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기, 4과 성소와 예배 (교과 한장으로 토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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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주 작성일11-07-15 23:37 조회4,264회 댓글5건첨부파일
- 제3기 4과 성소와 예배.hwp (48.0K) 351회 다운로드 DATE : 2011-07-15 23:37:59
본문
서론
▸안식일이 구별된 시간이라면 성소는 구별된 장소이다. 안식일과 성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 복은 하나님 그분 자신이시다. 안식일에 하나님은 자신을 주시는 날로 정하셨다. 그날은 특별한 의미에서 그분을 나누어 주신다. 성소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공간이다. 구약 성소의 모든 것, 모든 기물이 그분을 표상하고 보여주고, 계시하는 구별된 공간이었다. 성소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으나 그분만이 보이는 거룩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거룩한 공간에서 예배를 통하여 거룩하신 분을 만나서 거룩한 기쁨을 누린다. 그 기쁨은 거룩한 기쁨이다. 결코 천박하지 않고 가볍지 않으나 잔잔하며 진정한 감사와 넘치는 은혜가 있는 그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런 기쁨의 예배를 이번 교과를 통하여 함께 나누기 바란다.
(일) 내가 그들중에 거할 성소
▸성소는 값비싼 물건으로 만들어 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소는 위대한 예술가의 손으로 지어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소의 핵심은 그분이 그곳에 계신가, 안계신가이다. 열다섯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이 어떻게 우주의 왕을 모실만한 성소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크기나 가치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그분이 거기 계시면 성소이다. 예배에 그분이 계실 때 참 예배이다. 예수가 없는 예배가 난무한 세상에 참 예배가 그립다.
▸온 우주에 가장 거룩하지 못한 별이 있다면 타락한 지구이다. 그런데 지구에 성소가 세워졌다. 배반의 행성이 성소가 된다. 우주 어느 별도 성소로 불리지 않는다. 오직 하늘에 있는 성소와 이 지구 공간의 구별된 성소가 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죄인과 함께 하셨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말 이 지구가 성소가 될 것이다. 이 땅 지구에 내려올 새 예루살렘 도성에는 성전이 없다. 그분이 바로 성전이시오, 성소이시기 때문이다. 회복된 지구는 거룩한 곳, 성소가 될 것이다. 거기 그분이 계신다.
(월) 자발적인 마음
▸예배는 드림이다. 전적으로 자발적인 드림이다. 그분이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그들은 자원하여 성전을 위해 드렸다.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드렸다. 따라서 어떤 예배도 강요나 자원하는 마음 없이 드려져서는 안된다. 그런 예배는 바벨론 예배이다. 강요된 예배, 마음으로 드리는 헌신이 없는 예배는 죽은 예배이다.
▸그분의 나누어 주신 생명과 구속을 감사하여 자원하여 우리는 드린다. 단지 노래만 부르고 설교를 듣는 것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예배에 담아 그분에게 전부 드린다. 이것이 예배이다.
(화) 상번제
▸우리는 비록 찬양을 드리고, 예물을 드리고, 자신을 드리지만 우리가 받는 시간도 예배에서 있다. 그것은 현대 예배의 중심인 기별이다. 구약성소는 기별성소였다. 비록 그곳에서는 회당 예배처럼 설교가 없었고 가르침이 없었지만 성소는 모두 기별로 가득 차 있었다. 상번제처럼 매일 드려지는 제사에서 예배자들은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온 몸으로 주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설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가 빠진 설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바른 설교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설교자는 매 예배 때마다 예수를 보여주어야 한다.
(수) 하나님과의 교제
▸예배는 만남의 시간이며 장소이다. 형식과 전통에 얽매인 신학사조에 반발하여 한때 만남(Encounter)신학이 인기를 끌었던 시대가 있었다. 에밀 브르너, 루돌프 볼트만, 칼 바르트 같은 학자들은 만남을 소중하게 다룬 신학자들이다. 부분적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분과의 만남을 중시한 것은 예배에서 경험 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십자가는 만남과 교제의 공간이다. 하늘과 땅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며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는 곳이다. 시은좌도 바로 그런 곳이다. 예배는 만남을 위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시간이다. 예배를 통하여 하늘이 땅에 내려온 것과 만 갈래로 갈라진 마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목)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함
▸예배는 인간 감정을 마구 표출 장소가 아니다. 예배는 “일어서서 뛰어 노는 것”(출 32:6 하단)이 아니다. 예배는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주신 거룩하신 분을 만나는 시간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양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다. 예배는 즐거운 시간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기대되고 흥분되는 일인가? 무미건조하고 탄력을 잃어버린 예배를 극복하고 성경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예배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론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가는 거룩한 행위이다. 송영과 함께 우리는 일어나서 그분의 임재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 놓는다. 그리고 성신을 통하여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우리 중에 임하신다. 오늘 나의 예배는 얼마나 즐거운 예배가 될 것인가?
- 진지하게 한번 토의 할 내용 -
▪ 당신이 아는 성소의 개념을 모두 말해 보라. 어떤 성소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 성소의 핵심은 무엇일까?
▪십일조나 헌금이 자원하여 드려지지 않을 때가 있는가?
▪다른 이를 의식해서 헌금을 드려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몸으로 산제사를 들릴 수 있는가? 그 말이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대의 예배는 참 교제가 있는가? 예배를 드리기 전에 이미 우리는 하나가 된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 오는가?
▸안식일이 구별된 시간이라면 성소는 구별된 장소이다. 안식일과 성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 복은 하나님 그분 자신이시다. 안식일에 하나님은 자신을 주시는 날로 정하셨다. 그날은 특별한 의미에서 그분을 나누어 주신다. 성소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공간이다. 구약 성소의 모든 것, 모든 기물이 그분을 표상하고 보여주고, 계시하는 구별된 공간이었다. 성소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으나 그분만이 보이는 거룩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거룩한 공간에서 예배를 통하여 거룩하신 분을 만나서 거룩한 기쁨을 누린다. 그 기쁨은 거룩한 기쁨이다. 결코 천박하지 않고 가볍지 않으나 잔잔하며 진정한 감사와 넘치는 은혜가 있는 그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런 기쁨의 예배를 이번 교과를 통하여 함께 나누기 바란다.
(일) 내가 그들중에 거할 성소
▸성소는 값비싼 물건으로 만들어 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소는 위대한 예술가의 손으로 지어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소의 핵심은 그분이 그곳에 계신가, 안계신가이다. 열다섯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이 어떻게 우주의 왕을 모실만한 성소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크기나 가치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그분이 거기 계시면 성소이다. 예배에 그분이 계실 때 참 예배이다. 예수가 없는 예배가 난무한 세상에 참 예배가 그립다.
▸온 우주에 가장 거룩하지 못한 별이 있다면 타락한 지구이다. 그런데 지구에 성소가 세워졌다. 배반의 행성이 성소가 된다. 우주 어느 별도 성소로 불리지 않는다. 오직 하늘에 있는 성소와 이 지구 공간의 구별된 성소가 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죄인과 함께 하셨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말 이 지구가 성소가 될 것이다. 이 땅 지구에 내려올 새 예루살렘 도성에는 성전이 없다. 그분이 바로 성전이시오, 성소이시기 때문이다. 회복된 지구는 거룩한 곳, 성소가 될 것이다. 거기 그분이 계신다.
(월) 자발적인 마음
▸예배는 드림이다. 전적으로 자발적인 드림이다. 그분이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그들은 자원하여 성전을 위해 드렸다.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드렸다. 따라서 어떤 예배도 강요나 자원하는 마음 없이 드려져서는 안된다. 그런 예배는 바벨론 예배이다. 강요된 예배, 마음으로 드리는 헌신이 없는 예배는 죽은 예배이다.
▸그분의 나누어 주신 생명과 구속을 감사하여 자원하여 우리는 드린다. 단지 노래만 부르고 설교를 듣는 것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예배에 담아 그분에게 전부 드린다. 이것이 예배이다.
(화) 상번제
▸우리는 비록 찬양을 드리고, 예물을 드리고, 자신을 드리지만 우리가 받는 시간도 예배에서 있다. 그것은 현대 예배의 중심인 기별이다. 구약성소는 기별성소였다. 비록 그곳에서는 회당 예배처럼 설교가 없었고 가르침이 없었지만 성소는 모두 기별로 가득 차 있었다. 상번제처럼 매일 드려지는 제사에서 예배자들은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온 몸으로 주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설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가 빠진 설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바른 설교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설교자는 매 예배 때마다 예수를 보여주어야 한다.
(수) 하나님과의 교제
▸예배는 만남의 시간이며 장소이다. 형식과 전통에 얽매인 신학사조에 반발하여 한때 만남(Encounter)신학이 인기를 끌었던 시대가 있었다. 에밀 브르너, 루돌프 볼트만, 칼 바르트 같은 학자들은 만남을 소중하게 다룬 신학자들이다. 부분적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분과의 만남을 중시한 것은 예배에서 경험 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십자가는 만남과 교제의 공간이다. 하늘과 땅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며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는 곳이다. 시은좌도 바로 그런 곳이다. 예배는 만남을 위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시간이다. 예배를 통하여 하늘이 땅에 내려온 것과 만 갈래로 갈라진 마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목)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함
▸예배는 인간 감정을 마구 표출 장소가 아니다. 예배는 “일어서서 뛰어 노는 것”(출 32:6 하단)이 아니다. 예배는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주신 거룩하신 분을 만나는 시간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양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다. 예배는 즐거운 시간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기대되고 흥분되는 일인가? 무미건조하고 탄력을 잃어버린 예배를 극복하고 성경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예배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론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가는 거룩한 행위이다. 송영과 함께 우리는 일어나서 그분의 임재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 놓는다. 그리고 성신을 통하여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우리 중에 임하신다. 오늘 나의 예배는 얼마나 즐거운 예배가 될 것인가?
- 진지하게 한번 토의 할 내용 -
▪ 당신이 아는 성소의 개념을 모두 말해 보라. 어떤 성소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 성소의 핵심은 무엇일까?
▪십일조나 헌금이 자원하여 드려지지 않을 때가 있는가?
▪다른 이를 의식해서 헌금을 드려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몸으로 산제사를 들릴 수 있는가? 그 말이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대의 예배는 참 교제가 있는가? 예배를 드리기 전에 이미 우리는 하나가 된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 오는가?
댓글목록
금강님의 댓글
금강 작성일
언제나 좋은 말씀으로 해석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병주님의 댓글
이병주 작성일오늘도 화력 넘치는 안교 토의 시간이 되시길...
반현권님의 댓글
반현권 작성일
정말 엑기스만 추출해서 올려주신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유용하게 사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병주님의 댓글
이병주 작성일그분의 팔에 안겨 행복한 안식일 되십시오.
대붕님의 댓글
대붕 작성일
파일 제목은 4과 성소와 예배로 되어 있는데, 정작 내용의 제목에는 지난 주 것으로 되어 있네요.
아마도 바쁘셔서 제목엔 신경을 못 쓰신 것 같네요. 암튼 늘 고마운 마음 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