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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계시록에 나타난 예배(질문, 대답, 부가설명)09/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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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9-16 13:50 조회8,57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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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27분

기억절 :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3)

연구 범위: 욥 42:1~6, 계 1:13~18, 13장, 14:6~12, 19:1~5.

요한계시록만큼 성경에서 신비와 환상으로 가득 찬 책은 드물다. 계시록은 짐승과 용의 우상, 불, 지진, 재앙, 군대, 개구리, 도시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들과 같은 다양한 형상들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는 다름 아닌 예배이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 관한 최후의 위기를 다룰 때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늘의 존재들을 보여 줄 때에 계시록이 거듭 강조하고 있는 주제는 예배이다. 우리는 세세토록 살아 계시고(계 5:14),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계 11:17)며,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계 4:11)신 분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정리하자면 계시록은 우리가 이번 교과에서 줄곧 다뤄 왔던 바대로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시며, 우리의 심판자되시는 주님만이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계시록에 나타난 예배의 장면들 즉 예배자들, 예배의 공간과 예배 행위, 예배의 이유 등을 설명한다.
➋느끼기 :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림으로 깊은 두려움과 형언할 수 없는 사랑과 감사를 느낀다.
➌행하기 : 창조주와 구속주요 심판자와 왕이신 분을 영원토록 송축하는 일에 함께한다.

결론: 우리의 왕이요 창조주시며, 심판자요 구세주이신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은 우리에게 최고의 기쁨입니다.

첫째 날(일) 9월 18일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계 1:17).

질문1: 계 1:13~18에서 요한에게 계시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라. 요한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는 왜 그렇게 반응하였는가? 이 말씀에서 십자가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계1:13~18]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답: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압도되었다. 그는 죽은 자 같이 되어 그 발 앞에 엎드러졌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고 하셔서 십자가를 상기시키셨다. 그러나 이제는 영생하시는 분으로서 사망과 음부도 온전히 주관하시는 분으로 나타내셨다.

질문2: 욥 42:1~6을 읽어 보라. 욥의 반응과 요한의 반응을 비교해 보라.
[욥42:1~6]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답: 욥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사람을 취급하심에는 하나님을 선악을 분별하여 인간이 선을 행하면 상을 주고 악을 행하면 벌을 주는 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으로 깨달았다. 이전에 자기가 하나님을 인식한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진정으로 회개하였다. 그래서 그는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다.

<부가설명> 예배를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한다. 이 말은 worth에 ship을 합성한 것이라고 한다. ship는 형용사에 붙여서 형용사에 붙여 추상명사를 만들고 명사에 붙여 ‘상태, 신분, 직, 수완’ 등을 나타내는 추상명사를 만드는 어미라고 한다. 이것은 가치라는 말에 붙어서 가치의 상태 신분 등을 나타내게 한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영어의 의미는 최고의 가치를 만난 사람이 그 가치 앞에서 갖추는 마음과 몸의 태도가 예배라는 것이다. 우주의 최고의 가치는 당연히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구속주이시다. 다른 말로 재창조주이시다. 우리가 그분 앞에 있다면 당연히 몸을 낮추어 엎드려 경배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분 앞에 뻣뻣하게 서서 버티는 사람은 그분과 자기를 동등하게 여기는 존재일 것이다. 예배의 태도는 먼저 마음에 있다. 정말 내가 예배의 대상으로 경배하는 그분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어떤가를 스스로 물어볼 수 있다. 웃사와 아효는 언약궤를 자기 집에서 늘 대하였기 때문에 경외심을 잃었다. 보통 궤짝을 보는 것 같아진 것이다. 그것이 소가 날뛸 때에 부주의하게 언약궤를 붙들게 한 것이다. 우리는 늘 계시는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여기고 살기 때문에 예배 시간에도 그런 태도가 되어 있다면 웃사의 허물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날마다 생활로 감사와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연장선에서 안식일이나 기타 공동예배에 임해야 할 것인데, 공동예배는 예를 갖추어 드리는 예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언약궤를 모시고 가는 제사장들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예배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예배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교훈: 온 우주의 창조자 앞에 선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경외심 그리고 회개의 마음을 일으킨다.

둘째 날(월) 9월 19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질문: 다음의 성경 말씀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로부터 우리는 예배에 관하여 어떤 교훈을 배우게 되는가? 예배에 관한 어떤 주제들이 본문 중에 나타나고 있는가?

[계 4:8~11]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5:8~14]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계 7:9~12]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계 11:15~19]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계 15:1~4]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계 19:1~5]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답: 창조주, 구속주, 심판장 되심이 찬양과 경배의 중심에 있다. 심판은 창조와 구속이 근거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장 되심은 찬양과 경배의 조건이 된다.

<부가설명> 부모는 부모이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효도를 받을 이유가 된다. 자녀의 생명과 존재는 부모로부터 받았다. 부모는 부모이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부모인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증명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들이 자녀인줄 알면 그냥 효도하고 양육을 받는다. 창조와 구속주 되시는 하나님은 창조하셨기 때문에, 구속하셨기 때문에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 당연하다.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마치 자녀가 부모를 부모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도덕과 윤리로도 이런 자녀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거든 하물며 창조와 구속으로 우리를 생명으로 영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경배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분이 곧 나의 전부이다.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창조와 구속과 심판의 중심에 창조와 재창조를 인식하고 기념하게 하는 안식일이 있다.

교훈: 우리가 하늘에 계신 주님께 경배하듯이 하늘도 이 땅에서 행하신 주님의 일로 인하여 그분을 경배하고 있다.

셋째 날(화) 9월 20일

요한계시록 13장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

질문: 계시록 13장을 읽고 다음의 질문에 답하라.

⑴ 계시록 13장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계시록 13장은 역사적으로, 예언적으로 각각 어떤 의미인가?

답: 사단이 이 세상 역사에서 어떤 상태로 일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역사적 배경이다. 역사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진상을 드러내고 예언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올바른 경배를 하도록 속지 않게 한다.

⑵ 예배의 주제는 얼마나 자주 나타나고 있는가? 이는 예배가 계 13장의 중심적인 주제임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답: 용과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라는 내용이 5회 나타난다. 물론 여기에는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표현도 포함된다. 이 표현들은 경배가 중심문제라는 것을 잘 드러낸다.

⑶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신 구원의 복음을 계시록 13장 어느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가?

답: 13:8에 창세함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대한 말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제시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실 때 의미상으로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부가설명> 계시록 13장 14장은 경배의 대결이 예언된 장이다. 용과 그 일당들에게 경배하느냐?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느냐 하는 것이 이 세상의 마지막을 판가름할 사건이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것이 나타난 상태로는 예배하는 표의 대결이다. 짐승의 표를 받느냐, 하나님의 인을 받느냐 하는 것이다. 이 표가 경배와 관련된 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령으로 인을 치시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 성품이 변한 것이 하나님의 인을 받은 표라는 착각을 하면 안 된다. 이것은 짐승과 그 세력들을 경배하는 표냐,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표냐 하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내적 표로 생각하면 속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표는  분명히 안식일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경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아니다. 사단은 자기가 하나님인체 하여 경배를 받으려고 하나님을 모방하여 세상을 속이기 때문에 경배하는 표도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혼동하도록 모방할 것이다. 안식일을 모방한다는 말이다. 안식일은 날짜이다. 그러므로 짐승을 경배하는 표도 날짜로 할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대로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경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종말에 이를수록 경배는 대쟁투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날(수) 9월 21일

요한계시록 14장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질문: 계 14:6~12을 읽어 보라. 이 본문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인 우리에게 그토록 핵심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배의 주제는 이 말씀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떤 이유로 “현대 진리”라고 부르는가?
[계14: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이 기별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기별이다. 창조주는 모든 피조물에게 경배를 받으실 자격이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오늘날 온 세상은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제칠일을 안식일로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믿는 우리 교회는 이 날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주와 그의 피조물인 사람들과 맺은 언약의 표로 주신 것을 확인하고 믿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는 핵심적이고 중요하다. 또한 오늘날 창조를 부인하는 세상에 반드시 증거해야 할 기별이기 때문에 현대진리이다.

<부가설명> 제칠일 안식일을 부인하면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단순히 이레 중의 한 날이 아니다. 한 주일이 이레라는 사실 자체가 창세기에 계시한 그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사실을 증거하는 이 세상 시간 속에 인 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증거이다. 그 이레의 마지막 날이 창조주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주시고 안식하신 날이다. 창조 주간에 일곱 번이나 좋았더라고 하셨는데, 그 말은 선하다는 말과 같다. 구역에는 선한지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다. 6일 동안 하신 일에 도덕적인 표현을 하셨지만 일곱째 날에는 종교적 표현을 하셨다. 일곱째 날 안식일은 이 세상에 종교와 신앙을 세우신 하나님의 의도가 담긴 날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사단은 이 날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기별과 우리가 거룩하게 지키는 날에 대하여 확고해야 할 것이다.

교훈: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표징과 인으로 주어졌으며 그 의미는 마지막 때에 크게 부각될 것이다.

다섯째 날(목) 9월 22일

하나님께 경배하라

질문: 다음 말씀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예배와 대하여 어떤 핵심적인 기별을 담고 있는가?
[계22:8,9]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답: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핵심적인 기별을 담고 있다.

<부가설명> 이 말씀은 시험의 광야에서 예수께서 사단에게 하신 선언이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0) 오늘날도 세상은 사단에게 경배하라고 우리들을 유혹한다. 때로는 성경말씀오로 유혹하고 때로는 재물과 명예와 오락으로 유혹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할 때 회중의 감정 중심으로 노래를 부르고 순서를 짜고 예배를 진행하는 경향이 너무 강한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순서를 진행하면 그것은 회중이라는 우상을 예배하는 것이지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을 예배에 중심에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인간의 간정이 어떤 것과 크게 상관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감정이 상해도 찬미할 흥이 전혀 일어나지 않아도 찬미하고 기도하고 예배해야 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교훈: 예배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하나님께 우리도 전적으로 자신을 드리며 믿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비일(금) 9월 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각 시대의 대쟁투, 582~592 “절박한 최후의 위기”, 603~612 “최후의 경고”, 662~678 “대쟁투의 종막.”

“예배란 우리를 만드신 자 앞에서 그분의 거룩함과 우리가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인정하며 허리를 숙이는 것이다. 예배란 그분의 장엄한 임재에 대한 반응이며 그분의 통치권에 대한 굴복이다”(리처드 M. 데이비슨, 구약성경의 예배, 3).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 2:11)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기쁨과 두려움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예배는 거룩한 기쁨이 되어야 한다. … 우리의 예배는 엄숙한 두려움과 활기찬 기쁨이 있어야 한다”(상동, 30).

“구속받은 자들이 일제히 다음과 같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는 하늘 공간에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10). … 그 빛나는 무리들 가운데는 마치 자기 자신의 능력과 선행으로 승리한 것처럼 구원을 자기 공로에 돌리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어떤 고난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오직 모든 찬미의 내용과 모든 찬양의 주제는 구원하심이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는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6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성육신, 예수님의 죄 없는 생애와 죽음 그리고 재림의 약속 등 모든 구속의 계획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이유가 됩니까?

※ 예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구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누리고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속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창조와 재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마땅히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

➋우리가 교회에 있지 않아도 주님께 예배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항상 주님께 예배하지 않고서 안식일에만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 예배에는 예식예배와 생활예배가 있다는 것은 이미 언젠가 말하였다. 우리의 존재와 생활이 예배가 되지 않으면 안식일에 예식예배도 올바른 예배가 되지 않는다. 우리 존제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한다.(엡1:12)

댓글목록

재림교인님의 댓글

재림교인 작성일

목사님 감사합니다
은혜 충만하군요
수고하십시요

강원도님의 댓글

강원도 작성일

하늘까지 펑 뚤리는 목사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잔잔한 목소리와 모습이 그립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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