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질문, 대답, 부가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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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1-02-11 14:51 조회8,601회 댓글0건본문
2월 19일 안식일 일몰: 6시 15분
기억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시 46:1~3).
연구 범위: 욥 19:25, 약 5:10~11, 룻 1장, 에 2장, 고후 11: 23 ~ 28 , 빌4:11~13.
회복탄력성이란 역경과 충격, 비극과 압력, 극도의 스트레스에 대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성공적으로 제자리를 찾는 과정을 의미한다. 곤경에 직면할 때, 회복탄력성이 클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이 개념은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중에 한두 가지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 어려움을 다루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정서적으로 손상을 입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로써 고난을 참을 때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들을 설명한다.
➋느끼기 : 아무리 비참한 상황일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과 쉼에 더욱 주목한다.
➌행하기 : 무슨 일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돌보심을 신뢰한다.
결론 시련 중에서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인내함을 배우고 하나님의 예지, 힘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변함없는 자비를 깨달을 때 이르러 온다.
일요일 2월 13일
욥의 인내심
질문 1. 약 5:10~11을 읽어 보십시오. 야고보는 욥의 어떤 점 때문에 그를 모방해야 할 모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까? 욥 1~3장 참고.
[약5:10,11]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답: 욥의 인내한 점을 본 받아야한다고 했다. 결과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었다고 가르친다.
질문 2. 욥 19:25을 읽어 보십시오. 여기서 욥은 어떤 희망을 붙잡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도 역경 중에 이와 같은 소망을 잘 붙들 수 있을까요?
[욥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답: 욥은 구주께서 재림하실 것을 소망으로 붙들고 있었다. 우리도 예수님을 굳게 믿는 믿음으로 재림의 소망을 붙들어야 한다. 우리는 평소에 이 믿음을 굳게 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역경 중에서도 욥과 같이 소망으로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인내하게 되는가? 영국의 조지 굿맨(George Goodman)은 기도를 필요로 하는 한 젊은이를 만나게 됐다. 그는 자신의 필요를 직설적으로 설명했다. “굿맨 선생님, 제가 인내심을 갖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노신사는 “그래, 자네가 고난을 겪도록 기도해 주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젊은이는 “아니요! 선생님, 제가 원하는 것은 인내심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굿맨은 “나도 알고 있네. 그래서 자네가 고난을 겪도록 기도하려는 것이네.”라고 말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젊은이에게 굿맨은 성경을 펴서 읽어 주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부가설명> 우리가 회복 탄력성을 발휘하려면 현세의 사람들의 실상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사람들은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진 존재들이다.(히9:27) 그리고 이 세상은 지나가는 세상이다.(고전7:31, 요일2:17)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고통이 있고 환난도 있고 질병과 많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이라는 현실에 처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렇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그런 중에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세상의 약속이 있고, 그 세상은 진동하지 않는 세상이며 지나가는 세상이 아니다. 영원히 있는 세상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를 영광중에 맞이하고 그 나라에 갈 것이다. 소망이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현 세상의 어려운 일들은 있을 수 있는 일로 솔직하게 받아들일 때 회복 탄력이 힘 있게 작용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고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히10:39) 믿음으로 회복탄력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이런 확신이 우리의 인내의 근본 동력이 된다. 이런 은총을 누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겠는가.
교훈: 고난을 겪을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는 자는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
월요일 2월 14일
속박당한 요셉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리라”(롬 1:16~17).
창 37:19~28과 39:12~20을 읽어 보라. 그리고 자신이 요셉이라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좌절했을까? 스스로 떳떳하다 할지라도 얼마나 화가 나고 분했을까?
그러나 요셉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비록 형제에 의해 팔려갔지만, 요셉은 오히려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과 그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대해 들었다. 곧 필요할 때에 어떻게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교훈하고 안위하고 보호하셨는지에 대하여 들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위하여 구주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다. 이제 이 모든 귀한 교훈이 그의 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요셉은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여호와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고 이스라엘의 수호자 하나님께서 그가 유랑하는 땅에서도 그와 함께 계시기를 기도하였다”(부조와 선지자, 213~214).
질문 1.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다음의 성경절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롬5:3~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답: 환난이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루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붓는 성령의 역사를 이루게 한다.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환난이 이 세상에서 생활에 어려움을 가져올 것도 사실이다.
[고후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답: 환난 중에 하나님의 위롤 체험할 수 있게 되고, 그 체험한 위로로 다른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위로로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한다.
[고후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답: 환난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는 계기를 준다. 그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부활의 소망이 있을 때 죽는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딤후1:11~12]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답: 고난을 받을 때 우리가 의뢰하는 예수님을 더욱 체험적으로 아는 경지에 이를 수 있고 그분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지키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믿음에 서도록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필요하게 고통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그러나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고통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과정임에 틀림없다. 품성계발, 동정심, 겸손, 단련, 선악에 대한 분별력 등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들이다. 특히 시험 중에 있을 때, 고난의 유익을 헤아리기 쉽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곤경을 헤쳐 나아갈 힘을 구해야 한다.
<부가설명> 우리는 성경에서 요셉의 처음부터 끝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셉을 이해하는 것과 당시에 요셉이 자기 처지를 보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요셉의 성실함과 믿음을 승리를 볼 때 처음부터 끝을 다 본 생각으로 요셉을 보기 쉽다. 그러나 당시의 요셉은 전혀 진행과 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 비참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그것을 이긴 것은 조상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셉이 당한 모든 고통의 과정은 요셉을 단련시킨 과정이었고 요셉은 단련 받은 후에 정금같이 나아왔다. 우리는 요셉과 같은 결과를 보지 못할 고통의 날을 경험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셉을 돌보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돌보신다. 그리고 모든 결과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고 재림하시는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결과를 미리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내하며 그날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교훈: 고난은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교훈과 훈련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화요일 2월 15일 나오미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룻1:20).
자기 나라를 떠나 타국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항상 두려운 일이다. 특히 그 동기가 생존이라면 더하다. 유대 땅을 휩쓴 가뭄 때문에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그들의 두 아들은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곡창지대 모압으로 이민을 떠났다. 모압 사람은 우상숭배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신앙관습은 유대인들의 신앙과 어긋났다(삿10:6). 이것만으로도 새로운 이주민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 땅에 정착한 뒤 얼마 있지 않아 나오미의 남편이 죽었다. 이방 땅에 남겨진 여인과 두 아들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불이익에 취약한 과부와 고아의 처지로 전락했다. 나오미의 아들 말론과 기룐은 그 땅의 여인과 결혼하였다. 아마도 결혼초기 종교적인 차이 때문에 가정 내 심각한 대립이 있었을 것이다. 율법이 유대인과 모압인 사이의 결혼을 명확하게 금지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열 세대가 지날 때까지 모압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회중에 들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신 23:3).
그 이름의 뜻이 ‘병듦’과 ‘소모됨’을 의미했던 말론과 기룐도 얼마 후 죽었다. 나오미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비참한 인생은 없었을 것이다. 가족이 모두 죽고, 남은 친족들은 멀리 베들레헴에 있었다.
질문 1. 나오미가 경험한 불행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룻 1장.
답: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흉년으로 고통을 받을 때 모압 땅으로 이사하여 거기서 좋은 날을 본 것이 아니라 남편과 두 아들을 사별하는 고통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질문 2. 나오미의 인생에는 어떤 전환점이 있었습니까? 나오미가 겪고 있는 심한 역경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바꾸어 주셨습니까? 룻 1:16~18, 4:13~17
[룻1:16~18]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룻4:13~17]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16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답: 하나님께서는 룻이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선택하는 일을 통하여 나오미의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하시고 룻을 기업 무를 자가 되는 보아스와 결혼하게 하여 기업 무를 후손을 얻게 하심으로 복음의 한 면을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되게 하시고 보아스의 자손으로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나게 하심으로 인류의 기업을 무를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도록 하는 복음의 의미를 사건을 통하여 알 수 있도록 이끄셨다.
나오미가 가장 깊은 절망 중에 있을 때,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정서적인 도우미의 역할을 감당했다.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접하고, 시어머니를 돌보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룻기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나오미는 그동안의 고통을 잊고, 룻과 보아스의 결혼을 지켜보았고, 이새의 아버지이자 다윗의 조부인 오벳의 탄생을 볼 수 있었다.
<부가설명> 나오미 가족이 모압으로 내려간 것은 그 지역의 가뭄을 피하기 위하여서였다. 그러나 그곳은 가뭄보다 더 어려운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구들을 사별하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나오미(즐거움)는 마라(쓴)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록 모압 이방에서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섬기는 일에 성실하였다. 며느리 룻이 어머니에게 한 말을 보면 나오미가 얼마나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나를 짐작하기에 넉넉하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룻이 나오미의 며느리로서 생활하면서 나오미의 경건과 신앙을 잘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앙으로 나오미가 당한 고난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신앙을 가진 것이 확실하다. 결과는 보아스를 만난 룻이 그와 결혼하게 되고 아들을 낳으므로 기업 무를 자에 대한 복음적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같은 믿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회복 탄력을 극대화시켰다.
교훈: 절망의 끝에 있었던 나오미는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한 이방인 며느리 룻의 도움으로 마침내 회복되었다.
수요일 2월 16일
중압감에 시달린 에스더의 생애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에 4:16~17).
질문 1. 에스더가 마주해야 했던 역경, 갈등, 중압감을 무엇이었습니까?
[에2:6~7]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7 저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고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같이 양육하더라.
답: 에스더는 바벨론에 포로로 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에게서 양육되었다. 어린 에스더에 큰 역경이었다.
[에2:10]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하여 고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답: 에스더는 자기의 민족적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처신을 해야 하였다. 이것은 상당한 중압감으로 그의 삶에 다가왔을 것이다.
[에2:21~22]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 지킨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 왕을 원한하여 모살하려 하거늘 22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한지라.
답: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고변을 왕에게 전달해야 하는 부담을 안았다. 만일 그 전달하는 내용이 확실하지 않으면 무고로 도리어 화를 당할 것이다.
[에4:4~17]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5 에스더가 왕의 명으로 자기에게 근시하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슨 연고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의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부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수효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뵈어 알게 하고 또 저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드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고하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11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
답: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하만의 음모에서 구원해야 하는 짐을 맡게 되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더구나 왕에 아무 때가 나아갈 수 있는 궁중 법도도 아니었다. 왕이 불러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그 일을 감당하였다. 죽음의 중압감이 에스더의 어깨에 얹힌 것이다.
[에7:3~4]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4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에8:3] 에스더가 다시 왕의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
답: 에스더가 왕의 총신(寵臣) 하만이 있는 앞에서 그 하만의 죄를 고하여 그를 제거하고 그의 계획을 무너지게 하기 위하여 왕에게 알리려 할 때 얼마나 떨렸을까? 그러나 그는 그 일을 감당하였다. 그 뒤에는 유대 민족의 금식 기도가 있었다.
<부가설명> 우리는 교과를 통하여 일반적으로 잘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건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요셉 사건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일의 시종을 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그 일을 당한 그들의 현실을 간과하기 쉽다. 에스더의 입장은 무척 힘 드는 위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더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죽으면 죽을 각오로 왕에게 나아갔다. 얼마나 중압감에 눌렸겠는가. 결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남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쓸 만큼 중압을 느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에스더는 그것을 감당하였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나 여호와라는 말이 결코 나오지 않는다. 꼭 그 말이 필요한 것 같은 곳에도 그 말이 없다. 예를 들면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에4:14) 같은 곳이다. 분명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니와 라고 할 만한 자리인데도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니와 라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중보자 없이 환난에 직면할 마지막 때의 성도들이 처지를 예표적으로 가르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에스더와 유대인들의 처지가 야곱의 환난 때의 처지를 표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스더와 같은 믿음과 용기로 그날 아름다운 결말에 이를 것이다.
교훈: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신앙을 지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중재하는 일은 엄청난 중압감을 동반한다.
목요일 2월 17일
만족의 비결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질문 1. 고후 11:23~28을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이 어떤 역경을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빌 4:11~13도 읽어보십시오. 이렇게 수많은 고통을 겪고 난 후에 바울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까? 비록 우리가 고난 중에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여기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고후11:23~28]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답: 고후11:23~28은 바울의 환난 목록이다. 우리의 이런 생활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환난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환난을 믿음과 소망으로 견디었으며 마침내 어떤 경우라고 만족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는 능력 주시는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모든 경우에 다 환난과 중압감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사건들이었지만 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소망을 현재를 참고 그것이 회복 탄력이 되어 그들을 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였다. 우리도 믿음으로 이런 경험을 이루도록 매일이 회복탄력의 날이 되도록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믿음으로 살도록 하자.
만족은 행복과 정신 건강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만족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과거를 인정하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에게 이르러 온다. 흥미롭게도 어떤 사람은 소유가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소유가 적을지라도 만족한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새로운 상황을 수용하는 능력은 ‘지성’을 정의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바울도 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체의 비결을 나중에 “배웠”다(빌 4:12).
<부가설명>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적으로 배운 사도였다. 그의 많은 활동과 그에 수반한 많은 환난은 그를 더욱 굳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일체의 비결을 체득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체감한다면 비결을 익힌 것이 아니겠는가. 말씀과 기도와 친교로 바울처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일체의 비결을 체득한 바울은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예수 안에 만족한 것이다. 그것이 자족하는 마음이었다. 믿음으로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들을 감당하는 믿음의 삶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주님께서 크게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교훈: 수많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바울이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상황이든지 수용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얻어진 만족감 때문이었다.
금요일 2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흑암의 세력이 영혼의 주변에 모여들어 우리의 시야에서 예수님을 가림으로, 때때로 우리는 구름이 사라질 때까지 슬픔과 놀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기는 때때로 무섭다.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이 무서운 시간에 우리는 오직 속죄의 공로만을 믿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 이렇게 하는 한 우리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틀림없다. 빛이 우리의 길을 비추고 있는 동안, 은혜의 능력 안에서 강하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구름이 우리를 둘러쌈으로 모든 것이 캄캄하게 보일 때, 소망 중에 꾸준히 참는 데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삼켜 버리는 믿음과 순종이 요망된다. 우리는 견딜 수 있는 인내와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위하여 간구해야 할 때에 너무 빨리 낙심하고, 시련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도록 열렬하게 부르짖는다”(교회증언 1권, 30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다른 이들은 견디지 못하는 어려움을 어떤 이들은 극복합니다. 무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세상적으로 말하면 의지가 강한 사람이 극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기 의지로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성령의 돌보심과 천사들의 도움으로 극복한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현세를 지나가는 세상이며 그래서 환난과 질고가 있을 수밖에 없는 세상인줄 정직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극복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➋절대로 행복한 결말이 이를 것 같지 않은 환난이나 비극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우리의 신앙이나 하나님의 약속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합니까?
* 1번에서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의 성질, 곧 죄의 성질이 그렇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이 중요한 기초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장래 이루어질 영원한 나라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영원히 살도록 하시지 않고 일단 죽음의 잠을 잔 후에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약속의 성질도 바르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르지 않은 일을 상상으로 고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것은 참으로 미련한 짓이다.
➌그대가 흔히 출구가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상대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과 대면할 시간은 단 5분밖에 없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야한다면 그대는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 그의 손을 잡고 소망이신 예수님께 기도할 것이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 문제를 맡기고 전적인 신뢰로 기다리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는 것을 기도로 간구할 것이다.
기억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시 46:1~3).
연구 범위: 욥 19:25, 약 5:10~11, 룻 1장, 에 2장, 고후 11: 23 ~ 28 , 빌4:11~13.
회복탄력성이란 역경과 충격, 비극과 압력, 극도의 스트레스에 대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성공적으로 제자리를 찾는 과정을 의미한다. 곤경에 직면할 때, 회복탄력성이 클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이 개념은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중에 한두 가지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 어려움을 다루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정서적으로 손상을 입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로써 고난을 참을 때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들을 설명한다.
➋느끼기 : 아무리 비참한 상황일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과 쉼에 더욱 주목한다.
➌행하기 : 무슨 일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돌보심을 신뢰한다.
결론 시련 중에서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인내함을 배우고 하나님의 예지, 힘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변함없는 자비를 깨달을 때 이르러 온다.
일요일 2월 13일
욥의 인내심
질문 1. 약 5:10~11을 읽어 보십시오. 야고보는 욥의 어떤 점 때문에 그를 모방해야 할 모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까? 욥 1~3장 참고.
[약5:10,11]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답: 욥의 인내한 점을 본 받아야한다고 했다. 결과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었다고 가르친다.
질문 2. 욥 19:25을 읽어 보십시오. 여기서 욥은 어떤 희망을 붙잡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도 역경 중에 이와 같은 소망을 잘 붙들 수 있을까요?
[욥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답: 욥은 구주께서 재림하실 것을 소망으로 붙들고 있었다. 우리도 예수님을 굳게 믿는 믿음으로 재림의 소망을 붙들어야 한다. 우리는 평소에 이 믿음을 굳게 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역경 중에서도 욥과 같이 소망으로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인내하게 되는가? 영국의 조지 굿맨(George Goodman)은 기도를 필요로 하는 한 젊은이를 만나게 됐다. 그는 자신의 필요를 직설적으로 설명했다. “굿맨 선생님, 제가 인내심을 갖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노신사는 “그래, 자네가 고난을 겪도록 기도해 주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젊은이는 “아니요! 선생님, 제가 원하는 것은 인내심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굿맨은 “나도 알고 있네. 그래서 자네가 고난을 겪도록 기도하려는 것이네.”라고 말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젊은이에게 굿맨은 성경을 펴서 읽어 주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부가설명> 우리가 회복 탄력성을 발휘하려면 현세의 사람들의 실상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사람들은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진 존재들이다.(히9:27) 그리고 이 세상은 지나가는 세상이다.(고전7:31, 요일2:17)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고통이 있고 환난도 있고 질병과 많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이라는 현실에 처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렇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그런 중에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세상의 약속이 있고, 그 세상은 진동하지 않는 세상이며 지나가는 세상이 아니다. 영원히 있는 세상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를 영광중에 맞이하고 그 나라에 갈 것이다. 소망이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현 세상의 어려운 일들은 있을 수 있는 일로 솔직하게 받아들일 때 회복 탄력이 힘 있게 작용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고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히10:39) 믿음으로 회복탄력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이런 확신이 우리의 인내의 근본 동력이 된다. 이런 은총을 누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겠는가.
교훈: 고난을 겪을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는 자는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
월요일 2월 14일
속박당한 요셉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리라”(롬 1:16~17).
창 37:19~28과 39:12~20을 읽어 보라. 그리고 자신이 요셉이라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좌절했을까? 스스로 떳떳하다 할지라도 얼마나 화가 나고 분했을까?
그러나 요셉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비록 형제에 의해 팔려갔지만, 요셉은 오히려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과 그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대해 들었다. 곧 필요할 때에 어떻게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교훈하고 안위하고 보호하셨는지에 대하여 들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위하여 구주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다. 이제 이 모든 귀한 교훈이 그의 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요셉은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여호와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고 이스라엘의 수호자 하나님께서 그가 유랑하는 땅에서도 그와 함께 계시기를 기도하였다”(부조와 선지자, 213~214).
질문 1.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다음의 성경절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롬5:3~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답: 환난이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루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붓는 성령의 역사를 이루게 한다.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환난이 이 세상에서 생활에 어려움을 가져올 것도 사실이다.
[고후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답: 환난 중에 하나님의 위롤 체험할 수 있게 되고, 그 체험한 위로로 다른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위로로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한다.
[고후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답: 환난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는 계기를 준다. 그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부활의 소망이 있을 때 죽는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딤후1:11~12]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답: 고난을 받을 때 우리가 의뢰하는 예수님을 더욱 체험적으로 아는 경지에 이를 수 있고 그분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지키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믿음에 서도록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필요하게 고통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그러나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고통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과정임에 틀림없다. 품성계발, 동정심, 겸손, 단련, 선악에 대한 분별력 등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들이다. 특히 시험 중에 있을 때, 고난의 유익을 헤아리기 쉽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곤경을 헤쳐 나아갈 힘을 구해야 한다.
<부가설명> 우리는 성경에서 요셉의 처음부터 끝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셉을 이해하는 것과 당시에 요셉이 자기 처지를 보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요셉의 성실함과 믿음을 승리를 볼 때 처음부터 끝을 다 본 생각으로 요셉을 보기 쉽다. 그러나 당시의 요셉은 전혀 진행과 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 비참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그것을 이긴 것은 조상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셉이 당한 모든 고통의 과정은 요셉을 단련시킨 과정이었고 요셉은 단련 받은 후에 정금같이 나아왔다. 우리는 요셉과 같은 결과를 보지 못할 고통의 날을 경험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셉을 돌보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돌보신다. 그리고 모든 결과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고 재림하시는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결과를 미리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내하며 그날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교훈: 고난은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교훈과 훈련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화요일 2월 15일 나오미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룻1:20).
자기 나라를 떠나 타국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항상 두려운 일이다. 특히 그 동기가 생존이라면 더하다. 유대 땅을 휩쓴 가뭄 때문에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그들의 두 아들은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곡창지대 모압으로 이민을 떠났다. 모압 사람은 우상숭배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신앙관습은 유대인들의 신앙과 어긋났다(삿10:6). 이것만으로도 새로운 이주민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 땅에 정착한 뒤 얼마 있지 않아 나오미의 남편이 죽었다. 이방 땅에 남겨진 여인과 두 아들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불이익에 취약한 과부와 고아의 처지로 전락했다. 나오미의 아들 말론과 기룐은 그 땅의 여인과 결혼하였다. 아마도 결혼초기 종교적인 차이 때문에 가정 내 심각한 대립이 있었을 것이다. 율법이 유대인과 모압인 사이의 결혼을 명확하게 금지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열 세대가 지날 때까지 모압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회중에 들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신 23:3).
그 이름의 뜻이 ‘병듦’과 ‘소모됨’을 의미했던 말론과 기룐도 얼마 후 죽었다. 나오미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비참한 인생은 없었을 것이다. 가족이 모두 죽고, 남은 친족들은 멀리 베들레헴에 있었다.
질문 1. 나오미가 경험한 불행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룻 1장.
답: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흉년으로 고통을 받을 때 모압 땅으로 이사하여 거기서 좋은 날을 본 것이 아니라 남편과 두 아들을 사별하는 고통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질문 2. 나오미의 인생에는 어떤 전환점이 있었습니까? 나오미가 겪고 있는 심한 역경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바꾸어 주셨습니까? 룻 1:16~18, 4:13~17
[룻1:16~18]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룻4:13~17]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16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답: 하나님께서는 룻이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선택하는 일을 통하여 나오미의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하시고 룻을 기업 무를 자가 되는 보아스와 결혼하게 하여 기업 무를 후손을 얻게 하심으로 복음의 한 면을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되게 하시고 보아스의 자손으로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나게 하심으로 인류의 기업을 무를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도록 하는 복음의 의미를 사건을 통하여 알 수 있도록 이끄셨다.
나오미가 가장 깊은 절망 중에 있을 때,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정서적인 도우미의 역할을 감당했다.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접하고, 시어머니를 돌보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룻기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나오미는 그동안의 고통을 잊고, 룻과 보아스의 결혼을 지켜보았고, 이새의 아버지이자 다윗의 조부인 오벳의 탄생을 볼 수 있었다.
<부가설명> 나오미 가족이 모압으로 내려간 것은 그 지역의 가뭄을 피하기 위하여서였다. 그러나 그곳은 가뭄보다 더 어려운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구들을 사별하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나오미(즐거움)는 마라(쓴)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록 모압 이방에서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섬기는 일에 성실하였다. 며느리 룻이 어머니에게 한 말을 보면 나오미가 얼마나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나를 짐작하기에 넉넉하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룻이 나오미의 며느리로서 생활하면서 나오미의 경건과 신앙을 잘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앙으로 나오미가 당한 고난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신앙을 가진 것이 확실하다. 결과는 보아스를 만난 룻이 그와 결혼하게 되고 아들을 낳으므로 기업 무를 자에 대한 복음적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같은 믿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회복 탄력을 극대화시켰다.
교훈: 절망의 끝에 있었던 나오미는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한 이방인 며느리 룻의 도움으로 마침내 회복되었다.
수요일 2월 16일
중압감에 시달린 에스더의 생애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에 4:16~17).
질문 1. 에스더가 마주해야 했던 역경, 갈등, 중압감을 무엇이었습니까?
[에2:6~7]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7 저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고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같이 양육하더라.
답: 에스더는 바벨론에 포로로 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에게서 양육되었다. 어린 에스더에 큰 역경이었다.
[에2:10]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하여 고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답: 에스더는 자기의 민족적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처신을 해야 하였다. 이것은 상당한 중압감으로 그의 삶에 다가왔을 것이다.
[에2:21~22]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 지킨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 왕을 원한하여 모살하려 하거늘 22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한지라.
답: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고변을 왕에게 전달해야 하는 부담을 안았다. 만일 그 전달하는 내용이 확실하지 않으면 무고로 도리어 화를 당할 것이다.
[에4:4~17]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5 에스더가 왕의 명으로 자기에게 근시하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슨 연고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의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부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수효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뵈어 알게 하고 또 저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드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고하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11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
답: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하만의 음모에서 구원해야 하는 짐을 맡게 되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더구나 왕에 아무 때가 나아갈 수 있는 궁중 법도도 아니었다. 왕이 불러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그 일을 감당하였다. 죽음의 중압감이 에스더의 어깨에 얹힌 것이다.
[에7:3~4]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4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에8:3] 에스더가 다시 왕의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
답: 에스더가 왕의 총신(寵臣) 하만이 있는 앞에서 그 하만의 죄를 고하여 그를 제거하고 그의 계획을 무너지게 하기 위하여 왕에게 알리려 할 때 얼마나 떨렸을까? 그러나 그는 그 일을 감당하였다. 그 뒤에는 유대 민족의 금식 기도가 있었다.
<부가설명> 우리는 교과를 통하여 일반적으로 잘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건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요셉 사건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일의 시종을 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그 일을 당한 그들의 현실을 간과하기 쉽다. 에스더의 입장은 무척 힘 드는 위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더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죽으면 죽을 각오로 왕에게 나아갔다. 얼마나 중압감에 눌렸겠는가. 결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남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쓸 만큼 중압을 느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에스더는 그것을 감당하였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나 여호와라는 말이 결코 나오지 않는다. 꼭 그 말이 필요한 것 같은 곳에도 그 말이 없다. 예를 들면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에4:14) 같은 곳이다. 분명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니와 라고 할 만한 자리인데도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니와 라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중보자 없이 환난에 직면할 마지막 때의 성도들이 처지를 예표적으로 가르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에스더와 유대인들의 처지가 야곱의 환난 때의 처지를 표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스더와 같은 믿음과 용기로 그날 아름다운 결말에 이를 것이다.
교훈: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신앙을 지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중재하는 일은 엄청난 중압감을 동반한다.
목요일 2월 17일
만족의 비결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질문 1. 고후 11:23~28을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이 어떤 역경을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빌 4:11~13도 읽어보십시오. 이렇게 수많은 고통을 겪고 난 후에 바울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까? 비록 우리가 고난 중에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여기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고후11:23~28]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답: 고후11:23~28은 바울의 환난 목록이다. 우리의 이런 생활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환난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환난을 믿음과 소망으로 견디었으며 마침내 어떤 경우라고 만족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는 능력 주시는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모든 경우에 다 환난과 중압감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사건들이었지만 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소망을 현재를 참고 그것이 회복 탄력이 되어 그들을 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였다. 우리도 믿음으로 이런 경험을 이루도록 매일이 회복탄력의 날이 되도록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믿음으로 살도록 하자.
만족은 행복과 정신 건강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만족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과거를 인정하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에게 이르러 온다. 흥미롭게도 어떤 사람은 소유가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소유가 적을지라도 만족한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새로운 상황을 수용하는 능력은 ‘지성’을 정의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바울도 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체의 비결을 나중에 “배웠”다(빌 4:12).
<부가설명>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적으로 배운 사도였다. 그의 많은 활동과 그에 수반한 많은 환난은 그를 더욱 굳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일체의 비결을 체득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체감한다면 비결을 익힌 것이 아니겠는가. 말씀과 기도와 친교로 바울처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일체의 비결을 체득한 바울은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예수 안에 만족한 것이다. 그것이 자족하는 마음이었다. 믿음으로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들을 감당하는 믿음의 삶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주님께서 크게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교훈: 수많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바울이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상황이든지 수용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얻어진 만족감 때문이었다.
금요일 2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흑암의 세력이 영혼의 주변에 모여들어 우리의 시야에서 예수님을 가림으로, 때때로 우리는 구름이 사라질 때까지 슬픔과 놀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기는 때때로 무섭다.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이 무서운 시간에 우리는 오직 속죄의 공로만을 믿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 이렇게 하는 한 우리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틀림없다. 빛이 우리의 길을 비추고 있는 동안, 은혜의 능력 안에서 강하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구름이 우리를 둘러쌈으로 모든 것이 캄캄하게 보일 때, 소망 중에 꾸준히 참는 데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삼켜 버리는 믿음과 순종이 요망된다. 우리는 견딜 수 있는 인내와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위하여 간구해야 할 때에 너무 빨리 낙심하고, 시련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도록 열렬하게 부르짖는다”(교회증언 1권, 30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다른 이들은 견디지 못하는 어려움을 어떤 이들은 극복합니다. 무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세상적으로 말하면 의지가 강한 사람이 극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기 의지로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성령의 돌보심과 천사들의 도움으로 극복한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현세를 지나가는 세상이며 그래서 환난과 질고가 있을 수밖에 없는 세상인줄 정직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극복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➋절대로 행복한 결말이 이를 것 같지 않은 환난이나 비극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우리의 신앙이나 하나님의 약속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합니까?
* 1번에서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의 성질, 곧 죄의 성질이 그렇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이 중요한 기초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장래 이루어질 영원한 나라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영원히 살도록 하시지 않고 일단 죽음의 잠을 잔 후에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약속의 성질도 바르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르지 않은 일을 상상으로 고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것은 참으로 미련한 짓이다.
➌그대가 흔히 출구가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상대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과 대면할 시간은 단 5분밖에 없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야한다면 그대는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 그의 손을 잡고 소망이신 예수님께 기도할 것이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 문제를 맡기고 전적인 신뢰로 기다리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는 것을 기도로 간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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