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과 존귀함에서 떨어짐(예화 및 부가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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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1-04-03 22:31 조회6,40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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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 2과 존귀함에서 떨어짐
4월 9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1분
도입)
욥의 이야기는 인생의 고뇌, 환난 등의 근본 원인과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 인생을 논하는 철학이나 어떤 사상이나 종교는 그 모든 것의 헛됨을 보여주고 있다. 인생을 안다고 입을 연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하나같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인생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근본적인 원인, 즉 인간이 죄를 지은 과정이라든가 인간이 고통을 당하게 된 실상, 죽음이 온 이유 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타락설을 꾸며 낸 신화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인간의 죽음, 병고, 기타 여러 가지 고통의 원인이 사단에게서 온 것임을 설명해 주고 있으나 사람들은 사단을 시인하지 않기 때문에 사단에게서 해방되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사단과 싸우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단을 알게 되면 사단과 함께 운명을 같이할 수 없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사단은 인간의 역사가 있기 전, 즉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원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부리는 천사 루스벨이었다. 그가 창조되었을 때는 아직 이 세상이 있기 전으로, 천사들에게는 군대의 조직과 같이 대장이 있고 그 밑의 천사들도 있었다. 성경에 미가엘이니 가브리엘이니 하는 천사장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로보아 각기 직무가 따로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의 루스벨이라는 천사장도 하늘 군대의 대장으로서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가진 힘이 대단한 것같이 느껴져 하나님처럼 자기도 최고의 위치에서 숭배를 받을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그는 자신의 군졸들과 함께 쫓겨나서 천사의 영광스러운 직무를 행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사단이다.
기억절 :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첫째 날(일)
4월 3일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
도입)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얼마나 귀하고 엄숙하고 권세 있는 말씀인가! 세상 어느 종교에도 그 교주가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은 없다. 오직 기독교의 성경 첫머리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엄숙히 선언함으로써 천지만물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마디 가운데서 기독교의 신관(神觀) 우주관(宇宙觀) 역사관(歷史觀) 인생관(人生觀)을 발견하여 주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교훈: 하나님은 이 세상을 무에서 창조하셨고, 우주에는 인간들이 밝히지 못한 창조의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부가적용)
이 창조는 없는데서 있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미 있는 그 무엇을 바탕이나 재료로 삼아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만물을 만들어 낸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만든 것은 창조라고 하지 않고 제조(製造)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가지고 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들이 지혜와 기술을 가지고 여러 가지의 것을 만들 수가 있지마는 생명(生命)만은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 뿐 아니라 개미의 생명도 만들 수 없다. 아니 풀 한 포기의 생명도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창조부분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피조자(被造者)요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다윈의 진화론도, 스피노자의 범신론도, 자연과학자들의 자연유출설을 배격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은 이것을 임의로 쓸 수 없다. 우주는 주의 것이니 그 안에 주가 계시므로 우주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주는 일정한 법칙 하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쓰려면 그 법칙에 복종해야 되는 것처럼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모든 것이 주의 것이니 주만 섬겨야 평화가 오는 것이다.
둘째 날(월)
4월 4일 아름답고 완전한 피조물
도입)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 되었었도다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 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되게 하였도다" (겔28:14-17) 위의 성경구절은 천사장 루스벨이 타락하여 루스벨이라는 죄의 원흉인 사단이 된 것을 두로 왕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루스벨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찬양을 담당하는 천사로서 모든 천사들 위에 뛰어나게 아름다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런데 아름다운 천사장 루스벨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였다.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자기의 위치를 떠나 창조주와 같이 되고자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자 하나님에게서 분리 되게 되었고 곧 사단(반역자, 원수)이 되었다.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네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사14:11-15) 이 구절 역시도 바벨론 왕을 비유하여 사단의 타락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계명성"이라고 한 것은 라틴어에서 온 말로 영어에서는 루시퍼(샛별, 금성)으로 번역하고 있다(KJV) 샛별이 어둠이 가장 짙은 새벽, 모든 별들이 다 지고 난 후에 홀로 떠서 밝은 빛을 내는 것을 스스로 살고자 하는 사단의 교만한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루스벨"의 '루시'는 광명한, 빛나는 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Lux'가 유래 되었다. 우리가 루스벨이라 부르지만 루스엘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천사를 부를 때 미가엘, 가브리엘, 루스엘로 끝에 엘을 두는 것은 '엘'은 전능자 하나님(엘로힘)이 부리시는 천사란 뜻으로 천사들의 이름의 끝에 붙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겔 28:13).
교훈: 천사들은 사랑이 충만한 환경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며 그 가운데서도 루스벨은 가장 높은 지위와 영광을 부여받았다.
부가적용)
사단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하나님이 이 광활한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 자신이 그 주권자가 되고 섬김의 대상이 되고 싶어 타락한 존재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악에 대해 경계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통치권을 아담에게 주셨지만, 그 주권을 탐을 내고 있는 자, 간교하고 꾀가 많고 악한 자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느 모로 보나 천사보다는 못한 존재였다. 힘으로 보나 지혜로 보나 지위로 보나 천사보다 열등한 존재였고 장차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까지 오를 자였으나 아직 미완성인 상태였다. 그러므로 사단이 자신보다 못한 자가 맡은 주권을 빼앗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악과는 바로 그 악의 세력, 사단에게 주권을 빼앗기지 않게 하는 하나님의 방비책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려 먹지 않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살고, 믿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실물을 통해 보여 주신 것이다. 악이 이미 존재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악의 세력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알게 하여 경계하신 것이다.
•영감의 교훈 •
▶ 우주는 완전하게 창조되었음
“사랑의 율법이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므로 모든 피조물들은 그 큰 원칙에 완전히 일치함으로써 행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봉사, 곧 주님의 성품을 이지적(理智的)으로 이해함으로 생기는 경배를 드리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강제적인 충성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셔서 그들이 주님께 자발적 봉사를 할 수 있게 하신다”(각 시대의 대쟁투, 493).
셋째 날(화)
4월 5일 완전한 피조물의 타락
도입)
천사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상적 존재인가? 세상에서는 ‘마음씨 곱고 어진 사람’의 비유로 ‘천사’의 의미를 사용한다. 그래서 흔히 하얀 제복을 입은 간호사들을 비유해서 ‘백의의 천사’라 부르기도 한다. ‘수호천사’라는 가톨릭적인 개념도 연약한 어린아이나 여자들을 지켜주는 사람이나 혹은 그러한 어떤 존재로 쓰이고 있다. 이외에도 ‘천사’라는 개념은 세상의 여러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천사’는 실존이 아니라,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가상적 존재로 그 개념이 굳어질 우려가 있다. 성경은 관념적 존재에 대하여 기록한 글이 아니라 실존하는 세 영적 존재, 곧 하나님과 천사와 인간의 활동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천사의 활동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자가 사역한 실제적 활동이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천사의 실존과 그 실제적 활동들’은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천사가 실존하고 있으며, 실제로 활동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사야 14장에는 천사장 루스벨의 타락하는 양상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타락하는 양상에 대하여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사 14:12∼14 참고). a) 내가 하늘에 오르리라 b) 내가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c)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d)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오르리라 e)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이 중에서 d) 항목을 보면,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오르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구름보다 높은 곳에 계신다.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적 표현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천사들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구름에 오른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을 수종드는 모든 천사들보다 더 높은,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겠다는 교만을 드러낸 것이다. 모든 천사들보다 더 높은, 가장 높은 자가 되어 지극히 높은 하나님과 비기겠다는 것이다.
예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라는 신이 있다. 제우스와 마미아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메스는 웅변의 신이며 죽은 사람을 하데스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그런데 이 헤르메스가 안내자 노릇을 하는 동안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가 인간으로 변장하고 유명한 조각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제일 먼저 그의 눈에 제우스신의 동상이 띄었다. 그는 저 동상의 값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조각가는 1000만원이라고 대답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상 옆에 있는 헤라 여신을 보고 얼마냐고 물었다. 조각가는 1500만원이라고 대답했다. 헤르메스는 작업실 한구석에 자기 동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은근히 기뻐하면서 저것은 얼마냐고 물었다. 속으로 그는 아마 자기 것이 제일 비싸려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자 조각가가 대답하기를 “저것은 다른 조각을 사면 덤으로 그냥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처럼 어려운 게 없다. 소크라테스가 누누이 강조한 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었다. 논어에도 자기를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련스러운 사람은 자기 분수는커녕 헤르메스처럼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리고 그 미련에 교만이 겹치면 헛바람을 타고 엉뚱한 과대망상을 하게 된다. 사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교만하다.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다 교만이라고 하는 병에 걸려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 때문에 교만하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지위 때문에 교만하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지식 때문에 교만해 진다. 미모가 뛰어난 사람은 미모 때문에 교만해 진다.
실제에 대한 우리의 제한된 시야로 인하여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루스벨은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온갖 아름다운 보석으로 수놓인 옷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라(겔 28장). 그는 분명 대단한 존재였을 것이다.
겔 28:13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를 덮고 있는 각종 귀한 보석들에 대한 언급 후에 본문은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루스벨이 입고 있던 옷은 분명 그의 높은 지위를 반영한다. 이번 기 교과를 통하여 알게 되겠지만, 옷은 우리의 지위와 신분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드러낸다. 의복에 이런 의미가 있다면 루스벨은 분명 권세와 영향력을 가진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
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 28:17).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3~14).
교훈: 모든 지혜와 영광과 풍요를 하나님께 받은 루스벨은 그러한 사실을 잊고 교만하여 타락에 빠지고 말았다.
부가적용)
피조물이 허욕을 일으키면 교만하여 제 분수를 잃게 된다. 신약에 와서는 가룟유다로 이어진다. 처음부터 마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구도자가 사심을 일으킬 때 마귀가 된다. 제 분수, 제 지위를 이탈해서 사심을 품으면 마귀로 돌변한다. 고라도 처음은 모세와 아론의 선량한 사촌이었었으나 마음에 욕심을 일으키니 마귀가 사주하게 되었다. 로마 교회와 기독교와 개교회의 끝없는 분열은 제분수를 알지 못하는 추악한 탐욕으로 인해서이다. 이 탐욕은 좋고 나쁨, 귀하고 천함이라는 상대적 가치에 의해서 발생하는 분열이다. 아담이후 인간의 마음에는 상대적 의식의 열매들이 맺혀서 상대가 없는 절대와 둘이 아닌 하나 인식할 수가 없다.
•영감의 교훈 •
▶ 교만은 타락의 시작임
“그의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에도 이 힘센 천사는 그것을 자기 자신의 소유인 양 생각하게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35).
넷째 날(수)
4월 6일 하나님이 되기를 원함
도입)
죄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교만이다. 모든 죄는 교만으로부터 시작한다. 교만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죄는 교만이요 가장 궁극적인 죄도 교만이다. 교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열심히 노력을 다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노력해 보면 안다. 그래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핵심이 겸손이다. 우리가 성령의 비추심으로 내 속에는 어떠한 선한 것도 없기에 그래서 내 스스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가 필요해서 애통하는 심령으로 주님을 찾는 그 겸손한 심령이 거룩한 삶의 시초이다. 율법주의 신앙의 핵심에는 교만이 있다. 교만이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율법주의 신앙 뒤에는 사단이 있다.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8:44)고 하셨다. 이들은 당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하는 자들이고, 누구보다 철저히 종교생활 한 자들이다. 누구보다 철저히 헌금을 드리고, 누구보다 철저히 구제한 자들이고,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한 자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타가 인정하는 성경박사들로. 누구보다 더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한 자들이다. 그들은 행위로 완벽한 자라고 할 만큼 종교생활한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말씀하셨고, 또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5:37-38)고 하셨다. 왜 그런지 무엇이 문제인지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노력을 신뢰했다. 자기를 신뢰하는 것이 교만이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자기들의 기준에 비춰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들은 더 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무시하고 멸시했다. 그들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행실들만 중요시 여겼지 그 중심은 하나님 앞에서 통회함으로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하는 그 겸손한 마음이 없었다. 왜 비춰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마음이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처럼 율법주의 신앙의 핵심은 교만이고, 교만은 자기의 의를 신뢰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겔 28:4).
교훈: 루스벨을 타락으로 이끌었던 동기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부가적용)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여기에서 ‘지극히 높은 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런데 왜 “지극히 높은 자보다 내가 더 높아지리라.” 하지 않고,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했을까? 이는 가장 높은 자보다 더 높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 위에는 없으니까 “비기리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마음이 바로 마귀의 마음이다.
예화)
윌리엄 케리라는 유명한 선교사가 있다. 그는 언어에도 능통하여 성경을 34개 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영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윌리엄 케리를 위한 만찬회가 열렸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으레 못된 사람이 끼게 마련이다. 그곳에도 윌리엄 케리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에 시기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케리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무례한 질문을 했다. “선생님, 당신은 젊었을 때에 구두를 만드는 직공이었다면서요?” 순간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런데 윌리엄 케리는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매님께서는 잘못 알고 계십니다. 저는 구두를 만들 줄 모릅니다. 저는 구두를 만들던 사람이 아니라 깁던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신다가 헤진 구두를 깁는 직공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케리의 겸손에 고개를 숙였다. 인간의 마음은 교만의 창고이다. 그 교만의 창고의 문이 입이고, 열쇠는 말이다. 그래서 교만은 언제나 말로 나타난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그 교만이 드디어 고개를 들고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감의 교훈 •
▶ 욕망은 패망을 낳음
“하늘 무리들 중에 최고의 영광을 누리면서도 그는 자기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감히 창조주만이 받으실 수 있는 존경을 탐냈다. 그는 모든 피조물들이 그들의 애정과 충성에 하나님을 최고로 삼도록 노력하는 대신에 그들의 봉사와 충절을 자기 자신이 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이 천사장은 무한하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부여하신 영광을 탐내고 그리스도만이 가지신 대권(大權)을 갈망하였다”(부조와 선지자, 35).
다섯 째 날(목)
4월 7일 지구에 온 사단
도입)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인간의 행복한 삶을 비트는 존재가 있다. 그가 바로 사단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려는 참 행복의 방해자가 있다. 그는 언제나 인간의 참된 행복을 방해하고 비튼다. 멀쩡한 욥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고 여러 가지로 시험을 가져다 준 사단은 인간의 참 행복의 방해꾼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모든 축복의 방해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귀는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인간의 행복을 왜곡시켜 왔다. 그리고 지금도 이 땅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참된 행복을 비틀어온 진정한 괴수요 죄의 창시자이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있음을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만이 우리의 참 행복이 유지되고 지켜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사단의 타락은 하늘뿐 아니라 지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늘에서의 그의 반역은 우리가 종종 “대쟁투”라고 부르는 모습으로 이 땅에서도 나타났다. 이것은 가상이 아닌 실제로 벌어진 고통스러운 일이며 또한 우리 모두와 관련된 일이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계 12:11~12).
여기서 우리는 어떤 소망과 경고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일로 인하여, 우리는 대쟁투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다. 그리스도의 완전의 옷을 입은 자들은 모두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영생을 보장해주는 구원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한다.
사단은 우리를 속이고 그리스도와의 구원의 관계로부터 돌아서도록 만들기 위해 참으로 여러 방법으로 일한다. 그는 심지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이러한 일들을 하기도 한다. 간혹 우리는 그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는 영적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벧전 5:8).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지금 우리는 이미 패배한 적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사단은 이미 패했다. 그의 패배는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싸워 이길 수는 없다. 대신 그를 이미 완전히 패배시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소망과 능력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승리를 믿음과 순종 가운데서 우리의 것으로 주장한다면 분명 우리도 승리하게 된다.
교훈: 사단은 하늘에서 시작된 대쟁투에 인간들을 끌어들였지만,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미 그는 패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주를 따르는 자는 승리하게 된다.
부가적용)
교회예배에서 돌아온 호기심이 많은 한 소년이 작은 목공소를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찾아 달려 들어와서는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말했다. "할아버지, 오늘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어요. 사단이 우리를 유혹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죄를 짓게 만든데요." "그래, 아주 중요한 걸 배웠구나." 할아버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어린 손자를 보며 흐뭇해 하셨다. "얘야, 그런데 사단이 우리를 어떻게 유혹하는지 알고 있니?" 손자에게 질문을 한 할아버지는 이내 구석에서 굵은 장작 하나를 갖고 오셨다. 그리고 성냥을 그어 그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몇 번을 시도 하셨다. 그러나 그 장작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자, 보아라. 이렇게 굵은 나무에는 아무리 성냥으로 불을 붙이려고 해도 안되지 않니? 그런데 이제 잘 보렴." 할아버지는 바닥에서 대팻밥을 긁어모아 거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나무 토막을 놓아 불길을 더 크게 일으킨 후, 그 굵은 장작을 얹었다. 그러자 비로소 그 굵은 장작도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를 지켜보는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대팻밥은 금방 불이 붙으니까 먼저 대팻밥에 불을 붙이고, 그 불에 작은 나무를 얹어가면서 불길을 더 크게 만드는거야. 그러면 결국 굵은 나무도 타들어 가지 않니? 바로 이와 같이 사단은 우리를 별 것 아닌 작은 일부터 서서히, 그리고 아주 은밀하게 유혹해 온단다." 그렇다. 조금씩 은밀하게 미혹하여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사단의 무리들. 우리는 얼마나 이런 유혹을 각성하고 있는가? (부당한 욕망은 즐긴 후 형벌이 뒤따른다. 그러나 불가능한 욕망은 욕망 자체 내에 형벌이 포함되어 있다.)
•영감의 교훈 •
▶ 사단의 변장술
“사단은 그럴 듯한 유혹으로 그리스도를 정복하려고 계획하였을 때 성경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지 않았던가? 사단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방법도 이와 같은데 선한 외모를 띄운 채 자신의 유혹을 가장하고 자신을 인간의 원수라기보다 친구로 믿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사단은 인류를 기만하고 타락시켰으며 음험한 유혹으로 속이고 그럴 듯한 속임수로 갈
피를 못 잡게 한다”(부모와 교사 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7).
예비일(금)
4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35~43 “죄가 용납된 이유”, 349 “성막과 그 봉사”, 시대의 소망, 464 “생명의 빛”, 재림교회 성경주석 8권, 278~280.
“사단이 흑암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덮어서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개입하신다. 비록 그들이 죄를 범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에서 나무 조각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인류를 끄집어내셨다”(실물교훈, 169).
“죄는 거룩한 천사들의 수장이었던 자의 변절로 인하여 세상에 들어왔다. 무엇이 이처럼 엄청난 변화, 충성의 변질, 영예롭던 자의 배교를 불러왔는가? 이에 대한 답은 주어졌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주님께서 덮는 그룹을 그처럼 아름답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광영을 주지 않으셨더라면, 아름다움과 능력과 광영의 선물 가운데 부족함이 있었더라면, 사단은 핑계 댈 것이 있었을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대총회 회보, 1897. 3. 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도덕성과 자유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자유를 배제한 진정한 도덕성이 있을까요? 강요받고, 자유로운 선택이 없는 “윤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진정한 도덕성이라 할 수 있을까요?
➋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사단은 여전히 부족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사단과 같은 태도를 보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을 멈출 수 있을까요?
4월 9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1분
도입)
욥의 이야기는 인생의 고뇌, 환난 등의 근본 원인과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 인생을 논하는 철학이나 어떤 사상이나 종교는 그 모든 것의 헛됨을 보여주고 있다. 인생을 안다고 입을 연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하나같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인생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근본적인 원인, 즉 인간이 죄를 지은 과정이라든가 인간이 고통을 당하게 된 실상, 죽음이 온 이유 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타락설을 꾸며 낸 신화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인간의 죽음, 병고, 기타 여러 가지 고통의 원인이 사단에게서 온 것임을 설명해 주고 있으나 사람들은 사단을 시인하지 않기 때문에 사단에게서 해방되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사단과 싸우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단을 알게 되면 사단과 함께 운명을 같이할 수 없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사단은 인간의 역사가 있기 전, 즉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원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부리는 천사 루스벨이었다. 그가 창조되었을 때는 아직 이 세상이 있기 전으로, 천사들에게는 군대의 조직과 같이 대장이 있고 그 밑의 천사들도 있었다. 성경에 미가엘이니 가브리엘이니 하는 천사장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로보아 각기 직무가 따로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의 루스벨이라는 천사장도 하늘 군대의 대장으로서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가진 힘이 대단한 것같이 느껴져 하나님처럼 자기도 최고의 위치에서 숭배를 받을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그는 자신의 군졸들과 함께 쫓겨나서 천사의 영광스러운 직무를 행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사단이다.
기억절 :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첫째 날(일)
4월 3일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
도입)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얼마나 귀하고 엄숙하고 권세 있는 말씀인가! 세상 어느 종교에도 그 교주가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은 없다. 오직 기독교의 성경 첫머리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엄숙히 선언함으로써 천지만물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마디 가운데서 기독교의 신관(神觀) 우주관(宇宙觀) 역사관(歷史觀) 인생관(人生觀)을 발견하여 주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교훈: 하나님은 이 세상을 무에서 창조하셨고, 우주에는 인간들이 밝히지 못한 창조의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부가적용)
이 창조는 없는데서 있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미 있는 그 무엇을 바탕이나 재료로 삼아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만물을 만들어 낸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만든 것은 창조라고 하지 않고 제조(製造)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가지고 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들이 지혜와 기술을 가지고 여러 가지의 것을 만들 수가 있지마는 생명(生命)만은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 뿐 아니라 개미의 생명도 만들 수 없다. 아니 풀 한 포기의 생명도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창조부분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피조자(被造者)요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다윈의 진화론도, 스피노자의 범신론도, 자연과학자들의 자연유출설을 배격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은 이것을 임의로 쓸 수 없다. 우주는 주의 것이니 그 안에 주가 계시므로 우주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주는 일정한 법칙 하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쓰려면 그 법칙에 복종해야 되는 것처럼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모든 것이 주의 것이니 주만 섬겨야 평화가 오는 것이다.
둘째 날(월)
4월 4일 아름답고 완전한 피조물
도입)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 되었었도다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 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되게 하였도다" (겔28:14-17) 위의 성경구절은 천사장 루스벨이 타락하여 루스벨이라는 죄의 원흉인 사단이 된 것을 두로 왕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루스벨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찬양을 담당하는 천사로서 모든 천사들 위에 뛰어나게 아름다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런데 아름다운 천사장 루스벨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였다.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자기의 위치를 떠나 창조주와 같이 되고자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자 하나님에게서 분리 되게 되었고 곧 사단(반역자, 원수)이 되었다.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네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사14:11-15) 이 구절 역시도 바벨론 왕을 비유하여 사단의 타락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계명성"이라고 한 것은 라틴어에서 온 말로 영어에서는 루시퍼(샛별, 금성)으로 번역하고 있다(KJV) 샛별이 어둠이 가장 짙은 새벽, 모든 별들이 다 지고 난 후에 홀로 떠서 밝은 빛을 내는 것을 스스로 살고자 하는 사단의 교만한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루스벨"의 '루시'는 광명한, 빛나는 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Lux'가 유래 되었다. 우리가 루스벨이라 부르지만 루스엘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천사를 부를 때 미가엘, 가브리엘, 루스엘로 끝에 엘을 두는 것은 '엘'은 전능자 하나님(엘로힘)이 부리시는 천사란 뜻으로 천사들의 이름의 끝에 붙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겔 28:13).
교훈: 천사들은 사랑이 충만한 환경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며 그 가운데서도 루스벨은 가장 높은 지위와 영광을 부여받았다.
부가적용)
사단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하나님이 이 광활한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 자신이 그 주권자가 되고 섬김의 대상이 되고 싶어 타락한 존재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악에 대해 경계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통치권을 아담에게 주셨지만, 그 주권을 탐을 내고 있는 자, 간교하고 꾀가 많고 악한 자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느 모로 보나 천사보다는 못한 존재였다. 힘으로 보나 지혜로 보나 지위로 보나 천사보다 열등한 존재였고 장차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까지 오를 자였으나 아직 미완성인 상태였다. 그러므로 사단이 자신보다 못한 자가 맡은 주권을 빼앗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악과는 바로 그 악의 세력, 사단에게 주권을 빼앗기지 않게 하는 하나님의 방비책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려 먹지 않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살고, 믿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실물을 통해 보여 주신 것이다. 악이 이미 존재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악의 세력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알게 하여 경계하신 것이다.
•영감의 교훈 •
▶ 우주는 완전하게 창조되었음
“사랑의 율법이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므로 모든 피조물들은 그 큰 원칙에 완전히 일치함으로써 행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봉사, 곧 주님의 성품을 이지적(理智的)으로 이해함으로 생기는 경배를 드리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강제적인 충성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셔서 그들이 주님께 자발적 봉사를 할 수 있게 하신다”(각 시대의 대쟁투, 493).
셋째 날(화)
4월 5일 완전한 피조물의 타락
도입)
천사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상적 존재인가? 세상에서는 ‘마음씨 곱고 어진 사람’의 비유로 ‘천사’의 의미를 사용한다. 그래서 흔히 하얀 제복을 입은 간호사들을 비유해서 ‘백의의 천사’라 부르기도 한다. ‘수호천사’라는 가톨릭적인 개념도 연약한 어린아이나 여자들을 지켜주는 사람이나 혹은 그러한 어떤 존재로 쓰이고 있다. 이외에도 ‘천사’라는 개념은 세상의 여러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천사’는 실존이 아니라,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가상적 존재로 그 개념이 굳어질 우려가 있다. 성경은 관념적 존재에 대하여 기록한 글이 아니라 실존하는 세 영적 존재, 곧 하나님과 천사와 인간의 활동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천사의 활동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자가 사역한 실제적 활동이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천사의 실존과 그 실제적 활동들’은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천사가 실존하고 있으며, 실제로 활동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사야 14장에는 천사장 루스벨의 타락하는 양상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타락하는 양상에 대하여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사 14:12∼14 참고). a) 내가 하늘에 오르리라 b) 내가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c)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d)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오르리라 e)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이 중에서 d) 항목을 보면,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오르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구름보다 높은 곳에 계신다.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적 표현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천사들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구름에 오른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을 수종드는 모든 천사들보다 더 높은,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겠다는 교만을 드러낸 것이다. 모든 천사들보다 더 높은, 가장 높은 자가 되어 지극히 높은 하나님과 비기겠다는 것이다.
예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라는 신이 있다. 제우스와 마미아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메스는 웅변의 신이며 죽은 사람을 하데스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그런데 이 헤르메스가 안내자 노릇을 하는 동안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가 인간으로 변장하고 유명한 조각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제일 먼저 그의 눈에 제우스신의 동상이 띄었다. 그는 저 동상의 값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조각가는 1000만원이라고 대답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상 옆에 있는 헤라 여신을 보고 얼마냐고 물었다. 조각가는 1500만원이라고 대답했다. 헤르메스는 작업실 한구석에 자기 동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은근히 기뻐하면서 저것은 얼마냐고 물었다. 속으로 그는 아마 자기 것이 제일 비싸려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자 조각가가 대답하기를 “저것은 다른 조각을 사면 덤으로 그냥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처럼 어려운 게 없다. 소크라테스가 누누이 강조한 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었다. 논어에도 자기를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련스러운 사람은 자기 분수는커녕 헤르메스처럼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리고 그 미련에 교만이 겹치면 헛바람을 타고 엉뚱한 과대망상을 하게 된다. 사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교만하다.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다 교만이라고 하는 병에 걸려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 때문에 교만하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지위 때문에 교만하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지식 때문에 교만해 진다. 미모가 뛰어난 사람은 미모 때문에 교만해 진다.
실제에 대한 우리의 제한된 시야로 인하여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루스벨은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온갖 아름다운 보석으로 수놓인 옷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라(겔 28장). 그는 분명 대단한 존재였을 것이다.
겔 28:13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를 덮고 있는 각종 귀한 보석들에 대한 언급 후에 본문은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루스벨이 입고 있던 옷은 분명 그의 높은 지위를 반영한다. 이번 기 교과를 통하여 알게 되겠지만, 옷은 우리의 지위와 신분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드러낸다. 의복에 이런 의미가 있다면 루스벨은 분명 권세와 영향력을 가진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
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 28:17).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3~14).
교훈: 모든 지혜와 영광과 풍요를 하나님께 받은 루스벨은 그러한 사실을 잊고 교만하여 타락에 빠지고 말았다.
부가적용)
피조물이 허욕을 일으키면 교만하여 제 분수를 잃게 된다. 신약에 와서는 가룟유다로 이어진다. 처음부터 마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구도자가 사심을 일으킬 때 마귀가 된다. 제 분수, 제 지위를 이탈해서 사심을 품으면 마귀로 돌변한다. 고라도 처음은 모세와 아론의 선량한 사촌이었었으나 마음에 욕심을 일으키니 마귀가 사주하게 되었다. 로마 교회와 기독교와 개교회의 끝없는 분열은 제분수를 알지 못하는 추악한 탐욕으로 인해서이다. 이 탐욕은 좋고 나쁨, 귀하고 천함이라는 상대적 가치에 의해서 발생하는 분열이다. 아담이후 인간의 마음에는 상대적 의식의 열매들이 맺혀서 상대가 없는 절대와 둘이 아닌 하나 인식할 수가 없다.
•영감의 교훈 •
▶ 교만은 타락의 시작임
“그의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에도 이 힘센 천사는 그것을 자기 자신의 소유인 양 생각하게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35).
넷째 날(수)
4월 6일 하나님이 되기를 원함
도입)
죄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교만이다. 모든 죄는 교만으로부터 시작한다. 교만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죄는 교만이요 가장 궁극적인 죄도 교만이다. 교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열심히 노력을 다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노력해 보면 안다. 그래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핵심이 겸손이다. 우리가 성령의 비추심으로 내 속에는 어떠한 선한 것도 없기에 그래서 내 스스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가 필요해서 애통하는 심령으로 주님을 찾는 그 겸손한 심령이 거룩한 삶의 시초이다. 율법주의 신앙의 핵심에는 교만이 있다. 교만이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율법주의 신앙 뒤에는 사단이 있다.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8:44)고 하셨다. 이들은 당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하는 자들이고, 누구보다 철저히 종교생활 한 자들이다. 누구보다 철저히 헌금을 드리고, 누구보다 철저히 구제한 자들이고,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한 자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타가 인정하는 성경박사들로. 누구보다 더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한 자들이다. 그들은 행위로 완벽한 자라고 할 만큼 종교생활한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말씀하셨고, 또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5:37-38)고 하셨다. 왜 그런지 무엇이 문제인지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노력을 신뢰했다. 자기를 신뢰하는 것이 교만이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자기들의 기준에 비춰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들은 더 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무시하고 멸시했다. 그들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행실들만 중요시 여겼지 그 중심은 하나님 앞에서 통회함으로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하는 그 겸손한 마음이 없었다. 왜 비춰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마음이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처럼 율법주의 신앙의 핵심은 교만이고, 교만은 자기의 의를 신뢰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겔 28:4).
교훈: 루스벨을 타락으로 이끌었던 동기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부가적용)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여기에서 ‘지극히 높은 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런데 왜 “지극히 높은 자보다 내가 더 높아지리라.” 하지 않고,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했을까? 이는 가장 높은 자보다 더 높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 위에는 없으니까 “비기리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마음이 바로 마귀의 마음이다.
예화)
윌리엄 케리라는 유명한 선교사가 있다. 그는 언어에도 능통하여 성경을 34개 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영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윌리엄 케리를 위한 만찬회가 열렸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으레 못된 사람이 끼게 마련이다. 그곳에도 윌리엄 케리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에 시기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케리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무례한 질문을 했다. “선생님, 당신은 젊었을 때에 구두를 만드는 직공이었다면서요?” 순간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런데 윌리엄 케리는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매님께서는 잘못 알고 계십니다. 저는 구두를 만들 줄 모릅니다. 저는 구두를 만들던 사람이 아니라 깁던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신다가 헤진 구두를 깁는 직공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케리의 겸손에 고개를 숙였다. 인간의 마음은 교만의 창고이다. 그 교만의 창고의 문이 입이고, 열쇠는 말이다. 그래서 교만은 언제나 말로 나타난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그 교만이 드디어 고개를 들고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감의 교훈 •
▶ 욕망은 패망을 낳음
“하늘 무리들 중에 최고의 영광을 누리면서도 그는 자기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감히 창조주만이 받으실 수 있는 존경을 탐냈다. 그는 모든 피조물들이 그들의 애정과 충성에 하나님을 최고로 삼도록 노력하는 대신에 그들의 봉사와 충절을 자기 자신이 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이 천사장은 무한하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부여하신 영광을 탐내고 그리스도만이 가지신 대권(大權)을 갈망하였다”(부조와 선지자, 35).
다섯 째 날(목)
4월 7일 지구에 온 사단
도입)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인간의 행복한 삶을 비트는 존재가 있다. 그가 바로 사단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려는 참 행복의 방해자가 있다. 그는 언제나 인간의 참된 행복을 방해하고 비튼다. 멀쩡한 욥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고 여러 가지로 시험을 가져다 준 사단은 인간의 참 행복의 방해꾼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모든 축복의 방해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귀는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인간의 행복을 왜곡시켜 왔다. 그리고 지금도 이 땅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참된 행복을 비틀어온 진정한 괴수요 죄의 창시자이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있음을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만이 우리의 참 행복이 유지되고 지켜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사단의 타락은 하늘뿐 아니라 지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늘에서의 그의 반역은 우리가 종종 “대쟁투”라고 부르는 모습으로 이 땅에서도 나타났다. 이것은 가상이 아닌 실제로 벌어진 고통스러운 일이며 또한 우리 모두와 관련된 일이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계 12:11~12).
여기서 우리는 어떤 소망과 경고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일로 인하여, 우리는 대쟁투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다. 그리스도의 완전의 옷을 입은 자들은 모두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영생을 보장해주는 구원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한다.
사단은 우리를 속이고 그리스도와의 구원의 관계로부터 돌아서도록 만들기 위해 참으로 여러 방법으로 일한다. 그는 심지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이러한 일들을 하기도 한다. 간혹 우리는 그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는 영적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벧전 5:8).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지금 우리는 이미 패배한 적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사단은 이미 패했다. 그의 패배는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싸워 이길 수는 없다. 대신 그를 이미 완전히 패배시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소망과 능력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승리를 믿음과 순종 가운데서 우리의 것으로 주장한다면 분명 우리도 승리하게 된다.
교훈: 사단은 하늘에서 시작된 대쟁투에 인간들을 끌어들였지만,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미 그는 패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주를 따르는 자는 승리하게 된다.
부가적용)
교회예배에서 돌아온 호기심이 많은 한 소년이 작은 목공소를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찾아 달려 들어와서는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말했다. "할아버지, 오늘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어요. 사단이 우리를 유혹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죄를 짓게 만든데요." "그래, 아주 중요한 걸 배웠구나." 할아버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어린 손자를 보며 흐뭇해 하셨다. "얘야, 그런데 사단이 우리를 어떻게 유혹하는지 알고 있니?" 손자에게 질문을 한 할아버지는 이내 구석에서 굵은 장작 하나를 갖고 오셨다. 그리고 성냥을 그어 그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몇 번을 시도 하셨다. 그러나 그 장작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자, 보아라. 이렇게 굵은 나무에는 아무리 성냥으로 불을 붙이려고 해도 안되지 않니? 그런데 이제 잘 보렴." 할아버지는 바닥에서 대팻밥을 긁어모아 거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나무 토막을 놓아 불길을 더 크게 일으킨 후, 그 굵은 장작을 얹었다. 그러자 비로소 그 굵은 장작도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를 지켜보는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대팻밥은 금방 불이 붙으니까 먼저 대팻밥에 불을 붙이고, 그 불에 작은 나무를 얹어가면서 불길을 더 크게 만드는거야. 그러면 결국 굵은 나무도 타들어 가지 않니? 바로 이와 같이 사단은 우리를 별 것 아닌 작은 일부터 서서히, 그리고 아주 은밀하게 유혹해 온단다." 그렇다. 조금씩 은밀하게 미혹하여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사단의 무리들. 우리는 얼마나 이런 유혹을 각성하고 있는가? (부당한 욕망은 즐긴 후 형벌이 뒤따른다. 그러나 불가능한 욕망은 욕망 자체 내에 형벌이 포함되어 있다.)
•영감의 교훈 •
▶ 사단의 변장술
“사단은 그럴 듯한 유혹으로 그리스도를 정복하려고 계획하였을 때 성경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지 않았던가? 사단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방법도 이와 같은데 선한 외모를 띄운 채 자신의 유혹을 가장하고 자신을 인간의 원수라기보다 친구로 믿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사단은 인류를 기만하고 타락시켰으며 음험한 유혹으로 속이고 그럴 듯한 속임수로 갈
피를 못 잡게 한다”(부모와 교사 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7).
예비일(금)
4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35~43 “죄가 용납된 이유”, 349 “성막과 그 봉사”, 시대의 소망, 464 “생명의 빛”, 재림교회 성경주석 8권, 278~280.
“사단이 흑암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덮어서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개입하신다. 비록 그들이 죄를 범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에서 나무 조각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인류를 끄집어내셨다”(실물교훈, 169).
“죄는 거룩한 천사들의 수장이었던 자의 변절로 인하여 세상에 들어왔다. 무엇이 이처럼 엄청난 변화, 충성의 변질, 영예롭던 자의 배교를 불러왔는가? 이에 대한 답은 주어졌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주님께서 덮는 그룹을 그처럼 아름답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광영을 주지 않으셨더라면, 아름다움과 능력과 광영의 선물 가운데 부족함이 있었더라면, 사단은 핑계 댈 것이 있었을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대총회 회보, 1897. 3. 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도덕성과 자유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자유를 배제한 진정한 도덕성이 있을까요? 강요받고, 자유로운 선택이 없는 “윤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진정한 도덕성이라 할 수 있을까요?
➋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사단은 여전히 부족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사단과 같은 태도를 보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을 멈출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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