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교과 한장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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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주 작성일11-10-21 08:31 조회4,07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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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서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다. 강조되는 단어는 오직(alone)이다. 갈라디아서 2:15-21은 신약성경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이래로 사람들은 믿음 외에 어떤 것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그것이 인간의 선한 행위이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조력이든 그 어떤 것도 인간이 의롭게 되는데 일조할 수 없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내가... 못박혔나니”라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죽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예수에 대한 믿음 대신 자기 신뢰, 자기 믿음이 생기는 순간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만다. 오직 예수 믿음만이 죄인의 유일한 희망이다.
(일) 칭의의 문제
▸하나님은 이 지구상에 있어온 어떤 인물이나 민족에게 사명과 함께 개인적인 구원을 특권처럼 제공한 경우가 한번도 없다. 구원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언제나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믿음으로 얻는 개인적인 경험이다.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칭의”는 사법적인 용어인데 그것은 법정에서 피고소인에게 내리는 무죄 판결과 같은 것이다. 용서의 개념을 넘어서 죄 없음을 선언한다. 그리스도를 맏으들일 때 그분의 공로가 우리 개인의 계정에 놓이고 우리는 마치 그분처럼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은혜이다.
▸칭의는 인간 스스로 증명하는 사역이 아니라 전혀 가능성 없는 인간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월) 율법의 행위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한다.(갈 2:16) 여기서 말하는 육체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지칭하는 말로 그것은 근본적으로 왜곡되고 삐뚤어져서 그 생각하는 것이 모두 죄악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선한 행위도 한 점의 의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갈라디아서의 율법은 단지 의문의 법만을 말하지 않고 도덕적인 법까지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행위도 의를 얻는데 아무런 공로도 제공할 수 없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700년전부터 이미 인간의 외롭게 되는 비밀을 기록하였다. (사 53:6, 개정)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화) 칭의의 기초
▸칭의(구원)이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가 아니면 믿음에 우리의 순종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이런 논제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논의의 주제가 되어왔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인간 세상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도 동일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와 거래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율법주의적 행위에 입각한 구원관을 가진 사람들의 자세는 죄를 지었거나 잘못을 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이래가지고 구원 받겠나?”이고 믿음으로 구원 받는 자의 자세는 “구원받은 사람이 이러면 안돼지...”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행위이지 우리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나의 어떠함에 있지 않고 그분의 어떠함에 있다. 따라서 구원의 기초는 인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다. 심지어 믿음 자체도 구원을 얻는데 아무런 공로가 되지 못한다. 믿음은 단지 구원을 받아들이는 수단일 뿐이다. 믿음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수) 믿음의 순종
▸흔히 우리는 바울과 야고보의 구원관에 불일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과연 그런가? 성경이 서로 상충 되는가? 바울은 (롬 3:27, 개정)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야고보는 (약 2:24, 개정)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 내용의 의미를 살펴보면 바울과 야고보의 말하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 바울은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믿음과 행함을 야고보는 믿음의 정의와 열매로써의 행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이란 역사하는 믿음, 일하는 믿음, 행위의 열매가 있는 삶의 전반적인 믿음을 말한다. 다시말해 순종의 열매로 나타나는 믿음이다.
(목) 믿음이 죄를 조장하는가?
▸행위주의 자들과 바울이 말하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 자들과의 율법관의 차이는 무엇인가? 누가 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가? 거짓 교사들의 말처럼 믿음은 죄를 조장하는가? 바울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전자는 자신의 힘으로 의를 행하려하고 후자는 그 자신 속에 계신 그리스도가 이루도록 자신을 굴복시킨다.
결론
믿음이란 자신의 능력과 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의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반응이다. 그것은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자신을 붙들어 매는 행위이며 전적인 수용이다. 그분의 가슴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는 의존이다. 불가항력적 죄인이 자신의 땀으로가 아닌 자아 포기로 그분의 구원을 수용하는 것이다.
토의 자료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예를 들어서 자기말로 한번 표현해 보십시오.
▪믿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들의 주장과 오직믿음으로의 가르침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다. 강조되는 단어는 오직(alone)이다. 갈라디아서 2:15-21은 신약성경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이래로 사람들은 믿음 외에 어떤 것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그것이 인간의 선한 행위이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조력이든 그 어떤 것도 인간이 의롭게 되는데 일조할 수 없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내가... 못박혔나니”라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죽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예수에 대한 믿음 대신 자기 신뢰, 자기 믿음이 생기는 순간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만다. 오직 예수 믿음만이 죄인의 유일한 희망이다.
(일) 칭의의 문제
▸하나님은 이 지구상에 있어온 어떤 인물이나 민족에게 사명과 함께 개인적인 구원을 특권처럼 제공한 경우가 한번도 없다. 구원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언제나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믿음으로 얻는 개인적인 경험이다.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칭의”는 사법적인 용어인데 그것은 법정에서 피고소인에게 내리는 무죄 판결과 같은 것이다. 용서의 개념을 넘어서 죄 없음을 선언한다. 그리스도를 맏으들일 때 그분의 공로가 우리 개인의 계정에 놓이고 우리는 마치 그분처럼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은혜이다.
▸칭의는 인간 스스로 증명하는 사역이 아니라 전혀 가능성 없는 인간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월) 율법의 행위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한다.(갈 2:16) 여기서 말하는 육체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지칭하는 말로 그것은 근본적으로 왜곡되고 삐뚤어져서 그 생각하는 것이 모두 죄악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선한 행위도 한 점의 의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갈라디아서의 율법은 단지 의문의 법만을 말하지 않고 도덕적인 법까지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행위도 의를 얻는데 아무런 공로도 제공할 수 없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700년전부터 이미 인간의 외롭게 되는 비밀을 기록하였다. (사 53:6, 개정)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화) 칭의의 기초
▸칭의(구원)이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가 아니면 믿음에 우리의 순종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이런 논제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논의의 주제가 되어왔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인간 세상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도 동일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와 거래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율법주의적 행위에 입각한 구원관을 가진 사람들의 자세는 죄를 지었거나 잘못을 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이래가지고 구원 받겠나?”이고 믿음으로 구원 받는 자의 자세는 “구원받은 사람이 이러면 안돼지...”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행위이지 우리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나의 어떠함에 있지 않고 그분의 어떠함에 있다. 따라서 구원의 기초는 인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다. 심지어 믿음 자체도 구원을 얻는데 아무런 공로가 되지 못한다. 믿음은 단지 구원을 받아들이는 수단일 뿐이다. 믿음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수) 믿음의 순종
▸흔히 우리는 바울과 야고보의 구원관에 불일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과연 그런가? 성경이 서로 상충 되는가? 바울은 (롬 3:27, 개정)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야고보는 (약 2:24, 개정)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 내용의 의미를 살펴보면 바울과 야고보의 말하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 바울은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믿음과 행함을 야고보는 믿음의 정의와 열매로써의 행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이란 역사하는 믿음, 일하는 믿음, 행위의 열매가 있는 삶의 전반적인 믿음을 말한다. 다시말해 순종의 열매로 나타나는 믿음이다.
(목) 믿음이 죄를 조장하는가?
▸행위주의 자들과 바울이 말하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 자들과의 율법관의 차이는 무엇인가? 누가 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가? 거짓 교사들의 말처럼 믿음은 죄를 조장하는가? 바울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전자는 자신의 힘으로 의를 행하려하고 후자는 그 자신 속에 계신 그리스도가 이루도록 자신을 굴복시킨다.
결론
믿음이란 자신의 능력과 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의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반응이다. 그것은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자신을 붙들어 매는 행위이며 전적인 수용이다. 그분의 가슴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는 의존이다. 불가항력적 죄인이 자신의 땀으로가 아닌 자아 포기로 그분의 구원을 수용하는 것이다.
토의 자료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예를 들어서 자기말로 한번 표현해 보십시오.
▪믿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들의 주장과 오직믿음으로의 가르침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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