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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 03 구속주 하나님(질문, 대답, 부가설명)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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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2-01-13 13:07 조회9,06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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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43분
기억절 :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12).
연구 범위: 롬 1:18, 창 3:15, 롬 16:20, 벧전 1:19, 막 10:32~45, 마 27:46.
구속주와 창조주 하나님의 역할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죄는 너무 악하고 치명적이며 위협적이기 때문에 오직 창조주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 죄는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조주가 아니면 존재를 회복시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말씀 하나님께서 상실한 존재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우리가 그동안 할 수 있었던 그 어떤 행위나 조치가 아닌, 오직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심으로 아무도 그것을 짊어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계획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편지하였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십자가가 치욕스런 이유는 인간의 생각에 너무도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이다. 무한하고 거룩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비뚤어진 인간의 영혼과 심지어 공공연한 원수들을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시고 그들의 죗값을 대신 당하심으로 그들이 그 형벌을 면할 수 있게 하셨다! 이해할 수 없다. 속죄는 너무 깊고 중하고 심오하여 우리의 이해가 미치지 못한다. 이해의 한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경배뿐이다.
※ 학습 목표
. 깨닫기 :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는 핵심 계시로서 십자가를 강조하는 신구약의 여러 기사들과 상징들을 연구한다.
. 느끼기 :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와 흑암의 장막 뒤에서 고뇌하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 행하기 :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일부분으로써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한다.
A.
. 잘못한 자식을 혼내는 부모와 용서하고 감싸는 부모 중에 누가 옳다고 생각합니까?
※ 이런 경우는 일괄적인 정답이 없다. 경우를 따라 대처해야 하는데, 결과는 용서로 귀착되어야 한다. 그리고 품어주고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녀가 자기의 허물에 대하여 진정한 깨달음을 주고 개선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하나님의 용서가 바로 그렇다.
. 하나님은 위 두 부모 중에 누구와 더 가까울까요?
※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그러나 그 용서가 계속 잘못해도 괜찮다는 허락이 아니다. 예수님은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에게 용서하시고 정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 십자가 사건에서 사랑도 물론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분노를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 십자가는 죄와 사망은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셨다. 죄인의 용서를 위하여 죄 자체는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죄를 처리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은 진노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B.
. 성경은 어떤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대속의 개념을 설명했습니까?
※ 여러 경우가 있지만 모리아 산에서 있었던 아브라함과 이삭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십자가는 죄에 대한 분노와 죄인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조화시켰습니까?
※ 죄에 대한 것은 독생자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드러났고, 그분의 죽으심이 죄인의 용서가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사랑임을 드러내셨다.
결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겪으셨던 고뇌와 공포 그리고 이런 고통 속에 아들을 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아픔은 참혹한 죄의 대가와 우리 대신 죄의 형벌을 당하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잘 예증하고 있습니다.

첫째날(일) 1월 15일
십자가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질문1.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성경절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답: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당하시는 하나님의 고난을 동시에 가르치고자 한다.

질문2.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롬 1:18에서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어떻게 표현하였는가?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답: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생명이시며 하나님의 생명의 본질은 사랑이다.(요일3:15참고) 하나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는 이타적 사랑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이타적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도덕적 안목으로만 보면 그것은 분명한 이타적 사랑이지만 복음은 그것이 그 이상의 것이라고 외친다. 그것은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상대방을 살려주려는 정신으로 생활하게 될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의 죄를 대신하여 처리하시고 그 사망에 처한 죄인에게 생명을 주시려는 은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에는 사망을 대신 당하는 고통이 동반한 것이다.

교훈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동기였다.

둘째날(월) 1월 16일
구약의 복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질문1. 언제 구원의 약속이 처음으로 주어졌는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창 3:15)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답: 인류의 시조가 선악과를 먹자마자 구원의 약속이 주어졌다. 그 의미는 사단과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구주 사이의 대 쟁투가 있을 것이며 결과 여자의 후손은 고난을 당할 것이고 뱀은 죽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질문2. 바울은 창 3:15에서 용기를 얻었다. 그는 롬 16:20에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였는
가? 그가 말하려는 핵심은 무엇인가?
[롬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답: 사단이 망하고 구원이 확정되었다는 사상이다.

질문3. 창 22:1~19은 속죄의 장면을 대단히 회화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장면으로부터 우리는 미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하여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창22:1~19]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4 제 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답: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죽으실 것을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 장면에서 구주를 확실히 만났다.(요8:56 참고)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아야할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분명히 깨닫기를 바라셨다. 그는 여러 부분과 모양으로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셨다.(히1:1) 창3:15을 위시하여 구약성경에 기록된 많은 인물과 사건과 제도가 구원의 도리를 나타내고 있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제물로 드린 모리아 산의 사건이나,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사건, 성소제도와 절기제도 등등. 구약 전반에 걸쳐서 구주의 오심과 하실 사업을 표상적으로 계시해주셨다.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는 정직한 마음으로 구약성경을 읽으면 거기서 구주 예수님을 반드시 만나게 해 주셨다. 유대인은 너무 정치적 메시야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 귀한 진리를 간과해버리는 불행에 빠진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요5:39에서 말씀하셨다. 그때 말씀한 성경은 구약성경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이니까.

교훈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극복할 날이 올 것임을 계시하셨고, 다시 아브라함에게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을 보여 주셨다.

셋째날(화) 1월 17일
이사야서의 구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질문1.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절망에 빠진 두 제자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눅 24:27)에 나와 있는 속죄의 교훈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떤 선지서의 글들을 인용하셨을까?

답: 성경에 기록된 대로 모세 오경과 구약에 기록된 선지서들에 내용을 말씀하셨을 것이다. 특히 이사야 53장을 말씀했을 수도 있다. 이것은 구스 내시고 읽던 내용이다.

질문2. “고난 받는 종”을 소개하는 사 53장을 읽어 보라. 어떤 구체적인 요소들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사53:1~1]사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답: 유명하지 않게 성장하셨다. 멸시를 받으셨다. 간고를 많이 겪으셨다. 슬픔과 질고를 대신 지셨다. 매 맞고 찔리고 상하셨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다. 심문 받을 때 잠잠하셨다. 악인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다.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셨다. 부자의 무덤에 장사되었다.

질문3. 벧전 1:19, 2:21~25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이사야 53장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2:21~25]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답: 이사야 53장의 예언을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에 적용하여 설명하였다.

<부가설명>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일지라도 이사야 53장은 상당히 곤란하게 하는 성경말씀이라고 한다. 이 장을 질문하면서 예수님의 당하신 사건과 대조하여 설명해도 그들은 믿지 않고 언젠가 그런 분이 나타날 것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은 고난당하는 메시야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구주가 이와 같은 경험을 할 것은 창3:15부터 분명하게 계시하셨다. 예수님 사건은 하나님의 예정이다.(행2:23) 성경 예언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이다.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 사실을 명백하게 예언으로 계시해주셨다. 예수께서는 예언을 다 이루셨다. 그분에 구주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구약에 예언된 그 길로 오지 않은 자는 천하없는 자라도 구주는 아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약의 예언된 그 길로 오시고 이루셨다. 그래서 천하 인간의 다른 이로서는 구원 받을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주이시다.

교훈
선지자 이사야는 죄 지은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으로써 고난 받는 종의 대속적 죽음을 예언하였다.

넷째날(수) 1월 18일
복음과 십자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질문1. 막 10:32~45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다가올 죽음을 어떻게 묘사하셨는가?(33~34절)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가?(35~37절)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42~45절)
[막10:32~45]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답: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그들의 요구는 예수님의 하실 구원의 사업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구속 사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예수께서는 예수님의 고난의 잔을 마시는 자가 하나님께서 예비한 자리에 앉을 것인데 그것은 섬기는 삶으로 드러난다고 하셨다.

<부가설명> 제자들도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고난당하시는 구주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고정관념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오늘날 재림신도들도 어떤 고정관념에 깊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성경말씀 앞에서 말씀이 말하는 대로 듣는 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든지, 설교를 들을 때든지, 성경에 대한 글들을 읽을 때든지 자기 속에 깊이 박아둔 고정관념의 울타리 안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 앞에 던지고, 오직 성경이 말하는 것을 성경이 말하는 대로 듣도록 성령의 지도로 훈련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 있는 자가 들으라고 하셨다.

교훈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가장 큰 사명은 그분의 죽음이었고 사복음서도 주님의 죽음을 핵심적으로 다루었다.

다섯째날(목) 1월 19일
십자가에서의 절규
질문1.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절규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절규로부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치르신 대가를 얼마나 이해하게 되는가?

답: 이 절규는 하나님이신 사람이 죄자체가 되는 고통의 부르짖음이다. 그는 죄를 알지도 못하셨는데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셨다.(고후5:21) 하나님이신 그분이 스스로 계신 분이 지금 그 존재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그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믿음으로 수용할 뿐이다.

교훈
십자가에서 외친 주님의 절규는 그분의 죽음이 단지 이타적 사랑의 모본이 아닌 우리의 죄를 대속하려는 하나님 자신의 희생이었음을 보여 준다.

여섯째날(금) 1월 2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의 사명과 관련하여 나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것들을 표현함에 있어서 오, 나는 얼마나 무능하고 무력한가! …나는 대속의 희생의 큰 주제를 어떻게 말할지 어떻게 글로 표현할지를 모른다. 나는 내 앞에 나타났던 그 주제들을 생생한 능력으로 제시할 줄을 모른다. 나는 값싼 말로 그 위대한 구원의 계획의 품위를 낮출까 봐 두려워 떤다”(가려 뽑은 기별 3권, 115).
“예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 우리를 위하여 하신 그 희생은 가장 신중하고 엄숙한 묵고(默考)를 요한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시는 구속자요 중보자이신 그의 품성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같이 하늘에 대한 문제를 묵고할 때에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점점 강하여질 것이요 우리의 기도는 더욱더 하나님께 가납될 것이니 이는 우리의 기도가 더욱 믿음과 사랑으로 하는 기도가 되기 때문이요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께 대하여 더욱 충실한 신뢰를 가지게 될 것이요,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를 온전히 구원하시는 그의 능력에 대하여 날마다 산 경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정로의 계단, 8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성경의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면서도 죄는 심히 미워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본질을 표현할 때 둘 중에 하나만 고르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까?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죄를 미워하시는 주된 이유가 됩니까?
※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죄 자체를 처리하셨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다. 죄를 미워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는 것은 동일한 모습니다.

➋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이따금씩 주고받는 미약한 애정과 같지 않습니다.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의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 예수께서 세상에서 나타내신 모든 것, 그분의 탄생으로부터 십자가와 부활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남이다. 그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표현하였다.(롬8:39)

❸ 우리의 죄악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비교할 때, 그대는 구원의 값이 그토록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우주에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 구원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하면 바다와 모래알로 비교해도 비교되지 않는다.

❹ 창 22장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다시 묵상하십시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본질을 이해하게 됩니까? 또는 이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원래 표상하려던 것과 달리 취급됩니까?
※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받으신 것을 잘 표상하는 사건이다. 흔히 사람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아버지가 동참한 사실을 간과한다.

요약
창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성경은 죄가 가져올 영원한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죄인의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보여 주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상징과 비유들을 사용하지만, 그 중심에는 사 53장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그분의 대속이 자리를 잡고 있다. 행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죽음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타락한 존재가 그것 위에 무엇을 더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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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용님의 댓글

정수용 작성일

주님께서 목사님을 통하여 귀중한 말씀을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 드리옵니다.강건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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