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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타성, 양보, 위기(질문, 대답, 부가설명)0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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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8-12 11:15 조회8,1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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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19분

기억절 :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연구 범위: 창 6:5, 신 12:8, 13:18, 왕상 11:1~13, 18장, 렘 17:5, 말 3:16~4:6.

1954년에 윌리엄 골딩은 <파리대왕>이라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비행기 추락 후에 무인도에 떨어진 영국 어린이들의 가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골딩은 이 소설에서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을 그리고 있다. 가장 순수하리라 여겨지는 어린이들조차 본질적으로는 부도덕하고 추악하며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그의 관점이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타락과 죄성은 기독교가 전하는 기별의 한 부분이다. 성경은 이점에 있어서 입장이 분명하다. 그런데 악이 나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지만, “무엇이 악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금주에 우리는 예배의 주제 안에서 어떤 종류의 죄악이 하나님의 백성과 인류 모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죄악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보다 우리가 그 죄악을 어떤 방식으로 허용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우리의 눈에 옳은 길을 따르다가 참예배를 양보할 수 있기에 하나님의 상세한 지시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➋느끼기 : 말씀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예배의 부패성을 인식한다.
➌행하기 : 회개, 순종, 참예배로 초청하는 엘리야의 기별에 반응한다.

결론: 우리의 의향과 하나님의 명백한 지시를 절충하려는 시도는 거짓 예배를 부릅니다. 엘리야의 기별은 우리에게 회개하고 순종하며 유일하신 참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첫째 날(일) 8월 14일

다른 관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질문: 다음의 본문을 읽어 보라. 공통점은 무엇인가? 우리가 그 공통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창 6:5, 렘 17:5, 요 2:25, 롬 3:9~12). 오늘날 어떤 사회적 요소들이 이와 같은 기본 진리를 잊게 만드는가?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렘17: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요2: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롬3:9~12]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답: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으며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내용이다. 오늘날 사회적 요소는 악한 것을 미화시키는 풍조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적인 상태를 오해하게 만든다.

<부가설명>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5:20,21) 이 말씀은 요즘 사회 풍토를 정확하게 지적하는 말씀처럼 보인다. 도덕적 가치가 완전히 전도된 상태가 아닌가.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도덕적 악으로 치닫는 문화를 미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죄를 생각나게 하는 단어들을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는다. 소위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어들을 도태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서 열거하지 못하지만 좋은 현상이기도 하지만 이런 결과가 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말들도 도태시키는 경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 결국 사람들이 도덕적 선악을 구분하기에 애매모호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악을 악으로 여기지 않게 되도록 길을 여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따르기보다는 사람들의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의 정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성경 신앙 무화를 고양시켜야 할 것이다.

교훈: 타락한 환경 속에서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살면 죄를 자연스럽게 여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죄악인지 성경을 통해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모든 사람이 죄인임
“순종을 조건으로 사람에게 약속된 불멸(不滅)은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바 되었다. 아담은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그의 후손에게 전해 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희생으로 불멸을 그들의 손에 닿는 곳에 두지 아니하셨을 것 같으면 타락한 인류에게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33).
<이것은 사망이 죄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불멸을 잃어버리고 멸절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근본적인 죄이다.>

둘째 날(월) 8월 15일

타협의 죄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같이 따르지 아니하고”(왕상 11:6).

질문: 왕상 11:1~13을 읽어 보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솔로몬으로 하여금 이런 사악한 행위를 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배도는 예배와 신앙과 이스라엘 전체 종교 제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이기사로부터 우리는 타협에 관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왕상11:1~13]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찌기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3 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4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9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12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답: 아마도 솔로몬은 자기의 지혜를 과신한 것 같아 보인다. 그가 능히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가 애굽 공주를 왕비로 맞은 것부터 성경의 원칙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왕국이 융성하게 되자 많은 이방 여인들을 비빈으로 맞았다. 그들에게 여호와 섬기는 법을 능히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들이 늙어가는 솔로몬의 마음을 여호와께로부터 돌려서 우상숭배를 허용하게 하였다. 사단은 사람의 지혜 있다는 것보다 지혜로울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임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말씀에 굴복해야 한다. 참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솔로몬은 왕자 때부터 지혜가 있었다.(왕상2:6 참고) 그랬기에 하나님께 더욱 지혜를 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를 극대화하는 은사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지혜로우므로 자기를 더럽히게 되었다. 루시퍼의 길을 잠시 따른 것이다. 루시퍼는 지혜가 충만한 자였는데 그 지혜로 자기 길을 택하였기 때문에 지혜를 더럽혔다.(겔28:17) 솔로몬은 지혜로웠기 때문에 자기 지혜를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가 우상숭배 종교를 도입하자 모든 이스라엘이 우상에게 자기를 개방하였다. 이스라엘을 삽시간에 우상숭배 국가로 타락하였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신앙 역사는 바로 솔로몬이 문을 연 우상숭배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역사가 되었다. 나는 솔로몬을 다원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앙하였다. 그러면서 또 이방 신들도 용납하였다. 어쩌면 신에 대한 신앙은 다 한 뿌리에서 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은 자기와 국가를 파멸로 이끌었다.
  우리는 솔로몬의 행장에서 오직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아무리 지혜로워도 인간의 지혜를 신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는 이름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지 않는지 살필 일이다. 특히 예배행사에 대하여 더욱 면밀히 살필 것이다. 하나님 중심인가? 아니면 인간의 감성에 맞춘 것인가? 우리는 인간의 감성과 문화적 경향이라는 우상을 교회에 세우지 않았는지?

교훈: 솔로몬은 타협의 정치를 추구했으나 그것은 그를 종교적 배도로 이끌었고, 이스라엘 전체에서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셋째 날(화) 8월 16일

거짓 예배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왕상 12:28).

질문:1 왕상 12:25~27을 읽어 보라. 예배가 인간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여기서 알 수 있는가? 여로보암이 거짓 종교를 수립하는 과정을 보라.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참 하나님께 드리는 예루살렘 예배에서 분리되고 말았다. 여로보암이 만든 새로운 예배는 참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어떤 면에서 유사하며, 동시에 어떤 면에서 여호와의 명령에 어긋나는지 주목하라.

[왕상12:25~29]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답: 예배는 예배의 대상을 찾게 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면 그분을 바르게 경배할 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예배의 정신은 정치적 권력과 충돌할 수 있다. 다음은 교과에 비교되어 있는 유사점과 다른 점이다.

1. 희생 제사를 드리며 비(非)레위인 제사장을 세웠다(31~33절).
2. 금송아지를 경배하게 했다(28절).
3. 벧엘에 제단을 만들었다(29절).
4. 단에 제단을 만들었다(29절).
5. 초막절에 버금가는 절기를 제정했다(32절).
6. 산 위에 산당을 세웠다(31절).

<부가설명> 신앙심은 정치적 권력보다 강인하다. 정치적으로 탄압해도 순교로 대응한다. 여로보암은 이런 정신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사 여호와 종교를 만들어서 참 하나님 경배를 대신하게 함으로 사람들을 속였다.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가 가리키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줄 알고 금송아지 우상을 경배하였다. 이것은 광야에서 아론이 저질렀던 허물이다. 역사를 잊어버렸는지 여로보암은 애굽에 피신해 있는 동안 애굽의 우상숭배를 잘 배우고 왔던 것 같다. 그는 아론의 사건을 역으로 이용하여 그에게 통치하라고 맡긴 백성들을 기만하였다. 자기의 왕권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온 것을 망각한 것이다. 권력 유지에 눈이 어두워져서 종교를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나라들의 군주들이 사용한 수법이다. 예배는 예배하는 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행사이다. 우리의 주인은 참으로 누구인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그분인가? 인간의 감정인가? 세상 문화인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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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거짓 예배는 참 예배와 많은 부분 유사하나 결정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난다.

넷째 날(수) 8월 17일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왕상 18:22).

질문: 열왕기상 18장을 읽어 보라. 엘리야와 거짓 선지자들의 예배 스타일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보라. 예배에 관하여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왕상 18장은 갈멜산 위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을 기록한 장이다.]
[왕상18:25~28/37,38]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 6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깐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답: 위의 기록한 성경구절이 바알 예배와(25~28) 여호와 하나님 예배의(37,38) 차이를 잘 보여준다. 바알 예배는 소란하다. 그러나 여호와 예배는 엄숙하고 조용하다.

<부가설명> 예배는 놀이가 아니다. 예배는 이미 어디서 말한 대로 예식예배와 생활예배가 있는데, 성경의 하나님께 드리는 예식예배는 엄숙하고 조용하다. 찬양이 있고 기도가 있고 말씀 선포가 있지만, 그것이 소란하거나 부산스럽지 않다. 조용한 질서와 엄숙한 기쁨이 있어야 한다. 모든 순서는 인간의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엄하심과 인자하심을 보고 느끼고 깨닫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식예배가 법당에서 염불하는 사람들의 엄숙함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지금 우리들의 예배는 문화 축제 형식으로 변모해가지 않는가? 그것은 특별 행사로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안식일 예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악기도 엄숙하고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를 유지하는 정도로 운용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가슴에 깊이 느끼도록 엄숙하지만 내면적 즐거움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그런 예식예배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바알의 예배와 참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진정한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

다섯째 날(목) 8월 18일

엘리야의 기별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8).

질문: 엘리야의 갈멜산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말 3:16~4:6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계신가?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 종말의 사건 가운데 “엘리야의 기별”이란 무슨 의미인가?(계 14:7~12 참고).
[말3:16~4: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계14:7~12]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엘리야의 사명은 참 하나님 여호와를 올바르게 경배하도록 백성을 깨우치는 사명이다. 역사의 종말에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지 않는 기독교에 대하여 엘리야의 개혁을 이루도록 하실 것을 약속하는 것이 말4장의 기별이다. 그것은 또한 심판의 기별이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계12:7~12의 세 천사의 기별과 동일하다. 오늘날 우리는 섬길 자를 올바르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에 처하여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말라기 3:16~4:6은 계12:7~13에 기록된 세 천사의 기별과 같은 내용이다. 세 천사의 기별이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라는 기별인 것처럼 말라기도 말세, 곧 심판하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창조주이신 아버지와 피조물인 아들인 인류가 그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라는 기별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판에서 합당하지 않은 자로 판결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 천사의 기별은 예배적 시각으로 말하면 예배 개혁의 기별이다.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경배한다는 기독교가 작은 뿔의 영향아래서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존재가 변경시킨 내용을 토대로 신앙하고 경배하고 있다. 심판으로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올바르게 경배하라고 호소하신다. 재림성도들은 바른 예배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바르게 예배해야 할 것이다. 예배회복의 기별을 예배하는 모습으로 드러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마지막 시대에 엘리야의 기별이 다시 한 번 외쳐질 것이다. 우리는 선과 악 사이에, 참 하나님과 거짓 신 사이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예비일(금) 8월 19일
비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선지자와 왕, 99~108 “여로보암”, 114~116 “국가적인 배도”, 119~128 “디셉 사람 엘리야”, 139~142 “단호한 견책의 음성”, 143~154 “갈멜.”

“오늘날에 성행하고 있는 배도는 선지자 엘리야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졌던 그것과 동일하다”(선지자와 왕, 170).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수많은 … 사람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알지 못하고 바알을 예배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아직도 애를 쓰고 계신다”(상동, 171).
“20세기의 유명한 설교자 A. W. 토저(Tozer)는 ‘유희의 신’에 바치는 경배를 거부한다는 내용으로 자주 설교하였다. 교회가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세상의 쇼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토저는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은 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말했다.” - A. W. 토저, 예배인가? 쇼인가?, ed. Jame L. Snyder(Camp Hill, PN: Wing Spread Publishers, 1997),
108, 10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그대가 속한 문화는 오늘날 도덕적 문제에 관하여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 현대 문화는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따라 살아가려는 사람이나 교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특히 예배 문화를 인간의 감성 위주로 진행하려는 강한 유혹을 끼친다. 예배의 중심이 사람의 감성에 있는지 하나님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에 있는 것 같다.

➋성경은 바알 숭배가 대단히 유희적이었으며 대중적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예배에 있어서 그러한 오락적 성격을 기대하도록 격려하기보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두려움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지정의를 철저히 굴복시켜야 할 것이다. 인간의 눈에 해롭지 않게 보이는 것들일지라도 말씀의 인도대로 따라가는 일에 유익하지 않다면 해롭다고 여길 줄 아는 정신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비록 더디게 보일지라도 오직 말씀의 인도대로 따라가야 할 것이다.

➌재림교회의 예배는 지난 20년간 어떻게 변했습니까? 어떻게 좋아졌으며 또는 어떻게 나빠졌습니까? 20년 뒤에 재림교회의 예배가 어떻게 변화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 가능한 한 간소한 순서를 진행하려고 하는 경향이다. 찬양예배에 강조점을 두는 것 같다. 좋아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씀 받을 마음 밭은 준비한다는 정신을 좋은 것으로 보인다. 20년 뒤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문화의 조류를 더 많이 반영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보다는 말씀대로 따라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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