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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무죄의 옷(질문, 대답, 부가설명)04/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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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4-08 14:17 조회8,816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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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8분

기억절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연구 범위: 딤후 3:16~17, 눅 21:36, 창 2:20~25, 15~17, 3:6~11, 21.

이미 공부한 바와 같이 루스벨의 타락은 하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간계와 속임수를 이 땅에까지 가져왔다. 놀랍게도 그는 분명한 하나님의 진리를 성공적으로 왜곡했으며 많은 이로 하여금 진리와 정반대의 것을 믿게 했다.
예를 들면 창세기는 인간이 처음부터 지구의 최상위 존재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은 수십 억 년의 자연 발생 과정을 통해 진화된 것이 아니다. 진화론은 인간이 가장 하등생물로부터 폭력과 죽음의 치열한 과정을 통하여 먹이 사슬의 상위 단계로 올라왔다고 가르친다. 반면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
의 형상을 따라 최상위의 존재로 창조됐지만, 죄로 인하여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가르친다.
이번 주 우리는 창세기에 나타나는 옷에 대한 비유를 통하여 이러한 쇠퇴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아담과 하와가 처음에 입었던 옷과 그들이 스스로 만든 옷을 비교해 본다.
➋느끼기 :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떤 것인지 느껴본다.
➌행하기 : 우리가 만든 옷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옷을 입는다.

결론: 무궁한 행복 안에서 인류의 조상을 감싸고 있었던 빛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 흘림을 통해서 또 다른 옷으로 덮어주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
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을 상징합니다.

첫째날(일)
4월 10일 태초의 나날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8~9).

질문1: 창1~2장을 읽어보라.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막 창조되어 죄로부터 조금도 더렵혀지지 않은 지구는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당시의 지구는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까?

답: 공부하는 각 사람이 창세기 1,2장을 읽어보기 바란다. 아마도 그 내용은 익숙해서 다 잘 알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지구의 창조가 끝났을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하박국 1:13에는 여호와의 눈은 정결하다고 했다. 그 정결하신 눈에 심히 좋았다고 했으니 그 좋은 상태가 어땠는지 그냥 짐작할 뿐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하신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성취되었던 것이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기록하였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40:26) 온 우주는 참으로 아름다웠을 것이다. 지금도 아름답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모든 창조의 법칙과 질서는 완전하였다. 그러나 지금 이 지구는 땅이 저주를 받아 처음 창조하신 그대로의 법칙이 변질 되었다. 지금도 지구의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그러나 죄가 들어오기 전 상태처럼 아름다울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하기 때문에 창조 때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보존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질문2: 죄와 그 파괴적인 영향이 전혀 없었던 지구에서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와 함께 누렸던 관계는 매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발전되어 갔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죄로 물든 지금의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도 창조주와 그런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딤후 3:16, 눅 21:36, 마 6:25~34, 요 17:3).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눅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마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답: 성경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기도하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도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알 때 창조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의 아름다움을 얻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오늘날 창조주를 모르는 사람들은 천연계를 보고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 또 인간이 미칠 수 없는 상태로 인하여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는 미련함에 빠졌다. 그들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인간 존재의 실상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천연계가 비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드러낸다(롬1:20) 할지라도 아담 안에서 죽은 육체의 생명 만으로서는 천연계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 이 말씀을 통하여 천연계를 볼 때 거기서 우리는 창조주의 영원하신 신성과 무한하신 능력을 보게 될 것이다. 재림성도들은 이런 상태에 있어야 한다. 세상살이에 골몰해서 천연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얻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여가를 내어 천연계로 나간다 해도 거기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나 섭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 주위를 둘러놓은 아름다운 천연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과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체험하는 생활로 우리의 믿음을 부요하게 하자.

교훈: 아담과 하와는 최상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렸다. 우리에게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의 길은 항상 열려있다.

둘째날(월)
4월 11일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니함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

질문: 창 2:20~25을 읽어보라. 아담과 하와 사이에 어떤 종류의 친밀한 관계가 나타나 있는가?
[창2:20~25]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답: 여자는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만들었다. 즉 둘이 한 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둘이 한 몸을 이룰지라고 하셨다. 한 몸에서 개체를 따로 만들어 내셨지만 근본이 한 몸이기 때문이며 그들은 자기를 보존하는 같은 마음으로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형상 사랑을 드러내어야 했다. 그들 사이에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부가설명> 그들이 벌거벗었다고 기록한 것은 모세가 성경을 기록할 당시 사람들이 옷을 입는 것과 견주어서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옷으로 입으셨다.(시104:2)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신 하나님이 사람도 빛으로 입히신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시편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웠다.”(시8:5)고 계시하셨다. 관 씌웠다는 말은 둘러쌌다는 말이다. 영광과 존귀로 둘러싼 옷을 입히신 것이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이 옷이 사라진 것이다. 예수께서 생명으로 오셨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다.(요1:4) 그러므로 우리의 시조가 벌거벗은 줄 알았다는 말은 빛의 옷이 사라졌기 때문에 당장 그것을 알았고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떠난 것을 깨달았다는 뜻이 된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빛이신 생명 예수 안에서 이 빛의 옷을 다시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날마다 빛의 갑옷을 입고(롬13:12)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교훈: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대로 가장 순수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셋째날(화)
4월 12일 시험

질문1: 창 2:15~17을 읽어보라. 아담에게 시험이 주어졌던 환경과 상황에 대하여 생각해보라. 그런 환경은 어떻게 그들의 잘못을 더욱 어처구니없게 만들고 있는가?
[창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답: 하나님께서는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만드신 사람을 거기에 살게 하셨다. 그는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는 직무를 맡았다. 마침내 지구 전체를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 보존하는 일을 했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수고가 없고 피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돌보는 자체가 즐거움이요 행복이었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설명에서 항상 도덕적 안목으로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안목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성경적 시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신학계가 거의 다 그런 시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사람들은 도덕적 상태가 인간 사회를 엮어가는 실상이라는 사고방식에 완전히 젖어 있기 때문에 다른 시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도덕적인 것은 다음 차례이고 존재와 생명 문제가 항상 첫째 자리에 놓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먹는 날에는 네가 죄인이 된다고 하시지 않고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생명과 사망을 말씀하신 것이다.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가? 이 말이 도덕적 표현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도덕적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선악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생명과 사망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대로 유지될 때 그것이 선이고, 하나님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것이 악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라고 하신 것이다.(마19:17) 이것이 도덕적 선에 대한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생명이라는 말이다. 예레미야는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악이라고 하였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19)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생명을 유지하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며, 그 창조를 거절하면 사망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이다. 창조를 거절하는 방법이 바로 선악과를 먹는 것이다. 아담은 그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는 존재를 반납해야 하나님은 불가불 그의 생명과 존재를 회수하신다. 그가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창조주께서 기쁘게 창조한 것을 망가뜨리는 것보다 더 악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이 죄요 악이요 그 결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게 된 것이 도덕적 죄들이다. 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의 복음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오직 도덕적 선악에 집착되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게 된다.

질문2: 창 3:1~4을 읽어보라. 사탄이 하와에게 한 말을 자세히 살펴보라. 사탄은 그의 거짓말에 어떤 당혹스런 진리를 섞었는가?
[창3:1~4]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답: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고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귀도 사망과 생명 문제를 거론하며 여자를 유혹하였다.

<부가설명> 교인들이 선악과를 먹는 행위의 진정한 상태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 같아 보인다. 성경은 그것의 진정한 상태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1:3) 이 말씀에 의하면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은 그리스도를 떠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진정한 상태이다.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은 생명을 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고 분명히 지적하였다. 생명을 잃으면 당연히 사망이다. 사망이 되면 당연히 썩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만물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롬8:21)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들이다. 그것이 도덕적 범죄들이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선을 행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선이 아니다. 죽은 자들의 썩는 것을 방지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도덕적으로 선을 행한다 해도 그것이 생명이 되지 않는다. 믿는 사람들은 이 이치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때야 복음이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와 같이 생명과 사망에 대하여 가르치는데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도덕적 선악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자기가 얼마나 성화되었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완전해질 수 있는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신앙의 초점을 예수님께로부터 돌려 자기 성품과 행위에 맞춘다. 사단은 바로 이렇게 신도들을 교란한다. 그런 도덕적 완전론을 주장하고 성품의 완전한 변화를 주장하는 말을 들으면 귀가 번쩍하는 것 같다. 그 속에는 사단의 교묘한 기만이 감추어져 있을 수 있다. 완전이나 성품의 진정한 변화는 예수님이 참으로 우리의 명이 되어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참된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생명이 우리를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할 때에 맺는 아름다운 열매일 뿐이다.(롬6:4)

교훈: 아담과 하와는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순종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악에 대한 지식을 모르기 바라셨다.

넷째날(수)
4월 13일 새롭게 시도하는 옷

질문1: 창 3:6~11을 읽어보라. 타락 후 아담과 하와에게 처음으로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들의 죄악의 결과가 어떠함을 암시하는가?
[창3:6~11]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답: 먼저 그들은 벌거벗은 줄을 깨달았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 둘렀다. 그리고 하나님 만나기를 두려워하였다. 또한 숨었다. 이것이 죄악의 결과들이다.

<부가설명>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들은 생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망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사망은 두려운 것이다. 그들이 창조주 앞에 설 때에 창조주께서 주신 생명의 빛으로 설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들이 숨었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가 창조주 앞에서는 이미 없어진 것과 같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숨는 것은 찾는 자에게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행위이다.

질문2: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벌거벗음을 깨달고 보인 반응에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무엇인가?

답: 그들의 상태가 아주 심각하게 변질 된 것을 나타낸다. 그들은 스스로 벌거벗을 상태를 가릴 수 있는 수단을 찾았다. 그것이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엮어 두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부가설명> 이것은 생명 문제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그 존재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숨은 것은 창조주 앞에서 그들은 상실된 것을 암시적으로 나타낸다. 그들이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엮어 입어도 그것이 잃은 생명과 존재를 회복시킬 수 없다. 이제 그들에게는 그들의 존재와 생명이 회수되는 일만 남았다. 이것이 심판이다. 심판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잘못한 사실에 대한 형벌이기 전에 창조주의 창조 자체를 거절한 사람에게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존재와 생명을 반납 받는 것이다. 그 결과로 그들은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된다.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으로 그들의 존재를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되는 것을 영벌이라고 한다. 영벌은 영생과 대조되는 사상이다. 지옥 불에 들어가서 고통 중에 영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상은 사람은 영생한다는 전재로 생긴 사상이다. 마귀가 태초에 여자에게 한 거짓말을 기초로 한 사상이다. 이런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영생한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악인들은 고통 중에서 영생하고 의인들은 행복한 중에서 영생한다는 것이다. 영생한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죄와 악에 대한 진정한 뜻을 모르고 마귀가 속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인 꼴이다. 심판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거절한 사람에게 창조해주신 존재와 생명을 반납 받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교훈: 시험을 극복하지 못한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노력으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은 헛수고였다.

다섯째날(목)
4월 14일 가죽 옷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장에서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실 때에 아담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가 선악과를 먹고 생명에서 사망으로 옮겼지만, 이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그를 다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해 주실 약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담은 그것을 믿는 믿음을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고 짓는 것으로 고백하였다.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인데 아담이 사망이 되었지만 여자의 후손(씨)을 통하여 생명을 회복하리라는 약속을 믿고 그 아내의 이름을 생명이라고 지은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의 믿음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것을 보여주셨다. 짐승이 피를 흘려 죽은 것 같이 여자의 후손이 그와 같이 피를 흘려 죽음으로 아담의 죽음을 아담 대신 당하여 처리하고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계시록은 이것을 “창세함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구역)이라고 기록하였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께서는 의미상으로 이때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면 그는 가죽옷을 입는다. 즉 피로 값을 준 옷을 입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 안에서 입는 흰옷이다. 그것은 생명의 옷이요, 빛의 옷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옷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입히신다.

첫째,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잎으로 그들의 수치를 가리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둘째, 무화과 잎과 동물의 가죽 사이에 주된 차이는 무엇인가? 필연적으로 무화과 잎에는 없지만 동물의 가죽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피이다. 이것이 바로 창 3:21이 복음이 되는 이유이다(레 17:11, 계 12:11, 벧전 1:18~19, 히 9:22 참고).
셋째,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깊은 통찰은 “하나님이…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이다. 동물의 가죽을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행위였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셨다. 아담과 하와의 죄가 아무리 끔찍하고 크다 해도 그것이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크지는 않다. 우리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훈: 하나님은 처음부터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음을 보여주셨다.

예비일(금)
4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44~70 “창조”, “유혹과 타락” 그리고 “구속의 경륜.”

“순결한 흰 두루마기는 본래 우리의 시조(始祖)가 거룩한 에덴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입혀 주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저희가 잃어버린 순결한 두루마기를 대신할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준비하신 옷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옷 곧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에게 입혀 주실 것이다. …하늘 베틀에서 짠 이 두루마기에는 사람이 만든 실은 한 올도 섞이지 않았다. 인간으로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품성을 나타내셨고 이 품성을 우리에게 나눠 주신다”(엘렌 G. 화잇, 마라나타, 7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옷 곧 그분의 의의 옷을 준비하셨는데, 그분께서는 그것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자에게 입혀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믿는 죄인들을 바라보실 때에 그분은 그들을 가리고 있는 무화과 잎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의의 두루마기를 보신다”(엘렌 G. 화잇 언급, 리뷰 앤드 헤럴드, 1898. 11. 1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창 3:6을 읽으십시오. 사탄이 하와를 타락시킬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날도 사탄은 이 방법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습니까?
*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였다. 하나님은 창조한 사람에게 첫째, 욕망(欲望)을 주셨다. 즉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둘째, 능력을 주셨다.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셋째, 자유를 주셨다.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것이다. 넷째, 선택할 수 있게 하셨다. 자유와 선택은 같은 사실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사단은 사람의 욕망과 선택의 자유를 자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도록 결정하게 하였고, 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것을 행하였다. 지금도 사단은 우리를 그렇게 유혹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가르쳤고, 그것은 지금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는 사상이 되어 있다.

➋에덴동산 이야기에서 벌거벗음이라는 중심 주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봅시다. 이 주제로부터 우리는 다른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 이미 본문에 있는 부가설명들에서 말했다. 벗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이고 하나님의 옷을 입는 것은 부활의 생명, 영생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예수의 생명을 받는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경험이다. 옷을 벗고 입는다는 사실을 도덕적 상태로만 생각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의 실상을 놓친다. 복음은 예수 안에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낸 것이고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임의로 제목 수정했습니다.

최대진님의 댓글

최대진 작성일

참빛을 제시해 주심으로 너무 감사 합니다.
더욱 강건하시길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김명호님의 댓글

김명호 댓글의 댓글 작성일

참 빛을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옷에 대한 성경의 견해를 깨달아야 하겠지요. 그 일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간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옷을 벗는 것과 입는 것의 복음적 의미를 모든 성도들이 다 깨달았으면 참 졸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현권님의 댓글

반현권 작성일

사람들이 선악을 도덕적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문제임을 이번에도 잘 깨우쳐주셨네요..
빛의 옷이 생명의 옷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이 진리를 전해야겠습니다.^^

윤재성님의 댓글

윤재성 작성일

이번 주 교과는 생명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또 다시 생명을 주시기 위해 태초부터 성자님의 희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빛의 옷이 다름아닌 생명의 옷임을 가르쳐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윤재성님의 댓글

윤재성 작성일

교과 원문에 있는 질문들을 그대로 실어주시고 답까지 달아주시니 훨씬 깊이 있는 공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도교사님의 댓글

지도교사 작성일

에덴의 빛이나 의의 옷을 '생명'으로 표상하거나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범죄하였어도 생명과를 먹는 한, 생명은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계22;14) 를 "생명을 빠는 자들은"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비유 가운데 예복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순결하고 흠이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 교회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계 19:8)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엡 5:27)는 품성을 얻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게 이것이 주어졌다. 성경에는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다. 이 세마포는 그리스도의 의, 곧 믿음으로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홈이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

"순결한 흰 두루마기는 본래 우리의 시조가 거룩한 에덴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입혀 주셨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한 생애를 살았고 저희의 모든 애정을 저희 천부께 바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름답고 부드러운 하나님의 빛이 그 거룩한 부부를 둘러쌌다. 이 빛의 두루마기는 하늘의 순결한 영적 옷의 상징이었다. 만일 저희가 하나님께 충실했더라면 그 빛의 두루마기가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저희를 두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고 그들을 둘렀던 빛은 사라지게 되었다. 벌거벗게 되자 부끄러워서 저희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림으로 하늘의 옷을 대신하려 했다.

이 일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모든 사람들이 늘 해온 일이다. 그들은 죄로 말미암아 벌거벗게 된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나무 잎을 엮었다. 저희는 저희 자신이 만든 옷을 입었다. 저희 자신의 행위로써 저희 죄를 가리려 했고 저희 자신을 하나님께 가납되게 하려 했다." (실물교훈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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