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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기, 9과 미혹하는 말을 믿지 말라(과과 한장으로 토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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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주 작성일11-08-24 01:45 조회3,949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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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배의 시간을 준수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예배만 드리면 삶은 어떻게 살든지 상관 없다는 말은 가장 치명적이고 기만적이 미혹이다. 그리스도인의 예배와 삶은 절대 구분되지 않는다. 예배는 삶이요 삶의 연장이며 마침이다. 거짓된 삶과 구별되지 못한 삶을 살면서 예배를 드림으로 만족하는 것은 도적질한 물건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열의 하나가 거룩한 것처럼 열의 아홉도 거룩하다. 예배는 삶의 마침이며 목적이고 연장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그 말과 삶이 일치하는 진실무망한 사람들을 찾으신다.

(일) 천천의 수양


▸인간의 어떠함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구약의 죄인들이 어린양을 가지고 나아갔듯이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그분께 나아 갈 수 있다. 우리의 어떤 선행도 하나님 앞에 우리를 내세울 수 없다. 심지어 아름다운 헌물과 예물도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러면 공의와 자비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 삶에 보여질 선행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그것은 바로 관계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리면서 형제를 미워하고 무자비하다면 그 예배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찾으시는 예배 예수의 보혈을 힘입어 겸손하며 공의와 자비를 베푸는 자의 거룩한 예배이다.

(월) 이사야를 부르심

▸이사아가 부름을 받던 시기는 유다의 큰 왕 웃시아의 죽던 해였다. 남방 유다는 북방왕국과는 달리 국가적 풍요를 웃시아 왕 때에 누리고 있었다. 웃시아의 서거는 이사야 사역의 성격을 보여주는 하나의 전조였다. 백성들의 삶에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명목적이며 죄악들이 숨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국가적 기운은 쇠퇴의 길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부름 받은 선지자의 자세는 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준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자신의 불의를 탄원-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은혜 경험-사명에 대한 반응    

(화)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사1:11절은 예배 무용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언제나 성경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형식과 순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알맹이가 빠진 것은 헛된 것이 된다. 그럴지라도 알맹이를 담을 그릇이 없다면 알맹이가 유용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예배의 핵심을 놓치지않은 경건한 예배를 드리자
▸예배는 하나님 그분 자신을 받는 구별된 시간이다. 그분이 우리 안에 내주 하도록 우리를 내어 드리는 시간이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면 그 생명의 빛이 우리 삶에 반영되게 된다.  사랑과 자비가 실천 될 것이다.

(수) 다 허망하도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들이다. 당신도 나도, 그리고 그들도... 영원한 것은 오직 그분과 그분의 말씀뿐이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목숨을 걸고, 마음을 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허망한 것들에 시간을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그분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시간을 드리는 것도 아니며 종교적 형식의 과정을 마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영원한 실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인격체이신 그분을 만나고 그 만남으로 그분을 알고 이해하며 그 사랑을 받아 그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가치가 있으며 영원하신 분을 우리 삶에 재현하는 것이다. 아들은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처럼 예배를 통하여 그 아들 예수를 경험한 자들을 본 자는 아들을 본 것처럼 되어야 한다.  

(목)
▸겉치레, 허식, 위장, 거짓부흥 이런 것들은 교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요소들이다. 우리는 예배시간을 꼬박 채우고도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성전을 떠날 수도 있다. 우리는 안식일 24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면서 안식일을 기억하지 못 할 수 있다. 우리는 찬미를 입술로 부르면서 가사의 한절도 찬양하지 않을 수 있다. 예배에서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집중시키지 않고, 예배를 받으실 분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단지 인간의 행위를 더하는 거짓에 불과하다.    

결론

성전은 그분이 계시기에 성전이다. 성전에서는 그분을 바라보는 시간만이 예배에 해당된다. 우리의 예배에서 그분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토의 자료
1. 무의미한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그 실제적인 예를 들어 보자
2. 이사야는 자신의 입술의 부정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하늘 숯불이 어디에 닿기를 원하는가?
3.. 지금 내가 추구하는 것은 영원 한 것들인가 허망한 것들인가?

댓글목록

복있는사람님의 댓글

복있는사람 작성일

감사합니다^^

이병주님의 댓글

이병주 작성일

두주간 아프리카 선교를 다녀 왔습니다. 역시 우리는 세계적 한 교회임을 느꼈습니다.

안중환님의 댓글

안중환 작성일

목사님 수고가 많으셨읍니다.힘들고 먼길 다녀 오셨군요.다시 목사님의 요약들을 접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최성현님의 댓글

최성현 작성일

매주 목사님의 요약을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류현옥님의 댓글

류현옥 작성일

목사님  건강하세요  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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