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여호와 앞에서 기뻐함: 성소와 예배(질문,대답,부가설명)07/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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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7-14 16:33 조회8,548회 댓글0건본문
7월 23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9분
기억절 :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신 12:12).
연구 범위: 출 25:1~22, 29:38~39, 35장, 신 12:5~7, 12, 18, 신 16:13~16.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한 친구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어떻게 믿음을 잃게 되었는지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잠들기 전에 항상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다고 한다. 하루는 자기 형과 사냥을 마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됐는데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더니 형이 그 모습을 보고 “넌 아직도 그걸 하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그는 다시는 기도하지도 예배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넌 아직도 그걸 하냐?”는 말은 평생 동안 이 의식이 그에게 무의미하고 공허한 일임을 나타내 주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그만 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형식적인 종교 의식의 위험성을 보여 준다. 예배는 마음과 영혼 그리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예배의 중심이었던 성소 봉사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깊은 예배의 경험을 얻을 수 있을지 교훈을 얻고자 한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성소가 어떻게 예배의 중심이자 하나님과의 관계와 소통의 중심이었는지를 예증한다.
➋느끼기 :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열렬히 찾고, 이타적으로 봉사하며,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는 태도를 기른다.
➌행하기 : 매일 우리 자신을 살아 있는 거룩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친다.
결론: 성소에서 드려진 제사들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날마다 우리를 성결케 하기 위해 제공된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제사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소통하며 그분의 선하심을 송축하기 위해 주어진 방편이었습니다.
첫째 날(일) 7월 17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7).
질문: 출 25:1~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두 가지 핵심 사항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과 존엄을 생각해 보라. 이 일이 특별히 놀라운 이유는 무엇인가?
[출25: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5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답: 하나님께서 백성과 함께 백성 중에 거하신다는 것과, 거하실 곳은 산에서 보여주신 식양대로 짓는다는 것이다.
<부가설명> 성소는 구원도리를 구조물을 통하여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건물이다. 그러므로 이 구조를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 구원의 도리는 사람의 고안이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이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고전2:9)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산에서 네게 보여준 식양(式樣) 대로 지으라고 하신 것이다. 솔로몬의 성전도 마찬가지이다. 그 설계를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려주셨다. “다윗이 전의 낭실과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식양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대상28:11,19) 성소에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소 구조와 그 봉사를 올바르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백성들 중에 거하신다는 것은 백성들이 속죄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암시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죄가 처리되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을 때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원을 이루실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 이름이 임마누엘인 것은 성소의 실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성소와 성전이 하나님의 설계대로 되지 않는다면 구주 예수님을 올바르게 나타내주지 않는 것이 된다.
교훈: 우주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성소에 거하시며 백성들과 함께 계셨다.
둘째 날(월) 7월 18일
자발적인 마음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출 35:5).
질문1: 출애굽기 35장을 읽어 보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 본문에서 우리는 예배에 관하여 어떤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출35:1~35]은 성막을 짓기 위하여 사람을 선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헌납하게 하는 내용이다. 백성이 즐겨 드렸다. 쓰고 남을 만큼 풍성하게 드렸다.
답: 본문을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마음이 감동된 자들과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즐겨 예물을 드렸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자원하는 마음과 감동된 마음으로 즐겁게 하는 것임을 가르친다.
질문2: 성소가 지어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물을 드리는 일 외에 또 어떤 일을 했는가?
답: 성소 건축을 위하여 백성들은 단순히 예물만 드린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기쁨과 열정이 있었다. 그래서 재물, 시간, 그들의 창조적인 능력과 노동까지 기꺼이 바쳤다. 마음에 감동을 받은 슬기로운 여인들과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와서 그 일에 참여하였다(출 35:26, 36:2). 이스라엘 백성은 여기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드림으로 자아를 부정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의 예배 행위가 된다.
<부가설명>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렇게 한 사실은 예배는 예식 이전에 생활이라는 것과 인격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는데, 그것은 엄숙하고 정숙한 예식으로 예배하라는 의미 이전에 예배하는 사람이 영과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성소 건축을 위한 자료들을 헌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가 바로 그러했다. 거기에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신령과)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른 생활로(진정으로) 헌신했다. 그것이 예배이다. 오늘날 재림성도들이 예배가 이렇게 부흥되어야 한다. 참석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기분을 맞추기 위하여 순서의 초점을 사람에게 맞추는 예배는 하나의 우상 숭배이다. 예배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 안 된다.
교훈: 성소를 건축하기 위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드린 모든 헌신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었다.
셋째 날(화) 7월 19일
상번제(常燔祭)
“매일 …한 어린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출 29:38~39).
질문: 다음의 성경절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구약의 가축 희생 제도를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가?(히 10:1~4, 벧전 1:18~19).
[히10:1~4]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답: 구약 지사제도의 희생의 짐승들의 피로는 실질적인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희생할 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표시였을 뿐이다. 실질적 속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가능하다. 위의 두 구절은 이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부가설명> 히브리서의 기록대로 구약시대 짐승으로 속죄제를 드릴 때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였다. 그럴 때마다 참 속죄 희생이신 구주의 희생을 바라보는 믿음을 훈련한 것이다. 제물로 희생을 드리면서 회개하는 것은 오실 구주의 희생과 용서를 믿는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라 드리는 희생 자체가 속죄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이 의미를 바르게 깨닫지 못했다. 짐승으로 속죄 제물을 드리면 그것이 속죄하는 줄 오해했던 것이다. 그들은 뱀에게 발꿈치를 상하게 될 여자의 후손의 계시를 깨닫지 못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도 여자의 후손의 복음적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구주가 생명과 존재에 있어서 전혀 죄와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드는 것은 내가 지나치게 주제넘기 때문일까? 예수님은 전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희생 제물이시다. 그분의 육신에, 즉 육신의 인성에 죄성이 있으면 점과 흠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사람 되어 오신 그 예수님은 전 인격적으로 전 존재적으로 흠과 티가 없는 분이시다. 그래야 흠과 티가 없었으나 사망에 빠진 그 아담을 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죄되고 부패하고 타락한 불충실을 소유하지 않으셨는데, 이는 만약 그렇다면 그는 완전한 제물이 되실 수가 없으셨기 때문이다”(원고 94, 1893; 가려뽑은 기별, 3:131, 132).” “인간은 인간을 위하여 속죄할 수 없다. 그의 죄악스럽고 타락한 상태는 인간을 불완전한 제물로, 타락하기 전 아담 보다 덜 가치 있는 속죄희생으로 놓이게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하고 올바르게 만들었으며 인간의 범죄 후 인간의 완전하고 순결한 상태에 있었던 것과 같은, 인간 보다 가치 면에서 더 우월한 제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 받아들여 질 수 있는 희생이 있을 수 없었다.”(RH, December 17, 1872, par. 3)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예수님의 희생은 완전하였고 그의 피는 능히 죄를 속한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구약 성소의 희생 제물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할 뿐이었다.
교훈: 매일 드리는 제사가 주님의 희생을 바라보게 한 것처럼, 우리는 매일 우리자신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
넷째 날(수) 7월 20일
하나님과의 교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와 구원의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관계이든 소통이 중요하다.
질문1: 출 25:10~22을 읽어 보라. 백성들은 여기서 무슨 말을 듣고, 어떤 약속을 받았는가?
[출25:10~22]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12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14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답: 속죄소 위 그룹 사이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한다. 거기서 하나님은 속죄를 선포하시며,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할 수 있는 말씀들을 주셨다. 그것은 시은좌이며 그 아래는 계명이 들어 있었다. 은혜가 덮고 있는 아래는 진리가 있다. 은혜는 진리를 수행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약속이며 손길이다.
질문2: 다음의 성경절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시 37:23, 48:14, 잠 3:6, 요 16:13).
[시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답: 범사에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셔서 진리의 길 안에 걸어가도록 하실 약속의 말씀들이다. 우리는 그분의 인도대로 잘 걸어가야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성소에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성소에 계시면서 성소 봉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구원받은 생명으로 생명이신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죄인인 채로 하나님 앞에 서면 그분은 소멸하는 불이 된다. 그래서 희생의 피로 피를 뿌려 속죄할 때에 의롭다고 선포하시므로 죄인의 사망을 처리하시고 용서받은 새 생명으로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신다. 그 새 생명이 험한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일정기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걸음마다 인도하신다. 넘어져도 아주 엎드러지게 두지 않으시고 다시 일으키셔서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신다. 우리의 자비의 아버지께서는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손바닥에 새기시고 날마다 들여다보시면서 인도하신다. 우리는 그의 인도를 한 순간이라도 뿌리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며, 그분의 인도를 받게 된다.
다섯째 날(목) 7월 21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함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신 12:12).
질문: 다음의 성경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성소예배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레 23:39~44, 신 12:5~7, 12, 18, 16:13~16.
[레23:39~44]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 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에 칠 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42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44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신12:5~7,12,18]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12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신16:13~16]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답: 매년 3차씩 하나님께서 지정한 곳에 가서 예배할 것이며 그때에 종들과 이웃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레위 사람들 곧 성직자들을 생각하여 함께 즐기고 감사하면 경배할 것을 가르치셨다.
<부가설명> 이 말씀들에 나타난 예배 원리는 함께 하는 생활이다. 가난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가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예식예배는 생활예배가 올바르게 이루어질 때 참된 예배가 된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절차를 따라 예배하는 그 예배보다 날마다 생활에서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이요 성품이며 생활이다. 신앙은 지식이나 학문이 아니고 인격이며 생활이다. 예배도 역시 그렇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동된 정성으로 생활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이다. 우리 예배가 이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를 기도한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성경 진리를 고수하면서 주 안에서 기쁘고 즐거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성소 예배로부터 배우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교훈은 모든 진정한 예배는 성경의 진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에 관하여 매우 분명하고 엄격하며 정형화된 지침들을 주셨다. 그것들은 모두 백성들에게 구원과 중보와 심판에 관한 진리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백성들은 예배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했다. 이 주제는 계속 반복되어 나타난다. 성경 가르침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즐거운 예배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원, 중보, 심판의 진리도 즐거워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교훈: 우리는 말씀과 진리에 입각하여 예배드려야 한다. 그러한 예배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예비일(금) 7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343~358 “성막과 그 봉사”, 359~362 “나답과 아비후의 죄”, 367~373 “율법과 언약”, 실물교훈 288~290 “주님의 포도원”, 화잇주석, 사 6:1~7, 1~8.
거룩한 쉐키나(shekinah)로부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의 기별은 때때로 구름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통해 대제사장에게 전달되었다. 때로는 오른쪽 천사 위에 빛이 비치어 시인 또는 가납을 표하고, 왼쪽 천사에게 그늘이나 구름이 머물러서 불가 또는 거부를 나타냈다”(부조와 선지자, 3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그대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십일금과 헌금을 드림이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임을 보여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십일금과 헌금을 드리지 않는다면 무엇과 타협하고 있는 것입니까?
※ 예배는 예식 규정을 따라 정형화한 예식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 인격과 생활이 진정한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배 인격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 자체가 그리스도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한다.(엡1:12) 십일금과 헌금과 교회 출석과 가정 예배와 일상의 기도생활과 성경 읽는 것과 방문과 구제가 다 예배이다. 이런 것을 수행하지 않으면 그는 다만 정형화된 예식예배에 참여하는 것 외에 전혀 인격과 생활로 예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예식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예배가 바르게 되는 것이 아니다.
➋그대가 다니는 교회의 예배를 살펴보십시오. 예배가 냉담하고, 형식적이며, 메마르고, 기쁨이 없습니까? 아니면 감정, 흥분, 분위기에 너무 휩쓸립니까? 아니면 양 극단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 안교 학생들이 각각 출석하는 교회의 예배 분위기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배운 대로 예배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하자. 세 천사의 기별은 예배적으로 표현하면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라는 기별이기도 하다.
➌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예배 형식을 심하게 바꾸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목적에서 그렇게 하지만, 어떤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까요?
※ 예식예배는 중심이 하나님께 있다. 사람 위주의 예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자기감정과 기분을 채우기 위하여 교회 예배에 참여하였다면 그는 소위 예배라는 행사에 참석하여 자기를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➍예배 형식의 변화를 제안했을 때, 단지 오랫동안 똑같은 예배 형식을 따랐기 때문에 변화를 싫어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 예배 형식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형식으로 변화를 주는 것은 할 만한 일이다. 기도하고 성경을 면밀히 살펴서 아주 성경적인 사상으로 형식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➎지상 성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지극히 성스럽고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즐거워했습니다. 이 사실은 예배에 대하여 어떤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 교회당은 교회가 모이는 장소로서 예배하기에 합당하게 준비하여 헌당한 장소이다. 거기서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예배를 할 것이다. 즐거움이 분요스러운 것이 아니고 정숙한 즐거움이요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하는 즐거움이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감격의 즐거움이다. 우리 예배가 이렇게 되도록 하자.
일몰: 오후 7시 49분
기억절 :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신 12:12).
연구 범위: 출 25:1~22, 29:38~39, 35장, 신 12:5~7, 12, 18, 신 16:13~16.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한 친구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어떻게 믿음을 잃게 되었는지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잠들기 전에 항상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다고 한다. 하루는 자기 형과 사냥을 마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됐는데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더니 형이 그 모습을 보고 “넌 아직도 그걸 하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그는 다시는 기도하지도 예배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넌 아직도 그걸 하냐?”는 말은 평생 동안 이 의식이 그에게 무의미하고 공허한 일임을 나타내 주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그만 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형식적인 종교 의식의 위험성을 보여 준다. 예배는 마음과 영혼 그리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예배의 중심이었던 성소 봉사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깊은 예배의 경험을 얻을 수 있을지 교훈을 얻고자 한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성소가 어떻게 예배의 중심이자 하나님과의 관계와 소통의 중심이었는지를 예증한다.
➋느끼기 :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열렬히 찾고, 이타적으로 봉사하며,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는 태도를 기른다.
➌행하기 : 매일 우리 자신을 살아 있는 거룩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친다.
결론: 성소에서 드려진 제사들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날마다 우리를 성결케 하기 위해 제공된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제사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소통하며 그분의 선하심을 송축하기 위해 주어진 방편이었습니다.
첫째 날(일) 7월 17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7).
질문: 출 25:1~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두 가지 핵심 사항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과 존엄을 생각해 보라. 이 일이 특별히 놀라운 이유는 무엇인가?
[출25: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5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답: 하나님께서 백성과 함께 백성 중에 거하신다는 것과, 거하실 곳은 산에서 보여주신 식양대로 짓는다는 것이다.
<부가설명> 성소는 구원도리를 구조물을 통하여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건물이다. 그러므로 이 구조를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 구원의 도리는 사람의 고안이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이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고전2:9)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산에서 네게 보여준 식양(式樣) 대로 지으라고 하신 것이다. 솔로몬의 성전도 마찬가지이다. 그 설계를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려주셨다. “다윗이 전의 낭실과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식양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대상28:11,19) 성소에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소 구조와 그 봉사를 올바르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백성들 중에 거하신다는 것은 백성들이 속죄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암시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죄가 처리되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을 때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원을 이루실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 이름이 임마누엘인 것은 성소의 실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성소와 성전이 하나님의 설계대로 되지 않는다면 구주 예수님을 올바르게 나타내주지 않는 것이 된다.
교훈: 우주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성소에 거하시며 백성들과 함께 계셨다.
둘째 날(월) 7월 18일
자발적인 마음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출 35:5).
질문1: 출애굽기 35장을 읽어 보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 본문에서 우리는 예배에 관하여 어떤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출35:1~35]은 성막을 짓기 위하여 사람을 선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헌납하게 하는 내용이다. 백성이 즐겨 드렸다. 쓰고 남을 만큼 풍성하게 드렸다.
답: 본문을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마음이 감동된 자들과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즐겨 예물을 드렸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자원하는 마음과 감동된 마음으로 즐겁게 하는 것임을 가르친다.
질문2: 성소가 지어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물을 드리는 일 외에 또 어떤 일을 했는가?
답: 성소 건축을 위하여 백성들은 단순히 예물만 드린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기쁨과 열정이 있었다. 그래서 재물, 시간, 그들의 창조적인 능력과 노동까지 기꺼이 바쳤다. 마음에 감동을 받은 슬기로운 여인들과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와서 그 일에 참여하였다(출 35:26, 36:2). 이스라엘 백성은 여기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드림으로 자아를 부정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의 예배 행위가 된다.
<부가설명>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렇게 한 사실은 예배는 예식 이전에 생활이라는 것과 인격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는데, 그것은 엄숙하고 정숙한 예식으로 예배하라는 의미 이전에 예배하는 사람이 영과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성소 건축을 위한 자료들을 헌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가 바로 그러했다. 거기에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신령과)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른 생활로(진정으로) 헌신했다. 그것이 예배이다. 오늘날 재림성도들이 예배가 이렇게 부흥되어야 한다. 참석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기분을 맞추기 위하여 순서의 초점을 사람에게 맞추는 예배는 하나의 우상 숭배이다. 예배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 안 된다.
교훈: 성소를 건축하기 위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드린 모든 헌신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었다.
셋째 날(화) 7월 19일
상번제(常燔祭)
“매일 …한 어린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출 29:38~39).
질문: 다음의 성경절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구약의 가축 희생 제도를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가?(히 10:1~4, 벧전 1:18~19).
[히10:1~4]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답: 구약 지사제도의 희생의 짐승들의 피로는 실질적인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희생할 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표시였을 뿐이다. 실질적 속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가능하다. 위의 두 구절은 이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부가설명> 히브리서의 기록대로 구약시대 짐승으로 속죄제를 드릴 때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였다. 그럴 때마다 참 속죄 희생이신 구주의 희생을 바라보는 믿음을 훈련한 것이다. 제물로 희생을 드리면서 회개하는 것은 오실 구주의 희생과 용서를 믿는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라 드리는 희생 자체가 속죄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이 의미를 바르게 깨닫지 못했다. 짐승으로 속죄 제물을 드리면 그것이 속죄하는 줄 오해했던 것이다. 그들은 뱀에게 발꿈치를 상하게 될 여자의 후손의 계시를 깨닫지 못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도 여자의 후손의 복음적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구주가 생명과 존재에 있어서 전혀 죄와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드는 것은 내가 지나치게 주제넘기 때문일까? 예수님은 전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희생 제물이시다. 그분의 육신에, 즉 육신의 인성에 죄성이 있으면 점과 흠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사람 되어 오신 그 예수님은 전 인격적으로 전 존재적으로 흠과 티가 없는 분이시다. 그래야 흠과 티가 없었으나 사망에 빠진 그 아담을 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죄되고 부패하고 타락한 불충실을 소유하지 않으셨는데, 이는 만약 그렇다면 그는 완전한 제물이 되실 수가 없으셨기 때문이다”(원고 94, 1893; 가려뽑은 기별, 3:131, 132).” “인간은 인간을 위하여 속죄할 수 없다. 그의 죄악스럽고 타락한 상태는 인간을 불완전한 제물로, 타락하기 전 아담 보다 덜 가치 있는 속죄희생으로 놓이게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하고 올바르게 만들었으며 인간의 범죄 후 인간의 완전하고 순결한 상태에 있었던 것과 같은, 인간 보다 가치 면에서 더 우월한 제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 받아들여 질 수 있는 희생이 있을 수 없었다.”(RH, December 17, 1872, par. 3)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예수님의 희생은 완전하였고 그의 피는 능히 죄를 속한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구약 성소의 희생 제물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할 뿐이었다.
교훈: 매일 드리는 제사가 주님의 희생을 바라보게 한 것처럼, 우리는 매일 우리자신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
넷째 날(수) 7월 20일
하나님과의 교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와 구원의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관계이든 소통이 중요하다.
질문1: 출 25:10~22을 읽어 보라. 백성들은 여기서 무슨 말을 듣고, 어떤 약속을 받았는가?
[출25:10~22]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12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14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답: 속죄소 위 그룹 사이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한다. 거기서 하나님은 속죄를 선포하시며,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할 수 있는 말씀들을 주셨다. 그것은 시은좌이며 그 아래는 계명이 들어 있었다. 은혜가 덮고 있는 아래는 진리가 있다. 은혜는 진리를 수행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약속이며 손길이다.
질문2: 다음의 성경절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시 37:23, 48:14, 잠 3:6, 요 16:13).
[시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답: 범사에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셔서 진리의 길 안에 걸어가도록 하실 약속의 말씀들이다. 우리는 그분의 인도대로 잘 걸어가야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성소에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성소에 계시면서 성소 봉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구원받은 생명으로 생명이신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죄인인 채로 하나님 앞에 서면 그분은 소멸하는 불이 된다. 그래서 희생의 피로 피를 뿌려 속죄할 때에 의롭다고 선포하시므로 죄인의 사망을 처리하시고 용서받은 새 생명으로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신다. 그 새 생명이 험한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일정기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걸음마다 인도하신다. 넘어져도 아주 엎드러지게 두지 않으시고 다시 일으키셔서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신다. 우리의 자비의 아버지께서는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손바닥에 새기시고 날마다 들여다보시면서 인도하신다. 우리는 그의 인도를 한 순간이라도 뿌리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며, 그분의 인도를 받게 된다.
다섯째 날(목) 7월 21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함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신 12:12).
질문: 다음의 성경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성소예배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레 23:39~44, 신 12:5~7, 12, 18, 16:13~16.
[레23:39~44]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 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에 칠 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42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44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신12:5~7,12,18]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12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신16:13~16]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답: 매년 3차씩 하나님께서 지정한 곳에 가서 예배할 것이며 그때에 종들과 이웃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레위 사람들 곧 성직자들을 생각하여 함께 즐기고 감사하면 경배할 것을 가르치셨다.
<부가설명> 이 말씀들에 나타난 예배 원리는 함께 하는 생활이다. 가난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가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예식예배는 생활예배가 올바르게 이루어질 때 참된 예배가 된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절차를 따라 예배하는 그 예배보다 날마다 생활에서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이요 성품이며 생활이다. 신앙은 지식이나 학문이 아니고 인격이며 생활이다. 예배도 역시 그렇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동된 정성으로 생활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이다. 우리 예배가 이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를 기도한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성경 진리를 고수하면서 주 안에서 기쁘고 즐거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성소 예배로부터 배우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교훈은 모든 진정한 예배는 성경의 진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에 관하여 매우 분명하고 엄격하며 정형화된 지침들을 주셨다. 그것들은 모두 백성들에게 구원과 중보와 심판에 관한 진리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백성들은 예배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했다. 이 주제는 계속 반복되어 나타난다. 성경 가르침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즐거운 예배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원, 중보, 심판의 진리도 즐거워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교훈: 우리는 말씀과 진리에 입각하여 예배드려야 한다. 그러한 예배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예비일(금) 7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343~358 “성막과 그 봉사”, 359~362 “나답과 아비후의 죄”, 367~373 “율법과 언약”, 실물교훈 288~290 “주님의 포도원”, 화잇주석, 사 6:1~7, 1~8.
거룩한 쉐키나(shekinah)로부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의 기별은 때때로 구름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통해 대제사장에게 전달되었다. 때로는 오른쪽 천사 위에 빛이 비치어 시인 또는 가납을 표하고, 왼쪽 천사에게 그늘이나 구름이 머물러서 불가 또는 거부를 나타냈다”(부조와 선지자, 3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그대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십일금과 헌금을 드림이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임을 보여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십일금과 헌금을 드리지 않는다면 무엇과 타협하고 있는 것입니까?
※ 예배는 예식 규정을 따라 정형화한 예식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 인격과 생활이 진정한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배 인격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 자체가 그리스도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한다.(엡1:12) 십일금과 헌금과 교회 출석과 가정 예배와 일상의 기도생활과 성경 읽는 것과 방문과 구제가 다 예배이다. 이런 것을 수행하지 않으면 그는 다만 정형화된 예식예배에 참여하는 것 외에 전혀 인격과 생활로 예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예식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예배가 바르게 되는 것이 아니다.
➋그대가 다니는 교회의 예배를 살펴보십시오. 예배가 냉담하고, 형식적이며, 메마르고, 기쁨이 없습니까? 아니면 감정, 흥분, 분위기에 너무 휩쓸립니까? 아니면 양 극단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 안교 학생들이 각각 출석하는 교회의 예배 분위기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배운 대로 예배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하자. 세 천사의 기별은 예배적으로 표현하면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라는 기별이기도 하다.
➌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예배 형식을 심하게 바꾸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목적에서 그렇게 하지만, 어떤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까요?
※ 예식예배는 중심이 하나님께 있다. 사람 위주의 예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자기감정과 기분을 채우기 위하여 교회 예배에 참여하였다면 그는 소위 예배라는 행사에 참석하여 자기를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➍예배 형식의 변화를 제안했을 때, 단지 오랫동안 똑같은 예배 형식을 따랐기 때문에 변화를 싫어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 예배 형식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형식으로 변화를 주는 것은 할 만한 일이다. 기도하고 성경을 면밀히 살펴서 아주 성경적인 사상으로 형식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➎지상 성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지극히 성스럽고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즐거워했습니다. 이 사실은 예배에 대하여 어떤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 교회당은 교회가 모이는 장소로서 예배하기에 합당하게 준비하여 헌당한 장소이다. 거기서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예배를 할 것이다. 즐거움이 분요스러운 것이 아니고 정숙한 즐거움이요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하는 즐거움이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감격의 즐거움이다. 우리 예배가 이렇게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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