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과 제사장이 입는 은혜의 옷(예화 및 부가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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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1-04-22 20:46 조회6,258회 댓글5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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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제사장이 입는 은혜의 옷
4월 30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20분
도입)
어떤 건축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한국 건축에는 주택을 짓는데 중심이 없습니다." 서양 사람의 주택을 보면 그 주택의 중심이 있다. <화이어 플레이스>(fireplace)라고 하여 불 피우는 데가 있는데 그것이 중심이 된다. 일본 사람이 집 지을 때에는 도꼬노마라고 하는 그림 걸어 놓은 중심이 있는데 그것이 집이 중심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주택은 도무지 중심이 없다는 것이다. 주택에도 중심이 있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가정에 중심이 꼭 있어야 한다. 가정의 중심은 가정 제단이다. 우리 가정은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 안에는 반드시 제단이 있어야 한다. 제단 없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 제단에 항상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 불 꺼진 제단이 무엇을 하는가? 우리 가정이 과연 기독교 가정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면 남편과 아내가 교회에 와서 예배 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자기 가정에 가정 제단을 쌓고 같이 찬미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같이 기도를 드려서 가정 제단에 불을 켜야 하는 것이다. 사실 옛날부터 모든 경건한 가정에는 그 주인이 이를테면 그 가정의 목사가 되는 것이며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홀로 믿음을 가진 어머니는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가정의 중심은 제단이 되어야 한다.
기억절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결론: 아론의 제사장직과 의복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우리를 하나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완전에 연결시킨 그리스도의 역할을 상징하였다.
첫째날(일)
4월 24일 옛 언약의 은혜
도입)
아론의 양보하는 정신과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소망은 그가 재가하고 있었던 범죄의 극악함을 볼 수 없도록 그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하도록 영향력을 끼친 그의 태도는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지도자의 죄는 단지 자기의 죄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지체되게 하기도 하고 가로막는 훼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모세는 아론의 참회를 인정하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벌하실 모든 죄 중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격려한 죄보다 그분께서 보시기에 더 큰 죄는 없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겨 주심으로 영예를 얻은 사람들은 약하고 구부러지기 쉬운 기회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지도자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지도자도 때로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를 비난 하기 앞서서 그의 입장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하며, 더욱이 다른 사람과 어울려 비난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비록 지도자가 조금 모자라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으로 인정하여 그를 위해 기도하거나, 조용히 그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듣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도자가 한번 심하게 흔들리면, 공동체는 매우 큰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역자가 지도자 행세를 한다면, 공동체는 큰 혼란과 분열의 위기에 빠지고 만다. 이번에는 다행히 아론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으로 인해 생겨난 남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을 선다. 문제는 잘못 일으켰지만, 그래도 문제 수습은 잘 한 셈이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비록 큰 죄에 빠졌던 아론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아론은 갓 태동한 선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직무인 종교법의 최고 집행자로서 대제사장직을 최초로 역임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출
32:4).
예수님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말씀하셨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이미 많은 것을 받은 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맡겨졌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우리의 진리와 다른 교회의 교리(지옥설, 일요일 준수, 휴거설 등등)를 비교해보라. 그래서 이 원칙에 따르면 아론의 죄와 금송아지 사건은 더 심각한 것이었다.
출 32:1~6를 읽어보라. 이 극악한 배도에 대하여 아론은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었을까? 배도는 분명 나쁜 것이다. 그러나 아론이 배도를 묵인했다는 사실이 더욱 믿기지 않는다. 아론에게 부여되었던 특권들을 생각해 보라. 아론은 처음부터 모세와 함께 있었고, 모세의 대변자였으며,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했고, 물을 쳐서 피가 되게 했다(출 4:27~30, 7:1, 10, 20). 또한 아론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선택된 소수에 해당됐다(출 24:9~10). 그러나 큰 시험이 찾아오자,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아론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신성한 예복을 입힘으로써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예표하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히 8:1). 다시 말해서 비록 아론에게 끔직한 죄가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그것도 용서뿐 아니라 거룩한 직분까지 얻을 수 있는 큰 은혜를 받았다. 이렇게 아론의 생애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에게 제공된 자비와 구원의 특별한 예증이 되었다.
교훈: 아론이 용서받고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부가적용)
아론은 비록 모세가 자신의 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여겨 그를 섬기며 순종한 것을 보면 훌륭한 인격을 소유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모세의 뒤를 이은 제 2인자의 자리에도 구애받지 않고 겸손히 모세의 대언자로서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한 것을 보면 재능과 신앙을 겸비한 그의 모습을 연상케 된다. 하지만 아론은 백성들의 요구에 쉽게 흔들리는 우유부단한 지도자의 모습도 있었으며, 자신의 죄를 책망하는 모세에게 그 죄를 심각하게 느끼지도 못하고 그 책임을 백성들에게 전가시키는 비겁한 성품도 소유하고 있었다. 아론의 섬김의 자세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성실한 추종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따를 완전한 지도자로서는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동시에 최초의 대제사장이 된 아론은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구약의 제사 제도를 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영감의 교훈 •
▶ 회개와 회복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신 9:20)다. 그러나 모세의 열렬한 중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생명이 보존되었다. 그는 자신의 큰 죄를 참회하고 겸비하게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했다”(부조와 선지자, 323).
둘째날(월)
4월 25일 제사장 직분
도입)
회색 스웨터가 토미의 텅 빈 책상 위에 무기력하게 걸려 있었다. 방금 다른 학생들과 함께 교실을 나간 의기소침한 한 소년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교실, 이제 조금 있으면 최근에 별거를 시작한 토미의 부모가 와서 교사인 나와 면담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갈수록 나빠지는 아이의 학업 성적과 파괴적인 행동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토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상대방 모두를 호출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외아들인 토미는 늘 행복하고 협조적이며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급격히 학업 성적이 떨어진 것을 분명히 부모의 별거와 이혼 소송에 따른 절망감 때문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토미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윽고 토미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토미의 책상 옆에 마련해 놓은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토미의 아버지도 도착했다. 어쨌든 출발은 좋았다. 최소한 그들은 내 면담 요청에 반응을 보일 만큼은 자식에게 관심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놀라더니, 금방 짜증 섞인 표정이 얼굴 위로 지나갔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서도 명백히 서로를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나는 토미의 행동과 학교 수업에 대해 자세히 설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의 별거가 자신의 아들에게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 줄 적당한 말이 떠오르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좋은 단어들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문득 토미의 지저분한 시험 답안지를 보여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토미의 책상 안에서 구겨진 영어 시험지를 한 장 꺼냈다. 시험지는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시험지 앞뒤로 빼곡이 토미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 똑같은 문장을 끝없이 반복해서 휘갈겨 쓴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시험지를 펴서 토미의 어머니에게 건넸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이 펴졌다. 그는 거의 영원이라고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그 휘갈겨 쓴 말들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마침내 토미의 아버지는 시험지를 조심스럽게 접더니 그것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나는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토미의 아버지는 아내가 코트를 입는 걸 도와주고는 둘이서 함께 교실을 나갔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이 다시 합쳐질 수 있도록 적당한 방법을 나한테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은 나를 그 노란색 영어 시험지로 인도하셨다. 그 시험지에는 어린 소년의 괴로운 마음에서 토로된 고뇌에 찬 문장이 다시 끝없이 반복되어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깨어진 한 가정의 회복을 돕는 것도 중간에서 행하는 제사장의 일이 아니겠는가?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출 28:1).
레위지파의 제사장 직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순례 기간 동안에 수립되어 1,500년 이상 지속되었다. 비록 하나님께 있어서 제사장 직분에 대한 개념은 이미 오래 전에 존재해왔으나 레위지파의 제사장 직분의 수립으로 말미암아 그 역할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창 14:18).
교훈: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가까이 하면서 동시에 그들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나타내야 했다.
부가적용)
제사장들은 많은 경우에 백성들과 다른 표준을 요구했다. 때로는 시신을 만져서 부정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몸인 아내를 포함하여 부모와 자녀, 형제, 출가하지 않은 누이 등 근친의 장례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이는 지도자의 거룩은 그가 드리는 제사에 영향을 미치며,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고 또 거룩한 삶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거룩보다 더 엄격히 다루고 있다. 지금도 지도자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영성과 지성, 인격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단지 남들 위에 앉고 앞에 가는 자만이 아니라, ‘스스로’ 절제하고 정결히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겸손히 섬길 줄 아는 지도자가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제사장은 이방의 장례 풍속대로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거나 수염을 깎거나 살을 베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제사장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 문화를 생각 없이 따라 하기보다는 좋은 문화와 가치관을 일구고 선도하도록 부름 받았다. 퇴폐적인 기호와 취향마저도 개성으로 미화하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모습은 내게 없는가?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부정한 여인을 피하고 자기 백성 중에서 거룩한 여인과 결혼해야 했다. 그래야 가정의 정결을 지키고, 아론의 자손들을 통한 제사장직을 잘 계승하고, 자녀들을 거룩하게 양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자녀들의 범죄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엄격하게 처벌했다. 제사장인 우리의 결혼과 가정관, 자녀교육에 대한 가치관은 세상과 어떻게 구별되고 있는가? 지극히 일상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공간인 가정에서부터 분명히 구분되어야, 세상에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소개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가장 거룩한 사역에 참여한 대제사장은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으면서 일상적인 슬픔마저 표현할 수 없었으며, 부모의 장례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성소를 늘 우선시해야 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어떤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영감의 교훈 •
▶ 하나님께 구별됨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을 완전히, 또한 마음을 다하여 섬기는 한 백성으로서 구별되고,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가장 엄숙한 언약에 의하여 주님과 그분만을 섬기기로 스스로 맹세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증언보감 3권, 286).
셋째날(화)
4월 26일 제사장 예복
도입)
제사장이 입는 옷을 에봇이라고 한다. 이 에봇에 들어가는 색상을 보면 금실, 청색, 자색, 홍색실 등이 들어간다. 어깨에는 호마노 보석을 박은 견대를 달고, 가슴에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아름다운 보석이 박혀 있는 흉패가 있다. 또, 흉패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해 쓰이는 우림과 둠밈을 넣어 둔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모두 보석으로 보고 계신다. 이스라엘의12지파는 이스라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석으로 보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석으로 보고 계신데,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물건의 가치는 그 물건을 사기 위해 지불한 댓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을 주시고 사셨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이다. 12개의 보석은 모두 다른 보석이다. 이것은 가치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의미한다. 12개의 보석이 모두 다르지만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고 12개의 보석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설사 세상에서 우리의 모습에는 빈부와 상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동등하게 보시고 우리 모두를 귀하게 보신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출 28:4).
출애굽기 28장을 읽어보라. “제사장 예복의 모형은 그 산 위에서 모세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이 옷은 매우 엄숙한 목적으로 성별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다 위대하신 원형, 곧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백성들은 제사장에게 아름다움과 영광을 입혀 그의 직무의 위엄이 드러나게 하였다. 대제사장이 이 옷을 입을 때 그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드리는 것이요, 그의 옷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세상에 드러내어야 할 영광을 전시하는 것이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유스 인스트럭터, 1900년 7월 1일).
제사장들이 착용했던 것들의 의미를 생각해보라(출 28:12, 29, 30, 38, 42). 이 역시 제사장직과 성소제도가 상징했던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죄값을 담당하시는 우리의 대속자이시다. 이러한 주제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말해주는 상징들로 가득 찬 성소 봉사와 제사장 예복에 예표되어 있었다.
교훈: 제사장의 예복에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사역이 담겨져 있었다.
부가적용)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의 양 어깨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두 호마노를 붙잡아 매라고 했다. 어떤 직책을 맡은 자가 책임감을 말할 때 “어깨다 무겁다”는 말을 한다. 어깨에 맨다는 말은 책임을 진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무거운 십자가를 그 어깨에 지셨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의 능력의 어깨와 사랑의 가슴에는 우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도 내게 맡겨진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고 기도해 주며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가슴에 부착시키는 흉배에는 각종 보석들을 3개씩 4줄로 붙이고 거기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을 새기라고 하였다. 우리도 뜨거운 가슴으로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가슴에 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어깨에 새겨진 이름들, 가슴에 새겨진 이름들을 볼 때에 12지파를 기념케 하라고 하였다. 귀히 여기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표현인 것이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죽어 마땅한 우리를 불러주셨다. 어깨에 단 계급장처럼 우리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 사랑스런 가슴에 품어주신다.
•영감의 교훈 •
▶ 의복은 의미를 담는다
“제사장의 의복과 태도는 그 모든 점에 있어서 보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예배의 신성함 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정결함에 대한 관념을 깊게 하였다”(복음교역자, 173).
넷째날(수)
4월 27일 판결 흉패
도입)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셨을 때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대면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방법인 직접적인 말씀하심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제사장이 입은 흉패 위의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인도를 받았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움직임에 관한 인도가 필요할 때마다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도를 받은 대제사장에게 가야 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출 28:29).
교훈: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판결의 흉패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우리의 믿음과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의 연합을 상징한다.
부가적용)
흉패는 하나의 실체로 함께 건축된 모든 믿는 이들이 함께하는 교회를 상징한다. 각 색 보석이 3줄 4줄로 12개가 있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고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여기서 에봇과 흉패와 견대의 관계를 보면 서로의 아름다움이 상호간에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에봇이 아름다우니 보석이 붙었고 보석이 아름다우니 에봇이 더 아름다워졌다. 서로 상승적인 효과를 낸 것이다. 아름다운 에봇에 영광스런 보석이 박힌 것이다. 그래서 에봇은 보석으로 인해 영광스러워졌고 보석들은 에봇으로 인해 붙어있게 되었다. 이것이 상호적인 아름다움이다. 흉패는 에봇에 붙었고 호마노는 견대에 더해졌고 줄 세공안에 고정되고 이렇게 서로 얽히고 설켰는데 이것이 상호적인 아름다움이고 건축이다. 이 건축은 하나님의 자랑이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볼 때 그 인격이 하나님의 자랑이었다. 그와 같이 열두지파로 상징되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을 때 그리스도라는 에봇과 연합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기념물이라는 것이다.
•영감의 교훈 •
▶ 그리스도의 가슴에 새겨진 내 이름
“그와 같이 크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아버지 앞에서 그분의 피로 탄원할 때에 회개하고 믿는 각 영혼의 이름을 그분의 마음에 지니신다. 시편 기자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 40:17)신다고 말한다”(부조와 선지자, 351).
다섯째날(목)
4월 28일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
도입)
대제사장은 머리에 기름을 붓는 예식을 가진 후 공식적으로 활동하는데 대제사장의 역할은 유대인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여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중재하는 일이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를 대제사장이라고 불렀는데 대제사장의 역할이 사람을 하나님께 중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히브리서 3:1). 또한 대제사장 앞에 큰 이란 말을 붙여서 예수가 대제사장들 가운데 으뜸 되는 대제사장이며,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라는 말로 대제사장이 오로지 한 분뿐임을 강조했다. 예수는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사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셨으므로 으뜸 되는 대제사장 자격이 있다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4~15).
교훈: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시며 우리는 믿음으로 얻은 그분의 의의 옷을 입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부가적용)
제사장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그 판단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의 삶도 내 경험이나 사고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항상 ‘우림’과 ‘둠밈’이 내 가슴 위에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제사장은 머리와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새겨진 패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 제사장의 사고와 생각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성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겉으로의 화려한 옷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복장이 바로 ‘성결’이다. 하나님은 성결해야 만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를 영원히 성결케 하시기 위해 주님이 피와 살을 흘리시며 찢겨주신 것 아니겠는가? 대제사장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제사장들도 물론 이런 일을 하지만 자신과 백성들을 대표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대제사장만의 고유한 의무요 권리였다. 예수님이 이러한 멜기세덱의 전통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설명은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결과이다. 즉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희노애락을 경험하신 분이지만 기도와 순종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멜기세덱과 대제사장을 소개하며 예수님과 비교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우리 인생이 주인이시며(왕의 이미지), 동시에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면 제물을 바치는 대제사장, 즉 중보자이시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주셨다.
•영감의 교훈 •
▶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
“그리스도의 품성을 명상하고 그분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체험할수록 우리는 더욱 예민하게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를 더욱 진지하게 우리의 능력과 구속자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마음의 성전을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할 아무런 능력이 없으나 하나님을 거스려 범한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용서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역사하시고 마음을 순결하게 하는 믿음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성화된 생애, 83).
예비일(금)
4월 2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347~348 “성막과 그 봉사”, 실물교훈, 288 “주의 포도원”, 선지자와 왕, 293 “지식이 없음으로 망함”, 초기문집, 250~253 “성소”, 각 시대의 대쟁투, 416 “하나님의 성소”, 646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그리스도는 참장막에 부리는 자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대제사장이시다. 누구도 그분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그분은 교회의 대제사장이시다”(엘렌 G. 화잇, That I May Know Him, 74).
“우리는 날마다 믿음을 활용해야 한다. 그 믿음은 활용될 때 날마다 증가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기셨고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 앞에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엘렌 G. 화잇, Sons and Daughters of God, 28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우리는 실제로는 의로운 생활을 살지 않으면서 의의 옷을 입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기와 행동에 대한 평가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우리가 실제로 의의 옷을 입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➋일요일 내용 가운데 아론에게 주어졌던 은혜와 용서에 대하여 깊이 토론해 보십시오. 큰 책임이 주어졌던 아론은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하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에게 더욱 고상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토론해 보십시오.
4월 30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20분
도입)
어떤 건축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한국 건축에는 주택을 짓는데 중심이 없습니다." 서양 사람의 주택을 보면 그 주택의 중심이 있다. <화이어 플레이스>(fireplace)라고 하여 불 피우는 데가 있는데 그것이 중심이 된다. 일본 사람이 집 지을 때에는 도꼬노마라고 하는 그림 걸어 놓은 중심이 있는데 그것이 집이 중심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주택은 도무지 중심이 없다는 것이다. 주택에도 중심이 있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가정에 중심이 꼭 있어야 한다. 가정의 중심은 가정 제단이다. 우리 가정은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 안에는 반드시 제단이 있어야 한다. 제단 없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 제단에 항상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 불 꺼진 제단이 무엇을 하는가? 우리 가정이 과연 기독교 가정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면 남편과 아내가 교회에 와서 예배 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자기 가정에 가정 제단을 쌓고 같이 찬미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같이 기도를 드려서 가정 제단에 불을 켜야 하는 것이다. 사실 옛날부터 모든 경건한 가정에는 그 주인이 이를테면 그 가정의 목사가 되는 것이며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홀로 믿음을 가진 어머니는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가정의 중심은 제단이 되어야 한다.
기억절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결론: 아론의 제사장직과 의복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우리를 하나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완전에 연결시킨 그리스도의 역할을 상징하였다.
첫째날(일)
4월 24일 옛 언약의 은혜
도입)
아론의 양보하는 정신과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소망은 그가 재가하고 있었던 범죄의 극악함을 볼 수 없도록 그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하도록 영향력을 끼친 그의 태도는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지도자의 죄는 단지 자기의 죄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지체되게 하기도 하고 가로막는 훼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모세는 아론의 참회를 인정하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벌하실 모든 죄 중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격려한 죄보다 그분께서 보시기에 더 큰 죄는 없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겨 주심으로 영예를 얻은 사람들은 약하고 구부러지기 쉬운 기회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지도자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지도자도 때로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를 비난 하기 앞서서 그의 입장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하며, 더욱이 다른 사람과 어울려 비난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비록 지도자가 조금 모자라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으로 인정하여 그를 위해 기도하거나, 조용히 그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듣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도자가 한번 심하게 흔들리면, 공동체는 매우 큰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역자가 지도자 행세를 한다면, 공동체는 큰 혼란과 분열의 위기에 빠지고 만다. 이번에는 다행히 아론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으로 인해 생겨난 남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을 선다. 문제는 잘못 일으켰지만, 그래도 문제 수습은 잘 한 셈이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비록 큰 죄에 빠졌던 아론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아론은 갓 태동한 선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직무인 종교법의 최고 집행자로서 대제사장직을 최초로 역임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출
32:4).
예수님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말씀하셨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이미 많은 것을 받은 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맡겨졌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우리의 진리와 다른 교회의 교리(지옥설, 일요일 준수, 휴거설 등등)를 비교해보라. 그래서 이 원칙에 따르면 아론의 죄와 금송아지 사건은 더 심각한 것이었다.
출 32:1~6를 읽어보라. 이 극악한 배도에 대하여 아론은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었을까? 배도는 분명 나쁜 것이다. 그러나 아론이 배도를 묵인했다는 사실이 더욱 믿기지 않는다. 아론에게 부여되었던 특권들을 생각해 보라. 아론은 처음부터 모세와 함께 있었고, 모세의 대변자였으며,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했고, 물을 쳐서 피가 되게 했다(출 4:27~30, 7:1, 10, 20). 또한 아론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선택된 소수에 해당됐다(출 24:9~10). 그러나 큰 시험이 찾아오자,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아론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신성한 예복을 입힘으로써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예표하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히 8:1). 다시 말해서 비록 아론에게 끔직한 죄가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그것도 용서뿐 아니라 거룩한 직분까지 얻을 수 있는 큰 은혜를 받았다. 이렇게 아론의 생애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에게 제공된 자비와 구원의 특별한 예증이 되었다.
교훈: 아론이 용서받고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부가적용)
아론은 비록 모세가 자신의 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여겨 그를 섬기며 순종한 것을 보면 훌륭한 인격을 소유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모세의 뒤를 이은 제 2인자의 자리에도 구애받지 않고 겸손히 모세의 대언자로서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한 것을 보면 재능과 신앙을 겸비한 그의 모습을 연상케 된다. 하지만 아론은 백성들의 요구에 쉽게 흔들리는 우유부단한 지도자의 모습도 있었으며, 자신의 죄를 책망하는 모세에게 그 죄를 심각하게 느끼지도 못하고 그 책임을 백성들에게 전가시키는 비겁한 성품도 소유하고 있었다. 아론의 섬김의 자세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성실한 추종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따를 완전한 지도자로서는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동시에 최초의 대제사장이 된 아론은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구약의 제사 제도를 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영감의 교훈 •
▶ 회개와 회복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신 9:20)다. 그러나 모세의 열렬한 중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생명이 보존되었다. 그는 자신의 큰 죄를 참회하고 겸비하게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했다”(부조와 선지자, 323).
둘째날(월)
4월 25일 제사장 직분
도입)
회색 스웨터가 토미의 텅 빈 책상 위에 무기력하게 걸려 있었다. 방금 다른 학생들과 함께 교실을 나간 의기소침한 한 소년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교실, 이제 조금 있으면 최근에 별거를 시작한 토미의 부모가 와서 교사인 나와 면담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갈수록 나빠지는 아이의 학업 성적과 파괴적인 행동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토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상대방 모두를 호출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외아들인 토미는 늘 행복하고 협조적이며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급격히 학업 성적이 떨어진 것을 분명히 부모의 별거와 이혼 소송에 따른 절망감 때문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토미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윽고 토미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토미의 책상 옆에 마련해 놓은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토미의 아버지도 도착했다. 어쨌든 출발은 좋았다. 최소한 그들은 내 면담 요청에 반응을 보일 만큼은 자식에게 관심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놀라더니, 금방 짜증 섞인 표정이 얼굴 위로 지나갔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서도 명백히 서로를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나는 토미의 행동과 학교 수업에 대해 자세히 설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의 별거가 자신의 아들에게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 줄 적당한 말이 떠오르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좋은 단어들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문득 토미의 지저분한 시험 답안지를 보여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토미의 책상 안에서 구겨진 영어 시험지를 한 장 꺼냈다. 시험지는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시험지 앞뒤로 빼곡이 토미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 똑같은 문장을 끝없이 반복해서 휘갈겨 쓴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시험지를 펴서 토미의 어머니에게 건넸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이 펴졌다. 그는 거의 영원이라고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그 휘갈겨 쓴 말들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마침내 토미의 아버지는 시험지를 조심스럽게 접더니 그것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나는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토미의 아버지는 아내가 코트를 입는 걸 도와주고는 둘이서 함께 교실을 나갔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이 다시 합쳐질 수 있도록 적당한 방법을 나한테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은 나를 그 노란색 영어 시험지로 인도하셨다. 그 시험지에는 어린 소년의 괴로운 마음에서 토로된 고뇌에 찬 문장이 다시 끝없이 반복되어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깨어진 한 가정의 회복을 돕는 것도 중간에서 행하는 제사장의 일이 아니겠는가?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출 28:1).
레위지파의 제사장 직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순례 기간 동안에 수립되어 1,500년 이상 지속되었다. 비록 하나님께 있어서 제사장 직분에 대한 개념은 이미 오래 전에 존재해왔으나 레위지파의 제사장 직분의 수립으로 말미암아 그 역할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창 14:18).
교훈: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가까이 하면서 동시에 그들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나타내야 했다.
부가적용)
제사장들은 많은 경우에 백성들과 다른 표준을 요구했다. 때로는 시신을 만져서 부정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몸인 아내를 포함하여 부모와 자녀, 형제, 출가하지 않은 누이 등 근친의 장례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이는 지도자의 거룩은 그가 드리는 제사에 영향을 미치며,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고 또 거룩한 삶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거룩보다 더 엄격히 다루고 있다. 지금도 지도자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영성과 지성, 인격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단지 남들 위에 앉고 앞에 가는 자만이 아니라, ‘스스로’ 절제하고 정결히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겸손히 섬길 줄 아는 지도자가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제사장은 이방의 장례 풍속대로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거나 수염을 깎거나 살을 베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제사장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 문화를 생각 없이 따라 하기보다는 좋은 문화와 가치관을 일구고 선도하도록 부름 받았다. 퇴폐적인 기호와 취향마저도 개성으로 미화하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모습은 내게 없는가?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부정한 여인을 피하고 자기 백성 중에서 거룩한 여인과 결혼해야 했다. 그래야 가정의 정결을 지키고, 아론의 자손들을 통한 제사장직을 잘 계승하고, 자녀들을 거룩하게 양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자녀들의 범죄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엄격하게 처벌했다. 제사장인 우리의 결혼과 가정관, 자녀교육에 대한 가치관은 세상과 어떻게 구별되고 있는가? 지극히 일상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공간인 가정에서부터 분명히 구분되어야, 세상에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소개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가장 거룩한 사역에 참여한 대제사장은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으면서 일상적인 슬픔마저 표현할 수 없었으며, 부모의 장례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성소를 늘 우선시해야 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어떤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영감의 교훈 •
▶ 하나님께 구별됨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을 완전히, 또한 마음을 다하여 섬기는 한 백성으로서 구별되고,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가장 엄숙한 언약에 의하여 주님과 그분만을 섬기기로 스스로 맹세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증언보감 3권, 286).
셋째날(화)
4월 26일 제사장 예복
도입)
제사장이 입는 옷을 에봇이라고 한다. 이 에봇에 들어가는 색상을 보면 금실, 청색, 자색, 홍색실 등이 들어간다. 어깨에는 호마노 보석을 박은 견대를 달고, 가슴에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아름다운 보석이 박혀 있는 흉패가 있다. 또, 흉패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해 쓰이는 우림과 둠밈을 넣어 둔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모두 보석으로 보고 계신다. 이스라엘의12지파는 이스라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석으로 보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석으로 보고 계신데,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물건의 가치는 그 물건을 사기 위해 지불한 댓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을 주시고 사셨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이다. 12개의 보석은 모두 다른 보석이다. 이것은 가치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의미한다. 12개의 보석이 모두 다르지만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고 12개의 보석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설사 세상에서 우리의 모습에는 빈부와 상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동등하게 보시고 우리 모두를 귀하게 보신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출 28:4).
출애굽기 28장을 읽어보라. “제사장 예복의 모형은 그 산 위에서 모세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이 옷은 매우 엄숙한 목적으로 성별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다 위대하신 원형, 곧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백성들은 제사장에게 아름다움과 영광을 입혀 그의 직무의 위엄이 드러나게 하였다. 대제사장이 이 옷을 입을 때 그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드리는 것이요, 그의 옷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세상에 드러내어야 할 영광을 전시하는 것이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유스 인스트럭터, 1900년 7월 1일).
제사장들이 착용했던 것들의 의미를 생각해보라(출 28:12, 29, 30, 38, 42). 이 역시 제사장직과 성소제도가 상징했던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죄값을 담당하시는 우리의 대속자이시다. 이러한 주제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말해주는 상징들로 가득 찬 성소 봉사와 제사장 예복에 예표되어 있었다.
교훈: 제사장의 예복에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사역이 담겨져 있었다.
부가적용)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의 양 어깨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두 호마노를 붙잡아 매라고 했다. 어떤 직책을 맡은 자가 책임감을 말할 때 “어깨다 무겁다”는 말을 한다. 어깨에 맨다는 말은 책임을 진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무거운 십자가를 그 어깨에 지셨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의 능력의 어깨와 사랑의 가슴에는 우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도 내게 맡겨진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고 기도해 주며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가슴에 부착시키는 흉배에는 각종 보석들을 3개씩 4줄로 붙이고 거기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을 새기라고 하였다. 우리도 뜨거운 가슴으로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가슴에 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어깨에 새겨진 이름들, 가슴에 새겨진 이름들을 볼 때에 12지파를 기념케 하라고 하였다. 귀히 여기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표현인 것이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죽어 마땅한 우리를 불러주셨다. 어깨에 단 계급장처럼 우리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 사랑스런 가슴에 품어주신다.
•영감의 교훈 •
▶ 의복은 의미를 담는다
“제사장의 의복과 태도는 그 모든 점에 있어서 보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예배의 신성함 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정결함에 대한 관념을 깊게 하였다”(복음교역자, 173).
넷째날(수)
4월 27일 판결 흉패
도입)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셨을 때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대면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방법인 직접적인 말씀하심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제사장이 입은 흉패 위의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인도를 받았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움직임에 관한 인도가 필요할 때마다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도를 받은 대제사장에게 가야 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출 28:29).
교훈: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판결의 흉패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우리의 믿음과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의 연합을 상징한다.
부가적용)
흉패는 하나의 실체로 함께 건축된 모든 믿는 이들이 함께하는 교회를 상징한다. 각 색 보석이 3줄 4줄로 12개가 있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고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여기서 에봇과 흉패와 견대의 관계를 보면 서로의 아름다움이 상호간에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에봇이 아름다우니 보석이 붙었고 보석이 아름다우니 에봇이 더 아름다워졌다. 서로 상승적인 효과를 낸 것이다. 아름다운 에봇에 영광스런 보석이 박힌 것이다. 그래서 에봇은 보석으로 인해 영광스러워졌고 보석들은 에봇으로 인해 붙어있게 되었다. 이것이 상호적인 아름다움이다. 흉패는 에봇에 붙었고 호마노는 견대에 더해졌고 줄 세공안에 고정되고 이렇게 서로 얽히고 설켰는데 이것이 상호적인 아름다움이고 건축이다. 이 건축은 하나님의 자랑이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볼 때 그 인격이 하나님의 자랑이었다. 그와 같이 열두지파로 상징되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을 때 그리스도라는 에봇과 연합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기념물이라는 것이다.
•영감의 교훈 •
▶ 그리스도의 가슴에 새겨진 내 이름
“그와 같이 크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아버지 앞에서 그분의 피로 탄원할 때에 회개하고 믿는 각 영혼의 이름을 그분의 마음에 지니신다. 시편 기자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 40:17)신다고 말한다”(부조와 선지자, 351).
다섯째날(목)
4월 28일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
도입)
대제사장은 머리에 기름을 붓는 예식을 가진 후 공식적으로 활동하는데 대제사장의 역할은 유대인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여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중재하는 일이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를 대제사장이라고 불렀는데 대제사장의 역할이 사람을 하나님께 중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히브리서 3:1). 또한 대제사장 앞에 큰 이란 말을 붙여서 예수가 대제사장들 가운데 으뜸 되는 대제사장이며,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라는 말로 대제사장이 오로지 한 분뿐임을 강조했다. 예수는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사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셨으므로 으뜸 되는 대제사장 자격이 있다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4~15).
교훈: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시며 우리는 믿음으로 얻은 그분의 의의 옷을 입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부가적용)
제사장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그 판단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의 삶도 내 경험이나 사고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항상 ‘우림’과 ‘둠밈’이 내 가슴 위에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제사장은 머리와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새겨진 패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 제사장의 사고와 생각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성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겉으로의 화려한 옷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복장이 바로 ‘성결’이다. 하나님은 성결해야 만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를 영원히 성결케 하시기 위해 주님이 피와 살을 흘리시며 찢겨주신 것 아니겠는가? 대제사장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제사장들도 물론 이런 일을 하지만 자신과 백성들을 대표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대제사장만의 고유한 의무요 권리였다. 예수님이 이러한 멜기세덱의 전통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설명은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결과이다. 즉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희노애락을 경험하신 분이지만 기도와 순종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멜기세덱과 대제사장을 소개하며 예수님과 비교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우리 인생이 주인이시며(왕의 이미지), 동시에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면 제물을 바치는 대제사장, 즉 중보자이시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주셨다.
•영감의 교훈 •
▶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
“그리스도의 품성을 명상하고 그분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체험할수록 우리는 더욱 예민하게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를 더욱 진지하게 우리의 능력과 구속자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마음의 성전을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할 아무런 능력이 없으나 하나님을 거스려 범한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용서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역사하시고 마음을 순결하게 하는 믿음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성화된 생애, 83).
예비일(금)
4월 2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347~348 “성막과 그 봉사”, 실물교훈, 288 “주의 포도원”, 선지자와 왕, 293 “지식이 없음으로 망함”, 초기문집, 250~253 “성소”, 각 시대의 대쟁투, 416 “하나님의 성소”, 646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그리스도는 참장막에 부리는 자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대제사장이시다. 누구도 그분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그분은 교회의 대제사장이시다”(엘렌 G. 화잇, That I May Know Him, 74).
“우리는 날마다 믿음을 활용해야 한다. 그 믿음은 활용될 때 날마다 증가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기셨고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 앞에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엘렌 G. 화잇, Sons and Daughters of God, 28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우리는 실제로는 의로운 생활을 살지 않으면서 의의 옷을 입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기와 행동에 대한 평가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우리가 실제로 의의 옷을 입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➋일요일 내용 가운데 아론에게 주어졌던 은혜와 용서에 대하여 깊이 토론해 보십시오. 큰 책임이 주어졌던 아론은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하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에게 더욱 고상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토론해 보십시오.
댓글목록
아름다운향기님의 댓글
아름다운향기 작성일
목사님 늘 수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축복많이 받으시고 더큰 영성으로 갈한양들을 목양해 주세요.
언제나 주님 사랑이 목사님을 통하여 철철 넘쳐나기를 기도드립니다.
소망지기님의 댓글
소망지기 작성일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통해 은혜 많이 받고 있습니다.
nanakim님의 댓글
nanakim 작성일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조수인님의 댓글
조수인 작성일항상좋은자료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안식일 되셔요
접니다님의 댓글
접니다 작성일좋은 해설 감사합니다. 말씀을 이해하는데 정말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