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예배와 노래와 찬양(질문, 대답, 부가설명)0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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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7-28 21:21 조회8,846회 댓글1건본문
제6과 예배와 노래와 찬양
8월 6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36분
기억절 :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시 96:1).
연구 범위: 대상 16:8~36, 시 32:1~5, 51:1~6, 빌 4:8, 계 4:9~11, 5:9~13.
다윗 왕의 생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그의 생애와 통치가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의 선행과 악행을 통하여 많은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우리는 다윗과 그의 생애에서 몇 가지 예증을 들어 예배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예배해야 하고, 우리가 예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인지 더 심도 있게 연구하려고 한다. 우리는 다윗으로부터 경배와 찬양에 대한 많은 예를 볼 수 있다. 경배와 찬양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험에 있어서 다윗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경배하도록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 첫째 천사의 기별을 잊지 않는 한 예배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예배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예배해야 하며, 왜 예배해야 하는가? 예배에 있어서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참예배와 거짓 예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번 기에 우리는 예배로 초청하는 아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위의 질문들을 여러 방식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시 95:6~7).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다윗의 시편과 계시록의 찬양 속에 나타나 있는 예배의 주제들을 연구한다.
➋느끼기 : 구속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기 위하여 회개하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➌행하기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말하며 그분께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결론: 노래는 우리의 뉘우침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야기하며, 그분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전달 방법입니다.
첫째 날(일) 7월 31일
사울과 다윗의 차이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 32:5).
질문1: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다음의 성경절들을 살펴보라. 삼상 16:6~13, 17:45~47, 18:14, 24:10, 26:9, 30:6~8. 이 성경절들은 다윗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삼상16:6~13]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18:14]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삼상24: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삼상26: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삼상30:6~8]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답: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의분을 느꼈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였으며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존경하였다.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 묻고 그 지시를 따라 행동하였다.
질문2: 시 32:1~5, 51:1~6을 읽어 보라. 신앙생활에 필요한 어떤 중요한 개념이 여기에 나타나 있는가?
[시32:1~5]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시51:1~6]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답: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솔직히 시인하고 하나님께 자백하였다. 그는 정직한 마음으로 회개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시는 대로 수용하였다.
<부가설명> 다윗은 어릴 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경배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천연계에서 양떼를 돌보며 산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하며 노래하였고, 양떼가 목동인 자기를 따라 어디든지 가는 모습 속에서 영혼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법을 익혔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거인 골리앗을 이겼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와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여러 번 건졌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솔직히 시인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존경하였고, 그를 칠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자기 손으로 그를 치지 않는 신뢰를 나타내었다. 그가 왕이 되어서 엄청난 죄를 범하였어도 그는 곧 자복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를 처리하는 대로 자신을 맡기는 겸손함을 드러내었다. 도덕적 시각으로 본다면 사울의 죄는 다윗의 죄보다 훨씬 가볍게 보인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을 도덕적으로 엄청난 죄를 범하고도 그것이 지적되고 책망 받을 때에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였다. 다윗의 삶의 태도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모본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인도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사울은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은 채 계속 자신의 뜻대로 행했지만, 다윗은 진실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굴복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빌었다.
둘째 날(월) 8월 1일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질문: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의 예배에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이 말씀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두 대조적인 개념이 필연적으로 충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죄악 중에 출생한다.(시51:5)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고전15:22) 그래서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다.(엡2:3) 이런 상태로 거룩하시고 자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없다. 아직 육체의 생명으로 호흡하고 의식이 있을 때에 자신의 이런 상태를 깨닫고 진정한 회개를 경험해야 한다. 회개하는 마음은 통회하는 마음이고 상한 마음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영생의 기쁨을 주신다. 그때 비로소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예수 안에서 산 자가 되며,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신의 성품(벧후1:4) 곧 신의 본질에 참여한다. 벧후1:4의 성품이라고 번역된 말은 “휘시스”로서 본질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요 기쁨과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예배하는 자는 주 앞에서 기뻐하게 된다. 우리는 진정으로 상한 마음을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며 통회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놀라운 기쁨으로 기뻐해야 한다. 예배는 바로 그런 인격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한 것이다.
교훈: 상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깨달음으로 인해 우리가 예배의 중심에 계신 구세주와 십자가를 주목하기 때문이다.
셋째 날(화) 8월 2일
찬양의 노래와 예배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대상 16:8).
질문1: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에게 알려야 하는 과거의 사건들은 무엇인가?(대상 16:8, 12, 16~22). 그들은 하나님의 어떤 행위를 기억해야 했는가?(12, 15절)
[대상16:8,12, 15~22]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12 그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15 너희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16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17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8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19 때에 너희 인수가 적어서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20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21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22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답: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행사를 알려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기사와 이적과 판단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질문2: 이 감사 찬미의 삼분의 일은 언약을 회상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약은 예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답: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다. 예배는 이 언약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언약은 성경말씀에 계시되어 있다. 성경말씀과 말씀의 사상이 바로 예배의 기초이다. 그 말씀에 의하여 우리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한다. 그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우리에게 계시되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경배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을 경배할 기본적 이유를 두 가지 들고 있다. 하나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라는 것과 다음 하나는 구속 주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하신 언약은 구속(救贖)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더 기본적으로는 창조와 관련된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다윗의 노래는 중심이 구원이다. 사람은 창조로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맨 먼저 안식일을 맞아서 새벽별들의 노래와 하나님의 아들들의 기쁜 소리와 함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여 거룩하고 복되게 지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음으로 그들은 생명과 존재를 상실하게 되었다. 창조주께서는 다시 친히 여자의 씨로 세상에 오셔서 아담과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그의 후손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셔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하셨다. 이것이 구속이며 재창조이다. 사람들은 창조와 재창조로 생명의 존재가 되게 해 주신 여호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창조주를 경배할 수 없다. 그들의 상태는 사망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망에 있는 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시며 산 자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없다.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사38:18,19)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당연한 것이고, 그 구원의 기사와 이적과 판단을 기억하고 경배하며 찬양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이 경배와 찬양이 되고 있는지?
교훈: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과 언약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며 예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넷째 날(수) 8월 3일
다윗의 노래
“그때에 새벽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욥 38:7).
질문: 계 4:9~11, 5:9~13, 7:10~12, 14:1~3을 읽어 보라. 죄 없는 하늘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예배에 대하여 어떤 주제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계4:9~11]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5:9~13]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계7:10~12]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계14:1~3]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답: 하늘에서는 항상 창조주와 구속 주를 찬양하는 경배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창조와 구원을 경배와 찬양의 주제로 삼고 있다.
<부가설명> 경배와 찬양은 항상 동반하고 있다. 예배가 있는 곳에는 찬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찬양의 가사가 창조와 구원의 내용이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찬양의 가사에 보태어져야 한다. 우리의 예배에 진정한 구원의 경험의 기쁨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창조와 구원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성경의 하나님 외에는 행할 수 없는 생명을 주시고 존재를 확정하는 일이다. 그것은 스스로 계신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찬양하고 그분들에게 경배하는 것이다. 구원받아 영원한 나라에 갈지라도 창조와 구원을 이룬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경배와 찬양은 영원하다. 안식일에 예식을 갖추어 드리는 예배는 물론이지만 일상생활의 예배에도 찬양이 끊이지 않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입술의 열매라고 하며, 제사라고 하였다.(히13:15) 우리의 입술에 창조와 구원을 찬양하는 찬미의 제사를 끊지 말자.
교훈: 음악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도록 주신 선물이며, 우리의 삶과 예배에 있어서 뗄 수 없는 요소이다.
다섯째 날(목) 8월 4일
여호와께 새 노래로 찬양하라!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빌 4:8).
질문: 고전 10:31, 빌 4:8, 골 1:1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가 예배 시 사용하는 음악의 종류에 관하여 어떤 지침과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가?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빌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답: 찬양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가사와 가락이 있어야 한다.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이 있고 덕과 기림이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창조와 구속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어야 한다.
<부가설명> 찬양과 감사는 창조주 하나님께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자발적으로 감격해서 찬양하는 생활의 모습니다. 시인은 시편 148~150편에서 만물을 불러 찬양하라고 한다. 해와 달과 별들은 물론 산과 들과 나무도 다 창조주께 찬양해야 한다. 찬양은 경배의 한 형태이다. 그것은 그분은 스스로 계신분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구원을 창조한 만물을 보존하시는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붙드시는) 분이라고 말한다.(히1:2,3) 사람이 범죄로 인하여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것은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존하시는 창조주의 능력이 훼손된다. 사단은 그것을 노린 것이다. 스스로 보존되기를 거절하지 않은 피조물들은 다 창조주께서 보존하신다.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사업이지만 구원을 결코 바라지 않는 사람들, 아담 안에서 죽은 채로 있기로 굳힌 사람들은 또 그렇게 하신다. 그들은 흙으로 돌아가서 흙으로 유지될 뿐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창조와 구원의 주를 찬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예배와 찬양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도록 자기를 비우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살게 하는 생활로 오늘이라는 매일을 이어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교회 음악도 문화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고귀함을 나타내고, 생각을 고양시키며, 주님에게 마음을 기울일 수 있는 음악을 사용해야 한다.
예비일(금) 8월 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노래는 영적 진리로 마음을 감동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무겁게 짓눌리어 절망에 빠질 것 같은 심령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에 부른 노래의 가사에서 하나님의 몇 말씀을 기억하고, 그로 인하여 유혹이 힘을 잃고 삶은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갖고, 용서와 즐거움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나누어지는 실례가 얼마나 많은가!…
예배의 일부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기도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배의 행위이다. 사실, 많은 노래는 기도이다.…
구속주께서 우리를 영광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문어귀로 인도하실 때에, 우리는 보좌를 두른 하늘 합창대의 찬미와 감사의 주제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천사들의 노래의 메아리가 지상의 가정에서 반향될 때, 우리의 마음은 하늘의 가수(歌手)들에게 더 가까이 이끌릴 것이다. 하늘의 교제는 땅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 찬미의 기조(基調)를 배운다”(교육, 16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그대가 속한 사회나 문화는 교회 음악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대는 그런 영향은 없다고 부인하겠습니까?
※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요즘 일반 음악들은 거의가 록뮤직 리듬들처럼 들린다. 가락이나 리듬만으로는 예배 음악인지 대중음악인지 분별하기 힘드는 것 같다. 예배와 예배 음악의 중심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있는지 인간의 감성을 흥분시키는 것에 있는지 심각하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➋음악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인용문을 읽어 보십시오. 그대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통해 그대는 얼마나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예배에서 사용되는 음악의 역할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음악이 희망과 용기를 주고 교회에서 마땅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대의 교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요?
※ 복음성가의 가사들은 감동받을만한 것이 아주 많다. 그러나 가락이나 리듬에 대하여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감동보다는 흥분시키는 것이 표적이 된 가락이나 리듬이 아닌지? 흥분과 감동은 닮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위에 인용한 화잇의 글처럼 우리는 찬양의 노래로 하늘을 맛보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감격과 감동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예배 음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8월 6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36분
기억절 :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시 96:1).
연구 범위: 대상 16:8~36, 시 32:1~5, 51:1~6, 빌 4:8, 계 4:9~11, 5:9~13.
다윗 왕의 생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그의 생애와 통치가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의 선행과 악행을 통하여 많은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우리는 다윗과 그의 생애에서 몇 가지 예증을 들어 예배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예배해야 하고, 우리가 예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인지 더 심도 있게 연구하려고 한다. 우리는 다윗으로부터 경배와 찬양에 대한 많은 예를 볼 수 있다. 경배와 찬양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험에 있어서 다윗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경배하도록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 첫째 천사의 기별을 잊지 않는 한 예배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예배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예배해야 하며, 왜 예배해야 하는가? 예배에 있어서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참예배와 거짓 예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번 기에 우리는 예배로 초청하는 아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위의 질문들을 여러 방식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시 95:6~7).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다윗의 시편과 계시록의 찬양 속에 나타나 있는 예배의 주제들을 연구한다.
➋느끼기 : 구속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기 위하여 회개하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➌행하기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말하며 그분께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결론: 노래는 우리의 뉘우침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야기하며, 그분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전달 방법입니다.
첫째 날(일) 7월 31일
사울과 다윗의 차이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 32:5).
질문1: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다음의 성경절들을 살펴보라. 삼상 16:6~13, 17:45~47, 18:14, 24:10, 26:9, 30:6~8. 이 성경절들은 다윗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삼상16:6~13]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18:14]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삼상24: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삼상26: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삼상30:6~8]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답: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의분을 느꼈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였으며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존경하였다.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 묻고 그 지시를 따라 행동하였다.
질문2: 시 32:1~5, 51:1~6을 읽어 보라. 신앙생활에 필요한 어떤 중요한 개념이 여기에 나타나 있는가?
[시32:1~5]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시51:1~6]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답: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솔직히 시인하고 하나님께 자백하였다. 그는 정직한 마음으로 회개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시는 대로 수용하였다.
<부가설명> 다윗은 어릴 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경배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천연계에서 양떼를 돌보며 산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하며 노래하였고, 양떼가 목동인 자기를 따라 어디든지 가는 모습 속에서 영혼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법을 익혔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거인 골리앗을 이겼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와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여러 번 건졌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솔직히 시인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존경하였고, 그를 칠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자기 손으로 그를 치지 않는 신뢰를 나타내었다. 그가 왕이 되어서 엄청난 죄를 범하였어도 그는 곧 자복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를 처리하는 대로 자신을 맡기는 겸손함을 드러내었다. 도덕적 시각으로 본다면 사울의 죄는 다윗의 죄보다 훨씬 가볍게 보인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을 도덕적으로 엄청난 죄를 범하고도 그것이 지적되고 책망 받을 때에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였다. 다윗의 삶의 태도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모본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인도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사울은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은 채 계속 자신의 뜻대로 행했지만, 다윗은 진실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굴복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빌었다.
둘째 날(월) 8월 1일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질문: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의 예배에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이 말씀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두 대조적인 개념이 필연적으로 충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죄악 중에 출생한다.(시51:5)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고전15:22) 그래서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다.(엡2:3) 이런 상태로 거룩하시고 자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없다. 아직 육체의 생명으로 호흡하고 의식이 있을 때에 자신의 이런 상태를 깨닫고 진정한 회개를 경험해야 한다. 회개하는 마음은 통회하는 마음이고 상한 마음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영생의 기쁨을 주신다. 그때 비로소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예수 안에서 산 자가 되며,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신의 성품(벧후1:4) 곧 신의 본질에 참여한다. 벧후1:4의 성품이라고 번역된 말은 “휘시스”로서 본질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요 기쁨과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예배하는 자는 주 앞에서 기뻐하게 된다. 우리는 진정으로 상한 마음을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며 통회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놀라운 기쁨으로 기뻐해야 한다. 예배는 바로 그런 인격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한 것이다.
교훈: 상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깨달음으로 인해 우리가 예배의 중심에 계신 구세주와 십자가를 주목하기 때문이다.
셋째 날(화) 8월 2일
찬양의 노래와 예배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대상 16:8).
질문1: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에게 알려야 하는 과거의 사건들은 무엇인가?(대상 16:8, 12, 16~22). 그들은 하나님의 어떤 행위를 기억해야 했는가?(12, 15절)
[대상16:8,12, 15~22]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12 그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15 너희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16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17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8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19 때에 너희 인수가 적어서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20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21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22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답: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행사를 알려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기사와 이적과 판단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질문2: 이 감사 찬미의 삼분의 일은 언약을 회상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약은 예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답: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다. 예배는 이 언약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언약은 성경말씀에 계시되어 있다. 성경말씀과 말씀의 사상이 바로 예배의 기초이다. 그 말씀에 의하여 우리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한다. 그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우리에게 계시되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경배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을 경배할 기본적 이유를 두 가지 들고 있다. 하나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라는 것과 다음 하나는 구속 주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하신 언약은 구속(救贖)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더 기본적으로는 창조와 관련된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다윗의 노래는 중심이 구원이다. 사람은 창조로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맨 먼저 안식일을 맞아서 새벽별들의 노래와 하나님의 아들들의 기쁜 소리와 함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여 거룩하고 복되게 지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음으로 그들은 생명과 존재를 상실하게 되었다. 창조주께서는 다시 친히 여자의 씨로 세상에 오셔서 아담과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그의 후손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셔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하셨다. 이것이 구속이며 재창조이다. 사람들은 창조와 재창조로 생명의 존재가 되게 해 주신 여호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창조주를 경배할 수 없다. 그들의 상태는 사망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망에 있는 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시며 산 자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없다.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사38:18,19)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당연한 것이고, 그 구원의 기사와 이적과 판단을 기억하고 경배하며 찬양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이 경배와 찬양이 되고 있는지?
교훈: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과 언약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며 예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넷째 날(수) 8월 3일
다윗의 노래
“그때에 새벽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욥 38:7).
질문: 계 4:9~11, 5:9~13, 7:10~12, 14:1~3을 읽어 보라. 죄 없는 하늘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예배에 대하여 어떤 주제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계4:9~11]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5:9~13]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계7:10~12]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계14:1~3]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답: 하늘에서는 항상 창조주와 구속 주를 찬양하는 경배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창조와 구원을 경배와 찬양의 주제로 삼고 있다.
<부가설명> 경배와 찬양은 항상 동반하고 있다. 예배가 있는 곳에는 찬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찬양의 가사가 창조와 구원의 내용이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찬양의 가사에 보태어져야 한다. 우리의 예배에 진정한 구원의 경험의 기쁨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창조와 구원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성경의 하나님 외에는 행할 수 없는 생명을 주시고 존재를 확정하는 일이다. 그것은 스스로 계신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찬양하고 그분들에게 경배하는 것이다. 구원받아 영원한 나라에 갈지라도 창조와 구원을 이룬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경배와 찬양은 영원하다. 안식일에 예식을 갖추어 드리는 예배는 물론이지만 일상생활의 예배에도 찬양이 끊이지 않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입술의 열매라고 하며, 제사라고 하였다.(히13:15) 우리의 입술에 창조와 구원을 찬양하는 찬미의 제사를 끊지 말자.
교훈: 음악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도록 주신 선물이며, 우리의 삶과 예배에 있어서 뗄 수 없는 요소이다.
다섯째 날(목) 8월 4일
여호와께 새 노래로 찬양하라!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빌 4:8).
질문: 고전 10:31, 빌 4:8, 골 1:1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가 예배 시 사용하는 음악의 종류에 관하여 어떤 지침과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가?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빌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답: 찬양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가사와 가락이 있어야 한다.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이 있고 덕과 기림이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창조와 구속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어야 한다.
<부가설명> 찬양과 감사는 창조주 하나님께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자발적으로 감격해서 찬양하는 생활의 모습니다. 시인은 시편 148~150편에서 만물을 불러 찬양하라고 한다. 해와 달과 별들은 물론 산과 들과 나무도 다 창조주께 찬양해야 한다. 찬양은 경배의 한 형태이다. 그것은 그분은 스스로 계신분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구원을 창조한 만물을 보존하시는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붙드시는) 분이라고 말한다.(히1:2,3) 사람이 범죄로 인하여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것은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존하시는 창조주의 능력이 훼손된다. 사단은 그것을 노린 것이다. 스스로 보존되기를 거절하지 않은 피조물들은 다 창조주께서 보존하신다.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사업이지만 구원을 결코 바라지 않는 사람들, 아담 안에서 죽은 채로 있기로 굳힌 사람들은 또 그렇게 하신다. 그들은 흙으로 돌아가서 흙으로 유지될 뿐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창조와 구원의 주를 찬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예배와 찬양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도록 자기를 비우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살게 하는 생활로 오늘이라는 매일을 이어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교회 음악도 문화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고귀함을 나타내고, 생각을 고양시키며, 주님에게 마음을 기울일 수 있는 음악을 사용해야 한다.
예비일(금) 8월 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노래는 영적 진리로 마음을 감동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무겁게 짓눌리어 절망에 빠질 것 같은 심령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에 부른 노래의 가사에서 하나님의 몇 말씀을 기억하고, 그로 인하여 유혹이 힘을 잃고 삶은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갖고, 용서와 즐거움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나누어지는 실례가 얼마나 많은가!…
예배의 일부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기도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배의 행위이다. 사실, 많은 노래는 기도이다.…
구속주께서 우리를 영광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문어귀로 인도하실 때에, 우리는 보좌를 두른 하늘 합창대의 찬미와 감사의 주제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천사들의 노래의 메아리가 지상의 가정에서 반향될 때, 우리의 마음은 하늘의 가수(歌手)들에게 더 가까이 이끌릴 것이다. 하늘의 교제는 땅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 찬미의 기조(基調)를 배운다”(교육, 16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그대가 속한 사회나 문화는 교회 음악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대는 그런 영향은 없다고 부인하겠습니까?
※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요즘 일반 음악들은 거의가 록뮤직 리듬들처럼 들린다. 가락이나 리듬만으로는 예배 음악인지 대중음악인지 분별하기 힘드는 것 같다. 예배와 예배 음악의 중심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있는지 인간의 감성을 흥분시키는 것에 있는지 심각하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➋음악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인용문을 읽어 보십시오. 그대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통해 그대는 얼마나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예배에서 사용되는 음악의 역할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음악이 희망과 용기를 주고 교회에서 마땅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대의 교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요?
※ 복음성가의 가사들은 감동받을만한 것이 아주 많다. 그러나 가락이나 리듬에 대하여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감동보다는 흥분시키는 것이 표적이 된 가락이나 리듬이 아닌지? 흥분과 감동은 닮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위에 인용한 화잇의 글처럼 우리는 찬양의 노래로 하늘을 맛보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감격과 감동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예배 음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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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균님의 댓글
노도균 작성일목사님감사합니다건강하시고오래오래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