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기 4과 은혜와 심판의 하나님(교과토의자료 및 부가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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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대언 작성일12-01-20 13:13 조회5,633회 댓글14건첨부파일
- 제1기 4과 은혜와 심판의 하나님 교과토의 자료.hwp (33.0K) 500회 다운로드 DATE : 2012-01-20 13:13:40
본문
1. 안교교과: 30%이상 말하지 말라, 경청, 격려 중요!
*제목: 은혜와 심판의 하나님
*기억절: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2. 도입질문: 마음을 열기 위한 질문
1)토의질문:
그대가 벌 받아야 상황인데 용서 받아서
벌을 덜 받았거나 벌 받지 않았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봅시다.
(또는 받은 벌 중에 이 벌은 정말 억울하다 라고
생각되는 벌이 있으면 나누어봅시다.)
2)교사정리: 감사합니다.
3. 교과요약
1)질문:
오늘 4과는 은혜와 심판의 하나님에 대해서 배웁니다.
은혜와 심판, 자비와 공의가 분리될 수 없이
어떻게 서로 공존하는지 살펴봅니다.
각 교과의 요일별 내용을 요약하여 알아봅시다.
2)교사정리:
*들어가면서(부가설명)
제목처럼 은혜와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생각나게 한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분리시키고자 노력하나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는
분리할 수 없음을 증명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를 말하고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의 품성을 따라 행하는 것을 공의라 하며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에 못지않게
그분의 공의에도 표현되어 있다.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초석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진리와 공의로부터
자비를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의 의가
평화의 적이 된다는 것을
밝혀 보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것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도록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므로
전자는 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시 85:10)다. “
(소망 763,764)
이것을 증명한 곳이
바로 십자가이다!!
①일요일(심판의 날):
하나님의 심판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예상 되는 답: 무서움, 두려움 등)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움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이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7,18)
심판이 두려운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가 설명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아는데
그 사랑 안에 거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가 사단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완전히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품성을 이해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알면서도
자기 자신의 이기적이고
독자적인 생각을 따르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소망 762)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사단이 하나님의 품성을 너무나 곡해시키고
오해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을 바르게 아는 것으로
머물면 안된다.
그 사랑을 바르게 알고
그 사랑에 반응하여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판에 대한 오해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직접 죄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시는 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에 대한 판결을
집행하시는 분으로 죄인 앞에 서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거절하는 자들을
버려 두시사 그들 스스로 심은 것을 거두게 하신다.“
(쟁투 36)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시키지 아니하신다.
멸망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것이 될 것이다.
양심의 경고를 무시하는 자는
불신(不信)의 씨를 심는 자이다.
그 씨는 정확하게 불신을 수확하게 될 것이다.”(실물 84)
하나님은 직접 집행하는 것이 아닌
직접 멸망시키는 것이 아닌
죄인들이 선택한 그 결과를
거두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강제로 죄인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를 거절하고
생명을 주시고자 하시는 그분의 은혜를 거부하면
그 결과 죄인은 스스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곳에
자신을 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죄인의 그 선택을 인정하시고
죄인의 원대로 그 생명을 거두신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심판은
죄인 스스로의 결정을 거두어 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강제하시는 것이 아닌
죄인의 선택을 인정하시고
그 원대로 해주는 것이다.
노아 홍수 당시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의 돌이키는 사랑의 호소를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그래서 생명과 빛으로 나오는 대신
사망과 어두움에 있기를 원했다.
생명을 거절하는 상태
구원을 거절하는 상태
죄에서 벗어나기를 거절하는 상태
이것이 정죄의 상태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죄인의 원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죄이다.
이 정죄의 상태에서
사랑의 하나님은 정죄에서 벗어나서
그들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
노아를 통해 호소했다.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가
더 이상 그들에게 변화를 줄 수 없는
한계점 즉 죄가 관영하여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에
그분은 죄인의 거둔 그 결과를
그 원대로 허락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심판은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끝까지 죽기를 결정한 자에게
하나님은 가슴 아픈 슬픔으로
그 길을 허락하신다!
마지막 불의 심판 역시 이와 같다.
끝까지 생명의 길을 거절하고
생명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거부한 죄인들에게
그 원대로 해주는 것이다.
생명을 거절하면
죄인에게 찾아오는 결과는 무엇일까?
생명의 반대는 사망이다.
그러니 죄인의 마지막은 사망인 것이다.
결국 사망은 죄인이 스스로 거둔 것이다.
“때에 끝이 이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옹호하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사단과 그의 반역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끊어질 것이다.
죄와 죄인들이 다 파멸될 것이다.
“뿌리와 가지”(말 4:1)
즉 뿌리인 사단과
가지들인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겔 28:6~19; 시 37:10; 옵 16).
그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독재적인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한 자들이
저희가 뿌린 것을 거두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사람이 죄를 섬기기로 선택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생명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소망 763,764)
②월요일(에덴에서의 심판과 은혜):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으로 죄를 지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심판을 선포하기 전
무엇을 먼저 말씀하셨습니까?
(답: 구원의 계획(은혜의 복음)을 먼저 말씀하셨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지을 모든 죄를
사랑의 하나님이 책임지기로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받아야할 그 심판을
그분이 대신 받으시고 인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공의이다!)
*부가설명 (자유의지속에 담긴 십자가의 사랑)
만들어진 모든 물건에는
만든 목적이 있듯이
창조에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 때에는
자기가 만든 것을
자기의 소유로 여기며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여
자기 뜻대로, 자기의 유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자기의 유익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이타적인 사랑, 주는 사랑의 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분들은 이 사랑을 통한
행복을 나누기 위해 반드시 창조하셔야 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면
창조는 필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분의 하나님은
무아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가지셨다.
이 사랑은
상대방의 어떠한 반응과
아무런 상관없이
변하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한결같은 사랑이다.
또한 이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사랑이며(행20:35)
섬김 받는 것보다 섬기는 사랑이다!(마20:28).
이 사랑만이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준다(신10:13).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고 계셨다.
그런데 이 행복을
세분의 하나님들만 누린다면
이것은 집단 이기주의가 된다.
개별적으로는 이타적일 수 있으나
이 행복을 세분만 누리고 싶다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가 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이타적 사랑을
가지신 분들이다.
이 행복을 하나님들만 누릴 수 없었다.
이 행복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 행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
창조를 계획하신 것이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이다.
즉 삼위 하나님이 누리는 행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를 계획하셨다!
창조주의 창조는
사랑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섬김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누리는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 즉
주는 사랑을 하는 것
섬기는 사랑을 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다.
하나님이 누리는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반드시 주어야할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행복의 원리인
이타적 사랑, 주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 가운데 순종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하늘의 행복이 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유의지이다.
이것을 주지 않으면
첫 번째 원리에 의해야
이타적인 사랑 가운데서 살지만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이타적 사랑을 하는 로봇이되는 것이다.
로봇은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만약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고
자기가 마음대로 인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를 주실 수 밖에 없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3: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계획하실 때
행복의 원리인 사랑과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 주게 되면
행복의 원리인 이타적 사랑을
버리고 이기적 사랑, 받는 사랑, 상대적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즉 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자유를 준 이상
죄를 선택하더라도 강제적으로 막을 수 없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할 수 는 있어도
사랑의 강권을 할 수 있어도
막을 수는 없으시다.
선택의 자유를 준 사랑의 하나님은
강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신다는 것은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허락하시는 행위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자유를 주면
행복의 원리인 이타적 사랑을 버리고
반대의 길인 죄를 선택할 가능성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선택의 자유를 남용하여
죄가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구속의 경륜
십자가를 준비하셨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죄라는 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를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를 사하는 십자가도
존재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자유와
십자가는 서로 나뉠 수가 없다.
인간을 사랑하시되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의지까지도 주시는 사랑
그리고 그 죄의 책임까지도 지시는 사랑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인간이 죄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슬픔과 고통,
곧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기를 각오한 사랑이다.
결국 자유의지를 준 하나님의 사랑은
마침내 십자가에서 그 사랑이 폭발했다!
죄와 그 값이 사망을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시고
이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생명을 얻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셨다!
결국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구원에 관한한 모든 것을 계획하게 했으며
십자가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희생을 각오하게 했으며
영원토록 하나이신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해 영원한 분리 경험하게 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승리했으며 이 사랑이
우리도 승리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③화요일(홍수):
죄가 관영함으로 홍수의 심판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사랑을 가진 하나님께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셨습니까?
(답: 마지막 은혜의 기간인 120년간
죄인들을 돌이키기 위해 노아를 세우시고,
방주를 지으면서, 홍수의 기별을 증거하면서
그리고 동물들을 방주에 타도록
천연계를 놀라운 기적을 보이면서까지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이 말씀과 같이 노아의 시대에
그들은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짖음을
들어야 했다!)
*부가설명
창세기 6장 3절에
노아 당시의 악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은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주권적 표현,
능동적 사랑의 표현으로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악함 때문에
떠난 것처럼 표현 되었지만
사실은 우리의 악함이 성령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를 떠난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귀찮아서 아버지의 보호가 싫어서
집나온 탕자처럼
노아 당시의 죄인들은
성령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가 싫어서
그분의 보호하심이 싫어서
그 손길을 벗어난 것이다!
그 결과 죄악이 관영해지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노아를 통해서
120년동안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말씀하셨다.
이 소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짖음이었다.
한명도 멸망시키지 않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아리였다!!
그러나 그 음성은 철저히 거부 당하셨다.
심판의 원리가 강제가 아닌
죄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를 거부하는 그들에게
그 원대로 그분의 보호의 손길을 거두고자 했다.
그래서 노아 홍수는 창조전 상태로 돌아가는
언어를 사용한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창조주를 거절했기에
그 원대로 하나님은 창조전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심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질 정도로 가슴아팠다.
그리고 죄인을 이러한 지경으로 만든
죄가 그렇게 미웠다.
한편으로 그동안 보호하셨던 손길을 거두신다는
그분의 마음을 죄인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 아들까지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상상으로 헤아릴수 없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눈믈을 머그머시면서
그 힘을 거두셨다.
죄인들이 홍수 속에서 죽어갈 때에
사랑의 하나님은 가슴 아팠다.
노아홍수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거절한 그들의 선택을
그 원대로 허락하신 것이다.
홍수의 심판을 생각할 때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가슴 아픈 사연을
생각하면 좋겠다.
그리고 죄인이 하나님을 완전히 거절한
상태에서 더 산다는 것은 절대 행복한 삶이 아니다.
죄의 삶은 불행한 삶이고
이러한 삶이 지속될수록 불행한 삶은 지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에는
죄인을 잃어버리는 가슴 아픈 사랑도 있지만
그 심판 속에 죄인의 불행을 끝내시는
하나님의 가슴 아픈 사랑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④수요일(정죄와 은혜):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정죄 당하고
심판받을 수 밖에 없으나
이 정죄와 심판에서 벗어날 길을
사랑의 하나님은 이미 준비하셨습니다.
그 은혜는 무엇입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요3:18 참조)
*부가설명: 일요일 부가설명 참조 바랍니다.
여기에 심판과 정죄의 의미를 정리했습니다.
⑤목(심판할 때):
세상을 구원할 최후의 기별인
세천사의 기별에서 첫째 천사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무엇을 먼저 선포합니까?
(답: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즉 심판을 피할 은혜의 기별이 먼저 주어지는 것이다.)
* 부가설명
세 천사의 기별은
사단에 의해 오해되고
곡해된 하나님의 품성을
바르게 증거하기 위해 주어진 기별이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대해 오해하는 백성에게
참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기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천사의 기별의
시작인 “영원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세 천사의 기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드러내지 못할 수 있다.
심판이 이르면
우리는 더 이상
생명과 사망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다.
심판의 때에는
이미 선택한 것을
거두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첫째 천사의 기별에서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으니”라는 말은
더 이상 선택할 수 없는 시간이 이르기 전에
속히 영원한 복음을 받아 드리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인 것이다.
영원한 복음을 이해하게 되면
영원 지옥설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오해시키는 거짓 기별을 거절하게 되고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진리를 오해시키는 기별도 거절하게 된다.
심판의 개념도
진노의 개념도
공의의 개념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르게 이해되는 것이다!
4. 교과토의
1)토의질문(일-목):
죄 많은 인간에게 심판과 은혜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할까요?
심판은 필요없지 않을까요?
은혜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왜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한지 나누어봅시다.
*교사정리:
감사합니다. 심판이 없다면
실은 은혜도 필요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이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가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사랑의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 대신 심판 받게 하시고
심판에서 벗어날 구원의 은혜를 준비하셨습니다.
심판과 은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분리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토의질문(일-목):
하나님의 어떠한 공의와 심판 속에서도
죄인을 향한 그분의 끝없는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섭고 두려운 분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이런 것을 느낀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하나님을 오해했는데 그 오해가 풀렸던 경험...)
*교사정리: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진리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갈바리의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사랑)을
통해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복음전도 190)
5. 결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심판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여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도록
바르게 증거하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댓글목록
현대언님의 댓글
현대언 작성일
교과토의는 한장으로 프린트 해서
볼 수 있도록 정리를 했습니다.
단 한장으로 만들다 보니
교과토의 안에는 부가설명을 제외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혜와 심판의 개념을 잘 이해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리하다보니 부가설명이 많이 길어졌네요^^:
행복한 안식일 되십시오!!^^
교과사랑님의 댓글
교과사랑 작성일
심판에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은혜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현대언님의 댓글
현대언 작성일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더욱 행복하세요^^
말씀연구님의 댓글
말씀연구 작성일
목사님 수고 많으십니다!
지난 교과에서 정구성님과 토의 내용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품성에 기초된 심판, 재앙, 진노(의분,죄에 대한 미움) 등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표현의 정확성도 중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은혜 많이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현대언님의 댓글
현대언 작성일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행복하세요^^
이은길님의 댓글
이은길 작성일다운 로드가 안되네요 항상 큰 도움이 되여 너무너무 공부하기 좋으며 특히 한장으로 되여서 좋아요 수고 많이 하십시요 감사,,,,,
현대언님의 댓글
현대언 작성일
장로님 방갑습니다^^
건강하시죠!
제가 다시 확인해 본 결과 다운 로드에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교과 토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강건하십시오!!^^
말씀연구님의 댓글
말씀연구 작성일
목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정구성 님과의 토의에서
정구성님이
'사단이 한 행위를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표현한 것은
책임지시는 사랑의 표현이다'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책임지시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 표현은 이해하겠는데
사단이 한 행동은 하나님이 했다라는 것은 잘 이해할 수가 없어서
질문드립니다
답변부탁드립니다^^;
현대언님의 댓글
현대언 작성일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관한한 책임지시는 언어를
사용하시지 사단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책임지시는 언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해서 책임지시겠다는 것인데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십자가에서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사단에 대한 죄에 대해 책임지시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사단의 죄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쟁투 시작에
사단은 모든 악은 하나님의 통치의 결과라 했고
죄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죄에 대한 장본인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했죠!
"사단은 자신이 하늘에 불화를 일으켜 놓고는
그것을 하나님의 정부의 잘못이라 비난하였다.
그는 모든 악은 하나님의 통치의 결과라고 언명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개선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장의 본질
곧 그가 제안했던 하나님의 율법의 변경에서
오는 결과를 나타내 보이도록 그에게 허락하셨다.
그 자신의 행위가 그를 정죄해야 하였다."
(부조 42)
그래서 구속의 경륜의 내용 중에는
죄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단인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속죄일의 마지막 과정은
사단을 상징하는 아사셀 염소에게
모든 죄를 옮김으로
죄의 대한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닌
사단에게 있음을 공표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연구님의 댓글
말씀연구 작성일
명쾌한 해석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교과 해석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땅콩님의 댓글
땅콩 작성일
목사님 존경합니다^^
건강하셔야됩니다
하나님 원하고있습니다
현대언님의 댓글
현대언 작성일
아이쿠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저에게
존경이라는 말 부담이 되는군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목사 되도록 노력하겠씁니다!!
감사합니다.^^;
오리온성좌님의 댓글
오리온성좌 작성일
교과를 쉬게이해할수있도록
해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대언님의 댓글
현대언 작성일
오리온 성좌님 닉네임이 멋지네요
아 위에 땅콩님도 특별하고 재밌는 닉네임입니다^^
더 좋은 토의식 교과해석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강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