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과 언약의 선재성(질문, 대답, 부가설명)0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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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10-28 08:19 조회9,114회 댓글5건본문
11월 5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0분
기억절: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갈 3:18).
연구 범위: 갈 3:15~20,창 9:11~17, 마 5:17~20, 출 16:22~26, 창 15:1~6.
어떤 사람이 한 정치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선거기간 동안 내건 공약을 다 지키셨습니까?” 그 정치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 적어도 지키려고 내건 공약은 다 지켰습니다.”
한때 파기된 약속의 피해자나 당사자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약속을 깼든지 또는 깨진 약속을 믿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때때로 지키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입에서 나오자마자 거짓이 될 게 뻔한 약속을 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하나님의 약속은 완전히 다른 질서 속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며 변함이 없다.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사 46:11).
이번 주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430년 뒤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복음을 전하는 데 그
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구원의 약속과 율법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➋ 느끼기 : 은혜의 약속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와 율법을 통한 관계의 차이점을 이해한다.
➌ 행하기 : 율법으로부터 유익을 얻음과 동시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의 약속을 받아들인다.
A.
❷ 인간 상호간의 계약과 하나님의 언약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 사람 상호간의 계약은 서로 책임을 지고 지분에 대하여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행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유언과 같은 성질이다.
❸ 하나님의 약속(언약)이 율법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수단이다. 약속은 율법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의 존재와 권위를 두고 선언하신 것이다.
❹ 하나님의 약속이 율법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그대에게 어떤 희망을 줍니까?
※ 약속을 받아들일 때 율법은 약속에 의하여 준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약속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의무가 아니고 능력이 되는 것이다.
B.
❷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으면서 어떻게 율법을 굳게 세울 수 있습니까?
※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율법이다. 특히 의문의 율법은 바로 복음을 구상화하여 가르쳐준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없으면 그 율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도덕법은 구원받은 사람의 생명의 성질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마음에 그 율법이 새겨져서 그것이 생활이 되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하는 것이다.
❸ 율법이 죄인들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행함을 위해서 입니까? 깨달음을 위해서 입니까?
※ 두 종류의 율법이 다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죄를 용서하는 길과 용서받은 사람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뜻이며 그런 사람은 그 생명으로 살아가게 됨으로 당연히 도덕법을 수행하게 된다. 성경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법이 생명의 도(생명의 말씀)라고 가르친다.(행7:38)
❹ 재림신자들이 더 많은 율법의 지식 또는 바른 진리를 앎으로 유리한 점은 무엇입니까?
※ 구원의 도리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그러므로 구원받은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동시에 구원받은 생명으로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결론: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와 구속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수용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을 보여 주고, 우리의 결함을 비춰줌으로써 우리를 의의 근원으로 인도합니다.
첫째 날(일) 10월 30일 율법과 믿음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갈 3:15).
질문: 바울이 하나님의 언약을 사람의 유언에 비유한 목적은 무엇인가?(갈 3:15~18)
[갈3:15~18]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답: 언약은 어떤 사실을 두고 두 사람이 함께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언은 유언하는 사람의 일방적인 선언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바로 그렇다. 그것을 성경은 디아데케라고 말한다. 양방 언약은 쉰데케이다.
<부가설명> 히브리어로 언약을 베리트라고 한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디아데케라고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히브리서 9:16,17에서는 유언이라고 번역하였다. 디아데케는 일방적 선언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도 일방적인 것이었다. 아담에게 물어보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그처럼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구원해줄까라고 의논하지 않으시고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시면서 뱀과의 전쟁을 선언하셨고, 그 전쟁은 사람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고 여자의 후손에게 맡겨졌으며 사람은 여자의 후손의 승리로 저절로 죄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신 것을 믿으면 되었다. 사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3:15절이 언약의 선언이다. 우리는 범죄 하자마자 선포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유일한 것이 그 언약에 우리가 반응하는 것이다. 그 반응을 믿음이라고 한다.
교훈: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뜻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인간 상호 간의 계약과 같지 않으며 다른 조건에 의하여 파기될 수 없다.
둘째 날(월) 10월 31일 믿음과 율법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질문: 구원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바울은 믿음이 율법을 폐했다고 말하는가? 다음의 성경절들은 이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롬 3:31을 롬 7:7, 12, 8:3, 마 5:17~20과 비교해 보라.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7:7,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5:17~2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답: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하였다.
<부가설명>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지 않는 한 율법을 어길 수 없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았고 오히려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율법을 범하시지 않았고 율법을 범하실 수도 없으셨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들 안에 사시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바로 예수께서 사시는 삶이 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의식적 율법은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의식적 법의 목적을 이룬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의식적 법(의문의 율법)이 이루어진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조문에 매일 필요가 없으나 그것들이 가르치는 효과는 예수 안에서 지속적인 것이 된다. 또 도덕법은 예수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신자들 안에 사신다면 신자들은 당연히 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익서이 믿음이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의 언약에 확실한 반응을 하는지?
교훈: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율법을 파기하는 길이 아니라 율법을 세우는 길이다.
셋째 날(화) 11월 1일 율법의 목적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갈 3:19).
질문1: 갈 3:19~29에서 바울은 여러 차례 “율법”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율법이란 어떤 것인가?
[갈3:19~2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답: 의문의 율법이나 도덕법이나 다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질문2: 바울이 정말 율법이 더해졌다고 말했는가? 어디에 율법이 더해졌는가? 무엇 때문에 더해진 것인가? 갈 3:19과 롬 5:13, 20을 비교해 보라.
[갈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롬5:13,20]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답: 본문의 내용으로 보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더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가설명> 갈라디아 3장19절 말씀은 내게는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다가온다. 범법함을 인하여 율법이 더해졌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율법이 더해지기 전에 이미 범법할 수 있는 법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범법이라고 번역된 원어는 “파라바시스”인데 이것은 침범하다, 선을 넘어가다라는 의미가 있다. 넘어가지 못하게 그어놓은 선을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더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어놓은 선이 있었다는 것이 전제된 말이다. 그 선언을 넘은 것이 범법이다. 성경 계시로는 바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이것을 로마서는 5:12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하고, 5:18에는 한 범죄로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고 한 것이다. 이 정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준 것이 더해준 율법이다. 그것이 곧 죄를 속하는 길을 가르쳐준 의문(儀文)의 법이다. 곧 의식(儀式)법인 것이다. 그것은 성소제도이며, 제사제도이며 절기제도이다. 그 외에도 이것과 관련된 여러 법들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오셔서 이루실 구원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구상화하여 가르쳐준 것이다. 예전에는 이 방법을 통하여 구주의 속죄를 믿는 믿음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제 구주께서 오셔서 친히 율법과 제도로 가르쳐준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구주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모든 효능이 실제화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이다. 믿으면 율법은 이미 믿는 자에게 성취된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그 생명의 능력이 바로 마음에 새겨진 도덕법, 곧 생명의 도를 생활로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받은 생명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교훈: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율법은 의식법뿐 아니라 도덕법도 포함된다. 율법은 범죄를 더하게 하기 위해 주어졌다.
넷째 날(수) 11월 2일 율법의 지속성
“그런즉 율법은…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질문1: 율법이 시내산에서 더해졌다는 바울의 표현은 이전에 율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인가? 그렇지 않다면 시내산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창 9:5~6, 18:19, 26:5, 39:7~10, 출 16:22~26)
[창9:5,6]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창39:7~10]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출16:22~26] 제 육 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두목이 와서 모세에게 고하매 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24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25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 26 육 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 칠 일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답: 율법이 더해졌다는 말은 그 전에는 율법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위의 성경구절들에 나타난 대로 시내산 전에도 율법이 있었다. 시내산 전후의 율법의 내용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시내산 전에는 율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계시 되지 않았고, 범법했을 때 속죄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았으며, 온 민족 앞에서 공포되지 않았다.
질문2: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율법이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는가?(갈 3:16~19)
[갈3:16~19]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 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답: 약속한 자손이 오시기까지라고 한 것은 율법의 형식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표현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그 모든 형식을 이루시므로 율법의 의미와 정신과 내용이 완성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완성된 율법 안에서 율법의 정신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부가설명> 이미 위의 부가설명에서 더한 율법에 대하여 설명했다. 성경은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그 방법을 계시해주신 것이다. 그것은 구주가 오셔서 아담을 대신하여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다는 것이며 어떻게 그렇게 하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처음에 범법한 그 법을 마음에 새겨서 생명의 능력이 되게 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능히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지 않고 유지하여 하나님과 동행할 것을 나타내신 것이 율법의 내용이요 의미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정신은 언제나 동일하다. 구주의 오심과 구주가 그 모든 것을 실현하실 것을 가르치신 것이며 구주가 오셔서 모든 제도적인 율법의 내용을 실현하셨고 그러므로 생명의 능력을 드러내셔서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므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셨는데 그 생명이 성질이 사랑이며(요일3:14) 그것이 바로 율법을 다 이루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롬13:8~10) 성경은 이것을 가르쳐준다.
교훈: 율법은 아브라함 전부터 시내산까지 그리고 그때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존재하였고 그 이후로도 존재할 것이다.
다섯째 날(목) 11월 3일 약속의 우월성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 7:38).
질문: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직접적인 교통의 특징을 설명해 보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창 15:1~6, 18:1~33, 22:1~18)
[창15:1~6]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18:1~33] 아브라함이 세 사람을 만나서 대접하였는데, 한 분은 여호와이시고 두 분은 천사였으며 소돔의 악을 친히 보시러 왔고,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하여 중보하는 사실이 기록된 내용이다.
[창22:1~22]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리는 사건을 기록한 말씀이다.
답: 직접 말씀하실 때에는 중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대면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고 직접 탄원할 수 있었다.
<부가설명>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와 그 후에 말씀으로 주신 율법들을 받을 때 그것을 친히 주신 분은 그리스도시다. 천사라는 번역은 히브리어 말라크와 헬라어 앙겔로스를 번역한 말이다. 그런데 출3:2에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삼위 여호와 하나님 중에 한 분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출3:1~15을 천천히 주의하여 읽으면 2절에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신 그분이 바로 14절에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고 15절에서 “나는 여호와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라”고 말씀하신 그분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일부러 그렇게 알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 외에는 다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사자”라는 말이 바로 말라크이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앙겔로스라고 번역하였고 스데반이 설교한 행7:35~38절에서 우리말로 가시나무 떨기 중에서 보이던 천사라고 번역하였다. 이 천사는 바로 여호와의 사자로 오신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라고 번역된 그 대상이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천사인지 그리스도이신지는 기록된 전후 문맥을 통하여 분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배석하여 율법을 주신 것이 확실하지만 천사들의 손으로 전했다는 말은 아마도 여호와의 사자이신 예수께서 전하신 사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모세가 40일을 여호와와 함께 있었고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난 것은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반포하시고 또 모세에게 계명 돌비를 줄 때 천사들이 배석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교훈: 율법은 언약에 비하면 부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천사와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어진 반면 언약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기 때문이다.
예비일(금) 11월 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화잇 주석, 고후 3:6~9.
“백성들은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의 원칙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부패 가운데서 살았으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 찬 죄악,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기에 전혀 무능함, 구세주의 필요 등에 대하여 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그들은 배워야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37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어떤 사람이 그대와의 약속을 깼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약속을 지키려고 했지만 지키지 못한 경우와 애초에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던 경우와 얼마나 다릅니까? 약속을 어긴 사람에 대한 그대의 신뢰심은 어떻게 달라집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그대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가장 신뢰할 수 있게 됩니까?
※ 약속을 깨면 유쾌할 수 없다. 애초에 약속을 지킬 마음 없이 약속을 하는 것은 완전한 기만이다. 약속을 계속 어기면 그를 신용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절대로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이며 그것은 가장 완전하고 안전한 보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죽기까지 지키신다는 강력한 보증이다.
➋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중요한 진리를 잊어버리기까지 우리는 어떤 경로와 환경을 통해 타락하게 됩니까? 부패한 감화력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런 영향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 우리가 잘못된 인식으로 중요한 진리를 자기 선입관과 고정관념으로 이해하거나 자기의 생각과 가지 생활환경을 중심으로 해석할 때 진리에서 떠나게 된다. 우리는 철저히 말씀 중심으로 말씀이 말하는 대로 그것을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
요약: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폐하지 않았으며, 약속의 내용을 수정하지도 않았다.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죗된 본성의 깊이를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신 약속의 필요성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일몰: 오후 5시 30분
기억절: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갈 3:18).
연구 범위: 갈 3:15~20,창 9:11~17, 마 5:17~20, 출 16:22~26, 창 15:1~6.
어떤 사람이 한 정치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선거기간 동안 내건 공약을 다 지키셨습니까?” 그 정치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 적어도 지키려고 내건 공약은 다 지켰습니다.”
한때 파기된 약속의 피해자나 당사자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약속을 깼든지 또는 깨진 약속을 믿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때때로 지키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입에서 나오자마자 거짓이 될 게 뻔한 약속을 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하나님의 약속은 완전히 다른 질서 속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며 변함이 없다.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사 46:11).
이번 주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430년 뒤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복음을 전하는 데 그
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구원의 약속과 율법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➋ 느끼기 : 은혜의 약속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와 율법을 통한 관계의 차이점을 이해한다.
➌ 행하기 : 율법으로부터 유익을 얻음과 동시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의 약속을 받아들인다.
A.
❷ 인간 상호간의 계약과 하나님의 언약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 사람 상호간의 계약은 서로 책임을 지고 지분에 대하여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행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유언과 같은 성질이다.
❸ 하나님의 약속(언약)이 율법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수단이다. 약속은 율법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의 존재와 권위를 두고 선언하신 것이다.
❹ 하나님의 약속이 율법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그대에게 어떤 희망을 줍니까?
※ 약속을 받아들일 때 율법은 약속에 의하여 준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약속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의무가 아니고 능력이 되는 것이다.
B.
❷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으면서 어떻게 율법을 굳게 세울 수 있습니까?
※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율법이다. 특히 의문의 율법은 바로 복음을 구상화하여 가르쳐준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없으면 그 율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도덕법은 구원받은 사람의 생명의 성질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마음에 그 율법이 새겨져서 그것이 생활이 되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하는 것이다.
❸ 율법이 죄인들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행함을 위해서 입니까? 깨달음을 위해서 입니까?
※ 두 종류의 율법이 다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죄를 용서하는 길과 용서받은 사람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뜻이며 그런 사람은 그 생명으로 살아가게 됨으로 당연히 도덕법을 수행하게 된다. 성경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법이 생명의 도(생명의 말씀)라고 가르친다.(행7:38)
❹ 재림신자들이 더 많은 율법의 지식 또는 바른 진리를 앎으로 유리한 점은 무엇입니까?
※ 구원의 도리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그러므로 구원받은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동시에 구원받은 생명으로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결론: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와 구속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수용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을 보여 주고, 우리의 결함을 비춰줌으로써 우리를 의의 근원으로 인도합니다.
첫째 날(일) 10월 30일 율법과 믿음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갈 3:15).
질문: 바울이 하나님의 언약을 사람의 유언에 비유한 목적은 무엇인가?(갈 3:15~18)
[갈3:15~18]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답: 언약은 어떤 사실을 두고 두 사람이 함께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언은 유언하는 사람의 일방적인 선언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바로 그렇다. 그것을 성경은 디아데케라고 말한다. 양방 언약은 쉰데케이다.
<부가설명> 히브리어로 언약을 베리트라고 한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디아데케라고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히브리서 9:16,17에서는 유언이라고 번역하였다. 디아데케는 일방적 선언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도 일방적인 것이었다. 아담에게 물어보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그처럼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구원해줄까라고 의논하지 않으시고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시면서 뱀과의 전쟁을 선언하셨고, 그 전쟁은 사람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고 여자의 후손에게 맡겨졌으며 사람은 여자의 후손의 승리로 저절로 죄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신 것을 믿으면 되었다. 사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3:15절이 언약의 선언이다. 우리는 범죄 하자마자 선포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유일한 것이 그 언약에 우리가 반응하는 것이다. 그 반응을 믿음이라고 한다.
교훈: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뜻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인간 상호 간의 계약과 같지 않으며 다른 조건에 의하여 파기될 수 없다.
둘째 날(월) 10월 31일 믿음과 율법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질문: 구원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바울은 믿음이 율법을 폐했다고 말하는가? 다음의 성경절들은 이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롬 3:31을 롬 7:7, 12, 8:3, 마 5:17~20과 비교해 보라.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7:7,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5:17~2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답: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하였다.
<부가설명>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지 않는 한 율법을 어길 수 없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았고 오히려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율법을 범하시지 않았고 율법을 범하실 수도 없으셨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들 안에 사시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바로 예수께서 사시는 삶이 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의식적 율법은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의식적 법의 목적을 이룬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의식적 법(의문의 율법)이 이루어진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조문에 매일 필요가 없으나 그것들이 가르치는 효과는 예수 안에서 지속적인 것이 된다. 또 도덕법은 예수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신자들 안에 사신다면 신자들은 당연히 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익서이 믿음이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의 언약에 확실한 반응을 하는지?
교훈: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율법을 파기하는 길이 아니라 율법을 세우는 길이다.
셋째 날(화) 11월 1일 율법의 목적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갈 3:19).
질문1: 갈 3:19~29에서 바울은 여러 차례 “율법”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율법이란 어떤 것인가?
[갈3:19~2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답: 의문의 율법이나 도덕법이나 다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질문2: 바울이 정말 율법이 더해졌다고 말했는가? 어디에 율법이 더해졌는가? 무엇 때문에 더해진 것인가? 갈 3:19과 롬 5:13, 20을 비교해 보라.
[갈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롬5:13,20]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답: 본문의 내용으로 보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더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가설명> 갈라디아 3장19절 말씀은 내게는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다가온다. 범법함을 인하여 율법이 더해졌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율법이 더해지기 전에 이미 범법할 수 있는 법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범법이라고 번역된 원어는 “파라바시스”인데 이것은 침범하다, 선을 넘어가다라는 의미가 있다. 넘어가지 못하게 그어놓은 선을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더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어놓은 선이 있었다는 것이 전제된 말이다. 그 선언을 넘은 것이 범법이다. 성경 계시로는 바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이것을 로마서는 5:12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하고, 5:18에는 한 범죄로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고 한 것이다. 이 정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준 것이 더해준 율법이다. 그것이 곧 죄를 속하는 길을 가르쳐준 의문(儀文)의 법이다. 곧 의식(儀式)법인 것이다. 그것은 성소제도이며, 제사제도이며 절기제도이다. 그 외에도 이것과 관련된 여러 법들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오셔서 이루실 구원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구상화하여 가르쳐준 것이다. 예전에는 이 방법을 통하여 구주의 속죄를 믿는 믿음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제 구주께서 오셔서 친히 율법과 제도로 가르쳐준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구주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모든 효능이 실제화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이다. 믿으면 율법은 이미 믿는 자에게 성취된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그 생명의 능력이 바로 마음에 새겨진 도덕법, 곧 생명의 도를 생활로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받은 생명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교훈: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율법은 의식법뿐 아니라 도덕법도 포함된다. 율법은 범죄를 더하게 하기 위해 주어졌다.
넷째 날(수) 11월 2일 율법의 지속성
“그런즉 율법은…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질문1: 율법이 시내산에서 더해졌다는 바울의 표현은 이전에 율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인가? 그렇지 않다면 시내산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창 9:5~6, 18:19, 26:5, 39:7~10, 출 16:22~26)
[창9:5,6]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창39:7~10]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출16:22~26] 제 육 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두목이 와서 모세에게 고하매 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24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25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 26 육 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 칠 일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답: 율법이 더해졌다는 말은 그 전에는 율법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위의 성경구절들에 나타난 대로 시내산 전에도 율법이 있었다. 시내산 전후의 율법의 내용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시내산 전에는 율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계시 되지 않았고, 범법했을 때 속죄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았으며, 온 민족 앞에서 공포되지 않았다.
질문2: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율법이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는가?(갈 3:16~19)
[갈3:16~19]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 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답: 약속한 자손이 오시기까지라고 한 것은 율법의 형식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표현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그 모든 형식을 이루시므로 율법의 의미와 정신과 내용이 완성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완성된 율법 안에서 율법의 정신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부가설명> 이미 위의 부가설명에서 더한 율법에 대하여 설명했다. 성경은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그 방법을 계시해주신 것이다. 그것은 구주가 오셔서 아담을 대신하여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다는 것이며 어떻게 그렇게 하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처음에 범법한 그 법을 마음에 새겨서 생명의 능력이 되게 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능히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지 않고 유지하여 하나님과 동행할 것을 나타내신 것이 율법의 내용이요 의미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정신은 언제나 동일하다. 구주의 오심과 구주가 그 모든 것을 실현하실 것을 가르치신 것이며 구주가 오셔서 모든 제도적인 율법의 내용을 실현하셨고 그러므로 생명의 능력을 드러내셔서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므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셨는데 그 생명이 성질이 사랑이며(요일3:14) 그것이 바로 율법을 다 이루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롬13:8~10) 성경은 이것을 가르쳐준다.
교훈: 율법은 아브라함 전부터 시내산까지 그리고 그때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존재하였고 그 이후로도 존재할 것이다.
다섯째 날(목) 11월 3일 약속의 우월성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 7:38).
질문: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직접적인 교통의 특징을 설명해 보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창 15:1~6, 18:1~33, 22:1~18)
[창15:1~6]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18:1~33] 아브라함이 세 사람을 만나서 대접하였는데, 한 분은 여호와이시고 두 분은 천사였으며 소돔의 악을 친히 보시러 왔고,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하여 중보하는 사실이 기록된 내용이다.
[창22:1~22]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리는 사건을 기록한 말씀이다.
답: 직접 말씀하실 때에는 중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대면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고 직접 탄원할 수 있었다.
<부가설명>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와 그 후에 말씀으로 주신 율법들을 받을 때 그것을 친히 주신 분은 그리스도시다. 천사라는 번역은 히브리어 말라크와 헬라어 앙겔로스를 번역한 말이다. 그런데 출3:2에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삼위 여호와 하나님 중에 한 분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출3:1~15을 천천히 주의하여 읽으면 2절에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신 그분이 바로 14절에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고 15절에서 “나는 여호와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라”고 말씀하신 그분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일부러 그렇게 알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 외에는 다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사자”라는 말이 바로 말라크이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앙겔로스라고 번역하였고 스데반이 설교한 행7:35~38절에서 우리말로 가시나무 떨기 중에서 보이던 천사라고 번역하였다. 이 천사는 바로 여호와의 사자로 오신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라고 번역된 그 대상이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천사인지 그리스도이신지는 기록된 전후 문맥을 통하여 분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배석하여 율법을 주신 것이 확실하지만 천사들의 손으로 전했다는 말은 아마도 여호와의 사자이신 예수께서 전하신 사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모세가 40일을 여호와와 함께 있었고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난 것은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반포하시고 또 모세에게 계명 돌비를 줄 때 천사들이 배석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교훈: 율법은 언약에 비하면 부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천사와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어진 반면 언약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기 때문이다.
예비일(금) 11월 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화잇 주석, 고후 3:6~9.
“백성들은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의 원칙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부패 가운데서 살았으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 찬 죄악,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기에 전혀 무능함, 구세주의 필요 등에 대하여 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그들은 배워야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37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어떤 사람이 그대와의 약속을 깼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약속을 지키려고 했지만 지키지 못한 경우와 애초에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던 경우와 얼마나 다릅니까? 약속을 어긴 사람에 대한 그대의 신뢰심은 어떻게 달라집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그대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가장 신뢰할 수 있게 됩니까?
※ 약속을 깨면 유쾌할 수 없다. 애초에 약속을 지킬 마음 없이 약속을 하는 것은 완전한 기만이다. 약속을 계속 어기면 그를 신용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절대로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이며 그것은 가장 완전하고 안전한 보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죽기까지 지키신다는 강력한 보증이다.
➋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중요한 진리를 잊어버리기까지 우리는 어떤 경로와 환경을 통해 타락하게 됩니까? 부패한 감화력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런 영향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 우리가 잘못된 인식으로 중요한 진리를 자기 선입관과 고정관념으로 이해하거나 자기의 생각과 가지 생활환경을 중심으로 해석할 때 진리에서 떠나게 된다. 우리는 철저히 말씀 중심으로 말씀이 말하는 대로 그것을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
요약: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폐하지 않았으며, 약속의 내용을 수정하지도 않았다.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죗된 본성의 깊이를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신 약속의 필요성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댓글목록
백두산님의 댓글
백두산 작성일내용은좋으나설명이너무길어복잡한것같읍니다조더간단하게할수는없나요
조홍숙님의 댓글
조홍숙 작성일성경을 잘모르는 사람에겐 참 좋은 가르침 고맙게 잘배우고 갑니다~^^*
이하익님의 댓글
이하익 작성일넘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hevada님의 댓글
ehevada 작성일안식일 마다 복사하여 공부하여 소그룹에서 같이 나누며활용합니다 감사합니다.
손희봉님의 댓글
손희봉 작성일도움을 주심에 깊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