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안식일과 예배(질문, 대답, 부가설명)07/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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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7-07 15:21 조회8,093회 댓글0건본문
7월 16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3분
기억절 :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시 95:6~7).
연구 범위: 출 20:11, 신 5:15, 사 44:15~20, 마 11:28~30, 롬 6:16~23.
창조와 구속은 첫째 천사의 기별과 예배의 핵심 주제이다. 첫째 천사는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의 소식 즉 죄에 대한 용서뿐 아니라 그것을 이길 능력까지 포함되어 있는 구원의 “영원한 복음”으로 우리를 초청하였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 즉 구원과 구속의 과정인 성화를 약속하고 있다(요 17:17, 행 20:32, 살전 5:23).
첫째 천사는 우리가 예배할 분이 바로 우리를 만드시고, 이 땅에 살게 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특별히 상기시키고 있다. 창조와 구속과 성화는 모두 예배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세 주제가 안식일 계명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당연하다. 언젠가 우리는 창조주, 구속주, 거룩케 하는 주를 경배하는지 아니면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 그때 안식일은 요한계시록 14장에 묘사된 사건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계시록의 말씀은 우리에게 제3의 대안을 남겨두지 않았다.
이번 주 우리는 안식일 계명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이 주제가 오늘날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배울 것이다. 공부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예배의 중심 주제로 삼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안식일이 창조와 구속과 성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명한다.
➋느끼기 : 안식일을 통해 창조와 구속과 회복을 기념하며 즐거워한다.
➌행하기 : 안식일을 지키고, 우리의 믿음과 교리의 초석으로서 안식일이 강조하는 모든 것을 일주일 내내 지킨다.
결론: 안식일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죄로부터의 구속 그리고 거룩함에 이르는 회복의 역사에 영원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안식일은 불신자들과 온 우주에 우리의 정체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첫째 날(일) 7월 10일
창조와 구속: 예배의 기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질문1: 제4계명에 의하면 이 두 사건은 무엇이며 그것들은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출 20:11, 신 5:15).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신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답: 출애굽기의 사건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쉬셔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사건이고, 신명기의 사건은 이스라엘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구원하여 낸 사건이다. 이것은 창조와 구원에 대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날은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을 잘 가리키고 있더, 안식일은 창조와 구원과 거룩함을 기념하는 영원한 표징임을 가리킨다.
질문2: 골 1:13~22을 읽어 보라. 바울은 창조주와 구속주로서 예수님의 역할을 어떻게
연결시켰는가?
[골1:13~22]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답: 이 말씀은 예수께서 창조주이심을 계시하며 동시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사실을 계시하면서 창조와 부활은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가르쳐준다. 만물의 창조는 첫 창조라고 한다면 구원은 재창조이다.
<부기설명> 사람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영생의 생명을 부여받았다.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죽음은 없었다. 그러나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를 떠났다.(고후11:3) 골로새 1:17은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그 창조한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서 있도록 했다고 계시한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그것은 창조를 거절하는 것이고, 창조를 거절하면 그 창조된 상태를 창조주께 반납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즉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아담이 그렇게 하였다. 결과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 곧 창조되지 않은 자와 같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의미상으로는 없는 자들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된 사람들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것은 곧 재창조로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하신다.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창조와 구원은 같은 사실이다. 구원을 재창조이다. 창조는 창조주께 속한 것이다. 예수님이 구주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바로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이 두 사실을 생활 속에 기념하게 한 것이며, 그것을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지키는 것이 바로 거룩함에 이르렀다는 표가 된다.
교훈: 하나님은 예수님의 창조주와 구속주로서의 역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다.
둘째 날(월) 7월 11일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질문: <사 40:25~26, 45:12, 18, 골 1:16~17, 히 1:2>을 <사 44:15~20, 46:5~7>과 비교해 보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40:25,26]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45:12,18]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골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사44:15~20]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16 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 그 나머지도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 나무의 얼마로 불을 사르고 그 숯불 위에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20 그는 재를 먹고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스스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사46:5~7]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6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답: 창조주와 우상의 비교이다. 피조물 중에 어떤 것과 창조주와 동등이 될 수 없다. 피조물은 그 존재를 전적으로 창조주께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우상은 무생물이다. 그것이 어떻게 신이 되겠는가. 그래서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가장 심하게 책망하신다.
<부가설명> 창조주 하나님은 그 이름이 여호와이시다. 뜻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우주와 만물 중에 여호와라 이름하시는 분은 오직 성경의 하나님 창조주뿐이다. 그 외에 어떤 존재도 여호와일 수 없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에 유일하신 분이시다. 이것이 그분의 거룩하심의 중심 사실이며 경배를 받아야할 당연한 이유이다. 인격적 피조물인 사람들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한다.(전12:1) 그런데 이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으로 숭배한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며, 자기의 존재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 외의 무엇인가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것을 용납하실 수 없다. 이유는 그것들은 천사나 성인이나 목석으로 만든 것들이나 간에 창조주가 아니며 스스로 있는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계신 분이 그것들을 경배하는 것을 용납한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이 그들을 여호와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용납하지 못하신다. 한 나라에 다른 왕이 일어나서 왕권에 도전할 때에 먼저 왕이 그것을 인정하면 자기의 왕좌를 내어놓든지 다른 나라를 건국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이 다른 경배자를 용납하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우주에 창조주요 통치자는 오직 여호와라 이름하신 창조주 하나님 이에는 결코 없다. 그래서 단호히 선언하신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우리는 진정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라 이름하신 삼위일체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안식일은 창조주와 구원의 주를 기억하는 생활 속에 두신 표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의미가 여기 있다.
교훈: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그 사실을 기념하시기 위하여 안식일을 구별하셨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안식일을 잊으므로 창조주 하나님까지 잊고 있다.
셋째 날(화) 7월 12일
종노릇에서 벗어남
질문: 롬 6:16~2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는 어떤 약속이 있는가?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약속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롬6:16~23]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그 복음의 교훈을 순종할 때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이 되었던 상태에서 유월절 행사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의 영적 경험에 이르는 약속이 있다.
<부가설명> 우리들은 자주 자유의지를 말하고 선택의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흔한 보편적 착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 의식을 가진 존재로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하는 생각이다. 일반적 사고방식으로는 옳은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의 사상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이 땅에 사는 아담의 후손들을 살아 있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죽은 자라고 단언한다.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이다.(엡2:1) 죽은 자에게는 의지가 없다. 당연히 선택의 자유도 없다. 그러나 아직은 호흡하고 생각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성경의 이런 계시를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 있고 의식이 있는데 그 의식으로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죄를 선택하면 죄인이 되어 망하고 의를 선택하면 의인으로서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도덕적 사고방식으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한 대로는 사람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 곧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죄를 선택하여 죄를 지을 자유의지 이전에 이미 사망으로 태어난 자이다. 이 사망의 상태에서 자기가 의를 선택하여 행한다 해도 그것이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지 못한다. 이 사망의 상태에 있는 것을 죄의 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위의 성경은 “본래 죄의 종이더니”라고 말한다. “본래”라는 말은 이미 그렇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은 본래 죄의 종이다. 자기가 죄를 선택하여 짓기 전에 이미 죄의 종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그때 비로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요5:24,25) 그때는 이미 생명의 종이다. 그때 사람은 자기를 의에게 드려 의의 종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죄의 종으로 사망의 상태에서 완전히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가 죄의 종, 의의 종이라고 하는 의미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처럼, 우리도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경축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넷째 날(수) 7월 13일
그대를 거룩케 하는 자를 기억하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출 31:13).
질문: 출 31:13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성화의 과정을 삶 속에서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출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답: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와 그분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 사이를 올바르게 연결하는 거룩한 날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사람은 창조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음으로 잃어버린바 되었다. 이제는 구속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된 사실을 이 죄의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잘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장하실 것이다. 그것이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라는 말씀의 약속이다.
<부가설명> 거룩하게 한다는 말은 구별한다는 말인데,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께서는 그분을 창조주로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놓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하여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대상16:21,22, 시105:14,15)고 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이 구별해놓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언하신다. 그들은 예수 안에 있고 악한 자가 만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요일5:18) 악한 자가 그들을 만지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시고 그의 거룩한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키신다.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라는 말씀의 일차적인 뜻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그들은 거룩한 생명이 나타나는 빛의 열매를 맺히게 된다. 이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그들은 거룩한 생명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생의 생명, 곧 거룩한 생명을 얻었는지 항상 살피고 주님의 손에서 그 생명이 풍성하여지는 경험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요10:10)
교훈: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기억하는 날이다. 복음은 죄의 용서뿐 아니라, 거룩한 삶에 대한 약속까지 포함하고 있다.
다섯째 날(목) 7월 14일
구속의 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질문: 마 11:28~30에서 안식으로 초청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어떻게 안식일과 접목될 수 있는가?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답: 이 말씀은 예수님이 안식의 주체라는 것을 계시한다. 우리가 쉬면 쉬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에 쉼을 얻는다. 비록 고된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예수 안에 있을 때 쉼이 있다. 이 쉼을 인간 생활 속에 구체화한 것이 안식일이다. 창조주께서는 안식일에 쉼을 창조하셨다. 쉼을 누리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쉼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쉼이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게로 와서 쉼을 얻으라고 하신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쉼을 누리는 방법이다. 쉼은 죄가 해결된 사람에게 이르는 평안과 관련되어 있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48:2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죄와 악은 사람에게 쉼을 빼앗아간다. 태초에 죄가 없을 때에는 쉼과 평안이 사람의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사람에게는 수고가 닥쳤다. 수고는 창3:17,18에서 발생하였다. 그 수고는 종신토록 하게 되어 있다. 종신은 죽는 때이다. 예수 안에서 자아가 죽으면 그때 쉼이 온다.(계14:13) 그것은 거듭남이요, 온전한 속죄요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시고 예수 안에 있다. 이런 사실을 믿고 생활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아멘.
교훈: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과 마음과 육체적 휴식을 가장 구체적으로
누리는 복된 날이다.
예비일(금) 7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111~116 “글자 그대로의 주일”, 시대의 소망, 281~289 “안식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준수로 그들이 당신의 경배자로 일컬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은 우상숭배로부터의 그들의 분리와 참하나님과 연결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 이렇게 되어야만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경배자로 구별(區別)할 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283).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을 때에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안식일 준수를 통하여 그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구별되도록 가르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창조주와 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구분 짓는 것이다”(교회증언 6권, 3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참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이 어떻게 우리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요?
※ 안식일의 제정과 그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사실을 인정하는 삶이 된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진화론이나 불가지론이나 무신론이 마음에 생길 수 없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사실이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을 인정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➋안식일에 그대의 교회는 어떻게 예배하고 있습니까? 예배 순서는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주와 거룩케 하는 하나님으로 높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우리 예배의 중심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각 사람이 출석하는 교회의 예배 시간에 대하여 잘 생각해보고 거룩함과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개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인간의 감정에 예배 중심에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정성을 다하여 생각과 정신으로 하나님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❸거짓 예배를 강요하는 세력이 나타나는 마지막 시대에 안식일은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가 될까요?
※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여부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게 된다.
일몰: 오후 7시 53분
기억절 :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시 95:6~7).
연구 범위: 출 20:11, 신 5:15, 사 44:15~20, 마 11:28~30, 롬 6:16~23.
창조와 구속은 첫째 천사의 기별과 예배의 핵심 주제이다. 첫째 천사는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의 소식 즉 죄에 대한 용서뿐 아니라 그것을 이길 능력까지 포함되어 있는 구원의 “영원한 복음”으로 우리를 초청하였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 즉 구원과 구속의 과정인 성화를 약속하고 있다(요 17:17, 행 20:32, 살전 5:23).
첫째 천사는 우리가 예배할 분이 바로 우리를 만드시고, 이 땅에 살게 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특별히 상기시키고 있다. 창조와 구속과 성화는 모두 예배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세 주제가 안식일 계명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당연하다. 언젠가 우리는 창조주, 구속주, 거룩케 하는 주를 경배하는지 아니면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 그때 안식일은 요한계시록 14장에 묘사된 사건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계시록의 말씀은 우리에게 제3의 대안을 남겨두지 않았다.
이번 주 우리는 안식일 계명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이 주제가 오늘날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배울 것이다. 공부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예배의 중심 주제로 삼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안식일이 창조와 구속과 성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명한다.
➋느끼기 : 안식일을 통해 창조와 구속과 회복을 기념하며 즐거워한다.
➌행하기 : 안식일을 지키고, 우리의 믿음과 교리의 초석으로서 안식일이 강조하는 모든 것을 일주일 내내 지킨다.
결론: 안식일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죄로부터의 구속 그리고 거룩함에 이르는 회복의 역사에 영원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안식일은 불신자들과 온 우주에 우리의 정체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첫째 날(일) 7월 10일
창조와 구속: 예배의 기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질문1: 제4계명에 의하면 이 두 사건은 무엇이며 그것들은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출 20:11, 신 5:15).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신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답: 출애굽기의 사건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쉬셔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사건이고, 신명기의 사건은 이스라엘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구원하여 낸 사건이다. 이것은 창조와 구원에 대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날은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을 잘 가리키고 있더, 안식일은 창조와 구원과 거룩함을 기념하는 영원한 표징임을 가리킨다.
질문2: 골 1:13~22을 읽어 보라. 바울은 창조주와 구속주로서 예수님의 역할을 어떻게
연결시켰는가?
[골1:13~22]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답: 이 말씀은 예수께서 창조주이심을 계시하며 동시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사실을 계시하면서 창조와 부활은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가르쳐준다. 만물의 창조는 첫 창조라고 한다면 구원은 재창조이다.
<부기설명> 사람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영생의 생명을 부여받았다.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죽음은 없었다. 그러나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를 떠났다.(고후11:3) 골로새 1:17은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그 창조한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서 있도록 했다고 계시한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그것은 창조를 거절하는 것이고, 창조를 거절하면 그 창조된 상태를 창조주께 반납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즉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아담이 그렇게 하였다. 결과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 곧 창조되지 않은 자와 같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의미상으로는 없는 자들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된 사람들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것은 곧 재창조로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하신다.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창조와 구원은 같은 사실이다. 구원을 재창조이다. 창조는 창조주께 속한 것이다. 예수님이 구주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바로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이 두 사실을 생활 속에 기념하게 한 것이며, 그것을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지키는 것이 바로 거룩함에 이르렀다는 표가 된다.
교훈: 하나님은 예수님의 창조주와 구속주로서의 역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다.
둘째 날(월) 7월 11일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질문: <사 40:25~26, 45:12, 18, 골 1:16~17, 히 1:2>을 <사 44:15~20, 46:5~7>과 비교해 보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40:25,26]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45:12,18]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골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사44:15~20]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16 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 그 나머지도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 나무의 얼마로 불을 사르고 그 숯불 위에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20 그는 재를 먹고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스스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사46:5~7]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6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답: 창조주와 우상의 비교이다. 피조물 중에 어떤 것과 창조주와 동등이 될 수 없다. 피조물은 그 존재를 전적으로 창조주께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우상은 무생물이다. 그것이 어떻게 신이 되겠는가. 그래서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가장 심하게 책망하신다.
<부가설명> 창조주 하나님은 그 이름이 여호와이시다. 뜻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우주와 만물 중에 여호와라 이름하시는 분은 오직 성경의 하나님 창조주뿐이다. 그 외에 어떤 존재도 여호와일 수 없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에 유일하신 분이시다. 이것이 그분의 거룩하심의 중심 사실이며 경배를 받아야할 당연한 이유이다. 인격적 피조물인 사람들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한다.(전12:1) 그런데 이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으로 숭배한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며, 자기의 존재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 외의 무엇인가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것을 용납하실 수 없다. 이유는 그것들은 천사나 성인이나 목석으로 만든 것들이나 간에 창조주가 아니며 스스로 있는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계신 분이 그것들을 경배하는 것을 용납한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이 그들을 여호와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용납하지 못하신다. 한 나라에 다른 왕이 일어나서 왕권에 도전할 때에 먼저 왕이 그것을 인정하면 자기의 왕좌를 내어놓든지 다른 나라를 건국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이 다른 경배자를 용납하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우주에 창조주요 통치자는 오직 여호와라 이름하신 창조주 하나님 이에는 결코 없다. 그래서 단호히 선언하신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우리는 진정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라 이름하신 삼위일체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안식일은 창조주와 구원의 주를 기억하는 생활 속에 두신 표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의미가 여기 있다.
교훈: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그 사실을 기념하시기 위하여 안식일을 구별하셨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안식일을 잊으므로 창조주 하나님까지 잊고 있다.
셋째 날(화) 7월 12일
종노릇에서 벗어남
질문: 롬 6:16~2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는 어떤 약속이 있는가?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약속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롬6:16~23]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그 복음의 교훈을 순종할 때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이 되었던 상태에서 유월절 행사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의 영적 경험에 이르는 약속이 있다.
<부가설명> 우리들은 자주 자유의지를 말하고 선택의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흔한 보편적 착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 의식을 가진 존재로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하는 생각이다. 일반적 사고방식으로는 옳은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의 사상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이 땅에 사는 아담의 후손들을 살아 있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죽은 자라고 단언한다.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이다.(엡2:1) 죽은 자에게는 의지가 없다. 당연히 선택의 자유도 없다. 그러나 아직은 호흡하고 생각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성경의 이런 계시를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 있고 의식이 있는데 그 의식으로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죄를 선택하면 죄인이 되어 망하고 의를 선택하면 의인으로서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도덕적 사고방식으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한 대로는 사람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 곧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죄를 선택하여 죄를 지을 자유의지 이전에 이미 사망으로 태어난 자이다. 이 사망의 상태에서 자기가 의를 선택하여 행한다 해도 그것이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지 못한다. 이 사망의 상태에 있는 것을 죄의 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위의 성경은 “본래 죄의 종이더니”라고 말한다. “본래”라는 말은 이미 그렇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은 본래 죄의 종이다. 자기가 죄를 선택하여 짓기 전에 이미 죄의 종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그때 비로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요5:24,25) 그때는 이미 생명의 종이다. 그때 사람은 자기를 의에게 드려 의의 종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죄의 종으로 사망의 상태에서 완전히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가 죄의 종, 의의 종이라고 하는 의미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처럼, 우리도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경축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넷째 날(수) 7월 13일
그대를 거룩케 하는 자를 기억하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출 31:13).
질문: 출 31:13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성화의 과정을 삶 속에서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출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답: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와 그분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 사이를 올바르게 연결하는 거룩한 날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사람은 창조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음으로 잃어버린바 되었다. 이제는 구속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된 사실을 이 죄의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잘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장하실 것이다. 그것이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라는 말씀의 약속이다.
<부가설명> 거룩하게 한다는 말은 구별한다는 말인데,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께서는 그분을 창조주로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놓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하여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대상16:21,22, 시105:14,15)고 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이 구별해놓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언하신다. 그들은 예수 안에 있고 악한 자가 만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요일5:18) 악한 자가 그들을 만지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시고 그의 거룩한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키신다.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라는 말씀의 일차적인 뜻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그들은 거룩한 생명이 나타나는 빛의 열매를 맺히게 된다. 이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그들은 거룩한 생명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생의 생명, 곧 거룩한 생명을 얻었는지 항상 살피고 주님의 손에서 그 생명이 풍성하여지는 경험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요10:10)
교훈: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기억하는 날이다. 복음은 죄의 용서뿐 아니라, 거룩한 삶에 대한 약속까지 포함하고 있다.
다섯째 날(목) 7월 14일
구속의 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질문: 마 11:28~30에서 안식으로 초청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어떻게 안식일과 접목될 수 있는가?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답: 이 말씀은 예수님이 안식의 주체라는 것을 계시한다. 우리가 쉬면 쉬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에 쉼을 얻는다. 비록 고된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예수 안에 있을 때 쉼이 있다. 이 쉼을 인간 생활 속에 구체화한 것이 안식일이다. 창조주께서는 안식일에 쉼을 창조하셨다. 쉼을 누리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쉼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쉼이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게로 와서 쉼을 얻으라고 하신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쉼을 누리는 방법이다. 쉼은 죄가 해결된 사람에게 이르는 평안과 관련되어 있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48:2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죄와 악은 사람에게 쉼을 빼앗아간다. 태초에 죄가 없을 때에는 쉼과 평안이 사람의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사람에게는 수고가 닥쳤다. 수고는 창3:17,18에서 발생하였다. 그 수고는 종신토록 하게 되어 있다. 종신은 죽는 때이다. 예수 안에서 자아가 죽으면 그때 쉼이 온다.(계14:13) 그것은 거듭남이요, 온전한 속죄요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시고 예수 안에 있다. 이런 사실을 믿고 생활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아멘.
교훈: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과 마음과 육체적 휴식을 가장 구체적으로
누리는 복된 날이다.
예비일(금) 7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111~116 “글자 그대로의 주일”, 시대의 소망, 281~289 “안식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준수로 그들이 당신의 경배자로 일컬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은 우상숭배로부터의 그들의 분리와 참하나님과 연결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 이렇게 되어야만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경배자로 구별(區別)할 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283).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을 때에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안식일 준수를 통하여 그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구별되도록 가르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창조주와 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구분 짓는 것이다”(교회증언 6권, 3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참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이 어떻게 우리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요?
※ 안식일의 제정과 그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사실을 인정하는 삶이 된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진화론이나 불가지론이나 무신론이 마음에 생길 수 없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사실이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을 인정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➋안식일에 그대의 교회는 어떻게 예배하고 있습니까? 예배 순서는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주와 거룩케 하는 하나님으로 높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우리 예배의 중심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각 사람이 출석하는 교회의 예배 시간에 대하여 잘 생각해보고 거룩함과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개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인간의 감정에 예배 중심에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정성을 다하여 생각과 정신으로 하나님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❸거짓 예배를 강요하는 세력이 나타나는 마지막 시대에 안식일은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가 될까요?
※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여부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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