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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과 복음과 교회(질문, 대답, 부가설명)12/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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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12-17 02:02 조회8,053회 댓글1건

본문

12월 24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8분

기억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연구 범위: 갈 6:1~10, 마 18:15~17, 고전 10:12, 롬 15:1, 요 13:34, 눅 22:3.

감자 농사를 짓는 어떤 농부들이 큰 감자는 먹고, 작은 감자는 씨로 남겨 두었다가 심기로 작정했다. 그 후에 그들은 밭을 몇 개 추수해 보더니 감자의 씨알이 구슬 크기만큼 줄어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농부들은 불행으로부터 중요한 생명의 법칙을 배우게 되었다.
“그들은 극상품을 얻지 못했을 뿐더러, 남은 것을 씨로 사용하지도 못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작은 감자를 심고 있다. 우리는 큰 것은 취하고 남는 것은 심는다. 영적인 법칙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기적인 것을 심고 이타적인 것으로 보상받기를 기대한다.” - International Student Fellowship Newsletter, March 2007.
바울은 갈 6:1~10에서 이 원리를 적용하였다. “서로 물고 먹는”(갈 5:15) 대신,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겸손과 인내와 동정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여야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이들과 관련을 맺으며 사는 방법을 살펴본다.
➋ 느끼기 : 유혹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자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자만심의 위험성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한다.
A.
❶ 교회란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예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로 평안하고 복되고 사랑이 실제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❷ 교회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어떤 정신과 목적으로 용납해야 합니까?
※ 용서와 사랑과 그 짐을 함께 져주는 정신과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키는 목적으로 용납해야 한다.
❸ 교회는 어디까지 짐을 서로 나눠져야 합니까?
※ 자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자기 짐을 자기가 질 수 있도록 회복시키면 될 것이다.
B.
❷ 나눠질 수 있는 짐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 서로 져야 하는 짐은 협력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 말은 원어로 바로스인데 가혹한 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짐은 포르티온으로서 남이 져줄 수 없는 문제이다. 남이 대신하여 질병을 앓아 줄 수는 없다. 남이 대신하여 음식을 먹어줄 수 없다. 자기 병은 스스로 회복되어야 한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먹어야 한다.
❸ 육체를 따라 심는 것과 성령을 따라 심는 것은 각각 어떤 의미입니까?
※ 육체를 따라 심는 것은 5장 19절부터 말한 육체의 일들을 행하는 것이고 성령을 따라 심는 것은 성령에게 자신을 전적으로 맡길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뜻한다.
❹ 우리가 기회가 되는 대로 비신자와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착한 일은 무엇일까요?
※ 전도하는 것과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살피고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도움을 주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얻도록 하는 것이다.

결론: 그리스도의 법이 우리의 삶을 통해 성취될 때,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넘어져 있는 자들을 돌볼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영적으로 교만해지거나 눈멀지 않도

첫째 날(일) 12월 18일 넘어진 자들을 일으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질문: 동료 신자가 악한 행위에 빠질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갈 6:1, 마 18:15~17)
[갈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마18:15~17]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답: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도록 도와주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원칙을 따라 권고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그런 사람들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정신을 버리고 정말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보아야 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잘못을 용납하고 두둔하지 않아야 하지만 가혹하게 비판하고 상처를 더 깊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상처주지 않는 사랑으로 접근하고 상처주지 않는 어루만짐으로 치료하도록 도와야 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하여서도 용서의 기도를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상처주지 않는 사랑으로 사랑하셨다.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는 말은 바로 이렇게 상처주지 않는 사랑으로 접근하고 바르게 이끌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또는 사랑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사람이 잘못한 것을 바로잡으려는 진정한 마음으로 접근할 때에는 상처주지 않는 사랑으로 접근하도록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접근하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

교훈: 신실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누구나 실수는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넘어져 있는 동료 신자를 붙잡아 일으키고 회복의 기회를 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둘째 날(월) 12월 19일 유혹을 조심하라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질문: 왜 바울은 영적인 교만에 대하여 갈라디아 신자에게 경고해야 했는가?(고전 10:12, 마 26:34, 삼하 12:1~7 참고)
[고전10:12]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마26: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삼하12:1~7]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2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5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답: 영적으로 교만해지면 넘어지기 직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거룩하고 의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신앙생활의 중심이 자기에게 쏠린다. 그래서 내가 말씀대로 이루지 못했고 내가 온전하게 성품이 완성되지 못했다고 걱정하거나, 또는 나는 날마다 계명을 다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범하지 않았다고 감사하거나 그렇게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이 둘 다 문제이다. 걱정하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가복음 18장의 잘했다고 하나님 앞에 자기 생활을 늘어놓는 바리새인같이 된다. 결국은 구주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능력을 시야에서 놓쳐버리게 되고 옛 죄를 사하여주신 것을 잊어버리고 근심에 싸이게 된다.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향상의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올라갈 때에 인간의 힘을 의지하기 시작하며, 얼마 후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시야에서 놓쳐 버린다. 그 결과는 실패 즉 얻었던 모든 것의 상실이다. 도중에 지쳐서 영혼의 원수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과 생활에서 계발되었었던 그리스도의 은혜를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는 사람들의 형편은 참으로 슬프다. 사도는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죄를 깨끗케 하심은 잊었느니라”고 선언한다.”(행적 532)

교훈: 우리는 다른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를 보고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조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셋째 날(화) 12월 20일 짐을 서로 지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질문: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워 주는 것 외에 바울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무엇을 당부하고 있는가?(갈 6:2~5, 롬 15:1 참고)
[갈6:2~5]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롬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답: 짐을 서로 지고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지 말고 각각 자기 짐을 지라고 권고하였다.

<부가설명>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는 이 말씀은 고전 10:12절의 말씀과 같은 뜻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짐을 서로 질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짐은 자기가 질 줄 알아야 한다. 2절의 서로 져야 하는 짐과 5절에 각각 자기가 져야 하는 짐은 원어가 다르다는 것은 서론부에서 이미 말하였고, 교과 저자도 설명하였다. 아무튼 이 말씀은 서로 져야할 짐도 있고 남에게 지게 할 수 없는 자기만이 져야할 짐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자기가 질 짐도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신자들이 신앙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각각 자기가 질 짐이다. 자기 자녀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키는 것도 부모가 질 짐이다. 이런 것을 교회에 맡기는 것은 자기 짐을 안지는 것이다. 물론 교회와 목회자와 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신앙이 성장해야하는 것은 자기이다. 남이 자기를 대신하여 성장해줄 수 없다. 자녀 교육도 같은 입장에서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돌보는 것도 그 가족이 져야할 자기 짐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사실을 지시하였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5:4)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신자들은 서로 짐이 되지 않도록 자기 짐을 스스로 져야하지만 또한 서로 질 짐이 있는데 혼자 지려고 하는 것도 바른 신앙태도는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교인들은 다 그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교훈: 모든 사람에게는 짊어져야 할 짐이 있으며, 그리스도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회로서 서로 짐을 나눠 지도록 계획하셨다.

넷째 날(수) 12월 21일 그리스도의 법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5).

질문: 바울은 짐을 지는 것과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명령을 연결시켰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법”이란 무엇인가?(갈 5:14, 6:2, 요 13:34, 마 22:34~40)
[갈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마22:34~40]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답: 요15:12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법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 짐을 져 주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한 그런 사랑의 실천 생활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라는 말씀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것을 찾지 않고 신학적 해석을 하기 때문에 교과 저자가 소개한 그런 설명들을 하는 것이다. 그 설명들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회적이다. 예수님은 아주 직설적으로 오해할 수 없도록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은 사람, 곧 예수님이 그의 생명이 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셔서 예수님이 살아가신 그 삶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갈2:20) 그래서 서로 짐을 져주기도 하고 자기 짐은 자기가 지면서 예수님이 사랑하신 그런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므로 성취되는 것이다.

교훈: 우리에게 있는 짐 가운데는 믿음의 동료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짐이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여 내가 꼭 감당해야 하는 짐도 있다.

다섯째 날(목) 12월 22일 심고 거둠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질문: 갈 6: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육체를 위해 심거나 성령을 위해 심었던 성경 인물에는 누가 있는가?(행 5:1~5, 눅 22:3, 단 1:8, 마 4:1 참고)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행5:1~5]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눅22:3]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답: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갈5:19~21에 기록된 육체의 일들이 생겨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성령으로 심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이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전혀 마음에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교훈과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단에게 지배되었고, 다니엘은 뜻을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에 승리했으며 예수님도 성령의 인도를 전적으로 수용하셨기 때문에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셨다. 다니엘이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심을 생활을 보여줬다.

<부가설명> 우리가 예수를 믿고 진정으로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행2:38)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도리를 등한히 하며 예수님의 계명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교회 다니는 정도에서 머물면 가룟 유다의 전철을 밟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역사의 종말에 남은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을 가진 자들로서 다니엘이나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뜻을 성령께 맡기고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생활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령으로 심은 삶을 이룰 것이다.
교훈: 결국 심은 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회가 닿는 대로 믿음을 가지고 선한 일을 행하며 영적인 것에 투자해야 한다.

예비일(금) 12월 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영은 악을 양심의 지배하에 둔다. 사람이 성령의 감화보다 자신을 높일 때 그는 죄악의 결과를 거둔다. 그러한 사람에게 성령의 감화는 점점 약해져서 불순종의 씨앗을 뿌리는 것을 막지 않으신다. 그에게는 경고가 끼치는 힘도 점점 약해진다. 점차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게 되고 육체를 위하여 심고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다.
…사람이 만약 그의 판단력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증거를 거절하고, 한 번 악을 택하면 두 번째에는 보다 쉽게 이것을 행할 것이다. 세 번째에는 더욱 열렬히 하나님에게서 물러나와 사탄의 편을 택하여 그의 편에 설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계속 가다가 마침내 죄 가운데서 굳어져서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거짓 것을 진리라고 믿기에 이른다. 진리를 거절한 그의 거절이 그 열매를 내는 것이다(원고 126, 1901)”(화잇 주석, 갈 6:7~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죄에 빠진 동료 신자를 다시 회복시킨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그가 저지른 죄악은 회복의 과정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까? 회복이란 이전과 같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까?
※ 동료 신자를 용납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가족으로 인정하고 친교 하는 것이다. 죄는 회복의 과정에서 계속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연 용서받을 것인가? 용서해주실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형제들이 시선을 의식하도록 마음을 휘어잡는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와 보혈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회복은 이전과 같이 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➋ 우리가 나누어 질 수 있는 짐과 스스로 감당해야 할 짐을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 나누어질 수 있는 짐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젯거리들이다. 많은 짐을 지고 먼길을 가야한다면 나누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짐들이 있다. 교과 저자의 표현대로 임신한 엄마는 그 임신한 것을 나누어질 수 없다. 배고픈 사람이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다른 음식을 대신 먹어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는 길밖에 없는 짐이 스스로 질 짐이다.

요약: 하나님의 임재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심령 속에 나타나고 잘못을 저지른 자를 용서하며 회복시키거나 시험 중에 있을 때 신자들이 서로를 돕고, 신자들 뿐 아니라 비신자에게까지 의도적으로 친절을 행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목사님, 자료를 올리실 때 한글파일을 첨부해 달라는 요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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