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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 갈렙 : 기다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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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10-07 23:37 조회4,2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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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10월09일 일몰 : 오후 6시 4분

제2와
<갈렙 : 기다림의 삶>

기억절: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시 130:6~7).

▣ 기다림이란?
1. 바라다, 고대(苦待)하다, 거종(擧踵)하다, 기대(期待)하다, 기대(企待)하다, 액수(額手)하다, 교망(翹望)하다,
교수(翹首)하다 의뜻이 있는가 하면, 미루다, 연기(延期)하다, 유예(猶豫)하다. 라는 뜻이 있다.
즉 기다림이란 진행형(ing)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있다면 “기다림”이다.
즉 기다림이란 “숙성(熟成)”이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선악(善惡)의 대 쟁투(大爭鬪)의 처음과 끝을 완전히 기록해 놓은 실록(實錄)드라마이다.
즉 운동경기의 승패(勝敗)의 결과를 모두 녹화(錄畵)한 필름을 재생하여 보는 것과 똑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있어서,
인간의 뜻과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으로 일하심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그런 믿음은 그분의 신뢰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은 상식이 아닌 기적의 사건들이 수없이 기록되어 있고,
그 기적들을 눈으로 보고 체험한 사람들이 두부류로 나뉘어져있다.
그 기적들을 신뢰하고 자신의 생애에 적용함으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부류와,
이를 우연이나 남의 일로 여기며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나 기다리지 못하는 부류로 나눠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와 능력을 신뢰한 사람들이 믿음의 거장이며,
승리한 삶을 산 보통사람의 비범한 삶을 산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금주에는 갈렙의 “기다리는 삶”을 통하여 승리한 경험이 우리의 삶에 100%적용되는 기회가 됩시다.

요 점: 갈렙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소수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었고, 끝까지 믿음과 순종의 모본을 보여주었다.

일요일(10월 3일)
<눈에 보이는 사실들>

▣ 1. <배경(背景)>
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이 호렙산을 떠난 지 11일 만에 약속의 땅 변경에서 멀지 않은 바란 광야에 있는
가데스에 진을 쳤다.
여기서 백성들은 정탐꾼을 보내어 그 땅을 탐지하자고 제의하였다.
모세는 곧 이 문제를 여호와 앞에 제출하여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고
이 일을 위하여 각 지파에서 족장 한 사람씩을 선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모세는 지시받은 대로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그 땅에 가서
⑴ 그 위치와 ⑵ 자연의 이점과 ⑶거기 거하는 백성들의 강약(强弱)과 ⑷ 다소(多少)를 살피되,
⑸ 그 땅의 토질과 ⑹ 비옥도를 살피고 ⑺ 그 땅의 열매를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그들은 남방 변경으로 들어가 북방 끝에 이르기까지 온 땅을 정탐하고 40일 후에 돌아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희망을 품고 열렬한 기대를 가지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탐꾼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퍼져나갔고, 그들은 기쁨으로 만세를 불렀다.
백성들은 모험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무사히 돌아온 사자들을 만나려고 급히 달려 나갔다.
정탐꾼들은 견본이 될 만한 과일을 가져와 그 땅의 비옥함을 보여주었다.
그 때는 포도가 익는 계절이었으므로, 그들은 두 사람이 메야 운반할 수 있을 만큼 큰 포도송이를 가져왔다.
그들은 또 그 지방에 많이 나는 무화과와 석류를 가져 왔다.

백성들은 그처럼 좋은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크게 기뻐하며,
그들이 모세에게 보고하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들었다.
정탐꾼들은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 이다.”
(민 13:17-33, 14장)라는 말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 갈렙은 좋은 시절과 좋지 않은 시절을 모두 경험하였다.
⑴ 애굽에서의 노예생활(奴隸生活)
⑵ 출애굽 과정에서의 10가지 재앙(災殃)
⑶ 출애굽 시에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경험.
⑷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⑸ 매일의 만나의 기적.
⑹ 가나안 정탐에 참석한 장본인.
갈렙은 지나온 그에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과 기적들의 눈에 보이는 사실들을 체험하였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못할 것이나 안 될 것이나 두려울 것이 없다는 신뢰와 믿을 가졌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시간표에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의 용사였다.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그들이 안고 있는 장애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이 훨씬 강력하고 중요한 결정 요인이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다른 이들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그들의 눈에는 가능하게 보였던 것이다.

◯ “갈렙은 성실하고 확고부동했다. 그는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공로와 선행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감화는 언제나 정당한 편에 있었다. 그러면 그의 보상은 무엇이었던가? 주님께서 그분의 음성을 듣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심판을 선고하셨을 때, 그분은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 14:24)고 말씀하셨다. 비겁한 자들과 불평하는 자들은 광야에서 죽었지만 성실한 갈렙은 약속된 가나안에 정착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삼상 2:30)긴다고 말씀하신다.”(5증언, 303)

◎ <목소리가 아니라 안목을 키움>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이 마지막 때에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교회들을 활기 있게 만들고 그들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떠들썩한 사업이 아니고, 조용하고 겸손한 사업이며, 과시하고 과장된 활동이 아니고 인내하고, 경건하고, 오래 참는 활동이다.”(교회증언 5권, 130)

◎ 사실을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하는 것과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아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한다.

월요일(10월 4일)
<반대(反對)에 직면(直面)하여 굳게>

▣ 군중심리(群衆心理)의 위력(威力)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군중심리란 무엇인가?
“군중(群衆)”은 공통적인 규범이나 조직성이 없다는 점에서 사회집단과 구별된다.
군중은 사람들이 공통적인 관심의 대상을 가짐으로써 성립되지만 군중심리란 그 관심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며, 그것이 없어지면 자연히 소멸(消滅)한다.
특정 목적에 따라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간 우연적 요소로 결합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은 군중 틈에서 익명성(匿名性)을 가지며 무책임하고 맹목적인 행동을 취하기 쉽다.
이러한 점에서 군중 특유의 ‘군중심리(群衆心理)’가 형성되는 것이다.

2. <사건의 진상(眞相)>
▣ 정탐꾼들은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민 13:17-33, 14장)라는 말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하면서, 여호와의 음성을 순종하여, 곧 올라가 그 땅을 점령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그 땅의 아름다움과 비옥함을 묘사한 후 두 정탐꾼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도에 놓인 고난과 위험을 과장하여 말했다.
그들은 그 땅의 각 부분에 산재하고 있는 강력한 민족들을 열거하면서 그 도시들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매우 클 뿐 아니라 그 속에 거하는 백성들은 강하여, 자기들이 그들을 정복하기는 전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그 곳에서 아낙 자손들인 거인들을 보았다고 보고하고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말했다.
이제 사태는 변했다.
정탐꾼들이 사단의 충동을 받아 절망에 빠진 자신들의 불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감상을 말할 때에,
백성들의 희망과 용기는 겁에 질려 절망으로 변했다.
그들의 불신은 회중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선민을 위하여 그처럼 자주 나타났던 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했다. 백성들은 곰곰이 생각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을 여기까지 인도해 내신 그분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분명히 주시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다를 갈라 길을 내시고,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멸하시면서, 그들을 어떻게 압제자로부터 해방시키셨는지를 돌이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생각지 않고, 단지 무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불신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했고, 지금까지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신 손길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그들이 과거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던 그들의 잘못을 다시 범했다.
그들은 “자 이것이 우리들의 소망의 끝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유하려고 애굽에서 여행하여 온 땅이로구나”고 말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기만하고 이스라엘에게 어려움을 준다고 비난하였다.
백성들은 실망과 낙담으로 자포자기 하였다.
고민의 통곡 소리가 어지러운 불평의 소리와 뒤섞여 퍼져나왔다.
갈렙은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자 담대히 일어서서,
불충실한 동료들의 악한 영향력을 물리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잠시 동안 백성들은 아름다운 땅에 대하여 희망과 용기를 주는 그의 말을 듣느라고 잠잠하였다.
갈렙은 이미 보고된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성벽은 높았고 가나안 사람들은 강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다.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격려하였다.
그러나 열 정탐꾼들은 그의 말을 가로 막고 장애물에 대하여 처음보다 더 어둡게 묘사하였다.
그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를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그릇된 길로 접어들어 갈렙과 여호수아는 물론, 모세와 하나님께 대하여, 고집스럽게 반대하였다. 사태의 진전은 그들의 마음을 더욱 굳게 할 뿐이었다.
그들은 가나안을 점령하려는 모든 노력을 좌절시키려했다.
그들은 그들의 유해한 영향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실을 왜곡했다.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 “불성실한 정탐꾼들의 거짓 보고는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온 회중은 사단이 그들에게 의도했던 바대로 그 보고를 통하여 기만당하였다. 하나님의 성실한 종들을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음성은 무시되었다. 반역자들은 그들의 일을 이루었다. 모든 회중은 한 음성으로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치자고 부르짖었다.”(교회증언5권, 377)

◯ <갈렙의 믿음을 활용하라>
“갈렙에게 용기를 준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이었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힘센 거인들인 아낙의 자손들에게서 그를 지켜 주었으며 정의를 옹호하는 일에 담대하고 확고히 설 수 있게 해 주었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의 십자 군병은 높으신 근원되시는 하늘 군대의 힘센 장군으로부터 때때로 극복할 수 없는 듯이 보이는 장애물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 용기 있는 말로써 즉각적인 행동을 하게끔 확신에 찬 보고를 해 줄 갈렙들이 필요하다.
교회증언 5권 378-383(1885)”(문전, 117)

◯ <믿음을 통한 용기>
“갈렙은 믿음을 통하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義)를 위하여 굽힘없이 담대하게 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와 꼭같은 능력, 곧 하늘 군대의 힘 있는 대장께 온전히 의뢰함으로 모든 진정한 십자가의 군병들은 이겨내기 어려울 것 같이 보이는 장애물들을 이겨낼 만한 힘과 용기를 받을 수가 있다. (리뷰 1912. 5. 30).”(화잇주석, 민 13:30)

◯ “백성들은 실망과 낙담으로 자포자기 하였다. 고민의 통곡 소리가 어지러운 불평의 소리와 뒤섞여 퍼져나왔다. 갈렙은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자 담대히 일어서서, 불충실한 동료들의 악한 영향력을 물리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잠시 동안 백성들은 아름다운 땅에 대하여 희망과 용기를 주는 그의 말을 듣느라고 잠잠하였다. 갈렙은 이미 보고된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성벽은 높았고 가나안 사람들은 강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다.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격려하였다.”(부조, 388)

◯ “불충실한 정탐꾼들은 큰 소리로 갈렙과 여호수아를 중상하고, 그들을 돌로 치자고 소리를 쳤다. 미친 듯 한 폭도는 저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죽이려고 던질 것을 잡았다. 그들이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 나갈 때에 갑자기 그들의 손에서는 돌이 떨어지고, 무서운 침묵에 압도되어서 그들은 공포에 떨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의 살인 계획을 막으셨다. 타오르는 빛과 같은 그분의 임재의 영광이 성막을 비췄다. 백성들은 모두 여호와의 징조를 바라보았다. 그들보다 더 강하신 분이 나타나셨고 아무도 감히 그들의 반항을 계속하지 못하였다. 불길한 보고를 가져온 정탐꾼들은 공포에 움츠러들어 숨을 죽이고 그들의 장막을 찾아갔다.”(부조, 390)

◯ “백성들은 모반하여, “우리가…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하고 부르짖었었다. 이제 그 소원이 허락되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전부가…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리”라. 그리고 갈렙에 대하여 “내 종 갈렙은 그 믿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정탐꾼들이 40일간을 그 여행에 소비한 것처럼, 이스라엘 무리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었다.”(부조, 391)

◯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의 명령은 모세와 아론은 물론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도 참으로 쓰라린 실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불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던 사람들은 그들이 멸시하던 축복들이 저들로부터 거두워졌을 때에 울며 크게 슬퍼하였다. 그들은 까닭 없이 불평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울 이유를 주셨다. 만일 그들이 자기 앞에 그대로 놓여 있는 그들의 죄를 슬퍼했더라면. 이런 선고는 내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앙에 대하여 슬퍼하고 그들의 슬픔은 회개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에게 내린 선고를 역전시킬 수 없었다.”(부조, 391)

▣ 같은 정보전달도 말하는 방식에 따라 결과가 엄청난 차이가 날수도 있으며 정반대로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같은 정보라 할지라도 여러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다. 말하는 방식은 말의 내용만큼 중요하다.
집단 압박(group pressure)을 당하면 견디기 힘들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굳게 서기란 쉽지 않다.

갈렙은 ⑴ 누구와 논쟁을 하지 않았고
⑵ 정탐꾼들의 불신도 비난하지 않았고,
⑶ 백성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지도 않았으며,
⑷ 꾸짖는 대신 희망적인 말로 보고를 했으며,
⑸ 믿음과 행동을 촉구 하였다.

또한 갈렙은
⑴ 40년간 고난가운데에서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졌고,
⑵ 모본으로 백성을 이끌었고
⑶ 민족과 분리되는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⑷ 갈등이나 믿음의 부족 탓으로 무리를 떠나지 않았다.
⑸ 갈렙은 남을 비난하기보다 고난의 세월을 백성들과 함께 보내는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사태를 파악하는 능력이 달라지며 사건을 표현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계속된 불신이 결국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 <태도가 운명을 가른다.>
“갈렙에게 용기를 준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이었다. 그것이 그를 사람의 위협, 곧 심지어 힘센 거인, 아낙 자손들의 위협에서 그를 지켜주고, 정의를 옹호하는 일에 담대하고 단호하게 설 수 있게 해주었다. 똑같이 고상한 근원, 하늘 군대의 강한 장군으로부터,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병사는 때때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장애들을 극복하기 위한 힘과 용기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효력을 잃고 있다. 그러므로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말을 증거하고자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지, 의심과 낙담과 실망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교회증언 5권, 378)

◯ 하나님의 사람은 다수의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자이다.

화요일(10월 5일)
<하나님의 약속(約束)을 주장함>

▣ <약속이 중요한 이유>
(히브리서 10장 23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약속을 잘 안 지키게 되면 믿음을 잃게 되고 신뢰를 잃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은 하나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약속하시고 약속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이 약속의 열매를 맺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내(忍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까지란 말은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급하잖아요. 바로 지금 당장 필요한데. 하나님께선 절대로 바로 금방 중요한 것을 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잘 익게(숙성(熟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뭔가 중요한 것, 귀한 것을 줄때는 절대로 금방주시 않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 그러면 너와 가족이 살리라는 하셨는데
120년 동안 지을 것이다 라고는 말씀 안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은 하셨는데
언제 까지 이루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나요? 아니죠! 언제까지란 때는 하나님이 달지 않아요. 그냥 주시겠다고만 하세요.

그럼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입장이라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면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주게 하리라 하셨으니까!
아브라함은 분명히 이렇게 생각했을꺼에요.
큰 민족을 이루려면 내가 지금 75살이니까 바로 하나님이 아이를 주시겠지!
지금부터 열심히 낳아도 1년에 한명씩 낳아도 20명만 낳아도 95살이니까 쉽지는 않겠네.그래도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으니까.
분명 하나님이 금방 아이를 주실 꺼야 라고 생각했을꺼에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매일 열심히 기도했을꺼구요.
그런데 이상하게 한해 두해가 가도 사라는 입덧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65세가 넘은 할머니가 너무 예뻐지기만 해서 다른 나라 왕들이 첩을 삼으려고 막 들이대고 그럽니다.
그런데 1년 2년 3년이 가도 사라는 계속 예뻐지기만 합니다.
아브라함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을까요? 안지치고 계속 기도했을까요?
천하의 믿음의 종 아브라함도 지쳐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약속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어요. 저 85세거든요,
또 10년이 지났어요……. 하나님 95세인데요.
큰 민족은 고사하고 아들 하나라도 좀 주실 수 없나요?
언제면 아들하나 주시려고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막 하소연 하지 않았겠어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막 들었을 꺼 에요.
아브라함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아내 사라가 자기 몸종 하갈과 동침해서 아들을 얻으라고 까지 하죠.그래서 얻은 자식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내가 원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저 하늘의 별을 세어 보아라. 네 자손이 그와 같으리라…….
저 바다의 모래를 세어 보아라. 네 자손이 그와 같으리라 라고 위로하시고
믿음을 심으시고 또 약속을 붙들고 살도록 돕습니다.
아브라함은 또 믿음으로 기도하며 약속을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린 끝에 100세가 되어서야 큰 민족을 이루이라는 약속의 아들이삭을 얻게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좋은 사업가가 되고
정치인이 되고 교사가 되고
실력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내와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고
한 사람을 통해 또 다른 한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자들은 인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하지만 고난 없이 인내 없이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그의 지나온 생애동안에 늘 눈으로 목격했고 몸으로 체험하였고 계속 확인하는
영적(靈的)인 삶을 통하여 매사(每事)에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갈렙의 지나온 생애동안에 그에게 한 번도 파기(破棄)되지 않았음을 경험해온 갈렙은 이제 출애굽을 하여40여년이 지나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가난안 입성 후에 땅의 분배가 집중되었는데 갈렙은 아직 정복(征服)되지도 않은 가장 어려운 곳인 거인(巨人)들이 사는 아낙 자손의 지역을 선택하여 바로 40년 전 이슬라엘 백성들을 두렵게 만들었던 지역을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의지하여 그곳을 정복하였는데 그는 노인의 몸 이였지만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여 믿는 자는 언제나 승리가 보장됨을 입증한 갈렙이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나 여전히 유효(有效)함을 믿고 붙들었던 위대한 사람이었다.
우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재림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며 잘 감당하므로 약속의 열매를 맺는 축복받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 <갈렙>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 있는 보고로 인하여 그들을 뒤늦게까지 살게 하셨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하셨다(14:24,30,38).
시내 산에서 했던 인구조사 이후의 생존자는 이들 두 명과 모세와 엘르아살 뿐이었다.”(화잇주석, 민 26:65)

◯ “더 큰일을 시키시기 위하여 당신께서 보호하시고 돌보아 주신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한 세대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여호와께서는 누가 당신의 사람인지 잘 아신다(딤후 2:19). 그분은 성도들의 이름을 항상 당신 앞에 두시며(출 33:17; 사 43:1), 생명책에 보존하신다(계 3:5; 빌 4:3). 갈렙은 반대가 극심하고 견디기가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원칙에 충성한 모본으로 서있다.”(화잇주석, 민 26:65)

◯ <갈렙의 믿음과 결과>
“갈렙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가나안을 점령하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대로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의 오랜 방랑을 견디고 범죄자들의 실망과 수고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에 대하여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오히려 광야에서 그의 동포가 죽임을 당하였을 때에 자기를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였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때의 모든 난관과 위험과 재앙 중에서도, 가나안에 들어와 전쟁하는 여러 해 동안에도 여호와께서 그를 보호하셨으며 이제 그는 80세가 지났으나 그의 기력은 쇠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이미 정복한 땅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정탐꾼들이 정복하기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였던 그 곳을 요청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인의 신앙심을 동요시킨 그 세력을 가진 바로 그 거인들에게서 그 요새를 탈취하고자 하였다. 갈렙의 요구는 그가 명예나 세력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용감한 노전사(老戰士)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모본을 보여, 각 지파를 격려하고 저희 조상들이 정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땅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자 하였다.”(화잇주석, 수 14:1-15)

◯ “갈렙은 40년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기업을 얻고 하나님께서 하시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쫓아내었”(15:14)다. 그는 이와 같이 자기 자신과 그의 집을 위하여 기업을 얻었으나 그 열심은 줄지 않았고 더 많은 지역을 정복 하고자 전진하였다.”(화잇주석, 수 14:1-15)

◯ “갈렙은 40년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기업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거기서 아낙의 … 세 아들을 … 쫓아내었”(수 15:14)다. 그는 이와 같이 자기 자신과 자기 집을 위하여 기업을 얻었으나 그 열심은 줄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기업을 얻은 것을 만족히 여겨 주저앉지 않고 민족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더욱더 정복하고자 전진하였다.”(부조, 513)

◯ “토지의 분배에 관하여 갈렙의 정신과는 전혀 다른 정신을 드러낸 다른 요구가 있었다. 이 요구는 요셉의 자손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의 반 지파가 제출했다. 저희 수가 많은 것을 고려하여 이 지파들은 두 몫의 영토를 요구하였다. 제비로써 그들에게 할당된 곳은 가나안에서 가장 부요한 곳이며 샤론의 비옥한 평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골짜기에 있는 많은 중요한 성읍들은 아직도 가나안 인들이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이 지파들은 그들의 소유를 점령하는 수고와 위험을 피하고 이미 정복된 영토에서 다른 부분을 더 요구했다. 에브라임 지파는 여호수아 자신이 속한 지파로서 이스라엘 중에 가장 큰 지파 중 하나였다. 그 수로 볼 때 그들은 자연히 특별한 고려를 받을 만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수 17:14-18)고 하였다. 그러나 확고부동한 지도자 여호수아는 엄격한 공의에서 떠난 일이 없었다.”(부조, 513)

수요일(10월 6일)
<믿음의 유산(遺産)을 물려 줌>

▣ 우리말 속담에 3대 부자(富者)가 없고 3대 거지가 없다는 말이 있으며.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도 있으며.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있다.
이 모든 말은 사람이 호흡이 멎은 상태에서 평가되는 말에 해당이 된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고 죽음을 향하여 분주히 살며 그 곳을 향하여 급히 달려가고 있다.
그토록 시간이 없다고 바쁘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바삐 살던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와 요양을 하는 경우를
보면 우리의 인생은 한치 앞을 보지 못하며 어리석게 움직이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몇 년 전에 재림 연수원에서 관(棺)속에 들어가는 순서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다.
누운 상태에서 관(棺) 나무 뚜껑을 닫고 누워있을 때에 그 감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재물(財物)이나 명예(名譽)나 부(富)는 움직이는 것들이다.
나의 호흡이 멎은 후에 나의 일생은 과연 무엇 이였을까?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초월하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생명의 허락에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의 유산(遺産)을 물려주는 생애가 가장 멎진
유산을 물려주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 성경의 인물가운데에 믿음의 유산을 우리에게 물려준 한분 한분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 이만한 믿음의 유산을 상속(相續)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아브라함의 믿음, 다니엘과 그의3친구들의 믿음, 요셉의 믿음을 비롯하여 히브리11장의 이름들과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과 …….
이런 믿음의 유산(遺産)보다 더 귀중한 유산이 어디에 있을까?

◯ <순종의 조건으로 얻어질 약속의 땅>
“이스라엘이 40년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은 모세와 아론,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참으로 쓰라린 실망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저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불평해 오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던 사람들은 저들이 멸시하던 축복들이 저들에게서 거두어졌을 때에 울며 크게 슬퍼하였다. 저들은 까닭 없이 불평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울 이유를 주셨다. 만일 저들 앞에 그대로 놓여 있는 저들의 죄에 대하여 슬퍼하였더라면, 이런 선고는 내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재앙에 대하여 슬퍼하였다. 저들의 슬픔은 회개가 아니었으며, 그러므로 저들에게 내린 선고를 철회할 수 없었다.”(화잇주석, 민 14:39-45)

◯ <영원한 청년>
“여호와의 군대와 더불어 애굽을 떠날 때에 가졌던 것과 같은 용감한 마음을 가지고, 갈렙은 거인들의 요새를 그의 분깃으로 달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냈다. 그의 발로 걸어 다녔던 포도원과 감람나무 숲은 그의 소유가 되었다. 겁쟁이와 반역자들은 광야에서 멸망했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에스골의 포도를 먹었다.”(교육, 149)

목요일(10월 7일)
<거저 줌>

▣ 거져 줄 수 있다는 것은 품성의 문제이다.
하늘나라는 이 땅의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또한 필요하지도 않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품성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져 주는 연습을 많이많이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두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품성 개발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믿음의 거장 겔렙과 같은 거져주는 예수님의 사랑의 품성을 실천해봅시다.

◯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유업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소유하고 있는 땅을 상속자에게 물려주는 것은 자신의 유업이 사라지지 않음을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율법까지 주어졌다. (신 25:5~ 10 참조).
노년의 갈렙은 유산(遺産)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후대의 족보를 보면 갈렙에게는 아들들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가능한 많은 유업을 주기를 원했다.
악사는 딸이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땅은 갈렙의 직계 가족의 손에서 떠나,
그녀의 남편의 재산 소유가 되었다. 우리는 악사가 무슨 이유로 땅을 요구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다고 해도 그것은 유업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법이 정하고 있는
정당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갈렙은 딸에게 땅뿐 아니라, 샘까지 주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윗샘, 아랫샘 모두를 주었다.
관대함은 한꺼번에 두 가지의 일을 한다.
잠언 11:25를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였다.
만약 우리가 거저 줄 준비가 돼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거저 주는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 갈렙의 관대함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용서의 은혜를 풍족하게 받은 사람이라면 능히 누구든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관용의 부족이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용서를 아직 구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갈렙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복을 받았기 때문에 나누기를 기뻐하였다.
그는 당시 사회적 규범을 초월하여 관대함을 나타내었다.

◯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위한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일에 인간 도구들을 통하여 당신의 성령으로 역사해 오셨다. 이것은 부조들의 생애 속에서 나타났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 시대의 광야 교회에게 당신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느 9:20)섰다. 그리고 그분은 사도 시대에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능력 있게 일하셨다. 부조들을 붙드시고,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시고, 사도 시대의 교회 사업을 효과 있게 만드신 동일한 능력이 그 후의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의 충실한 자녀들을 붙들어 주었다. 암흑시대 동안 왈덴스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종교 개혁의 길을 준비하였다. 그 동일한 능력으로 고상한 남녀들이 현대 선교지를 설립하고 모든 국가와 민족들의 언어와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개척 사업에 성공하였다.”(행적, 53)

◯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낸 갈렙>
“악사의 요구는 적절하고 타당한 것으로 보이며, 갈렙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허락했다. 우리의 기업을 배분하는 하늘 아버지는 정녕 육신의 부모만큼이나 분별 있고 자애로운 분이다. 우리도 악사처럼 지혜를 행사하여, 우리의 삶의 기업에 그처럼 적절하고 타당한 개선을 허락하시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바짝 마른 삶의 경험을 촉촉하게 적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샘물을 기꺼이 주실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요청하기만 하면 그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엡 3:20) 주실 것이다.”(재림교회 성경주석 3권, 335)

◯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해진 것 이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셀 수 없는 복을 받기 때문이다.

<초점(焦點)>
갈렙은 전면에서 주연으로의 지도가가 아니라 조연(助演)으로의 삶을 살었지만 하나님께 믿음으로 충성하는 적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 이였지만 반역(叛逆)에 직면했을 때에는 군중 앞에서 믿음의 용기를 내었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믿음의 약속을 그 후손에게 유산(遺産)으로 물려주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민족을 인도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말미부록(末尾附錄)>

“히브리인들이 호렙산을 떠난 지 11일 만에 약속의 땅 변경에서 멀지 않은 바란 광야에 있는 가데스에 진을 쳤다. 여기서 백성들은 정탐꾼을 보내어 그 땅을 탐지하자고 제의하였다.
모세는 곧 이 문제를 여호와 앞에 제출하여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고 이 일을 위하여 각 지파에서 족장 한 사람씩을 선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모세는 지시받은 대로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그 땅에 가서 그 위치와 자연의 이점과 거기 거하는 백성들의 강약과 다소를 살피되 그 땅의 토질과 비옥도를 살피고 그 땅의 열매를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그들은 남방 변경으로 들어가 북방 끝에 이르기까지 온 땅을 정탐하고 40일 후에 돌아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희망을 품고 열렬한 기대를 가지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탐꾼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퍼져나갔고, 그들은 기쁨으로 만세를 불렀다. 백성들은 모험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무사히 돌아온 사자들을 만나려고 급히 달려 나갔다. 정탐꾼들은 견본이 될 만한 과일을 가져와 그 땅의 비옥함을 보여주었다. 그 때는 포도가 익는 계절이었으므로, 그들은 두 사람이 메야 운반할 수 있을 만큼 큰 포도송이를 가져왔다. 그들은 또 그 지방에 많이 나는 무화과와 석류를 가져 왔다.

백성들은 그처럼 좋은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크게 기뻐하며 그들이 모세에게 보고하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들었다.
정탐꾼들은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 이다.”(민 13:17-33, 14장)라는 말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하면서, 여호와의 음성을 순종하여, 곧 올라가 그 땅을 점령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그 땅의 아름다움과 비옥함을 묘사한 후 두 정탐꾼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도에 놓인 고난과 위험을 과장하여 말했다.
그들은 그 땅의 각 부분에 산재하고 있는 강력한 민족들을 열거하면서 그 도시들은 성벽으로 둘러싸이다 있고 매우 클 뿐 아니라 그 속에 거하는 백성들은 강하여, 자기들이 그들을 정복하기는 전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그 곳에서 아낙 자손들인 거인들을 보았다고 보고하고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말했다.
이제 사태는 변했다.
정탐꾼들이 사단의 충동을 받아 절망에 빠진 자신들의 불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감상을 말할 때에,
백성들의 희망과 용기는 겁에 질려 절망으로 변했다.
그들의 불신은 회중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선민을 위하여 그처럼 자주 나타났던 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했다. 백성들은 곰곰이 생각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을 여기까지 인도해 내신 그분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분명히 주시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다를 갈라 길을 내시고,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멸하시면서, 그들을 어떻게 압제자로부터 해방시키셨는지를 돌이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생각지 않고, 단지 무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불신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했고, 지금까지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신 손길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그들이 과거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던 그들의 잘못을 다시 범했다.

그들은 “자 이것이 우리들의 소망의 끝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유하려고 애굽에서 여행하여 온 땅이로구나. 고 말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기만하고 이스라엘에게 어려움을 준다고 비난하였다.
백성들은 실망과 낙담으로 자포자기 하였다.
고민의 통곡 소리가 어지러운 불평의 소리와 뒤섞여 퍼져나왔다.
갈렙은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자 담대히 일어서서,
불충실한 동료들의 악한 영향력을 물리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잠시 동안 백성들은 아름다운 땅에 대하여 희망과 용기를 주는 그의 말을 듣느라고 잠잠하였다.
갈렙은 이미 보고된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성벽은 높았고 가나안 사람들은 강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다.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격려하였다.

그러나 열 정탐꾼들은 그의 말을 가로 막고 장애물에 대하여 처음보다 더 어둡게 묘사하였다.
그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를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그릇된 길로 접어들어 갈렙과 여호수아는 물론, 모세와 하나님께 대하여, 고집스럽게 반대하였다. 사태의 진전은 그들의 마음을 더욱 굳게 할 뿐이었다.
그들은 가나안을 점령하려는 모든 노력을 좌절시키려했다. 그들은 그들의 유해한 영향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실을 왜곡했다.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것은 불길한 보고일 뿐 아니라 허위 보고였다. 그것은 그 자체에 모순이 있었다. 정탐꾼들은 처음에 그 땅은 비옥하고 번영하는 땅이요, 그 곳 백성들은 키가 크다고 보고했는데, 만일 그 땅이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곳 기후가 건강을 해친다면 위에 말한 모든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을 불신에 굴복시킬 때에는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사단의 지배 아래 두게 되며 사단이 그들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폭동과 공공연한 반항이 신속히 뒤따라 일어났다. 사단이 완전히 지배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성을 잃은 것같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한 말을 듣고 계신다는 것과 구름기둥속에 싸인 그분의 앞에 있는 천사가 그들이 폭발시키는 무서운 분노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모세와 아론을 저주하였다. 그들은 비통 중에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하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들의 감정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일어났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리하여 그들은 차지할 수 없는 땅을 약속함으로 그들을 기만하였다고 모세 뿐 아니라 하나님도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강하신 팔이 그들을 구원해 낸 그 고생과 속박의 땅으로 되돌아가기 위하여 그들을 인도할 장관을 임명하기까지 하였다.
굴욕과 고민 중에,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렸다. 그들은 분별없고 격정적인 백성들의 의도를 어떻게 돌이킬지를 알지 못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소란을 진정시키고자 시도했다. 그들은 비통과 의분의 표시로 옷을 찢고, 백성들 가운데로 급히 달려 나갔다. 그들의 쟁쟁한 음성은 울음소리와 반역적 통탄으로 야단 법석하는 소리를 압도하고 들리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의 한도를 채웠으므로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그들을 참으실 수 없으셨다. 여호와의 보호가 제거되었으므로, 그들은 쉽게 항복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증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충실한 정탐꾼의 허위 보고가 수용되고, 그것 때문에 온 회중은 기만을 당했다. 반역자들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 때의 불신을 볼 때에는 두 사람만 불길한 보고를 하고 열 사람이 모두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 땅을 점령하자고 격려했을지라도, 그들은 역시 그들의 사악한 불신 때문에 열 사람의 충고보다 두 사람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열 명이 반역 편에 서 있는 반면, 두 사람만이 정의를 옹호하고 있었다.
불충실한 정탐꾼들은 큰 소리로 갈렙과 여호수아를 중상하고, 그들을 돌로 치자고 소리를 쳤다. 미친 듯 한 폭도는 저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죽이려고 던질 것을 잡았다. 그들이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 나갈 때에 갑자기 그들의 손에서는 돌이 떨어지고, 무서운 침묵에 압도되어서 그들은 공포에 떨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의 살인 계획을 막으셨다. 타오르는 빛과 같은 그분의 임재의 영광이 성막을 비췄다. 백성들은 모두 여호와의 징조를 바라보았다. 그들보다 더 강하신 분이 나타나셨고 아무도 감히 그들의 반항을 계속하지 못하였다. 불길한 보고를 가져온 정탐꾼들은 공포에 움츠러들어 숨을 죽이고 그들의 장막을 찾아갔다.
이제 모세는 일어나 성막으로 들어갔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가 전염병으로 저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탄원하였다. 모세는 백성들을 멸하고 그를 더 강한 나라로 만드시겠다는 제안에 동의할 수 없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호소하여 말하였다.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가 많아…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옵소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즉석에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으나, 그들의 불신과 비겁함 때문에 그분은 그들의 원수를 정복하기 위하여 능력을 나타내실 수 없으셨다. 그런고로 그분은 당신의 긍휼하심으로 그들에게 단 하나의 안전한 길인 홍해 쪽으로 되돌아가라고 명령하셨다.
백성들은 모반하여, “우리가…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하고 부르짖었었다. 이제 그 소원이 허락되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전부가…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리”라. 그리고 갈렙에 대하여 “내 종 갈렙은 그 믿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정탐꾼들이 40일간을 그 여행에 소비한 것처럼, 이스라엘 무리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결정을 백성들에게 전달했을 때에, 그들의 분노는 비탄으로 변했다. 그들은 그들이 받을 형벌이 공정함을 알고 있었다. 불충실한 열 정탐꾼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전염병에 걸려 온 이스라엘 회중의 목전에서 죽었고 백성들은 그들의 운명에서 자기들의 파멸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에야 그들의 죄 된 행위를 성실히 회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저들의 망은과 불순종을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악한 행동에 따르는 결과를 슬퍼한 것뿐이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명령을 철회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그들의 고집은 다시 머리를 쳐들었으며, 그들은 광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원수의 땅에서 물러가도록 명령하심으로, 그들의 표면적 복종을 시험하시고, 그것이 진정한 복종이 아님을 입증하셨다. 그들은 무분별한 감정에 지배를 받아 하나님을 순종하라고 간청한 정탐꾼을 죽이려 함으로 큰 죄에 빠졌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재난을 가져올 무서운 과오를 범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할 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는 동일한 폭동을 일으킬 구실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권위를 받들어 그들에게 다시 광야로 돌아가라고 명했을 때에, 이러한 반역이 다시 일어났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의 명령은 모세와 아론은 물론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도 참으로 쓰라린 실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불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던 사람들은 그들이 멸시하던 축복들이 저들로부터 거두워졌을 때에 울며 크게 슬퍼하였다. 그들은 까닭 없이 불평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울 이유를 주셨다. 만일 그들이 자기 앞에 그대로 놓여 있는 그들의 죄를 슬퍼했더라면. 이런 선고는 내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앙에 대하여 슬퍼하고 그들의 슬픔은 회개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에게 내린 선고를 역전시킬 수 없었다.
그 밤을 통곡으로 보냈으나 아침이 되었을 때 한 가지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비겁한 행동을 속죄하기로 결심했다. 하나님께서 올라가 그 땅을 취하라고 명령하셨을 때에 그들은 그 명령을 거절했고, 이제 그분이 퇴각하라고 그들에게 지시하였을 때에 그들은 전과 동일하게 반역적이었다. 그들은 그 땅을 점령하고 소유하기로 결심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업을 받으시고, 그들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변경하실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정하신 때에,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요, 의무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고의적 태만으로 그 허락은 철회되었다. 사단은 그들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함으로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사단은 이제 하나님의 금령이 내린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셨을 때에 그들이 거절한 바로 그 일을 하도록 그들에게 독촉하였다. 그리하여 대기만자는 그들로 두 번째 반역을 하도록 인도함으로 승리를 얻었다. 그들은 처음에 가나안을 점령하는 데 그들의 노력과 함께 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 사업을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성취하고자 대담하게 나섰다. 그들은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 이다”(신 1:41)고 외쳤다. 그들은 범죄로 인하여 그처럼 몹시 눈이 어두웠다. “여호와께서는 올라가서 싸우”라고 그들에게 결코 명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의도는 그들이 전쟁으로 그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 얻도록 하셨다.
백성들은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서도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반역한 그들의 죄와 어리석음을 고백하였다. 그들은 그 때에야 그들이 그처럼 경솔하게 내던졌던 축복의 가치를 알았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들은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말하고 잘못은 하나님의 편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들에 대한 그분의 약속들을 성취하지 못한 데 대하여 하나님을 그처럼 나쁘게 비난한 그들 자신에게 있다고 고백하였다. 그들의 고백은 비록 참된 회개에서 우러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은 그들을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처사의 공정성을 입증하였다.
주께서는 지금도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공의를 인정하게 하심으로 그와 동일한 방법으로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하여 일하신다. 그분을 사랑한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섭리에 대하여 불평하고, 그분의 약속을 멸시하고, 유혹에 빠져 악한 천사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깨뜨리고자 할 때에 여호와께서는 때때로 이런 사람들이 비록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의 죄를 깨닫고 그들의 행위의 악함과 그들을 다루시는 그분의 공의와 선하심을 부득이 시인하도록 환경들을 지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흑암의 역사가 드러나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의 사업의 반작용을 그냥 두신다. 악한 길로 지체 없이 나가는 정신은 비록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옹호하고 반대와 오해를 받아왔던 그분의 충성스러운 책망 자들을 의롭다고 하시기 위하여 자복하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진노가 최후로 쏟아질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 여 뭇 사람을 심판하”실 때에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 을 정죄하”(유 14, 15)실 것이다. 죄인들은 모두 그분의 정죄가 공정함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나안 정복을 시도하고자 준비를 갖추었다. 갑옷과 전쟁 무기로 무장했으므로 그들 나름으로는 싸우기 위하여 잘 준비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 일을 슬퍼하는 그분의 종들이 볼 때에는 슬프게도 그들에게 많은 결함이 있었다. 거의 40년 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라가 여리고를 취하라고 지시하셨을 때에, 그분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때 그분의 율법을 넣은 법궤가 그들의 군대의 선두에서 행진하였다. 그분이 임명하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지휘 하에서 그들의 행진을 지도해야 했다. 그 같은 지도하에서는 그들에게 어떠한 해도 닥쳐올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지도자들의 엄한 제지를 거역하고 법궤도 없고 모세도 없이 원수의 군대와 싸우러 나아갔다.

비상경보의 나팔소리가 울리자 모세는 급히 그들의 뒤를 좇아가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민 14:41-43)고 경고하였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 백성을 인도하는 듯 한 신비한 능력과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이적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이제 그들은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강한 군대를 소집하였다. 공격군은 지도자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시도록 기도도 드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역전시키든지 아니면 전쟁에서 죽는다는 필사적인 결심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그들은 비록 전쟁에 익숙하지 못했으나 막대한 수효의 무장한 장정들이였으므로 갑자기 맹공격을 퍼부어 모든 항거를 분쇄시키기를 바랐다. 그들은 외람되게도 감히 그들을 공격하지 못하는 적군에게 도전했다.
가나안 사람들은 암석 질로 된 높은 고지에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험한 협로와 가파르고 위험한 오르막길을 통해서만 그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히브리 사람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그들의 패배를 한층 더 심하게 할 뿐이었다. 그들은 산 위에 있는 원수들의 진영에서 무섭게 날아오는 무기의 위험을 무릅쓰고 천천히 산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올라갔다. 거대한 바위들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굴러 떨러졌고 그것들이 지나간 길은 죽은 사람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맹렬한 반격에 큰 손실을 입고 쫓겨 내려 왔다. 살육전이 지나간 벌판에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들이 널려져 있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크게 참패를 당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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