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과 바울의 목회적 권고(질문, 대답, 부가설명)11/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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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11-18 19:27 조회8,028회 댓글3건본문
11월 26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6분
기억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갈 4:12).
연구 범위: 갈 4:12~20, 고전 11:1, 빌 3:17, 고전 9:19~23, 고후 4:7~12.
지금까지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기탄없이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거친 언어는 자신이 세운 교회의 영적 번영을 바라는 영감적인 열정의 반영일 뿐이다. 바울이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신학적 주제 이외에도 갈라디아서는 넓은 의미에 있어서 바른 교리의 중요성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믿는 교리가 그리 중요하지 않고, 교리적 정확성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면, 바울이 그토록 끈질기게 비타협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는 매우 중요하며 복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갈 4:12~20에서 바울은 접근 방식을 조금 수정하여 대화를 이어 간다. 바울은 지금까지 갈라디아인들이 잘못을 인정하도록 신학적으로 복잡하고 구체적인 논쟁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이제 더욱 개인적이고 목회적인 호소를 시작한다. 갈라디아 교회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바울은 진정한 우려와 염려, 소망 그리고 까다로운 양 떼를 향한 선한 목자의 사랑을 보여 준다. 그는 신학을 교정해 줄 뿐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자들을 목양하고자 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갈라디아서가 성서적 논쟁에서 어떻게 개인적 호소로 전환되었는지 설명한다.
➋ 느끼기: 목회자 바울이 갈라디아인들과 나눴던 경험들을 상기시키면서 정서에 호소한 점을 살펴본다.
➌ 행하기: 지도자들의 영적 통찰력뿐 아니라 그들의 사랑과 관심으로부터 유익을 얻고 그들을 지지하기로 결심한다.
A.
❷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위한 자신의 사역을 해산의 수고로 비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새로운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존재,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❸ 갈라디아 신자들은 부모의 심정으로 말하는 바울 대신 왜 거짓 교사들을 따랐을까요?
※ 인간의 노력을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다고 하니까 사람은 허수아비같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인간의 노력을 귀중하게 여기면 그와 같은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구원과 하나님의 의를 얻는데 인간의 노력은 해로운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빌3:3~9 참고)
❹ 우리의 영적 안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누군지 우리는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 그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으로 진리를 증거하는지 사람의 인기와 이익을 담아서 하는지 분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일로 자기를 드러내면 그것은 영적 안위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다.
B.
❷ 바울이 사용한 토착화 전략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 토착화라는 말은 신학자들이 만든 용어이다. 그것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문화와 풍속을 맞추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인데, 자칫 잘못하면 원리 자체를 변형하게 하는 위험이 있다. 이런 경우는 아주 조심하고 기도하여 성령의 지도를 전적으로 받아야 한다.
❸ 바울이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자신처럼 되라고 말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A 2번 대답을 보라.
결론: 격렬한 영적 논쟁 후에 바울은 은혜의 복음 안에 머물도록 갈라디아인들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하였다.
첫째 날(일) 11월 20일 바울의 심정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질문1: 갈 4:12~20을 읽어 보라. 이 본문에서 바울이 전하는 기별의 핵심은 무엇인가?
[갈4:12~20]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답: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면서 마음에 호소하고 있다. 즉 목회적 호소를 하고 있다.
질문2: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들을 위한 그의 ‘수고’로부터 그는 어떤 결실을 보기 원했는가?(갈 4:19)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답: 갈라디아 교인들의 인격이 예수의 형상을 이루기를 원하였다.
<부가설명>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진리에 대한 그릇된 사상에 빠진 것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거기서 헤어 나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였다. 교리를 올바르게 깨닫고 받아들였다 해도 그것이 한갓 지식에 그치면 교리를 바르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성경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 성경의 실상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배척한 경우와 같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가 마음에서 인격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마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 진리는 사람에게 진리의 지식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서 그분과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진리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살후2:10) 진리가 지식으로만 있으면 그것은 사물이기 때문에 사랑할 줄 모른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를 만나면 그분은 인격이기 때문에 사랑을 베풀수 있다. 그래서 진리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렇게 되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나와 같이 되라고 말한다. 그들이 바울처럼 예수님과 인격적 교제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이 그들의 처지에 이르러 복음을 전한 것이다.
교훈: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마치 자신이 낳은 자처럼 사랑하고 염려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품은 성숙한 신자가 되기를 기대하였다.
둘째 날(월) 11월 21일 모본의 과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행 4:12).
질문: 갈 4:12과 함께 고전 11:1, 빌 3:17, 살후 3:7~9, 행 26:28~29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의 관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갈4: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빌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살후3:7~9]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행26:28,29]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답: 바울은 여러 편지에서 편지를 받는 교인들이 바울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바울처럼 되라고 요청하였다. 이것은 교과 저자의 말대로 행위 문제가 아니라 존재문제이다. 어떤 존재가 되느냐 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핵심이다.
<부가설명> 예수를 믿는 종교는 진리의 교훈을 지식으로 배워서 그 교훈을 실행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종교들은 교조의 교훈을 잘 배워서 일상생활에서 그 교훈을 따라 선한 행위를 나타내는 생활을 하면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성경의 종교는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피조물이지 옛 사람이 예수의 교훈을 생활에 실천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성경 교훈을 좌우명으로 삼고 생활에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된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는 것이다.(엡4:22~24)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렇게 되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너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훈: 바울은 자신이 발견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구원의 기쁨과 자유를 갈라디아인들도 누리기를 바라며 그들이 자신과 같이 되기를 구했다.
셋째 날(화) 11월 22일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21).
질문: 고전 9:19~2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갈 4:12의 서두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행 17:16~34, 고전 8:8~13, 갈 2:11~14)
[고전9:19~23]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행17:16~34]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고전8:8~13]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갈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답: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하여 그 대상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그들의 풍습을 바울이 스스로 수용하였다는 뜻이 아니다. 바울은 고전 9장에서 이 사실을 기록하면서 매우 조심하는 표현을 쓴 것을 본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올바르게 생활하면서 전도할 대상들에게 부담 없이 대하도록 노력하였다.
<부가설명>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기가 그들 같이 되었다고 한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이교적 상태를 따랐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과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뜻이다. 인간적 친교를 나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몸의 질병으로 그들 중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나 바울을 천사처럼 대하였다. 그것은 바울의 인격과 그의 종교가 탁월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그들과 같이 된 것이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사항이다.
교훈: 바울은 어떻게든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과 같이 되는 토착화 전략을 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복음의 진리를 양보하지는 않았다.
넷째 날(수) 11월 23일 그때와 지금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갈 4:13).
질문1: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갈 4:13)
[갈4: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답: 바울이 육체의 약함으로 갈라디아에서 치료나 회복을 위하여 머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겨서 그것이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경위였다.
질문2: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은 어떻게 자신의 문제로 씨름할 때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는가?(롬 8:28, 고후 4:7~12, 12:7~10)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후4:7~12]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답: 인간의 약한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극대화하여 드러날 수 있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그런 사실을 깨닫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힘차게 전하였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특별한 방법으로 보호하시지는 않는다. 그들이 사는 곳도 이 죄의 세상이다. 죄의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일반 사람들이 당하는 인생고를 면해주시지 않는다. 그것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도록 이끄시며, 사랑과 인내로 그런 고통을 넉넉히 이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가 되게 하신다. 바울의 생애는 그런 사실을 잘 나타낸다. 우리의 생애에 믿음 때문이든지 아니면 일상적인 일로서든지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바울의 경험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이기도록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특별한 생활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새로운 피조물의 생명 원리로 생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별난 사람으로 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지만 새 생명의 생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교훈: 바울이 건강상 큰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의 은혜가 갈라디아인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었다.
다섯째 날(목) 11월 24일 진리를 말함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갈 4:16).
질문1: 갈 4:16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의 요점은 무엇인가? 그대는 어떤 방식으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요 3:19, 마 26:64~65, 렘 36:17~23 참고)
[갈4: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마26:64,6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렘36:17~23]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그 구전하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뇨 청컨대 우리에게 이르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베풀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 이에 방백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20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로 왕의 귀에 고하니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방백의 귀에 낭독하니 22 때는 구월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삼 편 사 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답: 그릇된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은 바른 사실을 말할 때에 자기의 그릇된 것으로 바른 것을 재보기 때문에 바른 말 하는 사람과 등지게 된다.
질문2: 갈 4:17~20에서 바울은 자신을 반대하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바울은 그들의 신학 외에 어떤 다른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가?
[갈4:17~20]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답: 바울의 반대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환심을 사서 자기들을 섬기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들을 오류로 이끌었다.
<부가설명> 진리와 신앙 문제에 있어서 다른 교훈을 하는 것은 그 교훈을 한 집단에 속하게 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에 찾아온 율법주의자들의 의도도 그와 같았다. 결국은 그들의 교훈을 받아들이면 그들과 동아리가 되어 그들의 주장을 따라 그들의 종이 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런 사실을 무척 염려하였다. 지금도 교회 안에 마치 진리인 것처럼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사상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그들의 집단에 속하게 하려고 하는 시도들을 볼 수 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들은 이욕을 좇는 자라고 잠18:1에 지적하였다. 당을 짓는 것과 분리 하는 것은 육체의 일들이며 성령이 없는 자들의 일이라고 성경은 지적한다.(갈5:19~21, 유1:19) 우리는 베뢰아 교인들처럼 철저히 오직 성경에 의하여 듣는 것을 분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듣는지 듣는 것을 삼갈 줄 알아야 한다. 진리 비슷하면서 속속들이 진리가 아닌 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의 걸음이 비틀거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바울의 반대자들은 입지를 넓히기 위해 갈라디아인들의 환심을 사려 했지만, 바울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예비일(금) 11월 2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공공연하고 정체를 드러낸 오류가 복음 기별을 대신하고 있었다. 신앙의 참 기초이신 그리스도는 낡아빠진 유대주의의 의식 때문에 사실상 포기되었다. 사도는 갈라디아 신도들이 위험한 감화로부터 구원을 받으려면 그들에게 가장 결정적인 방법으로 가장 신랄한 경고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울은 한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에 대한 그들의 첫사랑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다.
…사도의 열렬한 호소는 헛되지 않았다. 성령께서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셨으므로 낯선 길에서 방황하던 많은 사람이 이전 신앙으로 돌아왔다”(사도행적, 385~38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하나님은 고통을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고통으로부터 어떤 유익도 얻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 인간의 고통을 영원을 위한 기회로 사용하신다. 고통으로부터 아무 유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➋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주제를 묵상해 보십시오. 이 말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이 이루어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이 생각했던 만큼 빨리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할 때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지게 된다.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는 것이다. 사고방식이 말씀적으로 되는 것이며 그 사고방식을 따라 생활이 형성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나면 사고방식이 영적으로 된다.(롬8:5,6)
요약: 바울은 구체적이고 복잡한 신학적 논증을 펼친 후에 좀 더 개인적이고 감성적으로 갈라디아인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한때 함께 나누었던 진실한 사랑과 영적 부모로서 그들에게 보인 자신의 관심을 상기시키면서 자기의 권고를 들으라고 간청하였다.
일몰: 오후 5시 16분
기억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갈 4:12).
연구 범위: 갈 4:12~20, 고전 11:1, 빌 3:17, 고전 9:19~23, 고후 4:7~12.
지금까지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기탄없이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거친 언어는 자신이 세운 교회의 영적 번영을 바라는 영감적인 열정의 반영일 뿐이다. 바울이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신학적 주제 이외에도 갈라디아서는 넓은 의미에 있어서 바른 교리의 중요성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믿는 교리가 그리 중요하지 않고, 교리적 정확성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면, 바울이 그토록 끈질기게 비타협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는 매우 중요하며 복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갈 4:12~20에서 바울은 접근 방식을 조금 수정하여 대화를 이어 간다. 바울은 지금까지 갈라디아인들이 잘못을 인정하도록 신학적으로 복잡하고 구체적인 논쟁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이제 더욱 개인적이고 목회적인 호소를 시작한다. 갈라디아 교회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바울은 진정한 우려와 염려, 소망 그리고 까다로운 양 떼를 향한 선한 목자의 사랑을 보여 준다. 그는 신학을 교정해 줄 뿐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자들을 목양하고자 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갈라디아서가 성서적 논쟁에서 어떻게 개인적 호소로 전환되었는지 설명한다.
➋ 느끼기: 목회자 바울이 갈라디아인들과 나눴던 경험들을 상기시키면서 정서에 호소한 점을 살펴본다.
➌ 행하기: 지도자들의 영적 통찰력뿐 아니라 그들의 사랑과 관심으로부터 유익을 얻고 그들을 지지하기로 결심한다.
A.
❷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위한 자신의 사역을 해산의 수고로 비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새로운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존재,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❸ 갈라디아 신자들은 부모의 심정으로 말하는 바울 대신 왜 거짓 교사들을 따랐을까요?
※ 인간의 노력을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다고 하니까 사람은 허수아비같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인간의 노력을 귀중하게 여기면 그와 같은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구원과 하나님의 의를 얻는데 인간의 노력은 해로운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빌3:3~9 참고)
❹ 우리의 영적 안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누군지 우리는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 그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으로 진리를 증거하는지 사람의 인기와 이익을 담아서 하는지 분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일로 자기를 드러내면 그것은 영적 안위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다.
B.
❷ 바울이 사용한 토착화 전략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 토착화라는 말은 신학자들이 만든 용어이다. 그것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문화와 풍속을 맞추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인데, 자칫 잘못하면 원리 자체를 변형하게 하는 위험이 있다. 이런 경우는 아주 조심하고 기도하여 성령의 지도를 전적으로 받아야 한다.
❸ 바울이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자신처럼 되라고 말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A 2번 대답을 보라.
결론: 격렬한 영적 논쟁 후에 바울은 은혜의 복음 안에 머물도록 갈라디아인들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하였다.
첫째 날(일) 11월 20일 바울의 심정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질문1: 갈 4:12~20을 읽어 보라. 이 본문에서 바울이 전하는 기별의 핵심은 무엇인가?
[갈4:12~20]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답: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면서 마음에 호소하고 있다. 즉 목회적 호소를 하고 있다.
질문2: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들을 위한 그의 ‘수고’로부터 그는 어떤 결실을 보기 원했는가?(갈 4:19)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답: 갈라디아 교인들의 인격이 예수의 형상을 이루기를 원하였다.
<부가설명>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진리에 대한 그릇된 사상에 빠진 것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거기서 헤어 나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였다. 교리를 올바르게 깨닫고 받아들였다 해도 그것이 한갓 지식에 그치면 교리를 바르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성경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 성경의 실상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배척한 경우와 같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가 마음에서 인격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마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 진리는 사람에게 진리의 지식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서 그분과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진리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살후2:10) 진리가 지식으로만 있으면 그것은 사물이기 때문에 사랑할 줄 모른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를 만나면 그분은 인격이기 때문에 사랑을 베풀수 있다. 그래서 진리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렇게 되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나와 같이 되라고 말한다. 그들이 바울처럼 예수님과 인격적 교제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이 그들의 처지에 이르러 복음을 전한 것이다.
교훈: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마치 자신이 낳은 자처럼 사랑하고 염려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품은 성숙한 신자가 되기를 기대하였다.
둘째 날(월) 11월 21일 모본의 과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행 4:12).
질문: 갈 4:12과 함께 고전 11:1, 빌 3:17, 살후 3:7~9, 행 26:28~29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의 관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갈4: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빌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살후3:7~9]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행26:28,29]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답: 바울은 여러 편지에서 편지를 받는 교인들이 바울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바울처럼 되라고 요청하였다. 이것은 교과 저자의 말대로 행위 문제가 아니라 존재문제이다. 어떤 존재가 되느냐 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핵심이다.
<부가설명> 예수를 믿는 종교는 진리의 교훈을 지식으로 배워서 그 교훈을 실행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종교들은 교조의 교훈을 잘 배워서 일상생활에서 그 교훈을 따라 선한 행위를 나타내는 생활을 하면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성경의 종교는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피조물이지 옛 사람이 예수의 교훈을 생활에 실천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성경 교훈을 좌우명으로 삼고 생활에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된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는 것이다.(엡4:22~24)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렇게 되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너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훈: 바울은 자신이 발견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구원의 기쁨과 자유를 갈라디아인들도 누리기를 바라며 그들이 자신과 같이 되기를 구했다.
셋째 날(화) 11월 22일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21).
질문: 고전 9:19~2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갈 4:12의 서두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행 17:16~34, 고전 8:8~13, 갈 2:11~14)
[고전9:19~23]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행17:16~34]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고전8:8~13]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갈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답: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하여 그 대상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그들의 풍습을 바울이 스스로 수용하였다는 뜻이 아니다. 바울은 고전 9장에서 이 사실을 기록하면서 매우 조심하는 표현을 쓴 것을 본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올바르게 생활하면서 전도할 대상들에게 부담 없이 대하도록 노력하였다.
<부가설명>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기가 그들 같이 되었다고 한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이교적 상태를 따랐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과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뜻이다. 인간적 친교를 나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몸의 질병으로 그들 중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나 바울을 천사처럼 대하였다. 그것은 바울의 인격과 그의 종교가 탁월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그들과 같이 된 것이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사항이다.
교훈: 바울은 어떻게든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과 같이 되는 토착화 전략을 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복음의 진리를 양보하지는 않았다.
넷째 날(수) 11월 23일 그때와 지금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갈 4:13).
질문1: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갈 4:13)
[갈4: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답: 바울이 육체의 약함으로 갈라디아에서 치료나 회복을 위하여 머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겨서 그것이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경위였다.
질문2: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은 어떻게 자신의 문제로 씨름할 때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는가?(롬 8:28, 고후 4:7~12, 12:7~10)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후4:7~12]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답: 인간의 약한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극대화하여 드러날 수 있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그런 사실을 깨닫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힘차게 전하였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특별한 방법으로 보호하시지는 않는다. 그들이 사는 곳도 이 죄의 세상이다. 죄의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일반 사람들이 당하는 인생고를 면해주시지 않는다. 그것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도록 이끄시며, 사랑과 인내로 그런 고통을 넉넉히 이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가 되게 하신다. 바울의 생애는 그런 사실을 잘 나타낸다. 우리의 생애에 믿음 때문이든지 아니면 일상적인 일로서든지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바울의 경험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이기도록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특별한 생활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새로운 피조물의 생명 원리로 생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별난 사람으로 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지만 새 생명의 생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교훈: 바울이 건강상 큰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의 은혜가 갈라디아인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었다.
다섯째 날(목) 11월 24일 진리를 말함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갈 4:16).
질문1: 갈 4:16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의 요점은 무엇인가? 그대는 어떤 방식으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요 3:19, 마 26:64~65, 렘 36:17~23 참고)
[갈4: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마26:64,6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렘36:17~23]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그 구전하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뇨 청컨대 우리에게 이르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베풀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 이에 방백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20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로 왕의 귀에 고하니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방백의 귀에 낭독하니 22 때는 구월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삼 편 사 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답: 그릇된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은 바른 사실을 말할 때에 자기의 그릇된 것으로 바른 것을 재보기 때문에 바른 말 하는 사람과 등지게 된다.
질문2: 갈 4:17~20에서 바울은 자신을 반대하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바울은 그들의 신학 외에 어떤 다른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가?
[갈4:17~20]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답: 바울의 반대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환심을 사서 자기들을 섬기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들을 오류로 이끌었다.
<부가설명> 진리와 신앙 문제에 있어서 다른 교훈을 하는 것은 그 교훈을 한 집단에 속하게 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에 찾아온 율법주의자들의 의도도 그와 같았다. 결국은 그들의 교훈을 받아들이면 그들과 동아리가 되어 그들의 주장을 따라 그들의 종이 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런 사실을 무척 염려하였다. 지금도 교회 안에 마치 진리인 것처럼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사상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그들의 집단에 속하게 하려고 하는 시도들을 볼 수 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들은 이욕을 좇는 자라고 잠18:1에 지적하였다. 당을 짓는 것과 분리 하는 것은 육체의 일들이며 성령이 없는 자들의 일이라고 성경은 지적한다.(갈5:19~21, 유1:19) 우리는 베뢰아 교인들처럼 철저히 오직 성경에 의하여 듣는 것을 분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듣는지 듣는 것을 삼갈 줄 알아야 한다. 진리 비슷하면서 속속들이 진리가 아닌 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의 걸음이 비틀거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바울의 반대자들은 입지를 넓히기 위해 갈라디아인들의 환심을 사려 했지만, 바울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예비일(금) 11월 2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공공연하고 정체를 드러낸 오류가 복음 기별을 대신하고 있었다. 신앙의 참 기초이신 그리스도는 낡아빠진 유대주의의 의식 때문에 사실상 포기되었다. 사도는 갈라디아 신도들이 위험한 감화로부터 구원을 받으려면 그들에게 가장 결정적인 방법으로 가장 신랄한 경고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울은 한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에 대한 그들의 첫사랑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다.
…사도의 열렬한 호소는 헛되지 않았다. 성령께서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셨으므로 낯선 길에서 방황하던 많은 사람이 이전 신앙으로 돌아왔다”(사도행적, 385~38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하나님은 고통을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고통으로부터 어떤 유익도 얻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 인간의 고통을 영원을 위한 기회로 사용하신다. 고통으로부터 아무 유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➋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주제를 묵상해 보십시오. 이 말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이 이루어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이 생각했던 만큼 빨리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할 때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지게 된다.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는 것이다. 사고방식이 말씀적으로 되는 것이며 그 사고방식을 따라 생활이 형성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나면 사고방식이 영적으로 된다.(롬8:5,6)
요약: 바울은 구체적이고 복잡한 신학적 논증을 펼친 후에 좀 더 개인적이고 감성적으로 갈라디아인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한때 함께 나누었던 진실한 사랑과 영적 부모로서 그들에게 보인 자신의 관심을 상기시키면서 자기의 권고를 들으라고 간청하였다.
댓글목록
산에가자님의 댓글
산에가자 작성일
언제나 은혜의 말씀으로 기록하여 주셨어 감사합니다
주님안에서 건강하세요
강미리님의 댓글
강미리 작성일
에덴요양병원 강미리간호사예요.
목사님의 말씀으로 인해 제게 큰 용기를 주셨습니다.
매일 죽음과 부활을 연습시키신다는 말씀, ...요즘 매일 연습하며 삽니다.
감사합니다.^^
이태규(종원아빠)님의 댓글
이태규(종원아빠) 작성일
의성 단밀교회에 다니고 있는 이태규 집사입니다.
오늘 아침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저의 심령을 울립니다.
저가 알고 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내가 목적하는 것을 생각하여서 믿음 안에서 한 형제가 되어 서로 사랑을 나누도록 실천 하겠습니다.
이 아침 은혜의 감동의 시간을 주신 목사님께 감사 드리며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