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초대교회의 예배(질문, 대답, 부가설명)09/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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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9-09 11:00 조회7,989회 댓글1건본문
9월 17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38분
기억절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 13:1).
연구 범위: 행 1:1~11, 2:14~41, 17:15~34, 18:1~16, 고전 13장.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초대 교회는 바로 확장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고 신자가 된 사람들은 유대인들뿐이었다. 사실 이들은 복음이 오직 유대인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들은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대인 군중들을 향해 설교하고 결심을 호소하자,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다(행 2:41). 이 말씀만으로도 모든 유대인들이 다 예수님을 배격했다는 주장이 오류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초대교회를 되돌아 볼 때,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올리는 예배와 찬양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비록 시대적 상황은 크게 다르지만 초대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하였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예배를 포함하여 그들의 신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번 주 우리는 몇 가지 기사를 통해서 초대 교회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직면해야 했던 과제들을 살펴보고 교훈을 얻고자 한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말씀 선포의 영향으로 초대 교회에 성장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➋느끼기 : 고전 13장에 나오는 이타적인 사랑의 자세를 배운다.
➌행하기 : 거짓에 대한 방어책으로써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로 경배한다.
결론: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 그분이 함께하셨던 시간과 역사, 그분의 구속 사역,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미래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기초이자 우리 믿음을 지켜 주는 방패입니다.
첫째 날(일) 9월 11일
많은 “증거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질문1: 행 1:1~11을 읽어 보라. 여기서 재림, 침례, 성령, 선교에 관하여 어떤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행1:1~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해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답: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성령으로 침례 받을 것에 대하여 확약하시고 땅 끝까지 선교해야 할 것과 예수께서 친히 재림하실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셨다. 이 사실들은 성경의 모든 내용이 집약된 교훈인 듯하다. 이렇게 집약해 놓은 것은 이 내용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질문2: 특히 3절과 6절을 주목해 보라. 이 말씀에서 제자들이 진리를 더 배워야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행1:3,6]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답: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하늘나라의 일을 가르치신 사실과 그래도 제자들이 세상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것을 기대하는 질문이 더 배워야 할 상태를 나타낸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중요한 내용이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도 말씀을 배우므로 복음의 진의를 알게 된다는 교훈이다. 그 말씀이 바로 성경 내용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셨으며 그분이 부활하셨기에 승천하셨고 대제사장으로 하늘에서 봉사하시게 된 것이다. 그분은 때가 되면 다시 오실 것이다. 그때까지 제자된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 곧 생명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내용이다. 부활하신 사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분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복음이다. 사도행전에는 부활을 증거하는 사실을 10번 이상 기록하고 있고 바울은 죽은 자의 소망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했다.(행23:6) 사도행전에는 십자가 이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다. “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행4:1,2)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4:33)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행17:32) 가룟유다 대신 맛디아를 선출할 때도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1:21,22) 성경은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도 헛것이라고 말한다.(고전15:13~19) 당시의 제자들이 이 생명의 복음, 곧 부활의 복음을 확실히 증거하도록 교육을 받은 것처럼 오는날 우리도 이 부활의 생명의 복음을 확실히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을 힘 있게 증거해야 할 것이다. 예배에는 복음의 올바른 선포가 있어야 한다.
교훈: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증거와 확신이 있어야 한다.
둘째 날(월) 9월 12일
말씀을 선포함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행 2:40).
질문1: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읽어 보라(행 2:14~41). 베드로는 교리, 예언, 그리스도, 복음, 구원과 같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들을 어떻게 설명했는가? 이러한 주제들이 설교에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행2:14~41]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답: 베드로는 내내 흔들림 없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부활하신 메시야,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높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설교하였다. 그같이 짧은 말 속에 성령의 부어 주심으로부터 회개와 재림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다.
질문2: 이 예배에서 설교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행 2:41 참고)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안식일 예배를 위해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행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답: 삼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침례를 받고 제자들이 되었다.
<부가설명> 베드로가 3년을 넘게 예수님을 따라 천국복음을 배웠고,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도 40일간 천국복음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여 말씀으로 능력 있게 선포할 수 있게 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았다. 우리는 부지런히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능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요14:26) 성령의 역사로 베드로는 배운 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였다. 우리도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하여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감동하여 말씀에 굴복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도구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교훈: 말씀 선포는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설교는 놀라운 영적 결실을 거두게 된다.
셋째 날(화) 9월 13일
아레오바고에 선 바울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행 17:22).
질문1: 행 17:15~34에서 바울의 아테네 설교를 읽어 보라. 오순절의 청중들에게 했던 베드로의 설교와 아테네인들을 대상으로 한 바울의 설교는 어떻게 달랐는가?
[행17:15~34]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16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답: 22~32이 바울의 설교 내용이다. 베드로와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바울이 여기서 성경을 인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이방 시인의 글을 인용하였다. 동시에 그는 논리와 이성에 호소하였다. 그는 창조된 세상을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증거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종의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을 이용하여 천연계를 가리키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할 근거를 제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사실은 명백하게 하였다.
질문2: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무엇이 문제였는가? 왜 그것이 문제가 되었는가?
답: 바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철학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논리를 따를 마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또한 바울의 설교 내용이 그들의 심령을 찔러 쪼개지 못했던 것 같다. 교과에 있는 말대로 논리와 이성 그리고 자연 신학에 호소하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울은 그 다음에 그들에게 회개, 심판, 부활, 믿음에 필요한 가르침을 주고자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부가설명> 세상적 학문에 도취하여 있는 사람들은 성경의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아주 어려운 것 같다. 세상적 논리에 익숙하기 때문에 성경의 복음을 그 논리에 맞추어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면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아주 적절하게 말하였다.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사45:10)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존재를 증명하려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같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적 학문은 아버지가 아버지인 사실을 증명해야한다고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포하는 성경의 진리를 용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과 부활, 구원의 하나님을 선포하였다. 그들의 지식과 이해 범주에서 선포하였다. 그들은 그 선포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성에 합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배 시간에 말씀은 성경의 계시를 선포하는 것이며, 논리는 성경의 논리로 선포해야 한다. 예배에서 말씀 선포는 바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분은 계시는 분이시며 부활하신 분이시며 생명 자체이시고 만민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교훈: 이성과 논리에 호소하고 자연 신학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사람들의 회심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넷째 날(수) 9월 14일
율법에 어긋나는 예배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1).
질문: 행 18:1~16을 읽어 보라. 바울이 무엇을 어겼다고 했는가? 이는 예배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가?
[행18:1~16]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 16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
답: 유대인들이 바울이 율법을 어겼다고 주장하였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율법을 어겼다는 것이지 성경의 내용을 어겼다는 말이 아니다.
<부가설명> 교과의 저자는 전통과 형식에 사로잡힌 상태를 뜻하는 말로 설명한 것 같다. 그것은 탈무드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주장일 수도 있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바울은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을 올바르게 증거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문자에 매여 있어서 바울의 증거를 수용하지 못하고 율법을 어긴 것으로 고소하였다. 그런데 여기 율법은 어쩌면 로마 정부가 법적으로 인가하지 않은 종교를 전한다고 고소한 것일 수도 있다. 유대인들은 글라우디오 황제에 의하여 유대교를 로마 통치 지역 어디서든지 자유로이 전파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그런데 바울이 전하는 것은 유대교가 아니기 때문에 로마가 인가한 율법에 위배된다고 고소하였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의 저자의 설명대로 예배가 형식에 매이면 예배 형식이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예배는 모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교훈: 우리는 예배의 형식과 전통에 얽매임으로써 예배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와 진리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섯째 날(목) 9월 15일
사랑이 제일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질문: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언급하는 가운데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 유명한 말씀을 기록하였다. 이 장의 핵심 기별은 무엇인가? 그 기별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예배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고전13:1~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답: 하나님께 예배하는 진정한 상태는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사랑의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배당에서 순서를 갖추어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지만 그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 그 감동의 능력이 생활에서 사랑으로 승화하지 않으면 형식적인 예배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 드러났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였다.(롬8:39)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진다.(롬5:5) 성령도 사랑이시다.(롬15:30)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다. 이 사랑은 생명이다.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사람이 예수를 믿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을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낸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이다.(롬6:4) 그것이 진정한 예배이다.(롬12:1) 바울은 예배의 진수를 설파한 것이다. 우리가 이 사랑은 세상이 말하는 도덕적인 사랑으로만 이해하면 바른 이해가 아니다.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고 했다. 자기의 소유를 다 구제하고 몸을 불사르는 경지에 이를지라고 사랑이 없을 수 있다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영생의 생명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정신 없이 구제하고 희생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엄청난 사랑일지라도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훈: 훌륭한 예배를 위해서는 신자들에게 부여된 성령의 은사가 잘 활용이 되어야 하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은사는 사랑이다.
예비일(금) 9월 1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사도행적, 35~46 “오순절”, 47~56 “성령의 선물”, 201~210 “십자가를 높임”, 243~254 “고린도”, 309~322 “높은 표준에 도달하도록 부르심.”
“성결이란 황홀경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요, …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사도행적, 51).
“과거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견딘 사람들의 힘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성령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었다. 사탄은 질책과 박해로 많은 사람들을 세상 친구로부터 분리시키긴 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는 결코 끊을 수 없었다”(상동, 85).
“헌신적인 사신들은…그리스도(를)… 훼손시키는 자만적인 생각을 결코 용납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권위나 탁월성을 탐하지 아니하였다”(상동, 209).
“(바울이) 의미하는 우상숭배는 신상을 숭배하는 것만이 아니요 자신을 섬기는 것, 안일에 대한 사랑, 식욕과 정욕의 만족을 다 의미한다”(상동, 31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우리는 믿음에 대하여 어떤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에 대하여 확신을 줄 만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증거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에는 어떤 도전이 있습니까? 그런 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것을 믿어야 합니까?
※ 각 사람이 믿음의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간증해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지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가장 강한 증거로 생각한다. 성경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에서 떠나게 하려는 것이 오늘날 사단이 재림성도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닐까?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잠19:27)
➋그대가 경험했던 가장 감동적인 예배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그 예배가 특별히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요소가 그 예배를 특별하게 만들었을까요? 만약 그런 요소가 현재의 교회에 없다면 어떻게 그런 요소를 도입할 수 있을까요?
※ 이 문제도 각 사람이 대답해 볼 것이다. 예배는 예배하는 자의 마음과 인격 문제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으면 참된 예배가 될 것이다. 아무리 형식을 갖추고 경건한 모양의 예배를 드려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참된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몰: 오후 6시 38분
기억절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 13:1).
연구 범위: 행 1:1~11, 2:14~41, 17:15~34, 18:1~16, 고전 13장.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초대 교회는 바로 확장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고 신자가 된 사람들은 유대인들뿐이었다. 사실 이들은 복음이 오직 유대인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들은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대인 군중들을 향해 설교하고 결심을 호소하자,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다(행 2:41). 이 말씀만으로도 모든 유대인들이 다 예수님을 배격했다는 주장이 오류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초대교회를 되돌아 볼 때,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올리는 예배와 찬양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비록 시대적 상황은 크게 다르지만 초대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하였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예배를 포함하여 그들의 신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번 주 우리는 몇 가지 기사를 통해서 초대 교회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직면해야 했던 과제들을 살펴보고 교훈을 얻고자 한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말씀 선포의 영향으로 초대 교회에 성장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➋느끼기 : 고전 13장에 나오는 이타적인 사랑의 자세를 배운다.
➌행하기 : 거짓에 대한 방어책으로써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로 경배한다.
결론: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 그분이 함께하셨던 시간과 역사, 그분의 구속 사역,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미래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기초이자 우리 믿음을 지켜 주는 방패입니다.
첫째 날(일) 9월 11일
많은 “증거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질문1: 행 1:1~11을 읽어 보라. 여기서 재림, 침례, 성령, 선교에 관하여 어떤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행1:1~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해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답: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성령으로 침례 받을 것에 대하여 확약하시고 땅 끝까지 선교해야 할 것과 예수께서 친히 재림하실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셨다. 이 사실들은 성경의 모든 내용이 집약된 교훈인 듯하다. 이렇게 집약해 놓은 것은 이 내용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질문2: 특히 3절과 6절을 주목해 보라. 이 말씀에서 제자들이 진리를 더 배워야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행1:3,6]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답: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하늘나라의 일을 가르치신 사실과 그래도 제자들이 세상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것을 기대하는 질문이 더 배워야 할 상태를 나타낸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중요한 내용이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도 말씀을 배우므로 복음의 진의를 알게 된다는 교훈이다. 그 말씀이 바로 성경 내용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셨으며 그분이 부활하셨기에 승천하셨고 대제사장으로 하늘에서 봉사하시게 된 것이다. 그분은 때가 되면 다시 오실 것이다. 그때까지 제자된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 곧 생명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내용이다. 부활하신 사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분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복음이다. 사도행전에는 부활을 증거하는 사실을 10번 이상 기록하고 있고 바울은 죽은 자의 소망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했다.(행23:6) 사도행전에는 십자가 이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다. “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행4:1,2)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4:33)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행17:32) 가룟유다 대신 맛디아를 선출할 때도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1:21,22) 성경은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도 헛것이라고 말한다.(고전15:13~19) 당시의 제자들이 이 생명의 복음, 곧 부활의 복음을 확실히 증거하도록 교육을 받은 것처럼 오는날 우리도 이 부활의 생명의 복음을 확실히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을 힘 있게 증거해야 할 것이다. 예배에는 복음의 올바른 선포가 있어야 한다.
교훈: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증거와 확신이 있어야 한다.
둘째 날(월) 9월 12일
말씀을 선포함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행 2:40).
질문1: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읽어 보라(행 2:14~41). 베드로는 교리, 예언, 그리스도, 복음, 구원과 같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들을 어떻게 설명했는가? 이러한 주제들이 설교에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행2:14~41]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답: 베드로는 내내 흔들림 없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부활하신 메시야,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높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설교하였다. 그같이 짧은 말 속에 성령의 부어 주심으로부터 회개와 재림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다.
질문2: 이 예배에서 설교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행 2:41 참고)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안식일 예배를 위해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행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답: 삼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침례를 받고 제자들이 되었다.
<부가설명> 베드로가 3년을 넘게 예수님을 따라 천국복음을 배웠고,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도 40일간 천국복음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여 말씀으로 능력 있게 선포할 수 있게 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았다. 우리는 부지런히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능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요14:26) 성령의 역사로 베드로는 배운 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였다. 우리도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하여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감동하여 말씀에 굴복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도구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교훈: 말씀 선포는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설교는 놀라운 영적 결실을 거두게 된다.
셋째 날(화) 9월 13일
아레오바고에 선 바울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행 17:22).
질문1: 행 17:15~34에서 바울의 아테네 설교를 읽어 보라. 오순절의 청중들에게 했던 베드로의 설교와 아테네인들을 대상으로 한 바울의 설교는 어떻게 달랐는가?
[행17:15~34]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16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답: 22~32이 바울의 설교 내용이다. 베드로와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바울이 여기서 성경을 인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이방 시인의 글을 인용하였다. 동시에 그는 논리와 이성에 호소하였다. 그는 창조된 세상을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증거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종의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을 이용하여 천연계를 가리키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할 근거를 제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사실은 명백하게 하였다.
질문2: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무엇이 문제였는가? 왜 그것이 문제가 되었는가?
답: 바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철학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논리를 따를 마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또한 바울의 설교 내용이 그들의 심령을 찔러 쪼개지 못했던 것 같다. 교과에 있는 말대로 논리와 이성 그리고 자연 신학에 호소하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울은 그 다음에 그들에게 회개, 심판, 부활, 믿음에 필요한 가르침을 주고자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부가설명> 세상적 학문에 도취하여 있는 사람들은 성경의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아주 어려운 것 같다. 세상적 논리에 익숙하기 때문에 성경의 복음을 그 논리에 맞추어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면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아주 적절하게 말하였다.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사45:10)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존재를 증명하려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같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적 학문은 아버지가 아버지인 사실을 증명해야한다고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포하는 성경의 진리를 용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과 부활, 구원의 하나님을 선포하였다. 그들의 지식과 이해 범주에서 선포하였다. 그들은 그 선포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성에 합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배 시간에 말씀은 성경의 계시를 선포하는 것이며, 논리는 성경의 논리로 선포해야 한다. 예배에서 말씀 선포는 바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분은 계시는 분이시며 부활하신 분이시며 생명 자체이시고 만민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교훈: 이성과 논리에 호소하고 자연 신학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사람들의 회심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넷째 날(수) 9월 14일
율법에 어긋나는 예배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1).
질문: 행 18:1~16을 읽어 보라. 바울이 무엇을 어겼다고 했는가? 이는 예배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가?
[행18:1~16]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 16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
답: 유대인들이 바울이 율법을 어겼다고 주장하였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율법을 어겼다는 것이지 성경의 내용을 어겼다는 말이 아니다.
<부가설명> 교과의 저자는 전통과 형식에 사로잡힌 상태를 뜻하는 말로 설명한 것 같다. 그것은 탈무드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주장일 수도 있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바울은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을 올바르게 증거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문자에 매여 있어서 바울의 증거를 수용하지 못하고 율법을 어긴 것으로 고소하였다. 그런데 여기 율법은 어쩌면 로마 정부가 법적으로 인가하지 않은 종교를 전한다고 고소한 것일 수도 있다. 유대인들은 글라우디오 황제에 의하여 유대교를 로마 통치 지역 어디서든지 자유로이 전파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그런데 바울이 전하는 것은 유대교가 아니기 때문에 로마가 인가한 율법에 위배된다고 고소하였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의 저자의 설명대로 예배가 형식에 매이면 예배 형식이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예배는 모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교훈: 우리는 예배의 형식과 전통에 얽매임으로써 예배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와 진리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섯째 날(목) 9월 15일
사랑이 제일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질문: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언급하는 가운데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 유명한 말씀을 기록하였다. 이 장의 핵심 기별은 무엇인가? 그 기별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예배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고전13:1~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답: 하나님께 예배하는 진정한 상태는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사랑의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배당에서 순서를 갖추어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지만 그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 그 감동의 능력이 생활에서 사랑으로 승화하지 않으면 형식적인 예배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 드러났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였다.(롬8:39)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진다.(롬5:5) 성령도 사랑이시다.(롬15:30)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다. 이 사랑은 생명이다.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사람이 예수를 믿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을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낸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이다.(롬6:4) 그것이 진정한 예배이다.(롬12:1) 바울은 예배의 진수를 설파한 것이다. 우리가 이 사랑은 세상이 말하는 도덕적인 사랑으로만 이해하면 바른 이해가 아니다.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고 했다. 자기의 소유를 다 구제하고 몸을 불사르는 경지에 이를지라고 사랑이 없을 수 있다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영생의 생명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정신 없이 구제하고 희생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엄청난 사랑일지라도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훈: 훌륭한 예배를 위해서는 신자들에게 부여된 성령의 은사가 잘 활용이 되어야 하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은사는 사랑이다.
예비일(금) 9월 1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사도행적, 35~46 “오순절”, 47~56 “성령의 선물”, 201~210 “십자가를 높임”, 243~254 “고린도”, 309~322 “높은 표준에 도달하도록 부르심.”
“성결이란 황홀경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요, …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사도행적, 51).
“과거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견딘 사람들의 힘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성령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었다. 사탄은 질책과 박해로 많은 사람들을 세상 친구로부터 분리시키긴 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는 결코 끊을 수 없었다”(상동, 85).
“헌신적인 사신들은…그리스도(를)… 훼손시키는 자만적인 생각을 결코 용납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권위나 탁월성을 탐하지 아니하였다”(상동, 209).
“(바울이) 의미하는 우상숭배는 신상을 숭배하는 것만이 아니요 자신을 섬기는 것, 안일에 대한 사랑, 식욕과 정욕의 만족을 다 의미한다”(상동, 31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우리는 믿음에 대하여 어떤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에 대하여 확신을 줄 만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증거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에는 어떤 도전이 있습니까? 그런 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것을 믿어야 합니까?
※ 각 사람이 믿음의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간증해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지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가장 강한 증거로 생각한다. 성경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에서 떠나게 하려는 것이 오늘날 사단이 재림성도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닐까?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잠19:27)
➋그대가 경험했던 가장 감동적인 예배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그 예배가 특별히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요소가 그 예배를 특별하게 만들었을까요? 만약 그런 요소가 현재의 교회에 없다면 어떻게 그런 요소를 도입할 수 있을까요?
※ 이 문제도 각 사람이 대답해 볼 것이다. 예배는 예배하는 자의 마음과 인격 문제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으면 참된 예배가 될 것이다. 아무리 형식을 갖추고 경건한 모양의 예배를 드려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참된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댓글목록
김문영님의 댓글
김문영 작성일
목사님 건강하시지요^^
미국에서도 추석에 송편을 드시는지 모르겠네요.
가을에 한국에 오시면 한번 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