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질문, 대답, 부가설명)05/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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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5-20 13:37 조회8,250회 댓글1건본문
5월 28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4분
기억절 :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슥 3:4).
연구 범위: 슥 1~3장, 계 12:10, 출 3:2~14, 엡 2:8~10, 요 14:15.
우리는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가 현실 뒤에서 작용하는 실제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전쟁, 범죄, 폭력, 모든 아비규환의 비극은 하늘의 전쟁에 비하면 표면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롬 8:20~22). 하늘의 전쟁은 인류뿐 아니라 모든 창조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대쟁투는 중동의 석유나 군사적, 경제적 패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변동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국가, 권력, 역사의 중대
한 순간들 그리고 이념도 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고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사탄은 돈과 권력과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는 영혼에 관
심이 있다. 그는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영혼을 파멸로 이끌고자 한다. 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파멸에서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셨다. 대쟁
투의 핵심은 우리가 영생(永生)과 영멸(永滅)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에 관한 것이다. 그 외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스가랴서 3장의 등장인물들을 확인하고 회복의 드라마에서 그들이 감당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묘사한다.
➋느끼기 : 더러운 옷을 입고 고소를 당할 때와 깨끗한 옷을 입게 됐을 때 여호수아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생각해 본다.
➌행하기 : 여호와의 사자가 주는 정결한 제사장복을 입고 그의 길로 행한다.
결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은 채 법정에 서서 그의 모든 죄로 인하여 고소를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판관은 그에게 형을 언도하는 대신 그의 더러운 옷을 제거하고 정결한 옷을 입힌 뒤에 순종하도록 이끌었다.
첫째날(일)
5월 22일 예루살렘을 향한 질투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슥 1:3).
질문: 슥 1~2장을 읽어보라. 세세한 내용과 상징들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여기서 백성들에게 어떤 기별을 주시고 있는가? 이 사건들의 배경은 무엇인가? 이 장에서 어떤 성경적 원칙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가? 어떤 조건하에서 어떤 언약이 수립되었고, 어떤 소망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졌는가? 우리의 현 상황이 스가랴서에 묘사된 상황과 얼마나 다를지 모르지만 이런 동일한 원칙들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답: 슥 1장은 옛날을 돌아보고 현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말도록 권고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보내어 당신의 뜻을 시원하게 이루시는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2장은 예루살렘이 온전히 회복될 것을 예언하는데 이것은 새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이다.
이 사건들의 배경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성전 건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형통할 것이며 회복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원칙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러나 언제나 일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우리들은 옛날의 허물로 인하여 당한 어려움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회상하여 현재를 바르게 걸어가도록 부탁하신다. 과거의 허물은 범하지 않도록 하고 옛길의 바른 길은 현재에도 걸어가도록 권하신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조상들의 허물을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회복의 기쁨을 누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회복시키는 능력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유다 자손들이 회개하여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재건하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셨다.
둘째날(월)
5월 23일 원고와 피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슥 3:1).
질문: 특별히 대쟁투의 관점에서(혹은 이상이 주어진 자체 문맥을) 본다면 슥 3:1에서는 어떤 중요하고 위대한 진리가 계시되고 있는가?
[슥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답: 사단이 예수께서 하시는 속죄 사업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가설명> 여기 나타난 사건은 여호와의 사자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사단의 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아담의 후손들을 표상하는 사람으로 서 있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 자체가 사망으로 더럽혀진 것을 나타낸다.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인간의 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시고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례를 수행하라고 하신다. 이제 여호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 그 생명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께서는 생명으로 구원하시고 그 생명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이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 생명이 없는 사람이 썩는 것 외에 무엇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그 생명의 성질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 곧 사랑을 생활하는 것이다.
교훈: 사탄이 우리의 죄를 들추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할지라도 죄를 덮는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수는 없다.
셋째날(화)
5월 24일 여호와의 천사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슥 3:1).
질문1: “여호와 천사”는 누구인가?(출 3:2~1, 슥 3:1~2 참고)
[출3:1,2]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슥3:1,2]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답: 여기 나타난 여호와 사자(한글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영어는 angel로 번역했다. 그래서 교과에는 천사라고 번역했다. 원문은 “말라크”인데 “천사, 사자”라는 뜻이다. 출3:1~5을 읽으면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4절에는 여호와와 하나님으로 기록된다. 여호와의 사자인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성육신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질문2: 슥 3:1~3을 읽어보라.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옷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슥3:1~3]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답: 그것은 아담 안에서 죽은 인간의 본질을 표상하고 또 인간이 행하는 모든 도덕적 율법적 의로운 행동들이다.(사64:6 참고)
<부가설명> 월요일 부가설명에 있는 내용이 화요일에도 해당되는 설명이다.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난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도 위에서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예수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사람이 되어 탄생하실 그분에게 여호와의 이름이 있다고 하셨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출23:20,21)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으신 삼위일체 여호와 중에 한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들의 죄를 친히 담당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을 처리하시고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다. 그렇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이 그들의 삶의 방법이 된다. 그것이 생태가 된다는 말이다.
스가랴 3장의 뒷부분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천사”가 사탄의 고소에 맞서,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을 변호하기 위해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들의 과거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고소가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여호와의 천사” 곧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하고, 건져내기 위하여 거기 계신다. 이것이야 말로 성경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진리가 아닌가!
교훈: 사탄은 죄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있는 우리를 고소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사랑과 의를 믿는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
넷째날(수)
5월 25일 옷을 갈아입음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슥 3:5).
질문1: 기도하는 마음으로 스가랴 3장을 자세히 읽어보고, 그 과정 가운데 단계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록 죄인이지만 어떻게 구원받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기에 나타난 이상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의 계획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슥3:1~10]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6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답: 사단을 책망하여 물리치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정한 관을 씌우고 여호와의 사자 곁에 서서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하게 된다. 죄악이 사함을 받았고 평안한 중에 주님을 섬기게 된다.
질문2: 여호수아가 옷을 갈아입은 후에 “여호와의 천사”는 그에게 무엇이라 말했는가? 왜 이러한 순서가 그토록 중요한가?(슥 3:7)
답: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준행하고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왕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킬 능력을 받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사실은 위의 부가설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의 죄과를 벗기시고 의의 옷을 입힌 후에, 그분의 계명과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신다.
다섯째날(목)
5월 26일 “효과적인 탄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질문: 스가랴 3장에서 본 것들을 염두에 두고 엡 2:8~10, 요 14:15, 롬 6:1~5을 읽어보라. 이 말씀들은 스가랴에서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엡2:8~1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롬6:1~5]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답: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는 것은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롬6:4)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부가설명> 겉옷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부분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삶은 생명이 기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가 가진 생명의 성질이 어떤가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겉옷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돼지는 돼지의 삶을 산다. 소는 소의 삶을 산다. 그것들의 생명의 성질을 따라 사는 것이다. 소에게 돼지의 삶을 살게 할 수 없고, 돼지에게 소의 삶을 살게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그것들을 소나 돼지가 되도록 재창조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이다. 사망이 우리의 삶을 주장한다. 나타내는 것들은 사망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생명을 얻은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된 사람들의 생활은 생명이 주장한다. 그 삶은 생명의 모습이다. 그 생명의 모습이 하나님의 계명을 생활화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것을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이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생명을 받지 않았으면 결코 하나님의 선을 행할 수 없다. 인간이 말하는 도덕적 선을 수신 도야해서 아주 높게 성취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선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망을 화장(化粧)해서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참으로 예수의 생명을 얻었는지? 예수를 옷 입었는지?(롬13:14, 갈3:27)
교훈: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자들은 죄를 이기기 위해 약속받은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예비일(금)
5월 2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재림교회 성경주석 8권, 852~853, 선지자와 왕, 582~592 “여호수아와 천사”, 실물교훈, 169~170 “하나님께서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교회증언 5권, 467~476 “여호수아와 천사.”
“사탄이 흑암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덮어서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개입하신다. 비록 그들이 죄를 범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에서 나무 조각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인류를 끄집어내셨다. 그는 당신의 인성으로써 사람과 연결되셨고, 당신의 신성으로써 무한하신 하나님과 일체가 되신다. 그분의 도움은 죽어가는 영혼들의 손이 미치는 곳에 놓여진다. 대적 사탄은 책망을 받는다.…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결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돌보심의 대상인 그들을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그분에게는 그들의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는 그들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 당신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히시며 하늘 책에 적힌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하였다고 기록하신다”(실물교훈, 169~17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순종에 대한 명령이 옷을 바꿔 입은 이후에 주어졌다는 사실을 주의 깊이 생각해 봅시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와 구원의 결과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는 왜 구원의 기초와 구원의 결과를 항상 구분해야 합니까?
※ 옷을 바꿔 입은 이후에 명령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옷을 바꿔 입기 전에는 그는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로 있기 때문에 죽은 행실밖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생명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도 없다. 구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서 살아났을 때 비로소 산 자들이 행할 수 있는 그 사랑의 계명을 제시한다. 그들이 얻는 생명의 성질이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➋우리의 옷이 얼마나 더러운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새로운 옷이 주어졌다는 복음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당신의 생활에 있어서, 당신의 태도에 있어서,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보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삶을 얻을 수 있다. 죽기 않은 자들은 또 다시 생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죽은 자들에게는 생명이 주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를 주신 것이다. 이렇게 살아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예수께서 대하신 것과 같이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께 받은 예수 생명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일몰:오후 7시 44분
기억절 :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슥 3:4).
연구 범위: 슥 1~3장, 계 12:10, 출 3:2~14, 엡 2:8~10, 요 14:15.
우리는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가 현실 뒤에서 작용하는 실제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전쟁, 범죄, 폭력, 모든 아비규환의 비극은 하늘의 전쟁에 비하면 표면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롬 8:20~22). 하늘의 전쟁은 인류뿐 아니라 모든 창조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대쟁투는 중동의 석유나 군사적, 경제적 패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변동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국가, 권력, 역사의 중대
한 순간들 그리고 이념도 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고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사탄은 돈과 권력과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는 영혼에 관
심이 있다. 그는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영혼을 파멸로 이끌고자 한다. 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파멸에서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셨다. 대쟁
투의 핵심은 우리가 영생(永生)과 영멸(永滅)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에 관한 것이다. 그 외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스가랴서 3장의 등장인물들을 확인하고 회복의 드라마에서 그들이 감당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묘사한다.
➋느끼기 : 더러운 옷을 입고 고소를 당할 때와 깨끗한 옷을 입게 됐을 때 여호수아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생각해 본다.
➌행하기 : 여호와의 사자가 주는 정결한 제사장복을 입고 그의 길로 행한다.
결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은 채 법정에 서서 그의 모든 죄로 인하여 고소를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판관은 그에게 형을 언도하는 대신 그의 더러운 옷을 제거하고 정결한 옷을 입힌 뒤에 순종하도록 이끌었다.
첫째날(일)
5월 22일 예루살렘을 향한 질투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슥 1:3).
질문: 슥 1~2장을 읽어보라. 세세한 내용과 상징들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여기서 백성들에게 어떤 기별을 주시고 있는가? 이 사건들의 배경은 무엇인가? 이 장에서 어떤 성경적 원칙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가? 어떤 조건하에서 어떤 언약이 수립되었고, 어떤 소망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졌는가? 우리의 현 상황이 스가랴서에 묘사된 상황과 얼마나 다를지 모르지만 이런 동일한 원칙들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답: 슥 1장은 옛날을 돌아보고 현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말도록 권고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보내어 당신의 뜻을 시원하게 이루시는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2장은 예루살렘이 온전히 회복될 것을 예언하는데 이것은 새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이다.
이 사건들의 배경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성전 건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형통할 것이며 회복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원칙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러나 언제나 일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우리들은 옛날의 허물로 인하여 당한 어려움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회상하여 현재를 바르게 걸어가도록 부탁하신다. 과거의 허물은 범하지 않도록 하고 옛길의 바른 길은 현재에도 걸어가도록 권하신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조상들의 허물을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회복의 기쁨을 누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회복시키는 능력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유다 자손들이 회개하여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재건하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셨다.
둘째날(월)
5월 23일 원고와 피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슥 3:1).
질문: 특별히 대쟁투의 관점에서(혹은 이상이 주어진 자체 문맥을) 본다면 슥 3:1에서는 어떤 중요하고 위대한 진리가 계시되고 있는가?
[슥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답: 사단이 예수께서 하시는 속죄 사업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가설명> 여기 나타난 사건은 여호와의 사자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사단의 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아담의 후손들을 표상하는 사람으로 서 있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 자체가 사망으로 더럽혀진 것을 나타낸다.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인간의 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시고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례를 수행하라고 하신다. 이제 여호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 그 생명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께서는 생명으로 구원하시고 그 생명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이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 생명이 없는 사람이 썩는 것 외에 무엇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그 생명의 성질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 곧 사랑을 생활하는 것이다.
교훈: 사탄이 우리의 죄를 들추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할지라도 죄를 덮는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수는 없다.
셋째날(화)
5월 24일 여호와의 천사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슥 3:1).
질문1: “여호와 천사”는 누구인가?(출 3:2~1, 슥 3:1~2 참고)
[출3:1,2]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슥3:1,2]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답: 여기 나타난 여호와 사자(한글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영어는 angel로 번역했다. 그래서 교과에는 천사라고 번역했다. 원문은 “말라크”인데 “천사, 사자”라는 뜻이다. 출3:1~5을 읽으면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4절에는 여호와와 하나님으로 기록된다. 여호와의 사자인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성육신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질문2: 슥 3:1~3을 읽어보라.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옷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슥3:1~3]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답: 그것은 아담 안에서 죽은 인간의 본질을 표상하고 또 인간이 행하는 모든 도덕적 율법적 의로운 행동들이다.(사64:6 참고)
<부가설명> 월요일 부가설명에 있는 내용이 화요일에도 해당되는 설명이다.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난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도 위에서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예수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사람이 되어 탄생하실 그분에게 여호와의 이름이 있다고 하셨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출23:20,21)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으신 삼위일체 여호와 중에 한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들의 죄를 친히 담당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을 처리하시고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다. 그렇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이 그들의 삶의 방법이 된다. 그것이 생태가 된다는 말이다.
스가랴 3장의 뒷부분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천사”가 사탄의 고소에 맞서,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을 변호하기 위해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들의 과거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고소가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여호와의 천사” 곧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하고, 건져내기 위하여 거기 계신다. 이것이야 말로 성경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진리가 아닌가!
교훈: 사탄은 죄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있는 우리를 고소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사랑과 의를 믿는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
넷째날(수)
5월 25일 옷을 갈아입음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슥 3:5).
질문1: 기도하는 마음으로 스가랴 3장을 자세히 읽어보고, 그 과정 가운데 단계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록 죄인이지만 어떻게 구원받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기에 나타난 이상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의 계획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슥3:1~10]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6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답: 사단을 책망하여 물리치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정한 관을 씌우고 여호와의 사자 곁에 서서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하게 된다. 죄악이 사함을 받았고 평안한 중에 주님을 섬기게 된다.
질문2: 여호수아가 옷을 갈아입은 후에 “여호와의 천사”는 그에게 무엇이라 말했는가? 왜 이러한 순서가 그토록 중요한가?(슥 3:7)
답: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준행하고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왕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킬 능력을 받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사실은 위의 부가설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의 죄과를 벗기시고 의의 옷을 입힌 후에, 그분의 계명과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신다.
다섯째날(목)
5월 26일 “효과적인 탄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질문: 스가랴 3장에서 본 것들을 염두에 두고 엡 2:8~10, 요 14:15, 롬 6:1~5을 읽어보라. 이 말씀들은 스가랴에서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엡2:8~1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롬6:1~5]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답: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는 것은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롬6:4)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부가설명> 겉옷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부분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삶은 생명이 기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가 가진 생명의 성질이 어떤가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겉옷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돼지는 돼지의 삶을 산다. 소는 소의 삶을 산다. 그것들의 생명의 성질을 따라 사는 것이다. 소에게 돼지의 삶을 살게 할 수 없고, 돼지에게 소의 삶을 살게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그것들을 소나 돼지가 되도록 재창조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이다. 사망이 우리의 삶을 주장한다. 나타내는 것들은 사망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생명을 얻은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된 사람들의 생활은 생명이 주장한다. 그 삶은 생명의 모습이다. 그 생명의 모습이 하나님의 계명을 생활화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것을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이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생명을 받지 않았으면 결코 하나님의 선을 행할 수 없다. 인간이 말하는 도덕적 선을 수신 도야해서 아주 높게 성취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선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망을 화장(化粧)해서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참으로 예수의 생명을 얻었는지? 예수를 옷 입었는지?(롬13:14, 갈3:27)
교훈: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자들은 죄를 이기기 위해 약속받은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예비일(금)
5월 2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재림교회 성경주석 8권, 852~853, 선지자와 왕, 582~592 “여호수아와 천사”, 실물교훈, 169~170 “하나님께서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교회증언 5권, 467~476 “여호수아와 천사.”
“사탄이 흑암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덮어서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개입하신다. 비록 그들이 죄를 범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에서 나무 조각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인류를 끄집어내셨다. 그는 당신의 인성으로써 사람과 연결되셨고, 당신의 신성으로써 무한하신 하나님과 일체가 되신다. 그분의 도움은 죽어가는 영혼들의 손이 미치는 곳에 놓여진다. 대적 사탄은 책망을 받는다.…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결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돌보심의 대상인 그들을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그분에게는 그들의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는 그들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 당신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히시며 하늘 책에 적힌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하였다고 기록하신다”(실물교훈, 169~17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순종에 대한 명령이 옷을 바꿔 입은 이후에 주어졌다는 사실을 주의 깊이 생각해 봅시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와 구원의 결과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는 왜 구원의 기초와 구원의 결과를 항상 구분해야 합니까?
※ 옷을 바꿔 입은 이후에 명령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옷을 바꿔 입기 전에는 그는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로 있기 때문에 죽은 행실밖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생명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도 없다. 구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서 살아났을 때 비로소 산 자들이 행할 수 있는 그 사랑의 계명을 제시한다. 그들이 얻는 생명의 성질이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➋우리의 옷이 얼마나 더러운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새로운 옷이 주어졌다는 복음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당신의 생활에 있어서, 당신의 태도에 있어서,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보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삶을 얻을 수 있다. 죽기 않은 자들은 또 다시 생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죽은 자들에게는 생명이 주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를 주신 것이다. 이렇게 살아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예수께서 대하신 것과 같이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께 받은 예수 생명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드님의 댓글
드 작성일
t순종할때 의의두루마귀를 입혀 주시는 주님의놀라운사랑
감사합니다 육신의 옷을벗고
사랑의계명을받아드리기를 원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