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아름다운 옷(질문, 대답, 부가설명)05/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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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5-13 12:45 조회8,462회 댓글4건본문
5월 21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9분
기억절 :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연구 범위: 사 1~5, 6:1~8, 51:6~8, 눅 4:16~20.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를 걸쳐 40년 이상 기별을 전파하면서 성경에 아름다운 기록들을 남겼다.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도덕적 혼란기에 쓰인 이사야서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보내는 암울한 운명에 대한 경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시며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안에 있는 구원, 구속, 희망의 주제를 담고 있다(사 48:17).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영광스러운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것을 강권했다. 의복, 덮개 그리고 베옷의 비유들은 시대를 통해 메아리치는 영적 진리들을 가르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시대 사람들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가 다르지 않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옷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더럽고 벌거벗은 채로 부끄러움 가운데 있을 것인가?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낡은 옷과 같이 허무한 지상의 사물들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스럽고 영원한 구원의 옷을 비교·대조한다.
➋느끼기 : 찬양과 의와 구원의 옷을 입고 기뻐한다.
➌행하기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의의 두루마기를 날마다 입고 그분의 제사장으로서 구원의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증거한다.
결론: 이 세상의 옷은 다 해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옷은 영원한 기쁨과 찬양과 구원을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그분이 주시는 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구원의 두루마기를 입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첫째날(일)
5월 15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고리와 팔목고리와 면박과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지환과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손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사 3:18~23).
질문: 사 1~5장을 읽어보라. 백성들의 어떤 행위와 태도가 그토록 엄한 경고의 기별을 불러왔는가? 오늘날의 교회에서 어떤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는가?
답: 사1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경배하는 것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책망한다. 그들의 경배하는 것이나 성전에 오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짐이 된다.
2장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 대신에 사람을 의지하는 것에 대하여 책망한다. 그러나 말일에 온 세상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를 경배할 것이다.
3장은 이스라엘의 도덕적인 죄악들로 인하여 멸망할 것을 경고한다. 시온의 딸들이 유행을 따라 행하는 부도덕한 모습이 인상적인 말로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다 폐망할 것이다.
4장은 이상에 기록한 허물을 사하시고 메시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에 대한 말씀이다.
5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무효하게 한 사실에 대한 심판에 대한 말씀이다.
※ 오늘날 교회도 인간 중심의 예배행사를 행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마음과 생활에 우상을 두고 내심으로 도덕성이 무너져 있으며 유행에 민감한 상태로 생활하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인격이 거듭나고 생활이 변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이 자란 환경에서 몸에 밴 생활 습관은 평생 그렇게 살도록 하는 틀이 된다. 재림교회 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은 어쩌면 재림교회 가정환경이 생활에 가장 익숙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냥 교회가고 예배에 참석하고 집에서 먹는 그런 음식이 입에 익숙해졌고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편하고··· 이렇게 해서 그는 교인이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생활편의 교인이 되어 있을 수 있다. 유대인들의 예배가 그랬던 것이다. 예배의 진정한 의미도 잃어버렸고, 진지한 예배 정신도 없고 그냥 일상으로 해오던 생활습관의 하나로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에 대하여 이사야를 통하여 책망하신다. 그것은 소돔의 생활습관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신다. 그런 예배와 생활이 만든 문화와 도덕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열거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들 포도를 맺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마침내 6장의 이사야의 경험을 통하여 함 예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신다. 우리의 안식일 예배와 생활 예배는 어떤가?
교훈: 유다 백성들에게 신앙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그들은 영적인 의복보다는 세
둘째날(월)
5월 16일 부정한 입술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질문1: 사 6:1~8을 읽어보라. 이사야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구원의 계획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6:1~8]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답: 이사야는 영광의 하나님을 뵙고 그가 아주 부정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불로 그를 정결하게 하시고 그를 일꾼으로 부르셨고 그는 기쁘게 응답하였다.
질문2: 이사야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답: 그가 회개하고 하늘의 불로 정결함을 받음으로 해결되었다.
<부가설명> 이사야 6장은 예배에 대한 내용이 아름답게 계시되어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자신을 굴복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신을 드러내었다. 그 앞에 자신은 부정한 자였다. 그는 자기의 부정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곧 회개한 것이다. 그 응답으로 하나님의 정결하게 하는 불로 정결함을 받았다. 그때 그는 소명을 받았고, 기쁘게 응답하여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사자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오늘날 예배에도 이런 경험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1. 자신을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겸손히 진솔하게 드러내어야 한다.
2. 자기의 부정함을 깨달아야 한다.
3.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4. 하나님의 응답으로 참된 용서를 경험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정결한 입술을 받은 것이다. 우리도 입술로 주를 찬양하고 그의 이름을 높이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수행하도록 정결한 입술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정결한 마음의 열매이다.
5.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해야 한다.
6. 하나님의 증인으로 증거해야 한다.
이것이 예배의 순서이며 결과이다. 우리의 예배는 어떤가?
예배에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임해야 한다. 아름다운 옷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이요 예수의 피로 씻음 받은 죄와 상관없는 삶이다.
교훈: 이사야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옷자락을 보고 거룩한 부르심을 입었다.
셋째날(화)
5월 17일 오래 가지 않을 옷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사 51:6~8).
질문: 사 51:6~8을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어떤 기별을 주고 계시는가? 무엇이 대조적으로 드러났고, 어떤 소망이 주어졌는가?
[사51:6~8]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답: 악한 것들 죄의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멸절되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두고 그 뜻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에 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부가설명> 이 말씀에는 세상의 옷은 낡아 헤어져서 없어진다는 사상이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옷을 생각하게 한다.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에 대하여 말씀하신다.(마6:29) 그 옷도 낡아지고 없어지는 옷이다. 예수님은 그 옷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꽃을 비교하셨다. 솔로몬의 옷이 들꽃만 못하다고 하셨다.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곧 시들 들꽃을 택하고 솔로몬의 옷을 버리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서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하신 일을 대조하고 있다. 이간의 모든 선한 노력과 모든 문화적 학문적 노력이라도 그것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인간의 모든 좋고 선한 노력을 대조하신 것이다.
지난 3과에서 빛의 옷이나 옷을 벗고 입는다는 것에 대하여 그것은 생명을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뜻한다고 한 해설에 무리한 해석이라고 지적한 댓글을 읽었다. “지도교사”라는 이름을 댓글을 달았는데, 아주 고맙게 읽었다. 그분이 실물교훈의 말씀을 인용한 것도 읽었다. 그분의 의견을 나는 존중한다. 그분은 두루마기를 빤다는 사실을 인용하여 생명을 어떻게 빠느냐고 물으신 것 같다. 좋은 지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시각으로만 보면 의의 옷을 어떻게 빠는 것이며, 구원의 옷은 어떻게 빨까? 또 찬송의 옷은 어떻게 빨까? 솔로몬의 옷보다 들꽃이 더 낫다는 말씀은 어떤 시각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분이 지적한 것은 그것도 사실이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동시에 성경이 가르치는 옷에 대한 다양한 표상을 전부 동일한 사상으로 해석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옳은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말한 빛의 옷이 생명이라고 하는 이해도 그분 지적대로 모든 옷을 다 생명이라고 하면 무리한 이해가 맞다. 그러니 생명이라는 사실이 가장 기본적이라는 이해는 합당한 것 같다. 그 위에 다른 모든 옷 이야기가 입혀져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세상의 옷은 솔로몬의 옷이라도 낡아지고 없어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영생은 결코 낡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그 옷을 확실히 입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진리는 단지 문자에 불과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율법은 단지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생명이 되었고, 사랑이 되었고, 의가 되었으며, 새로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교훈: 이 세상은 닳아 해어지는 옷처럼 사라질 것이지만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고 의를 아는 백성들은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넷째날(수)
5월 18일 아름다운 옷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사 52:1).
질문: 사 52장을 읽어보라. 어떤 기별이 주어졌는가? 어떤 소망이 제시되었는가? 백성들이 입어야 하는 “아름다운 옷”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사52:1~15]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2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4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였었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8 들을지어다 너의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답: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에 대한 소망의 기별이 주어져 있다. 아름다운 옷을 교과 저자는 의의 옷으로 해석했다. 그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성경구절은 그것을 힘을 입는 것으로 말한다.
<부가설명>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1절) 이것은 힘을 입는 것이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이라는 히브리 시 형식으로 말하는 해설이다. 힘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입는 것이다. 구원을 입는다는 말은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요5:24,25) 구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말씀이 이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구원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사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과 관련하여 구원을 말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다. 생명은 진정한 힘이 아닐까? 그것이 아름다운 옷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는 복음을 증거하는 힘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 명예 권력을 이기는 힘이다. 모든 고난 가난 핍박을 이기는 힘이다. 그것이 예수 안에서 얻은 생명의 힘이다. 그것은 사망을 이긴 힘이다. 우리는 이 힘을 입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옷이 아니겠는가? 그 옷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도덕적 의가 장식되어 있다.
교훈: 낡아 없어질 세상의 옷에 집착하여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마련한 아름다운 의의 옷을 입으라고 초청하신다.
다섯째날(목)
5월 19일 구원의 옷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질문: 사 61장을 읽어보라. 이 장의 주제는 무엇인가? 어떤 복음이 제시되었는가? 신약성경은 이 가운데 어떤 주제들을 인용하여 해설하고 있는가?(예를 들어 사 61:6 참고)
[사61:1~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8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9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답: 여호와의 영원한 구원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이루시는 분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나사렛 회당에서 선언하셨다.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은 예수께로부터 받는다. 그것은 보물로 단장한 옷이다. 그들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봉사자들이다. 베드로와 바울은 그들이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벧전2:5,9, 계1:6,10, 20:4, 롬15:16)
<부가설명>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이 바로 우리 구원의 옷이고 의의 옷이다. 성경은 예수를 옷 입으라고 가르치고 또 옷 입었다고 가르친다.(롬13:14, 갈3:27) 여러 가지 비유적 표현으로 옷에 대한 말을 했지만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그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것이다. 예수를 옷 입으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과 구원에 관계하여 비유한 모든 옷을 입은 것이다. 예수 오직 예수뿐이다. 자아가 날마다 죽는 것은 예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분을 옷 입은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게 된다. 그분이 겉옷이기 때문이다. 아멘.
교훈: 믿음으로 구원의 옷을 입은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과 봉사자가 되어 사람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
예비일(금)
5월 2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실물교훈, 206, 210 “탕자”, 선지자와 왕, 668 “하나님의 율법을 배움”, 시대의 소망, 754 “갈바리”, 각 시대의 대쟁투, 460 “안식일 회복 운동.”
“흰옷은 품성의 순결, 곧 죄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이다. 이것은 정말로 하늘의 직물로 짠 옷이며, 자발적인 순종의 삶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살 수 있는 것이다”(교회증언 4권, 8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바른 예배 형식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는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가납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배 자체가 문제입니까? 아니면 예배자들의 삶이 문제입니까?
※ 예배 순서를 따라 완벽하고 정연하게 예배를 드렸을지라도 예배하는 사람들이 예배의 인격을 이루고 있지 않으면 받으시는 예배가 되지 못할 것이다. 생활예배와 예식예배는 한 끈에 매여 있는 것이다. 생활예배가 바르게 되지 않으면 예식예배가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 안 된다.
➋“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3). 우리가 어떻게 하면 위의 약속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의 나무가 되면 의의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가 의의 나무가 되는 것은 예수께서 재창조로 이루어진다. 진정을 거듭나면 의의 나무가 되는 것이다.
➌델모어 슈왈츠 (Delmore Schwartz)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밤사이 내린 폭설로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설상(雪像)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온 도시가 얼어붙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도 일을 멈추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주는 듯한 설상(雪像)을 응시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 날 밤 내린 비 때문에 다음날 모든 설상(雪像)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자 주인공은 열차에 뛰어들어 죽습니다. 이야기의 요점은 우리가 이 땅에 거는 희망은 결국 절망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대는 세상으로부터 실망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으로부터 배운 교훈은 무엇입니까?
※ 이 세상은 사망의 세상이기 때문에 실망할 일이 많다. 그럴지라도 예수 안에 소망으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일몰:오후 7시 39분
기억절 :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연구 범위: 사 1~5, 6:1~8, 51:6~8, 눅 4:16~20.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를 걸쳐 40년 이상 기별을 전파하면서 성경에 아름다운 기록들을 남겼다.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도덕적 혼란기에 쓰인 이사야서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보내는 암울한 운명에 대한 경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시며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안에 있는 구원, 구속, 희망의 주제를 담고 있다(사 48:17).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영광스러운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것을 강권했다. 의복, 덮개 그리고 베옷의 비유들은 시대를 통해 메아리치는 영적 진리들을 가르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시대 사람들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가 다르지 않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옷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더럽고 벌거벗은 채로 부끄러움 가운데 있을 것인가?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낡은 옷과 같이 허무한 지상의 사물들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스럽고 영원한 구원의 옷을 비교·대조한다.
➋느끼기 : 찬양과 의와 구원의 옷을 입고 기뻐한다.
➌행하기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의의 두루마기를 날마다 입고 그분의 제사장으로서 구원의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증거한다.
결론: 이 세상의 옷은 다 해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옷은 영원한 기쁨과 찬양과 구원을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그분이 주시는 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구원의 두루마기를 입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첫째날(일)
5월 15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고리와 팔목고리와 면박과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지환과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손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사 3:18~23).
질문: 사 1~5장을 읽어보라. 백성들의 어떤 행위와 태도가 그토록 엄한 경고의 기별을 불러왔는가? 오늘날의 교회에서 어떤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는가?
답: 사1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경배하는 것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책망한다. 그들의 경배하는 것이나 성전에 오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짐이 된다.
2장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 대신에 사람을 의지하는 것에 대하여 책망한다. 그러나 말일에 온 세상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를 경배할 것이다.
3장은 이스라엘의 도덕적인 죄악들로 인하여 멸망할 것을 경고한다. 시온의 딸들이 유행을 따라 행하는 부도덕한 모습이 인상적인 말로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다 폐망할 것이다.
4장은 이상에 기록한 허물을 사하시고 메시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에 대한 말씀이다.
5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무효하게 한 사실에 대한 심판에 대한 말씀이다.
※ 오늘날 교회도 인간 중심의 예배행사를 행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마음과 생활에 우상을 두고 내심으로 도덕성이 무너져 있으며 유행에 민감한 상태로 생활하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인격이 거듭나고 생활이 변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이 자란 환경에서 몸에 밴 생활 습관은 평생 그렇게 살도록 하는 틀이 된다. 재림교회 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은 어쩌면 재림교회 가정환경이 생활에 가장 익숙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냥 교회가고 예배에 참석하고 집에서 먹는 그런 음식이 입에 익숙해졌고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편하고··· 이렇게 해서 그는 교인이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생활편의 교인이 되어 있을 수 있다. 유대인들의 예배가 그랬던 것이다. 예배의 진정한 의미도 잃어버렸고, 진지한 예배 정신도 없고 그냥 일상으로 해오던 생활습관의 하나로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에 대하여 이사야를 통하여 책망하신다. 그것은 소돔의 생활습관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신다. 그런 예배와 생활이 만든 문화와 도덕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열거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들 포도를 맺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마침내 6장의 이사야의 경험을 통하여 함 예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신다. 우리의 안식일 예배와 생활 예배는 어떤가?
교훈: 유다 백성들에게 신앙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그들은 영적인 의복보다는 세
둘째날(월)
5월 16일 부정한 입술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질문1: 사 6:1~8을 읽어보라. 이사야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구원의 계획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6:1~8]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답: 이사야는 영광의 하나님을 뵙고 그가 아주 부정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불로 그를 정결하게 하시고 그를 일꾼으로 부르셨고 그는 기쁘게 응답하였다.
질문2: 이사야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답: 그가 회개하고 하늘의 불로 정결함을 받음으로 해결되었다.
<부가설명> 이사야 6장은 예배에 대한 내용이 아름답게 계시되어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자신을 굴복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신을 드러내었다. 그 앞에 자신은 부정한 자였다. 그는 자기의 부정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곧 회개한 것이다. 그 응답으로 하나님의 정결하게 하는 불로 정결함을 받았다. 그때 그는 소명을 받았고, 기쁘게 응답하여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사자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오늘날 예배에도 이런 경험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1. 자신을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겸손히 진솔하게 드러내어야 한다.
2. 자기의 부정함을 깨달아야 한다.
3.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4. 하나님의 응답으로 참된 용서를 경험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정결한 입술을 받은 것이다. 우리도 입술로 주를 찬양하고 그의 이름을 높이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수행하도록 정결한 입술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정결한 마음의 열매이다.
5.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해야 한다.
6. 하나님의 증인으로 증거해야 한다.
이것이 예배의 순서이며 결과이다. 우리의 예배는 어떤가?
예배에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임해야 한다. 아름다운 옷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이요 예수의 피로 씻음 받은 죄와 상관없는 삶이다.
교훈: 이사야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옷자락을 보고 거룩한 부르심을 입었다.
셋째날(화)
5월 17일 오래 가지 않을 옷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사 51:6~8).
질문: 사 51:6~8을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어떤 기별을 주고 계시는가? 무엇이 대조적으로 드러났고, 어떤 소망이 주어졌는가?
[사51:6~8]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답: 악한 것들 죄의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멸절되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두고 그 뜻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에 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부가설명> 이 말씀에는 세상의 옷은 낡아 헤어져서 없어진다는 사상이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옷을 생각하게 한다.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에 대하여 말씀하신다.(마6:29) 그 옷도 낡아지고 없어지는 옷이다. 예수님은 그 옷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꽃을 비교하셨다. 솔로몬의 옷이 들꽃만 못하다고 하셨다.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곧 시들 들꽃을 택하고 솔로몬의 옷을 버리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서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하신 일을 대조하고 있다. 이간의 모든 선한 노력과 모든 문화적 학문적 노력이라도 그것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인간의 모든 좋고 선한 노력을 대조하신 것이다.
지난 3과에서 빛의 옷이나 옷을 벗고 입는다는 것에 대하여 그것은 생명을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뜻한다고 한 해설에 무리한 해석이라고 지적한 댓글을 읽었다. “지도교사”라는 이름을 댓글을 달았는데, 아주 고맙게 읽었다. 그분이 실물교훈의 말씀을 인용한 것도 읽었다. 그분의 의견을 나는 존중한다. 그분은 두루마기를 빤다는 사실을 인용하여 생명을 어떻게 빠느냐고 물으신 것 같다. 좋은 지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시각으로만 보면 의의 옷을 어떻게 빠는 것이며, 구원의 옷은 어떻게 빨까? 또 찬송의 옷은 어떻게 빨까? 솔로몬의 옷보다 들꽃이 더 낫다는 말씀은 어떤 시각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분이 지적한 것은 그것도 사실이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동시에 성경이 가르치는 옷에 대한 다양한 표상을 전부 동일한 사상으로 해석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옳은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말한 빛의 옷이 생명이라고 하는 이해도 그분 지적대로 모든 옷을 다 생명이라고 하면 무리한 이해가 맞다. 그러니 생명이라는 사실이 가장 기본적이라는 이해는 합당한 것 같다. 그 위에 다른 모든 옷 이야기가 입혀져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세상의 옷은 솔로몬의 옷이라도 낡아지고 없어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영생은 결코 낡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그 옷을 확실히 입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진리는 단지 문자에 불과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율법은 단지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생명이 되었고, 사랑이 되었고, 의가 되었으며, 새로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교훈: 이 세상은 닳아 해어지는 옷처럼 사라질 것이지만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고 의를 아는 백성들은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넷째날(수)
5월 18일 아름다운 옷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사 52:1).
질문: 사 52장을 읽어보라. 어떤 기별이 주어졌는가? 어떤 소망이 제시되었는가? 백성들이 입어야 하는 “아름다운 옷”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사52:1~15]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2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4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였었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8 들을지어다 너의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답: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에 대한 소망의 기별이 주어져 있다. 아름다운 옷을 교과 저자는 의의 옷으로 해석했다. 그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성경구절은 그것을 힘을 입는 것으로 말한다.
<부가설명>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1절) 이것은 힘을 입는 것이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이라는 히브리 시 형식으로 말하는 해설이다. 힘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입는 것이다. 구원을 입는다는 말은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요5:24,25) 구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말씀이 이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구원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사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과 관련하여 구원을 말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다. 생명은 진정한 힘이 아닐까? 그것이 아름다운 옷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는 복음을 증거하는 힘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 명예 권력을 이기는 힘이다. 모든 고난 가난 핍박을 이기는 힘이다. 그것이 예수 안에서 얻은 생명의 힘이다. 그것은 사망을 이긴 힘이다. 우리는 이 힘을 입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옷이 아니겠는가? 그 옷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도덕적 의가 장식되어 있다.
교훈: 낡아 없어질 세상의 옷에 집착하여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마련한 아름다운 의의 옷을 입으라고 초청하신다.
다섯째날(목)
5월 19일 구원의 옷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질문: 사 61장을 읽어보라. 이 장의 주제는 무엇인가? 어떤 복음이 제시되었는가? 신약성경은 이 가운데 어떤 주제들을 인용하여 해설하고 있는가?(예를 들어 사 61:6 참고)
[사61:1~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8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9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답: 여호와의 영원한 구원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이루시는 분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나사렛 회당에서 선언하셨다.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은 예수께로부터 받는다. 그것은 보물로 단장한 옷이다. 그들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봉사자들이다. 베드로와 바울은 그들이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벧전2:5,9, 계1:6,10, 20:4, 롬15:16)
<부가설명>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이 바로 우리 구원의 옷이고 의의 옷이다. 성경은 예수를 옷 입으라고 가르치고 또 옷 입었다고 가르친다.(롬13:14, 갈3:27) 여러 가지 비유적 표현으로 옷에 대한 말을 했지만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그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것이다. 예수를 옷 입으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과 구원에 관계하여 비유한 모든 옷을 입은 것이다. 예수 오직 예수뿐이다. 자아가 날마다 죽는 것은 예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분을 옷 입은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게 된다. 그분이 겉옷이기 때문이다. 아멘.
교훈: 믿음으로 구원의 옷을 입은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과 봉사자가 되어 사람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
예비일(금)
5월 2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실물교훈, 206, 210 “탕자”, 선지자와 왕, 668 “하나님의 율법을 배움”, 시대의 소망, 754 “갈바리”, 각 시대의 대쟁투, 460 “안식일 회복 운동.”
“흰옷은 품성의 순결, 곧 죄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이다. 이것은 정말로 하늘의 직물로 짠 옷이며, 자발적인 순종의 삶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살 수 있는 것이다”(교회증언 4권, 8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바른 예배 형식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는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가납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배 자체가 문제입니까? 아니면 예배자들의 삶이 문제입니까?
※ 예배 순서를 따라 완벽하고 정연하게 예배를 드렸을지라도 예배하는 사람들이 예배의 인격을 이루고 있지 않으면 받으시는 예배가 되지 못할 것이다. 생활예배와 예식예배는 한 끈에 매여 있는 것이다. 생활예배가 바르게 되지 않으면 예식예배가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 안 된다.
➋“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3). 우리가 어떻게 하면 위의 약속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의 나무가 되면 의의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가 의의 나무가 되는 것은 예수께서 재창조로 이루어진다. 진정을 거듭나면 의의 나무가 되는 것이다.
➌델모어 슈왈츠 (Delmore Schwartz)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밤사이 내린 폭설로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설상(雪像)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온 도시가 얼어붙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도 일을 멈추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주는 듯한 설상(雪像)을 응시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 날 밤 내린 비 때문에 다음날 모든 설상(雪像)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자 주인공은 열차에 뛰어들어 죽습니다. 이야기의 요점은 우리가 이 땅에 거는 희망은 결국 절망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대는 세상으로부터 실망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으로부터 배운 교훈은 무엇입니까?
※ 이 세상은 사망의 세상이기 때문에 실망할 일이 많다. 그럴지라도 예수 안에 소망으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최대진님의 댓글
최대진 작성일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진리는 단지 문자에 불과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율법은 단지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생명이 되었고, 사랑이 되었고, 의가 되었으며, 새로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복음이 기쁨이 되었습니다.
복중수님의 댓글
복중수 작성일목사님의 부가 설명은 너무도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가 너무 늦엇습니다.
조문양님의 댓글
조문양 작성일
매 안식일마다 올려 주시는 글 늘 감사합니다.
수년간 목사님의 교과해설을 은혜롭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함니다.
이병철님의 댓글
이병철 작성일
예수님의 생명이 힘이고 예수님 품성이 장식 마음에 확 와 닿네요
성령의 열매란 예수안의 생명. 감사합니다 깨닿게 해 주심
매 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