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환경 보호(Creation Care)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금하 작성일12-02-17 17:43 조회5,515회 댓글3건첨부파일
- 빈 문서 1.hwp (26.5K) 267회 다운로드 DATE : 2012-02-17 17:43:16
본문
제8과 환경 보호(Creation Care)
MT:“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유엔환경개발회의(리우환경회의)'라는 국제적 기구가 있다. 1968년 국제연합 경제사회이사회에서 스웨덴이 제안하여,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국제적인 환경회의가 '오직 하나뿐인 지구'를 슬로건으로 개최 되었는데, 목적은 지구를 환경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천연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국제적인 협력체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1992년에는 브라질 리우에서 185개국 정부 대표단과 114개국 장상 및 정부 수반들이 모여
지구 환경 문제를 논의했는데 공식 타이틀은 '리우회의, 지구정상회의'이다.
정식 명칭은 "환경 및 개발에 관한 국제 연합 회의"(UNCED)이다.
이 회의에서는'리우 선언'과 '의제 21(Agenda 21)'을 채택하고, '지구 온난화 방지 협약', '생물다양성 보존 협약' 등이 수십 개국에 의해 별도 서명, 지구환경보호 활동의 수준이 한 단계 업 되었다.
오늘날 지구 환경 문제는 벼랑 끝에 서 있다.
태초에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아름다웠던 지구가 어찌하여 이모양 이꼴이 되었을까?
조물주께서 지구를 잘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인간에게 위탁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은 환경에 관하여 어떤 책임이 있는가?
<일요일> 랍스타 해방 운동
어족 자원을 살리려는 환경 운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야의 자연 환경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연일 각종 매스컴들은 현재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기 오염과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심각한 멸종과 파괴, 자연재해와 질병, 살림의 황폐화 등을 전하고 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낳은 결과다.
문1) 위협 받고 있는 생태계 환경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무엇인가?
나는 몇년 전 환경 보호를 위해 인류가 육식을 배제하고 채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어느 분에게 역설했더니 왈, 이왕 멀지 않아 예수님이 오실텐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어짜피 멸망하고 다시 재창조될 세상인데 그까짓 환경 보호 운동 할 필요가 있는가?
세상 사람 대다수가 신경쓰지 않는데 우리가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위의 항변에 대하여 어떤 답이 필요한가? 성경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
생태계의 파괴와 환경 오염 문제 속에서 천연계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다스림"과 "정복"의 올바른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연구하여 천연계에 대한 파괴적 태도를 바꾸어야한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창1:26~28에 근거하여 인간 중심의 세계관(창조설화)을 가르쳤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요 정점이며, 세계는 인간 아래에, 주변에 있으며,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고, 인간은 세계의 "소유자이며 지배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다 라는 이유로 전쟁을 통해 영토를 "소유하고""자기의 것"으로 삼아 왔다. 신학은 이러한 해석으로 인간으로 세계의 "지배자와 정복자"로 해석하였으며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가르쳤다. 그 결과,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자연의 질서를 거꾸로 뒤집어 버렸고 자연의 운명을 인간이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과연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는가?
성경의 창조적 신앙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중심 세계관이다.
근대 서구의 제국주의적 지배이데올로기에 적응하고 이를 조장하기 위해 교회와 신학이 만들어낸 것이다. 성경은 이웃과 천연계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자비"와"정의"를 가르친다. "다스림"과 "정복"의 의미는, 천연계의 파괴와 착취를 가르치지 않고, 보호와 돌봄을 가르치며 천연계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을 요구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인 지구의 관리와 책임을 맡은 청지기로서 천연계를 착취하거나 파괴시키고 약탈할 권한이 없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에덴 동산을 돌볼 책임, 곧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창 2:15)는 일이 주어졌다"-교육21
"인류의 불순종 때문에 천연계 자체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증언8권256
"생물이나 무생물을 막론하고 모든 것 곧 천지 만물의 조화는 창조주의 율법에 완전히 순응하는 데 달려있다. 하나님께서는 생물뿐 아니라 모든 자연계의 작용을 다스리시기 위하여 법칙들을 제정하셨다"-PP52
적용) 환경에 대한 책임 의식이 잘못되었다면 바꾸어야 한다. 천연계 보호를 위해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교훈) 환경 문제에 대한 양극단을 경계해야 하나, 최선을 다해 성경의 가르침에따라 처신해야 한다.
<월요일> 천연계 보호를 위한 성명서
문1) 지구 창조물에 대한 해븐 성명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24:1).
"하나님의 통치권과 만물에 대한 소유권, 또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일들이 청지기 직분에 관한 원칙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내포되어 있다"-청지기5
성경은 지구를 구원의 대상으로 여긴다. 기독교가 지닌 구원의 보편성과 우주성은 성서적이다.(사11:6-9; 103:19,22,113:4,5) 신약에서도 롬 8장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 곧 온 우주가 죄와 죽음의 세력, 곧 "멸망의 사슬" 에 묶여서 함께 고통하며 신음하고 있다. 태초에 인간의 범죄가 천연계에 큰 변화와 쇠퇴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생태계의 위기 속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신학사상은 천연계와 물질도 같은 피조물로서 인간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우주적 드라마 속에는 인간과 천연계 함께 파트너로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복음은 세계적이다.(계21:1,5)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에서 천연계의 구원이라는 포괄적인 관점으로 교회는 시각을 돌려야 한다. 바울은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21)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얼굴에서 비추인 광채가 천연계의 표면에서 사라졌다. 천연계는 현재 훼손을 입었으며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졌다"-부교학186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되는 것이었다"-교보권228
문2) 재림교회는 교단 차원에서 환경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1995년 재림교 지도자들이 네덜란드 대총회에서 채택한 공식 성명서 일부 내용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인간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분을 대표하여 신실하고 생산적인 방법으로 천연계를 다스리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의 관리에는 부패와 남용의 문제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지구 자원의 무분별한 파괴를 일삼아 왔다. 그 결과 고통이 양산되고,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를 초래하였다....지금까지 축적된 증거에 따르면 증가하는 유해 물질 배출, 오존층 파괴, 녹지 감소 그리고 온난화 현상 등은 지구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생태학적인 위기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발생하며...신실한 청지기 직분을 거부하는 데에 원인이 있다...재림교회는 단순하고 건강한 생활 방식을 옹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존중하고 자원 사용을 자제하며, 인간의 필요를 재평가하고, 창조된 생명의 존엄성을 재확인하도록 호소한다.”
[예화]"사막 한복판에 조그만 샘물이 있었는데 그 곁에는 커다란 대추야자나무 몇 그루가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영악한 한 사나이가 이 샘물의 주인임을 자처하며 목이 말라 찾아든 나그네에게 샘물을 비싼 값으로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샘가의 야자나무 뿌리가 뻗어 나와 그 귀한 샘물을 빨아먹고 있음을 발견하였다."돈을 받고 팔아야 되는 이 아까운 샘물을 나무 뿌리가 공짜로 빨아 먹다니!" 사나이는 샘물을 한 방울이라고 아끼기 위해 나무들을 모조리 잘라버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샘물은 그만 바닥부터 바싹 말라 버리고 말았다. 햇볕을 가려주고 모래바람을 막아 주던 나무를 베어버린 탓이었다. 자연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놀라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무지는 이러한 조화와 균형을 파괴할 때가 많다"
"자연은 자연을 사랑하는 자를 결코 배반하지 않았다"(윌리암 워즈워드)
적용) 당신은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가? 무엇부터 실천하고 싶은가?
교훈) 우리는 환경 파수꾼으로 소명 받았다. 환경 보호를 위해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신자들의 본분이다.
<화요일> 창조 세계를 보호함
문1) 자연 세계의 파괴와 쇠퇴는 무엇의 결과인가?
"죄의 저주 아래서 자연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특성과 결과에 대하여 사람에게 증거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에 그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통치자로 창조하셨다. 아담이 하늘에 충성을 유지한 동안에는 천연계의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였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율법에 반역하였을 때 하등의 피조물들이 그의 다스림에 반기를 들었다"-PP59
문2) 범죄한 아담은 무엇 때문에 가장 슬퍼했는가?
"꽃과 떨어지는 잎 가운데서 최초의 쇠퇴의 징조를 목격하고 아담과 그의 반려자는 오늘날
사람들이 죽은 자를 인하여 슬퍼하는 것보다 더 깊이 슬퍼하였다. 연약하고 우아한 꽃들의
죽음은 참으로 슬픔의 한 원인이었다"-PP62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명제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으로 지음 받았다는 인각학이다. 오늘날 생태계에관한 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에 있어서도"하나님의 형상" 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그 까닭은 기독교가 지난 이천 년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자연에 대한 지배권 내지 통치권으로 가르쳤으며 이리하여 생태계의 위기를 유방하였다고 지적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책임적 인격" 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인간 실존은 자연에 대한 지배와 통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성처럼 이웃(만물)을 사랑하고 돌보고 보호하는 '평화의 다스림'이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은 공생적 동반자 관계로 상호 의존적 보완적 유기적 관계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생태계와 자연을 도외시하고 파괴하면 그것은 적으로 돌변하여 부메랑이 된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산다고 상상해 보라.
자연이라는 단어는 '탄생중'인 것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나투라(natura)'에서 유래하였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후로 계속해서 탄생중이므로 조심스레 보전해야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청지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청지기로서 ‘직권남용’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직무유기’ 또한 유념해야 한다.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도대체 누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공기, 물, 햇빛, 숲, 산, 강, 땅은 지구의 유산이다. 누구도 어떤 집단도 그것을 차지하거나 소유하거나 망치거나 오염시키거나 파괴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땅의 열매를 신에게 선물 받고,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다시 신에게 바쳐야 한다"- 조연현의《영혼의 순례자》중에서 -
"천연계의 어디에서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나타나 있으며, 우리의 필요와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이 놀랄 만큼 알맞게 지어져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교육,106,107.
적용) 뉴스타트(채식) 운동은 환경 회복 운동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1) 가축 사료로 전세계 곡물 40%가 소비됨, 소고기 450g에 곡물7kg,물10,000리터 필요.
(2) 800,000kg 동식물이 살수 있는 1ha의 살림을 벌채해서 얻을 수있는 소고기는 200kg.
(3) 소의 분뇨 배출량은 사람의 20배, 온실효과의 주범인 메탄가스 15%가 가축 분뇨.
교훈) 성경은 태초부터 인간이 만물을 관리할 하나님의 청지기로 소명 받았음을 증거한다.
<수요일> 안식일과 환경
문1) 안식일과 자연 환경은 어떤 생태학적 상관 관계가 있는가?
오늘날 자연계의 생태계 파괴와 위협은 동,서 고금의 이념을 초월하여 인류의 빅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지구촌의 위기는 기독교가 생태학적 창조 안식일 신학을 소홀히한 결과이다.전통 신학은 창조의 초점을 인간에 두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가르쳤으나, 생태학적 신학은 인간이 아닌 안식일로 귀결한다. '몰투만'은 전통 신학이 안식일을 소홀히 다루어 왔음을 지적하고 창조와 안식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안식일 창조론"을 제시했다.
그러므로 생태학적 신학은 안식일, 안식년, 희년을 창조의 질서롤 보고 이 질서가 지켜질 때, 자연계와 생태계의 평화가 유지된다고 믿고 있다. 안식일 창조론은 환경 윤리의 주춧돌이다.
문2) 하나님께서 안식일과 안식년, 희년을 제도적으로 주신 현대적 의미는?
위의 제도들은 인간의 탐욕과 방종, 부절제를 콘트롤 하고, 오남용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다.
'쉼'은 생산과 개발, 끝없는 욕망에 대한 중단을 의미한다.(레25장) 인간과 동식물, 자연 환경에 대한 보호와 보전과 회복, 자유를 위한 창조자의 법칙이다. 오늘날의 환경적 재난과 재앙들은 인간이 창조주의 뜻을 거스리고 불순종한 댓가다.
고대 이스라엘이 '쉼'의 순리를 망각하고 탐욕과 이욕에 눈이 멀어 '안식'을 지키지 않으므로그들을 바벨론으로 쫒아내어 자연을 70년 동안 황무하게하여 쉬도록 조치하셨다.(대하36:21) 이스라엘 역사는 휴식의 박탈과 피조물에 대한 공격적인 착취 행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경고다.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은 회복될 새 하늘과 새 땅(영원한 희년)을 차지할 권리가 없다.
[예화]"두 종류의 멈춰 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쉬기 위해 멈추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쉬지 않고 달리다가 고장나서 어쩔 수 없이 멈춰서는 경우입니다. 쉬기 위해 멈추면 휴식과 충전과 여유를 얻게 되지만 고장이 나서 멈추게 되면 뒤늦은 후회와 회한만이 되돌아 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땅이 안식년마다 쉬면 지력이 강하여져서 화학 비료를 쓸 필요도 없고 해충이 작물에 침입하지 못한다"
"사람 몸은 7일 리듬을 가지고 있는데, 태아부터 7일의 배수로 성장하여 싸이클이 일생동안 지속되며, 세포도 7년마다 교체된다. 7일 주기가 깨지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0 으로 다운된다. 몸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critsol 호르몬, 적혈구, 혈압, 심장박동, 소변의 양과 성분, 면역체계, .등등이 모두 7 일 리듬을 가지고 있다. 생명체는 물론 최근에는 alga 라는 거대한 단세포 조류(藻類) 식물을 실험한 결과 이러한 단순한 생물조차도 역시 7 일 리듬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적용) 생태학적으로 안식일을 보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라.
예: 광야에서 안식일에 나무 하는 일과 음식을 삶고 굽고 하는 일을 금지하심(살림과 에너지 자원 보호) 안식일 대중 교통이나 자전거로 교회 오기 등.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창조하신 작품들을 명상하게 이끌도록 의도하셨다"-PP48
교훈)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과 산업 활동의 중단을 통해서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욕망을 억제하는 기능도 한다.
<목요일> 인류의 지배권
문1) "다스리라"는 명령은 에덴의 “지구 환경 보호 헌장”이다.
"많은 동식물로 가득 찬 지구가 창조된 후, 창조주의 걸작품이며, 그를 위하여 이 아름다운 세상이 단장함을 입은 존재인 사람이 활동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그 사람에게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통치권이 주어진 바 되었다"-PP44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시 8:6~8).
"다스리다"(창1:26) 라는 의미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다"는 본래 고대 이집트에와 바빌론의 궁중 언어로 "돌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하는 것은 창조주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정원사가 파크를 아름답게 가꾸고 관리하는 것처럼 인간은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자연을 사랑하고 돌봐야 하는 사명을 받았다. 인생의 목적은 자연의 풍요로움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자연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먼저 터득한 사람은 성인이다"-공자
[대한민국 자연보호 헌장]
1978년 10월 5일에 정부가 선포한 우리나라의 자연 보호에 관한 헌장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속의 온갖 것들이 우리 모두 삶의 자원이다. 자연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원천으로 오묘한 법칙에 따라 끊임 없이 변화 하면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조상분들은 이땅을 금수강산으로 가꾸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향기 높은 민족 문화를 창조하여 왔다. 그러나 산업 혁명과 산업문명의 발달속에서 인구의 팽창에 따른 공기의 오염, 물의오탁. 녹지의 황폐와 인간의 욕심으로 무분별한 훼손등으로 자연의 평형이 상실되어 생활 환경이 악화 됨으로써 인간과 모든 생물의 생존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 모두가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모든 공해 요인을 배제함으로써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회복 유지하는데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이에 우리는 이땅을 보다 더 아름답고 쓸모있는 낙원으로 만들어 길이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자연 보호 헌장을 제정하여 한사람 한사람의 성실한 실천을 다짐한다“생략
문2) "다스림"의 청지기 사명과 책임에 실패한 자들이 받을 심판은 무엇인가?
마지막 날에 인류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노아 홍수 때처럼 창조 순서의 정확한 반전이다.
"땅에 거하는 사람, 들짐승, 공중에 나는 새, 바다의 고기가 없어지더라"(호4:1~3; 창6장; 습1:3)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놓으신 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훼손하므로 창조 질서를 거스려 스스로 호된 심판을 자처한다.계16장의 7 재앙은 자연계에 도전하여 엉망이 되게한 인간에 대한 자연계의 분노다.
적용) 환경 보호를 위해 평소에 어떤 생활 원칙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나라 속담에 물같이 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에너지 자원의 귀중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도 어려서부터 자연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 정신을 몸에 배도록 보여주고 교육해야 한다.
교훈)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은 그것을 잘 돌보고 관리하라는 인류 최초 헌장이다.
[결론] 죄가 세상을 망쳐 놓았을지라도 그 상흔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일은 우리의 복음적 사명이다. 청지기 직분은 자연 환경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의무도 동반한다.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절제하는 검소한 정신은 성령의 열매다. 그런 자들이 곧 획복될 낙원의 영원한 주인이 될 것이다. 천연계는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진리의 보고이자 벗이었다.
[예화]“독일 소도시 레마겐에 사는 베어트람(65)씨 부부 가정은 전형적인 독일 중상류층이다. 연금만도 매월 3천 5백 마르크(2백40만원)가 나오고 예금도 많은 편이다. 생활 수준이 괜찮지만 베어트람 할머니는 한겨울에도 난방은 저녁 6시 이후에만 튼다. 밤 12시면 무조건 자동적으로 꺼지도록 해 놓았고 집에 사람이 없을 땐 반드시 끈다. 물 관리는 더 놀랍다. 화장실 변기 물은 빗물을 받아 놓고 쓰고, 수돗물은 양치질 때나 부엌일을 할 때도 절대 틀어 놓고 쓰는 법이 없다. 설거지를 할때도 싱크대에 물을 받아 놓고는 세제를 조금 풀고 한 두 번밖에 헹구지 않는다. 헹군 그릇은 마른행주로 닦으면 그만, 그리고 독성이 없는 세제이기 때문에 설거지 한 물로 신발 털이 발판을 한 번 빨고, 다시 그 물을 마당 화초에 준다. 수돗물 한 바가지를 설거지, 발판 빨기, 화초 가꾸기 등으로 무려 3번이나 활용하는 셈. 전기도 되도록 꺼 놓는다. 거실, 안방에도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스탠드나 미등 밖에 켜 놓지 않는다. 전화요금은 기본요금 수준. 전화 대신 카드나 엽서를 이용하고 전화를 쓸때는 싼 요금 시간대를 찾는다. 대부분의 옷은 한 번 입으면 완전히 헤어 질 때까지 입는다. 베어트람 할머니가 TV를 보면서 구멍난 양말을 손수 깁는 광경은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여유가 많은 것 같은데 뭘 그리 아끼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나만 그런게 아니고 독일 주부들은 보통 이렇다’고 설명해 준다”
MT:“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유엔환경개발회의(리우환경회의)'라는 국제적 기구가 있다. 1968년 국제연합 경제사회이사회에서 스웨덴이 제안하여,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국제적인 환경회의가 '오직 하나뿐인 지구'를 슬로건으로 개최 되었는데, 목적은 지구를 환경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천연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국제적인 협력체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1992년에는 브라질 리우에서 185개국 정부 대표단과 114개국 장상 및 정부 수반들이 모여
지구 환경 문제를 논의했는데 공식 타이틀은 '리우회의, 지구정상회의'이다.
정식 명칭은 "환경 및 개발에 관한 국제 연합 회의"(UNCED)이다.
이 회의에서는'리우 선언'과 '의제 21(Agenda 21)'을 채택하고, '지구 온난화 방지 협약', '생물다양성 보존 협약' 등이 수십 개국에 의해 별도 서명, 지구환경보호 활동의 수준이 한 단계 업 되었다.
오늘날 지구 환경 문제는 벼랑 끝에 서 있다.
태초에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아름다웠던 지구가 어찌하여 이모양 이꼴이 되었을까?
조물주께서 지구를 잘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인간에게 위탁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은 환경에 관하여 어떤 책임이 있는가?
<일요일> 랍스타 해방 운동
어족 자원을 살리려는 환경 운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야의 자연 환경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연일 각종 매스컴들은 현재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기 오염과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심각한 멸종과 파괴, 자연재해와 질병, 살림의 황폐화 등을 전하고 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낳은 결과다.
문1) 위협 받고 있는 생태계 환경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무엇인가?
나는 몇년 전 환경 보호를 위해 인류가 육식을 배제하고 채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어느 분에게 역설했더니 왈, 이왕 멀지 않아 예수님이 오실텐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어짜피 멸망하고 다시 재창조될 세상인데 그까짓 환경 보호 운동 할 필요가 있는가?
세상 사람 대다수가 신경쓰지 않는데 우리가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위의 항변에 대하여 어떤 답이 필요한가? 성경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
생태계의 파괴와 환경 오염 문제 속에서 천연계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다스림"과 "정복"의 올바른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연구하여 천연계에 대한 파괴적 태도를 바꾸어야한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창1:26~28에 근거하여 인간 중심의 세계관(창조설화)을 가르쳤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요 정점이며, 세계는 인간 아래에, 주변에 있으며,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고, 인간은 세계의 "소유자이며 지배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다 라는 이유로 전쟁을 통해 영토를 "소유하고""자기의 것"으로 삼아 왔다. 신학은 이러한 해석으로 인간으로 세계의 "지배자와 정복자"로 해석하였으며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가르쳤다. 그 결과,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자연의 질서를 거꾸로 뒤집어 버렸고 자연의 운명을 인간이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과연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는가?
성경의 창조적 신앙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중심 세계관이다.
근대 서구의 제국주의적 지배이데올로기에 적응하고 이를 조장하기 위해 교회와 신학이 만들어낸 것이다. 성경은 이웃과 천연계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자비"와"정의"를 가르친다. "다스림"과 "정복"의 의미는, 천연계의 파괴와 착취를 가르치지 않고, 보호와 돌봄을 가르치며 천연계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을 요구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인 지구의 관리와 책임을 맡은 청지기로서 천연계를 착취하거나 파괴시키고 약탈할 권한이 없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에덴 동산을 돌볼 책임, 곧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창 2:15)는 일이 주어졌다"-교육21
"인류의 불순종 때문에 천연계 자체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증언8권256
"생물이나 무생물을 막론하고 모든 것 곧 천지 만물의 조화는 창조주의 율법에 완전히 순응하는 데 달려있다. 하나님께서는 생물뿐 아니라 모든 자연계의 작용을 다스리시기 위하여 법칙들을 제정하셨다"-PP52
적용) 환경에 대한 책임 의식이 잘못되었다면 바꾸어야 한다. 천연계 보호를 위해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교훈) 환경 문제에 대한 양극단을 경계해야 하나, 최선을 다해 성경의 가르침에따라 처신해야 한다.
<월요일> 천연계 보호를 위한 성명서
문1) 지구 창조물에 대한 해븐 성명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24:1).
"하나님의 통치권과 만물에 대한 소유권, 또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일들이 청지기 직분에 관한 원칙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내포되어 있다"-청지기5
성경은 지구를 구원의 대상으로 여긴다. 기독교가 지닌 구원의 보편성과 우주성은 성서적이다.(사11:6-9; 103:19,22,113:4,5) 신약에서도 롬 8장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 곧 온 우주가 죄와 죽음의 세력, 곧 "멸망의 사슬" 에 묶여서 함께 고통하며 신음하고 있다. 태초에 인간의 범죄가 천연계에 큰 변화와 쇠퇴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생태계의 위기 속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신학사상은 천연계와 물질도 같은 피조물로서 인간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우주적 드라마 속에는 인간과 천연계 함께 파트너로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복음은 세계적이다.(계21:1,5)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에서 천연계의 구원이라는 포괄적인 관점으로 교회는 시각을 돌려야 한다. 바울은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21)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얼굴에서 비추인 광채가 천연계의 표면에서 사라졌다. 천연계는 현재 훼손을 입었으며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졌다"-부교학186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되는 것이었다"-교보권228
문2) 재림교회는 교단 차원에서 환경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1995년 재림교 지도자들이 네덜란드 대총회에서 채택한 공식 성명서 일부 내용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인간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분을 대표하여 신실하고 생산적인 방법으로 천연계를 다스리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의 관리에는 부패와 남용의 문제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지구 자원의 무분별한 파괴를 일삼아 왔다. 그 결과 고통이 양산되고,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를 초래하였다....지금까지 축적된 증거에 따르면 증가하는 유해 물질 배출, 오존층 파괴, 녹지 감소 그리고 온난화 현상 등은 지구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생태학적인 위기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발생하며...신실한 청지기 직분을 거부하는 데에 원인이 있다...재림교회는 단순하고 건강한 생활 방식을 옹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존중하고 자원 사용을 자제하며, 인간의 필요를 재평가하고, 창조된 생명의 존엄성을 재확인하도록 호소한다.”
[예화]"사막 한복판에 조그만 샘물이 있었는데 그 곁에는 커다란 대추야자나무 몇 그루가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영악한 한 사나이가 이 샘물의 주인임을 자처하며 목이 말라 찾아든 나그네에게 샘물을 비싼 값으로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샘가의 야자나무 뿌리가 뻗어 나와 그 귀한 샘물을 빨아먹고 있음을 발견하였다."돈을 받고 팔아야 되는 이 아까운 샘물을 나무 뿌리가 공짜로 빨아 먹다니!" 사나이는 샘물을 한 방울이라고 아끼기 위해 나무들을 모조리 잘라버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샘물은 그만 바닥부터 바싹 말라 버리고 말았다. 햇볕을 가려주고 모래바람을 막아 주던 나무를 베어버린 탓이었다. 자연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놀라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무지는 이러한 조화와 균형을 파괴할 때가 많다"
"자연은 자연을 사랑하는 자를 결코 배반하지 않았다"(윌리암 워즈워드)
적용) 당신은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가? 무엇부터 실천하고 싶은가?
교훈) 우리는 환경 파수꾼으로 소명 받았다. 환경 보호를 위해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신자들의 본분이다.
<화요일> 창조 세계를 보호함
문1) 자연 세계의 파괴와 쇠퇴는 무엇의 결과인가?
"죄의 저주 아래서 자연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특성과 결과에 대하여 사람에게 증거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에 그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통치자로 창조하셨다. 아담이 하늘에 충성을 유지한 동안에는 천연계의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였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율법에 반역하였을 때 하등의 피조물들이 그의 다스림에 반기를 들었다"-PP59
문2) 범죄한 아담은 무엇 때문에 가장 슬퍼했는가?
"꽃과 떨어지는 잎 가운데서 최초의 쇠퇴의 징조를 목격하고 아담과 그의 반려자는 오늘날
사람들이 죽은 자를 인하여 슬퍼하는 것보다 더 깊이 슬퍼하였다. 연약하고 우아한 꽃들의
죽음은 참으로 슬픔의 한 원인이었다"-PP62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명제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으로 지음 받았다는 인각학이다. 오늘날 생태계에관한 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에 있어서도"하나님의 형상" 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그 까닭은 기독교가 지난 이천 년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자연에 대한 지배권 내지 통치권으로 가르쳤으며 이리하여 생태계의 위기를 유방하였다고 지적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책임적 인격" 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인간 실존은 자연에 대한 지배와 통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성처럼 이웃(만물)을 사랑하고 돌보고 보호하는 '평화의 다스림'이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은 공생적 동반자 관계로 상호 의존적 보완적 유기적 관계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생태계와 자연을 도외시하고 파괴하면 그것은 적으로 돌변하여 부메랑이 된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산다고 상상해 보라.
자연이라는 단어는 '탄생중'인 것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나투라(natura)'에서 유래하였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후로 계속해서 탄생중이므로 조심스레 보전해야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청지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청지기로서 ‘직권남용’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직무유기’ 또한 유념해야 한다.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도대체 누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공기, 물, 햇빛, 숲, 산, 강, 땅은 지구의 유산이다. 누구도 어떤 집단도 그것을 차지하거나 소유하거나 망치거나 오염시키거나 파괴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땅의 열매를 신에게 선물 받고,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다시 신에게 바쳐야 한다"- 조연현의《영혼의 순례자》중에서 -
"천연계의 어디에서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나타나 있으며, 우리의 필요와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이 놀랄 만큼 알맞게 지어져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교육,106,107.
적용) 뉴스타트(채식) 운동은 환경 회복 운동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1) 가축 사료로 전세계 곡물 40%가 소비됨, 소고기 450g에 곡물7kg,물10,000리터 필요.
(2) 800,000kg 동식물이 살수 있는 1ha의 살림을 벌채해서 얻을 수있는 소고기는 200kg.
(3) 소의 분뇨 배출량은 사람의 20배, 온실효과의 주범인 메탄가스 15%가 가축 분뇨.
교훈) 성경은 태초부터 인간이 만물을 관리할 하나님의 청지기로 소명 받았음을 증거한다.
<수요일> 안식일과 환경
문1) 안식일과 자연 환경은 어떤 생태학적 상관 관계가 있는가?
오늘날 자연계의 생태계 파괴와 위협은 동,서 고금의 이념을 초월하여 인류의 빅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지구촌의 위기는 기독교가 생태학적 창조 안식일 신학을 소홀히한 결과이다.전통 신학은 창조의 초점을 인간에 두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가르쳤으나, 생태학적 신학은 인간이 아닌 안식일로 귀결한다. '몰투만'은 전통 신학이 안식일을 소홀히 다루어 왔음을 지적하고 창조와 안식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안식일 창조론"을 제시했다.
그러므로 생태학적 신학은 안식일, 안식년, 희년을 창조의 질서롤 보고 이 질서가 지켜질 때, 자연계와 생태계의 평화가 유지된다고 믿고 있다. 안식일 창조론은 환경 윤리의 주춧돌이다.
문2) 하나님께서 안식일과 안식년, 희년을 제도적으로 주신 현대적 의미는?
위의 제도들은 인간의 탐욕과 방종, 부절제를 콘트롤 하고, 오남용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다.
'쉼'은 생산과 개발, 끝없는 욕망에 대한 중단을 의미한다.(레25장) 인간과 동식물, 자연 환경에 대한 보호와 보전과 회복, 자유를 위한 창조자의 법칙이다. 오늘날의 환경적 재난과 재앙들은 인간이 창조주의 뜻을 거스리고 불순종한 댓가다.
고대 이스라엘이 '쉼'의 순리를 망각하고 탐욕과 이욕에 눈이 멀어 '안식'을 지키지 않으므로그들을 바벨론으로 쫒아내어 자연을 70년 동안 황무하게하여 쉬도록 조치하셨다.(대하36:21) 이스라엘 역사는 휴식의 박탈과 피조물에 대한 공격적인 착취 행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경고다.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은 회복될 새 하늘과 새 땅(영원한 희년)을 차지할 권리가 없다.
[예화]"두 종류의 멈춰 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쉬기 위해 멈추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쉬지 않고 달리다가 고장나서 어쩔 수 없이 멈춰서는 경우입니다. 쉬기 위해 멈추면 휴식과 충전과 여유를 얻게 되지만 고장이 나서 멈추게 되면 뒤늦은 후회와 회한만이 되돌아 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땅이 안식년마다 쉬면 지력이 강하여져서 화학 비료를 쓸 필요도 없고 해충이 작물에 침입하지 못한다"
"사람 몸은 7일 리듬을 가지고 있는데, 태아부터 7일의 배수로 성장하여 싸이클이 일생동안 지속되며, 세포도 7년마다 교체된다. 7일 주기가 깨지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0 으로 다운된다. 몸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critsol 호르몬, 적혈구, 혈압, 심장박동, 소변의 양과 성분, 면역체계, .등등이 모두 7 일 리듬을 가지고 있다. 생명체는 물론 최근에는 alga 라는 거대한 단세포 조류(藻類) 식물을 실험한 결과 이러한 단순한 생물조차도 역시 7 일 리듬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적용) 생태학적으로 안식일을 보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라.
예: 광야에서 안식일에 나무 하는 일과 음식을 삶고 굽고 하는 일을 금지하심(살림과 에너지 자원 보호) 안식일 대중 교통이나 자전거로 교회 오기 등.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창조하신 작품들을 명상하게 이끌도록 의도하셨다"-PP48
교훈)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과 산업 활동의 중단을 통해서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욕망을 억제하는 기능도 한다.
<목요일> 인류의 지배권
문1) "다스리라"는 명령은 에덴의 “지구 환경 보호 헌장”이다.
"많은 동식물로 가득 찬 지구가 창조된 후, 창조주의 걸작품이며, 그를 위하여 이 아름다운 세상이 단장함을 입은 존재인 사람이 활동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그 사람에게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통치권이 주어진 바 되었다"-PP44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시 8:6~8).
"다스리다"(창1:26) 라는 의미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다"는 본래 고대 이집트에와 바빌론의 궁중 언어로 "돌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하는 것은 창조주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정원사가 파크를 아름답게 가꾸고 관리하는 것처럼 인간은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자연을 사랑하고 돌봐야 하는 사명을 받았다. 인생의 목적은 자연의 풍요로움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자연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먼저 터득한 사람은 성인이다"-공자
[대한민국 자연보호 헌장]
1978년 10월 5일에 정부가 선포한 우리나라의 자연 보호에 관한 헌장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속의 온갖 것들이 우리 모두 삶의 자원이다. 자연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원천으로 오묘한 법칙에 따라 끊임 없이 변화 하면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조상분들은 이땅을 금수강산으로 가꾸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향기 높은 민족 문화를 창조하여 왔다. 그러나 산업 혁명과 산업문명의 발달속에서 인구의 팽창에 따른 공기의 오염, 물의오탁. 녹지의 황폐와 인간의 욕심으로 무분별한 훼손등으로 자연의 평형이 상실되어 생활 환경이 악화 됨으로써 인간과 모든 생물의 생존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 모두가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모든 공해 요인을 배제함으로써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회복 유지하는데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이에 우리는 이땅을 보다 더 아름답고 쓸모있는 낙원으로 만들어 길이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자연 보호 헌장을 제정하여 한사람 한사람의 성실한 실천을 다짐한다“생략
문2) "다스림"의 청지기 사명과 책임에 실패한 자들이 받을 심판은 무엇인가?
마지막 날에 인류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노아 홍수 때처럼 창조 순서의 정확한 반전이다.
"땅에 거하는 사람, 들짐승, 공중에 나는 새, 바다의 고기가 없어지더라"(호4:1~3; 창6장; 습1:3)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놓으신 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훼손하므로 창조 질서를 거스려 스스로 호된 심판을 자처한다.계16장의 7 재앙은 자연계에 도전하여 엉망이 되게한 인간에 대한 자연계의 분노다.
적용) 환경 보호를 위해 평소에 어떤 생활 원칙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나라 속담에 물같이 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에너지 자원의 귀중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도 어려서부터 자연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 정신을 몸에 배도록 보여주고 교육해야 한다.
교훈)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은 그것을 잘 돌보고 관리하라는 인류 최초 헌장이다.
[결론] 죄가 세상을 망쳐 놓았을지라도 그 상흔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일은 우리의 복음적 사명이다. 청지기 직분은 자연 환경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의무도 동반한다.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절제하는 검소한 정신은 성령의 열매다. 그런 자들이 곧 획복될 낙원의 영원한 주인이 될 것이다. 천연계는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진리의 보고이자 벗이었다.
[예화]“독일 소도시 레마겐에 사는 베어트람(65)씨 부부 가정은 전형적인 독일 중상류층이다. 연금만도 매월 3천 5백 마르크(2백40만원)가 나오고 예금도 많은 편이다. 생활 수준이 괜찮지만 베어트람 할머니는 한겨울에도 난방은 저녁 6시 이후에만 튼다. 밤 12시면 무조건 자동적으로 꺼지도록 해 놓았고 집에 사람이 없을 땐 반드시 끈다. 물 관리는 더 놀랍다. 화장실 변기 물은 빗물을 받아 놓고 쓰고, 수돗물은 양치질 때나 부엌일을 할 때도 절대 틀어 놓고 쓰는 법이 없다. 설거지를 할때도 싱크대에 물을 받아 놓고는 세제를 조금 풀고 한 두 번밖에 헹구지 않는다. 헹군 그릇은 마른행주로 닦으면 그만, 그리고 독성이 없는 세제이기 때문에 설거지 한 물로 신발 털이 발판을 한 번 빨고, 다시 그 물을 마당 화초에 준다. 수돗물 한 바가지를 설거지, 발판 빨기, 화초 가꾸기 등으로 무려 3번이나 활용하는 셈. 전기도 되도록 꺼 놓는다. 거실, 안방에도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스탠드나 미등 밖에 켜 놓지 않는다. 전화요금은 기본요금 수준. 전화 대신 카드나 엽서를 이용하고 전화를 쓸때는 싼 요금 시간대를 찾는다. 대부분의 옷은 한 번 입으면 완전히 헤어 질 때까지 입는다. 베어트람 할머니가 TV를 보면서 구멍난 양말을 손수 깁는 광경은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여유가 많은 것 같은데 뭘 그리 아끼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나만 그런게 아니고 독일 주부들은 보통 이렇다’고 설명해 준다”
댓글목록
환경사랑님의 댓글
환경사랑 작성일
가장 현실적인 자연 보호는 위의 글처럼 에너지 자원을 아끼고 절약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에너지 자원을 쓰지 않고는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환경 보호는 독일처럼 주부들의 손에 많이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영철님의 댓글
임영철 작성일
오늘도 감사하게 받아감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성령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향기님의 댓글
아름다운 향기 작성일
도움 많이 받고 갑니다 .
행복한 안식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