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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 긍정 : 행복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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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6-05 13:01 조회6,2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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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6월12일 일몰 : 오후 7시 54분

제11과 <긍정(肯定) : 행복과 치유(治癒)>

<記憶節>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 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 3:21~23).

▣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행복과 건강한 삶의 결과를 원하면서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질병과 불행의 근원을 자초한 결과임을 깨닫지 못해서 많은 고생을 하는 것이다.
긍정의 삶은 행복과 치유를 보장하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다.

<要點>
우리의 문제에 집착하기보다 소망과 생명의 말씀에서 오는 빛을 구할 때, 우리의 마음과 육체는 하늘의 분위기로 밝아지며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일) 6월 6일
<우울증(憂鬱症)과 절망감(絶望感)>

▣ 우울증(憂鬱症)은 오늘날 흔한 질환이다.
우울증에 동반되는 슬픈 감정 때문에 이전에는 즐거웠던 일들도 기쁨을 주지 못한다.
우울증 환자들은 피로와 절망감, 무기력함을 경험한다.
수면 장애뿐 아니라 소화 장애, 두통, 요통 등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자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우울증은 모든 연령 그룹에 해당되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24세 미만의 연령이 이 질병에 취약하다.
1. 우울증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사망, 질병, 실직, 실연 등과 같은 유쾌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우울증이다.
(둘째)는 중추신경계의 화학적 부조화로 인한 우울증이다.
이는 대부분 유전적 인 질환으로 취급된다.

▣ <우울증(憂鬱症)의 다양(多樣)한 원인들>
1. 생물학적으로 세로토닌(serotonin)과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란 두 물질의 저하는 우울증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여성은 남성보다 자연적으로 세로토닌이 낮은데,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잘 걸리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심리적 요인 또한 우울증에 대한 취약성에 큰 역할을 한다.
2. 호르몬 변화로 인한 우울증
1) 산후 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
전체 산모의 50~70%가 어떤 형태로건 산후우울증을 경험하며,
이 중 10~20% 정도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임신 동안 충부하게 분비되던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출산 후 급격히 떨어지며 신체가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이 발생하기도 하고, 출산이라는 인생의 큰 변화가 주는 스트레스와 피로, 수면장애 등이 원인이 된다.
2) 폐경기(Menopause) 우울증
폐경기로 인한 우울증은 세로토닌 호르몬을 증진시키는 항우울제로 치료가 가능하다.
이 약을 사용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홍조 증세와 같은 폐경기의 전형적인 증상도 없앨 수 있다.
3) 고질적(痼疾的)인 원인에 의한 우울증
통증 : 통증은 단순히 몸의 불편함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害도 입힌다.
즉, 통증에 의한 우울증도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항우울제로 치유가 가능하다.
4) 병환(病患)
당뇨, 암과 같은 치료가 힘들고 고질적인 질병으로 인한 우울증은 증세도 심각하고 치유도 어렵다.
5) 피로(疲勞)
피로로 인한 우울증을 혼자 힘으로 치료하려다간 오히려 더 심한 피로를 얻게 되고 그에 따른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
6) 금전적(金錢的)인 문제
가장 흔한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다.
이 경우 개인 파산이나 빚 문제를 상담하는 무료 상담 단체,
혹은 지인(知人)들을 찾아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이 가장 좋다.
7) 나쁜 인간관계(人間關係)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틀어지면 끊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고약해서 끊지 못하는 인간관계 때문에 인간의 정신이 파괴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8) 아무런 원인이 없는 경우
우울증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 중에는 그야말로 아무런 원인이 없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그 사람의 정신이 약하다든가,
정신개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충고 때문에 우울증에서 더 못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자신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해결책을 찾지 않고 그대로 앓고 있다가는 그대로 자멸할 가능성도 높다.

◈ <음악치료(音樂治療), 우울증환자(憂鬱症患者)에 도움>
우울증 환자에게 음악치료가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 나왔다. 영국 국가의료서비스기관(NHS Trust) 안나 마라토스 박사팀은 음악치료와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음악치료를 받은 우울증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치료 효과가 높았다고 임상연구 평가학술지 《코크런 문헌지(Cochrane Library Newsletter)》최신호에 발표했다. 박사팀은 세계에서 발표된 우울증과 음악치료 관련 논문 5편 중 4편에서 음악치료가 우울증 증상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1편의 논문에서는 음악치료가 우울증 증상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은 약물과 정신과 상담을 통해 치료하고 있다. 박사팀은 음악치료의 의학적 효과가 명확해지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라토스 박사는 “어떤 종류의 음악이 우울증 치료효과가 높은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음악치료가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증상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말했다. 대한음악치료학회 김군자 회장은 “우울증 환자에게 생리적으로 음악 리듬과 멜로디 등이 일치되는 우울한 음악을 여러곡 들려준 다음 활발한 음악을 들려주면 일시적인 우울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며 “우울증 환자 대부분이 자기표현을 못하고 대인관계가 안 좋기 때문에 타악기나 건반악기 등을 연주하는 치료를 하면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우울증 증상이 완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울증 외에도 발달장애, 학습부진, 주위가 산만한 아동에게 음악치료 효과가 있으며, 컴퓨터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 환자들에게 치료 효과가 높다”고 덧붙였다.

◈ <음악(音樂)의 힘>
도로시 리털랙이라는 한 식물학자가 “식물에 미치는 음악의 효과”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덩굴식물인 여름 호박을 대상으로, 한 실험실에 있는 호박에는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등의 클래식음악을, 다른 실험실의 호박에는 시끄러운 록음악을 틀어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록음악을 틀어 준 실험실의 호박은 그 음악이 싫다는 듯 음악이 나오는 반대방향으로 덩굴을 뻗었고, 클래식 음악을 틀어 준 실험실의 호박은 그 음악을 사랑한다는 듯이 덩굴을 뻗어 자라 라디오를 감싸기까지 했다. 식물도 나름대로의 삶과 정신과 영혼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증거다. 아름다운 음악을 좋아하는 게 어디 식물뿐이겠습니까? 얼마 전 TV를 보니 된장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맛이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음악사를 살펴보면 어느 국가이고 음악을 전쟁에 사용하지 않은 국가는 없다. 예로서 중공군들은 전쟁을 할 때 피리를 불고 징을 치며 전투에 임하는데 이것은 약하여진 병사들의 마음을 고무시키고 격동시켜서 그들의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 싸우도록 한 사례이다. 또한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약하게도 만든다. 신라시대 때의 일이다. 적군과 전쟁을 할 때에 이쪽의 병사의 수는 적군의 절반도 못 되었다. 도저히 승전의 가망이 없었다. 영리한 장군(將軍)이 피리를 잘 부는 부하를 골라서 적진이 가까운 곳에서 처량한 음악, 고향생각이 나는 애닮은 곡조를 불도록 하였다. 이 피리 소리를 들은 적군의 군사들은 모두 고향을 생각하고 부모, 처자를 생각하면서 전쟁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음악은 인간을 강(强)하게도 약(弱)하게도 하는 예술(藝術)이다.

▣ <우울증에 대한 성경적 견해>
성경에 나오는 여러 우울증의 사례 가운데 하나로 엘리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祈禱)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다가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다(약 5:17-18). 이 후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 450명에게 도전(挑戰)하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라고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또 불을 내려 제물(祭物)을 태워버리셨다. 그러자 엘리야가 기손 시내로 내려가 거짓 선지자들을 모두 죽였다.

이세벨은 엘리야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24시간 안에 그를 죽이겠다는 내용의 전갈(傳喝)을 보냈다. 엘리야가 이 소식을 듣고는 일어나 놀랬으며 그는 광야(曠野)로 도망가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하며 여호와께 죽기를 구(求)했다(왕상 19장). 이 얼마나 믿음이 없고 겁쟁이 같은 행동이 였던가? 참으로 대조적(對照的)인 마음의 변동이었다.

엘리야가 어떻게 이렇게 급변할 수 있었단 말인가? 바로 얼마 전에만 해도 갈멜산에서 승리했던 그가 어떻게 광야로 도망해 죽기를 원했단 말인가? 이런 사람을 엘리야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이라고 한다. "엘리야 콤플렉스"란 믿음이 좋았든 사람이 갑자기 하나님의 임재의식과 그의 보호(保護)하심과 공급하심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우울하게 되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삶이 무의미해진다.
이렇게 되면 완전히 버림받은 느낌으로 가득 차 소망(所望)을 잃고 우울해진다.

엘리야가 하나님에게 죽기를 원했을 때에도 바로 이런 상태였다. 엘리야 콤플렉스란, 열등의식(劣等意識)이 자기스스로 자기를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이, 자기가 자기를 우울(憂鬱)하다고 믿고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우울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게 되면 이렇게 된다는 말이다.

우울증이 오면 무겁고 어두움이 사람을 덮치고 그 우울증의 중량 때문에 견디지를 못한다.
이런 우울한 영(靈)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젊은 사람, 중년, 노년, 또 빈부(貧富)나 교육의 유무(有無)를 가리지 않고, 직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남녀와 기혼 미혼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에게도 찾아온다.

우울증을 성경적(聖經的)으로 다루지 않고 그대로 두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자살(自殺)의 거의 전부가 갑자기 닥친 우울증이나 깊은 우울증이 계속되면서 생기는 것이다.

우울증은 심기가 슬프고 우울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흔히 이렇다 할 이유가 없이 나타난다.
그래서 심한 삶의 무관심이나 깊은 좌절감을 나타낸다. 이런 우울증의 증상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식욕상실, 수면상실, 심한 피로, 불규칙적으로 지나치게 음식이나 음료를 많이 먹는 것, 지나친 수면, 일반적으로 삶에 대한 무관심, 심기증(hypochondria-몸이 불편하다고 푸념하는 것), 불결한 외모, 성적충동(性的衝動)의 상실(喪失), 성취의욕의 상실, 이유 없이 우는 것, 무기력과 억압의 느낌, 매우 부정적인 자화상, 반사회적 행동(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포함), 장기계획을 하지 않는 것, 신경과민 등이다.

1. 엘리야 콤플렉스 - 우울증의 원인 중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각의 패턴에서 오는 것으로;)

1) 자기의 문제가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하나님보다 이세벨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잃었다.
그가 눈을 하나님에게서 띠어 문제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단이 문제를 현미경에 밑에 넣고 그것을 확대시켜서 보여준다.
그러니 문제가 훨씬 크게 보인다. 엘리야는 이세벨을 현미경 밑에 넣고 그를 보았다.
고로 그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문제의 크기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예수님의 눈을 통해서 문제를 보아야 그것이 적게 보인다.
우리의 어려움은 언제나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단은 언제나 문제를 확대해 우리를 좌절시키려 함을 알아야 한다.
사단이 이것을 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바로 나의 생각이며 나의 선택이다.

2) 나만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오직 나만 남았나이다."(왕상 19:10)라고 하나님께 말을 했다.
이런 것을 영적인 밀실 공포증(claustrophobia)이라고도 한다.
그는 영적(靈的) 밀실 공포증에 걸려 있었다.
이런 영적 밀실 공포증에 걸린 사람이 승강기에 타면
사방의 벽이 자기에게 넘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포에 떤다.
벽이 실제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엘리야도 사방에서 세상이 자기에게로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만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엘리야가 자기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은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그 입을 그 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를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를 아셨고 또 몇 사람이 엘리야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계셨다. 그 옛날 그들의 경험을 아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3) 엘리야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은 나는 이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엘리야는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간청했다.
그는 죽음이 두려워 피하면서도 죽기를 원해 기도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보다 더 큰 문제를 가진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지 그의 문제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문제다.
우리는 예수님을 크게 보고 마귀(魔鬼)를 적게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컵의 물을 가지고도 자기들의 관점(觀點)에 따라 달리 본다.
컵에 물이 반(半)이 들어있는 것을 믿음으로(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컵에 물이 아직도 반(半)이나 차 있다고 보지만
믿음이 없이 부정적(否定的)으로 보는 사람은 컵에 물이 반(半)이나 비었다고 본다.

이런 사람을 상담할 때에는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먼저 갖게 해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불신의 관점에서 믿음의 관점으로,
또 사람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상황을 보게 해야 한다.
피상담자로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하고,
믿음으로 변화되게 하는 것은 과정이기 때문에 하루 밤사이에 되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일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롬 12:2)을 통해서 서서히 되는 것을 가르쳐야한다.

우리가 엘리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적은 세부적인 것만 보지 말고 큰 그림, 즉 그림 전체를 보아야 한다. 문제만을 보지 말고 받은 복(福)을 세어보기 시작해야 한다.
컵에 물이 반(半)이나 차 있다고 생각해야지 컵에 물이 반(半)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습게도 엘리야는 죽기를 위해 기도했음에도 실제로 죽지 않았다.
그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나님께로 승천했다(왕하 2:11).
그가 우울했었지만 그는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우울증은 언제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소망에 대해 눈을 어둡게 한다.

▣ 우울할 때에는 도대체 왜 우리가 우울한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분석하는 테스트를 해보기 바란다.
(다음의 공란 ________ 에 답을 적어 넣는다. 해답은 뒤에 나와 있다)

1. 내가 행복한 것은 내가 ______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2. 내가 슬픈 것은 내가 _____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3. 내가 분(噴)이 나는 것은 내가 ______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4. 내가 우울(憂鬱)한 것은 내가 _____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답: (1. 행복한 2. 슬픈 3. 분(噴)한 4. 우울한).

우리의 정서의 변동은 이와 같이 간단하다.
우리의 생각(마음)에 따라 우리의 기분이 변한다. 생각은 우리의 정서에 영향을 준다.
우리의 생각에 따라 우리의 정서가 행동으로 나타난다. 정서는 정보를 받는 대로 반응한다.

내가 우울해 있으면 이는 내가 우울한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우울증의 원인이 음식이나 운동부족이나 다른 유기적 원인 때문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우울증은 침울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을 하고 우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우울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우리의 생각이 정서를 결정한다면 우리의 우울증도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나의 정서를 바꾸려면 나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
우울한 생각을 하려고 하지 말고 기쁜 생각을 하면 된다.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내 몸에서 "엔돌핀"(endorphins)이 나와 우울증 때문에 생겼던 화학적 불균형을 바로 잡아준다.
하나님은 왜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의학적(醫學的) 이유를 설명해주시지 않으셨지만,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잠 17:22)고 말씀하셨다.

(예(例))
두 아들이 음주중독자(飮酒中毒者)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후 집을 떠났다.
몇 년 후 "음주중독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한 심리학자"가
이 두 사람을 찾으러 나가 그들을 만났다.
한 아들은 아버지의 전철(前轍)을 밟아 음주중독자가 되었다.
심리학자는 그에게 "당신은 왜 음주중독자가 되었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나의 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가진 사람에게 당신은 무엇을 기대합니까?"라고 대답했다.
그 심리학자는 또 다른 아들을 만나자 그는 놀랬다.
이 아들은 지금껏 술을 전혀 입에 대보질 않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가 그에게 물었다: "왜 술을 입에도 대보질 않았습니까?"
그는 "나의 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둔 사람에게 당신은 무엇을 더 기대하십니까?"라고 대답을 했다.

두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나 되는 것은 나의 환경으로 결정되지 않고 그 환경에 대한 나의 반응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첫째 아들은 환경의 자기를 희생자라고 생각했고,
둘째 아들은 자기의 환경에서 동기를 얻어 그의 생활에서 음주를 아주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는 그의 환경을 이긴 승리자가 되었다.
나는 회생자의 삶을 살 수도 있고 승리자의 삶을 살 수도 있다.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2. <육신적(肉身的)인 원인>

때로는 신체적 변화 때문에 심한 우울증을 경험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여자의 경우에는 홀몬의 불균형 때문에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estrogen’으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의사(醫師)하고 상의해서
이것이 그들이 겪고 있는 우울증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또 남녀의 관계없이 병을 오래 앓거나 부상을 당한지 오래되면 우울증을 경험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당뇨병으로 양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회복되는 동안 그는 자살하려다가 발각돼 생명을 구하고 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었다.
그는 "나는 이제 걸을 수도 없으니 살 보람을 잃었습니다."라고 한 간단한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하려고 했든 것이다. 즉 그는 소망을 잃었든 것이다.
욥도 그의 우울증과 싸운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困苦)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 되었다가 터지는구나."(욥 7:3-5).

이 말씀은 육신(肉身)의 질병이나 어려움도 우울증을 줄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우울증에는 또 다른 이유들도 있다.

3. <해결(解決)되지 않은 죄책감(罪責感) 문제>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죄책"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경종이 울리게 하는 장치를 우리 안에 달아 노셨다.
이러한 죄책은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해 우리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죄책이 해결되지 않거나 거짓된 제거 장치로 덮어놓으면 우울증이 들어와 그 곳에서 나를 괴롭히는 작업을 시작한다.

몸의 열이 병에 대한 경고를 주듯 죄책은 영혼에게 경고를 준다.
몸의 열이 육을 불편하게 만들어 외부에서 무엇인가 불순물이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리듯 죄책도 영혼에 침범해서는 안 될 것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리는 하나님의 경고 장치이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회개(悔改)하지 않으면) 죄책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로 우리의 삶에 해를 준다.

다윗도 “밧세바”에게 범죄한 후 이런 경험을 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衰)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赦)하셨나이다"(시 32:3-5).
계속 죄를 지으면서 뉘우치지도 않고 회개도 않으면 우울증이 나의 목을 잡고 회개하라고 계속 나를 괴롭히며 독촉(督促)한다.

4. <사랑하는 사람의 상사(喪事)>

부모나, 배우자나, 자녀나, 친한 친구의 상사는 일반적인 슬픔을 동반한다.
마리아도 오라비가 죽었을 때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 이다"(요 11:21) 하며 예수님께 그의 슬픔을 보여주었다. 또 예수님도 무덤에 가셔서 우셨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슬픔이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되면 이는 그것이 우울증으로 변해 그의 목을 조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슬픔과 우울증은 다르다. 슬픔이 가시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변한다. 어떤 사람은 상사(喪事)를 당한지 2년이 지나도 극심한 슬픔으로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5. <권태(倦怠)>

어떤 경우에는 끈질긴 권태로 인해 우울증이 오는 수도 있다.
산다는 것이 너무나 단조롭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사회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가난(家難)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 솔로몬도 전도서 6:3에서 이런 상태에 대해서 언급했다: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長壽)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樂)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전도서 6:3).
부(富)를 얻고 장수(長壽)를 해도 생을 성취하지 못하고 삶의 의의를 찾지 못하고 죽으면 이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권태로 우울한 많은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투자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6. <우리의 영혼을 죽이려는 원수에게서 직접공격(直接攻擊)을 받을 때>

사탄은 신자(信者)나 불신자(不信者)를 막론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우울증을 주려고 공격해온다.
사울왕은 시기(猜忌)와 질투(嫉妬)로 다윗을 계속 죽이려고 했다. 이럴 때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惡神)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렸다"(삼상 18:10)고 했다. 이는 하나님이 악신(惡神)에게 사울을 격분시키라고 허락하신 경우를 말한다. 사울의 분(噴)과 질투가 그를 우울하게 만든 것이다. 요나도 분(噴)이 최고도에 달하자 그는 매우 우울해 졌었다. 사탄이 공격을 할 때에는 시기, 질투, 분, 복수심 등 어떤 것을 공격 무기로 삼든 마지막 결과는 언제나 같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7. <자기 연민 - 자기 연민(憐愍)도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모세도 자기를 괴롭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룰 때 이를 경험했다: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1, 15).
우리가 자기 연민에 빠지면 언제나 우울증에 걸리게 되어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위협했을 때 엘리야는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며 .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왕상 19:4)라고 했다.
엘리야도 우울증 때문에 이런 일을 한 것이다. 엘리야나, 모세나, 욥 같은 사람들도 우울증에 시달렸어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으니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 <낙담한 자에게 낙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자아 희생을 요하는 일에 생애의 온 정력을 바치고 있는 자들 은 낙담과 불신의 유혹을 받을 때 엘리야의 경험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려 깊은 돌보심과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능력 은 특별히 그들의 열심이 오해를 받거나 잘못 평가되고, 그들의 권고와 책망이 멸시를 받고 개혁을 위한 그들의 노력이 증오와 반대를 당하는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나타난다.”(선지자와 왕, 173)

◉ 성경의 위인들도 우울증에 걸렸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에서 힘을 얻었다.

(월) 6월 7일
<이생의 염려(念慮)>

▣ 만약에 하나님께서 닦아올 시간을 미리 알려주신다면 즉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볼 수 있도록 하신다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 수가 있을까요? 배우자관계, 가족관계, 신앙관계, 직장관계, 인간관계, 금전관계, 인생관계, 대인관계, 등등 아마도 많은 부작용들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앞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앞날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주시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의 약속(約束)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땅을 주신다고 하셨지 어느 곳에 얼마만큼 몇 월 며칠에 땅을 주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은 믿고 부모님이 계신 갈대아 하란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그러한 믿음을 미쁘시게 여기신 것이며 이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간관계가 신뢰와 믿음관계로 살아가도록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8),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눅 12:27)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天父)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등에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약속을 파기하기위하여 계속적으로 사람을 시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며 심지여 예수님께 까지도 (마태복음4장1-11)시험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성경을 자세히 깊이 상고(詳考)하지 않으며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4장1-11절의 마귀의 시험은 신명기 8:3과 6:16절과 6:13절의 말씀으로 인용한 것을 예수님께 바로 그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생의 염려인 재물(財物),향락(享樂),명예(名譽),자랑 등 즉 요한2서2장16절의 ① 육체의 정욕. ② 안목의 정욕. ③ 이생의 자랑인, 사단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하늘의 만나로 영육(靈肉)간을 채워야 할 것입니다.

▣ 누가복음 19장38-42절의 마르다와 마리아와의 이야기에서
주님께서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마르다가 한 일과 마리아가 한 일을 모두 인정하셨습니다.
주님은 마르다가 너무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쉴 새 없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르다에게 동생이 "좋은 편을 선택했으며,
따라서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오히려 마르다를 책망하신 까닭은 그녀의 봉사 행위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녀의 전도된 가치관 때문이었다. 즉 그녀는 육체의 배고픔을 해소할 음식보다는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훨씬 더 귀하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먼저 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 일로 인해 마음이 분주하며, 그것에 마음과 시간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그 같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가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다시금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주목하고 그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점검하며 가치관을 바로 잡는 것이다.

▣ <다가오는 투쟁을 위하여 준비하라>
“사단은 그의 군대를 집합시키고 있다. 우리는 바로 우리 앞에 있는 두려운 투쟁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준비되었는가? 우리는 그 큰 위기를 대처하도록 우리 자녀들을 준비시키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들과 우리 가족들로 우리 원수들의 위치와 또 그들의 투쟁의 방법을 이해하도록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 자녀들은 그들이 능히 모든 원칙과 의무의 문제에 있어서 확고하고 굴하지 않을 만큼 결단성의 습관을 형성하고 있는가? 나는 우리가 다 시대의 징조를 이해하고 투쟁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방어가 되시도록 우리 자신들과 자녀들이 준비를 갖추게 되기를 바란다. ― RH, 1889. 4. 23.” (가정, 186)

▣ “우리들은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전개될는지 알지 못하며 우리들의 유일한 안전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손은 주님의 손을 붙잡고 우리의 심령(心靈)속에는 완전한 진리로 채워져야만 한다. 주님께서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구세주(救世主)께 언제나 가까이 접근하자. 주님의 온유하신 품성을 우리 마음에 품고 주님과 더불어 겸손히 행하자. 주님과 더불어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들을 숨기자.” (1기별, 79)

◉ <눈을 예수께 돌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을 위한 도움을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인생행로에 대한 모든 지시를 한꺼번에 주지 않으신다. 그 까닭은 그들이 혼란하게 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기억하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만 말씀해 주신다. 주어진 능력과 지혜는 현재의 위기를 위한 것이다.”(시대의 소망, 313)

◉ 걱정과 성공에 대한 갈망으로 살기보다 예수님을 신뢰하며 긍정적으로 사는 편이 낫다.

(화) 6월 8일
<항상 기뻐하라>

▣ 하나님께선 기쁨을 조건부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한번 기뻐해보십시오, 기뻐해도 괜찮습니다, 기쁘려면 기쁘고 말려면 마십시요가 아닙니다. 기쁨은 명령입니다. “기뻐하라”입니다.
조건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라는 명령은 이미 이세상보다 상상과 비교가 될 수 없는 천국을 미리 예비해놓으셨기 때문에
잠시 잠깐 거주하 이 땅에서의 모든 걱정과 한경과 염려를 인하여 저 좋은 낙원을 잊지 말고 기억할 때 기쁨이 넘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먹구름이 태양을 가렸다고 구름 너머의 태양이 있는 것처럼 태양을 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쁨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된 것은 감옥인 옥중서신들로 감옥에서 기록되었다는 점을 깊이 명심해보아야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과 누가와 요한이 그 구름 너머의 태양을 본 것처럼 (롬 8:31, 롬 8:35~39 , 요일 3:1, 계 21:4)
저 좋은 낙원 하늘나라를 보았기 때문에 다음의 말씀을 우리는 믿고 기억할 때 진정한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고후 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 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빌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 3: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성품이 어떻든지 간에 온화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으로 형성시킬 수 있다. 산 믿음을 활용함으로 그 대들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에서 자신을 구별하 여 이 지상 생애에 천국의 분위기를 이룰 수 있다. 이렇게 할 때에 전진하는 매 발자국마다 밝은 햇빛이 비쳐질 것이다. 원수가 흑암으로 영혼을 에워싸려고 노력할 때 믿음을 말하고 믿음을 노래하라. 그렇게 할 때에 그대들은 스스로 빛 가운데서 노래하고 말한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33)

◉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조건은 현실에 있다기보다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대한 소망에 있다.

(수) 6월9일
<웃음과 치료(治療)>

▣ 치료는 물리적인 치료법과 마음의 치료법으로 구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전에는 듣지도 못했던 웃음치료라는 것이 요 근간에는 제법 많이 유행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 어린 아기일 때부터 웃음의 횟수가 많아지다가
나이가 먹어갈수록 웃음이 줄어들어서 죽음이 임박한 사람일수록 웃음이 사라져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 한다면 웃음이 적거나 없을수록 죽음이 더 빨리 찾아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고사성어(故事成語)에 일소일소(一笑 一少), 일노일노(一怒 一老)라는 말처럼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화를 내면 한 번 더 늙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웃음과 건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기쁘고 웃음이 나올 때 박장대소(拍掌大笑)할 때에 우리몸속의 엔돌핀이 발생하여 병원체를 죽이는 효과가 이미 임상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처럼 웃을 일이 있을 때 웃는 것도 중요하지만 웃을 일이 없을 때 하늘을 사모하며 맘껏 웃으므로 질병의 예방과 치유의 놀라운 경험을 합시다.

▣ (고후 12:9~10)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는 자신이 연약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간절히 구할 수가 있었으며, 그는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낼 수 있었고 자신의 연약함을 크게 기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아무도 웃음이 우리의 모든 건강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밝은 마음가짐이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입니다.

◉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
“정신과 육체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작용은 매우 크다. 하 나가 영향을 입으면 다른 것도 반응한다. 마음의 상태는 신체적 건강과 크게 관련이 있다. 마음이 자유롭고 행복하며, 의를 행하 고 있다는 자각과 남을 행복하게 하여 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차있으면, 신체 각부에 미치는 쾌활함을 자아내어 혈액 순환을 보다 원활하게 하고 온 몸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하나님의 축복은 치료제이다.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일에 부요한 자들은 그들의 마음과 생애 속에 있는 놀라운 축복을 깨닫게 될 것이 다.”(증언보감 1권, 178)

▣ <이중적 통일체.>
“비록 성경은 인간의 본질을 통일체로 보지만 이것은 신체, 혼, 영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지 않다. 때때로 영과 혼이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태한 후에 마리아가 기쁨을 표현한 말 가운데 나타나 있는 대구법을 살펴보자. "내 영혼(soul)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spirit)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눅 1:46, 47).” (교리, 84)

▣ <고난(苦難)은 성품을 완성시키는 하나의 수단임>
“구주의 말씀에는 재난이나 사별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기별이 있다. 우리의 슬픔은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하나님께서 시련과 고난을 허락하실 때,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히 12:10)시기 위함이다. 만일 믿음으로 시련을 받아들이면, 아무리 감당하기에 괴롭고 어려운 시련처럼 보이는 것도 축복임이 입증될 것이다. 세상의 기쁨을 시들게 하는 혹독한 바람은 우리의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만일 예수님 안에서 위로를 구하도록 인도해 준 슬픔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구호, 20)

▣ <곤란한 문제가 해결될 것임>
“우리가 주님을 찾고 매일 변화가 된다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선택하기만 하면, 우리가 그분의 은혜스러운 초청에 기쁜 마음으로 응하여 그리스도의 멍에(순종과 봉사의 멍에)를 메게만 되면, 우리의 모든 불평은 사라질 것이며 모든 어려움은 제거될 것이고 모든 복잡한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산상보훈 145(구호, 312)

◉ 웃음으로 생기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부정적인 육체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 준다.

(목) 6월10일
<즐거운 마음 : 실제적인 낙천주의(樂天主義) (잠 17:22)>

▣ 승리(勝利)는 선물(膳物)이다.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은 “중력(重力)의 법칙(法則)” 때문에 추락(墜落)하고 만다.
그가 추락하지 않는 유일한 경우는 중력의 법칙보다 더 큰 법칙이 효력을 발생할 때이다.
만약 그가 행글라이더를 타고 있으면, 공기역학 법칙이 중력보다 크므로 그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중력의 법칙은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상위의 법칙에 압도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이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렸을 때,
그들의 유일한 행동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벽주위를 돌았고,
정해진 시간에 그들이 승리의 소리를 크게 질러 외치자 성벽이 무너졌다.
그들이 주님의 명을 따르지 않고 그들 자신의 전투계획을 세웠더라면,
치밀한 계획과 막강한 군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패배했을 것이다.
우리는 믿음 가운데 승리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승리를 경험한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물(膳物)인 승리를 주신다.

◇ 피루스의 승리
주전 3세기에 헬라에 “피루스” 왕이 있었다.
이 왕이 2만5000명의 군인과 20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했다.
격렬한 전쟁이 끝난 후, 피루스 왕은 승리를 얻었지만 그만 자신의 코끼리도 다 죽고 군인들도 4분의 3이나 죽었고 남은 병력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것을 ‘피루스의 승리’라고 한다. 패배나 진배없는 승리를 말한다.
마치 헤비급 권투선수가 챔피언에게 도전해 판정승을 거뒀지만, 너무 맞아서 다음날 골병이 들어 죽어버린 것과 같은 승리다.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피루스의 승리와 같다.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해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패배뿐이다.
매우 소중한 것으로 생각했던 승리의 전유물이 사실은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승리가 바로 그렇다.

▣ 웃음과 즐거운 생각은 건강에 유익하다. 웃음은 허파를 움직이게 만들고, 순환계를 자극한다. 웃음은 혈액의 산소 농도를 증가시키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해 장기적으로는 혈압을 적절히 낮추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웃음은 엔돌핀의 생성을 도와 신경의 안정과 통증완화에 도움이 되며, 면역세포들의 활동을 증가시킨다. 낙천적이고 즐거운 마음가짐은 우리의 삶이 그분의 통치 안에 있다는 지식을 발견 하게 될 때, 더욱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계속 웃고 계속 즐거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태도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굳건하게 그분을 신뢰할 때, 우리는 확실한 혜택을 거두게 될 것이다. 연 구결과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긍정적이고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면역력 향상이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우리가 즐겁게 생활하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심화 발전시키면 정서적, 영적 치유뿐 아니라, 육체적 치유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잠 17:22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즐거운 마음은 좋은 것이지만, 상한 심령은 우리 전 존재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다윗은 이런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고, 계속되는 그의 난관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역할을 잊지 않았다.

◉ <참된 기쁨을 얻는 길>
“사람들이 인위적인 것들에 주의를 덜 기울이고 더욱 많은 단순성을 계발한다면 저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훨씬 더 가까이 이를 것이다. 교만심과 야망은 결코 만족 될 수 없으나 참으로 현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 두신 기쁨의 근원에서 가치 있고 기분을 돋우는 즐거움을 발견 할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49)

▣ “주께서는 안식일을 즐거운 날로 삼도록(사 58:13) 당신의 백성들을 초청하신다. 어떻게 그와 같이 할 수 있을까?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를 때에만 그들은 참된 기쁨과 하나님께서 이 날에 저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만족을 경험할 수 있다.” (교리, 245)

▣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만 사람에 뛰어나”는 분, “전체가 사랑스”러운 분으로 밝혀져야 한다(아 5:10, 16). 그분은 모든 참된 기쁨과 만족의 근원, 온갖 훌륭하고 완전한 선물의 시여자(施與者), 모든 축복의 창시자, 영생에 대한 우리의 모든 소망이 집중되어 있는 분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모든 종교적 행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인 경험의 기쁨을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나타내야 한다. 구주를 모든 죄의 결과에서 회복시켜 주시는 분으로 나타내라.”(2보감, 440)

▣ “주님께서는 가장 크고 가장 참된 기쁨을 마음에 부어주시기 위하여 오랫동안 기다리셨다. 주님께서는 오직 한 마음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크게 축복하실 것이다. 그처럼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은 저희 죄를 담당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에 대하여 더욱 밝은 견해를 가질 수 있으며 반석이신 주님 안에 숨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우리 인류를 위하여 바쳐진 그리스도의 희생을 우리들이 깊이 느끼게 될 때에 우리의 입술은 가장 고상하고 가장 떳떳한 찬미의 주제를 부를 것이다.” (부모, 369)

◉ 하나님을 믿고 그의 통치 속에 거하는 인생은 훨씬 즐겁고 건강하다.

◉ <정신치료>
“감사와 찬양의 정신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더욱 잘 증진시켜 주는 것은 없다. 우울하고 불만스런 사상과 감정을 물리치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면, 슬퍼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끼어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탄식하고 불평하면서 걸어갈 수 있을까?”(치료봉사, 251)
“십자가가 없었다면 인류는 아버지와 연합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우리의 모든 소망이 달려 있다. 십자가로부터 구주의 사랑의 빛이 비쳐 나오므로 십자가의 발아래 에서 죄인이 그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을 쳐다볼 때에, 그는 충만한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죄가 사함을 받은 까닭이다. 죄인이 십자가 곁에 믿음으로 무릎을 꿇을 때, 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에 도달한 것이다.”(사도행적, 209~210)

◉ “새롭게 된 땅에서 얻을 확실한 유업을 바라보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혹독한 시련과 고통의 때에도 즐거워하였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 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 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사도행적, 517~518)

<초점(焦點)>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거할 때,
예수님과의 관계가 연결되어 긍정과 희망이 찾아오며 새로운 힘을 얻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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