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존귀함에서 떨어짐(질문, 대딥, 부가설명)0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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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4-01 15:48 조회8,269회 댓글2건본문
4월 9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1분
기억절 :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연구 범위: 요 1:1~3, 골 1:16~17, 겔 28:12~19, 신 8:1~18, 사 14:12~14, 고후 11:14.
오늘 기억절은 성경에서 가장 심오한 말씀 가운데 하나이다. 완전과 불의라는 두 개의 핵심 단어가 눈에 띤다. 그런데 불의가 완전 속에 숨어있다. 이는 하늘의 완전함 속에 불의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다. 완전이 불의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불의가 “완전하게” 창조된 존재 가운데서 발견될 수 있었겠는가? 완전함 속에 불의의 가능성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완전한 창조물에게 불의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위의 말씀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완전”이라는 개념이 자유, 도덕적 자유, 옳고 그름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인간이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겠는가? 한 회사가 음란, 게임, 기타 비도덕적인 사이트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한다면, 아무도 그 프로그램을 ‘도덕적이다.’ 혹은 ‘자유롭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이 그의 복장을 특별히 언급할 정도로 루스벨은 크게 높임을 받은 존재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남용한 결과 그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우리는 그의 비극적z인 실수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안교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루스벨의 영적 교만이 하늘과 지상에서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배경과 결과를 설명한다.
➋느끼기 : 루스벨처럼 영적인 긍지를 소중히 여기기보다 감사와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각양 선물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른다.
➌행하기 :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최상권과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분과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고백한다.
결론: 자신의 은사에 대하여 자만심이 커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구함으로써 루스벨은 마음속으로 죄를 키워갔고, 다른 존재들에게 의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늘에 전쟁이 일어나고 이 땅에 비극이 이르러왔습니다.
첫째날(일)
4월 3일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
질문1: 어떤 사람은 “어떻게 이 세상에 유가 무를 대신하게 됐는가?” 물었다. 아마도 이것은 모든 질문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 1:1~3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앞의 질문에 대하여 뭐라고 답하고 있는가?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답: 태초에 계신 말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부가설명> 무에서 유를 이끌어냈다는 말은 성경에 롬4:17에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이해할 때 다답을 얻게 된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출3:14,15)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다. 스스로 있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일 수 없다. 그는 그의 존재를 자기 외의 누구에겐가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를 자기 이외의 누구에겐가 의지하고 있는 존재는 그 의지한 자가 없으면 그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경배의 대상이 되려면 스스로 있어야 하고 스스로 있는 자 외의 모든 것은 스스로 있는 자에 의하여 있게 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스스로 있는 자요 자신들을 있게 한 분에게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그분 이름이 여호와이다. 이 이름은 스스로 계신 분이 아니면 결코 취할 수 없는 유일한 이름이다.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을 유일하시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호와를 유일하시다고 하였다. 이 유일하신 여호와가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다. 이사야 37:16에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 유일하다는 말은 “바드” 신6:4이나 슥14:9의 오직 하나, 홀로 하나라는 말과 다른 원어이다. 이것은 “엑하드”이다. 하나님은 삼위로 계시지만 그 삼위 하나님은 같은 이름 유일한 이름 여호와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다 여호와이며 이 이름은 오직 하나이며 홀로 하나인 이름이다. 이렇게 스스로 계신 분께서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없는데서 이끌어내어 있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안다.(히11:3) 이것을 믿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 존재 근거와 이유와 원인을 잃어버린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없는 자로 자인하는 것이 된다.
질문2: 골 1:16~17을 읽어보라. 우리가 대개 매일 보는 것들 외에 하나님은 또 어떤 것들을 창조하셨는가?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관하여 우리는 얼마나 겸손해 질 필요가 있을까?
[골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답: 창조주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를 창조하셨다. 우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이런 문제들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우러날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는 분이시며 창조주이시다. 창조주라는 뜻은 여호와시라는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분이시기 때문에 만물을 창조하실 수 있으시다. 그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만물보다 크시다. 그래서 그가 창조한 만물은 그분 안에 서 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면 그분 안에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거인이 된다.(히11:38) 이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의 실상이다. 이렇게 되면 그는 봉사하는 능력을 가진 자가 된다. 그래서 세상에서 예수님이 봉사하신 것처럼 봉사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 없이는 자기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되며, 보이지 않는 세계도 보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생활하게 된다.(엡1:18) 우리 육안으로 육신의 감각으로 보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교만이다.
교훈: 하나님은 이 세상을 무에서 창조하셨고, 우주에는 인간들이 밝히지 못한 창조의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둘째날(월)
4월 4일 아름답고 완전한 피조물
질문: 겔 28:12~19을 읽어보라. 루스벨에 관하여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는 어떤 의복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는가?
[겔28:12~19]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곗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답: 루시퍼는 보석으로 단장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옷이기도 했다. 그는 덮는 그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 보좌 곁에서 그분을 시종하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였다. 그는 이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는 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부가설명> 교과의 저자는 완전함에도 불의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완전은 불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진짜로 완전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설명은 완전을 도덕성으로 보는 시각이다. 물론 그런 시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근본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언한다. 이 창조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낸 것이다.(롬4:17) 여기서 대조되는 것은 없는 것과 있는 것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있는 자”라는 뜻이다. 스스로 있는 분이 “있어라”하시니 있었다. 그분이 있으라 하지 않았다면 없다. 없는 것은 있는 것의 반대 현상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므로 있게 된 루시퍼가 그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는 없어지게 된다. 그것이 불의이며 불완전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도록 만들어놓은 것을 망가뜨리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 아닌가. 그래서 불의요 불완전이다. 이것을 도덕적 측면에서 살피면 완전에도 불의가 숨어 있다고 말하게 된다. 성경은 존재와 생명을 중심으로 의와 죄, 선과 악을 구분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그대로 있을 때 모든 도덕적 선함이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망치면 그 자체로 썩게 되고 마침내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된다. 우리는 생명을 택하고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한 대로 존재하는 쪽에 서야 한다.
교훈: 천사들은 사랑이 충만한 환경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며 그 가운데서도 루스벨은 가장 높은 지위와 영광을 부여받았다.
셋째날(화)
4월 5일 완전한 피조물의 타락
질문1: 겔 28:17을 읽어보라. 본문에 의하면 루스벨을 떨어지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어떤 중요한 기별을 들어야 하는가?
[겔28: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답: 루시퍼가 아름답고 지혜롭고 영화로웠기 때문에 교만하게 되도 자기를 더럽히고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질문2: 신 8:1~18을 읽어보라. 그대는 여기서 어떤 원칙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은 루스벨에게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신8:1~18]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답: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이 된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들이 이룰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자기 스스로의 지혜와 능력으로 얻었다고 결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부가설명>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내용을 생각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나의 존재와 생명에 대한 것이다. 재물 얻을 능력이나, 연구하고 발명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생명과 존재는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현재 존재하고 생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사고의 시초로 삼을 때 루시퍼의 자리에 빠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선악을 논할 때, 죄와 의를 논할 때, 이런 오류에 빠져 있다. 이미 자기는 존재하고 있다는데서 출발한다는 말이다. 물론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존재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는 것이다.(행17:28) 그런데 이런 존재도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이지만 일정 기간 육체의 생명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으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15:5)
교훈: 모든 지혜와 영광과 풍요를 하나님께 받은 루스벨은 그러한 사실을 잊고 교만하여 타락에 빠지고 말았다.
넷째날(수)
4월 6일 하나님이 되기를 원함
질문: 루스벨의 타락을 묘사하고 있는 사 14:12~14을 읽어보라. 여기서 어떤 원칙들이 작용하고 있는가? 유혹과 투쟁 중에 있는 우리는 그 원칙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사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답: 루시퍼는 마음에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의 보좌에 좌정하려고 했다. 교만한 마음이 그를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피조물은 창조주가 될 수 없다. 창조주를 인정하고 그분에게 순복하는 것이 피조물의 가장 행복한 길이다.
<부가설명> 루시퍼는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려고 했다. 집회의 산은 여호와 하나님이 모여서 회의하는 장소였던 것 같다.(렘23:18) 피조물인 루시퍼가 그 자리에 좌정하려고 한 것은 자기도 여호와라고 주장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은 아무리 탁월해도 창조주가 될 수 없다. 창조주로부터 그 존재를 받아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창조주는 여호와이시다. 그분은 스스로 있는 분이다. 그 존재를 다른데서 받은 것이 아니다. 존재 근원과 이유가 다 여호와라 하신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 모든 피조물들은 피조물로서의 창조주가 지정해준 그 위치에서 창조주의 뜻을 받드는 것이 가장 복된 자리에 있는 것이다. 루시퍼는 하나님께서 있게 한 그 자리를 떠나고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다.(유6) 우리도 우리가 있어야할 그 자리를 바르게 지켜야 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 하나님께서 있게 한 그 자리를 떠난 사실을 지적하는 의미가 들어 있는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교훈: 루스벨을 타락으로 이끌었던 동기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다섯째날(목)
4월 7일 지구에 온 사탄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질문1: 계12:7~12을 읽어보라. 이 본문은 무엇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어떤 소망과 경고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가?
[계12:7~12]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답: 사단이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내어 쫓기는 사건을 가르쳐준다. 그 사단은 크게 분내어 땅으로 내려와서 성도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이미 이겼고, 사단이 멸망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인내로 이 난국을 보내야 하는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질문2: 바울이 어떤 정황 속에서 말하고 있는지 고후 11:14을 자세히 읽어보라. 우리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어떤 중요한 기별을 본문에서 배울 수 있는가?
[고후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답: 거짓 사도들이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것과 관련하여 준 경고의 기별이다. 역사적으로 교회 안에서 사단은 마치 광명한 천사처럼, 그의 일꾼들을 의의 일꾼처럼 가장하여 교회를 교란하였다. 그 결과 교회는 바벨론이 되었다. 우리는 기록한 말씀위에 올바르고 굳건하게 서서 이런 사실들을 바르게 분별하여 어린양의 피와 증거의 말씀으로 승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거짓 사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재림교회 아닌 다른 교단에서만 활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좁은 소견이다. 사단은 역사적으로 교회를 교란하여 진리 교회와 비슷한 오류 교회를 만들어 세상을 기만하고 많은 교인들을 기만하였지만 또한 여자의 남은 자손인 재림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활동한다. 예언의 신의 증언을 멋지게 인용하면서 활동한다. 그것은 마치 다른 교단에서 성경을 멋지게 사용하면서 활동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 안에서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 말씀으로 바르게 분별하도록 겸손하게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승리는 오직 어인양의 피와 증거하는 말씀으로 이긴다.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바른 증거를 할 수 없고 그릇 증거하는 말씀 안에는 사단의 속임수가 있다. 우리는 항상 이것이 그런가 하여 말씀을 겸손하게 살펴서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진리 교회 안에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속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말 깨어 조심해야 할 것이다.
교훈: 사탄은 하늘에서 시작된 대쟁투에 인간들을 끌어들였지만,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미 그는 패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주를 따르는 자는 승리하게 된다.
예비일(금)
4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35~43 “죄가 용납된 이유”, 349 “성막과 그 봉사”, 시대의 소망, 464 “생명의 빛”, 재림교회 성경주석 8권, 278~280.
“사탄이 흑암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덮어서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개입하신다. 비록 그들이 죄를 범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에서 나무 조각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인류를 끄집어내셨다”(실물교훈, 169).
“죄는 거룩한 천사들의 수장이었던 자의 변절로 인하여 세상에 들어왔다. 무엇이 이처럼 엄청난 변화, 충성의 변질, 영예롭던 자의 배교를 불러왔는가? 이에 대한 답은 주어졌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주님께서 덮는 그룹을 그처럼 아름답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광영을 주지 않으셨더라면, 아름다움과 능력과 광영의 선물 가운데 부족함이 있었더라면, 사탄은 핑계 댈 것이 있었을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대총회 회보, 1897. 3. 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도덕성과 자유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자유를 배제한 진정한 도덕성이 있을까요? 강요받고, 자유로운 선택이 없는 “윤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진정한 도덕성이라 할 수 있을까요?
* 물론 그런 것은 진정한 도덕성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재로 하는 논의이다. 생각해보라. 사람들 중에 누가 자기의 자유의지로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런 사람은 결코 없다. 존재와 생명은 정말 자유가 없다. 그것은 무조건 먼저 있는 자의 선택일 뿐이다. 창조주의 무조건적인 선택으로 우주와 인류는 존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창조주는 사람들에게나 모든 지성적인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선택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의 선택을 거절하면 그는 창조를 반납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그것이 선악과 문제이다. 천사들에게는 어떤 조건이 주어졌는지 모른다. 그들의 세계에도 분명히 어떤 조건이 있었을 것이다. 루시퍼는 그 조건을 거절했다. 결과 그는 그의 존재를 반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패배하여 하늘에서 쫓겨났다. 그가 지구에 와서 사람들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도록 유혹하여 그가 반납할 수밖에 없는 자기의 존재와 생명이 좀더 연장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의 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존재한다는 전재를 가지고 도덕성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존재와 생명 자체에 대하여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복음의 진정한 상태를 깨닫게 된다. 복음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을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사단의 계교에 빠져 사망이 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딤후1:10)
➋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사탄은 여전히 부족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사탄과 같은 태도를 보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을 멈출 수 있을까요?
* 사단이 부족을 느꼈다면 그것은 창조주를 올바르게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바르게 알았다면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의 보좌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호6:3) 여호와와 그 이름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달으면 우리는 루시퍼의 사고방식이 감히 엿보지 못할 것이다.
일몰:오후 7시 1분
기억절 :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연구 범위: 요 1:1~3, 골 1:16~17, 겔 28:12~19, 신 8:1~18, 사 14:12~14, 고후 11:14.
오늘 기억절은 성경에서 가장 심오한 말씀 가운데 하나이다. 완전과 불의라는 두 개의 핵심 단어가 눈에 띤다. 그런데 불의가 완전 속에 숨어있다. 이는 하늘의 완전함 속에 불의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다. 완전이 불의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불의가 “완전하게” 창조된 존재 가운데서 발견될 수 있었겠는가? 완전함 속에 불의의 가능성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완전한 창조물에게 불의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위의 말씀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완전”이라는 개념이 자유, 도덕적 자유, 옳고 그름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인간이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겠는가? 한 회사가 음란, 게임, 기타 비도덕적인 사이트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한다면, 아무도 그 프로그램을 ‘도덕적이다.’ 혹은 ‘자유롭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이 그의 복장을 특별히 언급할 정도로 루스벨은 크게 높임을 받은 존재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남용한 결과 그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우리는 그의 비극적z인 실수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안교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루스벨의 영적 교만이 하늘과 지상에서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배경과 결과를 설명한다.
➋느끼기 : 루스벨처럼 영적인 긍지를 소중히 여기기보다 감사와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각양 선물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른다.
➌행하기 :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최상권과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분과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고백한다.
결론: 자신의 은사에 대하여 자만심이 커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구함으로써 루스벨은 마음속으로 죄를 키워갔고, 다른 존재들에게 의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늘에 전쟁이 일어나고 이 땅에 비극이 이르러왔습니다.
첫째날(일)
4월 3일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
질문1: 어떤 사람은 “어떻게 이 세상에 유가 무를 대신하게 됐는가?” 물었다. 아마도 이것은 모든 질문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 1:1~3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앞의 질문에 대하여 뭐라고 답하고 있는가?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답: 태초에 계신 말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부가설명> 무에서 유를 이끌어냈다는 말은 성경에 롬4:17에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이해할 때 다답을 얻게 된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출3:14,15)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다. 스스로 있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일 수 없다. 그는 그의 존재를 자기 외의 누구에겐가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를 자기 이외의 누구에겐가 의지하고 있는 존재는 그 의지한 자가 없으면 그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경배의 대상이 되려면 스스로 있어야 하고 스스로 있는 자 외의 모든 것은 스스로 있는 자에 의하여 있게 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스스로 있는 자요 자신들을 있게 한 분에게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그분 이름이 여호와이다. 이 이름은 스스로 계신 분이 아니면 결코 취할 수 없는 유일한 이름이다.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을 유일하시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호와를 유일하시다고 하였다. 이 유일하신 여호와가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다. 이사야 37:16에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 유일하다는 말은 “바드” 신6:4이나 슥14:9의 오직 하나, 홀로 하나라는 말과 다른 원어이다. 이것은 “엑하드”이다. 하나님은 삼위로 계시지만 그 삼위 하나님은 같은 이름 유일한 이름 여호와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다 여호와이며 이 이름은 오직 하나이며 홀로 하나인 이름이다. 이렇게 스스로 계신 분께서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없는데서 이끌어내어 있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안다.(히11:3) 이것을 믿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 존재 근거와 이유와 원인을 잃어버린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없는 자로 자인하는 것이 된다.
질문2: 골 1:16~17을 읽어보라. 우리가 대개 매일 보는 것들 외에 하나님은 또 어떤 것들을 창조하셨는가?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관하여 우리는 얼마나 겸손해 질 필요가 있을까?
[골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답: 창조주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를 창조하셨다. 우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이런 문제들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우러날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는 분이시며 창조주이시다. 창조주라는 뜻은 여호와시라는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분이시기 때문에 만물을 창조하실 수 있으시다. 그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만물보다 크시다. 그래서 그가 창조한 만물은 그분 안에 서 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면 그분 안에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거인이 된다.(히11:38) 이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의 실상이다. 이렇게 되면 그는 봉사하는 능력을 가진 자가 된다. 그래서 세상에서 예수님이 봉사하신 것처럼 봉사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 없이는 자기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되며, 보이지 않는 세계도 보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생활하게 된다.(엡1:18) 우리 육안으로 육신의 감각으로 보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교만이다.
교훈: 하나님은 이 세상을 무에서 창조하셨고, 우주에는 인간들이 밝히지 못한 창조의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둘째날(월)
4월 4일 아름답고 완전한 피조물
질문: 겔 28:12~19을 읽어보라. 루스벨에 관하여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는 어떤 의복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는가?
[겔28:12~19]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곗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답: 루시퍼는 보석으로 단장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옷이기도 했다. 그는 덮는 그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 보좌 곁에서 그분을 시종하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였다. 그는 이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는 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부가설명> 교과의 저자는 완전함에도 불의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완전은 불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진짜로 완전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설명은 완전을 도덕성으로 보는 시각이다. 물론 그런 시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근본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언한다. 이 창조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낸 것이다.(롬4:17) 여기서 대조되는 것은 없는 것과 있는 것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있는 자”라는 뜻이다. 스스로 있는 분이 “있어라”하시니 있었다. 그분이 있으라 하지 않았다면 없다. 없는 것은 있는 것의 반대 현상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므로 있게 된 루시퍼가 그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는 없어지게 된다. 그것이 불의이며 불완전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도록 만들어놓은 것을 망가뜨리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 아닌가. 그래서 불의요 불완전이다. 이것을 도덕적 측면에서 살피면 완전에도 불의가 숨어 있다고 말하게 된다. 성경은 존재와 생명을 중심으로 의와 죄, 선과 악을 구분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그대로 있을 때 모든 도덕적 선함이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망치면 그 자체로 썩게 되고 마침내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된다. 우리는 생명을 택하고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한 대로 존재하는 쪽에 서야 한다.
교훈: 천사들은 사랑이 충만한 환경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며 그 가운데서도 루스벨은 가장 높은 지위와 영광을 부여받았다.
셋째날(화)
4월 5일 완전한 피조물의 타락
질문1: 겔 28:17을 읽어보라. 본문에 의하면 루스벨을 떨어지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어떤 중요한 기별을 들어야 하는가?
[겔28: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답: 루시퍼가 아름답고 지혜롭고 영화로웠기 때문에 교만하게 되도 자기를 더럽히고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질문2: 신 8:1~18을 읽어보라. 그대는 여기서 어떤 원칙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은 루스벨에게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신8:1~18]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답: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이 된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들이 이룰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자기 스스로의 지혜와 능력으로 얻었다고 결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부가설명>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내용을 생각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나의 존재와 생명에 대한 것이다. 재물 얻을 능력이나, 연구하고 발명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생명과 존재는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현재 존재하고 생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사고의 시초로 삼을 때 루시퍼의 자리에 빠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선악을 논할 때, 죄와 의를 논할 때, 이런 오류에 빠져 있다. 이미 자기는 존재하고 있다는데서 출발한다는 말이다. 물론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존재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는 것이다.(행17:28) 그런데 이런 존재도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이지만 일정 기간 육체의 생명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으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15:5)
교훈: 모든 지혜와 영광과 풍요를 하나님께 받은 루스벨은 그러한 사실을 잊고 교만하여 타락에 빠지고 말았다.
넷째날(수)
4월 6일 하나님이 되기를 원함
질문: 루스벨의 타락을 묘사하고 있는 사 14:12~14을 읽어보라. 여기서 어떤 원칙들이 작용하고 있는가? 유혹과 투쟁 중에 있는 우리는 그 원칙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사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답: 루시퍼는 마음에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의 보좌에 좌정하려고 했다. 교만한 마음이 그를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피조물은 창조주가 될 수 없다. 창조주를 인정하고 그분에게 순복하는 것이 피조물의 가장 행복한 길이다.
<부가설명> 루시퍼는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려고 했다. 집회의 산은 여호와 하나님이 모여서 회의하는 장소였던 것 같다.(렘23:18) 피조물인 루시퍼가 그 자리에 좌정하려고 한 것은 자기도 여호와라고 주장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은 아무리 탁월해도 창조주가 될 수 없다. 창조주로부터 그 존재를 받아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창조주는 여호와이시다. 그분은 스스로 있는 분이다. 그 존재를 다른데서 받은 것이 아니다. 존재 근원과 이유가 다 여호와라 하신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 모든 피조물들은 피조물로서의 창조주가 지정해준 그 위치에서 창조주의 뜻을 받드는 것이 가장 복된 자리에 있는 것이다. 루시퍼는 하나님께서 있게 한 그 자리를 떠나고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다.(유6) 우리도 우리가 있어야할 그 자리를 바르게 지켜야 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 하나님께서 있게 한 그 자리를 떠난 사실을 지적하는 의미가 들어 있는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교훈: 루스벨을 타락으로 이끌었던 동기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다섯째날(목)
4월 7일 지구에 온 사탄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질문1: 계12:7~12을 읽어보라. 이 본문은 무엇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어떤 소망과 경고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가?
[계12:7~12]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답: 사단이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내어 쫓기는 사건을 가르쳐준다. 그 사단은 크게 분내어 땅으로 내려와서 성도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이미 이겼고, 사단이 멸망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인내로 이 난국을 보내야 하는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질문2: 바울이 어떤 정황 속에서 말하고 있는지 고후 11:14을 자세히 읽어보라. 우리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어떤 중요한 기별을 본문에서 배울 수 있는가?
[고후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답: 거짓 사도들이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것과 관련하여 준 경고의 기별이다. 역사적으로 교회 안에서 사단은 마치 광명한 천사처럼, 그의 일꾼들을 의의 일꾼처럼 가장하여 교회를 교란하였다. 그 결과 교회는 바벨론이 되었다. 우리는 기록한 말씀위에 올바르고 굳건하게 서서 이런 사실들을 바르게 분별하여 어린양의 피와 증거의 말씀으로 승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거짓 사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재림교회 아닌 다른 교단에서만 활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좁은 소견이다. 사단은 역사적으로 교회를 교란하여 진리 교회와 비슷한 오류 교회를 만들어 세상을 기만하고 많은 교인들을 기만하였지만 또한 여자의 남은 자손인 재림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활동한다. 예언의 신의 증언을 멋지게 인용하면서 활동한다. 그것은 마치 다른 교단에서 성경을 멋지게 사용하면서 활동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 안에서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 말씀으로 바르게 분별하도록 겸손하게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승리는 오직 어인양의 피와 증거하는 말씀으로 이긴다.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바른 증거를 할 수 없고 그릇 증거하는 말씀 안에는 사단의 속임수가 있다. 우리는 항상 이것이 그런가 하여 말씀을 겸손하게 살펴서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진리 교회 안에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속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말 깨어 조심해야 할 것이다.
교훈: 사탄은 하늘에서 시작된 대쟁투에 인간들을 끌어들였지만,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미 그는 패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주를 따르는 자는 승리하게 된다.
예비일(금)
4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35~43 “죄가 용납된 이유”, 349 “성막과 그 봉사”, 시대의 소망, 464 “생명의 빛”, 재림교회 성경주석 8권, 278~280.
“사탄이 흑암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덮어서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개입하신다. 비록 그들이 죄를 범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에서 나무 조각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인류를 끄집어내셨다”(실물교훈, 169).
“죄는 거룩한 천사들의 수장이었던 자의 변절로 인하여 세상에 들어왔다. 무엇이 이처럼 엄청난 변화, 충성의 변질, 영예롭던 자의 배교를 불러왔는가? 이에 대한 답은 주어졌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주님께서 덮는 그룹을 그처럼 아름답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광영을 주지 않으셨더라면, 아름다움과 능력과 광영의 선물 가운데 부족함이 있었더라면, 사탄은 핑계 댈 것이 있었을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대총회 회보, 1897. 3. 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도덕성과 자유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자유를 배제한 진정한 도덕성이 있을까요? 강요받고, 자유로운 선택이 없는 “윤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진정한 도덕성이라 할 수 있을까요?
* 물론 그런 것은 진정한 도덕성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재로 하는 논의이다. 생각해보라. 사람들 중에 누가 자기의 자유의지로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런 사람은 결코 없다. 존재와 생명은 정말 자유가 없다. 그것은 무조건 먼저 있는 자의 선택일 뿐이다. 창조주의 무조건적인 선택으로 우주와 인류는 존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창조주는 사람들에게나 모든 지성적인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선택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의 선택을 거절하면 그는 창조를 반납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그것이 선악과 문제이다. 천사들에게는 어떤 조건이 주어졌는지 모른다. 그들의 세계에도 분명히 어떤 조건이 있었을 것이다. 루시퍼는 그 조건을 거절했다. 결과 그는 그의 존재를 반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패배하여 하늘에서 쫓겨났다. 그가 지구에 와서 사람들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도록 유혹하여 그가 반납할 수밖에 없는 자기의 존재와 생명이 좀더 연장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의 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존재한다는 전재를 가지고 도덕성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존재와 생명 자체에 대하여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복음의 진정한 상태를 깨닫게 된다. 복음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을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사단의 계교에 빠져 사망이 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딤후1:10)
➋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사탄은 여전히 부족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사탄과 같은 태도를 보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을 멈출 수 있을까요?
* 사단이 부족을 느꼈다면 그것은 창조주를 올바르게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바르게 알았다면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의 보좌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호6:3) 여호와와 그 이름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달으면 우리는 루시퍼의 사고방식이 감히 엿보지 못할 것이다.
댓글목록
반현권님의 댓글
반현권 작성일
성경은 "존재와 생명"을 중심으로 의와 죄, 선과 악을 구분한다.
이 말씀이 가장 핵심인 것 같습니다.
전상환님의 댓글
전상환 작성일목사님 ...교과해설에 늘 감사드립니다.늘 건강하십시요 따님과 고등학교 동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