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복음(교과 한장으로 보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병주 작성일11-10-05 09:52 조회4,493회 댓글2건첨부파일
- 제4기 2과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복음.hwp (33.0K) 274회 다운로드 DATE : 2011-10-05 09:52:54
본문
서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복음의 본질을 오해한 유대 지도자들을 (마 23:24, 개정)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라고 책망하였다. 오랜 세월 전통의 형식과 방식을 지켜 왔지만 껍데기 밖에 없는 전통은 오히려 알곡을 왜곡하고 저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방교회들에서 저질러진 배도는 초대교회의 커다란 도전이 되었다. 비록 49년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말이 난 문제였지만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되는 순간까지 껍데기와 알맹이, 복음의 진수와 전통적 사상의 차이는 갈등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온 방식들을 “그것이 본질이냐?”는 과감한 질문을 가지고 접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전통 고수 주의자들이 아니다. 종종 교회 안에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고 교회를 배도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림교회는 전통의자들이 아니다. 지금까지 믿던 교리, 입던 옷, 먹던 음식 ... 이런 것들이라도 새로운 진리 앞에서 우리는 바디메오처럼 겉 옷을 벗어 던질 수 있는 개혁신앙의 후손들이다. 한때 바울은 전통적 입장에서 반하는 모든 것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그의 편견의 망막이 떨어지고 새로운 안목이 생기자 그는 비로소 본질에 도달함.
(일) 서신의 저자 바울
▸12사도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바울의 사역은 초대교회에서 종종 그 권위를 도전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종종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리를 스스로 주장한 내용들이 그의 서신에서 발견되곤 한다.
▸동시대 사도였던 베드로에 의하여 바울의 복음적 권위는 인정된 것이 의미가 있다.(벧후 3:15)
▸재림교회는 히브리서를 포함하여 14권의 신약 성서를 바울이 기록하였다고 대체로 믿는다. 이러한 바울의 열정적인 성경 기록 활동과 영감을 받은 경험들이 없이는 신약교회의 발전은 거의 불가능 하였을 것이다.
▸바울의 기록방법은 당대에 일반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서신방식을 채택함으로 회람하여 읽기 원했던 독자들에게 그 뜻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의 편지는 단순하고 간결하였다.
▸성경을 이해함에 오늘날 주석이 필요함은 성경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 변천에 따른 차이 때문이다. 성경은 당대에 가장 무지한 사람들도 일수 있고 읽으면 이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월) 바울의 소명
▸바울은 종종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다메섹의 경험을 간증하였다. 그의 부르심과 경험이 분명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그의 이방인을 위한 복음 사명이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갈라디아 교회에서 바울의 가르침에 영적 권위를 부인하는 무리들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영적지도자들을 흔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의 소명을 흔드는 것이다. 갈라디아 이단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주장들을 위하여 영적 지도자를 비난하고 부르심의 근원을 공격하려고 시도 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소명) 대한 우리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가?
(화) 바울의 복음
▸바울의 인사는 우리식으로 하면 “그리스도로부터 안녕과 평안이 있기를 ...”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서는 은혜가 없다. 율법주의적인 삶에는 참된 평강이 없다. 복음은 복음이 아닌 짐이되고 삶은 버거운 투쟁이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등지고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시도하는 그들에게 바울은 그들이 정녕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분으로부터 이르러 오는 평강임을 나타낸다.
▸하늘은 이 땅의 연속선상에 있다. 비록 새 하늘, 새 땅이지만 신앙의 본질은 연속된다. 우리의 신앙이 행복하고 참으로 은혜가 넘치는 그 무엇이 아니라면 하늘도 그런 곳이 될 것이다. 내 신앙은 어떤 종류의 신앙인지, 이런 신앙의 울타리를 1,000년 아니 영원히 한다고 해도 즐겨 선택 할 수 있는 것이지 돌아봐야 한다.
(수)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신앙은 있어도 다른 복음은 없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된 은혜와 평강 외에는 그 어떤 이야기도 복음이 아니다. 성결의 가쁨과 참된 성화는 십자가의 빛에서 비치는 능력을 받을 때에만 가능하다.
▸생활 태도의 문제는 고치면 되고, 저질러진 죄악은 회개하고 자복하면 되지만 거짓교리와 가르침은 교회 전체를 위험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도덕적 범죄보다 더 위험한 것은 교회 안에 거짓 사상이다. 최근에도 교회 안에 몰아닥친 반 삼위일체 교리나, 사명중심이 아닌 사건 중심의 종말론은 그것에 물던 사람들의 신앙을 무의미하고 물기 없게 하기에 충분함.
(목) 복음의 근원
▸의도와 동기는 참으로 중요하다.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이나 기별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임을 분명히 한다. 교회를 향한 나의 열심히 과연 누구를 위한 열심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사도의 자세는 오직 주를 위함이었다.
결론
거짓 교사들은 종종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나 아직 진리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들을 접근하여 이리들처럼 영혼을 유린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넣어 주려고 안달한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복음의 원칙에 굳게 서기 위하여 스스로 말씀을 연구하고 철저히 자신을 복음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토의 사항
▪만일 당신이 성경의 기록자라면 어떻게 기록하겠는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어떤 부분이 어려운가?
▪바울의 독자들은 읽을 수 있는 자, 들을 수 있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계시록의 기별처럼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었을 것이다.
▪ 그대의 신앙생활에는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 하는가?
▪ 신앙생활이 참으로 행복한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복음의 본질을 오해한 유대 지도자들을 (마 23:24, 개정)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라고 책망하였다. 오랜 세월 전통의 형식과 방식을 지켜 왔지만 껍데기 밖에 없는 전통은 오히려 알곡을 왜곡하고 저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방교회들에서 저질러진 배도는 초대교회의 커다란 도전이 되었다. 비록 49년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말이 난 문제였지만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되는 순간까지 껍데기와 알맹이, 복음의 진수와 전통적 사상의 차이는 갈등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온 방식들을 “그것이 본질이냐?”는 과감한 질문을 가지고 접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전통 고수 주의자들이 아니다. 종종 교회 안에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고 교회를 배도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림교회는 전통의자들이 아니다. 지금까지 믿던 교리, 입던 옷, 먹던 음식 ... 이런 것들이라도 새로운 진리 앞에서 우리는 바디메오처럼 겉 옷을 벗어 던질 수 있는 개혁신앙의 후손들이다. 한때 바울은 전통적 입장에서 반하는 모든 것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그의 편견의 망막이 떨어지고 새로운 안목이 생기자 그는 비로소 본질에 도달함.
(일) 서신의 저자 바울
▸12사도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바울의 사역은 초대교회에서 종종 그 권위를 도전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종종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리를 스스로 주장한 내용들이 그의 서신에서 발견되곤 한다.
▸동시대 사도였던 베드로에 의하여 바울의 복음적 권위는 인정된 것이 의미가 있다.(벧후 3:15)
▸재림교회는 히브리서를 포함하여 14권의 신약 성서를 바울이 기록하였다고 대체로 믿는다. 이러한 바울의 열정적인 성경 기록 활동과 영감을 받은 경험들이 없이는 신약교회의 발전은 거의 불가능 하였을 것이다.
▸바울의 기록방법은 당대에 일반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서신방식을 채택함으로 회람하여 읽기 원했던 독자들에게 그 뜻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의 편지는 단순하고 간결하였다.
▸성경을 이해함에 오늘날 주석이 필요함은 성경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 변천에 따른 차이 때문이다. 성경은 당대에 가장 무지한 사람들도 일수 있고 읽으면 이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월) 바울의 소명
▸바울은 종종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다메섹의 경험을 간증하였다. 그의 부르심과 경험이 분명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그의 이방인을 위한 복음 사명이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갈라디아 교회에서 바울의 가르침에 영적 권위를 부인하는 무리들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영적지도자들을 흔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의 소명을 흔드는 것이다. 갈라디아 이단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주장들을 위하여 영적 지도자를 비난하고 부르심의 근원을 공격하려고 시도 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소명) 대한 우리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가?
(화) 바울의 복음
▸바울의 인사는 우리식으로 하면 “그리스도로부터 안녕과 평안이 있기를 ...”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서는 은혜가 없다. 율법주의적인 삶에는 참된 평강이 없다. 복음은 복음이 아닌 짐이되고 삶은 버거운 투쟁이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등지고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시도하는 그들에게 바울은 그들이 정녕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분으로부터 이르러 오는 평강임을 나타낸다.
▸하늘은 이 땅의 연속선상에 있다. 비록 새 하늘, 새 땅이지만 신앙의 본질은 연속된다. 우리의 신앙이 행복하고 참으로 은혜가 넘치는 그 무엇이 아니라면 하늘도 그런 곳이 될 것이다. 내 신앙은 어떤 종류의 신앙인지, 이런 신앙의 울타리를 1,000년 아니 영원히 한다고 해도 즐겨 선택 할 수 있는 것이지 돌아봐야 한다.
(수)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신앙은 있어도 다른 복음은 없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된 은혜와 평강 외에는 그 어떤 이야기도 복음이 아니다. 성결의 가쁨과 참된 성화는 십자가의 빛에서 비치는 능력을 받을 때에만 가능하다.
▸생활 태도의 문제는 고치면 되고, 저질러진 죄악은 회개하고 자복하면 되지만 거짓교리와 가르침은 교회 전체를 위험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도덕적 범죄보다 더 위험한 것은 교회 안에 거짓 사상이다. 최근에도 교회 안에 몰아닥친 반 삼위일체 교리나, 사명중심이 아닌 사건 중심의 종말론은 그것에 물던 사람들의 신앙을 무의미하고 물기 없게 하기에 충분함.
(목) 복음의 근원
▸의도와 동기는 참으로 중요하다.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이나 기별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임을 분명히 한다. 교회를 향한 나의 열심히 과연 누구를 위한 열심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사도의 자세는 오직 주를 위함이었다.
결론
거짓 교사들은 종종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나 아직 진리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들을 접근하여 이리들처럼 영혼을 유린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넣어 주려고 안달한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복음의 원칙에 굳게 서기 위하여 스스로 말씀을 연구하고 철저히 자신을 복음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토의 사항
▪만일 당신이 성경의 기록자라면 어떻게 기록하겠는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어떤 부분이 어려운가?
▪바울의 독자들은 읽을 수 있는 자, 들을 수 있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계시록의 기별처럼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었을 것이다.
▪ 그대의 신앙생활에는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 하는가?
▪ 신앙생활이 참으로 행복한가?
댓글목록
금강님의 댓글
금강 작성일
항상 좋으신 말씀으로 해석해 주시니 감사 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별빛태자님의 댓글
별빛태자 작성일기쁜 소식이 너머서거나 쇠해지지 않도록 글발로 분명히 덧대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