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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그리스도인 품성의 진수인 성령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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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10-03-20 08:06 조회5,909회 댓글0건

본문

3월 27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0분)

기억절: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연구범위: 마 6:33, 요 15:8, 롬 3:20~26, 14:17, 딤전 6:11, 요일 2:15.

안식일 오후
모세가 하나님께 그분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청했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출 34:6) 그분의 품성이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타락한 인류는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얻게 되고 모든 불의에서 영혼이 정결케 됨을 맛보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영광에서 영광으로, 품성에서 품성으로 저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 선한 열매가 맺힌다. 품성은 점점 더 하나님을 닮은 품성으로 계발되며, 고결하고 정직하며 진실하고 자비로운 품성을 나타내게 된다.”(엘렌 G. 화잇, 오늘의 나의 생애, 54)

핵심본문: 롬 14:17

<학습 목표>
깨닫기: 구원의 은혜를 깊이 숙고한다.
느끼기: 기쁨과 화평을 경험한다.
행하기: 성령의 내재하심을 통해 의(義) 안에서 자라난다.

< 교과 개요 >
I. 깨닫기: 구원의 은혜
A. 예수님 안에 있는 의는 구원의 진수이다. 그 의의 요소는 무엇인가?
B. 그리스도 안의 생명은 기쁨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 왜 어려운 것으로 묘사되는가?
C. 성령께서는 구원의 중심 진리인 의, 희락, 평강을 통달하신다. 위의 핵심 본문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대해 경고한 까닭은 무엇인가?

II. 느끼기: 화평과 기쁨
A.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과 화평을 표현하기를 두려워하고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은 왜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가?

III. 행하기: 교제의 깊이를 더해감
A. 어떻게 하면 우리는 구원을 지탱해 나가기보다 누릴 수 있는가?
B. 예수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교제를 나누면서 어떻게 순종을 우리의 삶 속에서 계발할 수 있는가?
C. 성령의 열매는 성령을 떠나서는 결코 맺을 수 없다.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D. 이번 주 교과는 성령 충만한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에 역사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요점: 성령 안에서 구원의 열매를 누리자. 그것은 우리를 부정적인 삶에서 자유케 한다. 이는 성령의 인도와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를 통해 계발된다.

일요일(3월 21일)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마 16:26)

너무나도 자주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보다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에 치중한다. 우리 자신의 기도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보라. 물론 그렇게 기도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의 기도는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에 있는가,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에 있는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이러한 경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1.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는 왜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합니까(참조, 마 16:26)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답: 예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때 그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2. 로마서 14:17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라고 말해 줍니까?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답: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는데 이것들은 곧 성령의 열매들이므로 결국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구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성령의 열매라는 사실을 주목해 보라.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 전에 성령의 열매를 먼저 구해야 한다. 세상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할지라도 의와 평강과 희락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일 누군가, “이 말씀은 예수께서 우리의 육신적 안녕이나 재정적 안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육신적 혹은 물질적 필요를 구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열매를 구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비추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한 어머니가 걱정스런 모습으로 물었다. “목사님, 우리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 아이가 믿음도 없고 직업도 잃고 말았어요. 직장을 다시 얻도록 기도해 주세요.” 이 걱정하는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했는가? 그리스도인의 우선순위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되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그 어머니는 무엇을 요청했어야 했는가?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눅 12:30).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나는 너희에게 사랑과 의와 평화의 나라를 알려 주기 위해 왔노라. 마음을 열고 이 나라를 받아들이며, 이 나라를 위한 봉사에 최대의 관심을 쏟으라. 비록 이 나라가 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현실 생애를 위한 너희의 필요가 돌봄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중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께서 너희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니라.”(산상보훈, 99)

<부가설명>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으로 마귀의 세력과 그 영향력이 다 쫓겨난 사람에게 임한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것을 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할 것이다. 모든 것에는 우리의 의식주에 대한 것이 포함된 것이 확실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데 필요한 것들이 포함된 것도 확실하다. 우리는 성령을 거듭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보장된 것이다. 의와 평강과 희락은 성령으로 난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에는 의와 희락이 있다. 로마14:26은 평강이 성령 안에서 이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삶을 구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와 아무 상관이 없다.

교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곧 의와 평강과 기쁨을 먼저 얻지 못한다면 비록 물질적인 필요가 충족된다 하더라도 무의미하다. 우리는 바른 우선순위를 가져야겠다.

월요일(3월 22일) 성령의 다른 열매들(갈 5:22~23)

갈라디아서 5:22~23과 에베소서 5:9에만 그리스도인 품성의 진수인 성령의 열매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열매가 디모데전서 6:11과 디모데후서 3:10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베드로후서 1:5~7에는 경건, 덕, 지식 등이 추가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또한 고린도전서 13:4~8에 사랑의 많은 특성이 ‘~아니하며’라는 부정적인 용어를 통해 나타나 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사랑은 …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이제 성령의 열매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곳이 한 곳 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여러 곳에 그리스도인 품성의 다양한 면들과 특질들이 제시되어 있다. 사도들이 각각 성령의 열매를 언급한 것은 특별히 그 당시의 독자들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많은 성령의 열매를 기록한 것은 그가 편지하고 있는 회중의 특정한 필요를 알았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6:11에는 ‘경건’의 열매가 언급되어 있는데, 원어상으로 ‘경건’이라는 단어는 존경, 경의,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 등을 의미한다. 로마서 5:4~5에는 ‘소망’이라는 속성이 나온다. 소망이 그리스도인 품성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라.
베드로후서 1:5~7에 ‘덕’이라는 열매가 나오는데, 이는 갈라디아서 5:22~23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덕은 도덕적인 선량함, 정숙, 순결 등과 연관되어 있다. 왜 이 속성이 그리스도인 삶에 필수적인가? 이 특성은 일곱째 계명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같은 구절에는 ‘지식’이라는 특성이 추가되어 있다. 지식을 나타내는 단어인 그노시스(gnosis)는 성령 충만한 생애에 맺히는 열매인 총체적인 지식과 깨달음을 가리키는데, 지식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를테면, 지식은 분별의 은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베드로는 여기에 열거한 목록을 성령의 열매로 부르지는 않았으나 본질적으로 그것들은 성령의 열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서 나타나야 할 특성이기 때문이다.

함께 자라나야 할 덕목들
“우리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 가야 한다. 그대는 한 덕목을 완성시키고 나서야 다른 덕목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사랑의 샘으로부터 계속해서 영양 공급을 받아서 함께 자라나야 한다. 그대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에서 그대는 그리스도의 품성 속에 온전히 계시된 그 복된 속성들을 이루어 낼 수가 있다. 그대가 이것을 이룰 때에 빛과 사랑, 평화와 즐거움을 그대의 가정으로 가져올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3)

<부가설명> 우리는 성령의 열매들을 열거하고 그것을 맺으려고 애쓰는 미련함을 버려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고 이 생명이 생명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는 자주 자신이 거듭난 생명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야 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성령의 열매는 성령께서 맺게 하는 열매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면 이런 열매를 맺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곧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이 되고 예수님의 의식이 우리의 의식이 된다. 그래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생활이 이루어지고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인인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롬8:9)

교훈: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들 외에 경건, 지식, 덕, 소망 등 여러 속성들이 다른 곳에 나온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열매는 무엇인가?

화요일(3월 23일) 믿음 안에서 견딤(롬 3:20~26)

어제의 토의에 이어, 오늘은 우리의 열매 맺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임을 기억하면서, 과연 우리는 이 열매들을 얼마나 잘 맺고 있는가 하는 주제로 넘어가 보자. 아마도 이 모든 품성의 특성들을 바라보고 자신의 실상과 비교해 볼 때 분명히 낙심하기가 쉬울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맞는 말이다.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후 13:5).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세상을 향해 어떤 증거를 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자칫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모본으로 삼고 있다. 우리 자신을 그분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낙담하기가 쉬운가? 우리의 죄 많고 연약한 속성과 완전히 대조되는 그분의 무죄하고 완전하신 속성을 보며 실망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우리에게는 따라야 할 완전한 표준과, 순종해야 할 완전한 율법과, 닮아가야 할 완전한 구주가 있다. 우리 모두는 종종 표준과 율법과 구주의 모본에 훨씬 못 미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실패를 거듭하고 원하는 만큼의 영적인 성장을 갖지 못할 때 실망하고, 심지어 포기하고 싶은 지점에까지 이르러서는 ‘고민하면 뭐해? 해 봤자 되지도 않는 걸?’하고 생각해 버리기가 얼마나 쉬운가?
바로 여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으며,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엇을 성취하셨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로마서 3:20~26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은 구원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특히 우리가 맺은 보잘것없는 열매를 바라보고 낙심할 때에 이 진리를 굳게 붙잡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롬3:20-26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답: 우리는 성령의 열매 맺는 것을 구원의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열매 맺는 일은 구원 얻은 자의 자연스런 결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함에 대해 실망하기가 쉽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면서 믿음 안에서 견디어야 한다.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은 가능한 최고의 의의 표준을 제시한다. 전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희생은 죄의 흉악성을 증거한다. 그럼에도 율법은 양심을 자유롭게 하거나 의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인간의 타락 이래로 율법의 목적은 죄를 지적하고 정죄할 것이지(롬 7:7), 인간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 자신이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진실한 생애를 살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될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 2:4, 롬 1:17, 갈 3:11).”(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행 13:39)

<부가설명> 성령의 열매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맺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생명의 성령께서 주장하는 사람에게 맺히는 열매이다. 그래서 열매를 말하기 전에 나무를 말해야 한다고 이미 지적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의 나무가 되어야 한다. 포도나무인 예수님의 가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라고 예수께서 약속하셨다. 계속적으로 지적하였듯이 우리가 거듭났는지 그것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거듭난 그 생명이 거듭난 열매를 이룰 것이다. 거듭났을지라도 이제 자라고 있을는지 모른다.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이며 육신에 속한 자라고 말한다.(고전3:1-3) 그러나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온전한 데까지 이르는 때가 올 것이다.(엡4:13) 그래서 믿음을 굳게 잡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지나치게 의인이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전7:16) 의인이 되는 것은 예수 안에서 얻는 생명이지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 있으면서 스스로 의인이 되려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또 이 말에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설명들은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데 초점이 있다. 예수를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데 초점이 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자라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낙심하기 쉽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믿음 안에서 견뎌야 한다.

수요일(3월 24일) 세상의 도전(요일 2:15)

1.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답: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마음이 나뉘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마침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식어버리고 만다.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심령을 성결케 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떠나 장엄하고 위엄 있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다. 영원한 사물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세속적인 사물이 으뜸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심령의 활력이 세속의 가시떨기를 자라게 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실물교훈, 51)
우리는 율법주의의 위험을 인식해야 하는 한편,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 나라들과 타협하려 할 때는 언제나 타락에 빠지고 말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일서 2:15은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한다. 한 교회로서 우리가 세상을 향해 선교를 하려 할 때 분명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상에 미혹되거나 세상 속으로 휩쓸리지 말고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 안에서 행해야 한다!

2.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어떤 징후를 포착할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는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식어지고, 세상에 속한 염려로 생각이 채워지며, 말씀과 기도를 위한 경건의 시간이 없어지고, 현세적인 욕심으로 바빠진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야고보서 4:4에는 새로운 의미로 강조한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왜 야고보는 교인들이 세상으로 휩쓸려 가는 것을 간음에 비유했는가? 요한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재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요일 2:15).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세상을 사랑하든지 하나를 택해야 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 구주께서는 많은 이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택할 것이며 그 결과로 천국을 잃을 것을 보여 주셨다. 우리 주님의 은혜로운 초청은 경시되었다. 그분은 큰 희생을 치러가며 잔치 준비를 위해 비용을 내고 수고하셨다. 그러고 나서 초청의 말을 전하였다. 그러나 ‘다 일치하여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고 대답하였다.”(교회증언, 2권, 39)

<부가설명> 한 남자가 결혼한 자기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될 때 아내에게 충실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두었는데, 세상이라는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것이 마치 결혼한 남녀가 아내를 두고, 또는 남편을 두고 다른 여자나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남편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아내 된 그의 백성을 충실하게 사랑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두고 다른 것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상숭배이며 간음이다.

교훈: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성경은 우리가 세상과 벗삼으려 할 때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경고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목요일(3월 25일) 성령의 열매를 자라게 하는 비결(요 15:8)

우리는 비록 씨앗이 자라게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열매를 맺기까지 자라도록 도울 수는 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 가능해진다. 신자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그 자체가 위대한 생명의 신비이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그 자라남을 도울 수 있는지 분명히 지시하고 있다. 이같이 하여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요 15:8)는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게 된다.

성령의 열매가 자라도록 장려하는 몇 가지 방법을 주목해 보자.
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성경의 유익성에 대해 디모데후서 3:16은 무엇이라고 선언하는가? 성경 연구는 우리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가?(참조, 딤후 3:17, 시 119:105)
2. 기도를 통하여.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영적 힘을 얻는 비결이다. 이 외에 어떠한 은사라도 기도를 대신하지 못하며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지 못한다. 기도는 사람의 마음을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와 접촉하게 하며 영적 경험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기도를 게을리 하거나 또 형편에 따라 기도를 가끔 중단하였다 계속하였다 하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게 된다. 그리고 영적 기능이 마비되며, 영적 경험은 원기를 잃고 허약해진다.”(복음 교역자, 254)
3. 바른 생각을 함으로써.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고상한 생각을 간직하게 할 수 있는가?
4.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통하여. 귀신들렸다 고침 받은 사람이 예수님께 함께 가기를 청하였을 때, 그분께서는 그 요청을 거절하시면서 그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 주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막 5:18~20). 믿음을 나누는 일은 우리 삶 속에 성령의 열매를 자라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믿음을 나누는 것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의 증거의 삶이다. 믿음을 나누는 것이 성령의 역사를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영적 성숙에 이르기까지
“신자로서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영적 성숙에 이르기까지 성장한다. 그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사들을 통하여 우리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발전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어린아이 시절의 경험을 뛰어넘어(엡 4:14), 그리스도인 경험의 초보적인 진리들 이상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으며, 성숙한 신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단단한 식물’(히 5:14)을 섭취해야 한다.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히 6:1~2)고 말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175)


<부가설명> 요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과실을 많이 맺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연구하고 명상하게 된다. 호흡마다 기도가 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새 생명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거듭난 사람은 생각이 영의 생각이 되는 사람이다.(롬8:5)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열매를 생활로 드러낼 것이다. 예수님이 그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교훈: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말씀 연구와 기도, 바른 생각과 전도를 통해 그 열매가 자라도록 도울 수 있다.

금요일(3월 2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웅대한 사상과 순결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라고 명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묵상하고, 구원의 대 경륜에 나타난 그분의 기이한 역사를 연구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마음의 순결과 사상의 명료함을 바라는 우리의 욕구는 더욱 고상하고 거룩하게 될 것이다. 거룩하고 순결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 심령은 성경 연구와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은 순종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선행(善行) 속에 나타날 것이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과 생애가 그들의 품성과 생애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한다(요 5:30)고 말씀하셨다. 또 성경은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고 말한다.”(실물교훈, 6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의 사명은 세 천사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는 것인데, 종종 우리의 기별과 우리가 처한 문화적 상황 사이에서 접촉점을 찾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에는 어떤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교회가 세상을 따라 변질된 사례가 많았습니다. 우리 재림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미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징후가 보이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오직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 세상에서 배운 학문과 문화적 사조를 성경을 해석하는데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2. 우리의 품성계발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했다는 증거이다.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이 맺기를 원하는 열매이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그 지극한 사랑을 드러낼 때 세상은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3. 이번 한 기의 교과를 간단히 요약해 보십시오. 내 삶에 맺히기를 원하는 성령의 열매는 무엇이며,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이번 한 기 동안 내 삶에 일어난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 성령의 열매는 성령께서 맺게 하는 열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매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맺으려고 애쓰는 대신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이 우리를 주장하는 생명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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