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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구약의 믿음(질문, 대답, 부가설명)10/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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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10-21 23:11 조회8,567회 댓글2건

본문

10월 2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8분

기억절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연구 범위: 갈 3:1~14, 롬 1:2, 4:3, 창 15:6, 12:1~3, 레 17:11, 고후 5:21.

한 소년이 작은 배를 만들었다. 색칠도 하고 장식도 달았다. 그런데 그 배를 도둑맞았다. 소년은 슬펐다. 하루는 전당포를 지나다 자신의 배가 진열돼 있는 것을 보았다. 소년은 전당포 안으로 들어가 “저건 내 배예요.”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전당포 주인은 “아니, 그건 내 거다. 내가 샀으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아니요. 저건 내 거예요. 내가 만든 배예요.” “2불을 내라. 그러면 너에게 주마.” 동전 한 푼 없는 소년에게 2불은 큰돈이었다. 하지만 그는 잔디를 깎고, 온갖 잔일을 해서 결국 돈을 마련하였다.
“그는 전당포로 달려가며 말했다. ‘내 배를 찾을 거야.’ 마침내 그는 돈을 지불하고 배를 되찾았다. 그는 두 팔로 배를 받아들고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내 작은 배야, 사랑해. 너는 내 거야. 너는 내게 두 배나 값진 녀석이야. 왜냐면 내가 너를 만들었고, 또 너를 샀기 때문이지.’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주님께 두 배나 값진 자가 되었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셨지만, 우리는 악마의 전당포에 갇혔다. 그러자 예수께서 오셔서 금과 은이 아닌 자신의 값진 피로 우리를 사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창조와 그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것이 되었다.” - William Moses Tidwell, Painted Illustrations, 97.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구약에 나타난 구속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본 이해를 요약한다.
➋ 느끼기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아버지와 분리되는 저주를 당하셨을 때 어떤 슬픔과 고뇌를 겪으셨을지 느껴 본다.
➌ 행하기 : 그리스도의 큰 희생을 감사하며, 우리의 죄를 덮고 용서해 주시도록 그분의 의를 구한다.

A.
❶ 순수한 신앙이 변질되면 주로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 자기의 선행으로 구원의 공로가 되게 하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노력을 크게 하면서 타인의 부족을 잘 보고 비판하기 쉽다.
❷ 갈라디아 신자들은 어떤 면에서 어리석었습니까?
※ 예수를 믿는 십자가의 도리와 생명의 길을 떠나서 율법을 행하여 의에 이르려고 하여 인간의 노력과 행위를 구원의 공로의 일부를 삼으려고 하였다.
❸ 아브라함은 순종의 모본입니까? 믿음의 모본입니까?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아브라함은 믿음의 본을 나타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믿음의 열매일 뿐이었다.
❹ 그대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품성을 신뢰하기 때문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기를 기대한다. 예수님이 나를 전적으로 운전하도록 나를 예수께 온전히 맡기기를 원한다. 예수께서 순종을 하지 않으면 나도 순종하지 않겠지만 예수께서 순종의 삶을 사시면 나도 순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 구약은 제사 제도를 통해서 죄의 참혹한 대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처지를 대신하여 드려진 완전한 대속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 날(일) 10월 23일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질문: 갈 3:1~5을 읽어 보라. 바울이 뭐라고 말했는지 요약해 보라. 어떤 면에서 우리도 바르게 시작했다가 율법주의라는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는가?
[갈3:1~5]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답: 성령은 받은 것은 인간의 행위의 보상이 아니고 믿음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십자가를 놓치고 율법행위로 돌아가는 것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다.

<부가설명> 성령이 임하셔서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그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발적인 일이다. 인간이 율법을 지킨 공로를 포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행하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일에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반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일하신다. 반응은 하나님이 먼저 일하셔서 자극하신 것에 나타는 모습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은 성령이 주장한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그 열매가 성령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노력과 행위로 율법의 요구를 행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일에 반응한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생명의 현상인 것이다. 이것을 구원받은 어떤 공로나 요건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복음이다.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그 자체가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다.

교훈: 갈라디아 교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복음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행위에 의지하는 영적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둘째 날(월) 10월 24일 성경에 근거를 둠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 3:8).

질문1: 갈 3:6~8에서 바울이 인용한 “성경 말씀”은 무슨 성경있는가?(롬 1:2, 4:3, 9:17 참고)
[갈3:6~8]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롬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답: 구약성경이다. 당시 교회에 성경이란 구약성경뿐이었다. 아직 신약성경은 형성되기 전이었다.

질문2: 갈 3:6~14을 읽고 어떤 구약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지 찾아보라. 이는 구약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갈3:6~14]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답: 바울은 구약성경의 여러 곳의 말씀들을 인용하고 있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매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신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합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신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바울은 구약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그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 우리도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믿어야 한다.

<부가설명> 신약성경에서 성경이라고 말하는 것은 첫째로 구약성경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그 성경은 구약성경이다.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기록되기 전이다. 예수님이나 바울이나 사도들이 구약성경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믿었다. 이런 사실은 오늘 예수를 믿고 신구약성경을 다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성경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잘 가르쳐준다. 우리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이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성경에서 나온다.(롬10:17)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들의 믿음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사상은 어떤가?

교훈: 아직 신약성경이 없었을 때, 바울은 구약성경을 기초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을 설명하였다.

셋째 날(화) 10월 25일 의롭게 여김을 받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롬 3:6).

질문1: 성경을 가지고 자신의 복음 기별을 입증하기 위해 바울이 가장 먼저 아브라함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답: 유대인들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마3:9 참고) 그들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의로 여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로 여김을 받은 것이 그의 순종 이전에 믿음으로 된 것을 강조하였다.

2. 창 15:6을 인용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고 말한 갈 3:6의 의미는 무엇인가?(롬 4:3~6, 8~11, 22~24 참고)

답: 이것은 순종보다 믿음이 먼저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은 순종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생각하였으나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김을 받고 그러므로 순종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고 가르친다. 순종은 믿음의 열매이지 순종이 의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부가설명> 우리가 성경의 구원의 복음을 공부할 때 현재 사람들의 실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숨 쉬고 활동하기 때문에 다 살아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복음을 연구하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아주 많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의 사람들, 곧 아담의 씨로 태어난 사람들을 산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전15:22)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라.(마8:22)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요5:25) 이런 말씀들은 한결같이 현세의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순종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죽은 자가 순종할 수도 없고, 순종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살아날 수 없다. 바울은 롬8:7에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단언하였다. 성경이 계시한 이런 기초를 깨닫고 의와 순종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게 되는 것을 뜻하고 순종은 이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루어지는 생명의 삶을 가리키는 것이다.(롬6:4) 그런데 살아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순종할 수 있으며 죽은 자가 순종하여 살아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말인가?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 출발부터 새롭게 오직 성경의 계시를 바르게 살펴서 연구해야 할 것이다.

교훈: 아브라함은 순종의 모본이자 믿음의 모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를 의롭게 한 것은 순종이 아니라 믿음이며, 순종은 의의 결과였다.

넷째 날(수) 10월 26일 구약의 복음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 3:8).

질문1: 창 12:1~3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본질은 무엇인가?
[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답: 이 복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언약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시는 이 언약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질문2: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관한 구약의 다른 예들은 무엇인가?(레 17:11, 시 32:1~5, 삼하 12:1~13, 슥 3:1~4 참고)
[렘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시32:1~5]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삼하12:1~13]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2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5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슥3:1~3]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답: 위에 열거한 성경 내용들이 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사실을 가리킨다. 레위기는 속죄가 인간의 순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리킨다. 시편 32편은 바울이 로마 4장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데 인용한 구절이다. 다윗 사건은 그가 엄청난 도덕적 죄를 범하였지만 회개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셨다. 다윗이 용서 받기 위하여 순종을 한 것이 없다. 율법을 행한 것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회개할 때 곧 속죄되었다. 슥3장은 잘 아는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는 사실을 보여주는 계시의 장면이다.

<부가설명> 구약시대가 신약시대나,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직후나 지금이나 구원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언약이다. 어느 시대든지 행함으로 의롭게 되거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시대는 없다. 히브리서11장은 아벨부터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기 위하여 독생자가 오셨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정말 복음이 아닌가!
교훈: 구약의 언약도 진실로 복음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을 위한 우리의 약속이 아닌, 우리를 위한 그분의 약속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날(목) 10월 27일 저주로부터 구원받음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갈 3:10).

질문: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건지셨는가?(갈 3:13, 고후 5:21)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아담의 후손으로써 사람은 다 사망이 되었다. 즉 사망의 저주 아래 있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 사망의 저주를 담당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원래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였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 자체가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죄를 없애신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 자체가 되셨다. 그것은 그가 구원해야할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이 죄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완전히 사망으로 처리되어 창조되지 않을 것과 같이 되어야 하는 그것을 대신 담당하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생명이 사망보다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이제 아담의 후손들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이 일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가 올바른 반응,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반응을 하면 그것이 바로 믿음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 아니 예수님 자신이 친히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삶을 당신의 뜻대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갈2:20에서 바울이 고백적 주장을 하는 내용이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모든 것이다. 아멘.

교훈: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얻으려는 자는 여전히 저주 아래 있는 자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얻으려는 자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의 저주에서 놓인다.

예비일(금) 10월 2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의 대리자요 보증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우리 모두의 죄가 놓여졌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하시려고 그분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죄인들의 괴수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그분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지신 죄의 엄청난 무게로 인하여 그분은 화해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 최대의 고민의 시간에 구주께로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심으로 인하여 인간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그분의 마음을 찔렀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더 이상의 자비의 탄원이 없을 때에 죄인이 느끼게 될 고민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인류의 대속자인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시대의 소망, 75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오늘날에도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진리를 수용하지 못하는 배경은 무엇일까요?

※ 구원받기 위하여 사람이 행할 일이 있는데, 곧 하나님의 계명을 다 잘 지키고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도덕적 관념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➋ 바울은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의 신학적 오류를 강하게 지적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바른 신학의 중요성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누군가 오류를 가르치고 있다면 우리는 교회로써 어떻게 강력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까?

※ 신앙의 올바를 길을 따르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을 바울은 말하였다.(갈1: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절대적으로 올바른 진리에 믿음을 두어야 한다. 교회는 오류를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사랑과 온유로 대하되 강력하게 바른 길을 제시해야 하면 그렇게 할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양 떼의 안전을 위하여 합당한 제재(制裁)를 가해야 할 것이다.

요약: 그리스도인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구원의 기초는 오직 믿음 위에 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이유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오늘날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동일한 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잘못해도 정죄받지 않는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강필운님의 댓글

강필운 작성일

연신내교회에서 말씀으로 은혜전해주셔서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항상 건강하시길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말씀진리님의 댓글

말씀진리 작성일

목사님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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