)가 되었다.
또 다시 야곱도 그 많은 자녀 중에서 유다가 약속을 따라 후사(後嗣)가 되었으므로
그들을 유대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혈통(血統)으로 무조건적인 특권을 주장할 수가 없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믿는 것이 혈통(血統)보다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바로 성경 말씀인데, 성경 말씀이 이렇게 중요한 약속인 것이다.
이 말씀을 미리 하셨다는 것이 바로 예정(豫定)이요, 이 예정들을 받아들임으로 후사(後嗣)가 되는 것이다.
[Ⅲ]. (火) : (8월 31일)
<신비(神秘)> → <예정론(豫定論)도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의 원리>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로써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신비(神秘) 그 자체이시다.
그 비유가 긍휼히 여기시거나 완악하게 하시거나, 택하시거나 버리시거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며,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로 반문을 하면서
감히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고 반문을 한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강조하면서 행하시는 것 자체가 신비일 수밖에 없다.
예정론(豫定論)도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의 원리에서 이해(理解)되어야 한다. 먼저
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진흙덩어리처럼 토기장이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래서 3차원의 믿음이며
3단계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의지(예정)에 전적으로 순복한다.
⑵ 사람 자체가 근본적으로 속절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선택해 달라고 요구할 자격은 원래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⑶ 한사람이라도 택함을 받는다면 그것은 전적인 은혜이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특별한 은혜로 남은 씨를 지정하지 않으셨다면
모두가 소돔과 고모라 같이 완전히 멸망(滅亡)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⑷ 하나님께서 예정(豫定)하시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절대로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겠다고 예정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여
⑸ 사람이 구원 받을 기회를 얻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순복하는 대신에,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버리느냐고 항의 한다.
[Ⅳ]. (水) : (9월1일)
<암미 : 내 백성> → <“로 암미”(이방인)에서 “암미”(내 백성)로>
▣ <로 암미>
히브리어로 “로 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주어진 이름은 북방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상징했다. <본교 성경주석(한) 8권565p>
<암미>
“암미”는 문자적으로 “나의 백성” 이라는 뜻이다.
▣ 바울은 롬 9:25에서 호 2:23을, 26절에서 호 1:10을 인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결혼을 통해 다른 신을 좇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셨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의 이름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와 심판을
상징하였다.
“로 암미”라는 셋째 자녀의 이름은 문자적으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호 1:9).
그러나 이 와중에서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신 후에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거짓 신들을 제하시며,
그들과 언약을 맺을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호 2:11~19 참조).
그 때 “로 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이 “암미”, 즉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의 시대에 “암미”는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었다.
얼마나 분명하고 강력한 증거인가! 복음은 처음부터 온 세상을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오늘날의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가 이 부르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세천사의 기별자 들이다.
바울의 시대나 고대 이스라엘의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구원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
○ “로 암미”였던 우리가 “암미”가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모든 사람을 구원(救援)하리라는 그분의 약속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Ⅴ]. (木) : (9월2일)
<걸려 넘어짐> → <걸려 넘어짐이 되는 육신의 혈통>
▣ (로마서 9:30~32)에서 아브라함의 혈통이라고 자랑만 하겠느냐? 아니다.
보라! 이방인은 의(義)를 얻고 이스라엘은 의(義)를 못 얻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된 혈통만 알았지,
약속의 맥을 따라 메시야가 왔고, 예정하신 대로 그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라는 돌에 부딪힌 것이다.
이런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의(義)에 이르고 이런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돌에 걸려 넘어지듯 하는데,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에게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지만,
혈통이나 행위의 의(義)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부딪히는 돌이 된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반석 되시는 예수님에게 부딪히고 말았다.
▣ 믿는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여러 관점에서 설명 할 수 있겠지만
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⑵.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⑶. 자기를 부인하고,
⑷. 예수님의 속죄 공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①. 자신에 대하여 겸허하고,
②. 다른 사람에 대하여 자비로우며,
③. 하는 일에 대하여 성실하고,
④. 생활에 대하여는 경건한 것이 아닌가?
◎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구원(救援)의 중대한 요소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생각과 행위를 중요시 여김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원의 반석으로 인정한 이방인들은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
이 교훈은 각 개인의 신앙과 일상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결어(結語)>
바울이 유대인들로 인하여 근심을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모두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토기장이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진흙을 빚을 수 있듯이 유대인들의 잘못된 생각들로 인하여 근심을 하게 되며, 이방인들은 부름을 받고 , 유대인들은 거절을 당할 것을 예언 하면서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얻지 못하게 된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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