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과 영으로 살아감(질문, 대답, 부가설명)12/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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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12-09 08:39 조회8,910회 댓글8건본문
12월 17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5분
기억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연구 범위: 갈 5:16~25, 신 13:4~5, 롬 7:14~24, 렘 7:9, 호 4:2, 마 22:35~40.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찬미가 있다면 로버트 로빈슨의 “복의 근원 강림하사”일 것이다. 하지만 로빈슨도 항상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다. 부친을 잃고 분노한 그는 술과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그는 조지 화이트필드의 설교를 듣고 나서 주님께 삶을 맡기고 감리교 목사가 되어 이 찬미를 쓰게 되었다. 원래 가사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주의 귀한 은혜 받아 일생 빚진 자 되네. 방황하는 내 마음을 주께 묶어 주소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방황한다는 불편한 진실 때문에 어떤 이는 이 부분을 “내 마음은 우리 주를 경배하기 원하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랑하기 원하네.”라고 개사하였다.
편집 의도는 좋았지만, 원래의 가사는 그리스도인의 갈등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신자로서 우리는 두 종류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영과 육체이다. 둘은 서로 충돌한다. 죄로 기울어
지는 우리의 본성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방황하기 쉬우나, 우리가 그분의 영께 기꺼이 굴복한다면,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이번 주 우리가 공부할 기별의 요지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영으로 사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
➋ 느끼기 : 성령께서 지배하는 삶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죄로 향하는 본성에 사로잡힐 때 빚어지는 갈등을 이해한다.
➌ 행하기 : 매 순간을 성령과 동행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A.
❷ 초기 기독교인들은 왜 ‘그 길을 따르는(걷는) 자들’이라고 불렸을까요?
※ 예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❸ 자신의 욕구를 따르는 삶과 성령의 뜻을 따르는 삶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자신의 욕구를 따르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성령의 뜻대로 살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이룬다.(롬8:5~7 참고)
❹ 성령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오늘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은 무엇입니까?
※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딤전4:5)
B.
❷ 왜 우리는 마지막까지 영과 육의 갈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 우린는 지체 속에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몸의 지체를 죽이면 되는데 세상은 우리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을 자극하여 반응하게 한다.(롬7:21~23 참고) 우리는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롬8:13)
❸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 대신 “육체의 일”들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진정으로 거듭난 경험이 없거나,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스스로 의를 이루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이 세상의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것을 그냥 두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스려야 한다.
결론: 영을 따라 사는 것은 날마다 성령께서 지시하는 길을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모든 문제와 결정을 성령께 맡기고 죄악된 자아를 죽이기로 날마다 선택하기를 요구합니다.
첫째 날(일) 12월 11일 성령을 따라 걸음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5).
질문1: 갈 5:16을 읽어 보라. “행하라(걸으라)”는 개념은 믿음의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신 13:4~5, 롬 13:13, 엡 4:1, 17, 골 1:10)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신13:4,5]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5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엡4:1,17]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골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답: 행하라는 말은 걸어가라는 말인데, 바른 길을 따라 바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 길과 바른 걸음의 지침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계명이다.
질문2: 걸음에 대한 바울의 은유는 구약에 나오는 은유들과 어떻게 다른가? 출 16:4, 레 18:4, 렘 44:23을 갈 5:16, 25, 롬 8:4과 비교해 보라.
[출16: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레18:4]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렘44:2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
[갈5:16,25]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롬8: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구약의 걸음에 대한 것이나 바울의 가르침이나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구약은 율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그대로 행하라고 하지만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율법의 요구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한다고 가르친다.
<부가설명> 구약이나 신약이나 나타나는 행동의 모습은 다를 것이 없다. 구약의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사실을 바울이 깨달을 것처럼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당시 유대인 신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바울을 반대하여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사실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예수께서 구약의 언약들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역사로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생명을 얻는 것을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바울의 가르침을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의문의 율법은 예수께서 이루실 구속 사업을 표상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고, 십계명은 구속받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성령의 역사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율법의 의미는 동일하고 행한다고 할 때 그 나타나는 모습은 동일한 것이다.
교훈: 초기 기독교 제자들은 ‘그 길을 따르는 자’였으며 ‘성령을 따라 걷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둘째 날(월) 12월 12일 그리스도인의 갈등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질문: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그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위 말씀의 고통스런 실재를 얼마나 경험해 보았는가?
답: 이 질문은 반생들이 각각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부가설명>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살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범죄함으로 육체가 된 죄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육체라는 말은 “살크스”인데 히브리어 “바사르”를 헬라말로 표현한 것이다. 몸을 이루고 있는 “바사르(살)”는 창조당시에도 “바사르”라고 하였다. 창2:24의 “둘이 한 몸을”이루라고 했을 때 “몸”이 “바사르”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마태19:5에 인용하셨는데 마태는 그것을 “살크스”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몸을 이루는 재질로서 살을 육이라고 하는 것은 범죄 전이나 후나 동일한 단어를 썼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몸도 “살크스”라고 하였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살과 뼈가 있는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말씀이다. 여기 “살”도 “살크스”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이라고 할 때 이 몸을 이루고 있는 재질인 “살”의 소욕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범죄함으로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된 존재를 뜻하는 말이다. 이것은 창6:3에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한 말의 구역 난외 주에 “범과함으로 육체에 속하였으니”라고 한 바로 그 육체를 뜻하는 것이다. 개역에는 “육체이므로 범과함이라”고 난외에 주를 달았는데, 구역이 성경 전체의 사상과 일치한다. 교과의 저자가 자적한대로 그리스도인은 땅에서 난 첫 사람과 거듭남으로 위에서 난 둘째 사람이 한 인격 안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고전15:47~49) 이 둘이 날마다 격돌하는데, 바울은 육체에 있는 죄의 법을 지체 속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롬7:23) 그래서 우리의 지체를 항상 주님께 드리라고 당부한 것이다.(롬6:13)
교훈: 그리스도인들은 내적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께 죗된 자아를 맡김으로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육체의 소욕을 억누를 수 있다.
셋째 날(화) 12월 13일 육체의 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갈 5:19).
질문: 렘 7:9, 호 4:2, 막 7:21~22, 딤전 3:2~3, 벧전 4:3, 계 21:8에서 선과 악의 목록을 유심히 살펴보라. 이 목록들은 바울이 갈 5:19~24에 열거한 목록과 어떤 면에서 비슷하며 어떤 면에서 다른가?
[렘7:9]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호4:2]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막7:21,22]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딤전3:2,3]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갈5:19~24]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답: 바울의 목록은 육체의 일이라고 할 때는 “일들”이라고 하여 복수를 사용하였고, 성령의 열매는 단수를 사용하였다. 육체의 일들은 하나하나가 다 악이지만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 속성이 다 들어나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를 제대로 맺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있다.
<부가설명> 우리들은 아주 쉽게 성경에 열거한 이런 내용들을 도덕적 덕목이라고 말해버린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성경이 도덕적 성취를 말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한다. 나타난 결과가 도덕적 성취와 일치하고 사용하는 말들이 도덕적 표현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는 도덕적 성취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도덕적 수양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일들은 기록대로 육체가 맺는 열매들이다. 다시 말하면 죄의 인격자들에게 당연히 나타나는 열매들이라는 말이다. 종교가들과 도덕가들은 이것이 나타나지 않도록 수양하고 도야하여 교훈과 노력으로 이룬다. 그것이야말로 자력 성취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룬 것이 하나님 앞에 선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 더러운 옷으로 간주된다.(사64:6) 또 도덕적 선한 도덕적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는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맺게 하는 열매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성령의 열매”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이름을 의지하여 스스로 애써서 맺는 열매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다. 진정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여 맺게 하는 열매이다. 성령께서 맺게 하는 열매이기 때문에 그 열매는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속성은 아홉 가지 이상이다. 갈라디아에서는 아홉 가지를 말했지만 에베소나 다른 편지서에 또 다른 이름으로 열매들이 있다. 열매라고 했으니 속성이라는 말 대신에 맛이라고 해도 좋다. 하나뿐인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 이상의 맛을 가진 열매이다. 이런 맛 중에 하나라도 빠진 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고 도덕적 노력의 성취일 뿐이다.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훈: 육체를 따른 삶과 성령을 따르는 삶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육체는 여러 불행과 고통을 야기하며, 영은 복된 열매를 맺는다.
넷째 날(수) 12월 14일 성령의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질문: 성령의 열매에는 계명에 대한 순종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마 5:21~22, 27~28, 22:35~40 참고)
[마5:21,22,27,28]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22:35~40]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답: 성령의 열매는 계명의 실제적인 내용이 다 포함되어 있다.
<부가설명> 아마도 부가설명에서 여러 번 말한 것 같은데, 예수를 믿는 사라들은 예수 안에서 예수님이 자기의 생명이 된 사람들이다. 바울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했다.(롬8:9) 바울은 같은 8:2에서 성령을 생명의 성령이라고 가르쳐준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우리 안에 역사하게 하시는 생명의 성령이시다. 이 생명의 본질이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요한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줄 안다고 하였으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한다고 했다.(요일3:14)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도덕적 덕목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는 아주 바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도덕 이전에 예수 생명의 본질이다. 당연히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맺히게 되어 있는 성령의 열매이다. 그것을 인간사회에서 구체화시키되 아주 집약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십계명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십계명의 정신이 그의 생명과 인격과 생활이 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한 생명 한 사람 한 인격 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교훈: 성령의 열매는 십계명의 순종과 관련이 있으며, 아홉 가지의 덕목 가운데 가장 핵심적 덕목은 사랑이다.
다섯째 날(목) 12월 15일 승리의 길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질문: 갈 5:16~26에 따르면 육체를 성령의 지배 아래 두고 사는 인생의 비결은 무엇인가?
[갈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답: 그 비결은 진정으로 거듭난 경험에 이르는 것이며, 성령으로 사는 것이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의 설명으로 네 가지 단어를 지적하였다. 첫째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듭나면 성령으로 난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서 행하신다. 둘째 인도를 받는다는 동사이다. 성령께서 인도하는대로만 걷는다는 말이다. 셋째 살다라는 동사이다. 이것은 성령이 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넷째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인데 16절의 행하다는 성령과 동행한는 것을 나타내는 낱말이고 25절의 행하다는 군사용어로 스토이케오인데 이것은 대열을 잘 맞추어 행진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하였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과 대열을 맞추어 서로 협력하면서 돌보면서 보조를 맞추어 행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성령으로 행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고후12:18)
교훈: 육체를 성령의 지배 아래 두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매일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그분의 지도를 따라 행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예비일(금) 12월 1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인 생활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격렬한 투쟁에 대처해야 하고, 심한 유혹이 그를 공격해 온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화잇 주석, 갈 5:17).
“성령의 감화는 영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그에게 말을 하지만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 곁에 계신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 속에서,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성령의 내주(內住)를 아는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나타낸다(원고 41, 1897)”(상동, 갈 5:22~2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육체의 소욕을 못 박아야 한다는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렇게 해야 합니까?
※ 우리는 순간마다 그렇게 해야 한다. 육체의 소욕을 못 박는다는 말은 십자가를 항상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죄와 사망에 대한 것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언제나 자아를 씻어서 주님의 깨끗하심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➋ 성령의 열매를 맺는 데에 인간의 노력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그대의 경험에 따르면 그런 역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맺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 노력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다만 성령께서 내 안에 역사하시도록 자아를 굴복시키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성령께 의탁할 때 가능하다.
➌ 그대가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무엇입니까? 실망을 경험할지라도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용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사단의 공격으로 자주 상처를 입을 있다. 어떨 때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나아가 그 상처를 주님께 아뢰어야 한다. 주님은 보혈의 공로로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고 자비의 음성으로 어루만져주신다.
요약: 육적 욕구와 영적 욕구 사이에 갈등이 존재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패배의식에 빠질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소욕을 억제할 수 있도록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주시는 성령의 지배 아래 살 수 있다.
일몰: 오후 5시 15분
기억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연구 범위: 갈 5:16~25, 신 13:4~5, 롬 7:14~24, 렘 7:9, 호 4:2, 마 22:35~40.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찬미가 있다면 로버트 로빈슨의 “복의 근원 강림하사”일 것이다. 하지만 로빈슨도 항상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다. 부친을 잃고 분노한 그는 술과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그는 조지 화이트필드의 설교를 듣고 나서 주님께 삶을 맡기고 감리교 목사가 되어 이 찬미를 쓰게 되었다. 원래 가사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주의 귀한 은혜 받아 일생 빚진 자 되네. 방황하는 내 마음을 주께 묶어 주소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방황한다는 불편한 진실 때문에 어떤 이는 이 부분을 “내 마음은 우리 주를 경배하기 원하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랑하기 원하네.”라고 개사하였다.
편집 의도는 좋았지만, 원래의 가사는 그리스도인의 갈등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신자로서 우리는 두 종류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영과 육체이다. 둘은 서로 충돌한다. 죄로 기울어
지는 우리의 본성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방황하기 쉬우나, 우리가 그분의 영께 기꺼이 굴복한다면,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이번 주 우리가 공부할 기별의 요지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영으로 사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
➋ 느끼기 : 성령께서 지배하는 삶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죄로 향하는 본성에 사로잡힐 때 빚어지는 갈등을 이해한다.
➌ 행하기 : 매 순간을 성령과 동행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A.
❷ 초기 기독교인들은 왜 ‘그 길을 따르는(걷는) 자들’이라고 불렸을까요?
※ 예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❸ 자신의 욕구를 따르는 삶과 성령의 뜻을 따르는 삶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자신의 욕구를 따르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성령의 뜻대로 살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이룬다.(롬8:5~7 참고)
❹ 성령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오늘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은 무엇입니까?
※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딤전4:5)
B.
❷ 왜 우리는 마지막까지 영과 육의 갈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 우린는 지체 속에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몸의 지체를 죽이면 되는데 세상은 우리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을 자극하여 반응하게 한다.(롬7:21~23 참고) 우리는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롬8:13)
❸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 대신 “육체의 일”들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진정으로 거듭난 경험이 없거나,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스스로 의를 이루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이 세상의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것을 그냥 두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스려야 한다.
결론: 영을 따라 사는 것은 날마다 성령께서 지시하는 길을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모든 문제와 결정을 성령께 맡기고 죄악된 자아를 죽이기로 날마다 선택하기를 요구합니다.
첫째 날(일) 12월 11일 성령을 따라 걸음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5).
질문1: 갈 5:16을 읽어 보라. “행하라(걸으라)”는 개념은 믿음의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신 13:4~5, 롬 13:13, 엡 4:1, 17, 골 1:10)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신13:4,5]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5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엡4:1,17]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골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답: 행하라는 말은 걸어가라는 말인데, 바른 길을 따라 바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 길과 바른 걸음의 지침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계명이다.
질문2: 걸음에 대한 바울의 은유는 구약에 나오는 은유들과 어떻게 다른가? 출 16:4, 레 18:4, 렘 44:23을 갈 5:16, 25, 롬 8:4과 비교해 보라.
[출16: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레18:4]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렘44:2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
[갈5:16,25]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롬8: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구약의 걸음에 대한 것이나 바울의 가르침이나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구약은 율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그대로 행하라고 하지만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율법의 요구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한다고 가르친다.
<부가설명> 구약이나 신약이나 나타나는 행동의 모습은 다를 것이 없다. 구약의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사실을 바울이 깨달을 것처럼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당시 유대인 신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바울을 반대하여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사실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예수께서 구약의 언약들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역사로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생명을 얻는 것을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바울의 가르침을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의문의 율법은 예수께서 이루실 구속 사업을 표상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고, 십계명은 구속받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성령의 역사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율법의 의미는 동일하고 행한다고 할 때 그 나타나는 모습은 동일한 것이다.
교훈: 초기 기독교 제자들은 ‘그 길을 따르는 자’였으며 ‘성령을 따라 걷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둘째 날(월) 12월 12일 그리스도인의 갈등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질문: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그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위 말씀의 고통스런 실재를 얼마나 경험해 보았는가?
답: 이 질문은 반생들이 각각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부가설명>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살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범죄함으로 육체가 된 죄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육체라는 말은 “살크스”인데 히브리어 “바사르”를 헬라말로 표현한 것이다. 몸을 이루고 있는 “바사르(살)”는 창조당시에도 “바사르”라고 하였다. 창2:24의 “둘이 한 몸을”이루라고 했을 때 “몸”이 “바사르”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마태19:5에 인용하셨는데 마태는 그것을 “살크스”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몸을 이루는 재질로서 살을 육이라고 하는 것은 범죄 전이나 후나 동일한 단어를 썼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몸도 “살크스”라고 하였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살과 뼈가 있는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말씀이다. 여기 “살”도 “살크스”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이라고 할 때 이 몸을 이루고 있는 재질인 “살”의 소욕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범죄함으로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된 존재를 뜻하는 말이다. 이것은 창6:3에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한 말의 구역 난외 주에 “범과함으로 육체에 속하였으니”라고 한 바로 그 육체를 뜻하는 것이다. 개역에는 “육체이므로 범과함이라”고 난외에 주를 달았는데, 구역이 성경 전체의 사상과 일치한다. 교과의 저자가 자적한대로 그리스도인은 땅에서 난 첫 사람과 거듭남으로 위에서 난 둘째 사람이 한 인격 안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고전15:47~49) 이 둘이 날마다 격돌하는데, 바울은 육체에 있는 죄의 법을 지체 속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롬7:23) 그래서 우리의 지체를 항상 주님께 드리라고 당부한 것이다.(롬6:13)
교훈: 그리스도인들은 내적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께 죗된 자아를 맡김으로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육체의 소욕을 억누를 수 있다.
셋째 날(화) 12월 13일 육체의 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갈 5:19).
질문: 렘 7:9, 호 4:2, 막 7:21~22, 딤전 3:2~3, 벧전 4:3, 계 21:8에서 선과 악의 목록을 유심히 살펴보라. 이 목록들은 바울이 갈 5:19~24에 열거한 목록과 어떤 면에서 비슷하며 어떤 면에서 다른가?
[렘7:9]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호4:2]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막7:21,22]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딤전3:2,3]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갈5:19~24]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답: 바울의 목록은 육체의 일이라고 할 때는 “일들”이라고 하여 복수를 사용하였고, 성령의 열매는 단수를 사용하였다. 육체의 일들은 하나하나가 다 악이지만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 속성이 다 들어나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를 제대로 맺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있다.
<부가설명> 우리들은 아주 쉽게 성경에 열거한 이런 내용들을 도덕적 덕목이라고 말해버린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성경이 도덕적 성취를 말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한다. 나타난 결과가 도덕적 성취와 일치하고 사용하는 말들이 도덕적 표현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는 도덕적 성취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도덕적 수양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일들은 기록대로 육체가 맺는 열매들이다. 다시 말하면 죄의 인격자들에게 당연히 나타나는 열매들이라는 말이다. 종교가들과 도덕가들은 이것이 나타나지 않도록 수양하고 도야하여 교훈과 노력으로 이룬다. 그것이야말로 자력 성취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룬 것이 하나님 앞에 선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 더러운 옷으로 간주된다.(사64:6) 또 도덕적 선한 도덕적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는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맺게 하는 열매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성령의 열매”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이름을 의지하여 스스로 애써서 맺는 열매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다. 진정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여 맺게 하는 열매이다. 성령께서 맺게 하는 열매이기 때문에 그 열매는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속성은 아홉 가지 이상이다. 갈라디아에서는 아홉 가지를 말했지만 에베소나 다른 편지서에 또 다른 이름으로 열매들이 있다. 열매라고 했으니 속성이라는 말 대신에 맛이라고 해도 좋다. 하나뿐인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 이상의 맛을 가진 열매이다. 이런 맛 중에 하나라도 빠진 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고 도덕적 노력의 성취일 뿐이다.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훈: 육체를 따른 삶과 성령을 따르는 삶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육체는 여러 불행과 고통을 야기하며, 영은 복된 열매를 맺는다.
넷째 날(수) 12월 14일 성령의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질문: 성령의 열매에는 계명에 대한 순종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마 5:21~22, 27~28, 22:35~40 참고)
[마5:21,22,27,28]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22:35~40]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답: 성령의 열매는 계명의 실제적인 내용이 다 포함되어 있다.
<부가설명> 아마도 부가설명에서 여러 번 말한 것 같은데, 예수를 믿는 사라들은 예수 안에서 예수님이 자기의 생명이 된 사람들이다. 바울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했다.(롬8:9) 바울은 같은 8:2에서 성령을 생명의 성령이라고 가르쳐준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우리 안에 역사하게 하시는 생명의 성령이시다. 이 생명의 본질이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요한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줄 안다고 하였으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한다고 했다.(요일3:14)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도덕적 덕목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는 아주 바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도덕 이전에 예수 생명의 본질이다. 당연히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맺히게 되어 있는 성령의 열매이다. 그것을 인간사회에서 구체화시키되 아주 집약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십계명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십계명의 정신이 그의 생명과 인격과 생활이 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한 생명 한 사람 한 인격 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교훈: 성령의 열매는 십계명의 순종과 관련이 있으며, 아홉 가지의 덕목 가운데 가장 핵심적 덕목은 사랑이다.
다섯째 날(목) 12월 15일 승리의 길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질문: 갈 5:16~26에 따르면 육체를 성령의 지배 아래 두고 사는 인생의 비결은 무엇인가?
[갈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답: 그 비결은 진정으로 거듭난 경험에 이르는 것이며, 성령으로 사는 것이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의 설명으로 네 가지 단어를 지적하였다. 첫째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듭나면 성령으로 난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서 행하신다. 둘째 인도를 받는다는 동사이다. 성령께서 인도하는대로만 걷는다는 말이다. 셋째 살다라는 동사이다. 이것은 성령이 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넷째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인데 16절의 행하다는 성령과 동행한는 것을 나타내는 낱말이고 25절의 행하다는 군사용어로 스토이케오인데 이것은 대열을 잘 맞추어 행진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하였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과 대열을 맞추어 서로 협력하면서 돌보면서 보조를 맞추어 행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성령으로 행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고후12:18)
교훈: 육체를 성령의 지배 아래 두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매일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그분의 지도를 따라 행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예비일(금) 12월 1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인 생활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격렬한 투쟁에 대처해야 하고, 심한 유혹이 그를 공격해 온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화잇 주석, 갈 5:17).
“성령의 감화는 영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그에게 말을 하지만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 곁에 계신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 속에서,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성령의 내주(內住)를 아는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나타낸다(원고 41, 1897)”(상동, 갈 5:22~2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육체의 소욕을 못 박아야 한다는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렇게 해야 합니까?
※ 우리는 순간마다 그렇게 해야 한다. 육체의 소욕을 못 박는다는 말은 십자가를 항상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죄와 사망에 대한 것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언제나 자아를 씻어서 주님의 깨끗하심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➋ 성령의 열매를 맺는 데에 인간의 노력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그대의 경험에 따르면 그런 역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맺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 노력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다만 성령께서 내 안에 역사하시도록 자아를 굴복시키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성령께 의탁할 때 가능하다.
➌ 그대가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무엇입니까? 실망을 경험할지라도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용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사단의 공격으로 자주 상처를 입을 있다. 어떨 때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나아가 그 상처를 주님께 아뢰어야 한다. 주님은 보혈의 공로로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고 자비의 음성으로 어루만져주신다.
요약: 육적 욕구와 영적 욕구 사이에 갈등이 존재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패배의식에 빠질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소욕을 억제할 수 있도록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주시는 성령의 지배 아래 살 수 있다.
댓글목록
김문영님의 댓글
김문영 작성일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익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박정일님의 댓글
박정일 작성일목사님 감사합니다. 여러 모로 힘이 되었습니다. 박정일드림
김보영님의 댓글
김보영 작성일김명호 목사님 카페주소좀 알려주세요
햇살님의 댓글
햇살 작성일
목사님 감사!감사!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홍숙님의 댓글
조홍숙 작성일오늘도 여전히 잘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세천사님의 댓글
세천사 작성일요즘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2002년도 평신도신학 다시한번 듣고 있는데 "믿음으로 말미암는의" 를 쉽게 설명해 주셔서 좋은것 같아요. 재림마을-강좌/세미나-34번-31번 들어가서 예언된교회 클릭하면 들으실수 있어요. 늘 좋은 말씀 전해주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목사님 노고에 감사드려요
안서동님의 댓글
안서동 작성일매주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전인봉님의 댓글
전인봉 작성일목사님홈페이지 네이버창에 세천사의 기별을 온세상의 전파하고자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