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과 신앙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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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10-04-29 12:38 조회5,533회 댓글0건본문
5월 8일(안식일) 일몰:오후 7시 28분
기 억 절: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 뢰함이니이다”(사 26:3).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창 3:8~10, 시 118:6, 잠 17:22, 마 6:27~34, 히 13:6, 요일 4:18.
| 중심 사상 |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존의 질병과는 다른 증세를 가진 한 남자가 의사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악령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의사는 환자 앞에 두 개의 시험관을 놓고 하나에는 과산화수소수를 다른 하나에는 순수한 물을 부었다. 의사는 환자의 피를 뽑아 과산화수소수에 넣었다. 그랬더니 거품이 일고 부글부글 소리가 났다. 환자는 그것이 악령의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환자에게 단순한 염수를 주사하며, 이것이 악령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의사는 다시 환자의 피를 뽑아 이번에는 물이 담긴 시험관에 넣었다. 거품도 소리도 없었다. 악령이 사라진 증거처럼 보였다. 환자는 치료받은 느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비슷한 증세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왔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생각이 신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이번 주 교과의 주제는 정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핵심본문| 사26:3
|학습 목표|
1. 깨닫기 :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진시킬 뿐 아니라 건강한 삶에도 유익함을 이해한다.
2. 느끼기 : 하나님의 능력, 사랑, 돌봄, 신실함을 감지하는 영적 감각을 기른다.
3. 행하기 : 약속한 것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 한다.
학습개요
01. 깨닫기: 믿음의 연결
A.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전하는 성경의 이야기들은 그분께서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반드시 행하시는 분임을 증거해 준다.
B. 왜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 마음에 그리는 것이 중요한가?
02. 느끼기: 평화, 확신 그리고 소망
A. 평화와 확신과 소망은 믿음의 결과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 해 일하신다. 이런 믿음의 결과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B. 어떤 종류의 사고가 우리를 돌보시겠다고 하는 그분의 약속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가?
03. 행하기: 믿음의 사역
A.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대한 확신만을 가지고 믿음 없이 일하는 것 이 가능한가?
B.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는가?
요점: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우리를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함으로 그분과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 결과로 우리의 몸과 마음 이 건강해진다.
일요일(5월 2일) 두려움의 요인
얼마 동안 미국 TV 시청자들은 “공포의 요인(Fear Factor)”이라는 TV 프로그램 에 빠져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는 다양한 공포 상황에 투입된다. 전갈이나 쥐 로 가득 찬 구덩이에 앉는 것부터 불타는 건물을 통과하여 걷는 등 시청자들은 그 들이 공포에 어떻게 잘 대처하는지 보게 된다.
물론 누구도 억지로 공포를 조장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여러 가지 두려움의 요인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는 인간의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주요 요인은 공포이며, 정부를 구성하는 주된 목적은 자신을 해할지 모르는 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스스로 얼마나 안전하게 느끼는지 상관없이 누구나 두려움을 야기하는 문제에 부딪혀야 한다. 하지만 두려움 자체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1. 어떤 방식으로 두려움이 우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사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답: 두려움의 감정은 여러 가지 잠재적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하도록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때로 실존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할 대상은 영혼을 멸하실 수 있는 분이다.
두려움은 인간이 위협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정서이다. 이런 정서와 본능은 사고, 범죄, 질병, 테러와 전쟁이 만연한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다.
2. 두려움을 처음 언급한 성경의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창 3:8~10.
창3:8~10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답: 죄를 지은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우리를 두렵게 만든 것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종종 사라지지 않은 두려움에 시달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두려움은 매우 긴장된 감정이기 때문에 우리 신체에 상당히 강력한 물리적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두려움은 단순히 정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매우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어디에 살든 어떤 위험에 처해 있든지 두려움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우리는 주님이 과거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방법과 그분의 가르침을 잊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신뢰를 주님께 둔다면 우리는 지금 강한 백성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강력한 진리를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162)
<부가설명>두려움
김 명호
사노라면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리고
바깥출입 조심한다.
아무것도 증거된 것 없는데
점쟁이 점괘를 따라
막연하게
정말 막연하게
두려워한다.
세상이 그저 무섭고
세월이 두려우니까
증명된 일 없는 점괘가
공포심을 부채질하고
두려움에 우겨 싸여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막연한 공갈이
공포의 거인으로
압박하는 세상이다.
오늘은
안전하려나?
빠끔히
문을 열고
두려움에 질린 눈망울로
밖을 내다본다.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먹고 두려워한 것은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곧 사망의 공포가 두려움의 근원이다. 온갖 두려움은 바로 이 사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는 마귀이다.(히2:14) 그러므로 두려움의 뿌리는 사단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셨다. 십자가에서 이기셨다. 이 말은 사망을 정복하셨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이 이김에 삼킨 것을(고전15:54) 확증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요8:51) 그럴지라도 그리스도인이 현실적 난관에 부딪히면 두려워한다. 그럴수로 우리는 예수님을 피난처로 삼는 믿음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가 두려움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월요일(5월 3일) 우주에게 말하는 남자
어떤 남자가 우주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내가 여기 존재하오!” 그리고 우주에게 다시 대답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안에 복종심을 만들지는 않았다오.” - 스티번 크레인
1. 위의 시를 읽으십시오. 어떤 내용의 시입니까? 우리는 재림신자로서 이런 생각과 어떻게 다른 우주관을 가져야 합니까? 관점의 차이가 생기는 주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 인간 존재와 신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한 시이다. 우주의 기원도, 인간의 정신 작용도 다 우연한 물질적 반응의 결과라는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우주가 하나님의 의도적인 창조의 결과이며,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내재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잠시 동안 세상에 하나님이나 창조주, 또는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한 존재가 없다고 가정해 보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고도로 진보한 유인원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결국 우리의 행복에 대하여 전혀 걱정도 관심도 없는 비인격적인 힘에 의하여 우리의 운명이 좌우된다면 이 얼마나 허망한 세상인가?
2. 아래의 성경절을 찾아보십시오. 두려움이 몰려올지라도 이 말씀에서 그대는 어떤 희망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시 118:6, 잠 3:5~6, 눅 12:6~7, 롬 8:38~39, 히 13:6, 딤후 1:7, 요일 4:18.
시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잠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히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답: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 118:6)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 12:7)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끔찍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우주의 배경과 배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하여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마음속으로 희망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두려워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대신 이 말은 우리가 그런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믿음으로 전진하라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기도하고 그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우리는 받게 될 것이다. 이 믿음은 칠흑 같은 구름을 뚫고 의기소침하여 실의에 빠진 영혼에게 빛과 소망을 준다. 당혹함과 근심스런 두려움, 악한 생각 등은 이러한 믿음과 신뢰가 없기 때문에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온전히 신뢰할 때에 그 백성들을 위하여 큰일을 하실 것이다.”(교회증언 2권, 139)
<부가설명>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아파서 안식일에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출석할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기 때문에 아픈 아이를 간호하기 위하여 집에 함께 머물 수 없었다. 아이가 칭얼대며 말한다. “엄마, 나 집에 혼자 있기 싫어.” “그래도 어쩌니 아빠가 목사님이신데, 엄마도 같이 가야지, 집에 너하고 있을 수가 없잖니.” “흥, 그래도 혼자 있기 싫어.” 아빠가 말했다. “얘야, 예수님이 계시잖니.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혼자가 아니야.” 그때 딸은 야무진 소시로 대답했다. “예수님은 안 보이는데 뭐.”
우리들의 심리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도 보이는 것을 원한다. 현실적인 난관을 만났을 때 당장 보이는 어떤 조치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쉽게 놓이지 못한다. 그런데 성경이나 예언의 신의 증언은 그럴 때 믿음으로 이기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견디라고 한다. 우리는 전적인 신뢰로 이런 믿음을 행사하도록 훈련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며, 천사들의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지키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신앙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화요일(5월 4일) 믿음의 힘
1.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이 성경 절은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답: 정신과 육체는 밀접하게 교감하고 있으며,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 건강이 좌우될 수 있다.
어린 소년 마이클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교사가 그를 방문하여 학교 숙제를 내주었다. 교사는 “마이클, 여기 동사와 부사에 관한 수업 내용이 있다. 열심히 해라.”고 말했다. 교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소용없는 짓인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아이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소생할 가망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아이는 급속도로 호전되었다. 이전에는 경과가 좋지 않아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었는데, 상황이 급변하여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학교 숙제가 그에게 큰 변화를 준 것일까?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죽어가는 아이에게 동사와 부사에 관한 숙제를 내주지는 않았을 것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과 태도는 우리의 몸과 아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둘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과학에서도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 둘이 서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인정받고 있다. 그러한 인식은 우리의 건강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사랑과 선하심을 신뢰함으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곳은 바로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진실로 알게 될 때, 우리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진 적이 있지 않은가! 종교적인 믿음이 건강에 도움을 준 사례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일반인들보다 장수하며, 우울증에 강하고, 충격적인 사건에도 감정을 잘 조절한다는 사례를 조사해 보라. 우리가 하나님의 초자연 적인 치료의 능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항상 일어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믿음은 신자에게 평화와 확신과 소망을 줌으로 정신적 태도에 변화를 일으키고 우리의 건강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쁜 마음은 약보다 훨씬 좋다. 왜냐하면 약은 종종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믿음이 자아를 형성함
“의무를 잘 감당했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제공해 준데 대한 만족감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가볍고 기뻐질 때, 즐겁고 고무적인 힘이 온몸에 새 생명을 가져다준다. ... 건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쏟은 나머지 자아(自我)를 잊어버릴 것 같으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 주님의 명령을 따를 것 같으면, 그들은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는 선지자의 약속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치료봉사, 257)
<부가설명>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감각에 느껴지기 때문에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믿음이기보다는 현실이다. 믿음은 현재의 사정 너머에 있는 것을 보는 눈이요 감각이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약속을 읽는다. 그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 결단이 필요하다. 믿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마다 예수님 편을 택하는 결단이다. 그렇게 할 때 부활의 생명을 보증으로 영원을 약속한 것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할 것이다.
교훈: 육체와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심으로 충만한 마음은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
수요일(5월 5일) 스트레스 풀기
1.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어떻게 하면 이런 약속들을 주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까? 어떤 태도나 행동들이 그대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듭니까?
답: 약속을 주장하는 가장 큰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확신이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이 임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당면한 가장 큰 건강의 문제는 스트레스이다. 정신적 충격은 삶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삶의 주변에서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매일의 압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의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이 진료하는 환자들의 90%가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과학도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특정 호르몬이 분비되어 인체의 여러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장기간 동안 이런 호르몬의 영향으로 기관들이 약화되면, 질병에 더욱 취약하게 된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는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심박동을 강하고 빠르게 만들어서 심계항진증(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어떤 스트레스 호르몬은 혈관을 수축시켜 고혈압의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는 과호흡증후군과 같은 짧고 빠른 호흡을 야기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위의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이 위장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는 혈당을 증가시키는데, 그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은 당뇨병에 걸릴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또한 숙면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전반적인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최전방에서 질병을 막아주는 면역체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록은 끝이 없지만, 요점은 이것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신앙은 그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개인적으로 알고 경험하면, 마음에 평안을 얻고 스트레스와 그것으로 비롯된 나쁜 결과들이 상당히 해소되기 때문이다.
계발되어야 할 믿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얻어진 힘, 다시 말해 마음을 사려 깊고 조심성 있는 마음으로 훈련시키는 꾸준한 노력과 연합된 힘은 사람을 매일의 의무를 위하여 준비시키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마음을 평안하게 지켜 준다.”(산상보훈, 85)
<부가설명> 스트레스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삶의 현장에는 쉼이 없는 자극이 있다. 우리는 이런 자극이 전혀 없는 환경을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자극을 어떻게 반응하는가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바로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원칙에 의하여 반응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성경의 약속을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훈련되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잘 보자. 그것은 다 감정적인 것이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것들이 다 감정적인 상태가 아닌가. 성품이라는 것은 감정을 예수님의 감정처럼 변한 것이다.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것이 바로 감정의 대처이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대처하는 것이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이룰 수 있다는 약속을 인하여 감사하자.
교훈: 스트레스는 건강에 가장 위험한 요소이며, 신앙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목요일(5월 6일) 믿음과 기적적인 치유
복음을 읽어 보면 예수님의 사역은 상당부분 기적적인 치유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병든 자, 눈먼 자, 죽어가는 자, 심지어 이미 죽은 자까지 주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치유를 받았다. 그런데 많은 경우 치유의 전제조건은 믿음이었다.(마 9:2, 22, 28~29, 15:28)
나사렛에서는 불신이 치료의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마 13:58, 막 6:5~6) 한번은 제자들이 치유에 실패한 적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7:14~20)
믿음이 기적적인 치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기도로 치유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때, 그것을 환자의 믿음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믿음과 치유에 관하여 지극히 표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❶ 아래 성경 절에서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사람들을 고친 사건들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들은 치유를 받은 사람들의 믿음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이런 예들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마 12:9~13, 눅 13:11~13, 14:2~4, 22:47~52.
마12:9~13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눅13:11~13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눅14:2~4 주의 앞에 고창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눅22:47~52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의 앞에 서서 와서 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49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50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답: 기적적인 치유의 절대적인 요소는 환자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이다.
위에 제시된 본문 가운데 치유된 자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언급은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기적적인 치유를 불러오는 믿음의 역할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표된 믿음이 항상 절대적인 요소가 아님을 보여 줄 뿐이다.
사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주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에 의해 치유가 일어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치유가 된다. 우리는 그때 하나님의 손이 이런 과정들을 통해 병자에게 임하셨음을 믿게 된다. 한편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끝없이 발생하는 설명할 수 없는 재난들은 타락한 세계의 일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신도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믿음은 삶을 변화시킴
“인간의 힘이 실패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겠다고 느낀다. 그리고 우리의 자비하신 하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심령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병이 들었을 때에도 건강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303)
<부가설명> 의사에게 가거나, 약을 먹거나 치료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이다. 은혜의 시기가 지나면 치료되는 일이 없다. 일곱 재앙의 첫 재앙이 종기 재앙인데, 그것은 치료되지 않는 질병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거두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 자체로 병이 나았고, 의사의 치료행위 자체로 병이 나은 것으로 생각한다. 나타난 현상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치료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사실을 간과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회복과 치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분이 공급하시는 생명력과 치유하시는 은혜와 자비로 인하여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고 매사에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생활의 다반사에서 이것을 훈련해야 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돌보시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가 살며 기동하며 있는 것이다. 아멘.
교훈: 믿음은 치유의 조건이 아니라 목적이다. 우리의 질병이 치료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 속에서 우리는 안전하다.
금요일(5월 7일)
“참 과학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그 둘은 다 같이 창시자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둘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판명될 것이다. 천연계에서나 계시에서나 간에 진리는 그 모든 표현에 있어서 그 자체가 조화를 이룬다.”(교회증언 8권, 258, 참고자 료: 치료봉사, 462,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신학요람 12권, 751~783)
“정신과 육체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한쪽이 영향을 받으면 다른 편이 반응을 일으킨다. 정신의 상태는 신체 조직의 건강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옳은 일을 하고 남을 행복하게 함으로 마음에 자유와 행복감이 넘칠 때 이것은 온 신체 조직에 즐거움을 창조하여 혈액 순환을 더욱 활발하게 하며 몸 전체를 강하게 한다. 하나님의 축복은 치료제이다. 남을 유익하게 하는 일을 많이 하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과 생애에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된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34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치료에 의학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우리가 의술을 통해 건강과 치유를 얻고자 한다면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까?
* 치료 의학은 하나님이 만든 신체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서 건강 법칙을 따라 신체를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잘 연구한 의사들의 손을 거쳐 건강 질서를 바르게 세우는 것은 믿음으로 하는 일이다.
2.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건강이 회복된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봅시다.
* 각 학생들이 서로 나눌 것이다. 매일 살아가는 힘이나 생명력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겠는가.
3. 그대의 교회에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는 개인적으로 혹은 같은 교과반 원으로서 어떻게 그의 치유를 도울 수 있습니까?
* 우선 그를 위하여 기도하며 사랑을 나누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예언의 신의 증언에 있는 건강 원리를 일깨우는 일도 좋을 것이고, 좋은 치유의 경험을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영육의 건강에 절대적인 것임을 다시 생각하며 날마다 삶에서 신뢰를 훈련해야 하겠다.
기 억 절: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 뢰함이니이다”(사 26:3).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창 3:8~10, 시 118:6, 잠 17:22, 마 6:27~34, 히 13:6, 요일 4:18.
| 중심 사상 |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존의 질병과는 다른 증세를 가진 한 남자가 의사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악령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의사는 환자 앞에 두 개의 시험관을 놓고 하나에는 과산화수소수를 다른 하나에는 순수한 물을 부었다. 의사는 환자의 피를 뽑아 과산화수소수에 넣었다. 그랬더니 거품이 일고 부글부글 소리가 났다. 환자는 그것이 악령의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환자에게 단순한 염수를 주사하며, 이것이 악령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의사는 다시 환자의 피를 뽑아 이번에는 물이 담긴 시험관에 넣었다. 거품도 소리도 없었다. 악령이 사라진 증거처럼 보였다. 환자는 치료받은 느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비슷한 증세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왔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생각이 신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이번 주 교과의 주제는 정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핵심본문| 사26:3
|학습 목표|
1. 깨닫기 :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진시킬 뿐 아니라 건강한 삶에도 유익함을 이해한다.
2. 느끼기 : 하나님의 능력, 사랑, 돌봄, 신실함을 감지하는 영적 감각을 기른다.
3. 행하기 : 약속한 것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 한다.
학습개요
01. 깨닫기: 믿음의 연결
A.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전하는 성경의 이야기들은 그분께서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반드시 행하시는 분임을 증거해 준다.
B. 왜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 마음에 그리는 것이 중요한가?
02. 느끼기: 평화, 확신 그리고 소망
A. 평화와 확신과 소망은 믿음의 결과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 해 일하신다. 이런 믿음의 결과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B. 어떤 종류의 사고가 우리를 돌보시겠다고 하는 그분의 약속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가?
03. 행하기: 믿음의 사역
A.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대한 확신만을 가지고 믿음 없이 일하는 것 이 가능한가?
B.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는가?
요점: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우리를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함으로 그분과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 결과로 우리의 몸과 마음 이 건강해진다.
일요일(5월 2일) 두려움의 요인
얼마 동안 미국 TV 시청자들은 “공포의 요인(Fear Factor)”이라는 TV 프로그램 에 빠져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는 다양한 공포 상황에 투입된다. 전갈이나 쥐 로 가득 찬 구덩이에 앉는 것부터 불타는 건물을 통과하여 걷는 등 시청자들은 그 들이 공포에 어떻게 잘 대처하는지 보게 된다.
물론 누구도 억지로 공포를 조장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여러 가지 두려움의 요인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는 인간의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주요 요인은 공포이며, 정부를 구성하는 주된 목적은 자신을 해할지 모르는 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스스로 얼마나 안전하게 느끼는지 상관없이 누구나 두려움을 야기하는 문제에 부딪혀야 한다. 하지만 두려움 자체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1. 어떤 방식으로 두려움이 우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사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답: 두려움의 감정은 여러 가지 잠재적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하도록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때로 실존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할 대상은 영혼을 멸하실 수 있는 분이다.
두려움은 인간이 위협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정서이다. 이런 정서와 본능은 사고, 범죄, 질병, 테러와 전쟁이 만연한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다.
2. 두려움을 처음 언급한 성경의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창 3:8~10.
창3:8~10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답: 죄를 지은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우리를 두렵게 만든 것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종종 사라지지 않은 두려움에 시달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두려움은 매우 긴장된 감정이기 때문에 우리 신체에 상당히 강력한 물리적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두려움은 단순히 정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매우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어디에 살든 어떤 위험에 처해 있든지 두려움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우리는 주님이 과거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방법과 그분의 가르침을 잊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신뢰를 주님께 둔다면 우리는 지금 강한 백성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강력한 진리를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162)
<부가설명>두려움
김 명호
사노라면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리고
바깥출입 조심한다.
아무것도 증거된 것 없는데
점쟁이 점괘를 따라
막연하게
정말 막연하게
두려워한다.
세상이 그저 무섭고
세월이 두려우니까
증명된 일 없는 점괘가
공포심을 부채질하고
두려움에 우겨 싸여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막연한 공갈이
공포의 거인으로
압박하는 세상이다.
오늘은
안전하려나?
빠끔히
문을 열고
두려움에 질린 눈망울로
밖을 내다본다.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먹고 두려워한 것은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곧 사망의 공포가 두려움의 근원이다. 온갖 두려움은 바로 이 사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는 마귀이다.(히2:14) 그러므로 두려움의 뿌리는 사단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셨다. 십자가에서 이기셨다. 이 말은 사망을 정복하셨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이 이김에 삼킨 것을(고전15:54) 확증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요8:51) 그럴지라도 그리스도인이 현실적 난관에 부딪히면 두려워한다. 그럴수로 우리는 예수님을 피난처로 삼는 믿음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가 두려움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월요일(5월 3일) 우주에게 말하는 남자
어떤 남자가 우주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내가 여기 존재하오!” 그리고 우주에게 다시 대답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안에 복종심을 만들지는 않았다오.” - 스티번 크레인
1. 위의 시를 읽으십시오. 어떤 내용의 시입니까? 우리는 재림신자로서 이런 생각과 어떻게 다른 우주관을 가져야 합니까? 관점의 차이가 생기는 주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 인간 존재와 신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한 시이다. 우주의 기원도, 인간의 정신 작용도 다 우연한 물질적 반응의 결과라는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우주가 하나님의 의도적인 창조의 결과이며,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내재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잠시 동안 세상에 하나님이나 창조주, 또는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한 존재가 없다고 가정해 보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고도로 진보한 유인원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결국 우리의 행복에 대하여 전혀 걱정도 관심도 없는 비인격적인 힘에 의하여 우리의 운명이 좌우된다면 이 얼마나 허망한 세상인가?
2. 아래의 성경절을 찾아보십시오. 두려움이 몰려올지라도 이 말씀에서 그대는 어떤 희망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시 118:6, 잠 3:5~6, 눅 12:6~7, 롬 8:38~39, 히 13:6, 딤후 1:7, 요일 4:18.
시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잠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히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답: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 118:6)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 12:7)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끔찍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우주의 배경과 배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하여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마음속으로 희망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두려워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대신 이 말은 우리가 그런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믿음으로 전진하라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기도하고 그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우리는 받게 될 것이다. 이 믿음은 칠흑 같은 구름을 뚫고 의기소침하여 실의에 빠진 영혼에게 빛과 소망을 준다. 당혹함과 근심스런 두려움, 악한 생각 등은 이러한 믿음과 신뢰가 없기 때문에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온전히 신뢰할 때에 그 백성들을 위하여 큰일을 하실 것이다.”(교회증언 2권, 139)
<부가설명>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아파서 안식일에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출석할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기 때문에 아픈 아이를 간호하기 위하여 집에 함께 머물 수 없었다. 아이가 칭얼대며 말한다. “엄마, 나 집에 혼자 있기 싫어.” “그래도 어쩌니 아빠가 목사님이신데, 엄마도 같이 가야지, 집에 너하고 있을 수가 없잖니.” “흥, 그래도 혼자 있기 싫어.” 아빠가 말했다. “얘야, 예수님이 계시잖니.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혼자가 아니야.” 그때 딸은 야무진 소시로 대답했다. “예수님은 안 보이는데 뭐.”
우리들의 심리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도 보이는 것을 원한다. 현실적인 난관을 만났을 때 당장 보이는 어떤 조치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쉽게 놓이지 못한다. 그런데 성경이나 예언의 신의 증언은 그럴 때 믿음으로 이기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견디라고 한다. 우리는 전적인 신뢰로 이런 믿음을 행사하도록 훈련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며, 천사들의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지키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신앙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화요일(5월 4일) 믿음의 힘
1.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이 성경 절은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답: 정신과 육체는 밀접하게 교감하고 있으며,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 건강이 좌우될 수 있다.
어린 소년 마이클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교사가 그를 방문하여 학교 숙제를 내주었다. 교사는 “마이클, 여기 동사와 부사에 관한 수업 내용이 있다. 열심히 해라.”고 말했다. 교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소용없는 짓인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아이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소생할 가망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아이는 급속도로 호전되었다. 이전에는 경과가 좋지 않아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었는데, 상황이 급변하여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학교 숙제가 그에게 큰 변화를 준 것일까?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죽어가는 아이에게 동사와 부사에 관한 숙제를 내주지는 않았을 것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과 태도는 우리의 몸과 아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둘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과학에서도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 둘이 서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인정받고 있다. 그러한 인식은 우리의 건강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사랑과 선하심을 신뢰함으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곳은 바로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진실로 알게 될 때, 우리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진 적이 있지 않은가! 종교적인 믿음이 건강에 도움을 준 사례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일반인들보다 장수하며, 우울증에 강하고, 충격적인 사건에도 감정을 잘 조절한다는 사례를 조사해 보라. 우리가 하나님의 초자연 적인 치료의 능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항상 일어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믿음은 신자에게 평화와 확신과 소망을 줌으로 정신적 태도에 변화를 일으키고 우리의 건강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쁜 마음은 약보다 훨씬 좋다. 왜냐하면 약은 종종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믿음이 자아를 형성함
“의무를 잘 감당했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제공해 준데 대한 만족감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가볍고 기뻐질 때, 즐겁고 고무적인 힘이 온몸에 새 생명을 가져다준다. ... 건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쏟은 나머지 자아(自我)를 잊어버릴 것 같으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 주님의 명령을 따를 것 같으면, 그들은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는 선지자의 약속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치료봉사, 257)
<부가설명>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감각에 느껴지기 때문에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믿음이기보다는 현실이다. 믿음은 현재의 사정 너머에 있는 것을 보는 눈이요 감각이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약속을 읽는다. 그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 결단이 필요하다. 믿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마다 예수님 편을 택하는 결단이다. 그렇게 할 때 부활의 생명을 보증으로 영원을 약속한 것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할 것이다.
교훈: 육체와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심으로 충만한 마음은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
수요일(5월 5일) 스트레스 풀기
1.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어떻게 하면 이런 약속들을 주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까? 어떤 태도나 행동들이 그대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듭니까?
답: 약속을 주장하는 가장 큰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확신이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이 임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당면한 가장 큰 건강의 문제는 스트레스이다. 정신적 충격은 삶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삶의 주변에서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매일의 압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의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이 진료하는 환자들의 90%가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과학도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특정 호르몬이 분비되어 인체의 여러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장기간 동안 이런 호르몬의 영향으로 기관들이 약화되면, 질병에 더욱 취약하게 된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는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심박동을 강하고 빠르게 만들어서 심계항진증(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어떤 스트레스 호르몬은 혈관을 수축시켜 고혈압의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는 과호흡증후군과 같은 짧고 빠른 호흡을 야기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위의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이 위장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는 혈당을 증가시키는데, 그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은 당뇨병에 걸릴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또한 숙면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전반적인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최전방에서 질병을 막아주는 면역체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록은 끝이 없지만, 요점은 이것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신앙은 그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개인적으로 알고 경험하면, 마음에 평안을 얻고 스트레스와 그것으로 비롯된 나쁜 결과들이 상당히 해소되기 때문이다.
계발되어야 할 믿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얻어진 힘, 다시 말해 마음을 사려 깊고 조심성 있는 마음으로 훈련시키는 꾸준한 노력과 연합된 힘은 사람을 매일의 의무를 위하여 준비시키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마음을 평안하게 지켜 준다.”(산상보훈, 85)
<부가설명> 스트레스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삶의 현장에는 쉼이 없는 자극이 있다. 우리는 이런 자극이 전혀 없는 환경을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자극을 어떻게 반응하는가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바로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원칙에 의하여 반응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성경의 약속을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훈련되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잘 보자. 그것은 다 감정적인 것이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것들이 다 감정적인 상태가 아닌가. 성품이라는 것은 감정을 예수님의 감정처럼 변한 것이다.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것이 바로 감정의 대처이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대처하는 것이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이룰 수 있다는 약속을 인하여 감사하자.
교훈: 스트레스는 건강에 가장 위험한 요소이며, 신앙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목요일(5월 6일) 믿음과 기적적인 치유
복음을 읽어 보면 예수님의 사역은 상당부분 기적적인 치유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병든 자, 눈먼 자, 죽어가는 자, 심지어 이미 죽은 자까지 주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치유를 받았다. 그런데 많은 경우 치유의 전제조건은 믿음이었다.(마 9:2, 22, 28~29, 15:28)
나사렛에서는 불신이 치료의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마 13:58, 막 6:5~6) 한번은 제자들이 치유에 실패한 적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7:14~20)
믿음이 기적적인 치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기도로 치유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때, 그것을 환자의 믿음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믿음과 치유에 관하여 지극히 표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❶ 아래 성경 절에서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사람들을 고친 사건들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들은 치유를 받은 사람들의 믿음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이런 예들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마 12:9~13, 눅 13:11~13, 14:2~4, 22:47~52.
마12:9~13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눅13:11~13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눅14:2~4 주의 앞에 고창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눅22:47~52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의 앞에 서서 와서 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49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50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답: 기적적인 치유의 절대적인 요소는 환자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이다.
위에 제시된 본문 가운데 치유된 자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언급은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기적적인 치유를 불러오는 믿음의 역할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표된 믿음이 항상 절대적인 요소가 아님을 보여 줄 뿐이다.
사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주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에 의해 치유가 일어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치유가 된다. 우리는 그때 하나님의 손이 이런 과정들을 통해 병자에게 임하셨음을 믿게 된다. 한편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끝없이 발생하는 설명할 수 없는 재난들은 타락한 세계의 일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신도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믿음은 삶을 변화시킴
“인간의 힘이 실패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겠다고 느낀다. 그리고 우리의 자비하신 하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심령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병이 들었을 때에도 건강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303)
<부가설명> 의사에게 가거나, 약을 먹거나 치료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이다. 은혜의 시기가 지나면 치료되는 일이 없다. 일곱 재앙의 첫 재앙이 종기 재앙인데, 그것은 치료되지 않는 질병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거두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 자체로 병이 나았고, 의사의 치료행위 자체로 병이 나은 것으로 생각한다. 나타난 현상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치료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사실을 간과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회복과 치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분이 공급하시는 생명력과 치유하시는 은혜와 자비로 인하여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고 매사에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생활의 다반사에서 이것을 훈련해야 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돌보시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가 살며 기동하며 있는 것이다. 아멘.
교훈: 믿음은 치유의 조건이 아니라 목적이다. 우리의 질병이 치료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 속에서 우리는 안전하다.
금요일(5월 7일)
“참 과학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그 둘은 다 같이 창시자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둘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판명될 것이다. 천연계에서나 계시에서나 간에 진리는 그 모든 표현에 있어서 그 자체가 조화를 이룬다.”(교회증언 8권, 258, 참고자 료: 치료봉사, 462,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신학요람 12권, 751~783)
“정신과 육체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한쪽이 영향을 받으면 다른 편이 반응을 일으킨다. 정신의 상태는 신체 조직의 건강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옳은 일을 하고 남을 행복하게 함으로 마음에 자유와 행복감이 넘칠 때 이것은 온 신체 조직에 즐거움을 창조하여 혈액 순환을 더욱 활발하게 하며 몸 전체를 강하게 한다. 하나님의 축복은 치료제이다. 남을 유익하게 하는 일을 많이 하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과 생애에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된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34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치료에 의학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우리가 의술을 통해 건강과 치유를 얻고자 한다면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까?
* 치료 의학은 하나님이 만든 신체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서 건강 법칙을 따라 신체를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잘 연구한 의사들의 손을 거쳐 건강 질서를 바르게 세우는 것은 믿음으로 하는 일이다.
2.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건강이 회복된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봅시다.
* 각 학생들이 서로 나눌 것이다. 매일 살아가는 힘이나 생명력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겠는가.
3. 그대의 교회에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는 개인적으로 혹은 같은 교과반 원으로서 어떻게 그의 치유를 도울 수 있습니까?
* 우선 그를 위하여 기도하며 사랑을 나누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예언의 신의 증언에 있는 건강 원리를 일깨우는 일도 좋을 것이고, 좋은 치유의 경험을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영육의 건강에 절대적인 것임을 다시 생각하며 날마다 삶에서 신뢰를 훈련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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