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과 구속주 하나님(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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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2-01-13 11:30 조회6,504회 댓글8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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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기억절:"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5:12)
저자는 제 3 과의 서론에서 “죄는 너무 악하고 치명적이며 위협적이기 때문에 오직 창조주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36쪽)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죄가 너무 악하고 치명적이며 위협적어서 오직 창조주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라면 너무 악하지 않고 치명적이지 않고 위협적이지 않은 작은 죄라면 창조주께서 처리하지 아니하시고 다른 존재가 처리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처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창조주이신 예수님만이 처리할 만큼 죄가 너무 악하고 치명적이고 위협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품성 안에서는 창조주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 구원자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하고자 하는 존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야만 했습니다.
강제되거나 강요되지 않는 자유로운 자신의 생각대로의 선택만이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고 사랑이신 하나님과의 연결이 곧 생명이므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창조되어지는 모든 존재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자유의지는 바르게 사용하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생명의 관계를 갖게 하지만 잘 못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선택하지 않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그 결과는 창조주의 생명을 거절함으로 인한 창조전의 상태인 무(無)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험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위험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만이 사랑의 관계가 유지되는 특성에 따라 하나님은 처음부터 창조의 부작용을 안고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려하신 창조의 부작용은 자유의지를 부여하신 창조주하나님께서 모두 책임지시고 처리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시작하신 창조였습니다.(슥6:13)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 전에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 양”(계13:8)이 되셨습니다.
창조주라는 말 안에 구속주라는 의미가 이미 내포되어 있습니다.(사43:1)
십자가는 창조주께서 사람의 선택에 대해 책임지시는 창조주의 품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행위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볼 때 모든 우주 거민들은 그동안 들었던 사단의 논쟁이 거짓임이 드러나게 되었고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사단의 거짓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우주 거민들은 없게 되었습니다. (요12:31-32, 계12:13)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창조주의 품성을 보게 됩니다.
아담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아담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대속하시는 사랑을 볼 때에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란 하나님의 품성대로 행할 때 즉 하나님다울 때를 말합니다.
사람의 선택에 대하여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아니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조 전의 결심대로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사람대신 돌아가심으로 해결할 때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대속하는 책임지는 사랑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볼 수 있기에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첫째 날(일)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고 절대적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절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강제하지는 못하시지만 끝까지 변함없는 동일한 사랑을 부어주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많이 거절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더 많이 주고 싶어 하십니다.(롬5:20)
창조하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창조된 사람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을 보여줍니다.
책임지시는 창조주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영원한 무(無)가 되어버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없어지는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둘째 날(월) 구약의 복음
십자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창조주로서 창조된 사람의 선택의 결과로 인간으로 오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짐으로 죄가 되신 예수님과 죄가 되신 예수님을 통과함으로 죄를 해결하셔야만 하는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그 모든 행위를 함께 보시며 동참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이야기가 십자가에서 있었던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야기였기에 온 우주거민들과 사람들의 시야에서 가리 우기 위해 제 육시부터 제 구시까지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마27:45)
십자가에서 보여 진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예표가 모리아 산에서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 입니다.
모리아 산의 경험에서의 핵심은 아브라함의 말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십니다.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십자가의 대속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창조한 사람이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생명이 끊어져 영원한 무로 돌아가는 것을 참아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한 무로 돌아가 버림으로 인해 그들을 잊지 못해(사49:15,16) 영원히 힘들어할 하나님 자신을 위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리는 선택을 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희생이 결과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돌아가셨고 그 결과 우리를 위한 일도 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 뿐만아니라 우리를 위한 죄의 용서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다.(사43:25)
하나님 자신을 위한 죄의 용서가 결국은 우리를 위한 용서가 되었을 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을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롬5:8)신 것입니다.
*모리아 산에 있었던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 다음의 링크를 소개합니다.
mms://amck.ktics.co.kr/awr/sermon/SERYBP-002.mp3
사무엘 상을 강해하는 중에 모리아 산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셋째 날(화) 이사야서의 구원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조된 사람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시기로 작정하시고 창조하셨으므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자유의지의 남용)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창조주의 책임지시는 품성으로 인한 행위)(사53:6)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은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로 인해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선택에 대한 창조주의 책임지심은 창조 전에 구속주가 되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넷째 날(수) 복음과 십자가
복된 소식인 복음의 핵심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롬1:2)
창조주께서 사람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심으로 사람을 대신하여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영원한 무가 된 것이 복음의 핵심 되는 행위이고 그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품성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몇 일전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성찬식을 제정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봄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확신하여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생명 속에 있게 하길 원하셨습니다.
다섯째 날(목) 십자가에서의 절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죽음은 아담의 선택한 결과로 인한 창조 전의 상태인 무로 돌아가게 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어떠한 죽음을 당하시든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죽음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 잠자는 형태의 죽음이 아니라 창조 전의 상태로 영원히 없어지는 죽음이었습니다.
로마의 법에 따라 사형도구인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과의 분리를 경험하셨습니다.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으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람의 선택의 결과인 죄 자체가 되셔서 하나님과 분리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원히 없어지는 죽음을 담보로 예수님 이전의 사람들은 잠자는 죽음을 죽었고 예수님 이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담보로 역시 잠자는 죽음으로 죽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경험하셨던 하나님과의 분리, 영원한 무가 되는 죽음은 천년기가 지난 후 하나님을 거절했던 모든 사람들이 부활한 이후에 경험해야 할 죽음이고 그 죽음으로 창조 전의 상태인 무로 돌아가 버림으로 이전 것은 모두 사라지게 되고 새 하늘고 새 땅을 새롭게 창조하셔서 새로운 지구로 재 창조 됩니다.
부활이 전제되지 아니한 영원히 없어지는 죽음을 선택하신 나의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 할 때에 내 인생 전체를 주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생기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댓글목록
정구성님의 댓글
정구성 작성일그렇지요 죄가 너무 악하고 치명적이며 위협적이기 때문에 오직 창조주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이 아니지요, 창조주이기 때문에 자기의 피조물이 저지른 모든일에대해 책임지시는 분이지요. 그리고 죄란 하나님을 오해해서 하나님을 떠난것이고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생명으로부터 떠난 것이고 그러므로 그는 창조이전의 상태인 먼지의 상태로 가는 것이지요, 그런 그것이 안타까워 영원한 생명을 다시 주시기위해 그 죽음을 당신이 대신죽으시는 것, 그것이 구속이지요. 하품(하나님의 품성)으로 명쾌한 해석을 해주시는 목사님 고맙습니다. 홧팅!!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작성일감사합니다.
정구성님의 댓글
정구성 작성일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삼육대학교 대학원 209호실에서 '하품'모임이 있습니다. 하품이란 하나님의 품성을 알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성경을 글자의 해석으로만 보면 사랑의 하나님 뒤에 숨어있는 무서운 하나님이 드러나지요. 하나님은 그런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사랑일 뿐입니다. 청년들이여 '하품'에 오세요, 하나님의 구원이 누구에게든지 열려있듯이 '하품'은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하품'의 모임 회장인 김정미씨의 연락처는 010-7156-3043입니다. 그 모임의 고문역인 저는 010-3504-1551입니다. 연락주세요, 함께 '하나님의 품성'을 알아보지 않겠습니까?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작성일모이는 장소는 대학원 202호입니다. 모든 청년들을 환영합니다.
배옥남님의 댓글
배옥남 작성일하나님의 품성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면서도 불현듯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습에 따라 사랑의 형태가 달라진다고 여겨졌었는데, 이제는 그분의 사랑은 항상 똑같음을 알게된것 같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계속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 알려주세요.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작성일배옥남님..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글로리아님의 댓글
글로리아 작성일창조주 하나님의 책임지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품성이 너무 좋아요. 고맙습니다.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작성일글로라아님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을 함께 알아가게 되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