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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복음(질문, 대답, 부가설명)1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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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9-30 08:44 조회8,53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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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6분

기억절 :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연구 범위: 벧후 3:15~16, 갈 1장, 빌 1:1, 갈 5:12.

한 대학의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 인종, 성, 지위,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환영하기 위한 회관을 세웠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이들이 모교를 방문해 보니 후배들이 그 회관의 구조를 변경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곳에 모이는 모든 사람의 연대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고안된 널찍한 친교의 공간이 인종, 성, 등의 출입 제한이 있는 여러 작은 방으로 나눠졌다. 구조변경을 주도했던 학생들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관습을 근거로 그러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낼 당시의 상황이 이러했다. 바울의 계획은 오직 믿음만으로 이방인들을 신자로 맞이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 때문에 그의 계획은 도전을 받고 있었다.
바울의 관점에서 그러한 주장은 복음의 본질에 대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그는 대응에 나섰고, 그래서 갈라디아서가 기록되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바울이 자신의 복음과 가르침에 대한 사도적 권위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설명한다.
➋ 느끼기: 거짓 교훈에 대항하여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려는 바울의 결단과 열정에 공감한다.
➌ 행하기: 성경 진리를 고수하고 수호하기로 결심한다.

결론: 바울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사도적 권위로 거짓 교리를 단호히 정죄함으로써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시작하였습니다.

첫째 날(일) 10월 2일 서신의 저자 바울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벧후 3:15).

질문: 벧후 3:15~16을 읽어 보라. 초기 교회는 바울의 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영감의 작용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벧후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답: 초기 교회는 바울의 편지를 성경으로 받았다. 그러나 아마도 좀 어렵다고 느낀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읽으면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영감하시고 그 인격과 사상을 주장하신다. 그러나 그의 표현은 그의 환경과 지식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감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의 문화적 형식을 배제하지 않았다. 바울의 편지는 당시 일반적인 편지 형식을 따라 기록되었다.

  바울 서신의 형식은 그 당시에 모든 서신에 나타난 일반적인 형식과 다름이 없었다. 그 당시 서신들은 ⑴ 안부와 함께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이름이 언급된 인사말, ⑵ 감사의 말, ⑶ 서신의 본론, ⑷ 끝맺는 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울은 그 당시의 형식에 따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매체와 문체를 가지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기별을 전하였다.

<부가설명> 우리교회는 축자영감을 인정하지 않는다. 축자영감은 성경의 모든 글자 하나하나를 다 성령께서 그 글자를 쓰라고 지시한대로 썼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혹은 기계영감이라고도 한다. 사람은 기계노릇만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아도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영감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라고 기록하였다. 성령의 감동은 사람이 받은 것이다. 그 감동된 사실에 의하여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과 마음에 주시는 감동을 자기의 언어 능력 안에서 기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성경은 대서한 것을 볼 수 있다. 지식이 많은 바울의 편지서도 더디오가 대서한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의 편지도 실루아노가 대서하였다. 이들은 당시 편지 형식을 따라 기록하였다. 예레미야서는 바룩이 대서하였다. 대서하는 사람도 성령께서 감동하셨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대서하는 말을 일러준 것은 예레미야이고 바울이고 베드로였으며 그들이 영감으로 그 말을 한 것이다. 어떤 표현은 대서하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단어를 골라 쓰도록 요청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교훈: 바울은 교회 역사 초기부터 영감의 글을 기록한 저자로서 권위를 인정받았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식에 따라서 서신을 기록하였다.

둘째 날(월) 10월 3일 바울의 소명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

질문: 갈 1:1의 인사말을 엡 1:1, 빌 1:1, 살후 1:1의 인사말과 비교해 보라. 갈라디아서의 인사말은 다른 서신의 인사말은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엡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빌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살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답: 유사점은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고, 다른 점은 사도된 경위와 사도적 권위를 갈라디서가 더 강조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부가설명> 바울은 자기가 받은 영감과 계시대로 이방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것은 유대인 교인들이 듣기에 너무나 파격적인 것이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형식들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회심의 때와 관련하여 그의 사도성과 사도적 권위를 흔들었던 것 같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들의 말을 들으니 타당해보였다. 바울은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도가 아니고, 심지어 맛디아 같은 절차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가 사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 것처럼 보였다. 바울은 이런 의심을 단번에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성령께서 그렇게 역사하셨다. 그가 전한 참된 복음이 다른 복음으로 엄청난 손상을 입을 것을 보았끼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도성과 사도권을 강조하였고,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은 바나바나 안디옥 교회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받은 것임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도 교묘하게 진리를 헐뜯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에 의하여 철저히 검증하고 바른 진리에 굳게 서야 할 것이다.

교훈: 바울이 전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기별을 못마땅하게 여긴 신자들이 그의 사도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바울은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였다.

셋째 날(화) 10월 4일 바울의 복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 1:3).

질문1: 자신의 사도직을 방어한 것 외에 바울은 인사말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무엇을 강조하였는가? 갈 1:3~5을 엡 1:2, 빌 1:2, 골 1:2과 비교해 보라.
[갈1:3~5]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엡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답: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린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에베소와 빌립보 교회에는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사실을 인사말에 사용하지 않았다.

질문2: 바울은 복음의 어떤 측면들을 갈 1:1~6에 담았는가?
[갈1:1~6]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답: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은혜와 평강을 담아 편지를 썼다. 예수님으로 좇아 오는 은혜와 평강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근거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고전 15:22에 분명히 밝힌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의 씨로 태어나는 그의 후손은 예외 없이 생명이 없는 사망의 존재들이다. 이렇게 사망이 된 사람들이 겨우 육체의 생명으로 일정기간 살면서 그들의 노력으로 사망에서 생명에 이를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고 외친다. 이미 죽은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그것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첫 아담에게 연결된 인간은 그에게서 죄와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편지68. 1899) “순종을 조건으로 사람에게 약속된 불멸(不滅)은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바 되었다. 아담은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그의 후손에게 전해줄 수 없었다.”(쟁투 533)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람이 이미 아담 안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는 다만 양을 잡는 희생을 대신한 제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우겼다. 오늘날도 사람이 선행을 해야 구원받고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초기 유대인들이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망이 처리된 것과 부활하심으로 영생의 생명을 드러낸 것을 믿을 때 우리도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참 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복음은 사망을 폐하고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교훈: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그의 인사말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기초해 있음을 내비쳤다.

넷째 날(수) 10월 5일 다른 복음은 없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질문1: 바울 서신에서 인사말 뒤에 보통 어떤 내용이 이어졌는가? 갈라디아서는 다른 서신과 어떻게 다른가? 갈 1:6을 롬 1:8, 고전 1:4, 빌 1:3, 살전 1:2과 비교해 보라.
[갈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롬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고전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빌1: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전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답: 다른 편지서에는 주로 감사의 말을 썼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이상히 여긴다고 썼다.

질문2: 갈라디아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그의 염려의 정도를 표현하기 위해 바울은 어떤 거친 단어들을 사용하였는가?(갈 1:6~9, 5:12)
[갈1:6~9]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답: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저주를 받으라고 하였으며, 교인들을 어지럽히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부가설명> 바울의 마음이 심히 격동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생명과 사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대인들의 주장을 받으면 생명에 이르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베어버리라고 한 것은 유대인 신자들이 모세의 법을 좇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것이 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그 할례 해야 할 것을 완전히 베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 할례의 복음적 의미를 모르고 그 형식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인 신자들은 바울이 가르치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오랜 전통으로 믿고 주장했던 것을 하루아침에 버리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주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그것을 해로운 것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그 알량한 완전과 품성 변화 성화를 유대인들처럼 껴안고 예수님의 생명을 복음을 복종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잘 살펴볼 것이다.

교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기 때문에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하였다.

다섯째 날(목) 10월 6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근원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질문1: 바울이 사람을 기쁘게 하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갈 1:10)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답: 사람을 기쁘게 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조건으로 하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무효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질문2: 그의 복음과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천명한 후에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어떻게 증명하였는가?(갈 1:11~12, 13~24)
[갈1:11~24]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답: 11,12절에서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라고 증언하고 이어서 바울은 회심 전(13~14절), 회심 당시(15~16절) 그리고 회심 후(16~24절)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자서전적인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런 사건들의 정황을 보면 그의 복음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역설한다.

<부가설명> 우리는 바울처럼 아라비아에서 계시를 받는 경험을 하지 못하였을지라도 우리는 기록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에 계시를 보는 것이다. 성경은 전부 계시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의 기자들보다 더 많은 계시를 보는 자들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계시를 보고 있는 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의 권위는 전적으로 성경말씀에 있다. 성경 외에 어떤 것도 복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을 복음으로 가르치면 그것은 다른 복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에 깊이 뿌리박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기 위하여 자기가 좋다고 생각한 것을 해롭게 여길 줄 알고 배설물처럼 버려야 한다. 자기의 선한 행위와 자기의 좋은 성품과 소위 성화된 성품을 하나님 앞에 내세운다면 그것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은 유대인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밖에 없다.

교훈: 바울이 정말 사람의 신임을 얻기 위해 그들을 기쁘게 하는 복음을 전했다면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그렇게 강한 어조로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예비일(금) 10월 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거의 모든 교회에 유대인 태생의 신자들이 있었다. 유다에서 온 교사들은 이런 신자들에게 쉽게 접근하여 그들을 통해 교회 내에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성서적 논쟁으로 바울이 가르친 교리들을 폐기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에 바울의 감화력에 대응하고 그의 권위를 약화시키고자 그들은 무원칙적인 수단에 의지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그분에게 사명을 위임받지도 않았는데 주제넘게 베드로와 야고보 등 다른 제자들의 교회와 정반대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공표하였다.
…바울의 마음은 교회들을 신속히 파괴하고자 위협하는 악을 보고 분개하였다. 그는 즉시 갈라디아 교회에 서신을 보내, 그들의 거짓 교훈을 폭로하고 믿음에서 떠나간 자들을 엄하게 꾸짖었다”(엘렌 G. 화잇, Sketches From the Life of Paul, 188~18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그대는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각자의 생각을 나눠 봅시다. 서로의 생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 각자가 서로 이야기 해 볼 것이다. 성경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그를 믿는 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망을 폐하고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낸 것이 복음이라고 하였다.(딤후1:10, 롬1:1~4)

➋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자신과 다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왜 그토록 관용하지 못했습니까? 다른 시각으로 복음을 바라보는 자들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기록했는지 다시 읽어 보십시오. 오늘날의 교회에서 바울과 같이 강하고 비타협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은 어떻게 비춰질까요?

※ 바울이 관용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생명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행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을 사망에 잡아두는 것이 때문이다. 복음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요약: 갈라디아의 거짓 교사들은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사역을 폄하하려고 노력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서두에서 이런 비방에 대응하였다. 그는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라고 담대히 선포하였으며, 그의 회심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이 그의 부르심과 복음의 신적 기원을 증명한다고 설명하였다.

댓글목록

성도님의 댓글

성도 작성일

좋은 교과 지도 감사합니다.

유병찬님의 댓글

유병찬 작성일

은혜로운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말씀사모님의 댓글

말씀사모 작성일

교과 연구에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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