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무죄의 옷 (4월 16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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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균 작성일11-04-07 21:57 조회3,578회 댓글3건본문
기억절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하나님이 할 일이 없으셔서 인간을 만드셨을까?
죄인이 되어서 대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아시면서 왜 만드셨을까?
난 이런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하나님 되는 길이 여기 있다
선악을 구별할 줄 알면 바로 하나님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악을 구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의 구별은 인과 신의 구별로 정하셨을까?
그것은 바로 인간은 선만을 추구하면 살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선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 본능이 흔들릴 때 인간의 욕심이 그를 지배한다
그 지배는 하나님의 원하심이 아니고 타락한 죄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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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일)4월 10일 태초의 나날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8~9).
하나님은 지구의 동방에 에덴이란 동산을 만드셨다
우리는 그곳이 이란과 이락이 속한 지방이라고 말한다
유브라데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방은 사실 사막이다
에덴을 떼어 올리셔서 그 땅이 사막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형편으로 봐서는 에덴이 있었던 곳이라 불리우기는 무리가 있다
거기 동산에서 저들은 평화스러웠다
요즘 사람들 도시가 싫어서 귀농하는 사람들 많다
돌을 골라내고 흙을 다루는 솜씨가 형편없어서 한동안 고생한다
농사가 오래 지어 본 사람에게는 쉬운 것 같지만
새로이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을 맛이다
그래도 우리교인들 시골생활한다고 귀농한다
가시와 잡초가 난무하는 시골은 그려 보지 않는다
죄로 인해 시작된 고통을 모르던 아담과 이브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만 사랑했을 것이다
그 낙원이 어땠을까?
두 사람이 살면 재미있었을까?
심심하지는 않았을까?
지금 내가 두 사람으로 살아보니까 너무 심심한데 말이다
만약 하늘에 가서 예전 아담처럼
나와 내 마누라와 하나님과만 산다면 어떨까?
우린 쉽게 심심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에덴에서도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약속을 주신 것 아닌가?
하늘은 여러 같지 않은 인종이 한테 살 곳이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하늘가서는 먹지 않고 산다고 믿기 때문에 가고 싶다
이 말에 이의 있는 분들 계실 것이다
12가지 과실을 먹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그것 먹기 위해서 또 싸울 생각일까?
둘째날(월)4월 11일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니함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
나체촌이 있다
그 촌에 사는 사람들은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그 촌에 사는 사람이 성욕을 느낀다면 남자들 모양 볼만 할 것이다
에덴동산은 최초의 나체촌이다
성적 수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성적 수치를 안다는 것은 고상한 도덕적 사람이기 보다
죄를 구별하는 사람들이다
도덕을 논하는 사람들이 일반인보다 더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재림교인들은 최고의 수준으로 성화될 것이라고
성욕을 일으키는 고기도 금하는 생활을 한다
우리 신앙생활을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의가 있는가?
아니 의로움을 생각이나 하는가?
세상살이에 젖어서 매일을 돈만 불리는 생각 하면서
도덕적 관념은 얼마나 가져 봤는가?
안식일 지키면 구원 얻고
십일금 잘 내면 복 받는다 생각하는 기복신앙에 절어서
정한수 떠 놓고 빌던 할머니 같은 신앙을 계속하면서도
오늘의 내 신앙이야 말로 제대로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오늘 우리는 벌거벗지 않고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시대를 살아간다
옷을 입어도 창피한 생활을 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나의 입음이 타인의 벗음보다 못하다는 것도 모른다
입으로는 최고의 도덕을 논하지만 속에는 더러움의 극치를 이룬 자는 없는지
부끄러움을 잊은 세대는 불행하다
벗은 줄을 모르는 세대는 불쌍하다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렇게 험하고 어렵다
셋째날(화)4월 12일 시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먹지 말라
우리 교단의 전매특허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지난주에도 장로들 모여서 선교 전략 짜는데
그놈의 먹지 말라가 제일 걸리적거린다고 한다
전도지 내 밀면 처음 하는 말
“ 아 그 못 먹으라 하는 교회 말이지요?”
그런데 태초의 먹지 말라는
그것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는 것이었고
다음 세대에게 말한 먹지 말라는 말은
먹으면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하는 말이었다
먹으면 죽으리라 반드시 죽으리라
너희가 이것 먹으면 선악을 구별 할 줄 알기에 반드시 죽어야 하느니라
이것 먹으면 부정해 져서 예배의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러니 먹지 말라
자유의지니 뭐니 하는 말들 한다
먹고 마시는데 자유의지가 뭐가 필요한가?
못 먹으라고 못을 박았는데 자유의지가 무슨 소용인가?
먹으면 죽으리라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는데
거기에 자유의지가 무엇이 필요한가?
왜 우리는 여기에다가 자유의지를 붙이는가?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 절대적인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무엇인가?
죽으려고 아니 자살하려고 발버둥치는 것뿐인 것 이닌가?
얘들아 먹지 말라
이것 먹으면 몸에 안 좋단다
성경절 외우는 것도 잘 안 되고
다른 이상한 생각들 자주 나고
그러니 먹지 말라
얘들아 이것 마시지 말라
이것 마시면 잠이 안 온단다
이것 마시면 취해서 나중에 패가 망신한단다 하는 것이 아닌
이것 먹으면 반드시 죽는단다 하는 것이 태초의 계명이었다
넷째날(수)4월 13일 새롭게 시도하는 옷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7).
맛을 보기 위해서 먹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얼마나 맛이 있게 생겼으면 먹음직했을까?
밤에 살구나무 근처를 지나가는데 살구의 그 풋풋한 냄새가 나를 불렀다
서리했다
그 당시는 서리가 죄가 안 되는 시절이었다
참으로 먹음직했다
그런데 나는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 만들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의 그 먹음직하던 것을 먹은 죄로 인해서
벌써 옷을 입고 있었다
나체촌으로 들어갈 필요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죄 속에 살고 있었다
아담이 만약 1000년을 그 속에 살면서 매일 그 과일을 쳐다보면서
날마다 찾아오는 뱀의 꾀임을 받으면서
그리 살았다면 어쨌을까?
어짜피 이 땅은 루스벨의 공격대상인데 말이다
얼마나 지긋지긋했을까?
한 번의 공격으로 화와가 범죄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 없이 당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했을 것이다
날로 더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것이고
날로 하나님 되고 싶은 생각이 처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한 짓은 넓적한 무화과 나뭇잎을 꺾어 옷을 해 입는 불상사가 생겼다
나체촌에 옷을 입은 외부인이 들어 온 것이다
다섯째날(목)4월 14일 가죽 옷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그 날 오후 늦게
하나님은 저들에게 새 옷을 지어 주셨다
양을 잡고 그 껍데기를 벗겨서 옷을 지어 주셨다
우리 하나님은 최초 양복쟁이가 된 것이다
옷을 지어서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울면서 옷을 지었을 것이다
양을 잡을 때 그랬을 것이다
“잘 봐 둬라.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는 험한 들판에서
무화과 나뭇잎은 옷이 될 수가 없었다
옷이 되고 이불이 되는 천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그 옷의 임자가 하나님을 예표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동물을 죽이면서 제사제도를 만드셨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알게 되었고 죽이는 법을 알았다
그 동물을 죽이는 방법으로 가인은 아벨을 죽였다
같은 피를 흘렸는데 동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고
아벨의 피는 “땅에서부터 내(하나님)게 호소하”는 피가 된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가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살인의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태초의 범죄는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는 피의 흔적을 가진다
그 흔적은 나를 부수는 역할도 하고
나를 심연에서 건지기도 한다
태초는 이렇게 우리에게 매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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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제목 임의로 수정했습니다
다물(수보하는자)님의 댓글
다물(수보하는자) 작성일
월요일 교과 토의 글에 “그래서 재림교인들은 최고의 수준으로 성화될 것이라고 성욕을 일으키는 고기도 금하는 생활을 한다”라는 말은 초신자들이나 재림 교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해할만한 구절이기에 몇 자 적습니다.
1. 성화와 성욕은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간의 성욕은 자연스럽고 성화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재림교회 기본교리 23장 결혼과 가정에 있는 글입니다. “성경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에서 우러나는 즐거운 성적 표현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라고 분명히 말해 준다. 그것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더러운 것이 아니며 죄 된 것도, 불결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결혼 생활에서 굉장히 영예로운 장소 -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이행하기 위하여 내밀히 만나는 지성소이다. 그것은 신성하고도 심히 유쾌하게 됨을 의미하는 시간이다.
2. 재림교회가 고기는 성욕을 일으키기 때문에 금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만한 구절입니다.
하지만 재림교회는 모든 고기를 금하고 있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신체적 건강과 영적 건강을 위해서 많은 동물들이 병들어 고통당하는 현시대에는 고기를 삼가라는 권면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금하는 것과 권면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말입니다.
최문규님의 댓글
최문규 작성일
이글 해석자는 자기는 육식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리고 제사장처럼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레위기 11장은 폐했다고 주장도 한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재림교인은 최고의 수준으로 성화될 것이라고 성욕을 일으키는 고기도 금하는 생활을 한다 "라고
기록했는데 해설자는 재림교인이 아니라서 육식을 하는가?
아니면 타 교파 사람이 재림교인을 비꼬기 위해서 기록하는 글인가?
제발! 본인의 생각이 우리 교단에서 가르치는 가르침과 많은 것이 틀리면
예의를 지켜서 여기서 나가야 그래도 전직 장로에 여러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지도자였으면 이런 기본적인 것은 알리라 믿는다.
우리 교단의 가르침이 본인의 생각과 틀리면 옳고 합당한 절차를 통해서 바꾸는 노력도 하고
인내하고 기다려야한다고 생각한다
게시판과 토론장이 아닌 신성한 전국 교사들의 공부하는 사아트에 이견을 올리는 것은
무식하고 예의 없는 행동이 아닐까 한다.
사상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직 장로였으니 알 것이다.
어느 분이 지적한 것처럼 11과 조사심판 공부때 조사심판을 부정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일요일 교단과 천주교단 교과해석 사이트에서 조사심판을 가르치는 것은 괞찮을지 몰라도
본 교단에서 그러면 안되지 않겠는가?
예의를 한번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