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시편 속에 나타난 예배(질문, 대답, 부가설명)08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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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8-05 06:49 조회8,811회 댓글0건본문
8월 13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28분
기억절 :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1~2)
연구 범위: 시 20:3, 49장, 54:6, 73장, 78:1~8, 90:1~2, 100:1~5, 141:2.
시편으로 번역된 히브리 낱말은 “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하라”라는 어원에서 유래했다. 시편은 이스라엘 예배에서 다양하게 활용된 노래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가사는 전해지고 있지만, 그 음악은 남아 있지 않다. 처음에 편곡된 반주에 맞춰 원어로 불리는 노래를 듣는다면 어떨까?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로부터 시작해서 지은이의 개인적 고통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주제와 정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은 이스라엘 민족과 교회로 이어지는 기나긴 역사적 공동체의 일원이자 개인적인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에게도 공감을 주고 있다. 언젠가 시편에 기록되어 있는 고뇌를 겪어 보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시편 안에 표현되어 있는 소망을 붙잡는 것이 중요한다.
이번 주에 우리는 시편을 살펴보면서 그 주제들이 예배의 문제와 어떻게 관련이 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연구할 것이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시편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정서와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인 주제들을 요약한다.
➋느끼기 : 지극히 개인적인 예배 노래 가운데 격정적인 애가와 흥겨운 찬양도 있음을 인정한다.
➌행하기 : 성소를 연상케 만드는 시편의 요소들을 이용하여 창조주, 심판자, 희생양 그리고 왕을 연결시킨다.
결론: 시편은 탄원과 확신과 축복과 찬양과 감사의 생생한 언어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심령을 토로하고 있다.
첫째 날(일) 8월 7일
우리를 만드신 여호와께 경배하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2~3)
질문1: 시 90:1~2, 95:1~6, 100:1~5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시90:1,2]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95:1~6]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3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4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5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100:1~5]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답: 이 시편들의 공통점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창조주시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을 경배하고 찬양할 첫째 이유라고 밝힌다.
질문2: 시편 19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편의 핵심 기별은 무엇이며, 세상이 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우연히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이 시편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천연계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하며, 천연계의 운행법칙을 제정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활법칙을 제정하신 동일한 분이심을 가르치면 사람은 그 법도를 따라 생활할 때에 안전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오늘날 진화론이 판치는 세상에 창조주에 대한 바른 인식은 인간의 가치를 바르게 세우는데 필수적인 사상이며 세 천사의 기별의 핵심이다.
질문3: 시편 기자가 하늘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을 논하다가 갑자기 계시의 말씀으로 주제를 옮긴 점에 주목하라. 이런 비약적인 전환은 의도적인 것이다. 요 1:1~3, 골 1:16~17, 히 1:1~3을 읽어 보라. 시편 기자는 어떤 위대한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가?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골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히1:1~3]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답: 시편 19편은 창조로 세운 천연계의 법칙을 따라 모든 천체가 잘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노래하면서 사람도 하나님께서 제정한 인간의 생활법칙을 따라 생활할 때에 올바른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노래한다. 위의 성경구절들은 다 예수님이 바로 그 창조주시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법칙을 주신 분이심을 계시한 말씀들이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을 사도행전은 생명의 도라고 하였다.(행7:38)
<부가설명> 예배, 경배는 창조주께 감사와 감격으로 순복하는 것을 나타내는 예식이며 생활이다. 안식일에 교회당에 모여서 찬미하고 기도하고 설교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예배의 전부가가 아니다. 예배드리는 이유를 마음에 깊이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시는 분께 자기와 자기의 생활을 드리는 경험이다. 그래서 예배에는 헌신이 따르는 것이다. 헌신은 일상생활에서 창조주의 뜻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 예배는 예배고, 내 생활은 내 생활이고, 이런 식의 삶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며, 이것은 태초에 천연계의 법칙을 제정한 것과 같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제정한 그 길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 길로 가는 것이다. 성경은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 이다.”(렘10:23)라고 가르친다. 이 길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이다. 시19편 후반부가 바로 이 사실을 천연계의 법칙과 연계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을 벗어난 것을 성경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이라고 탄식한 것이다. 우리는 천체들이 창조주가 제정한 그 길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생명의 도를 올바르게 따라 살 때에 영생은 유지되는 것이다.
교훈: 주님은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시기 때문에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둘째 날(월) 8월 8일
성소로부터 오는 심판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시 75:2).
질문: 시편 73편의 기자가 가지고 있는 불평이 무엇인지 읽어 보라. 무슨 일이 있었기에 문제에 대한 그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는가?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와 구원의 계획에 대한 진리와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 시편에서 어떤 기별을 들어야 하는가?(단 7:9, 10, 13, 14, 25, 26).
[시73:1~27]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답: 시인은 이 세상에서 악인이 형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의인들이 고난당하는 사실을 두고 불평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갔을 때 그 진상을 알게 되었다. 결국 악인은 심히 미끄러운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우매 무지하여 짐승과 같은 자라는 것도 깨달았다. 시인은 자신을 온전히 주께 맡겼다. 그는 주님 외에는 아무도 바랄 것이 없고 주님만이 영원한 분깃이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다니엘서에는 성소가 바로 하늘에서 주님이 봉사하는 성소임을 지적한다.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하늘에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라는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고 진정한 예배와 관련하여 하늘 성소봉사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이 시인은 일반적 시각, 곧 세상 사람들이 인생을 보는 눈으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악인이 형통한 것처럼 보였다. 자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그 법도를 따라 살려고 애를 쓰는데, 고난만 닥친다. 하나님은 참 불공평한 분으로 느껴진다. 그는 용기를 가지고 이를 직설적으로 불평하였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시인을 성소로 인도하였을 것이다. 그가 성소에 들어가서 행하는 모든 봉사에서 인생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은 것이다. 그때 자기가 세상 사람들의 안목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 허물을 회개한다. 진정으로 인생의 소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오직 하늘에서 봉사하시는 주님만이 유일의 소망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진정으로 예배할 대상이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구주임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도 이 시인의 깨들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다. 예수님이 없으면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는 것은 인격적 존재를 상실한 것이다. 우리는 생명으로 존재하는 자들인가?
교훈: 공의의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지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이다.
째 날(화) 8월 9일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질문1: 시편 49편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어제의 주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이 시편의 기본적인 기별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시편 어디에서 복음을 발견할 수 있는가?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희망이 어떻게 제시되고 있는가?
[시49:1~20]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7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9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10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11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 (셀라) 14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17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답: 이 시편의 기본적 주제는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생명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돈으로는 속죄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며 애지중지하는 삶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존귀하게 창죄된 사람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자기를 짐승으로 여기는 것이다.
질문2: 시 49:7~9을 주의 깊게 보라. 주어진 정황에 미루어 볼 때,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말씀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가?
답: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이 말씀은 사람은 사람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오직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법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대속으로 되는 것이다.
<부가설명> 나는 이 시편을 진화론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창조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아메바의 후예이며 유인원의 후예라고 하여 멸망하는 짐승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자기의 진정한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정신을 드러낸다. 재물을 쌓고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여도 그것이 정말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 죽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숨 쉬고 있는 동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취한 사람도 역시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생명의 구속을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는 자는 다 사망의 인도를 받아 음부에 들어가게 된다. 음부에서는 소멸되어 완전히 존재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사람은 마땅히 이 사실을 깨닫고 구속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께 진정으로 경배해야 할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시며 생명이시며 영원히 존재하게 하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누리는 물질의 풍요를 신뢰하지 말고 대신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넷째 날(수) 8월 10
예배와 성소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2).
질문1: 위 말씀(시 141:2)에서 어떤 비유가 사용되었는가? 이 말씀이 가리키려는 것은 무엇인가?
[시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답: 이 말씀은 성소봉사에서 분향하는 것과 제사하는 것으로 기도를 비유하였다. 우리의 예배가 성소봉사의 의미를 행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질문2: 시 40:6~8과 히 10:1~13을 읽어 보라. 바울은 시 40:8을 어떻게 희생제도와 연결시키고 있는가?
[시40:6~8]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히10:1~13]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답: 주의 뜻을 행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는 것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속죄하고 거룩하게 하며 원수를 밟을 때까지 온전하게 하신다고 설명하였다.
<부가설명> 속죄는 살아 있는 사람이 율법을 범한 사실에 대한 속죄 이전에 아담 안에서 이미 죽은 사실에 대한 속죄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을 산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신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여기신다.(고전15:22, 마8:21,22) 이 죽은 자들이 율법을 지켜도 죽은 자요 지키지 않아도 죽은 자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기기 때문에 의롭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이 그렇고(마19:20) 기도 비유 중에 나온 바리새인이 그랬다. 그는 자기가 세리와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고 하였다.(눅18:11,12) 바울은 사울일 때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다고 고백하였다.(빌3:6) 유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사실은 바울이 로마 10:1~4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그렇게 철저히 지키고 율법의 의로나 도덕적 행위로 흠이 없어도 그것이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데서 생명으로 옮겨주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자의 행위는 결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주가 필요한 것이다. 구주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분이시다. 아담 안에서 죽은 그것을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서 처리하시고 부활하여서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죽은 자들이 예수 안에서 살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을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요5:24) 예수님의 속죄는 이것을 행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망에서 속하여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 시49편은 이 사상을 나타낸다.
교훈: 성소 봉사는 예배의 중심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십자가의 예수님과 하늘 성소에 일하시는 그분의 사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섯째 날(목) 8월 11일
우리가 잊지 않도록!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시 78:6~7).
질문: 시 78:1~8을 읽어 보라.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역사를 기억하기 바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신 6:6~9, 고전 10:11 참고)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과 큰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원칙을 우리의 상황과 경험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시78:1~8]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3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6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7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8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신6:6~9]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고전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답: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여 후생들이 전대의 잘못에 빠지지 않는 교훈을 삼기 바라시기 때문이다.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므로 영생의 복락에 이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역사는 은혜의 기간을 주신 시간 세계의 기록이다.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을 영원을 위하여 활용하든지, 이 세상의 육체의 생명의 번영과 영예를 위하여 사용하든지 할 수밖에 없다. 선조들이 허락된 시간 안에서 허물지고 그릇된 삶을 보였으면 후대는 그것을 거울삼아 그런 허물에 빠지지 않도록 살아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바른 삶으로 영원을 위한 생활의 기록을 남겼으면 후대는 더욱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삶을 이루는 본을 삼아야 한다. 이 세상의 시간을 소비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번만 그 시간을 지나간다. 한 번만 지나간 그 시간의 연속 속에 행한 생활의 상태를 기록한 것이 역사이다. 국가의 역사가 있고, 어떤 단체의 역사도 있고, 개인의 역사도 있다. 어떤 역사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준하여 그것을 살피고 후대를 사는 사람들이 거울을 삼아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은 영생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경험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말씀 선포는 예배의 아주 중요한 요소로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기억하게 하며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교육시키는 기초가 된다.
예비일(금) 8월 1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교육, 159~168 “시와 노래”, 교회증언 8권, 107~115 “망각.”
“시편은 성경의 고유한 목적을 성취하고 있다.… 성서 속에서 시편은 이스라엘 역사의 심장고동과도 같다. 이 기도의 책에서 언약의 백성은 하늘로 가는 계단을 발견한다. 시편이 취급하는 영역은 인간의 가장 깊은 좌절과 고통에서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는 최상의 기쁨에까지 이른다. 애가와 절망적인 울부짖음이 감사와 찬양의 노래와 교차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교통이 있기 때문에 모든 시대에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은 히브리 성경 가운데 시편을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뿐 아니라 시편은 하나님의 심중을 드러낸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책에 기록된 자신의 인격과 행위에 관한 직접적인 계시에 대하여 그의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하기를 바라시는지 보여 주는 영감의 예증이다.” - 한스 K. 라론델(Hans K. LaRondelle), 시편에 나타난 구속, (Berrien Springs, MI: First Impressions, 1983), 3, 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우리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궁극적이고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우리가 공의와 심판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까요? 현재 공의를 구하는 것과 미래에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림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공의는 집행되고 사랑을 극대화되어 제시되었다. 누구든지 이 사랑을 거절하면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자신이 당해야 한다. 그것이 공의가 개인에게 집행되는 상태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 그래야 극대화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 이유이다.
➋예배와 형식에 관하여 수요일 교과의 문제를 더 심도 있게 토의해 보십시오. 어떻게 음악, 설교, 순서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상징을 그 이상으로 취급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예배에서 이런 위험성을 막을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 유대인은 상징으로 주신 성소제도와 제사제도와 절기제도를 실제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지만 예수님께 가지는 않았다.(요5:39,40) 예배 순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순서 그 자체를 챙기느라고 목적인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순서가 우상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이 우상이 되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성화를 목적으로 삼을 때 성화도 우상이 될 수 있다. 모든 초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유대인은 율법의 중심이며 목적이신 예수님을 놓쳐버리고 율법의 문자에 빠져버렸다. 우리는 말씀이 우리 삶을 통하여 육신이 되는 경험에 이르도록 자신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
일몰: 오후 7시 28분
기억절 :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1~2)
연구 범위: 시 20:3, 49장, 54:6, 73장, 78:1~8, 90:1~2, 100:1~5, 141:2.
시편으로 번역된 히브리 낱말은 “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하라”라는 어원에서 유래했다. 시편은 이스라엘 예배에서 다양하게 활용된 노래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가사는 전해지고 있지만, 그 음악은 남아 있지 않다. 처음에 편곡된 반주에 맞춰 원어로 불리는 노래를 듣는다면 어떨까?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로부터 시작해서 지은이의 개인적 고통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주제와 정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은 이스라엘 민족과 교회로 이어지는 기나긴 역사적 공동체의 일원이자 개인적인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에게도 공감을 주고 있다. 언젠가 시편에 기록되어 있는 고뇌를 겪어 보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시편 안에 표현되어 있는 소망을 붙잡는 것이 중요한다.
이번 주에 우리는 시편을 살펴보면서 그 주제들이 예배의 문제와 어떻게 관련이 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연구할 것이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시편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정서와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인 주제들을 요약한다.
➋느끼기 : 지극히 개인적인 예배 노래 가운데 격정적인 애가와 흥겨운 찬양도 있음을 인정한다.
➌행하기 : 성소를 연상케 만드는 시편의 요소들을 이용하여 창조주, 심판자, 희생양 그리고 왕을 연결시킨다.
결론: 시편은 탄원과 확신과 축복과 찬양과 감사의 생생한 언어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심령을 토로하고 있다.
첫째 날(일) 8월 7일
우리를 만드신 여호와께 경배하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2~3)
질문1: 시 90:1~2, 95:1~6, 100:1~5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시90:1,2]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95:1~6]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3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4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5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100:1~5]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답: 이 시편들의 공통점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창조주시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을 경배하고 찬양할 첫째 이유라고 밝힌다.
질문2: 시편 19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편의 핵심 기별은 무엇이며, 세상이 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우연히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이 시편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천연계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하며, 천연계의 운행법칙을 제정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활법칙을 제정하신 동일한 분이심을 가르치면 사람은 그 법도를 따라 생활할 때에 안전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오늘날 진화론이 판치는 세상에 창조주에 대한 바른 인식은 인간의 가치를 바르게 세우는데 필수적인 사상이며 세 천사의 기별의 핵심이다.
질문3: 시편 기자가 하늘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을 논하다가 갑자기 계시의 말씀으로 주제를 옮긴 점에 주목하라. 이런 비약적인 전환은 의도적인 것이다. 요 1:1~3, 골 1:16~17, 히 1:1~3을 읽어 보라. 시편 기자는 어떤 위대한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가?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골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히1:1~3]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답: 시편 19편은 창조로 세운 천연계의 법칙을 따라 모든 천체가 잘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노래하면서 사람도 하나님께서 제정한 인간의 생활법칙을 따라 생활할 때에 올바른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노래한다. 위의 성경구절들은 다 예수님이 바로 그 창조주시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법칙을 주신 분이심을 계시한 말씀들이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을 사도행전은 생명의 도라고 하였다.(행7:38)
<부가설명> 예배, 경배는 창조주께 감사와 감격으로 순복하는 것을 나타내는 예식이며 생활이다. 안식일에 교회당에 모여서 찬미하고 기도하고 설교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예배의 전부가가 아니다. 예배드리는 이유를 마음에 깊이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시는 분께 자기와 자기의 생활을 드리는 경험이다. 그래서 예배에는 헌신이 따르는 것이다. 헌신은 일상생활에서 창조주의 뜻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 예배는 예배고, 내 생활은 내 생활이고, 이런 식의 삶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며, 이것은 태초에 천연계의 법칙을 제정한 것과 같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제정한 그 길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 길로 가는 것이다. 성경은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 이다.”(렘10:23)라고 가르친다. 이 길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이다. 시19편 후반부가 바로 이 사실을 천연계의 법칙과 연계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을 벗어난 것을 성경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이라고 탄식한 것이다. 우리는 천체들이 창조주가 제정한 그 길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생명의 도를 올바르게 따라 살 때에 영생은 유지되는 것이다.
교훈: 주님은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시기 때문에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둘째 날(월) 8월 8일
성소로부터 오는 심판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시 75:2).
질문: 시편 73편의 기자가 가지고 있는 불평이 무엇인지 읽어 보라. 무슨 일이 있었기에 문제에 대한 그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는가?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와 구원의 계획에 대한 진리와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 시편에서 어떤 기별을 들어야 하는가?(단 7:9, 10, 13, 14, 25, 26).
[시73:1~27]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답: 시인은 이 세상에서 악인이 형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의인들이 고난당하는 사실을 두고 불평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갔을 때 그 진상을 알게 되었다. 결국 악인은 심히 미끄러운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우매 무지하여 짐승과 같은 자라는 것도 깨달았다. 시인은 자신을 온전히 주께 맡겼다. 그는 주님 외에는 아무도 바랄 것이 없고 주님만이 영원한 분깃이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다니엘서에는 성소가 바로 하늘에서 주님이 봉사하는 성소임을 지적한다.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하늘에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라는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고 진정한 예배와 관련하여 하늘 성소봉사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이 시인은 일반적 시각, 곧 세상 사람들이 인생을 보는 눈으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악인이 형통한 것처럼 보였다. 자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그 법도를 따라 살려고 애를 쓰는데, 고난만 닥친다. 하나님은 참 불공평한 분으로 느껴진다. 그는 용기를 가지고 이를 직설적으로 불평하였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시인을 성소로 인도하였을 것이다. 그가 성소에 들어가서 행하는 모든 봉사에서 인생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은 것이다. 그때 자기가 세상 사람들의 안목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 허물을 회개한다. 진정으로 인생의 소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오직 하늘에서 봉사하시는 주님만이 유일의 소망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진정으로 예배할 대상이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구주임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도 이 시인의 깨들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다. 예수님이 없으면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는 것은 인격적 존재를 상실한 것이다. 우리는 생명으로 존재하는 자들인가?
교훈: 공의의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지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이다.
째 날(화) 8월 9일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질문1: 시편 49편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어제의 주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이 시편의 기본적인 기별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시편 어디에서 복음을 발견할 수 있는가?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희망이 어떻게 제시되고 있는가?
[시49:1~20]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7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9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10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11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 (셀라) 14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17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답: 이 시편의 기본적 주제는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생명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돈으로는 속죄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며 애지중지하는 삶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존귀하게 창죄된 사람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자기를 짐승으로 여기는 것이다.
질문2: 시 49:7~9을 주의 깊게 보라. 주어진 정황에 미루어 볼 때,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말씀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가?
답: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이 말씀은 사람은 사람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오직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법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대속으로 되는 것이다.
<부가설명> 나는 이 시편을 진화론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창조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아메바의 후예이며 유인원의 후예라고 하여 멸망하는 짐승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자기의 진정한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정신을 드러낸다. 재물을 쌓고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여도 그것이 정말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 죽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숨 쉬고 있는 동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취한 사람도 역시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생명의 구속을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는 자는 다 사망의 인도를 받아 음부에 들어가게 된다. 음부에서는 소멸되어 완전히 존재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사람은 마땅히 이 사실을 깨닫고 구속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께 진정으로 경배해야 할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시며 생명이시며 영원히 존재하게 하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누리는 물질의 풍요를 신뢰하지 말고 대신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넷째 날(수) 8월 10
예배와 성소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2).
질문1: 위 말씀(시 141:2)에서 어떤 비유가 사용되었는가? 이 말씀이 가리키려는 것은 무엇인가?
[시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답: 이 말씀은 성소봉사에서 분향하는 것과 제사하는 것으로 기도를 비유하였다. 우리의 예배가 성소봉사의 의미를 행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질문2: 시 40:6~8과 히 10:1~13을 읽어 보라. 바울은 시 40:8을 어떻게 희생제도와 연결시키고 있는가?
[시40:6~8]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히10:1~13]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답: 주의 뜻을 행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는 것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속죄하고 거룩하게 하며 원수를 밟을 때까지 온전하게 하신다고 설명하였다.
<부가설명> 속죄는 살아 있는 사람이 율법을 범한 사실에 대한 속죄 이전에 아담 안에서 이미 죽은 사실에 대한 속죄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을 산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신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여기신다.(고전15:22, 마8:21,22) 이 죽은 자들이 율법을 지켜도 죽은 자요 지키지 않아도 죽은 자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기기 때문에 의롭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이 그렇고(마19:20) 기도 비유 중에 나온 바리새인이 그랬다. 그는 자기가 세리와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고 하였다.(눅18:11,12) 바울은 사울일 때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다고 고백하였다.(빌3:6) 유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사실은 바울이 로마 10:1~4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그렇게 철저히 지키고 율법의 의로나 도덕적 행위로 흠이 없어도 그것이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데서 생명으로 옮겨주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자의 행위는 결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주가 필요한 것이다. 구주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분이시다. 아담 안에서 죽은 그것을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서 처리하시고 부활하여서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죽은 자들이 예수 안에서 살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을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요5:24) 예수님의 속죄는 이것을 행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망에서 속하여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 시49편은 이 사상을 나타낸다.
교훈: 성소 봉사는 예배의 중심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십자가의 예수님과 하늘 성소에 일하시는 그분의 사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섯째 날(목) 8월 11일
우리가 잊지 않도록!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시 78:6~7).
질문: 시 78:1~8을 읽어 보라.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역사를 기억하기 바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신 6:6~9, 고전 10:11 참고)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과 큰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원칙을 우리의 상황과 경험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시78:1~8]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3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6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7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8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신6:6~9]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고전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답: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여 후생들이 전대의 잘못에 빠지지 않는 교훈을 삼기 바라시기 때문이다.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므로 영생의 복락에 이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역사는 은혜의 기간을 주신 시간 세계의 기록이다.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을 영원을 위하여 활용하든지, 이 세상의 육체의 생명의 번영과 영예를 위하여 사용하든지 할 수밖에 없다. 선조들이 허락된 시간 안에서 허물지고 그릇된 삶을 보였으면 후대는 그것을 거울삼아 그런 허물에 빠지지 않도록 살아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바른 삶으로 영원을 위한 생활의 기록을 남겼으면 후대는 더욱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삶을 이루는 본을 삼아야 한다. 이 세상의 시간을 소비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번만 그 시간을 지나간다. 한 번만 지나간 그 시간의 연속 속에 행한 생활의 상태를 기록한 것이 역사이다. 국가의 역사가 있고, 어떤 단체의 역사도 있고, 개인의 역사도 있다. 어떤 역사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준하여 그것을 살피고 후대를 사는 사람들이 거울을 삼아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은 영생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경험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말씀 선포는 예배의 아주 중요한 요소로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기억하게 하며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교육시키는 기초가 된다.
예비일(금) 8월 1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교육, 159~168 “시와 노래”, 교회증언 8권, 107~115 “망각.”
“시편은 성경의 고유한 목적을 성취하고 있다.… 성서 속에서 시편은 이스라엘 역사의 심장고동과도 같다. 이 기도의 책에서 언약의 백성은 하늘로 가는 계단을 발견한다. 시편이 취급하는 영역은 인간의 가장 깊은 좌절과 고통에서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는 최상의 기쁨에까지 이른다. 애가와 절망적인 울부짖음이 감사와 찬양의 노래와 교차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교통이 있기 때문에 모든 시대에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은 히브리 성경 가운데 시편을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뿐 아니라 시편은 하나님의 심중을 드러낸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책에 기록된 자신의 인격과 행위에 관한 직접적인 계시에 대하여 그의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하기를 바라시는지 보여 주는 영감의 예증이다.” - 한스 K. 라론델(Hans K. LaRondelle), 시편에 나타난 구속, (Berrien Springs, MI: First Impressions, 1983), 3, 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우리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궁극적이고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우리가 공의와 심판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까요? 현재 공의를 구하는 것과 미래에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림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공의는 집행되고 사랑을 극대화되어 제시되었다. 누구든지 이 사랑을 거절하면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자신이 당해야 한다. 그것이 공의가 개인에게 집행되는 상태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 그래야 극대화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 이유이다.
➋예배와 형식에 관하여 수요일 교과의 문제를 더 심도 있게 토의해 보십시오. 어떻게 음악, 설교, 순서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상징을 그 이상으로 취급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예배에서 이런 위험성을 막을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 유대인은 상징으로 주신 성소제도와 제사제도와 절기제도를 실제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지만 예수님께 가지는 않았다.(요5:39,40) 예배 순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순서 그 자체를 챙기느라고 목적인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순서가 우상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이 우상이 되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성화를 목적으로 삼을 때 성화도 우상이 될 수 있다. 모든 초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유대인은 율법의 중심이며 목적이신 예수님을 놓쳐버리고 율법의 문자에 빠져버렸다. 우리는 말씀이 우리 삶을 통하여 육신이 되는 경험에 이르도록 자신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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