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2과 태초에 (교과토의자료 및 부가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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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대언 작성일12-01-05 09:24 조회5,01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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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2012년 제1기 2과 교사모임 >
1. 안교교과: 30%이상 말하지 말라, 경청, 격려 중요!
*제목: 태초에
* 기억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2. 도입질문: 마음을 열기 위한 질문
1)토의질문:
여러분의 경험 중에
‘정말 멋지다. 아름답다’
생각되는 자연의 한 장면을
소개해 봅시다. (일출, 일몰, 절경 등)
2)교사정리: 감사합니다.
*전체 부가설명: 창조의 목적과 창조와 구속의 관계
만들어진 모든 물건에는
만든 목적이 있듯이
창조에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창조하셨을까?
창조의 목적은 무엇일까?
삼위 하나님께서
외로우셔서 또는 심심하셔서
창조를 계획하셨을까?
삼위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창조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시다.
오히려 창조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희생당하셔야 하는
문제가 생기고 더 어려운 길을
걸으셔야 한다.
그러니 창조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삼위 하나님이
이타적인 사랑의 본성을
가지셨다면
그분들은 반드시 창조하셔야만 한다.
삼위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면 창조는 필연이다.
왜 그럴까?
세분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사랑은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준다(신10:13).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은
정말 행복을 경험하고 계셨다.
그런데 이 행복을
세분의 하나님들만 누린다면
이것은 집단 이기주의가 된다.
개별적으로는 이타적일 수 있으나
이 행복을 세분만 누리고 싶다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가 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이타적 사랑을
가지신 분들이다.
이 행복을 하나님들만 누릴 수 없었다.
이 행복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 행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
창조를 계획하신 것이다.
피조물이 이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반드시 주어야 할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행복의 원리인
이타적 사랑이다.
이 이타적 사랑을 표현한 것이 율법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것이다.
두 번째는 자유의지이다.
이것을 주지 않으면
첫 번째 원리에 의해야
이타적인 사랑 가운데서 살지만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이타적 사랑을 하는 로봇이되는 것이다.
로봇은 행복을 누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계획하실 때
행복의 원리인 사랑과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는
행복의 원리인 이타적 사랑을
버리고 이기적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자유를 주면
행복의 원리인 이타적 사랑을 버리고
반대의 길인 죄를 선택할 가능성을 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가 미리 나타날 것을 아시고
구속의 경륜을 창조 전에 먼저 만드신 것이다
(롬16:25,엡3:9-11).
구속의 계획은
또 다른 창조이다.
창조는 없는 것을 존재케 하는 것이다.
없는 것을 존재케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씀이라는 능력을 사용하셨다.
이렇게 없던 존재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존재케 되었으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선택함으로 사망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셨다.
성경의 사망이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
즉 원래 없던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은 죄로 말미암아
없어진 존재에게 다시 존재케 하는
창조이다.
그러므로
구속와 창조는 분리할 수 없다.
3. 교과요약
1) 질문:
오늘 2과는 진화론이
진리인 마냥 가르치는 세상에서
참 진리인 성서적 창조론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각 교과의 요일별 내용을 통해
창조론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2)교사정리:
①일요일(창조주간):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대는 진화론이 아니고
창조론이 맞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게 되었습니까?
(답: 창조론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수 많은 것들. 진화론의 허구 등)
②월요일(창조주의 마음):
진화론은 경쟁의 결과(적자생존)으로
오늘날의 모습까지 진화되었다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그 마음은 약자를 누르고
승자가 되어야 하는 사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론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답: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 하셨다.
이 운행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단 두 번 사용되었는데
또 한번이 신명기 32장 11절에 나타나 있다.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독수리는 새끼들을 둥지에서 떨어뜨려
스스로 나는 것을 가르칠 때에
항상 새끼들 위에서 감시하고
지쳐서 떨어지는 새끼가 있으면
그 밑으로 날갯죽지를 펴 받아서
안전하게 다시 둥지에 내려 놓는다.”
(신 32:10-11, 현대어)
어미가 새끼를 이렇게 사랑하고
돌보듯이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을 비유했다.)
③화요일(하늘의 선포):
시편 기자는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답: 끝없는 우주를 보며
하나님의 넓으신 마음을 본다.
꽃 잎 하나 하나의
세밀한 부분을 보며
하나님의 섬세하심을 본다.
원숭이와 돼지를 보면서
하나님의 미소와 유머러스 하심을 본다 등)
④수요일(십자가와 창조):
일부 신학자들나 교단들이
창조론과 진화론을 결합시키려고 하거나
진화론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십자가의 교훈과
절대 함께 할 수 없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를 나누어봅시다.
(답: 진화론은 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진화론에서 생존을 위해
남을 이겨야 하는 것이 자연스런 법칙이며
이 이기적인 선택은 죄가 아니라
생존의 자연스런 결과라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죄가 무엇임을 분명히 설명하고
이 죄가 어떻게 들어와서
세상을 파괴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고
이기적인 선택의 결과로 죄가 들어왔으며
죄의 결과로 진화된 것이 아니라
퇴화되었음을 성경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죄의 개념이 없는 진화론과
죄에서 구원하는 십자가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십자가는 창조론와 함께 한다.
왜냐하면 구속은 재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창조는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이며
구속은 죄로 말미암아 사망 당한 존재
즉 없어진 존재를 죄를 없애시고
다시 있게 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속은 창조주만이 할 수 있다.)
⑤목(창조와 재창조):
죄의 역사를 끝내시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약속을 주셨습니까?(계21:1-4)
(답: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
4.교과토의
1)토의질문(월):
진화론의 정신과
창조론의 정신을 살펴보았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각각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 답: 진화론의 경쟁의 사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더 이기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같다.
이것이 죄가 아닌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창조론의 정신은 사랑이기 때문에
나도 잘되고 너도 잘되고
혹 내가 못되더라고 너는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
또 약자를 돌보아주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
*교사정리:
감사합니다. 이 세상은 진화론의 사고방식과
창조론의 사고방식의 싸움입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세상의 사고방식에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따르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2)토의질문(화):
진화론을 믿는 사람에게 창조의 진리를
설명하는 기회가 생겼다면
어떤 말(증거)을 하고 싶습니까? 나누어봅시다.
*교사정리:
감사합니다. 진화론이 아무리 세상을 뒤덮어도
결국 창조의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이 진리를 잘 증거하도록 준비하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5. 결론:
성경적 창조론과 진화론을
조화시키려는 수많은 노력이 있지만,
그 둘은 서로 합할 수 없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창조의 진리에 굳게 뿌리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진리가 무너질 때
구속의 진리도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창조의 진리를
증거할 수 있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1. 안교교과: 30%이상 말하지 말라, 경청, 격려 중요!
*제목: 태초에
* 기억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2. 도입질문: 마음을 열기 위한 질문
1)토의질문:
여러분의 경험 중에
‘정말 멋지다. 아름답다’
생각되는 자연의 한 장면을
소개해 봅시다. (일출, 일몰, 절경 등)
2)교사정리: 감사합니다.
*전체 부가설명: 창조의 목적과 창조와 구속의 관계
만들어진 모든 물건에는
만든 목적이 있듯이
창조에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창조하셨을까?
창조의 목적은 무엇일까?
삼위 하나님께서
외로우셔서 또는 심심하셔서
창조를 계획하셨을까?
삼위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창조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시다.
오히려 창조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희생당하셔야 하는
문제가 생기고 더 어려운 길을
걸으셔야 한다.
그러니 창조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삼위 하나님이
이타적인 사랑의 본성을
가지셨다면
그분들은 반드시 창조하셔야만 한다.
삼위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면 창조는 필연이다.
왜 그럴까?
세분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사랑은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준다(신10:13).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은
정말 행복을 경험하고 계셨다.
그런데 이 행복을
세분의 하나님들만 누린다면
이것은 집단 이기주의가 된다.
개별적으로는 이타적일 수 있으나
이 행복을 세분만 누리고 싶다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가 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이타적 사랑을
가지신 분들이다.
이 행복을 하나님들만 누릴 수 없었다.
이 행복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 행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
창조를 계획하신 것이다.
피조물이 이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반드시 주어야 할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행복의 원리인
이타적 사랑이다.
이 이타적 사랑을 표현한 것이 율법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것이다.
두 번째는 자유의지이다.
이것을 주지 않으면
첫 번째 원리에 의해야
이타적인 사랑 가운데서 살지만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이타적 사랑을 하는 로봇이되는 것이다.
로봇은 행복을 누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계획하실 때
행복의 원리인 사랑과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는
행복의 원리인 이타적 사랑을
버리고 이기적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자유를 주면
행복의 원리인 이타적 사랑을 버리고
반대의 길인 죄를 선택할 가능성을 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가 미리 나타날 것을 아시고
구속의 경륜을 창조 전에 먼저 만드신 것이다
(롬16:25,엡3:9-11).
구속의 계획은
또 다른 창조이다.
창조는 없는 것을 존재케 하는 것이다.
없는 것을 존재케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씀이라는 능력을 사용하셨다.
이렇게 없던 존재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존재케 되었으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선택함으로 사망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셨다.
성경의 사망이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
즉 원래 없던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은 죄로 말미암아
없어진 존재에게 다시 존재케 하는
창조이다.
그러므로
구속와 창조는 분리할 수 없다.
3. 교과요약
1) 질문:
오늘 2과는 진화론이
진리인 마냥 가르치는 세상에서
참 진리인 성서적 창조론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각 교과의 요일별 내용을 통해
창조론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2)교사정리:
①일요일(창조주간):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대는 진화론이 아니고
창조론이 맞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게 되었습니까?
(답: 창조론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수 많은 것들. 진화론의 허구 등)
②월요일(창조주의 마음):
진화론은 경쟁의 결과(적자생존)으로
오늘날의 모습까지 진화되었다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그 마음은 약자를 누르고
승자가 되어야 하는 사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론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답: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 하셨다.
이 운행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단 두 번 사용되었는데
또 한번이 신명기 32장 11절에 나타나 있다.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독수리는 새끼들을 둥지에서 떨어뜨려
스스로 나는 것을 가르칠 때에
항상 새끼들 위에서 감시하고
지쳐서 떨어지는 새끼가 있으면
그 밑으로 날갯죽지를 펴 받아서
안전하게 다시 둥지에 내려 놓는다.”
(신 32:10-11, 현대어)
어미가 새끼를 이렇게 사랑하고
돌보듯이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을 비유했다.)
③화요일(하늘의 선포):
시편 기자는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답: 끝없는 우주를 보며
하나님의 넓으신 마음을 본다.
꽃 잎 하나 하나의
세밀한 부분을 보며
하나님의 섬세하심을 본다.
원숭이와 돼지를 보면서
하나님의 미소와 유머러스 하심을 본다 등)
④수요일(십자가와 창조):
일부 신학자들나 교단들이
창조론과 진화론을 결합시키려고 하거나
진화론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십자가의 교훈과
절대 함께 할 수 없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를 나누어봅시다.
(답: 진화론은 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진화론에서 생존을 위해
남을 이겨야 하는 것이 자연스런 법칙이며
이 이기적인 선택은 죄가 아니라
생존의 자연스런 결과라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죄가 무엇임을 분명히 설명하고
이 죄가 어떻게 들어와서
세상을 파괴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고
이기적인 선택의 결과로 죄가 들어왔으며
죄의 결과로 진화된 것이 아니라
퇴화되었음을 성경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죄의 개념이 없는 진화론과
죄에서 구원하는 십자가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십자가는 창조론와 함께 한다.
왜냐하면 구속은 재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창조는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이며
구속은 죄로 말미암아 사망 당한 존재
즉 없어진 존재를 죄를 없애시고
다시 있게 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속은 창조주만이 할 수 있다.)
⑤목(창조와 재창조):
죄의 역사를 끝내시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약속을 주셨습니까?(계21:1-4)
(답: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
4.교과토의
1)토의질문(월):
진화론의 정신과
창조론의 정신을 살펴보았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각각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 답: 진화론의 경쟁의 사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더 이기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같다.
이것이 죄가 아닌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창조론의 정신은 사랑이기 때문에
나도 잘되고 너도 잘되고
혹 내가 못되더라고 너는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
또 약자를 돌보아주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
*교사정리:
감사합니다. 이 세상은 진화론의 사고방식과
창조론의 사고방식의 싸움입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세상의 사고방식에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따르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2)토의질문(화):
진화론을 믿는 사람에게 창조의 진리를
설명하는 기회가 생겼다면
어떤 말(증거)을 하고 싶습니까? 나누어봅시다.
*교사정리:
감사합니다. 진화론이 아무리 세상을 뒤덮어도
결국 창조의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이 진리를 잘 증거하도록 준비하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5. 결론:
성경적 창조론과 진화론을
조화시키려는 수많은 노력이 있지만,
그 둘은 서로 합할 수 없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창조의 진리에 굳게 뿌리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진리가 무너질 때
구속의 진리도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창조의 진리를
증거할 수 있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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