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과 이방인의 사도(도입과 부가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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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1-09-23 13:10 조회5,235회 댓글2건본문
제 1 과 이방인의 사도
10월 1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6분
도입)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택받은 위대한 사도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이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따라 살지는 않았다. 도리어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교회에 해를 끼친 암적인 존재였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전까지는 유대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잘 나가던 청년이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 3:5-6)라고 자랑할 만 하였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고 보니 그동안 살아온 삶은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것뿐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빌 3:7-8) 여긴다고 하였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비로소 그는 인생의 목적을 깨달았다.
기억절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결론: 아직 미약한 초대교회는 애국자 다소 사람 사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위한 선교에 큰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일) 9월 25일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
도입)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에 있는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한다(행9:1~2). 그리고 그것을 지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가기 위해 다메섹으로 간다. 그렇다면, 그 공문이라는 것은 체포영장에 해당하는 사법적인 권한이 있는 문서라는 인상이 짙다. 이런 권세 있는 문서를 지참하고 다메섹으로 가던 그는 다메섹에 가까운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나타난 부활하신 주와의 대면 이후 급변하여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잔해자에서 증거자로 변했다(행9:3이하및 20). 이렇게 돌변한 바울의 모습을 두고 후세대의 독자들은 핍박자요 잔해자였던 사울이 부활하신 주를 만난 후 돌이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죄사함받아 변하여 그 후로는 주를 박해하던 일에서 주를 증거하는 일을 하게 된 사람으로서 그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개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행 6:13).
교훈: 스데반은 율법과 성전을 무시한다는 죄목으로 순교를 당했지만, 박해자 사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부가적용)
스데반이 말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로 시작되는 세 구절(행 7:51-53)은 그들의 마음이 톱으로 절단되는 것과 같이 그들을 찔렀고, 그들은 이를 갈았다(행 7:54). 스데반의 세 마디는 종교인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쳤다. 스데반을 성밖으로 내치고 돌로 내리 찍으며 옷을 벗어 청년 사울의 발 앞에 두었다. 돌을 맞으면서도 스데반을 크게 외쳤다. “주 예수여, 내 영을 맏으시옵소서” 그리고 이어서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잠이 들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사울은 이때 스데반 안에 조성된 말씀과 말씀을 선포하는데 있어 담대함과 타협하지 않음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 등 몇 가지에서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비록 이 때는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지만(행 9:1), 그 이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사흘동안 눈멀어 아무 것도 보지 모린
10월 1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6분
도입)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택받은 위대한 사도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이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따라 살지는 않았다. 도리어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교회에 해를 끼친 암적인 존재였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전까지는 유대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잘 나가던 청년이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 3:5-6)라고 자랑할 만 하였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고 보니 그동안 살아온 삶은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것뿐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빌 3:7-8) 여긴다고 하였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비로소 그는 인생의 목적을 깨달았다.
기억절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결론: 아직 미약한 초대교회는 애국자 다소 사람 사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위한 선교에 큰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일) 9월 25일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
도입)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에 있는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한다(행9:1~2). 그리고 그것을 지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가기 위해 다메섹으로 간다. 그렇다면, 그 공문이라는 것은 체포영장에 해당하는 사법적인 권한이 있는 문서라는 인상이 짙다. 이런 권세 있는 문서를 지참하고 다메섹으로 가던 그는 다메섹에 가까운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나타난 부활하신 주와의 대면 이후 급변하여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잔해자에서 증거자로 변했다(행9:3이하및 20). 이렇게 돌변한 바울의 모습을 두고 후세대의 독자들은 핍박자요 잔해자였던 사울이 부활하신 주를 만난 후 돌이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죄사함받아 변하여 그 후로는 주를 박해하던 일에서 주를 증거하는 일을 하게 된 사람으로서 그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개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행 6:13).
교훈: 스데반은 율법과 성전을 무시한다는 죄목으로 순교를 당했지만, 박해자 사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부가적용)
스데반이 말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로 시작되는 세 구절(행 7:51-53)은 그들의 마음이 톱으로 절단되는 것과 같이 그들을 찔렀고, 그들은 이를 갈았다(행 7:54). 스데반의 세 마디는 종교인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쳤다. 스데반을 성밖으로 내치고 돌로 내리 찍으며 옷을 벗어 청년 사울의 발 앞에 두었다. 돌을 맞으면서도 스데반을 크게 외쳤다. “주 예수여, 내 영을 맏으시옵소서” 그리고 이어서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잠이 들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사울은 이때 스데반 안에 조성된 말씀과 말씀을 선포하는데 있어 담대함과 타협하지 않음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 등 몇 가지에서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비록 이 때는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지만(행 9:1), 그 이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사흘동안 눈멀어 아무 것도 보지 모린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목사님의 성실한 봉사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4기에도 좋은 자료 부탁드리며 미리 감사합니다.
옛날교사님의 댓글
옛날교사 작성일
목사님
정말 감사 합니다. 목사님의 헌신으로 저와 우리반 반생들이 훌륭한 꼴을 풍성히 먹습니다
너무 고마운 은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