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과 계시록에 나타난 예배(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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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1-09-16 09:40 조회3,482회 댓글0건첨부파일
- 안교교과해설 제 13 과.hwp (30.0K) 68회 다운로드 DATE : 2011-09-16 09:40:23
본문
제 13 과 계시록에 나타난 예배
기억절: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14:3)
첫째 날(일)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우주의 크기는 짐작조차도 하기 어렵습니다. 망원경의 발달로 인해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있는 진행형입니다.
우주의 크기와 신비를 볼 때에 절로 놀라게 됩니다.
이런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할 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볼 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는 더 큰 감동과 놀람이 있습니다.
우주를 만드시고 지탱하시는 창조주께서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한 지구를 사랑하시고 그 지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스스로 인간이 되시고 사람의 선택의 결과인 영원한 무(無)로 돌아가는 결과를 대신 지신 행위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게 되고 엎드리도록 만들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의 본질은 먼지입니다.(욥38:38)
먼지(티끌)로 흙을 만드시고 흙이 흩어지지 않도록 사랑으로 감싸심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먼지인 사람이 먼지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을 때 하나님은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셔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생각할 때에 이해되지 못하지만 엎드려 경외하게 됩니다. (시33:18; 빌2:5-11)
둘째 날(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계시록에서의 경배와 찬양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시고 구속주 되시며 심판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3가지 주제를 관통하는 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창세함으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지셔서 대신 어린 양처럼 피 흘려 돌아가시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제시합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은 자유의지의 결과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지실 것을 창조 전에 각오하셨습니다.
창조 전에 이미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거절하여 창조 전의 상태인 흙(먼지)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창조 전의 각오대로 자신이 어린 양처럼 대속하실 것을 선언하시고(창3:15) 실행의 모형을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는 일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창3:21)
그때부터 어린 양은 사람의 선택을 대신하는 하나님의 대속을 상징하는 제물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선택에 대하여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사랑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속에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심과 구속주 되심 그리고 심판자로서 창조하신 자신의 생명을 대속함이 하나님께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품성임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그것은 어느 피조물도 할 수 없는 구별된(거룩한) 하나님다운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 모든 피조된 존재들이 그 품성의 아름다움에 경외하게 됩니다.(시33:18)
셋째 날(화) 요한계시록 13장
세상의 마지막이 이를수록 예배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잇슈가 됩니다.
창조주시요 구원자로서 사람의 선택에 대한 모든 결과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 그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선과 악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단은 그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기 위하여 세상의 세력들을 연합하여 군사적인 힘과 경제적인 힘으로 강제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예배하도록 합니다.
아무리 군사적, 경제적인 힘으로 예배를 강요하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창조주요 구속주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하여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동일한 사랑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넷째 날(수) 요한계시록 14장
요한 계시록 14장은 요한 계시록 13장의 사단의 세력으로 연합한 세력들의 강제적인 예배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벗어난 사람들이 승리할 것이 먼저 기록되어 있고(1절-5절) 승리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기별이 6절부터 12절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승리한 사람들이 전하는 마지막 기별은 승리한 사람들의 승리의 근원이 무엇임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받아들일 때 창조주의 품성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랑으로 사랑의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사랑이 공유되도록 하셨습니다.
사랑을 위해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자유의지를 곡해하여 남용할 위험에 처할 때에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선택의 결과를 대신 지시기로 각오하시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창조주와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에 사랑이신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을 신뢰케 하여 온 세상이 연합하여 벌이는 군사적, 경제적 위협 속에서도 꿋꿋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선택을 하게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을 보여주는 안식일이 잇슈가 될 것이고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안식일에 예배하느냐 아니면 사단의 정신이 담긴 일요일에 예배하느냐가 표면에 들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만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이심을 보여주는 안식일을 선택하게 됩니다.
다섯째 날(목)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품성을 보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출4:31; 시33:18)
우리의 필요를 위해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임을 알기 때문에 경배하게 됩니다.(행17:25; 빌2:1-11)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의 행위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될 때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자 하는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나를 위해 최고의 길임을 확신하기에 순종하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예배가 우리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받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에 대한 우리의 반응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비 일(금)
“예배란 우리를 만드신 자 앞에서 그분의 거룩함과 우리가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인정하며 허리를 숙이는 것이다. 예배란 그분의 장엄한 임재에 대한 반응이며 그분의 통치권에 대한 굴복이다”(리처드 M. 데이비슨, 구약성경의 예배, 3)
“구속받은 자들이 일제히 다음과 같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는 하늘 공간에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7:10). ... 그 빛나는 무리들 가운데는 마치 자기 자신의 능력과 선행으로 승리한 것처럼 구원을 자기 공로에 돌리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어떤 고난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오직 모든 찬미의 내용과 모든 찬양의 주제는 구원하심이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는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65)
기억절: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14:3)
첫째 날(일)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우주의 크기는 짐작조차도 하기 어렵습니다. 망원경의 발달로 인해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있는 진행형입니다.
우주의 크기와 신비를 볼 때에 절로 놀라게 됩니다.
이런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할 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볼 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는 더 큰 감동과 놀람이 있습니다.
우주를 만드시고 지탱하시는 창조주께서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한 지구를 사랑하시고 그 지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스스로 인간이 되시고 사람의 선택의 결과인 영원한 무(無)로 돌아가는 결과를 대신 지신 행위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게 되고 엎드리도록 만들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의 본질은 먼지입니다.(욥38:38)
먼지(티끌)로 흙을 만드시고 흙이 흩어지지 않도록 사랑으로 감싸심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먼지인 사람이 먼지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을 때 하나님은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셔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생각할 때에 이해되지 못하지만 엎드려 경외하게 됩니다. (시33:18; 빌2:5-11)
둘째 날(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계시록에서의 경배와 찬양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시고 구속주 되시며 심판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3가지 주제를 관통하는 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창세함으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지셔서 대신 어린 양처럼 피 흘려 돌아가시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제시합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은 자유의지의 결과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지실 것을 창조 전에 각오하셨습니다.
창조 전에 이미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거절하여 창조 전의 상태인 흙(먼지)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창조 전의 각오대로 자신이 어린 양처럼 대속하실 것을 선언하시고(창3:15) 실행의 모형을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는 일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창3:21)
그때부터 어린 양은 사람의 선택을 대신하는 하나님의 대속을 상징하는 제물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선택에 대하여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사랑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속에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심과 구속주 되심 그리고 심판자로서 창조하신 자신의 생명을 대속함이 하나님께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품성임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그것은 어느 피조물도 할 수 없는 구별된(거룩한) 하나님다운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 모든 피조된 존재들이 그 품성의 아름다움에 경외하게 됩니다.(시33:18)
셋째 날(화) 요한계시록 13장
세상의 마지막이 이를수록 예배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잇슈가 됩니다.
창조주시요 구원자로서 사람의 선택에 대한 모든 결과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 그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선과 악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단은 그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기 위하여 세상의 세력들을 연합하여 군사적인 힘과 경제적인 힘으로 강제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예배하도록 합니다.
아무리 군사적, 경제적인 힘으로 예배를 강요하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창조주요 구속주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하여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동일한 사랑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넷째 날(수) 요한계시록 14장
요한 계시록 14장은 요한 계시록 13장의 사단의 세력으로 연합한 세력들의 강제적인 예배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벗어난 사람들이 승리할 것이 먼저 기록되어 있고(1절-5절) 승리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기별이 6절부터 12절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승리한 사람들이 전하는 마지막 기별은 승리한 사람들의 승리의 근원이 무엇임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받아들일 때 창조주의 품성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랑으로 사랑의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사랑이 공유되도록 하셨습니다.
사랑을 위해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자유의지를 곡해하여 남용할 위험에 처할 때에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선택의 결과를 대신 지시기로 각오하시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창조주와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에 사랑이신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을 신뢰케 하여 온 세상이 연합하여 벌이는 군사적, 경제적 위협 속에서도 꿋꿋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선택을 하게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을 보여주는 안식일이 잇슈가 될 것이고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안식일에 예배하느냐 아니면 사단의 정신이 담긴 일요일에 예배하느냐가 표면에 들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만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이심을 보여주는 안식일을 선택하게 됩니다.
다섯째 날(목)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품성을 보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출4:31; 시33:18)
우리의 필요를 위해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임을 알기 때문에 경배하게 됩니다.(행17:25; 빌2:1-11)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의 행위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될 때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자 하는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나를 위해 최고의 길임을 확신하기에 순종하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예배가 우리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받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에 대한 우리의 반응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비 일(금)
“예배란 우리를 만드신 자 앞에서 그분의 거룩함과 우리가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인정하며 허리를 숙이는 것이다. 예배란 그분의 장엄한 임재에 대한 반응이며 그분의 통치권에 대한 굴복이다”(리처드 M. 데이비슨, 구약성경의 예배, 3)
“구속받은 자들이 일제히 다음과 같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는 하늘 공간에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7:10). ... 그 빛나는 무리들 가운데는 마치 자기 자신의 능력과 선행으로 승리한 것처럼 구원을 자기 공로에 돌리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어떤 고난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오직 모든 찬미의 내용과 모든 찬양의 주제는 구원하심이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는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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