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과 복음의 통일성(질문, 대답, 부가설명)1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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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10-07 06:27 조회8,297회 댓글4건본문
10월 15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56분
기억절: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빌 2:2).
연구 범위: 갈 2:1~14, 고전 1:10~13, 창 17:1~21, 요 8:31~36, 골 3:11.
종교개혁자 장 칼뱅(Jean Calvin)은 분리와 불화는 교회를 해하기 위해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도구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분리주의를 전염병처럼 멀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진리를 버리면서까지 연합을 추구해야 할까?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보름스 의회에 회부되었을 때, 연합이라는 미명 아래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신념을 철회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 보라.
“만일 개혁자가 단 한 가지 점에서라도 타협하였더라면 사탄과 그의 부하들은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고부동한 태도는 교회를 해방하는 방편이 되었고 새롭고 더욱 좋은 하나의 기원(紀元)을 이루어 놓았다”(각 시대의 대쟁투, 166).
갈 2:1~14에서 우리는 사도들의 연합을 깨려는 일부 신자들의 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사도 바울을 본다. 그러나 연합도 중요하지만, 바울은 연합을 얻기 위해 복음의 진리를 타협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물론 통일성 가운데서도 다양성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복음은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처럼 서로 다른 신자들이 연합할 수 있는 참된 바탕을 확인한다.
➋ 느끼기 : 복음의 빛 속에서 할례를 둘러싼 갈등과 염려의 수준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믿음과 은혜의 기본 교리에 굳게 서기로 결심한다.
결론: 믿음의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눈을 멀게 했던 유대인 전통을 따름으로써 교회는 복음의 의미를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첫째 날(일) 10월 9일 연합의 중요성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갈 2:9).
질문: 고전 1:10~13을 읽어 보라. 바울은 교회 내의 연합을 얼마나 중요시했는가?
[고전1:10~13]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
답: 예수 그리스도는 나누어진 분이 아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그분 안에서 하나 되게 한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부가설명> 사람이 사회에는 각자의 의견이 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과 행동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신다. 그러나 생활원칙은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아주 유치한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은 밥을 더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국수를 더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을 만드는 재료들은 성경적이어야 한다. 음식에 들어가는 반찬이나 재료들이 철저하게 성경적이어야 하는 데는 일치된 의견이라야 된다는 말이다.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국수를 만들면 되고 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밥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국수 아니라고 트집을 잡아 매도하고 밥이 아니라고 트집을 잡아 매도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그러나 밥반찬에 돼지고기가 오르고, 국수 국물에 돼지 삶은 국물이 들어가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하여 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여 음식 예를 들었다. 다른 복음을 가르치면 단호히 책망해야 한다. 그러나 같은 복음이 다른 방식으로 제시 되는 것 때문에 다투는 일은 주님의 뜻이 결코 아니다.
교훈: 바울의 복음이 다른 사도들의 가르침과 같지 않다는 비난은 사도들과 교회들의 연합을 저해하는 행위였으나, 바울은 오히려 연합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둘째 날(월) 10월 10일 할례와 거짓 형제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행 15:1).
질문: 바울과 유대인 신자 사이에서 할례가 논쟁의 핵심으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인가?(창 17:1~22, 갈 2:3~5, 5:2, 6, 행 15:1, 5 참고). 일부 신자들이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창17:1~22] 아브라함에게 그 집에 사는 모든 남자는 다 할례를 하라고 지시하시고 다 하례를 행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갈2:3~5]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갈5:2,6]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행15:1,5]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라/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답: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할레 받지 않으면 언약을 배반한 자가 되고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말씀 때문이다.
<부가설명> 할례는 다목적 예식이다. 그때는 다 몰랐겠지만 지금 발달한 의학에 의하면 할례 받은 남편과 사는 여자는 자궁경부암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나님께서 당시에 종교적 법으로 할례를 하라고 하신 것에는 하나님의 백성의 건강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 끝 가죽을 잘라내어서 피를 흘리게 한다. 생식기는 생명을 낳는 지체이다. 모세의 아내가 아들을 할례하여 그 양피를 모세에게 던지며 피 남편이라고 한 사건에서 할례의 복음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출4:24,25)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시는 일로 죄를 처리하시고 생명을 드러내는 사실을 표상하는 예식이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피 남편이시다. 그러므로 할례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참 생명을 얻게 한다는 비의(秘義)가 들어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실상을 만나서 예식은 의미가 없어졌다. 건강을 위하여 하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이제 할례는 침례로 대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1,12) 유대인 신자들은 아직도 이런 복음의 실상을 잘 모르고 다만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복음을 그들이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복음의 실상을 깨닫지 못했다.
교훈: 바울은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라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셋째 날(화) 10월 11일 다양성 속에 있는 통일성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갈 2:4).
질문1: 갈 2:1~10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요 8:31~36, 롬 6:6~7, 8:2~3, 갈 3:23~25, 4:7~8, 히 2:14~15). 우리는 이런 자유를 실제로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가?
[갈2:1~10]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요8:31~3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롬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8:2,3]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갈3:23~25]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갈4:7,8]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히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답: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이른다. 그 자유의 실상은 죄에서 벗어나서 의에게 종노릇하는 것이다.
질문2: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갈 2:7). 위의 말씀은 교회 내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한 어떤 암시를 주고 있는가?
답: 통일성은 복음이 동일하다는 것이고, 다양성은 복음을 받을 대상을 따라서 증거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부가설명>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하신 본의와는 상관없이 여러 경우에 사용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예수께서 요8:32~36에 하신 말씀은 죄에서 놓여나는 자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자유는 없다. 그리고 또 자유라는 말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죽은 자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것은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의의 종노릇 하도록 옮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둘 중에 하나에게 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죄, 곧 사망에 종이 되어 썩어지든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생명, 곧 의의 종이 되어 의의 생활을 하든지 해야 한다.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는 없다.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가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를 주장하는 생명의 종으로 살아갈 것이 아닌가.
교훈: 사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로부터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다양성이 교회의 통일성을 해하지 않음을 확신하였다.
넷째 날(수) 10월 12일 안디옥에서의 대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갈 2:11).
질문1: 베드로가 복음을 더 잘 이해하고 있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갈 2:11~13과 행 10:28을 비교해 보라.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의 삶 속에 문화와 전통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배어 있음을 알게 되는가?
[갈2:11~13]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행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답: 베드로는 보자기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이방인을 차별대우하지 말도록 특별한 지시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가 안디옥에서도 받은 계시대로 행동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때까지 성장한 유대 문화의 족쇄가 완전히 벗어지지 못했었다. 문화와 전통은 참으로 떨쳐내기가 어려운 것인가 보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민족과 국가와 언어와 문화와 전통으로 자기도 모르게 무장된다. 이런 것이 다 무의식적인 의식이 되어서 생활을 지배한다. 그리고 이런 것이 사람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되어서 사실을 올바로 보는 일에 막대한 장애를 초래할 뿐 아니라 바른 길을 찾는데 지장을 준다. 베드로의 경우가 그런데 우리들도 예외가 아니다. 다윗이 정한 마음을 창조해주시기를 기도했는데,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오직 성경 문화를 따라 생각하고 생활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새로운 인종들이다. 그들의 문화를 창달하고 그 문화를 세상에 전전해야 한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기별을 잘 들도록 하자.
교훈: 베드로는 복음 안에서 이방인 신자와 교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에서 온 신자들의 눈을 의식해 외식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다섯째 날(목) 10월 13일 바울의 염려
안디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울과 베드로, 교회의 두 지도자가 공개적인 충돌 양상이었다. 바울은 베드로에게 그의 행위에 대하여 해명을 요구했다.
질문1: 바울이 베드로와 공개적으로 대결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갈 2:11~14)
[갈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답: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먹다가 유대인 신자들이 오는 것을 보고 이방인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떠나감으로 이방인 차별하는 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 갈 3:28과 골 3:11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바울의 강력한 대응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골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답: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인종이나 문화나 민족의 차원을 떠나서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일에 동등한 존재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확실한 일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교회에 분명히 확립해야 할 새로운 피조물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있고 이 세상에서 아직도 살아가는 동안 이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같은 민족과 인종 사이에서도 유무식, 지위의 고하, 빈부, 교양 등등으로 차별하는 것이 세상이 아닌가. 교회가 아직 이 세상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차별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 안에 공동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장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는 역사를 통하여서만 그렇게 될 것이다.
교훈: 바울은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던 교회가 베드로의 외식적 행위 때문에 다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분열되는 것을 염려하였다.
예비일(금) 10월 1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복음교역자, 117~119 “바울의 분별성.”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도 큰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인간 대리자에게 부여된 책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명령하고 통제하는 그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가 만약 주의 길을 조심스럽게 따라가지 않으면 사람들의 지성과 감정을 왜곡시키는 일에 그는 틀림없이 더욱더 큰 해독을 끼친다.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확고한 원칙 위에서 행동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의 파괴적인 감화를 정면으로 가로막아야만 하였다. 이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도 유익을 얻게 하려 함이요, 그 교훈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숙한 경고가 되게 하기 위함이며, 그들이 성실의 길에서 실수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게 하려 함이다”(화잇 주석, 갈 2:11~1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정면대결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교회는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거부하는 자들을 징계해야 합니까?
※ 교인이 진리를 떠나는 주장을 하거나 진리를 훼손하는 삶을 살 때에 교회와 교인 개인을 위하여서 권고하고 권고를 거절할 때에는 징계해서 그가 회개할 기회를 다시 주어야 한다.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예수님의 권고대로 비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➋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변치 말아야 할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이며 변해도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사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 진리의 본질을 변할 수 없다. 그러나 증거 방법과 생활적용에는 문화를 고려할 수 있다. 성경은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많은 사건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고대로 애굽 풍습을 따르지 말아야하고 동시에 가나안 풍습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오직 성경의 원칙을 따라 바른 성경적 문화를 이루어야 한다.
❸ 재림교회 내에 여러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연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진리를 거스리는 것이 아니면 용납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 자체가 진리를 거스리는 것일 때에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요약: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일부 유대인 신자들의 주장은 초기 교회의 연합을 위협하였다. 비록 사도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지만, 이런 문제로 교회가 분열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이 연합을 유지하며,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사도들은 함께 일하였다.
일몰: 오후 5시 56분
기억절: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빌 2:2).
연구 범위: 갈 2:1~14, 고전 1:10~13, 창 17:1~21, 요 8:31~36, 골 3:11.
종교개혁자 장 칼뱅(Jean Calvin)은 분리와 불화는 교회를 해하기 위해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도구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분리주의를 전염병처럼 멀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진리를 버리면서까지 연합을 추구해야 할까?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보름스 의회에 회부되었을 때, 연합이라는 미명 아래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신념을 철회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 보라.
“만일 개혁자가 단 한 가지 점에서라도 타협하였더라면 사탄과 그의 부하들은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고부동한 태도는 교회를 해방하는 방편이 되었고 새롭고 더욱 좋은 하나의 기원(紀元)을 이루어 놓았다”(각 시대의 대쟁투, 166).
갈 2:1~14에서 우리는 사도들의 연합을 깨려는 일부 신자들의 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사도 바울을 본다. 그러나 연합도 중요하지만, 바울은 연합을 얻기 위해 복음의 진리를 타협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물론 통일성 가운데서도 다양성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복음은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처럼 서로 다른 신자들이 연합할 수 있는 참된 바탕을 확인한다.
➋ 느끼기 : 복음의 빛 속에서 할례를 둘러싼 갈등과 염려의 수준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믿음과 은혜의 기본 교리에 굳게 서기로 결심한다.
결론: 믿음의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눈을 멀게 했던 유대인 전통을 따름으로써 교회는 복음의 의미를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첫째 날(일) 10월 9일 연합의 중요성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갈 2:9).
질문: 고전 1:10~13을 읽어 보라. 바울은 교회 내의 연합을 얼마나 중요시했는가?
[고전1:10~13]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
답: 예수 그리스도는 나누어진 분이 아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그분 안에서 하나 되게 한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부가설명> 사람이 사회에는 각자의 의견이 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과 행동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신다. 그러나 생활원칙은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아주 유치한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은 밥을 더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국수를 더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을 만드는 재료들은 성경적이어야 한다. 음식에 들어가는 반찬이나 재료들이 철저하게 성경적이어야 하는 데는 일치된 의견이라야 된다는 말이다.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국수를 만들면 되고 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밥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국수 아니라고 트집을 잡아 매도하고 밥이 아니라고 트집을 잡아 매도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그러나 밥반찬에 돼지고기가 오르고, 국수 국물에 돼지 삶은 국물이 들어가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하여 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여 음식 예를 들었다. 다른 복음을 가르치면 단호히 책망해야 한다. 그러나 같은 복음이 다른 방식으로 제시 되는 것 때문에 다투는 일은 주님의 뜻이 결코 아니다.
교훈: 바울의 복음이 다른 사도들의 가르침과 같지 않다는 비난은 사도들과 교회들의 연합을 저해하는 행위였으나, 바울은 오히려 연합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둘째 날(월) 10월 10일 할례와 거짓 형제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행 15:1).
질문: 바울과 유대인 신자 사이에서 할례가 논쟁의 핵심으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인가?(창 17:1~22, 갈 2:3~5, 5:2, 6, 행 15:1, 5 참고). 일부 신자들이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창17:1~22] 아브라함에게 그 집에 사는 모든 남자는 다 할례를 하라고 지시하시고 다 하례를 행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갈2:3~5]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갈5:2,6]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행15:1,5]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라/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답: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할레 받지 않으면 언약을 배반한 자가 되고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말씀 때문이다.
<부가설명> 할례는 다목적 예식이다. 그때는 다 몰랐겠지만 지금 발달한 의학에 의하면 할례 받은 남편과 사는 여자는 자궁경부암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나님께서 당시에 종교적 법으로 할례를 하라고 하신 것에는 하나님의 백성의 건강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 끝 가죽을 잘라내어서 피를 흘리게 한다. 생식기는 생명을 낳는 지체이다. 모세의 아내가 아들을 할례하여 그 양피를 모세에게 던지며 피 남편이라고 한 사건에서 할례의 복음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출4:24,25)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시는 일로 죄를 처리하시고 생명을 드러내는 사실을 표상하는 예식이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피 남편이시다. 그러므로 할례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참 생명을 얻게 한다는 비의(秘義)가 들어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실상을 만나서 예식은 의미가 없어졌다. 건강을 위하여 하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이제 할례는 침례로 대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1,12) 유대인 신자들은 아직도 이런 복음의 실상을 잘 모르고 다만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복음을 그들이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복음의 실상을 깨닫지 못했다.
교훈: 바울은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라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셋째 날(화) 10월 11일 다양성 속에 있는 통일성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갈 2:4).
질문1: 갈 2:1~10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요 8:31~36, 롬 6:6~7, 8:2~3, 갈 3:23~25, 4:7~8, 히 2:14~15). 우리는 이런 자유를 실제로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가?
[갈2:1~10]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요8:31~3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롬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8:2,3]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갈3:23~25]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갈4:7,8]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히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답: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이른다. 그 자유의 실상은 죄에서 벗어나서 의에게 종노릇하는 것이다.
질문2: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갈 2:7). 위의 말씀은 교회 내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한 어떤 암시를 주고 있는가?
답: 통일성은 복음이 동일하다는 것이고, 다양성은 복음을 받을 대상을 따라서 증거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부가설명>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하신 본의와는 상관없이 여러 경우에 사용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예수께서 요8:32~36에 하신 말씀은 죄에서 놓여나는 자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자유는 없다. 그리고 또 자유라는 말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죽은 자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것은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의의 종노릇 하도록 옮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둘 중에 하나에게 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죄, 곧 사망에 종이 되어 썩어지든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생명, 곧 의의 종이 되어 의의 생활을 하든지 해야 한다.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는 없다.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가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를 주장하는 생명의 종으로 살아갈 것이 아닌가.
교훈: 사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로부터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다양성이 교회의 통일성을 해하지 않음을 확신하였다.
넷째 날(수) 10월 12일 안디옥에서의 대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갈 2:11).
질문1: 베드로가 복음을 더 잘 이해하고 있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갈 2:11~13과 행 10:28을 비교해 보라.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의 삶 속에 문화와 전통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배어 있음을 알게 되는가?
[갈2:11~13]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행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답: 베드로는 보자기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이방인을 차별대우하지 말도록 특별한 지시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가 안디옥에서도 받은 계시대로 행동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때까지 성장한 유대 문화의 족쇄가 완전히 벗어지지 못했었다. 문화와 전통은 참으로 떨쳐내기가 어려운 것인가 보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민족과 국가와 언어와 문화와 전통으로 자기도 모르게 무장된다. 이런 것이 다 무의식적인 의식이 되어서 생활을 지배한다. 그리고 이런 것이 사람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되어서 사실을 올바로 보는 일에 막대한 장애를 초래할 뿐 아니라 바른 길을 찾는데 지장을 준다. 베드로의 경우가 그런데 우리들도 예외가 아니다. 다윗이 정한 마음을 창조해주시기를 기도했는데,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오직 성경 문화를 따라 생각하고 생활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새로운 인종들이다. 그들의 문화를 창달하고 그 문화를 세상에 전전해야 한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기별을 잘 들도록 하자.
교훈: 베드로는 복음 안에서 이방인 신자와 교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에서 온 신자들의 눈을 의식해 외식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다섯째 날(목) 10월 13일 바울의 염려
안디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울과 베드로, 교회의 두 지도자가 공개적인 충돌 양상이었다. 바울은 베드로에게 그의 행위에 대하여 해명을 요구했다.
질문1: 바울이 베드로와 공개적으로 대결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갈 2:11~14)
[갈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답: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먹다가 유대인 신자들이 오는 것을 보고 이방인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떠나감으로 이방인 차별하는 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 갈 3:28과 골 3:11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바울의 강력한 대응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골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답: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인종이나 문화나 민족의 차원을 떠나서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일에 동등한 존재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확실한 일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교회에 분명히 확립해야 할 새로운 피조물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있고 이 세상에서 아직도 살아가는 동안 이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같은 민족과 인종 사이에서도 유무식, 지위의 고하, 빈부, 교양 등등으로 차별하는 것이 세상이 아닌가. 교회가 아직 이 세상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차별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 안에 공동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장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는 역사를 통하여서만 그렇게 될 것이다.
교훈: 바울은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던 교회가 베드로의 외식적 행위 때문에 다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분열되는 것을 염려하였다.
예비일(금) 10월 1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복음교역자, 117~119 “바울의 분별성.”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도 큰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인간 대리자에게 부여된 책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명령하고 통제하는 그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가 만약 주의 길을 조심스럽게 따라가지 않으면 사람들의 지성과 감정을 왜곡시키는 일에 그는 틀림없이 더욱더 큰 해독을 끼친다.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확고한 원칙 위에서 행동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의 파괴적인 감화를 정면으로 가로막아야만 하였다. 이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도 유익을 얻게 하려 함이요, 그 교훈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숙한 경고가 되게 하기 위함이며, 그들이 성실의 길에서 실수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게 하려 함이다”(화잇 주석, 갈 2:11~1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정면대결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교회는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거부하는 자들을 징계해야 합니까?
※ 교인이 진리를 떠나는 주장을 하거나 진리를 훼손하는 삶을 살 때에 교회와 교인 개인을 위하여서 권고하고 권고를 거절할 때에는 징계해서 그가 회개할 기회를 다시 주어야 한다.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예수님의 권고대로 비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➋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변치 말아야 할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이며 변해도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사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 진리의 본질을 변할 수 없다. 그러나 증거 방법과 생활적용에는 문화를 고려할 수 있다. 성경은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많은 사건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고대로 애굽 풍습을 따르지 말아야하고 동시에 가나안 풍습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오직 성경의 원칙을 따라 바른 성경적 문화를 이루어야 한다.
❸ 재림교회 내에 여러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연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진리를 거스리는 것이 아니면 용납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 자체가 진리를 거스리는 것일 때에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요약: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일부 유대인 신자들의 주장은 초기 교회의 연합을 위협하였다. 비록 사도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지만, 이런 문제로 교회가 분열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이 연합을 유지하며,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사도들은 함께 일하였다.
댓글목록
햇살님의 댓글
햇살 작성일통일성과 다양성의 공존을 진지하게 생각 해보는 교과공부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쁜이할머니님의 댓글
이쁜이할머니 작성일안녕하세요그동안캐나다갇다왓어요그곳에서도목사님말씀으로은헤받앗어요항상건강하셍요감사합니다
이성근님의 댓글
이성근 작성일미심스럽고 더 알고 싶은 부분을 잘 집어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은쟁반에금사과님의 댓글
은쟁반에금사과 작성일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목사님 께서 올려주신 글을 통해 매주 나의 신앙에 힘을 다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