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교화 한장으로 토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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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주 작성일11-05-19 18:06 조회3,936회 댓글1건첨부파일
- 제2기 제9과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hwp (48.0K) 341회 다운로드 DATE : 2011-05-19 18:06:15
본문
서론
▸부수적인 것들 : 정치, 세계 경제 음모론, 스포츠, 이념 갈등, 종교분쟁, 범죄와 폭력, 비밀정부 ... 이런 것들은 사실 부수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종종 이런 이슈들이 주제로 부각되곤 한다. 일요일 휴업령과 짐승의 표, 그리고 눈에 보이는 바코드나 미국 1달러지폐에 그려진 눈이 달린 피라미드.... 물론 영혼의 원수가 이런 물질적인 것들을 이용하고 또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러나 사실 사단은 이런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 것을 활용 할 뿐이다. 그는 단지 영혼을 파멸 시키는 일에만 집중한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이슈들이 아니라 오늘 나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가? 나는 오늘 그분 안에서 확신하고 있는가? 지금 이 선택은 주님편의 선택인가? 이런 것들이다. 짐승의 표는 먼 훗날, 혹은 어느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지금, 나의 또 하나의 선택으로 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여호수아의 옷처럼 불어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삶이다. 지금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분의 은혜의 옷이다. 불탄 냄새나고 그슬린 옷이 아니라 그분이 입혀 주시는 순백의 은혜의 옷이 우리에게 필요된다.
(일) 예루살렘을 향한 질투
핵심기별 -
▪70년전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과 종들을 통하여 패역한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였다. 그때의 기별도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회개하고 돌아갔더라면 유다는 패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비 그들의 양심은 무디어 졌고 그들의 고개는 뻣뻣하였다. 귀머거리 독사처럼 멸망이 이르러 옴에도 듣지 않았다.
▪이제 스가랴는 그 후손들에게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할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면서 동일한 기별을 전한다. “돌아오라”
실천할 일 -
▸끊임없이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지 않고 회개하고 즐겨 그분께 돌아가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그분께 돌아가는 시점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미루거나 주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월) 원고와 피고
핵심기별 -
▪사단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꾸미거나 날조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적하는 원고로 서있다. 그의 정죄는 정당하다. 무엇을 변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겐 유능한 변호사가 아닌 좋은 변호사가 있다. 그는 우리를 변호하시되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우리를 변호 하신다. 그래서 더 이상 “정죄는 없다.” “누가 우리를 대적(사탄) 하리도!” 대적자인 사단은 그의 정죄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종 그의 고소는 성공을 거둔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ㄷ러운 옷을 입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그 가운데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에게 미친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우리에게도 주어진다. 사단은 우리의 죄를 들추고 하나님은 덮으신다.
(화) 여호와의 천사
핵심기별 -
▪우주에서 가장 희망적인 재판을 말하라고 한다면 스가랴3장의 재판 모습일 것이다. 사단은 원고로 여호수아는 피고로, 그리고 그의 처진 어깨를 위로하는 변호사요 여호와의 천사로 묘사된 예수님이 서 계신다.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더러운 옷은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나타난 경험의 모습이다. 그 옷은 아버지를 떠나갔던 탕자가 입고 돌아 온 옷이다. 하나님은 그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그분이 입으신 깨끗한 옷을 입히신다. 그분이 우리에게 입하시기 위해 그분은 십자가에서 벗기어 지셨다. 온갖 수치를 한 몸에 받으시고 정죄가 아닌 사랑의 음성으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하신다.
(수) 옷을 갈아 입음
핵심기별 -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더러운 옷 위에 그분의 깨끗한 옷을 덧입히시지 않는다. 우리의 옷은 반드시 벗겨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나라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기 위해 먼저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행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 할 수 없다. 옷을 엇기시고 입히시는 행위는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이다.
▪그분의 율법과 계명을 지킬 특권은 옷을 갈아입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더러운 옷을 입은 채 계명을 준수 하는 것은 먼지 묻은 옷을 입고 손과 얼굴만 열심히 씻어대는 것과 같다.
(목) 효과적인 탄원
핵심기별 -
▪여호수아를 변호하신 그리스도는 여호수아의 선행을 근거로 변호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그분의 공로를 근거로 우리를 변호하신다. 사단은 그분의 주장에 대항 할 수 없는데 그분이 모든 것을 대속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죄가운데 살면서 죄에 남아 있다가 죄와 함께 소멸 되던지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죄와 관계를 끊던지 선택 해야한다.
실천할 일
삶은 투쟁이다. 죄와의 투쟁이며 그것은 굴복의 투쟁이다. 나의 의지를 누구에게 굴복 시킬 것인가? 그분의 은혜인가 아니면 죄의 종이 될 것이가?
토의주제
1. 하나님의 음성에 오랫동안 망설이고 세월을 낭비한 경험은 없는가?
2. 그대는 주로 고소자 입니까 아니면 변호자 입니까? 어떤 입장에 자주 서는 편인가요?
3. 심령의 진실한 변화 없이 의를 행하고자 한다면 더러운 인간성이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교회에서 하는 봉사와 사역에서 종종 참된 회심 없이 하는 봉사 때문에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 곤 한다.
▸부수적인 것들 : 정치, 세계 경제 음모론, 스포츠, 이념 갈등, 종교분쟁, 범죄와 폭력, 비밀정부 ... 이런 것들은 사실 부수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종종 이런 이슈들이 주제로 부각되곤 한다. 일요일 휴업령과 짐승의 표, 그리고 눈에 보이는 바코드나 미국 1달러지폐에 그려진 눈이 달린 피라미드.... 물론 영혼의 원수가 이런 물질적인 것들을 이용하고 또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러나 사실 사단은 이런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 것을 활용 할 뿐이다. 그는 단지 영혼을 파멸 시키는 일에만 집중한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이슈들이 아니라 오늘 나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가? 나는 오늘 그분 안에서 확신하고 있는가? 지금 이 선택은 주님편의 선택인가? 이런 것들이다. 짐승의 표는 먼 훗날, 혹은 어느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지금, 나의 또 하나의 선택으로 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여호수아의 옷처럼 불어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삶이다. 지금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분의 은혜의 옷이다. 불탄 냄새나고 그슬린 옷이 아니라 그분이 입혀 주시는 순백의 은혜의 옷이 우리에게 필요된다.
(일) 예루살렘을 향한 질투
핵심기별 -
▪70년전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과 종들을 통하여 패역한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였다. 그때의 기별도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회개하고 돌아갔더라면 유다는 패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비 그들의 양심은 무디어 졌고 그들의 고개는 뻣뻣하였다. 귀머거리 독사처럼 멸망이 이르러 옴에도 듣지 않았다.
▪이제 스가랴는 그 후손들에게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할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면서 동일한 기별을 전한다. “돌아오라”
실천할 일 -
▸끊임없이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지 않고 회개하고 즐겨 그분께 돌아가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그분께 돌아가는 시점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미루거나 주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월) 원고와 피고
핵심기별 -
▪사단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꾸미거나 날조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적하는 원고로 서있다. 그의 정죄는 정당하다. 무엇을 변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겐 유능한 변호사가 아닌 좋은 변호사가 있다. 그는 우리를 변호하시되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우리를 변호 하신다. 그래서 더 이상 “정죄는 없다.” “누가 우리를 대적(사탄) 하리도!” 대적자인 사단은 그의 정죄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종 그의 고소는 성공을 거둔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ㄷ러운 옷을 입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그 가운데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에게 미친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우리에게도 주어진다. 사단은 우리의 죄를 들추고 하나님은 덮으신다.
(화) 여호와의 천사
핵심기별 -
▪우주에서 가장 희망적인 재판을 말하라고 한다면 스가랴3장의 재판 모습일 것이다. 사단은 원고로 여호수아는 피고로, 그리고 그의 처진 어깨를 위로하는 변호사요 여호와의 천사로 묘사된 예수님이 서 계신다.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더러운 옷은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나타난 경험의 모습이다. 그 옷은 아버지를 떠나갔던 탕자가 입고 돌아 온 옷이다. 하나님은 그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그분이 입으신 깨끗한 옷을 입히신다. 그분이 우리에게 입하시기 위해 그분은 십자가에서 벗기어 지셨다. 온갖 수치를 한 몸에 받으시고 정죄가 아닌 사랑의 음성으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하신다.
(수) 옷을 갈아 입음
핵심기별 -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더러운 옷 위에 그분의 깨끗한 옷을 덧입히시지 않는다. 우리의 옷은 반드시 벗겨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나라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기 위해 먼저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행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 할 수 없다. 옷을 엇기시고 입히시는 행위는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이다.
▪그분의 율법과 계명을 지킬 특권은 옷을 갈아입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더러운 옷을 입은 채 계명을 준수 하는 것은 먼지 묻은 옷을 입고 손과 얼굴만 열심히 씻어대는 것과 같다.
(목) 효과적인 탄원
핵심기별 -
▪여호수아를 변호하신 그리스도는 여호수아의 선행을 근거로 변호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그분의 공로를 근거로 우리를 변호하신다. 사단은 그분의 주장에 대항 할 수 없는데 그분이 모든 것을 대속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죄가운데 살면서 죄에 남아 있다가 죄와 함께 소멸 되던지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죄와 관계를 끊던지 선택 해야한다.
실천할 일
삶은 투쟁이다. 죄와의 투쟁이며 그것은 굴복의 투쟁이다. 나의 의지를 누구에게 굴복 시킬 것인가? 그분의 은혜인가 아니면 죄의 종이 될 것이가?
토의주제
1. 하나님의 음성에 오랫동안 망설이고 세월을 낭비한 경험은 없는가?
2. 그대는 주로 고소자 입니까 아니면 변호자 입니까? 어떤 입장에 자주 서는 편인가요?
3. 심령의 진실한 변화 없이 의를 행하고자 한다면 더러운 인간성이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교회에서 하는 봉사와 사역에서 종종 참된 회심 없이 하는 봉사 때문에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 곤 한다.
댓글목록
김수미님의 댓글
김수미 작성일
토의 주제를 제시해 주시니 시원하게 정리가 됩니다.
잘 활용하여 하나님 가까이 만나는 교과 시간 만들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