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기 11과 영과 진리로(교과 한장으로 토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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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주 작성일11-08-31 14:36 조회3,815회 댓글1건첨부파일
- 제3기 11과 영과 진리로.hwp (48.0K) 306회 다운로드 DATE : 2011-08-31 14:36:33
본문
서론
▸요 4:23절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주석들이 있어왔다. 또한 번역도 다양하게 나타났다. “영과 진리” “신령과 진정” “영과 진리 안에” “영적인 진실한”등이다. 그러면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예배를 일컫는 말인가? 그것은 필시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가 들어간 예배가 아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예배일 것이다. 성령의 인도가 없이는 성령의 열매를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과 의지는 늘 죄악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결코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는 언제는 충만한 은혜와 감동이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나타내신다. 성령의 조명만이 그분의 존재와 사역을 가장 분명하고 바르게 나타내실 수 있으시다.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이해 될 때 진정한 경배와 찬양이 우리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올 것이다.
(일) 마리아의 노래
▸예배는 그분의 하신 기이하신 일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이 포함된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구속 행위는 만대에 찬양과 존귀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록 하였다. 마리아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자신이 그분의 구속 사역의 부분에 동참하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어 감을 알고 감사하였다.
▸(눅 7:16, 개역)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 보셨다 하더라』하나님의 돌아보심(God has visited his people today.)에 대한 이해는 마리아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였다. 이것은 임마누엘에 대한 이해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진정한 예배가 우러나오게 된다. 마리아는 미천한 자신을 돌아보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였다.
(월) 예배와 섬김
▸예배에는 바람과 소원, 그리고 사모함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바란다. 그분을 기대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분께 소원을 두고 기분을 기다린다. 이것이 예배이다. 그래서 진정한 예배에는 다른 존재가 끼어들 수 없다. 한 사람과 데이트를 하면서 다른 이성을 생각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부정이다.
▸우리는 예배(사랑)하는 것을 섬기게 되어 있다. 우리가 죄를 사랑하면 죄의 종이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면 그분을 섬기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함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존재가 예배적인 존재이다. 창조주를 섬기지 않으면 누군가나 무언가를 섬기게 되어 있다. 가장 문명국에서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까지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속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주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예배한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예배하는 것을 보고 그 알지 못하는 신이 누구인지를 설교하였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면 사람들은 예배의 본질 보다는 그 형식이나 전통에 치중 할 가능성이 크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관계에 목적을 두지만 그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모르면 형식을 강조하게 된다.
(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어디에서(Where) 예배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How) 예배하는가가 더 중요한다.
▸교과의 저자는 영과 진리를 감정과 생활이라는 양면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두가지면이라기 보다 하나의 다른 표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순종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거룩한 것과 같이 그는 그의 백성들이 거룩하고, 순결하고, 깨끗하기를 요구하신다. 이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그분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을 것이다.”(원고 125, 1907)
(목) 그분의 발 아래 예배함
▸하나님은 (빌 2:10, 개정)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신다. 그분이 성육하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으나 부활하심으로 그분 스스로의 생명을 증명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예배를 받으신다.
결론
예배는 신적 존재와 피조물의 사랑의 관계이며 시간이다. 그분을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고 예배할 수 밖에 없다. 영원이라는 시간도 부족할 뿐이다.
토의 사항
1. 세상의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면서 기꺼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묵묵히 그 길을 가겠는가?
만일 당신이 마리아라면 ...
2. 그대는 예배자인가 예배의 구경꾼인가?
3. 우리교회의 예배의 형식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도록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는가?
4. 예배에 있어서 균형의 중요성에 관하여 토의해 보자.
▸요 4:23절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주석들이 있어왔다. 또한 번역도 다양하게 나타났다. “영과 진리” “신령과 진정” “영과 진리 안에” “영적인 진실한”등이다. 그러면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예배를 일컫는 말인가? 그것은 필시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가 들어간 예배가 아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예배일 것이다. 성령의 인도가 없이는 성령의 열매를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과 의지는 늘 죄악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결코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는 언제는 충만한 은혜와 감동이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나타내신다. 성령의 조명만이 그분의 존재와 사역을 가장 분명하고 바르게 나타내실 수 있으시다.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이해 될 때 진정한 경배와 찬양이 우리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올 것이다.
(일) 마리아의 노래
▸예배는 그분의 하신 기이하신 일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이 포함된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구속 행위는 만대에 찬양과 존귀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록 하였다. 마리아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자신이 그분의 구속 사역의 부분에 동참하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어 감을 알고 감사하였다.
▸(눅 7:16, 개역)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 보셨다 하더라』하나님의 돌아보심(God has visited his people today.)에 대한 이해는 마리아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였다. 이것은 임마누엘에 대한 이해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진정한 예배가 우러나오게 된다. 마리아는 미천한 자신을 돌아보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였다.
(월) 예배와 섬김
▸예배에는 바람과 소원, 그리고 사모함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바란다. 그분을 기대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분께 소원을 두고 기분을 기다린다. 이것이 예배이다. 그래서 진정한 예배에는 다른 존재가 끼어들 수 없다. 한 사람과 데이트를 하면서 다른 이성을 생각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부정이다.
▸우리는 예배(사랑)하는 것을 섬기게 되어 있다. 우리가 죄를 사랑하면 죄의 종이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면 그분을 섬기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함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존재가 예배적인 존재이다. 창조주를 섬기지 않으면 누군가나 무언가를 섬기게 되어 있다. 가장 문명국에서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까지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속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주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예배한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예배하는 것을 보고 그 알지 못하는 신이 누구인지를 설교하였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면 사람들은 예배의 본질 보다는 그 형식이나 전통에 치중 할 가능성이 크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관계에 목적을 두지만 그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모르면 형식을 강조하게 된다.
(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어디에서(Where) 예배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How) 예배하는가가 더 중요한다.
▸교과의 저자는 영과 진리를 감정과 생활이라는 양면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두가지면이라기 보다 하나의 다른 표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순종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거룩한 것과 같이 그는 그의 백성들이 거룩하고, 순결하고, 깨끗하기를 요구하신다. 이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그분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을 것이다.”(원고 125, 1907)
(목) 그분의 발 아래 예배함
▸하나님은 (빌 2:10, 개정)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신다. 그분이 성육하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으나 부활하심으로 그분 스스로의 생명을 증명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예배를 받으신다.
결론
예배는 신적 존재와 피조물의 사랑의 관계이며 시간이다. 그분을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고 예배할 수 밖에 없다. 영원이라는 시간도 부족할 뿐이다.
토의 사항
1. 세상의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면서 기꺼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묵묵히 그 길을 가겠는가?
만일 당신이 마리아라면 ...
2. 그대는 예배자인가 예배의 구경꾼인가?
3. 우리교회의 예배의 형식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도록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는가?
4. 예배에 있어서 균형의 중요성에 관하여 토의해 보자.
댓글목록
복있는사람님의 댓글
복있는사람 작성일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