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안식일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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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1-07-08 15:05 조회4,217회 댓글2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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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안식일과 예배
7월 16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3분
도입)
청교도 시대가 남긴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시의 시대에는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대부분의 지역 교회에서 그를 그 교회 회원으로 받아 드리기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하며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점검하기 위해서 교회 위원회와 입교 문답을 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한다. 한 자매가 교회의 나이 든 장로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매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물론 이 자매는 "예"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은 다시 묻는다. "그러면 지금 예수를 믿은 후에는 자신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자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전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장로님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다음에 자매가 했던 대답이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다고 한다. "전에는 제가 '죄를 향해 달려가는 죄인'이었지만(a sinner running after sin), 지금은 '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죄인'(a sinner running from sin)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대답인지 모르겠다. 저와 여러분은 아직도 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죄인인가? 아니면 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중이신가?
기억절 :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시 95:6~7).
연구 범위: 출 20:11, 신 5:15, 사 44:15~20, 마 11:28~30, 롬 6:16~23.
결론: 안식일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죄로부터의 구속 그리고 거룩함에 이르는 회복의 역사에 영원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안식일은 불신자들과 온 우주에 우리의 정체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첫째 날(일) 7월 10일
창조와 구속: 예배의 기초
도입)
안식일 준수 계명은 출애굽기 20:9에 의하면 엿새 동안은 힘써 일을 행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일하는 자에게 안식이 주어져야 함을 명령하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아담에게 내린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은 저주가 아니다. 단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일이 기쁨의 일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이 되었을 뿐이다. 기쁨이 고통으로 변한 것이 저주이지 일 자체가 저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 5:17에 보면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저주스런 것을 하시는가? 아니다. 이 말씀을 따라 생각해 보면 일은 결코 저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은 인간의 본분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안식일 계명의 참 의미는 힘써 일한 뒤에 쉼을 얻어야 하며, 일상의 삶과 일에서 구별하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경배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힘을 얻으라는 것이다. 또한 복잡한 일상으로 소홀하였던 자신의 영과 육을 돌보고 가정과 교회를 돌보는 일도 이 날에 할 일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속박하는 계명이 아니라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배려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주신 은혜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기억하다’ 또는 ‘기념’의 뜻을 가진 히브리 단어들은 ‘자카르(zakar)’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두 개의 큰 사건을 기념하도록 하셨다.
교훈: 하나님은 예수님의 창조주와 구속주로서의 역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다.
부가적용)
예배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예배는 하나님을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며 그 만드신 모든 만물과 우리 인간사를 통치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으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예배의 중요성 문제를 이해하기 위하여 구약의 안식일 예배를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안식일을 지키는 출애굽기 31:13에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겔 20:12, 20)" 말씀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표징(sign)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적인 축복 안에 있다는 구체적인 표시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요 언약의 백성이 아니라는 증명적인 행동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는 출애굽기 문맥 가운데 31:14-15에 보면 안식일을 범한 자들을 죽이라고 하였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에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감의 교훈 •
▶ 안식일에 생각해야 할 것
“안식일을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의 능력의 표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날은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구속하시기에 능하신 그리스도의 권세의 증거로 창조 사업을 가리킨다”(시대의 소망, 288).
둘째 날(월) 7월 11일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도입)
기독교에서 죄란 신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죄의 시작은 교만이다 교만의 시간은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라고 했다. 존재로부터 돌아서는 것 곧 존재 상실인 것이다. 최초의 죄인은 아담이었다. 이는 신중심주의에서 인간 중심주의로, 존재중심주의에서 존재물 중심주의로 돌아선 최초의 계기였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프랑스 종교철학자 폴 리쾨르도 <악의 상징>에서 "죄는 윤리적이기에 앞서 종교적이다. 죄란 어떤 규범이나 가치를 어긴 것이 아니라 인격관계의 훼손이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죄짓기 이전에 계약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계약관계의 침해가 곧 죄다" 리쾨르가 말하는 계약관계란 실락원 사건 이전의 신과 인간의 관계를 말한다.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들은 신 안에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존재 즉 신을 떠남으로서 계약관계가 파기되고 죄가 된다. 요한복음 15:5, 14:6-7절 참고 창세기 2:17절의 "정녕 죽으리라"는 선고는 생물학적인 뜻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뜻이다. 세상에는 존재(피조되지 아니한 하나님)과 존재물(피조물)이 있다. 안식이란 오로지 자신의 "있음(존재)"에 관심을 갖고, 자신과 다른 모든 존재물들의 있음에 놀라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안식일이 존재의 시간이라면, 가정은 존재의 공간이다. 가정은 안식처인 것이며, 가족은 존재의 화신이고 아들과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 어버이의 손길은 그 자체가 "존재의 언어"이다. 안식일이 해방의 날이자 존재의 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평일이 '존재물'을 위한 날이라면, 안식일은 '존재'를 위한 날이다. 평일이 '탐욕에 노예된 시간'이라면, 안식일은 '탐욕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창조하다”라는 의미의 단어 ‘바라(bara)’는 하나님의 행위를 언급할 때만 사용되는 동사이다. 인간도 무엇인가를 짓고, 만들고, 빚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바라(창조)’하신다. 하나님만이 공간, 시간, 물질, 에너지 그리고 모든 세계를 창조하실 수 있다.
교훈: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그 사실을 기념하시기 위하여 안식일을 구별하셨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안식일을 잊으므로 창조주 하나님까지 잊고 있다.
부가적용)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것이며 안식일은 사람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다. 안식일은 일주일의 다른 엿새와 구별되어 있는 날이다.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 과업을 엿새 만에 끝내시고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셨으니 인간도 제 칠일에는 쉬어야 한다. 안식일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기억하는 일' 과 '지키는 일'이다. "너는 기억하라 내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안식일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완성을 축하하며 또한 우리 자신이 구원받게 됨을 감사하는 날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창조와 구속의 사업을 완수하신 날에 우리가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인간 삶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창조주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니다. 우주를 지으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인간을 내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인간이 죄 가운데 빠졌을 때 그를 건져 내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마땅히 그를 주체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인간 삶의 목적이 있으며 의미가 있다. 안식일은 그 삶의 목적과 의미를 실현하는 날이다. 욕망의 노예가 되어 도무지 "쉼"을 모르는 인간에게 신은 그 노예됨으로부터 해방시켜 그들이 일찍이 낙원에서 누렸던 존재와 자유와 안식을 주려고 일곱째 날을 정해 "안식하라"는 계명을 내렸다. 이것이 안식일계명의 참의미이다. 안식은 하나님(신)의 본질이다.
•영감의 교훈 •
▶ 참된 안식일 준수의 결과
“만일 인류가 오늘날까지 안식일을 지켜 왔을 것 같으면 그들의 생각과 애정이 창조주께 집중되어 주님께서는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 되셨을 것이며 우상 숭배와 무신론자와 회의론자가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438).
셋째 날(화) 7월 12일
종노릇에서 벗어남
도입)
신명기 기자는 안식일 계명 준수 이유를 출애굽기 기자와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하는 이유를 출애굽이라는 구원 역사에 두고 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신 안식일을 지키라”(신 5:15)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 계명이 이스라엘 구원 역사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안식일은 창조뿐 아니라 구속을 예배의 중요한 주제로 제시하고 있다. 신 5:15을 보면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구속과 구원에 관한 첫째 천사의 기별에서 다시 울려 퍼진다. 이러한 구속은 출애굽 과정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로 표상되었다. 애굽의 어떤 신도 이 노예의 나라가 속박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강력한 이적과 장엄한 임재와 빛나는 영광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과 편 팔로”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다(신 5:15). 하나님은 그들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기 바라셨다(신 4:35). 그래서 그들에게 안식일을 주시며 그분이 베푸신 큰 구원을 거듭 기억하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구원하셨음을 기억하게 하셨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처럼, 우리도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경축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부가적용)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겪었던 어려움과 고난을 생각하여 네 집에 거하는 종들에 대하여도 너처럼 ‘안식’, 곧 ‘쉼을 주라’는 복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러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기억하여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어려운 사람을 돌보라는 명령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니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출 22:21-23, 레 19:33-34) 이와 같이 안식일 계명을 먼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동일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촉구하는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분명히 안식일은 병들고, 약하고, 나그네 된 자들을 위한 날이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은 쉴 틈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계명이기도 하다. 주인은 쉬면서, 종이나, 가축은 일을 해야 하는 노동착취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출애굽기는 안식일 준수의 근거를 창조의 안식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0-12) 그래서 신명기 기자는 창조주 ‘하나님의 안식’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자이신 야훼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근거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이나,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 것은 안식일을 바로 실현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감의 교훈 •
▶ 안식일, 구원을 경축하고 경험하는 날
“예수께서는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하는 사업이 안식일의 법과 조화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고통당하는 인류를 섬기기 위하여 하늘과 땅을 항상 오르내리고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의 사업과 조화되는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206).
넷째 날(수) 7월 13일
그대를 거룩케 하는 자를 기억하라
도입)
여호와 하나님은 계명 중에 특별히 안식일 계명을 주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해주실 것에 대한 표징으로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자는 거룩함에 참예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죽임을 당하게 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출 31:13).
위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성화의 과정을 삶 속에서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창조와 구속과 성화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물론 창조가 모든 것의 기초이다. 하지만 타락한 우리는 창조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우리 죄를 용서하겠다는 약속과 구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한 파멸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창조 세계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교훈: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기억하는 날이다. 복음은 죄의 용서뿐 아니라, 거룩한 삶에 대한 약속까지 포함하고 있다.
부가적용)
안식일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징인데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평안하셨기 때문이다. 언약을 갱신하신 후에 명하신 안식일은 성일로서 안식일이며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니 처소에서 불도 피워서도 안되었다. 그날에 일하는 자는 죽이라. 자기 안식을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여호와를 범하는 자는 언약 백성으로부터 제외된다. 왜 안식일날 일하면 죽이는가? 법을 어겼으니 죽여라 하는 것은 재판 개념이 아니라 처음 언약 개념에서는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여호와라. 거룩하게 한다 그 말은 안식일에 쉼에서 나타나 있다. 성소의 교제에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 쉼에서 나타나 있다. 그것이 곧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거룩한 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그날 일하면 하나님을 그들의 안식의 주로 시인하지 않고 자기 손의 수고로 먹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죽음이다. 단순히 너무 높은 법을 어겼으니까 죽어라 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안식의 주인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의 세계로부터 제외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죽음이다.
•영감의 교훈 •
▶ 성화의 표인 안식일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심을 세상에 알리는 표징으로서의 안식일은 또한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가리키는 표이기도하다.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은 영혼을 주의 형상대로 재창조하시는 능력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날은 성화의 표가 된다. 진정한 성화는 하나님과 조화되는 것, 그분과 닮은 품성을 형성하는 것이다”(증언보감 3권, 17).
다섯째 날(목) 7월 14일
구속의 쉼
도입)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육체의 노동을 금하는 안식일 지키는 법을 추가 하여 지켜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육체의 노동을 금하는 것이 안식일의 “의 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노동의 제약을 위한 여러 가지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던 유대인들을 왜 주님께서 칭찬하지 않으시고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질책 하셨는지 의문이 생긴다. 주님은 유대인들과는 반대로 안식일에 쉬지 않으시고 일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의”가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육체의 노동 손발을 금하는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58:13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이 말씀에서 이사야는 안식일의 의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손과 발과 입을 금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인가? 육신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부정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은 뒤집으면 안식일에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긍정적인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질문하신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 하루만 부정적적인 육체의 일을 금하고 선한 일을 하라는 뜻인가? 아니다. 이와 같은 일은 제사장이 매일매일 하나님의 일을 하듯 계속 되어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창조, 구속, 성화는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안식일의 축복을 통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표상되어 있다. 마 11:28~30에서 안식으로 초청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어떻게 안식일과 접목될 수 있는가?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쉼”은 죄, 죄책감, 두려움의 짐을 짊어진 자들을 위한 정서적, 심리적, 영적 휴식을 포함하고 있다. 육체적 휴식이라는 기본적인 필요 외에도 인간에게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기분전환 또는 일상의 부담과 스트레스로부터의 휴식이 필요하다. 바로 그런 목적 때문에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연구에 따르면 매주 하루를 쉬면 작업장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의 삶을 멈추는 것이 두뇌의 명석함과 인체의 지구력을 향상시킨다. 더욱이 안식일은 권태로움과 피로를 예방해 준다. 누군가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으라고 말한다면 안식일이야말로 그러한 휴식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 안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과 함께 누리는 휴식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교훈: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과 마음과 육체적 휴식을 가장 구체적으로 누리는 복된 날이다.
부가적용)
안식일을 지켜 사람들의 손발을 금한 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인간의 육체적인과 영적인 쉼을 함께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쉼에는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이 있다. 긍정적인 일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며 부정적인 일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이다. 제사장들이 만약 안식일이나 안식일이 아닌 평일에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부정적인 일을 했다면 그들은 범죄가 될 것이다.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였어도 범죄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긍정적인 일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사장들에게는 안식일, 쉬는 것이 없다. 그들은 매일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성직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은 매일 하나님과 교통하고 백성을 위한 봉사와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스도 또한 “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4계명의 안식일의 의는 육체의 손발을 금하는 노동만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손발을 금한다는 뜻은 "우리의 먹고 살기 위한 육신을 위한 육체의 노동을 금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부정적인 육체에 속한 일을 금하는 것임을 성경은 증거 한다.
•영감의 교훈 •
▶ 안식일의 복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주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하여 말해 준다. 그리고 천연계의 모든 사물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그분의 초청을 반복하고 있다”(시대의 소망, 288).
예비일(금) 7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111~116 “글자 그대로의 주일”, 시대의 소망, 281~289 “안식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준수로 그들이 당신의 경배자로 일컬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은 우상숭배로부터의 그들의 분리와 참하나님과 연결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 이렇게 되어야만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경배자로 구별(區別)할 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283).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을 때에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안식일 준수를 통하여 그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구별되도록 가르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창조주와 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구분 짓는 것이다”(교회증언 6권, 3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참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이 어떻게 우리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요?
➋안식일에 그대의 교회는 어떻게 예배하고 있습니까? 예배 순서는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주와 거룩케 하는 하나님으로 높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우리 예배의 중심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❸거짓 예배를 강요하는 세력이 나타나는 마지막 시대에 안식일은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가 될까요?
7월 16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3분
도입)
청교도 시대가 남긴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시의 시대에는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대부분의 지역 교회에서 그를 그 교회 회원으로 받아 드리기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하며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점검하기 위해서 교회 위원회와 입교 문답을 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한다. 한 자매가 교회의 나이 든 장로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매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물론 이 자매는 "예"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은 다시 묻는다. "그러면 지금 예수를 믿은 후에는 자신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자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전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장로님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다음에 자매가 했던 대답이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다고 한다. "전에는 제가 '죄를 향해 달려가는 죄인'이었지만(a sinner running after sin), 지금은 '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죄인'(a sinner running from sin)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대답인지 모르겠다. 저와 여러분은 아직도 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죄인인가? 아니면 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중이신가?
기억절 :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시 95:6~7).
연구 범위: 출 20:11, 신 5:15, 사 44:15~20, 마 11:28~30, 롬 6:16~23.
결론: 안식일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죄로부터의 구속 그리고 거룩함에 이르는 회복의 역사에 영원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안식일은 불신자들과 온 우주에 우리의 정체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첫째 날(일) 7월 10일
창조와 구속: 예배의 기초
도입)
안식일 준수 계명은 출애굽기 20:9에 의하면 엿새 동안은 힘써 일을 행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일하는 자에게 안식이 주어져야 함을 명령하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아담에게 내린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은 저주가 아니다. 단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일이 기쁨의 일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이 되었을 뿐이다. 기쁨이 고통으로 변한 것이 저주이지 일 자체가 저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 5:17에 보면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저주스런 것을 하시는가? 아니다. 이 말씀을 따라 생각해 보면 일은 결코 저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은 인간의 본분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안식일 계명의 참 의미는 힘써 일한 뒤에 쉼을 얻어야 하며, 일상의 삶과 일에서 구별하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경배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힘을 얻으라는 것이다. 또한 복잡한 일상으로 소홀하였던 자신의 영과 육을 돌보고 가정과 교회를 돌보는 일도 이 날에 할 일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속박하는 계명이 아니라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배려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주신 은혜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기억하다’ 또는 ‘기념’의 뜻을 가진 히브리 단어들은 ‘자카르(zakar)’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두 개의 큰 사건을 기념하도록 하셨다.
교훈: 하나님은 예수님의 창조주와 구속주로서의 역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다.
부가적용)
예배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예배는 하나님을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며 그 만드신 모든 만물과 우리 인간사를 통치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으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예배의 중요성 문제를 이해하기 위하여 구약의 안식일 예배를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안식일을 지키는 출애굽기 31:13에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겔 20:12, 20)" 말씀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표징(sign)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적인 축복 안에 있다는 구체적인 표시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요 언약의 백성이 아니라는 증명적인 행동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는 출애굽기 문맥 가운데 31:14-15에 보면 안식일을 범한 자들을 죽이라고 하였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에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감의 교훈 •
▶ 안식일에 생각해야 할 것
“안식일을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의 능력의 표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날은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구속하시기에 능하신 그리스도의 권세의 증거로 창조 사업을 가리킨다”(시대의 소망, 288).
둘째 날(월) 7월 11일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도입)
기독교에서 죄란 신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죄의 시작은 교만이다 교만의 시간은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라고 했다. 존재로부터 돌아서는 것 곧 존재 상실인 것이다. 최초의 죄인은 아담이었다. 이는 신중심주의에서 인간 중심주의로, 존재중심주의에서 존재물 중심주의로 돌아선 최초의 계기였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프랑스 종교철학자 폴 리쾨르도 <악의 상징>에서 "죄는 윤리적이기에 앞서 종교적이다. 죄란 어떤 규범이나 가치를 어긴 것이 아니라 인격관계의 훼손이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죄짓기 이전에 계약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계약관계의 침해가 곧 죄다" 리쾨르가 말하는 계약관계란 실락원 사건 이전의 신과 인간의 관계를 말한다.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들은 신 안에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존재 즉 신을 떠남으로서 계약관계가 파기되고 죄가 된다. 요한복음 15:5, 14:6-7절 참고 창세기 2:17절의 "정녕 죽으리라"는 선고는 생물학적인 뜻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뜻이다. 세상에는 존재(피조되지 아니한 하나님)과 존재물(피조물)이 있다. 안식이란 오로지 자신의 "있음(존재)"에 관심을 갖고, 자신과 다른 모든 존재물들의 있음에 놀라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안식일이 존재의 시간이라면, 가정은 존재의 공간이다. 가정은 안식처인 것이며, 가족은 존재의 화신이고 아들과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 어버이의 손길은 그 자체가 "존재의 언어"이다. 안식일이 해방의 날이자 존재의 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평일이 '존재물'을 위한 날이라면, 안식일은 '존재'를 위한 날이다. 평일이 '탐욕에 노예된 시간'이라면, 안식일은 '탐욕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창조하다”라는 의미의 단어 ‘바라(bara)’는 하나님의 행위를 언급할 때만 사용되는 동사이다. 인간도 무엇인가를 짓고, 만들고, 빚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바라(창조)’하신다. 하나님만이 공간, 시간, 물질, 에너지 그리고 모든 세계를 창조하실 수 있다.
교훈: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그 사실을 기념하시기 위하여 안식일을 구별하셨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안식일을 잊으므로 창조주 하나님까지 잊고 있다.
부가적용)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것이며 안식일은 사람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다. 안식일은 일주일의 다른 엿새와 구별되어 있는 날이다.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 과업을 엿새 만에 끝내시고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셨으니 인간도 제 칠일에는 쉬어야 한다. 안식일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기억하는 일' 과 '지키는 일'이다. "너는 기억하라 내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안식일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완성을 축하하며 또한 우리 자신이 구원받게 됨을 감사하는 날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창조와 구속의 사업을 완수하신 날에 우리가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인간 삶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창조주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니다. 우주를 지으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인간을 내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인간이 죄 가운데 빠졌을 때 그를 건져 내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마땅히 그를 주체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인간 삶의 목적이 있으며 의미가 있다. 안식일은 그 삶의 목적과 의미를 실현하는 날이다. 욕망의 노예가 되어 도무지 "쉼"을 모르는 인간에게 신은 그 노예됨으로부터 해방시켜 그들이 일찍이 낙원에서 누렸던 존재와 자유와 안식을 주려고 일곱째 날을 정해 "안식하라"는 계명을 내렸다. 이것이 안식일계명의 참의미이다. 안식은 하나님(신)의 본질이다.
•영감의 교훈 •
▶ 참된 안식일 준수의 결과
“만일 인류가 오늘날까지 안식일을 지켜 왔을 것 같으면 그들의 생각과 애정이 창조주께 집중되어 주님께서는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 되셨을 것이며 우상 숭배와 무신론자와 회의론자가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438).
셋째 날(화) 7월 12일
종노릇에서 벗어남
도입)
신명기 기자는 안식일 계명 준수 이유를 출애굽기 기자와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하는 이유를 출애굽이라는 구원 역사에 두고 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신 안식일을 지키라”(신 5:15)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 계명이 이스라엘 구원 역사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안식일은 창조뿐 아니라 구속을 예배의 중요한 주제로 제시하고 있다. 신 5:15을 보면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구속과 구원에 관한 첫째 천사의 기별에서 다시 울려 퍼진다. 이러한 구속은 출애굽 과정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로 표상되었다. 애굽의 어떤 신도 이 노예의 나라가 속박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강력한 이적과 장엄한 임재와 빛나는 영광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과 편 팔로”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다(신 5:15). 하나님은 그들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기 바라셨다(신 4:35). 그래서 그들에게 안식일을 주시며 그분이 베푸신 큰 구원을 거듭 기억하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구원하셨음을 기억하게 하셨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처럼, 우리도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경축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부가적용)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겪었던 어려움과 고난을 생각하여 네 집에 거하는 종들에 대하여도 너처럼 ‘안식’, 곧 ‘쉼을 주라’는 복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러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기억하여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어려운 사람을 돌보라는 명령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니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출 22:21-23, 레 19:33-34) 이와 같이 안식일 계명을 먼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동일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촉구하는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분명히 안식일은 병들고, 약하고, 나그네 된 자들을 위한 날이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은 쉴 틈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계명이기도 하다. 주인은 쉬면서, 종이나, 가축은 일을 해야 하는 노동착취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출애굽기는 안식일 준수의 근거를 창조의 안식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0-12) 그래서 신명기 기자는 창조주 ‘하나님의 안식’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자이신 야훼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근거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이나,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 것은 안식일을 바로 실현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감의 교훈 •
▶ 안식일, 구원을 경축하고 경험하는 날
“예수께서는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하는 사업이 안식일의 법과 조화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고통당하는 인류를 섬기기 위하여 하늘과 땅을 항상 오르내리고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의 사업과 조화되는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206).
넷째 날(수) 7월 13일
그대를 거룩케 하는 자를 기억하라
도입)
여호와 하나님은 계명 중에 특별히 안식일 계명을 주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해주실 것에 대한 표징으로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자는 거룩함에 참예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죽임을 당하게 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출 31:13).
위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성화의 과정을 삶 속에서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창조와 구속과 성화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물론 창조가 모든 것의 기초이다. 하지만 타락한 우리는 창조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우리 죄를 용서하겠다는 약속과 구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한 파멸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창조 세계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교훈: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기억하는 날이다. 복음은 죄의 용서뿐 아니라, 거룩한 삶에 대한 약속까지 포함하고 있다.
부가적용)
안식일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징인데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평안하셨기 때문이다. 언약을 갱신하신 후에 명하신 안식일은 성일로서 안식일이며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니 처소에서 불도 피워서도 안되었다. 그날에 일하는 자는 죽이라. 자기 안식을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여호와를 범하는 자는 언약 백성으로부터 제외된다. 왜 안식일날 일하면 죽이는가? 법을 어겼으니 죽여라 하는 것은 재판 개념이 아니라 처음 언약 개념에서는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여호와라. 거룩하게 한다 그 말은 안식일에 쉼에서 나타나 있다. 성소의 교제에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 쉼에서 나타나 있다. 그것이 곧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거룩한 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그날 일하면 하나님을 그들의 안식의 주로 시인하지 않고 자기 손의 수고로 먹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죽음이다. 단순히 너무 높은 법을 어겼으니까 죽어라 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안식의 주인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의 세계로부터 제외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죽음이다.
•영감의 교훈 •
▶ 성화의 표인 안식일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심을 세상에 알리는 표징으로서의 안식일은 또한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가리키는 표이기도하다.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은 영혼을 주의 형상대로 재창조하시는 능력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날은 성화의 표가 된다. 진정한 성화는 하나님과 조화되는 것, 그분과 닮은 품성을 형성하는 것이다”(증언보감 3권, 17).
다섯째 날(목) 7월 14일
구속의 쉼
도입)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육체의 노동을 금하는 안식일 지키는 법을 추가 하여 지켜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육체의 노동을 금하는 것이 안식일의 “의 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노동의 제약을 위한 여러 가지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던 유대인들을 왜 주님께서 칭찬하지 않으시고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질책 하셨는지 의문이 생긴다. 주님은 유대인들과는 반대로 안식일에 쉬지 않으시고 일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의”가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육체의 노동 손발을 금하는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58:13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이 말씀에서 이사야는 안식일의 의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손과 발과 입을 금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인가? 육신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부정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은 뒤집으면 안식일에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긍정적인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질문하신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 하루만 부정적적인 육체의 일을 금하고 선한 일을 하라는 뜻인가? 아니다. 이와 같은 일은 제사장이 매일매일 하나님의 일을 하듯 계속 되어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창조, 구속, 성화는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안식일의 축복을 통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표상되어 있다. 마 11:28~30에서 안식으로 초청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어떻게 안식일과 접목될 수 있는가?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쉼”은 죄, 죄책감, 두려움의 짐을 짊어진 자들을 위한 정서적, 심리적, 영적 휴식을 포함하고 있다. 육체적 휴식이라는 기본적인 필요 외에도 인간에게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기분전환 또는 일상의 부담과 스트레스로부터의 휴식이 필요하다. 바로 그런 목적 때문에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연구에 따르면 매주 하루를 쉬면 작업장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의 삶을 멈추는 것이 두뇌의 명석함과 인체의 지구력을 향상시킨다. 더욱이 안식일은 권태로움과 피로를 예방해 준다. 누군가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으라고 말한다면 안식일이야말로 그러한 휴식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 안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과 함께 누리는 휴식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교훈: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과 마음과 육체적 휴식을 가장 구체적으로 누리는 복된 날이다.
부가적용)
안식일을 지켜 사람들의 손발을 금한 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인간의 육체적인과 영적인 쉼을 함께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쉼에는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이 있다. 긍정적인 일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며 부정적인 일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이다. 제사장들이 만약 안식일이나 안식일이 아닌 평일에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부정적인 일을 했다면 그들은 범죄가 될 것이다.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였어도 범죄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긍정적인 일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사장들에게는 안식일, 쉬는 것이 없다. 그들은 매일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성직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은 매일 하나님과 교통하고 백성을 위한 봉사와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스도 또한 “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4계명의 안식일의 의는 육체의 손발을 금하는 노동만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손발을 금한다는 뜻은 "우리의 먹고 살기 위한 육신을 위한 육체의 노동을 금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부정적인 육체에 속한 일을 금하는 것임을 성경은 증거 한다.
•영감의 교훈 •
▶ 안식일의 복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주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하여 말해 준다. 그리고 천연계의 모든 사물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그분의 초청을 반복하고 있다”(시대의 소망, 288).
예비일(금) 7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111~116 “글자 그대로의 주일”, 시대의 소망, 281~289 “안식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준수로 그들이 당신의 경배자로 일컬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은 우상숭배로부터의 그들의 분리와 참하나님과 연결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 이렇게 되어야만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경배자로 구별(區別)할 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283).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을 때에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안식일 준수를 통하여 그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구별되도록 가르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창조주와 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구분 짓는 것이다”(교회증언 6권, 3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참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이 어떻게 우리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요?
➋안식일에 그대의 교회는 어떻게 예배하고 있습니까? 예배 순서는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주와 거룩케 하는 하나님으로 높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우리 예배의 중심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❸거짓 예배를 강요하는 세력이 나타나는 마지막 시대에 안식일은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가 될까요?
댓글목록
하늘님의 댓글
하늘 작성일귀한 말씀들 감사합니다 늘 많은 도움이 됩니다 ....
나님의 댓글
나 작성일해석에 깊이에 늘 감탄 하고 있습니다. 좋은해석 계속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