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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 1 기 제 1 과 삼위의 하나님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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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2-01-02 17:23 조회5,707회 댓글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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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삼위의 하나님


기억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20-21)


제 1 과의 제목에 대한 바른 이해

이번 기의 첫 번째 과의 제목이 삼위의 하나님 입니다.

그런데 이 과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생각해 볼 때 제목에 대한 정확한 기술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여야 합니다.

삼위의 하나님은 각각의 개성과 인격을 가지신 삼위에 대한 것을 떠올리게 됨으로 자칫 하면 삼신(三神)의 개념이 되어 버립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각각의 개성과 인격을 가지고 계시지만 세 하나님의 개념보다는 삼위 하나님이 품성과 생각과 뜻과 행동 등에 있어서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일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 일과의 정확한 제목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삼위일체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용어를 설명할 때 명확히 이 말은 이것입니다 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명확하게 설명이 곤란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말은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닙니다 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방법을 사용해야 할 듯합니다.

삼위일체란 삼신을 믿는 것도 아니고 한 하나님이 구약에서는 아버지로, 신약에서는 예수님으로, 오순절 이후로는 성령으로 불리는 것도 아닙니다.

각각의 동등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 독립된 개체로서 스스로 존재하시지만 그들의 품성과 뜻과 생각과 목적과 행동 등이 같기 때문에 삼위지만 일체라고 합니다.



첫째 날(일) 하나님의 유일성


삼위일체라는 용어의 일체가 하나라는 말로 설명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에 대한 히브리어는 두 가지의 단어가 있습니다.

첫째는 “야히드”라는 단어로 “야히드”는 절대 단일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이고, 둘째는 “에하드”라는 단어인데 “에하드”는 복합 단일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절대 단일이란 절대적으로 유일하게 오직 하나라는 의미이고 복합 단일이란 하나라고는 사용하지만 그 하나를 이루는 요소가 각각의 개체와 인격을 가진 둘 이상의 복합적인 결합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6:4의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에 사용된 유일한의 히브리어는 복합 단일을 가리키는 “에하드”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창2:24의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의 “한”(하나)와 동일한 의미로 두 명이지만 “한”(하나)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런 개념은 신약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약2:19; 고전8:4)

하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 절대 단일이 아닌 복합 단일의 단어를 사용합니다.

절대 단일이 아닌 복합 단일을 사용하는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라 불리는 분과 아들이라 불리는 분 그리고 성령이라고 불리는 분이 각각 독립된 개체와 인격을 가지고 계시지만(삼위) 품성과 뜻과 목적과 행동 등에 있어서 하나처럼 동일하기 때문에(일체) 하나라고 말합니다.



둘째 날(월)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오해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오해들은 여러 가지 용어들에 대한 혼란에서 온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나 성령, 아버지, 아들, 성령, 예수, 하나님의 아들 등등 여러 가지 이름과 칭호들로 인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오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의 모든 이름이나 칭호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다양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과 칭호이고 원래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이 죄가 생기기 전에는 필요 없는 이름이었고 그저 “여호와”(출3:14-15)입니다.

스스로의 생명으로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의미의 여호와라는 이름은 온 우주에 모든 존재들과 하나님을 구별하는 유일한 이름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고 대대로 기억할 하나님의 표호였습니다.

그래서 민6:23-26에 나오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3번의 축도는 각각 여호와로 이름 하는 분들에게 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 공이 여호와인 이유는 삼위의 하나님 모두 스스로의 생명으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온 우주의 모든 존재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이름인데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이름과 칭호를 추가 하셨습니다.

오늘의 소지에 나오는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필요했던 이유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죽은 결과를 아담을 창조하신 분(여호와)께서 메시야로 기름부음 받고 메시야로서 십자가에서 해결할 약속하신 구원자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칭호입니다.

창조하신 분께서 창조한 아담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신 것이므로 그리스도는 신성이며 동시에 인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과 신약의 기록들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고 특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의 시험 받으심과 십자가에 달렸을 때의 상황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주리셨을 때 시험하고자 했던 방법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렸을 때 시험하고자 했던 방법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마27:42) 였습니다.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 왜 예수님께는 시험거리였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것이 왜 예수님께 시험거리였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할 수 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능력이 신성이고 예수님이라는 인성 속에 신성이 있음을 알고 있는 사단은 예수님이 가지신 신성을 사용하도록 시험하였고 만약 예수님이 신성을 사용하면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첫째 아담에게 없는 신성을 사용한 것이므로 아담의 선택에 대한 책임지시는 창조주로서 둘째 아담(인간)으로서 피 흘림으로 죽음으로 해결해야 하는 구속을 깨뜨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날(화) 성령


성령님도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여호와로 불려지는 분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성령이란 칭호가 추가 되었을 뿐입니다.

성령님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므로 창조와 구원에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도 인격을 가지고 계시고 독립적인 분이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주요한 사역은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합니다.(요16:13-14)




넷째 날(수) 통일성과 동등성


하나이시지만 세분이십니다.

세분이시지만 하나이십니다.

하나님 스스로 “우리”(창1:26; 창11:7-8; 사6:8) 라는 용어를 사용하심으로 3분이심을 가르쳐 주시고 반면에 우리라는 복수 주어를 사용하지만 단수 동사를 사용함으로 일체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열이 없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들이어서 동등하시고 뜻과 목적과 행동과 품성 등에 통일을 이루십니다.



다섯째 날(목) 하나님의 구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이유는 창조주는 구원자가 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사43:1)

여호와라 이름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창조 사역을 주도하신 분은 우리가 예수님으로 알고 있는 그 분입니다.

그 분은 요1:1-3의 말씀에 의하면 말씀으로도 불렸고 창조사역을 주도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의지를 주심으로 아담의 자유로운 선택을 인정하셨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자유의지를 주신 창조주께서 대신 책임지시기로 아담을 창조하기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회의(슥6:13)하셨고 그 회의대로 창조 전에 이미 창조주께서 구원자가 되시기로 확정하셨습니다.(계13:8- 창세전에 이미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자가 되신 것을 통해서도 그리스도가 창조주임이 분명합니다.

아담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창조주 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성을 쓰시고 오셔서 둘째 아담으로서 사시다가 둘째 아담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책임지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이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행위가 하나님께는 창조하신 하나님으로서 당연한 공의로운 행위였습니다.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박용범 목사님 환영합니다!
영감적인 해설 부탁드립니다.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댓글의 댓글 작성일

감사합니다. 이제사 윗칸에 올라 왔네요.^^

자작나무님의 댓글

자작나무 작성일

* 요즘들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 아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올해도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안에서
  은혜로운 말씀들 부탁드립니다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댓글의 댓글 작성일

감사합니다.

낮은 언덕님의 댓글

낮은 언덕 작성일

목사님,안녕하세요^^*
말씀을 잘 공부하고 이해하도록 도움주시니 감사합니다.
                                                연수동교회  최선화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댓글의 댓글 작성일

최선화 집사님..오랫만입니다. 이곳에서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잘 지내시죠? 송시온이도 많이 컷겠네요. 전기 사업도 잘 되고 있는지요? 송남석 집사님도 잘 지내시죠? 넘 오랫만에 익숙한 이름을 보게 되어 넘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김동남님의 댓글

김동남 작성일

늘 감사한마음뿐입니다. 반가워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은혜충만 성령충만 좋은 말씀주시길....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댓글의 댓글 작성일

장로님..감사합니다.

Vincent님의 댓글

Vincent 작성일

It was dark when I woke. This is a ray of susn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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