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 선교를 거절하는 변명들-(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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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10-31 01:39 조회1,73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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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선교(宣敎)를 거절(拒絶)하는 변명(辨明)들
(11월 4일 (안) / 일몰: 오후 5시 31분)
<기억절(記憶節)>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이사야 6:8)
<맥(脈)>
선교사(宣敎師)로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이 순종(順從)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거절(拒絶)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사명(使命)을 피(避)하기위해 불순종(不順從)하는 사람들은 변명(辨明)을 만들어 내는데 그 이면에는 두려움이나 편견(偏見)과 선교에 대한 오해(誤解)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예(例)로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이번 제5과에서 배우자.
10월 29일(일) 사명(使命)을 피(避)하는 변명(辨明) : 두려움
(Q)~요나가 ‘니느웨’ 대신 ‘다시스’로 도망(逃亡)친 이유는 즉 변명은 무엇이라 생각됩니까? (나훔 3:1~4)
(A)~<사명(使命)을 피(避)한 요나의 변명(辨明)과 입장>
⑴.포악(暴惡)한 도시(都市)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용기가 나지 않음
⑵.자신의 편견(偏見)과 오해(誤解)
⑶.앗수르(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⑷.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망각(妄覺)함.
⑸.요나 자기 생각과 판단이 전부(全部).
⑹.범죄에 대한 인간의 생각이 전부(全部).
⑺.하나님의 구속(救贖) 경륜 무지(無知)
⑻.사단의 유혹(誘惑)에 영향(影響)
⑼.범죄와 악행의 도시는 멸망(滅亡) 되어야 한다고 생각
⑽.임마누엘 하나님의 명령과 능력을 망각(妄覺)함.
10월 30일(월) 사명(使命)을 피(避)하는 변명: 잘못된 견해(見解)
(Q)~우리가 ‘요나’처럼 선교(宣敎)에 대해 오해(誤解)하고 있는 것과 잘못된 견해(見解)는 어떤 것입니까? (요나 2:9)
(A)~<선교에 대해 오해(誤解)와 잘못된 견해(見解)>
⑴.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⑵.영혼구원(靈魂救援) 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다.
⑶.선교사는 구원(救援)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역에 협력하는 것이다.
⑷.우리(선교)는 진리의 씨앗을 심을 수 있지만, 마음의 변화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다.
⑸.우리는 종종 우리의 역할을 하나님의 역할과 혼동하고 있다.
⑹.‘니느웨’가 회개(悔改)하고 돌이킨 것은 ‘요나’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⑺.기별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을 성취하신다.
⑻.기별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이방인(異邦人) 중에도 나타난다.
⑼.영혼구원(靈魂救援)이 마치 우리 자신의 능력에 달린 것처럼 착각(錯覺)한다.
⑽..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인간 각자의 삶에서 경험한 관습(慣習)들이 영향(影響)받아 위기(危機)때에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망각(妄覺)한다.
10월 31일(화) 사명(使命)을 피(避)하는 변명 : 불편(不便)
(Q)~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①.‘니느웨’로 가서 전(傳)한 내용은 어떤 것이었으며, ②.‘니느웨’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反應)했습니까? 그리고 ③.요나에게 여전히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④.우리에게는 어떤 것이 필요합니까? (요나 3:4)
(A)~<요나에 불편한 사명자(使命者)로써 얻는 교훈>
⑴.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전한 기별은 <40일이 지나면 ‘니누웨’가 무너지리라>
⑵.요나가 전한 기별로 즉시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고 회개(悔改)함.
⑶.요나는 ‘니느웨’에 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이 필요했다.
⑷.우리(선교사)에게는 재정(財政)과 시간(時間)과 사랑의 마음과 헌신이 필요하다.
⑸.선교(宣敎)는 나보다 하나님께서 우선순위(優先順位)가 되어야 한다.
⑹.선교를 시행하는 데에는 시간과 정서적인 힘도 필요하다.
⑺.선교는 자신을 먼저 내려놓는 겸손이 필요하다.
⑻.선교는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다른 것이다.
⑼.선교는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자원하여 헌신하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⑽.요나의 교훈에서 요나는 엄청난 하늘의 기쁨과 축복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교훈을 명심하자,
11월 1일(수) 사명(使命)을 피(避)하는 변명: 불편(不便)한 대면(對面)
(Q)~요나의 세계관(世界觀)은 얼마나 왜곡(歪曲)되어 있었으며, 요나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요나 4:8~11)
(A)~<요나의 하나님과의 불편한 두 번째의 대면(對面)으로부터의 교훈)
⑴.요나와 하나님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는 설교나 말씀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게 하신다.
⑵.요나는 니느웨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⑶.요나는 자신의 감정으로 나쁜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혹한 심판을 받기 원했다.
⑷.요나는 자신의 세계가 그렇게 뒤집히는 것을 보고 차라리 죽기를 원했다.
⑸.요나는 박넝쿨의 교훈에서 그 식물의 주관자보다 식물에 대해서만 감사했다.
⑹.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을 자신의 선행에 따라오는 공적으로 생각했다.
⑺.요나는 니느웨의 수많은 사람과 동물들보다 식물(박넝쿨) 한그루에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다. (요나 4:7~8)
⑻.요나는 자신의 사명(선교)로 니느웨에의 종말에 대한 기별 선포가 실패로 드러나자 자신의 체면을 잃은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요나 4:1~3)
⑼.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사랑하사 불만족하여 죽기를 원한 요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바꾸게 인도하신다.
⑽.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사랑의 하나님을 알고 그분에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11월 2일(목)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Q)~니느웨의 경우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란다고 말씀하며 (요나 4:11), (이사야 6:1~8)의·구절에서 표현된 중심 사상은 무엇인가?
(A)~하나님은 나약하고 형편없는 요나를 통해서 니느웨를 구원하셨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에게 하나님은 니느웨에 대해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요나 4:11)들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똑같다. 지금도 하나님은 삶의 분주함과 추악함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시며 그분의 희망 소식을 기꺼이 전할 기별 자를 필요로 하신다. 우리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됩시다.
********<말미부록(末尾附錄)>***************
(1)
<악한 도성에 있는 겸손한 자를 위한 초청과 경고>
분열된 이스라엘의 시대에 고대 세계의 성읍 중 가장 큰 성읍은 앗수르 왕국의 수도 니느웨였다. 니느웨는 바벨탑에서 분산된 지 얼마 후에 티그리스강의 비옥한 언덕에 건설되어 여러 세기 동안 번창하여 마침내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사흘 길”이 되었다(욘 3:3). (P.P 265)
(2)
번영 당시의 니느웨는 범죄와 악행의 중심지였다. 영감의 기록은 니느웨를 “피성이여 …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다고(나 3:1) 그 특징을 묘사하였다. 선지자 나훔은 표상적인 말로 니느웨 사람을 잔인하고 굶주린 사자로 비유하였다. 나훔은 묻기를 “네 악행을 늘 받지 않은 자가 없음이 아니냐”고 하였다. (나훔 3:19).(P.P 265)
(3)
점점 악해져 왔으나 아직 니느웨는 완전히 악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인생을 보시”고(시 33:13)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욥 28:10)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성읍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선하고 고상한 것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으며, 만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배울 기회가 허용되면 악한 행위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배할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아셨다. 그리하여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의심할 여지 없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당신을 나타내시어 할 수 있으면 그들을 회개하도록 인도하시고자 하셨다.
이 사업을 행할 도구로 택함을 입은 사람이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라고 (욘 1:1, 2)하셨다. (P.P 265)
(4)
선지자는 이 사명의 어려움과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생각할 때에 부르신 분의 지혜를 의심하는 유혹을 당하였다. 인간의 견해로는, 이거만 한 성읍에 이와 같은 기별을 선포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그는 그가 섬긴 하나님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심을 잊었다. 그가 계속 의심하고 주저하는 사이에 사단은 그를 낙담에 억눌리게 하였다. 선지자는 큰 공포에 싸여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였다. 욥바로 가서 거기서 마침 항해하려는 배를 발견하고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다(욘 1:3).
요나가 받은 명령과 책임은 무거운 것이었으나 그에게 가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붙드셔서 성공하게 하실 수 있으셨다. 만일 선지자가 의심치 않고 순종하였더라면 많은 쓰라린 경험을 면하고 큰 축복을 받았을 것이다. 요나가 절망에 빠진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연속적인 시련과 이상한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하실 수 있는 무한하신 능력에 대한 선지자의 확신이 소생되어야 하였다. 만일 요나가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멈추어서 침착하게 생각하였다면 그에게 맡겨진 책임을 피하려는 모든 노력이 얼마나 어리석게 될 것인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선지 265,266).
(5)
왕과 귀인들,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보통 백성들과 함께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고 연합하여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자비가 그들에게 허락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그들은 운명을 피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방 나라 각처에서 높임과 영광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은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다.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니느웨는 하나님을 잊어버림과 자랑하는 교만심으로 인하여 인근 민족의 희생물이 되었다. (선지 270~271).
(6)
<영혼의 무한한 가치를 알지 못한 요나>
요나는 그 성읍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끼셔서 베옷을 입고 재 가운데 앉아 회개하게 하신 그분의 목적을 알았을 때 먼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기뻐했어야 하였으나, 그 대신 자신이 거짓 선지자로 여김을 받을 가능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다. 자신의 평판에 눈멀어 그는 그 불쌍한 성읍 중에 있는 영혼의 무한히 큰 가치를 보지 못하였다. (화잇주석, 욘 4:-4:1-6)
(7)
“요나는 그 도시가 악함에도 불구하고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게 하심으로 그 성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인해 기뻐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거짓 선지자로 여김을 받을 가능성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평판에 눈이 멀어 그는 그 불쌍한 도시에 있는 영혼들의 무한히 큰 가치를 보지 못했다. 회개한 니느웨 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동정을 요나는 몹시 싫어하고 성냈다. 요나가 여호와께 여쭈어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나이다”(욘 4:1, 2)라고 하였다.”(선지, 271)
(8)
“여호와께서는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고 물으셨다.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로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욘 4:3-6) 다.”(선지, 271)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욘 4:7-11)'과 하셨다.”(선지, 272)
(10)
시드니라.
인생의 경험에서 얼마나 자주 기쁨과 즐거움의 새날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일 때, 어떤 불행이나 슬픔의 벌레가 와서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어 버리는가! (욘 4장, 재림교주석)
(11)
네가 아꼈거든.
히브리어에서 “네가”는 강조형이다. 화가 난, 동정심이 없는 선지자 요나는 자기가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를 들이지 않은 별 가치 없고 하찮은 박 넝쿨에는 기꺼이 동정심을 나타내고 아까워했으나, 큰 도성 니느웨 사람들에게는 그와 같은 배려를 나타내고자 하지 않았다. 70인 역은 이 절의 처음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네가 그것을 위해 고생하지도 않고 네가 그것을 기르지도 않은 박 넝쿨에 동정심을 가졌다고 말씀하셨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화를 냈고(1, 4절), 하나님께서 박 넝쿨을 시들도록 허락하셨을 때도 화를 냈다(요나 4:9절). 얼마나 왜곡된 가치관인가!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보다도 박 넝쿨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욘 4장, 재림교주석)
(12)
성냄.
요나의 성냄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을 쫓아내실 때 나타내신 것과 같은 고결한 분노(참조 요 2:13~17)가 아니라 전적으로 이기심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 선지자는 자기의 성급한 정신으로 인해 스스로 큰 축복을 빼앗겼다 (참조 잠 14:29; 16:32). (욘 4장, 재림교주석)
(13)
보려 하니라.
어떤 이들은 요나가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4절) 라는 질문을 자기가 하나님의 의도를 성급하게 오판했으며 니느웨가 아직도 멸망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고 제시했으나, 다른 이들은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가 진지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오히려 요나의 반응은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경고하셨던 것처럼 실행하셔야 한다는 요나의 완고한 태도와 주장을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욘 4장, 재림교주석)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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