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01 삼위의 하나님(질문, 대답, 부가설명)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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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12-30 10:16 조회9,842회 댓글7건본문
1월 7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29분
기억절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20~21).
연구 범위: 신 6:4, 빌 2:6, 마 28:19, 창 1:26~27, 요 14~16장.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가르침만은 분명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지만 세 개의 ‘위격’을 가지고 있다는 삼위일체 개념은 하나님께서 누구시며,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일하시며, 세상과 어떤 관계인지를 다루는 매우 중요한 교리이다. 그리고 그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신성은 구원의 계획을 성립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삼위일체 또는 하나님의 삼중 연합에 관한 세 종류의 증거들이 나온다. (1)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라는 통일성에 관한 증거, (2) 하나님이신 세 위격에 관한 증거, (3) 유일성 속에 내포되어 있는 세분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암시.
비록 인간의 지성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사이의 구분이 하나님의 존재 방식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엘렌 G. 화잇이 언급한 것처럼 “영원 지존하신 삼위일체,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은 동등하지만, 동일하지 않으며 대체될 수 없다.
초기 재림신도들은 이 교리를 가지고 씨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교리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다. <기본교리 28> 제2조에는 이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성부, 성자, 성령 곧 함께 영원하신 세 신격의 통일체이신 한 하나님이 계신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삼위일체에 관한 성경적 이해의 기초를 요약한다.
느끼기 : 하나가 되신 세 분의 광대함, 복잡성 그리고 의롭고 긴밀한 사역에 경외심을 갖는다.
행하기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을 경배한다.
A.
.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일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다.
. 성령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일하십니까?
※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구원의 일을 각 사람의 심령에 받아들이도록 권고하시며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신다.
. 우리가 삼위일체 교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삼위께서는 온전한 연합으로 같은 목적을 같은 능력으로 이루어 가신다. 신자들도 온전한 연합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B. . 세상에 숫자 ‘3’과 관계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공간은 가로 세로 높이, 등
. ‘삼위일체’란 무엇입니까? ‘삼위일체’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삼위일체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신성을 이루고 있으며 그 존재성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삼위가 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 삼위일체는 우리의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와 구원에 함께 역사하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은 구원의 일을 행하시고 성령은 사람들이 그 구원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신다. 이것을 부인하면 구원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 삼위일체 교리를 신앙생활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결심해야 합니까?
※ 삼위가 하나된 것처럼 신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완전한 연합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결론: 우주의 창시자가 어떤 분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 분의 구별된 신격으로 존재하며 각자 다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한분처럼 함께 일하십니다.
첫째날(일) 1월 1일
하나님의 유일성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질문1. 출 3:13~15에서 하나님은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 이 성경절들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어떻게 암시하고 있는가?
[출3:13~15]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답: 하나님은 자기 이름이 여호와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임을 밝히셨다. 스스로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라 이름하신 분 외에는 있을 수 없음을 나타냈다.
질문2.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약 2:19, 고전 8:4)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고전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답: 귀신들도 하나님은 한 분뿐인 줄 알고, 세상에 우상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임을 계시적으로 고백하였다.
<부가설명> 삼위일체 진리는 성경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다. 예수께서 마태28:19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명하셨다. 침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실을 하나님 앞과 우주 앞에 선포하는 예식이다. 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태초에 처음 창조한 사람이 당시로서는 새로운 피조물이었다. 그 새로운 피조물인 아담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창조하셨다. 그 “우리”의 형상과 모양이 남자와 여자로 “우리”가 되게 창조하셨다. 이것은 창조주가 “우리”라는 복수 존재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일이다. 그 복수 존재가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것을, 재창조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실을 우주 앞에 선포하는 예식을 할 때 삼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게 함으로 확인하신 것이다. 마태 28:19은 다른 요일에 본문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그때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교훈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유일한 분인데 그 “하나됨”은 구별된 개체의 통일성을 암시하고 있다.
| 적용 |
그대가 하나님을 닮기 원한다면 삼위일체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할까요?
※ 연합과 협력과 한 마음 한 뜻으로 형제들과 함께 하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영감의 교훈
이해에 앞서는 믿음 - “회의론자들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 무한한 능력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을 믿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제한된 이해력을 통해 인정받으시는 만큼, 당신께서 자신에 대해 우리에게 드러내시지 않은 것을 통해서도 인정받으셔야 한다”(치료봉사, 431).
둘째날(월) 1월 2일
그리스도의 신성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6).
질문1. 한때 엄격한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였는가?(빌 2:6)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답: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하였다.
질문2. 예수께서 여러 사람이 드린 경배를 어떻게 받으셨는지 복음서를 살펴보라(마 14:33, 28:9, 눅 24:50~52, 요 9:35~38). 그분의 행동과 바울의 행동을 비교해 보라(행 14:8~18). 경배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태도는 그분의 신성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마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마28: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눅24:50~52]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 시니 52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요9:35~38]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행14:8~1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13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답: 제자들과 또 제자들과 함께 배에 있던 사람들이 다 경배하였고, 눈을 치료받은 사람도 경배했다.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을 만난 여자들과 제자들이 다 경배했다. 바울은 루가오니아에서 스스 신당 제사장과 주민이 경배하고 제사하려는 것을 극구 말리면서 오직 창조주께만 경배하라고 강론하였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으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증거 하신 것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하나님으로 여긴 바리새인 출신 바울은 예수님이 바로 그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시라는 것을 확인하고 확신하였다.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이 삼위로 계신 것을 확신하였다. 골로새 1:15~18까지에서 예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역설하였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
교훈
신약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 하고 있으며 예수님도 자신의 신성을 부인하지 않으셨다.
| 적용 |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명하기 위한 성경의 증거는 무엇이며 그대의 개인적인 증거는 무엇입니까?
※ 예수께서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셨고, 제자들은 그분에게 경배했으며, 모든 표적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개인적 증거는 각자가 말해보기로 하자. 나는 기록된 성경말씀을 전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생애에 역사하는 섭리의 손길을 기억한다.
셋째날(화) 1월 3일
성령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마 28:19).
질문1. 창 1:2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은 성경 첫 장에 등장하는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답: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창조에 함께 하신 사실을 말한다.
질문2. 마 28:19은 신격의 제 삼위를 어떻게 주목하고 있는가?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답: 침례 시에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주라고 하셨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부가설명> 마태28:19은 삼위일체 진리를 아는데 아주 중요한 구절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동시에 분명하게 언급된 첫 말씀이기도 하다. 물론 요16:13~15에도 삼위가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일요일 부가설명에 말했듯이 침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실을 우주 앞에 선포하는 예식이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 새로운 피조물이 아버지 아들 성령의 역사로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 아들 성령은 셋이기 때문에 복수이다. 그러면 이름도 복수로 쓰는 것이 문법에 맞다. 그러나 이름은 단수이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같은 한 이름이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낸다. 그 이름은 여호와이다. 아버지 이름도 아들 이름도 성령 이름도 여호와라는 말이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에 아버지 아들 성령이 다 스스로 계시는 분임을 분명히 계시한 말씀이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서방 교부로서는 터툴리안이 처음 사용하였다. 그러나 동방 교부는 데오빌로가 터툴리안보다 먼저 사용하였다. 그러나 마28:19에 의하여 삼위일체보다는 삼위일명(三位一名)이 더 성경적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한 이름이라는 말이다. 그 이름이 여호와이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일체성의 핵심은 존재에 대한 것이다. 삼위가 다 스스로 계신분이라는 말이다. 마태28:19은 이 사실을 분명히 계시한 말씀이다. 삼위일체에 대하여 오해하거나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계시하였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은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계시하였지만 구약은 여호와, 여호와 사자, 여호와 신 혹은 여호와의 영이라고 계시하여 삼위 여호와가 분명히 계신다는 것을 계시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간과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구약당시는 이스라엘 주위의 민족들이 다 다신론적 사상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삼위를 강조하면 다신론적 사상으로 오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뚜렷하게 가르치지 않았던 것 같다.
교훈
제삼위이신 성령은 중요한 구속 사역의 순간에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이시다.
넷째날(수) 1월 4일
통일성과 동등성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질문1. 창 1:26~27을 읽어 보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복수성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창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답: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셔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라는 복수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고, “우리”의 형상이 바로 남자와 여자로 “우리”가 되게 창조하신 것으로 확인해 주셨다.
질문2. 사 6:8을 읽어 보라. 이곳에서 “여호와”의 복수성은 어떻게 드러나 있는가?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답: 이사야에게 사역을 맡기시면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라고 하신 후에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하심으로 이사야에게 사명을 주시는 분이 일체, 일명 개념으로는 “내가”라고 하시고 삼위 개념으로는 “우리”라고 하셨다.
질문3.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을 어떻게 하나님의 범주로 높였는가?(행 2:33)
[행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답: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신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통하여 그렇게 하였다.
질문4.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님의 복수성을 어떻게 포함시켰는가?(고후 1:20~22, 고후 13:14(한글 성경은 13절) 참고)
[고후1:20~22]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답: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 약속의 확실한 성취의 보증으로 성령이 오시고 역사하신다고 설명함으로 구원의 과정에 삼위가 함께 일하심을 가르친다.
<부가설명> 고후13:13절은 목사들이 예배 마지막 축도로 사용하는 구절인데 KJV는 14절로 분류되어 있다. 이유는 한글 성경 11절에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는 말을 KJV는 12절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과에 고후13:14절로 나와 있는 것을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고후13:13은 민6:24~26을 해석하여 사용한 것이다. 민수기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세 번 불러서 축복한다. 바울은 그것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축복한다. 삼위가 여호와라는 한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나타낸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오직 하나인 여호와라고 한 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오직 하나인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인 여호와라고 기록한 사실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오직 하나라는 뜻이다. 그 여호와는 하나님이신데, 여기 하나님이라는 말은 엘로힘으로서 복수이다. 복수 존재로 “우리”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며 그 이름이 오직 하나인 거이다. 스가랴서는 이것을 가르쳐준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슥14:9) 하나님은 복수 존재이신 삼위로 계시지만 그 이름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다. 스가랴에 홀로 하나라고 한 말과 신명기에 오직 하나라고 한 말은 다 “에하드”로서 같은 말이다. 목요일에 설명한 사람이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할 때 사용한 “한 몸”도 “에하드”이다. 둘이지만 하나이다. 에하드는 바로 그런 경우에 쓰이는데, 여호와가 오직 하나, 홀로 하나라고 할 때 같은 말을 사용하였다. 에하드 설명은 일요일 교과에 나타나 있다.
교훈
신약과 구약은 종종 유일하신 하나님을 복수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여전히 불가능하다.
다섯째날(목) 1월 5일
하나님의 구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질문1. 요 14~16장을 읽어 보라. 세 분의 위격을 지닌 하나님에 대하여 몇 차례 언급되었는지 세어 보라. 이 언급들을 통해 우리는 이 중요한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답: 적어도 네 번 말하고 있다. 14:1~17에 한 번, 18~27에 한 번, 15장 전체에서 한 번, 16:1~15에서 한 번이다. 이 말씀들은 삼위께서 상호역동적으로 일하심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부가설명> 삼위일명으로 계신 하나님은 창조에 함께 하셨고, 구원에 함께 하신다. 구원은 재창조이기 때문에 역시 창조에 함께 하신 “우리”가 함께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께서 이것을 가르치신 것이 침례를 베풀 때에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령은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도록 일하실 것임을 요16:12~15절과 고전2:9~14에서 밝히고 있다. 성령의 존재나 그 개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고 논하는 것은 모두 성경이 가르치는 길이 아니다. 아마도 대부분 그런 주장은 거짓된 것이라고 치부해도 옳을 것이다. 성령의 인격적 개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낸 성경말씀이 로마 8:27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는 여기서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히4:12,13 참고) 아버지 하나님이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고 말하였다. 만일 성령이 단지 하나님의 감화력이나 능력의 나타남이라고 하면 성령 단독의 생각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령의 생각을 안다고 하였다. 고전2:10,11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고 안다고 하였다. 삼위께서 서로 역동적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씀들이다. 우리는 이런 확실한 진리의 길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삼위 하나님 가운데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구원을 위해 베풀어진 속죄는 성립되기 어렵다.
여섯째날(금)
1월 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의 삼위일체 교리는 양태론(한 하나님이 세 하나님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이론)이 아니다. 또한 한 무리 안에 세 신이 존재한다는 삼신론 또는 다신론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임과 동시에 ‘그분들’이다. ‘그분들’은 항상 함께 계시며 언제나 밀접히 협력하신다.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데 그것이 그분의 뜻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인성을 입고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빌 2:8). 예수님께서 행하신 종속적 역할은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성육신에서 기인한 것이다.
“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났다. 영원한 시대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일체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하심의 모습이며 ‘그의 영광의 광채’이셨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시대의 소망, 19).
➊ 초기 재림신도 가운데 일부는 삼위일체 교리로 갈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교리에 대하여 오늘날 재림교회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시대를 거친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는 계속 확장되는 진리의 속성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경험적으로 진리에 대한 그대의 이해는 어떻게 발전하였습니까? 그대가 한때 견지했던 신념 가운데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교리는 무엇입니까?
※ 초기 재림 운동을 한 지도자들 중에 상당수가 크리스천 코넨션이라는 교파에서 나왔다. 그 교파는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교파였다. 그래서 초기 지도자들 중에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러 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을 연구하고 엘렌을 통하여 기록하게 한 기별들을 인하여 대부분 삼위일체를 받아들이고 우리교회 교리로 확인하였다. 요즘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귀를 기울일 가치가 전혀 없다. 나머지 질문들은 각자가 생각하기 바란다.
➋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 8:58). 이 성경절은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에 대하여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 예수님의 선재성을 계시한 말씀이다. 여기 “있느니라.”는 현재형이다. 그분은 항상 계시는 여호와이심을 가르치신 말씀이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인데 영어로는 “I AM”이다. 이것은 여호와라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당신이 여호와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출3:1~15절을 자세히 읽으면 가시떨기 불꽃 중에 나타난 분이 “여호와의 사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4절부터 읽으면 그 여호와의 사자가 바로 여호와시며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고,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하시고 영원한 이름이 여호와라고 하신 분이 바로 2절에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신 그분이심을 확인할 수 있다. 속지 말자.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 8:58). 이 성경절은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에 대하여 무엇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 이 구절은 예수님의 선재성(先在性)을 친히 말씀하신 내용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시다.(골1:17) 이 구절은 예수님이 창조주요 모든 존재의 근원이심을 나타낸다. 그분이 창조주시라면 그분은 자존자(自存者)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 구절은 이 사실을 계시한다.
요약
우리가 섬기며 가까이 예배하는 무한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분이 자신에 대하여 하신 말씀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삼위일체는 하나의 신비이지만 성경에서 신비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수준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신 심오한 진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릎 꿇는 마음을 가질 때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댓글목록
이신호님의 댓글
이신호 작성일
존경하는 김명호 목사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말씀 안에서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살롬^.^
신종학님의 댓글
신종학 작성일
목사님.
새해에도 하나님의 축복안에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신종학 올림
나경삼님의 댓글
나경삼 작성일
여호와살롬!
지난 한해는 목사님을 통해 많은것을 얻은 한해였습니다.
신앙생활 30년을 통해 가장 의미있는 해였습니다.
올 한해도 건강하셔서 주님의 사업에 더욱 크게 쓰임 받으시는 종
되시길 기도할께요. 감사합니다.
강필운님의 댓글
강필운 작성일목사님! 새해에도 강녕하세요!~ 새해에도 은혜로운 말씀으로 우리를 주에게 바르게 인도하여 주세요~!
강대옥님의 댓글
강대옥 작성일말씀 감사합니다
최종걸님의 댓글
최종걸 작성일목사님 새해 문안드립니다. 간결하고 명쾌한 부가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올 한해 더욱 건강하시고 은총가운데 행복하시길를 기도합니다.
아름다운 향기님의 댓글
아름다운 향기 작성일
목사님 새해에도 주님 축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하세요.
목사님이 계셔서 주린 양들이 풍족한 꼴을 먹을수 있어 참 좋으네요.
주님과의 동행길이 행복하시고 주님 사랑속에 에녹의 길을 가시길 기도 합니다.
주님 오실날 멀잖았으니 그날까지 양들은 목사님 돌보시는 손길의 부드러움 고마워 하겠네요.
언제나 건강 하시고 강건 하세요.
감사 합니다 그리고 존경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